블로그 이미지
문화 속에 담긴 현실을 모색하는 곳 더키앙

카테고리

분류 전체보기 (4786)
블로거의 시선 (96)
네모난 세상 (4575)
SPECIEL (19)
문화 코드 (1)
생활의 발견 (23)
술술 풀리는 이야기 (4)
스토리로 떠나는 여행 (10)
책으로 세상보기 (8)
문화 깊게 읽기 (4)
스토리스토리 (24)
사진 한 장의 이야기 (4)
드라마틱한 삶을 꿈꾸다 (7)
대중문화와 마케팅 (9)
Total13,245,011
Today358
Yesterday565

‘나 혼자 산다’, 한혜진의 사진을 통해 공감하는 실제

한혜진은 왜 그간의 20년 이야기를 꺼내며 저도 모르게 눈물이 치솟았을까. 자신도 몰랐을 것이다. 모델 생활 20주년을 기념해 김원경과 함께 하와이로 즐거운 셀프 화보 촬영을 한 한혜진이 인터뷰를 하다 갑자기 울컥해버릴 줄은. MBC 예능 <나 혼자 산다>에서 20년 간 함께 모델 일을 하며 싸우기도 하고 미워하기도 했으며 또 서로를 다독이고 때로는 자극을 주는 경쟁자 역할을 해왔던 그 시절을 떠올리며 김원경의 눈시울은 갑자기 붉어졌다. 

그는 한혜진이 함께 지낸 20년 동안 늘 “자극을 주는 존재”였다고 했다. 그래서 힘든 일이지만 20년이라는 시간 동안 “지금까지 일할 수 있었다”고 했다. 한혜진은 자신이 했던 일들이 “마냥 행복하지만은 않았다”며 결코 즐길 수만은 없었던 그 20년을 되짚었다. 그는 스스로 자신이 하는 일을 “껍데기로 일을 해내는 직업”이라고 인정하며 “내가 노력을 한다고 해서 바뀔 수 있는 부분이 한정적”이라고 했다. 얼굴이 알려져 “어떻게 저런 얼굴로, 조건으로 모델 일을 해왔는지 모르겠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속상했다며, 그래도 “우리 엄마는 나를 이렇게 잘 낳아줬는데, 여자로서, 딸로서 그리고 누군가의 여자친구로서” 힘든 점이 있었다고 솔직한 속내를 말했다.

이번 여행이 셀프 화보 촬영이라는 건 우리가 모델 하면 생각하는 그 화려함과 즐거움 이면에 얼마나 치열한 노력들이 있는가를 잘 보여줬다. 김원경은 작은 침대에서 같이 자며, 시차 때문에 새벽에 일어나 밥을 먹고, 메이크업부터 의상, 소품, 사진 촬영까지 모든 걸 스스로 하면서 “힘든 와중에 중간 중간 뭉클했다”고 했다. 그건 어쩌면 모델로서의 삶을 축약해서 보여주는 것만 같았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20년 경험이 쌓여 있는 두 톱 모델의 노하우가 있고, 하와이의 아름다운 풍광이 있으니 셀프 화보 촬영이라고 해도 척척 해낼 것처럼 보였지만, 실상 화보를 찍는 그 과정은 결코 사진처럼 우아한 것만은 아니었다. 날씨를 늘 신경 써야 하고, 풍광에 맞는 의상을 준비해야 하며 힘들거나 자칫 위험해 보여도 짐짓 여유 있는 표정을 지으며 포즈를 취해야 했다.

하지만 모델 일은 카메라 앞에 설 때보다 어찌 보면 그러기 위해 자신을 부단히 준비시키는 과정이 더 힘든 일이었다. 한혜진의 모친은 수영복 화보 촬영이 있는데 저도 모르게 식사를 하던 한혜진이 제 손을 때리며 방으로 들어가 굶는 걸 보며 가슴이 아팠다고 밝혔다. <나 혼자 산다>에서 보여줬던 것처럼, 탄탄한 몸을 유지하기 위해 아픈 몸에도 운동을 빼놓지 않은 그였다. 

그렇게 해서 우리가 한혜진을 보게 되는 건 그 결과물인 사진이다. 그 사진 속에서 그는 당당하고 우아하며 때론 즐거워만 보이는 모습이지만 사실 그 이면에는 보이지 않는 곡절들이 담겨져 있기 마련이다. 마치 하와이 해변에서 패들 보드 위에서 찍힌 멋진 사진 뒤에는 올라서는 것조차 어려워하던 그들의 모습이 감춰지듯이. 

한혜진과 김원경의 울컥하는 모습을 보며 우리도 울컥해진 건, 그것이 우리의 모습이기도 하기 때문일 게다. 어떤 일을 오래도록 한다는 건 그런 의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십 년의 세월이 지난 후 문득 사진을 꺼내 봤을 때, 겉으로 보기엔 그저 즐거운 모습처럼만 보이지만 그 안에 담겨진 울컥하는 치열함을 보게 될 때 느껴지는 그 감정을 우리는 한혜진의 사진을 통해 똑같이 느낄 수 있었다.(사진:MBC)

Posted by 더키앙

‘효리네 민박’, 그 끝의 빈자리에서 우리가 발견한 건

우리가 사는 삶이 저렇지 않을까. 마지막에 가서야 그간 지냈던 시간들이 새록새록 기억에 새롭다. 처음 만났던 그 순간의 어색함이 같은 공간 같은 공기를 마시며 조금씩 풀어지고, 그래서 익숙해지고, 이제 편안해져 같이 있다는 것조차 실감이 안날 때 즈음 그 마지막이 온다. 그래서 우리는 말한다. 어느 날 갑자기 끝나는 것 같다고. 이효리와 이상순은 그러나 그 끝은 우리도 모르게 조금씩 다가오고 있었다고 말해줬다. 

'효리네 민박(사진출처:JTBC)'

JTBC <효리네 민박>은 누구나의 삶의 단면들을 짧게 잘라서 깊게 들여다보면 그 안에 삶 전체의 모습까지 발견하게 된다는 걸 확인시켜줬다. 생각해보면 그 제주도 민박집 안에서 이효리와 이상순 그리고 이지은이 함께 하고, 그들을 찾아왔다 떠난 손님들이 만들어낸 풍경은 우리가 사는 모습을 압축한 것이었다. 누군가를 새롭게 만나고, 친해지고 그리고 헤어지며 그 과정에서 남는 기억들. 

마지막 손님이 떠나고, 직원으로 왔던 이지은 또한 떠나자 그 왁자했던 민박집은 새삼 정적이 흐른다. 이효리와 이상순 부부는 그 정적이 새삼스럽다. 이효리는 “시끄러운 것도 좋고 조용한 것도 좋다”고 말한다. 그래서 결국은 둘만 덩그러니 남은 집이 쓸쓸해 보이고 또 삶이 그렇게 허무하게 빈자리만 남기는 것처럼 다가오기도 한다. 

하지만 그 조용함을 조용함으로 느끼게 해주는 건 시끄럽게 왔다 간 손님들 덕분이고, 또 시끄러움을 시끄럽게 느끼게 해주는 건 아무도 없을 때 그 빈자리를 채워줬던 정적 덕분이다. 그들이 있던 곳은 아무 것도 없지만 그렇다고 과거의 그 공간 그대로는 아니다. 공간 곳곳에 남은 왔다 간 사람들의 흔적과 온기 같은 것들이 기억으로 채워져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떠나며 남긴 이지은의 편지를 읽으며 굉장히 쿨한 척 하던 이효리와 이상순은 새삼 말이 없어진다. 아무렇지 않은 척 했지만 그들 역시 빈자리는 더 크게 다가오고 있었다. 이지은이 편지에 담은 ‘같은 데 다른 지은이’라는 문구가 새삼스럽다. 아마도 이지은 역시 떠날 때 짐짓 밝은 척 경쾌한 발걸음을 보였지만 어딘가에서 이 집과 그 집주인들과 그 집에 왔다 간 사람들이 그리워할 지도 모른다.

모두가 떠나간 빈자리에는 그들과 함께 찍은 사진들이 남았고, 또 늘 그들 옆에서 있는 듯 없는 듯 있어줬던 반려견과 반려묘들이 남았다. 사진 속에 찍혀진 얼굴들이 이야기를 건네고 예전부터 함께 있던 개들과 고양이들은 그들과 함께 시간을 보냈던 이들의 이야기까지 더해 그들의 기억을 일깨운다. 후기로 전해진 손님들도 마찬가지의 마음이 느껴진다. 그들은 떠나오면서 벌써부터 그곳을 그리워한다. 그러면서 이 곳의 기억으로 일상을 좀 더 버텨낼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한다. 

명절에 고향을 다녀오면 느껴지는 그것이 우리가 사는 삶의 전부가 아닐까 싶었던 그 마음이 <효리네 민박>이라는 프로그램의 마지막에서 그대로 느껴진다. 각자 저마다의 삶을 열심히 살아가고 있지만 그 힘겨움 속에서도 우리는 서로를 보듬으며 온기를 나누었던 기억들을 되새기며 버티기 힘들 것 같은 상황도 넘어서곤 한다. 결국은 끝이 오고야 말지만, 그렇다고 허무한 건 아니다. 많은 기억들이 드리워져 있어 우리는 생각하며 따뜻한 미소를 지을 수 있으니. <효리네 민박>처럼.

Posted by 더키앙

여행지 강박 버리자 <1박2일>이 얻은 것

 

서울 이 거대한 도시가 기적처럼 잠드는 1년 중 단 하루 설날. 빌딩과 인파 속에 숨겨졌던 낯선 서울의 얼굴을 찾는 단 하루의 마법 같은 시간여행.’ <12> 서울편은 이런 자막과 함께 지금껏 우리가 늘 봐왔던 차와 인파로 북적대는 서울이 아니라 텅 빈 낯선 서울의 모습을 보여주며 시작한다. 익숙함에서 낯설음을 찾는 것. <12> 서울편으로 보여주려 한 것은 여행이 가진 이 마법적인 힘이었다.

 

'1박2일(사진출처:KBS)'

대학로에 있는 가장 오래된 다방 학림다방, 장충동에 있는 가장 오래된 빵집 태극당, 연지동에 있는 가장 오래된 사무실 대호빌딩, 중랑천에 있는 가장 오래된 다리 살곶이 다리, 그리고 서울 한 복판에 있는 정동의 배재학당, 서울시립미술관, 중명전과 구러시아공사관. 이 오래된 공간들은 무심코 지나치며 살아왔던 우리들에겐 그다지 큰 의미를 주지 못했던 게 사실이다. 그것은 시간과 흔적이 어떤 의미인지 실감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12> 출연자들이 찍은 자신들의 사진과 그 똑같은 공간에서 찍은 부모님들의 사진이 오버랩 됐을 때 그들은 비로소 실감할 수 있었을 것이다. 시간과 공간이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인가를. 1967년 초여름 김주혁의 부모님이 데이트를 하던 명동성당에 2014년 겨울 김주혁이 서 있다는 것. 1973년 봄 차태현의 부모님이 신혼여행 사진을 찍었던 남산 팔각정에 2014년 겨울 차태현이 서 있다는 것. 그리고 1978년 봄 김종민의 아버님이 사진을 찍은 창경궁에 2014년 겨울 김종민이 있다는 것.

 

공간이 사실은 그 시간의 추억들을 켜켜이 쌓아놓고 있다는 걸 <12> 출연자들은 물론이고 그걸 바라보는 시청자들 또한 느낄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러니 그들이 그날 하루 지나온 공간들이 주는 느낌 또한 새로워질 수밖에 없다. 학림다방에서 얼마나 많은 이들이 음악을 들었을 것이며, 데이트 온 연인들이 태극당의 빵을 먹었을 것이며, 거의 100년이 된 대호빌딩이 얼마나 많은 이들을 품었을 것인가. 5백년도 넘은 조선시대 지어진 그 살곶이 다리 위로 얼마나 많은 이들이 걸어갔을 것이며, 정동의 그 역사적 현장 속에는 또 얼마나 많은 아픔들이 서려있을 것인가.

 

그날 하루 명동에서 시민들과 함께 환희를 연출한 김주혁과 데프콘이나, 남산의 케이블카를 타기 위해 버스킹을 했던 차태현과 정준영, 그리고 창경궁에서 때 아닌 쓸쓸한 보스 연기를 했떤 김준호와 김종민은 시간이 한참 흐른 뒤 이 곳을 다시 찾아 그 때의 기억과 추억을 되살릴 지도 모를 일이다. 시간의 기억들은 기둥 위에 새겨진 낙서처럼 공간에 흔적을 남긴다. 우리가 갔던 그 길을 우리가 알던 그 분들도 똑같이 걸어갔다는 것은 얼마나 가슴 뛰게 만드는 일인가.

 

처음부터 특별한 장소는 없다. 추억이 그곳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 뿐.’ 자막으로 드러낸 것처럼 이번 서울 시간 여행 편은 그래서 <12>의 새로운 출사표처럼 보인다. 새로운 공간과 여행지에 대한 강박을 벗어나는 일은 여행에 깊이를 더하는 일이다. 공간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공간을 잊지 못하게 만드는 사람들과 그 사람들과 함께 했던 기억, 추억들이 더 중요하다는 것. 유호진 PD의 여행관이 투영된 <12>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는 이유다.

Posted by 더키앙

풍경이 스토리를 압도하는 <사랑비>의 문제점

 

파란 담쟁이 넝쿨이 주는 청춘(靑春)의 파릇파릇함, 촉촉이 내리는 비의 질감, 그 안으로 천천히 들어오는 노란 우산, 그 우산 속의 연인... <사랑비>의 첫 장면은 이 드라마가 얼마나 감성을 자극하는 예쁜 그림에 집착하고 있는가를 잘 말해준다. 미대 앞 작업실 안에서 창밖으로 처음 인하(장근석)가 윤희(윤아)를 발견하는 장면도 그렇다. 미대 앞 벤치에 앉아있는 윤희에게서는 광채가 흐른다.

 

 

'사랑비'(사진출처:KBS)

아마도 첫 만남의 그 강렬하고도 빛나는 순간을 포착해내려는 윤석호 PD의 연출 의도가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것은 인하와 윤희가 만나는 70년대 교정의 풍경에 머무르지 않고, 2012년 두 사람의 자식인 서준(장근석)과 하나(윤아)의 첫 만남으로도 이어진다. 홋카이도의 아름다운 설경은 그 순백의 배경 위에 선 인물들을 도드라지게 만들었다. 이른바 다이아몬드 스노(흩날리는 눈가루가 빛에 간섭되어 마치 다이아몬드가 떨어지는 것 같은 효과를 주는 것)나 몽환적인 느낌의 온천도 마찬가지다.

 

<사랑비>는 분명 압도적인 색과 빛의 대비로 이루어진 영상의 연속이다. 그리고 이것은 스토리상으로도 이미 의도된 것들이다. 왜 굳이 인하가 미대생이며 그 아들인 서준이 포토그래퍼인가가 그것을 설명해준다. 이 두 인물은 <사랑비>의 영상을 상당부분 만들어내는 그림과 사진을 표상한다. 70년대의 풍경이 인하가 그려내는 그림이라면(그가 생각하는 추억처럼 아련한), 2012년의 풍경은 서준이 찍어낸 사진이다.

 

물론 이들 캐릭터는 그림이 주는 아날로그적인 느낌과 사진이 주는 디지털적인 느낌으로 대비되는 것처럼 보인다. 이 풍경의 차이는 70년대의 3초와 2012년의 3초의 대비를 통해 제시되는데, 전자가 3초 만에 빠지는 사랑을 얘기한다면, 후자는 3초 만의 누군가의 마음을 빼앗는 사랑을 얘기한다. 전자가 운명적이고 수동적인 3초라면, 후자는 보다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3초다. <사랑비>는 캐릭터의 대비를 통해 70년대와 2012년의 다른 사랑을(그러면서도 같은) 보여주는 드라마다.

 

그런데 막상 이 '3초'의 대비로 대변되는 두 캐릭터의 성격적인 차이를 빼놓고 보면 이 두 사람의 사랑에 대한 태도는 그다지 다르게 보이지 않는다. 70년대 인하가 친구인 동욱(김시후)과의 우정 때문에 윤희에게 마음을 전하지 못하고 전전긍긍하는 것처럼, 2012년 서준도 자신의 아버지가 하나의 어머니를 좋아한다는 사실 때문에 하나에게 헤어지자고 말한다. 70년대와 2012년, 무려 30년의 세월이 흘렀어도 그들은 헤어짐의 이유를 당사자에게 직접 말하지 못한다. 그림에서 사진으로, 수동적인 3초가 능동적인 3초로, 순정 캐릭터가 까도남 캐릭터로 바뀌었음에도 이들의 사랑을 하는 방식은 그다지 달라 보이지 않는다.

 

서준이나 하나 같은 요즘 세대가 부모 세대의 사랑을 반복하고 있는 이 상황은 과연 현실적인 것일까. 부모들의 빗나간 사랑의 수레바퀴에 억눌려 뭐 하나 표현하지 못하고 속으로만 끙끙 앓는 이 풍경은 그래서 지나치게 작가의 의도가 들어간 것처럼 보인다. 즉 <사랑비>는 시대가 바뀌었기 때문에 사랑도 바뀌었다는 얘기를 하려는 드라마가 아니다. 오히려 시대가 바뀌어도 변치 않는 사랑을 보여주려는 드라마다. 그래서 그 과도한 의도 속에서는 지금 세대의 어떤 톡톡 튀는 캐릭터라고 해도 그저 과거의 사랑으로 회귀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이렇게 이야기가 변하지 않고 반복되는 이유는 이미 강한 주제의식 속에 스토리가 갇혀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사랑비>의 그림들이 예쁘긴 하지만 어딘지 꾸며진 듯한 '살롱사진'의 느낌을 주는 이유이기도 하다. 스토리가 주제의식 속에 갇혀 있듯이, <사랑비>는 예쁜 그림이라는 미적인 연출 속에 드라마가 갇혀 있다.

 

그림과 사진으로 대변되는 캐릭터 설정, 파릇파릇한 청춘의 캠퍼스 교정의 풍경, 예쁜 정원, 카페, 미술 작업실, 동해 바다, 홋카이도의 이국적 풍경, 수목원이라는 공간 등등, 이 작품은 윤석호 PD가 축조해 놓은 풍경화나 정물화를 먼저 상정해놓은 듯한 인상이 짙다. 그리고 그 위에 이 그림의 최고 절정이라고 할 수 있는 두 모델이 서 있다. 장근석과 윤아다. 바다를 배경으로 윤아가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을 재현하고, 장근석이 그녀를 사진에 담는 장면은 그래서 윤석호 PD의 영상에 대한 욕망을 보여주는 것만 같다. 예쁘긴 하지만 어딘지 꾸며진 듯한.

 

이것은 스토리가 이 압도적인 풍경화를 따라잡지 못하기 때문일까, 아니면 거꾸로 압도적인 풍경화에 대한 매혹이 스토리를 부수적인 것으로 만들어버리기 때문일까. 오랜 세월을 지나 중년의 인하(정진영)가 홍대 앞에서 비를 맞으며 윤희(이미숙)를 다시 만나는 그 장면이나, 여행을 떠난 서준과 하나가 그 여행지에서 인하와 윤희를 만나는 그 장면이 극적이고 미적인 느낌을 주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그들이 어떻게 그런 공간에서 갑자기 만나게 되었는가에 대한 스토리적인 부실은 어쩔 수 없다.

 

살롱사진에 대한 매혹은 그것이 미적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하지만 미적으로 보인다고 해서 그것이 미적인 것은 아니다. 드라마의 미적인 특징은 물론 영상 연출이 차지하는 바가 적지 않지만 결국 스토리적인 정교함과 디테일에서 나오는 것이다. 스토리의 디테일을 영상을 통해 심리적인 것까지 포착해내면서 그 이야기의 힘을 부여해주는 영상연출이야말로 진정으로 미적인 것이 아닐까. 마치 문장의 유려함에 빠졌을 때 자칫 글이라는 매체의 본분을 잊을 위험이 있듯이, 영상의 아름다움 또한 스토리를 종속화하고 가둬버리는 위험을 내포하고 있는 셈이다. 70년대 사랑과 2012년의 사랑, 그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변주라는 괜찮은 기획의도를 갖고 있는 <사랑비>. 거기에 맞는 새로운 스토리의 부재가 이 작품을 살롱그림처럼 만드는 이유가 아닐까.

Posted by 더키앙
친구가 저 세상으로 간지 얼마가 지났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마 채 1년이 안됐을 겁니다만, 정확하게 몇 달이 지났는지 알 수 없는 건 아직도 그 친구가 그렇게 갑자기 떠났다는 것이 믿기지 않기 때문일 겁니다. 친구의 누님은 친구의 생일을 맞아 영상추모제를 한다고 저희 친구들을 불렀습니다. 영상추모제. 참 낯선 이름입니다. 사실 추모제라는 거창한 이름은 보통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너무 거대하게 느껴졌습니다.

장소는 명동성당 꼬스트홀. 저녁 7시에 친구들과 함께 그 홀에 들어서니 몇 백 명은 앉아도 좋을 자리는 텅 비어 있었습니다. 가족들 여섯 명과 우리 친구들 네 명을 합쳐 달랑 10명이 그 넓은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그 영상추모제라는 것이 시작되길 기다리고 있었죠. 아마도 빔 프로젝트를 노트북에 연결해 영상을 보여주려는 것 같았습니다. 상황은 조악해서 노트북과 빔 프로젝트가 잘 연결이 되지 않아 한 이십 분 넘게 시간이 지연되었습니다.

그 때 한 친구가 말하더군요. "저런 거 연결하는 건 그 녀석이 딱인데." 그랬습니다. 먼저 저 세상으로 간 그 친구는 컴퓨터 공학 전공이었고 우리는 모두 컴퓨터를 구입하거나 문제가 있거나 할 때면 늘 그 친구를 찾곤 했었죠. 그 기다리는 이십 분이 왠지 이 추모제의 한 부분인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우리는 말은 안했지만 모두 그 빈자리를 더욱 느끼고 있었죠.

노트북이 연결되고 예상했던 대로 그 친구의 생전 동영상이 흘러 나왔습니다. 아이 돌잡이 하는 동영상이었는데, 그 안에서 그 친구는 여전히 웃고 얘기하고 있더군요. 동영상이 갑자기 뚝 끊어지듯 꺼지고는 이어지는 영상은 무덤가에 오열하고 계신 어머님의 사진이었습니다. 다음 사진은 마지막 병원에 있을 때 찍혀진 사진(그 친구는 백혈병이 재발했답니다)이었습니다. 그걸 보니 속이 뭉클하더군요. 그리고 이어지는 사진들은 마지막으로 떠났을 것이라 여겨지는 그 친구 가족의 여행사진이었습니다. 거기서 친구는 아장아장 걷는 아들을 대견스레 바라보고 있었죠.

한 백여 장이 넘는 사진이 계속 이어져 나왔는데, 그것은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를 떠올리게 했습니다. 장엄한 미사곡 같은 음악이 흘러나오는 와중에 시간의 역순으로 사진이 한 장씩 보여졌고 그 사진 속에서 친구는 점점 젊어지고 있었습니다. 대학시절의 푸르렀던 청춘의 얼굴이 있었고, 그 때 아마도 사귀었던 여자친구들도 있었고, 물론 우리 친구들의 모습도 그 인생의 한 부분으로 들어가 있었죠. 우리는 조금 숙연해졌습니다. 한 인생을 한 순간에 목도한 듯한 느낌이었고, 그걸 통해 뭔가 신비스런 우리네 삶의 진짜 모습을 발견한 느낌이었습니다. 흑백사진 속에서, 초점이 맞지 않은 사진 속에서, 눈을 감아버린 사진 속에서 여전히 그 시간들은 붙박혀 있었습니다.

점점 마지막으로 가면서 친구는 아기가 되어갔죠. 아장아장 걷기 시작하는 아기의 모습에서 지금 아버지 없는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을 아들의 얼굴이 오버랩되었습니다. 그 친구의 아들은 영락없이 그 친구가 어렸을 적의 그 얼굴 그대로였습니다. 문득 시간은 한 사람 안에서는 무자비하게 앞으로만 흘러가지만, 가족이라는 테두리에서는 그렇게 무한회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너무나 조촐한 추모영상제가 끝나고 명동성당을 빠져나오는 길. 제가 보았던 어떤 대단한 영화보다도 이 행사가 보여준 것들만큼 제게 많은 것을 얘기해준 적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 사람의 인생을 그대로 되돌려 본다는 것은 그 표현만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어떤 것이 있었죠. 가족들과 친구들은 그 시간들을 추억하며 때론 눈물짓고 때론 아쉬워하고 때론 웃음을 짓기도 했습니다. 그 친구는 여러 흔적들 속에 여전히 살아있었죠.

영상 홍수의 시대에 영상은 그저 흔한 하나의 기록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기록이 가진 아련함 같은 것은 언젠가 들춰보면 거기 늘 숨겨져 있었다는 것을 알게되죠. 친구는 제게 그런 이야기를 해주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친구는 이제 없지만, 수많은 그 친구의 흔적들 속에서 저는 살고 있었습니다. 여전히 메신저 창에는 그의 이름이 떠있고, 핸드폰에는 그의 전화번호가 남아있고, 함께 찍었던 사진 속에는 그가 웃고 있었죠.
Posted by 더키앙

최근에 달린 댓글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