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드라마 전성시대, 그 인기의 비결

SBS의 연초 드라마 시청률 성적표는 좋지 않다. 월화에는 MBC의 ‘이산’이 굳건히 버티고 있었고, 수목에는 ‘뉴하트’가 포진해 30%가 넘는 시청률 고공행진을 이어갔다. 하지만 ‘뉴하트’가 종영하는 시점에 맞춰 시작한 SBS의 ‘온에어’가 수목의 밤을 장악한 후, 그 바통을 ‘일지매’로 넘겨주었고, ‘이산’이 종영한 월화의 자리는 SBS의 ‘식객’이 차지했다. MBC는 ‘스포트라이트’와 ‘밤이면 밤마다’같은 전문직 장르 드라마로 승부했지만 시청률 10% 전후를 전전하면서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고 있다.

안타깝게도 KBS는 작년에 이어 일일드라마를 빼놓고는 주중드라마에서 그다지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SBS는 주중드라마 모두를 장악했고 최근에는 ‘달콤한 나의 도시’같은 프리미엄 드라마로 금요일 밤을 공략하면서 불륜드라마로 인식됐던 금요드라마를 바꿔나가고 있다. 주말 드라마로서 ‘조강지처클럽’과 ‘행복합니다’가 역시 수위를 차지하고 있어 SBS 드라마는 오랜만에 일주일 내내 시청률에서 행복한 비명을 지르고 있다.

월화의 밤, ‘이산’이 지나간 자리
‘이산’이 종영한 후, 월화의 밤을 누가 차지할 것인가는 초미의 관심사였다. 변칙 편성이 난무할 정도로 치열한 편성전쟁이 치러진 후, 그 승자는 ‘식객’이 되었다. ‘최강칠우’와 어느 정도 경쟁이 될 것으로 예상되었지만 역시 ‘식객’이 앞서나간 것은 무엇보다 원작 드라마가 갖는 힘 때문이다.

SBS는 작년 ‘쩐의 전쟁’으로 만화 원작 드라마에 강점을 보인 바 있다. 만화 원작 드라마는 일단 그 자체로 극화되어 있다는 점과, 어느 정도는 이미 탄탄한 스토리가 짜여져 있다는 것이 강점이다. 동명의 허영만 화백의 만화를 원작으로 한 ‘식객’은 여기에 한 가지가 더 더해진다. 그것은 전문직 장르 드라마가 갖춰야할 전문성이 이미 원작 단계에서부터 꼼꼼한 취재를 통해 확보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식객’이 ‘이산’이후의 월화의 승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원작 드라마가 갖는 탄탄한 스토리와 허영만 화백 특유의 전문성이 무리 없이 연출되었기 때문이다. ‘식객’에는 드라마의 힘을 더해주는 요소들, 즉 팽팽한 대립구도, 전문적인 이야기, 음식이라는 소재의 강점, 감동이 있는 스토리, 게다가 음식에 대한 철학적인 논점까지가 모두 잘 버무려져 있다. 물론 탄탄한 연기력을 갖춘 연기자들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수목의 밤, 전문직과 사극의 대결
MBC가 ‘누구세요’로 주춤하는 동안, SBS는 ‘온에어’라는 방송이라는 독특한 소재를 전문직으로 다루면서 수목의 밤을 장악했다. 이어 절치부심 내놓은 MBC의 ‘스포트라이트’는 초반 ‘일지매’와 팽팽한 접전을 벌이면서 전문직 드라마와 사극의 대결구도를 흥미진진하게 만들었다.

문제는 초반의 관심을 얼마나 잘 이끌어갔느냐에 달려 있다. ‘스포트라이트’는 초반 탈주범 장진규 에피소드라는 초강수를 내보이면서 주목을 끌었으나 결과적으로 이것은 드라마의 하이라이트를 너무 일찍 보여준 결과를 낳았다. 게다가 에피소드 드라마 형식으로 병렬적으로 구성된 ‘스포트라이트’는 드라마의 흐름을 끊는 역할까지 해 시청률 상승에 족쇄가 되었다. 게다가 각각의 에피소드들이 미완적으로(정치적으로 해결) 해결되는 모습은 다음 에피소드에 대한 기대감을 상쇄시켰다.

한편 ‘일지매’는 ‘스포트라이트’와는 정반대의 행보를 보였다. 초반부 화려한 일지매의 액션을 보여주고는 그 일지매가 되어가는 과정을 아주 천천히 조금씩 보여주었던 것. 결과적으로 드라마는 상승곡선을 이루면서 시청률도 조금씩 오르고 있다. 안타깝게도 KBS의 ‘태양의 여자’는 꽤 잘 만들어진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타방송사의 작품들만큼 화제가 되지는 못했다. 이것은 최근 들어 사극과 전문직 드라마가 아니면 좀체 화제가 되지 않는 상황을 말해준다.

주말드라마, 명품이거나 공식이거나
주5일 근무제가 정착된 요즘, 금요드라마는 주말드라마와 함께 얘기될 수밖에 없다. 그간 금요드라마가 주부대상의 성인드라마가 되어왔던 것은 이탈되어가는 시청층을 그나마 충성도가 높은 주부들에게서 찾아보려는 노력에서 비롯된 바 크다. 하지만 프리미엄을 주창하는 새 금요드라마 ‘달콤한 나의 도시’는 거꾸로 가는 전략을 구사하면서 호평을 받고 있다. ‘섹스 앤 더 시티’같은 세련된 성인 미드에 익숙한 시청층을 공략한 것. 10%대를 유지하는 시청률에서 성공적이라 말할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 금요일의 색깔을 바꾸었다는 의미는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주말 드라마로서 ‘행복합니다’나 ‘조강지처클럽’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철저하게 주말 트렌드를 읽어낸 결과다. 이 드라마들은 일단 어렵지 않고 캐릭터나 관계만 알고 있으면 몇 회 정도는 못 봐도 그다지 무리가 없는 정도의 편안한(?) 작품들이다. 이동이 많은 주말 밤에 너무 꽉 짜여진 드라마는 부담이 된다. ‘달콤한 인생’같은 완성도 높은 드라마가 시청률 경쟁에서는 정작 밀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SBS의 주말드라마는 이러한 공식에 충실한 트렌드를 이미 ‘황금신부’를 통해 확인한 바 있고 지금의 드라마들은 그 연장선상에 있다고 보여진다. 물론 KBS의 ‘엄마가 뿔났다’같은 경우는 이러한 주말 트렌드를 김수현 작가 특유의 색깔로 무색하게 만들어버린 예외적인 드라마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드라마의 헤게모니는 일 년에도 몇 번씩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이동한다. 어려운 입장에 처해있는 방송사의 드라마 관계자들을 만나면 흔히 이 주기적인 헤게모니의 이동을 얘기하곤 한다. 그것은 마치 시간이 지나면 응당 자신들의 시대가 돌아올 것이라는 낙관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어려운 입장에서 부단한 노력과 투자가 있었기에 헤게모니의 이동이 가능했던 것이다. 따라서 SBS의 드라마 평정은 한동안 이어질 수도 있고 또 언젠가 타 방송사로 넘어갈 수도 있다. 어쨌거나 이 과정에서의 노력이 좋은 드라마라는 결실로 고스란히 시청자들에게 돌아가기를 바란다.


음식이 가진 메시지, 그 소통의 기억

SBS 월화드라마 ‘식객’에 등장하는 세계적인 음식 칼럼니스트 테드 오가 꿈꾸는 맛은 어린 시절 어머님이 해주셨던 부대찌개다. 온갖 산해진미를 다 맛보았을 그가 서민적인 부대찌개의 맛을 애타게 찾았다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이 테드 오의 에피소드가 말해주는 것은 음식과 맛이 그저 감각적인 기호 그 이상이라는 것이다. 테드 오가 찾는 것은 부대찌개에 담겨진 그만의 기억이다. 그에게 부대찌개는 어린 시절 배고픈 자식들을 위하는 어머니의 마음이며, 부족해도 그것을 함께 나눠먹던 형제들의 마음이다. 그 맛의 기억이 녹아든 부대찌개가 그에게 인생 최고의 맛이 되는 것은 음식이 때로는 언어처럼 그 담겨진 의미가 소통되고 전달된다는 것을 말해준다.

음식, 만드는 자와 먹는 자의 공감
저 ‘식객’의 테드 오가 보여주는 것처럼, 음식은 그저 음식이 아니다. 그것은 만드는 자와 먹는 자 사이에 놓여진 소통 그 자체가 되기도 한다. 매체철학의 근간을 세운 마샬 맥루한식으로 표현하면, ‘미디어는 메시지’인처럼, ‘음식은 메시지’다. 즉 음식은 우리가 사용하는 말처럼 만드는 자와 먹는 자 사이를 소통하게 해주고, 그걸 만들고 먹는 자의 음식에 대한 생각, 나아가 세상에 대한 생각까지를 변화하게 해준다. 어린 시절 어머니가 아랫목에 넣어두었던 고구마는 나이 들어서도 어머니가 자식에게 표하는 사랑의 상징처럼 자리잡게 마련이고, 그래서 고구마를 먹을 때면 언제나 남다른 애정이 느껴지게 될 것이다.

그것은 때론 개인적인 차원의 정서에만 머물지 않는다. 어머니의 손맛은 세상을 보는 또 다른 눈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음식은 손맛’이라는 말은 손으로 했다는 그 물리적인 행위만을 말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손으로 직접 하는 그 정성과 마음’이 맛으로 전해진다는 말이다. 그러니 거꾸로 말해 그 정성과 마음이 사라져버린 음식들, 예를 들면 패스트푸드 같은 것들에 대한 거부는 어머니의 손맛이 세상에 전하는 메시지다.

성찬(김래원)이 운암정의 후계자 자리를 박차고 나와 서민들 속으로 뛰어드는 모습은, 운암정을 브랜드화하여 세계화하려는 봉주(권오중)의 면면과 대비된다. 맛에 대한 경제적 잣대는 맛의 메시지를 규격화시켜 결국에는 사라지게 만든다. 맛에 담겨진 정성과 마음은 사라지고 경제적 가치만이 메시지로 남게 되는 것이다. 테드 오의 평점에 집착하는 봉주에게 오숙수(최불암)가 “운암정의 위상은 한 사람의 입맛에 의한 것이 아니다”라고 하는 말은 그의 음식에 대한 메시지가 서민과 대중들을 향해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당신이 꿈꾸는 맛, 혹시 살맛은 아닌지
손과 손이 만나고, 눈과 눈이 마주치는 그런 사람과 사람간의 직접적인 소통이 점차 사라지고, 대신 자리잡은 시스템화되고 규격화된 네트워크 위에서 사는 요즘 같은 세상에, 오히려 더욱 그리워지는 것은 그 공감의 기억이다. 그리고 음식은 매일 세 번씩 그 공감의 기억을 상기시킨다. 하지만 그것을 민감하게 느끼는 현대인들은 드물다. 매일의 바쁜 일상은 저 불교에서 말하는 자신을 위한 ‘공양’을 귀찮은 행위로까지 전락시킨다.

아침이면 정신 없는 출근길에 대충 군것질로 식사를 대신하고 커피로 공복을 달래기 일쑤며, 점심이면 오늘은 또 뭘로 때우나 하며 여기저기 음식점을 기웃거린다. 저녁이면 과도한 노동에 대한 보상으로서, 때론 자학적인 음주에 빠지기도 하고, 과장된 외식의 화려함 속에 취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하루 하루가 지나면서 문득문득 몸이 원하는 맛의 기억이 있다. 그것은 단순하지만 정성이 가득 담겨있던 밥 한 그릇에 대한 그리움이다. 어머니의 손맛에 대한 그리움은, 점점 사라져 가는 세상 살맛에 대한 그리움이 아닐까. ‘식객’이 꿈꾸는 맛은 아마도 바로 그런 맛일 것이다. 한 사람의 생각을 바꾸어주기도 하는 음식은 세상을 바꾸어주는 힘이 되기도 한다. 그러니 어머니는 늘 조용히 세상을 바꿔왔던 것이다.


드라마, 예능에 가득한 경합, 그것이 말해주는 것

‘식객’의 초반부 긴장감을 탄탄히 만들어주고 있는 것은 단연 운암정 후계자 자리를 놓고 벌이는 성찬(김래원)과 봉주(권오중)의 요리 경합이다. ‘스포트라이트’에서는 이미 앵커 자리를 놓고 한 차례 경합을 벌였던 서우진(손예진)과 채명은(조윤희)이 이제 심층리포트의 진행자 자리를 놓고 또 경합을 벌이고 있다. ‘대왕 세종’에서도 드라마 초반에는 충녕대군과 양녕대군이 국본의 자리를 놓고 치열한 정치적 경합을 벌이며 시청자들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드라마 속의 경합, 공정하지 못한 사회
드라마들이 이렇듯 한 자리를 놓고 치열한 경합을 벌이는 이야기를 활용하는 것은 당연하다. 드라마는 갈등을 기본으로 하고 있는데, 바로 이 대결구도를 가장 쉽게 가시화시킬 수 있는 방법이 경합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합의 양상들을 좀더 들여다보면 그렇게 간단하지도 않다. 거기에는 사회가 가진 서열 구조와 그것을 뛰어넘으려는 욕구들이 드라마 속에 환타지의 형태로 드러난다.

성찬과 봉주의 경합에서 봉주가 상처를 받는 것은 그가 적자의식을 갖고 있어서다. 그는 운암정 최고권위자인 오숙수(최불암)의 아들이니 당연히 후계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서우진과 채명은의 경합에 있어서도 이 적자와 서자의식은 똑같이 드러난다. 선배인 채명은은 서열상 자신이 적자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물론 ‘대왕 세종’같은 사극 속에서의 장남이거나 적자인 이들은 당연히 자신에게 권력과 부가 승계될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드라마들은 대부분 이 적자들의 바람을 들어주지 않는다. 지금 사회는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적자나 서자의식이 통용되는 사회가 아니라 능력 위주의 사회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당당히 실력을 갖춘 이가 적자의식에만 가득한 인물을 무너뜨리고 제 자리를 찾을 수 있는 방법은 경합뿐이다. 이것은 점점 능력 중심으로 변해가는 사회를 반영하는 것일까. 거꾸로 여전히 실력보다는 서열이나 관계에 의해 움직이는 사회의 불합리함을 드라마에서나마 위안을 얻으려는 환타지일까.

그것은 아마도 후자일 가능성이 높다. 능력 위주의 사회는 바람일 뿐, 우리 사회는 심지어 그 탄생에서부터 미래가 결정되는 경향이 있다. 부잣집에서 태어난 이들이 고등교육을 받을 확률이 훨씬 높다는 것은 이제 상식에 속한다. 갖춘 자들의 적자의식은 시대가 흘렀지만 여전하다. 드라마 속에 이렇듯 빈번하게 경합이 활용되는 것은 그만큼 치열해진 경쟁사회이면서도, 그 경쟁 자체는 그다지 공정하지 않은 우리네 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예능 속의 경합, 경쟁 사회에 대한 희화화
한편 경합에 빠진 건 드라마뿐만이 아니다. 예능 프로그램들은 거의 모든 것들이 바로 이 경합의 틀을 갖고 있다. ‘1박2일’의 잠자리나 식사 한 끼를 두고 벌이는 복불복 게임이 그렇고, ‘무한도전’의 끝없는 과제 속에서의 이기적인 출연진들의 대결이 그러하며, ‘해피투게더’의 사우나 안에서 벌어지는 도전 암기송이나, ‘패밀리가 떴다’의 유재석이 툭하면 제안하는 게임이 그렇다.

이 예능 프로그램들 속에서의 경합은 얼토당토않은 목표를 갖고 있다. 바로 이 얼토당토않다는 부분에서, 우리가 스포츠경기 같은 것을 통해 느끼게 되는 진지한 긴장감 같은 것은 사라진다. 만일 진지한 목표가 설정된다면 긴장감은 생기겠지만 웃음은 좀체 나오지 않을 것이다. 복불복 게임은 말 그대로 게임일 뿐 현실 사회가 보여주는 진짜 경쟁과는 다르다. 경쟁할 필요가 전혀 없는 것에 목숨을 걸고 경쟁을 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이들 예능 프로그램들은 웃음을 유발한다. 이것은 경쟁 사회에 대한 희화화다.

직장생활 같은 경쟁적 삶 속에서 살다가 빠져나온 경험이 있는 분들이라면 때론 왜 그렇게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걸며 살았을까 하고 생각하기도 한다. 예능 프로그램 속에서의 경합은 따라서 사회 풍자적인 요소가 있다. 그 얼토당토않은 경합을 보면서 웃음이 터져 나오는 순간, 이미 우스꽝스런 경쟁적 삶에 대한 긴장감이 풀어지게 된다.

드라마나 예능이 점점 이 경합이라는 코드를 보편적으로 활용하고, 거기서 충분한 효과를 얻어내는 것은 여러모로 지금 우리 사회가 가진 불공정한 구조와 그 속에서 치열하게 경쟁하면서 살아야 하는 현대인들의 피곤함과 관련이 있다. 드라마는 이 경쟁의 피곤함을 환타지의 형태로 해결하려는 것이며, 예능은 경쟁 자체를 비웃음으로써 그것에서 벗어나려는 것이다. 그 무엇도 실제적인 해결을 주는 것은 아니지만 어떠랴. 그 경합의 재미 속에서 현실의 경쟁적 삶을 잊어버리는 것은. 잠시만이라도 말이다.


‘식객’의 기본기, 물리지 않는 담담한 맛

누군가 정성 들여 만들어놓은 음식을 처음으로 맛보는 기분이 이렇지 않을까. 새로이 월화의 밥상에 올려진 ‘식객’이란 요리의 첫 맛은 담담하다. 지나치게 자극적인 극적 구성은 연출되지 않았지만, 또 그렇다고 흥미진진하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이것은 허영만 화백의 원작 ‘식객’이 가진 특징이기도 하다.

똑같은 음식을 소재로 하지만, 우리네 ‘식객’은 중국의 ‘식신’같은 영화와는 차별화 된다. ‘식객’이란 원작만화의 첫 시작으로 제시되는 요리가 밥이라는 사실은, ‘식신’의 화려한 요리들보다는 기본기에 충실한 서민적인 요리에 손을 들어주는 ‘식객’의 맛의 철학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드라마 ‘식객’이 담담한 첫 맛을 만들어내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성찬(김래원)은 운암정 후계자 자리를 두고 요리대결을 벌일 봉주(권오중)와는 물론이고 심지어 오숙수와도 맛에 대한 철학이 다르다. 똑같은 생태를 가지고 요리를 하더라도, 오숙수는 최고의 재료를 구하는 것이 요리의 가장 중요한 기본이라 생각하고, 봉주는 요리도 장사이기에 일단 수지가 맞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반면, 성찬은 싸고 흔한 재료라도 노력을 통해 최고의 맛을 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오숙수가 요리에 있어서 이상을 꿈꾼다면 봉주는 현실적이며, 성찬은 그 사이에서 화해를 모색하는 것 같다. 하지만 성찬이 버려지는 동태들을 싼 가격에 사서 끝끝내 맛을 만들어내는 장면은 앞으로 이 드라마가 선사할 맛이 산해진미가 아닌 바로 서민의 맛을 향해 있다는 것을 반증한다. 물론 이상을 꿈꾸지만 그렇게 어렵게 구한 재료로 끓여낸 생태탕을 꽁보리밥과 함께 내주면서 고향의 맛, 어머니가 해주던 맛을 선사하는 오숙수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돈이라는 현실의 차원을 넘어서 추억을 떠올려주는 맛을 찾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인다.

바로 이 부분은 ‘식객’이 그저 화려한 음식이나 대결구도만의 드라마가 아니라는 걸 말해준다. ‘식객’은 음식의 의미를 찾아가는 드라마다. 드라마 첫 시작에서 순종에게 마지막 수라를 올리는 대령숙수가 납평전골을 만들어 그 의미(다시 나라를 되찾아 빼앗긴 사냥터에서 다시 꿩과 멧돼지를 잡아 요리를 올릴 수 있게 해달라)를 전하는 것은 음식이 그저 입만을 즐겁게 해주는 것 그 이상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운암정 후계자를 두고 벌인 첫 번째 요리대결에서 성찬이 우승한 이유는 식재료 본연의 맛을 지키는 그 기본기를 지켰기 때문이다. 드라마 ‘식객’이 성찬의 기본기를 닮기를 바란다. 듣도 보도 못한 화려한 음식들의 상찬으로 만들어내는 자극적인 맛보다는, 청국장이나 김치찌개 같은 평범하고 담담하지만 오래도록 여운이 남는 맛을 내는 드라마가 되길 기대한다. 그리고 그것은 허영만 화백 원작 ‘식객’이 가진 기본기를 지키는 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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