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자의 시선 따라가는 ‘리턴’, 못내 불편한 까닭

점입가경이다. SBS 수목드라마 <리턴>은 상류층 인물 4명과 연루된 범죄를 추적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겉보기엔 멀쩡하고 화려하게 보이는 상류층 4인. 강인호(박기웅)는 재벌가 상속자이고, 오태석(신성록)은 IT회사 대표이며, 김학범(봉태규)은 사학재벌가의 자재이며, 서준희(윤종훈)는 국내 최고의 종합병원장 아들이다. 

그런데 이들의 이면을 파고 들어가면 추악한 그 민낯이 드러난다. 강인호는 금나라(정은채)와 결혼해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있지만 사실 염미정(한은정)과 오랜 내연관계를 이어오고 있었고, 오태석과 김학범, 서준희는 문란하고 잔인한 파티를 하며 살아간다. 김학범은 돈이면 뭐든 다 되는 줄 아는 인물로 돈을 주고 사람을 패는 일을 다반사로 저지르고, 서준희는 의사이지만 마약중독자다. 오태석은 짐짓 신사인 척 하지만 가장 잔인한 인물. 자신에게 불리하게 될 상황에 처하자 오랜 친구였던 서준희마저 죽음으로 몰아넣는 인물이다. 

드라마는 충격적인 범죄 상황들이 연달아 벌어진다. 강인호의 집에 모인 친구들은 일부러 염미정을 그 저녁 자리에 초대해 강인호를 당황하게 만들고는 낄낄 대고, 김학범은 오태석의 아내를 화장실에서 범하는데 어찌된 일인지 오태석은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는다. 문란함이 극에 달해 있고, 필요하면 사람 하나 죽여 묻는 일은 손쉽게 해치운다.

사건은 김학범이 내기에서 져 오태석에게 보낸 차 트렁크에서 염미정의 시체가 발견되면서 시작한다. 누가 죽였는지 알 수 없는 그 상황 속에서 그들은 시체를 들어 펜트하우스까지 옮기고, 그 시체를 묻어버릴 걸 공모한다. 거대한 트렁크에 염미정의 시체를 넣어 오태석의 사유지에 묻어버리는 그 과정들이 상세하게 공개된다. 

하지만 강인호가 염미정의 살인사건 용의자로 지목되어 위기에 처하게 되자 죄책감을 느낀 서준희는 경찰에 자수를 결심하는데, 그 사실을 알게 된 오태석과 김학범이 그를 붙잡아 산으로 끌고 간다. 그 곳에서 실랑이를 벌이다 김학범이 돌로 서준희의 머리를 내리쳐 쓰러뜨리는데, 그가 죽은 걸로 오인한 두 사람은 친구마저 버리자고 결심한다. 하지만 서준희를 버리러 가는 도중 그가 깨어난 걸 알게 됐음에도 불구하고 오태석은 아예 불씨를 제거하려 그를 차에 태워 산 밑으로 굴려버린다. 

사실 살인사건이 벌어지고 그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수사하는 이야기들은 이미 장르물들에 꽤 많이 등장한 바 있다. 그러니 <리턴>의 소재 자체가 남다르다고 하기는 그렇다. 하지만 <리턴>이 훨씬 더 자극적으로 느껴지는 건, 범죄자들의 시선들을 더 많이 따라가고 그 행각 또한 잔인하기 때문이다. 

물론 <리턴>이 그리려는 건 이들의 범죄를 들여다보는 일만이 아니라, 최자혜(고현정)와 독고영(이진욱)이 그 사건을 해결해가는 과정일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흐름은 사건 해결의 과정이 아니라 범죄가 어떻게 벌어지고 있는가에 대한 디테일한 이야기들이다. 

당연히 몰입감은 높을 수밖에 없고, 시청률도 나올 수밖에 없다. 드라마라고 하기에는 꽤 수위가 높은 자극들이 연이어 등장하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드라마가 보기 불편하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차라리 등급 수위를 좀 높여서 19금으로 했다면 납득이 될 만하지만, 마약, 살인, 폭력, 자해, 불륜 같은 소재들을 그것도 범죄자들의 시선을 따라가며 자세히 보여주는 드라마는 불편함을 남길 수밖에 없다.(사진:SBS)

<화랑>이 유골무죄 무골유죄 청춘을 보듬는 방식

 

유골무죄 무골유죄.” 골품이 있으면 죄가 없고 골품이 없으면 죄가 있다? 이 조어는 유전무죄 무전유죄를 삼국시대 신라의 골품제도에 빗댄 말이다. 지금으로 치면 금수저 흙수저의 신라 버전쯤 될까. KBS 월화드라마 <화랑>이 그려내는 청춘들은 당대의 골품제도라는 태생적인 틀에 묶여 꿈이 있어도 펼칠 수 없는 처지에 놓여있다.

 

'화랑(사진출처:KBS)'

무명(박서준)은 그 골품제도에 의해 많은 상처를 갖고 있는 인물이다. 어린 시절부터 천인촌에서 함께 자라온 둘도 없는 친구 막문(이광수)이 그 신분제의 틈바구니에서 비참한 죽음을 맞이했다. 누이를 찾기 위해 왕경을 넘었다는 죄로, 또 절대 신분이 노출되면 안 되는 성골 삼맥종(박형식)의 얼굴을 봤다는 죄로 막문이 죽음을 맞이하고 가까스로 살아남은 무명은 본래 안지공(최원영)의 아들이었던 막문의 진짜 이름 선우를 자신이 대신 쓰기로 한다.

 

꽃다운 청춘들, 화랑이 모이는 선문이 겉으로 표방하는 것이 골품의 차별이 없다는 건 그래서 흥미로운 대목이다. 물론 그 안에서 뼛속까지 골품의 틀에서 살아왔던 진골들이 선우 같은 반쪽(반만 진골)을 집단적으로 따돌림 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적어도 겉으로는 오로지 실력으로 판단하는 것 같은 기준들이 제시되는 건 <화랑>이라는 드라마가 현재에 어떤 판타지를 줄 수 있는 대목이다.

 

이러한 골품의 차별이 없이 모두가 하나의 화랑으로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은 자신이 해야 하는(하다못해 빨래까지) 상황은 진골들에게는 힘겨운 일이지만, 애초에 천인으로 살아왔던 선우에게는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다. 하지만 그를 괴롭히는 건 여전히 귀천을 따져 자신을 능멸하고 나아가 여동생인 아로(고아라)까지 희롱하는 얘기를 들어야 한다는 점이다.

 

반류(도지한)는 마치 현재의 비뚤어진 상류층들의 갑질 행태를 고스란히 재연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선우 역시 만만한 인물은 아니다. 반류가 선우에게 너 같은 반쪽이 시궁창이라고 말하자 선우는 이렇게 일침을 가한다. “시궁창은 너지. 스스로 뭘 해본적도 없고. 그 자리에서 썩고 있는 너 같은 고인 물.” 이 대사가 말해주듯 이 귀족 자제들이 화랑으로 모인 선문에서 선우라는 이질적인 인물은 그래서 향후 이들 화랑들에게 어떤 변화를 만들어낼 것으로 보인다. 귀족이라는 골품의 틀에서 썩어가고 있는 그들을 다시 흐르게 만들어줄.

 

선우가 온 몸에 상처를 달고 다니는 인물이라는 건 이런 그의 캐릭터를 그대로 반영한다. 흥미로운 건 그에게 마음이 설레는 아로가 의원 아버지인 안지공에게 곁눈질로 의술을 배운 인물이라는 것. 아로의 캐릭터는 다친 상처를 치료해주는 것이다. 아로를 구하다 손바닥을 칼에 베인 선우를 치료하면서 다치지 마요라고 말하는 장면이 뭉클하게 다가오는 건 그것이 마치 상처받은 청춘을 보듬는 치유의 손길처럼 여겨지기 때문이다.

 

선문에서 벌어진 화랑들의 집단 난투극으로 그들을 치료하기 위해 아로가 나서는 장면은 그래서 이 캐릭터를 보다 명확히 해준다. 또한 잠 못 드는 삼맥종을 옆에서 잠들 수 있게 해주는 장면 역시 마찬가지다. 치유의 캐릭터 아로는 선우의 몸과 마음에 난 상처를 보듬어주고, 정신적인 고통을 겪고 있는 삼맥종을 잠시 쉬게 해준다.

 

이것은 <화랑>이라는 사극이 신라의 화랑들 이야기를 통해 현재의 청춘들을 보듬는 방식일 것이다. 물 수()를 보여주며 이것의 성격을 묻는 위화공(성동일)에게 삼맥종은 물은 선하다고 말한다. 늘 자신을 낮추고 밑으로 흘러가기 때문이란다. 하지만 선우는 물이 고단하다고 말한다. 물은 몸속에서 금이면 금, 물고기면 물고기를 내어줘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어쩌면 위화공이 물 수()자와 함께 내놓은 표제어 왕()의 역할을 묻는 질문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선우의 심경이 담겨진 이야기이기도 하다. 청춘들의 고단함. 그 고단함을 없애줄 수 있는 건 더 고단하게 백성들을 위해 일하는 왕의 역할이 아닐까 하는 그런 질문.

<가면>, 현실성 사라진 드라마의 문제

 

만화 같다는 표현은 하나의 관용구가 되었다. 만화 자체의 가치를 비하하는 얘기가 아니다. 만화처럼 상상력의 나래를 한껏 펴다보니 현실성을 잃었다는 하나의 표현일 뿐이다. 지금 현재 <가면>이라는 드라마가 그렇다. SBS <가면>은 도플갱어라는 낯선 설정을 가져와 타인의 삶을 대신 살아가는 한 여인의 사랑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이 드라마를 보다보면 현실적이라기보다는 만화 같다.

 


'가면(사진출처:SBS)'

<가면>이 타인의 삶을 대신 사는 가면의 설정을 가져온 건 의미 있는 일이었다. 그것은 태생으로 규정되는 가난한 삶을 벗어나기 위한 안간힘처럼 다가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가면을 쓰고 상류사회에 입성한 여인은 그 정체성의 혼란과 욕망 사이에서 벌어지는 고민을 들여다보기보다는 가면의 부부생활 속에서 피어난 달달한 사랑에 빠져버린다.

 

그것 또한 상류사회의 쇼윈도 부부가 보여주는 가면의 삶을 탈피하는 과정으로 바라볼 수 있다. 그런데 이야기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이 여인이 본격적인 사업으로 뛰어들어 수완을 발휘하고 국회의원인 아버지(실제 아버지는 다른 이지만)의 정치적인 행보까지 밀어주는 놀라운 능력을 보여준다. 이 여인의 사랑과 성공의 판타지로 빠져들수록 이야기는 현실성을 점점 잃어간다.

 

<상류사회>라는 드라마를 생각해보라. 상류사회의 일원으로서 살아가는 건 결코 호락호락한 일이 아니다. 그들은 뿌리 깊은 계급의식을 갖고 있다. 그러니 <가면>의 변지숙(수애)이 서은하 역할을 척척 해내는 걸 뛰어넘어 사랑에 있어서도 또 사업에 있어서도 능력을 발휘하는 건 놀라운 일이다. 물론 그녀가 그렇게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힘은 오히려 그녀가 살아온 변지숙의 삶을 통해 얻은 경험들 덕분이라고 드라마는 말하고 있다. 하지만 그걸 현실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세상이 그렇게 순진한가.

 

<가면>은 막연히 서민들의 세계와 상류사회를 이분법적으로 나눠 마치 선과 악을 구분하듯 다루고 있다. 즉 서민들의 세계가 선이라면 상류사회는 악이다. 물론 그 상류사회 안에도 민우(주지훈) 같은 선이 존재한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민우는 그 세계에서 도태된 인물이나 마찬가지다. 그는 정신병자 취급을 받으며 호시탐탐 그 자리를 노리는 석훈(연정훈)같은 절대 악에 의해 위협을 받고 있다.

 

그런 민우를 오히려 챙기고 보호하는 건 변지숙이다. 이건 과연 가능한 이야기일까. 백화점의 평범한 직원이었던 그녀가 상류사회의 살벌한 이전투구의 세계 속에서 승승장구한다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이야기다. 그것은 우리가 지금껏 그토록 많은 재벌가 이야기들을 드라마를 통해 봐오면서 알게 된 것이다. 저들의 세계는 결코 만만하지가 않다.

 

<풍문으로 들었소>가 보여주는 상류사회에서는 돈이면 한 사람의 삶을 일으키기도 또 망가뜨리기도 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상류사회>에서 사랑하는 남녀들은 그 절절한 사랑에도 불구하고 뿌리 깊은 계급의식의 차이 때문에 거대한 장벽 앞에 서 있는 듯한 암담함을 느낀다. 그런데 타인의 얼굴이라는 가면 하나를 쓰고 모든 게 그리 쉽게 된단 말인가.

 

변지숙이 커피 프랜차이즈 사업에 뛰어들고 자신의 본래 가족에게 그 사업장 하나를 덥석 안겨주는 이야기가 차라리 PPL 때문이었다고 한다면 그러려니 할 것이다. 하지만 가면을 통한 상류사회의 이면을 보다 현실적으로 예리하게 드러내 보여지기 보다는, 한 서민의 상류층 가면 놀이 판타지에 빠져 있는 건 아무래도 너무 마취적이다. 달달한 판타지도 좋지만 좀 더 현실성 있는 드라마를 그리는 건 불가능한 일일까



<풍문> 고아성, 정성주 작가의 깊이가 보인다

 

어떻게 이런 기막힌 캐릭터가 탄생했을까. SBS <풍문으로 들었소>의 서봄(고아성)은 놀라운 캐릭터다. 한인상(이준)의 아이를 가져 그의 아버지 한정호(유준상)라는 상류층 괴물의 집에 포획된 존재처럼 보였지만 그건 빙산의 일각일 뿐이었다. 그녀는 조금씩 이 세상에 적응했고 괴물들과 더불어 살아가며 그들의 방식으로 어떻게 세상을 주무르는지를 터득해간다.

 

'풍문으로 들었소(사진출처:SBS)'

언니 서누리(공승연)가 상류층 자제를 잡아 그 세계에 입성하려 했다가 그 소문이 찌라시에 퍼지고 망신만 당하게 되자 서봄은 놀라운 대처 능력을 보여준다. 서누리를 만나 따끔하게 현실을 인식시켜주고 최연희(유호정)의 개인비서인 이선숙(서정연)을 시켜 한정호의 업무 비서인 양재화(길해연)에게 그 물의를 빚게 만든 상류층 자제의 집안이 어떤 의도를 갖고 있었다는 식으로 한정호에게 이야기를 흘리게 한다.

 

결국 한정호가 그 상류층 자제의 집안에 압력을 가함으로써 사태는 반전된다. 즉 서누리가 그 상류층 자제를 쫓아다닌 게 아니라 거꾸로 그 상류층 자제가 서누리를 쫓아다닌 사실로 이야기가 둔갑한 것. 이 소문은 다시 찌라시를 타고 퍼져나감으로써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

 

이 집안의 비서들은 아주 조금씩 이 작은 사모인 서봄의 존재감에 압도당한다. 최연희의 개인비서인 이선숙에게 자신은 시어머니와 달리 당신이 필요하지 않다고 말함으로써 그녀를 무릎 꿇리고 나아가 그녀를 이용한다. 그런데 이런 섬뜩한 면을 보이면서도 시부모 앞에서는 여전히 어리숙한 듯 행동한다. 이선숙이 무릎 꿇고 있는 걸 목격한 최연희가 무슨 일이냐고 묻자, 서봄은 제가 뒤끝이 좀 있거든요라고 말한다. 마치 아이가 하는 행동인 것처럼 위장한다.

 

<풍문으로 들었소>가 초반부에 보여준 것이 한정호라는 괴물을 블랙코미디식으로 풍자해낸 것이라면, 중반을 넘어서면서 이 드라마는 이 슈퍼갑의 세계에 들어온 평범한 서민 을들이 어떤 변화를 일으키는가를 흥미롭게 보여준다. 서봄의 아버지 서형식(장현성)은 자신을 대접해주는 척 하는 한정호 때문에 우쭐해하며 갑 행세가 주는 권력놀이에 조금씩 맛을 들여가고, 서누리는 동생을 질투하며 자신도 그 욕망의 세계에 들어가기 위해 무리수를 던지게 된다. 유일하게 서봄의 엄마 김진애(윤복인)만이 이런 가족의 변화를 감지하며 불안해한다.

 

이런 변화 속에서 가장 극적인 변화를 보여주는 인물이 서봄이다. 그녀는 시부모 앞에서는 아이처럼 해맑게 웃으며 말하지만 뒤에서는 엄숙한 어른의 얼굴로 비서들을 혼쭐내는 두 얼굴을 보여준다. 또한 드러내지 않고 은근히 보여주는 지적 능력을 통해 최연희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그러면서도 남편인 한인상에게는 여전히 연인 같은 풋풋함을 보여주고 친정에는 애틋한 가족애를 드러낸다.

 

서봄이라는 인물은 그래서 대단히 복합적이고 입체적이다. 그녀는 섬뜩하면서도 애잔하다. 그 변화가 부정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한편으로는 그것이 아이를 가진 엄마로서의 생존본능이라는 데서 고개가 끄덕여진다. 무엇보다 강해져야 친정 가족들도 보호해줄 수 있다는 자각은 서봄의 변화를 만든 동력 중 하나다. 그리고 자기가 결국은 기대야할 한정호와 최연희 앞에서는 한없이 어린 티를 낸다. 고졸이라는 사실을 굳이 일깨우는 최연희에게 . 고졸 딸께요.”라고 말하는 어른 아이.

 

정성주 작가가 그리는 갑과 을의 세계는 거기 서 있는 인물의 태생적 문제가 아니라 그 위치와 시스템이 만드는 권력적 관계로서 그려진다. 즉 서봄에 대해 대중들이 갖는 양가적 감정의 정체는 그녀가 을의 정서를 갖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갑의 시스템에 적응해가고 있다는 데서 나오는 것이다. 실로 정성주 작가가 가진 세계의 깊이를 읽어낼 수 있는 대목이다. 물론 이를 서봄이라는 캐릭터의 연기를 통해 보여주는 고아성의 놀라움도 빼놓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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