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과 금력 미화하는 <상속자들>, 뭐가 문제일까

 

때로는 드라마 작가에게 능력이 오히려 독으로 비춰질 때가 있다. <상속자들>이 그렇다. 드라마만을 놓고 보면 <상속자들>은 재벌2세와 가난한 여자 사이에 벌어지는 전형적인 신데렐라 스토리다. 지금껏 김은숙 작가가 계속 해왔던 이야기의 반복이고 또 가장 잘 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상속자들(사진출처:SBS)'

“나 너 좋아하냐?” 같은 김은숙 작가 특유의 대사 톤도 여전하고, 밀고 당기며 때론 아프고 때론 달달하게 이어지는 멜로 역시 꽤 강한 극성을 만들어낸다. 특히 이민호, 박신혜, 김우빈, 강민혁 같은 아이돌 스타들의 존재감은 어찌 보면 늘 봐왔던 김은숙 표 멜로의 역할 놀이에 강력한 힘을 부여한다. 어찌 보면 이들이 있어 드라마가 갖고 있는 비현실적인 구석들, 이를 테면 지나친 우연의 반복이나 제국고등학교 같은 과장된 설정들이 그나마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상속자들>은 전형적인 이야기에 비현실적인 상황들에도 불구하고 꽤 재미가 있다. 마치 아이돌 팬시 상품 같은 느낌이랄까. 김탄(이민호)이 캘리포니아에서 서핑을 하고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풀빌라에서 사는 모습은 그가 아무리 유학이 아닌 ‘유배’라고 말해도 보통사람들에게는 판타지의 하나로 여겨지게 마련이다.

 

김탄의 집안에서 운영하는 제국고등학교는 ‘사탄들의 학교’라고 일컬어지지만, 가진 자들의 재수 없음의 이면에는 고등학교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으리으리한 환경과 커리큘럼에 대한 막연한 동경 역시 깔아놓고 있다. 그래서 이 드라마는 그 막연한 동경 속에 자꾸만 바라보게 함으로써 그들의 이해할 수 없는 세계와 행동들마저 도취시키는 힘을 발휘하기도 한다.

 

최영도(김우빈)를 바라보는 시선이 그렇다. 그가 단지 가난하고 클래스가 다르다는 이유로 준영(조윤우)이 같은 아이를 구타하고 왕따시키며 고소하겠다고 협박을 하는 장면은 사실 상식적으로는 납득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이 드라마의 시선은 왕따 당하는 준영이의 입장보다는 왕따시키는 최영도의 입장에 가 있다. 물론 현재는 달라졌지만 김탄 역시 과거에는 최영도와 다름없는 캐릭터였다. 이 드라마는 이 부유한 친구들이 소위 고통이라고 부르며 그것 때문에 폭력과 금력을 쓰는 것들을 정당화하고 있는 셈이다.

 

이것은 이미 제목에서 드러나 있다. <상속자들>에 붙어있는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버텨라’라는 제목에는 이들 태어날 때부터 왕관을 쓰게 되어 있는 자들이 말하는 이른바 ‘고통’이라는 것을 이 드라마가 다루겠다는 의도가 들어있다. 그렇다면 그 고통이라는 것이 도대체 뭘까. <상속자들>의 김탄이나 최영도처럼 ‘왕관을 쓰려는 자’의 고통이란 대부분 아버지의 여성 편력과 그로 인해 콩가루 집안이 된 가족사에서 비롯된다.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이 ‘왕관을 쓰려는 자’들의 고통을 다루는 일이 과연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일인지는 모르겠다. 그 왕관 때문에 고통 받는 이들이 현실에는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사회적으로 보면 아마도 이들 ‘왕관을 쓰려는 자’들은 드라마가 슬쩍 보여주는 것처럼 거의 상류층 1%에 해당할 것이다. 상류층 1%의 고통을 얘기하는 드라마는 어쩌면 그 자체로 나머지 99%를 그저 배경으로 치부하면서 이 1%의 세계가 가진 정당성을 주장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차은상(박신혜)은 바로 그 99%에 해당하는 인물이다. 으리으리한 저택의 메이드룸에서 살고 있다는 공간 설정 자체가 이 인물이 처한 현실을 가장 잘 보여준다. 그런데 이 차은상이라는 인물이 이 부유한 저택에서 능동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시키는 심부름을 해야 하고 명령에는 오로지 예스밖에 할 수 없는 상황이다. 드라마는 그녀에게 김탄과 최영도가 조금씩 빠져드는 판타지적인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그들이 왜 그녀에게 이토록 목매게 되는지는 잘 설명이 되어있지 않다.

 

그 이유를 드라마는 클리쉐로 넘겨버린다. 우연적인 만남의 반복과 왠지 모를 끌림이라는 상투적인 방식이다. 김탄은 갑자기 차은상에게 “나 너 좋아하냐?”고 묻고는 그녀를 좋아하게 된다. 최영도 역시 마찬가지다. 정략결혼으로 이복동생이 될 지도 모를 유라헬(김지원)을 열 받게 할 수 있는 능력을 보인 차은상에게 갑자기 관심을 갖는 식이다. 즉 이 모든 멜로의 키는 가진 자들이 쥐고 있다. 그들은 사랑할 여유조차 없는 현실에 처한 차은상에게 갑자기 손을 내밀었다.

 

혹자들은 결국은 신데렐라 판타지를 다루는 로맨틱 코미디에 대해 너무 심각한 잣대를 들이대는 것이 아니냐고 말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재벌가의 신데렐라 판타지를 즐기기에는 이미 현실이 너무 많은 재벌가들의 문제를 드러내주었다. 사모님의 수상한 외출이나 특목고 에서 벌어진 사배자 전형의 편법 운용 같은 사례는 심지어 대중들의 공분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최근 재벌가를 다루는 드라마들이 과거와 달라진 점은 아마도 이러한 대중들의 정서를 이해하고 있기 때문일 게다. <추적자>가 권력이 가진 힘과 싸우는 한 서민을 통해 정의의 문제를 제기했다면, <황금의 제국>은 그 재벌가가 가진 태생적인 비극을 다루었다. 하다못해 <결혼의 여신> 같은 드라마도 재벌가 판타지를 오히려 깨는 이야기를 다루지 않았던가.

 

김은숙 작가처럼 멜로를 잘 쓰는 작가도 없다. 하지만 기술적으로 잘 쓰는 것이 작가의 품격을 높여주는 것은 아니다. 자칫 능력은 오히려 잘못 사용되어지면 파괴적인 힘이 될 위험성이 있기 마련이다. <상속자들>에서 폭력과 금력이 이른바 그들의 고통이라는 근거로 미화되는 것은 그래서 제 아무리 판타지 설정의 로맨틱 코미디라고 해도 받아들이기가 어렵다.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버텨라’라고 말하지만 지금의 힘겨운 현실에서 왕관을 쓰려는 자의 고통이란 엄살처럼 여겨지는 면이 있다. 개념이 잘 보이지 않는 <상속자들>. 재미만 있다고 모든 게 다 용서될 수는 없는 일이다.

<그것이 알고 싶다>가 파헤친 귀족학교의 반칙

 

돈이면 뭐든지 되는 세상인가. <그것이 알고 싶다>는 살인을 교사하고도 버젓이 호화병실 생활을 해 국민적인 공분을 일으켰던 ‘사모님의 이상한 외출’ 편에 이어, 이번에는 돈이면 미래도 사는 이른바 ‘귀족학교’ 국제중학교의 각종 비리와 반칙들을 다루었다. 좋은 대학으로 가는 ‘엘리베이터’라 불리는 국제중학교에 가기 위해 줄을 서는 아이들과 그 미래가 보장된다는 얘기에 몇 천만 원에 달하는 학비에 촌지를 내는 학부모들, 그리고 그것을 공공연히 장사하는 국제중학교는 말 그대로 조폭 영화에서나 나왔을 법한 뒷거래들이 횡행하고 있었다.

 

'그것이 알고싶다(사진출처:SBS)'

‘사회적 배려 대상자’ 전형이라는 꼼수가 그렇다. 누가 들어도 가난하고 소외된 학생들을 위한 전형을 떠올리고 또 실제로 그런 취지로 만들어진 것이지만, 국제중학교에서는 그런 뜻과는 상관없이 이른바 상류층의 입학 장사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었다. 제작진이 입수한 사회적 배려 대상자 명단을 통해 확인한 결과 그 대상자들이 거주하는 곳은 몇 십 억짜리 호화주택들이었다. 이름만 들어도 아는 대기업 임원의 아들의 입학비리로 검찰의 조사를 받고 있는 국제중학교는 이른바 대한민국 1%의 상류층을 위한 학교로 변호사, 의사 같은 전문직은 알아주지도 않는다고 한다.

 

이렇게 위화감만 조성하는 국제중학교가 왜 굳이 필요할까. 1% 상류층을 위한 학교가 만들어내는 교육의 부패가 나머지 99%의 공분을 사고 있는 것은 돈이면 미래도 쉽게 살 수 있는 반칙들이 너무나 당연한 듯 벌어지는 것을 목도하기 때문이다. 제작진이 확보한 2013년 영훈중학교 사회적 배려 대상자 전형 점수표와 추천서를 통해 확인한 결과, 제 아무리 높은 교과 성적을 받은 우수한 학생이라도 집안이 대기업 임원이나 판사, 검사가 아니라면 오히려 떨어뜨리는 ‘제 멋대로 인’ 전형이 드러났다. 학습계획서와 추천서 같은 지극히 주관적인 평가가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을 만큼 편파적이었던 것.

 

특권층과 부유층들이 낸 이른바 ‘학교발전기금’은 수천만 원에 이르렀고 심지어 어떤 학생은 합격발표가 나기도 전에 거액을 기부한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문제는 이 피해가 고스란히 학생들에게도 이어졌다는 점이다. 어떤 학생은 격에 맞지 않는다며 왕따를 당해 거의 점심을 먹지 못하고 학교를 다니다가 결국은 전학을 결정하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학부모가 아이를 위해 대출까지 해가며 매번 억지로 돈을 상납해왔지만 그 때 뿐 별 효과가 없었던 것. 이것을 과연 학교라고 부를 수 있을까.

 

입학에서부터 돈 거래가 이뤄지고, 소외계층을 위해 만들어 놓은 ‘사회적 배려 대상자’ 전형 같은 제도를 저들 입맛에 맞게 바꿔 활용해 학업 성적이 우수한 학생을 떨어뜨리고 대신 상류층 자제들을 입학시키며, 어렵게 들어온 학교에서도 학생을 볼모로 끊임없이 금품을 요구하고 그게 아니면 결국 학생의 전학을 권고하는 이 폭력과 꼼수와 반칙이 횡행하는 곳을 과연 학교라고 말할 수 있을까.

 

국제중학교가 저질러온 비리와 반칙들에 대해 대중들이 공분하는 것은 거기에서 우리네 교육의 암담함이 보이기 때문이다. 교육이 모두에게 평등한 미래를 제공하지 못하고 그래서 잘 사는 집에 태어난 아이들은 평생을 엘리트 코스를 밟고 그렇지 못한 아이들은 성장과 성공의 발판마저 마련되지 않으며 그것이 오로지 돈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것을 바라보는 대중들의 마음은 참담할 수밖에 없을 게다.

 

국제중학교의 비리는 마치 우리 사회의 현실을 표본처럼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쓸하기 이를 데 없다. 1%를 위한 편법들이 만드는 그들만의 세상은 나머지 99%의 눈물 위에 세워지기 마련이다. 또 이런 편법들을 당연시 여기며 특권의 삶을 살고 있는 1%들이 세울 우리 사회의 미래는 얼마나 암담할 것인가. 국제중학교의 문제는 그래서 우리 모두의 문제일 수밖에 없다. 대중들의 공분과 허탈감을 안다면 반드시 그 부패된 교육의 살을 도려내야 할 것이다.

주말극의 새로운 도발, 착한 주말극이 반가운 이유

'글로리아'의 첫 장면은 요즘 드라마에서는 보기 드문 달동네 풍경에서 시작한다. 그 불빛이 반짝거리는 동네의 원경에서 안으로 들어가면 새벽부터 일어나기 위해 맞춰놓은 서너 개의 알람시계가 시끄럽게 울어대고, 주인공 나진진(배두나)이 부스스 일어난다. 그녀 옆에서 같이 일어나는 언니 나진주(오현경)는 어딘지 상태가 온전치 못하다. 척 봐도 알 수 있는 나진진의 곤궁함. 하지만 그녀는 씩씩하게 새벽부터 신문배달에 김밥장사, 게다가 세차 알바까지 분주한 시간을 보낸다. 가끔 진주가 사고를 치지만 진진은 그렇다고 절망하지 않는다.

반면 이 달동네 풍경과 대비되는 또 다른 그림으로 '글로리아'는 시작한다. 그것은 어딘지 절망적인 얼굴로 비행기에 앉아 있는 정윤서(소이현)다. 그녀 옆에 우연히 앉게 된 이지석(이종원)의 말대로 그녀는 "창문이라도 열려 있으면 꼭 뛰어내릴 것 같은 표정"이다. 이유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정황으로 보면 그녀는 하고 싶던 발레를 못하게 되었다. 나진진과 비교해보면 절망의 이유조차 될 수 없는 것이지만, 그녀는 심지어 자살까지 생각한다.

달동네의 이웃들은 가족 같다. 사고뭉치지만 하동아(이천희)는 진진의 오빠나 되는 것처럼 그녀를 챙기려 들고, 그의 조카인 하어진(천보근)은 아침마다 진진의 김밥 장사를 돕고 진주와는 연인(?)처럼 친하게 논다. 김밥을 만들어 진진에게 납품(?)하는 셋집 주인 오순녀(김영옥)는 진진의 할머니 같다. 셋집에서 살며 나이트클럽 '추억 속으로'에서 일하는 손종범(이성민)이나 밴드마스터인 이윤배(김병춘), 웨이터인 박동철(최재환) 역시 이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가족의 일원이다. 그들은 가난해도 가족 같은 끈끈한 정이 있다.

반면 정윤서의 집안이나 이강석(서지석)의 집안은 모두 마치 모래알 같은 관계를 보여준다. 정윤서의 엄마(정소녀)는 딸을 제대로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윤서가 자살을 기도하자 그녀는 "사는 게 힘들어서 수면제 없이는 살 수 없는 나도 살아!"하며 딸을 나무란다. 이강석은 집안에서 이른바 서자다. 그의 친모는 자신을 찾아주지 않는 강석의 아버지 이준호 회장(연규진)의 관심을 끌려고 늘 사고를 친다. 아마도 그래서 홍콩으로 보내졌지만 질리게 술 마시고 도박하고 하는 것도 질려버린다. 그녀는 사는 게 너무너무 지겹다고 말한다. 서자 취급받는 이강석은 의붓형제인 이지석이 귀국하자마자 자신의 자리를 빼앗자 절망한다.

이 피 한 방울 안 섞여도 가족처럼 지내는 달동네 가족들과, 가족이란 테두리로 묶여있어도 모래알처럼 반목하는 상류층 가족들은 '글로리아'라는 드라마의 선명한 주제의식을 그대로 드러낸다. 돈 천 만원이 없어서 감방에 가게 된 진진을 빼내기 위해 전전긍긍하다가 결국에는 진진의 월셋방 보증금으로 문제를 해결한 것을 알게 되자 절망하는 진진에게 "그 천 만원 없다고 사람이 죽겠냐? 지금까지 살던 것처럼 어떻게든 살겠지 뭐."하고 말하는 하동아의 대사는 이 드라마가 가진 정서를 말해준다.

절망의 바닥에서도 서로를 위무해주며 어떤 희망을 버리지 않는 것. 달동네 월셋방이지만 기타 하나 들고 "떡볶이를 사랑한 계란. 떡볶이 당신을 닮고 싶어서 난 하얀 얼굴에 고추장까지 뒤집어썼지. 아- 무정한 당신은 어묵에게로..." 같은 얼토당토않지만 이웃들을 웃게 만드는 노래를 멈추지 않는 것. 나진진의 말대로 솔잎을 먹고 살게 태어난 송충이라도 태어난 이유는 있는 법. 그래서 '추억 속으로'라는 한 물 간 나이트클럽은 이들에게는 새로운 희망의 무대가 된다.

"너희들은 여기가 삼류 나이트라고 비웃겠지만 난 아냐." 이 한 물 간 나이트클럽을 여전히 쥐고 놓지 않는 정우현(이영하)은 그래서 이 '글로리아'라는 조금은 구식의 드라마를 여전히 손에 쥐고 어떤 희망을 꿈꾸는 정지우 작가의 분신처럼 보인다. 이것은 세련된 상류층의 이야기들로 우리의 눈과 귀를 자극해왔던 주말극들에 대한 신선한 도발이다. '글로리아'라는 착한 주말극이 반가운 이유는 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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