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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다시 보는 ‘바람의 화원’

‘바람의 화원’은 지금껏 사극들이 본격적으로 다루지 않았던 우리네 옛 그림을 소재로 하고 있다. 하지만 이 사극의 차별점은 단지 소재적 측면에서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오히려 그림을 중심으로 놓고 그 그림 속의 이야기를 찾아가는 드라마의 이야기 구조와, 그러한 대본을 예술적으로 영상화해낸 독특한 연출력에 있다.

이 사극이 그림에서 시작해서 그림으로 이야기가 전개되고 그림으로 갈무리되는 구조를 갖고 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따라서 이 사극의 진짜 주인공은 어쩌면 이야기의 중심 뼈대를 세워준 신윤복과 김홍도의 그림이었는지도 모른다. 그 그림이 바람처럼 귓가에 대고 속삭여주는 ‘바람의 화원’의 이야기를 다시 들어보자.

‘기다림’- 한 예술가의 탄생
신윤복은 김홍도가 “그린다는 것은 무엇이냐”는 질문에 “그린다는 것은 그리워하는 것이 아닐런지요”하고 말한다. 이 대화는 이 사극의 화두이기도 하다. 신윤복을 그림 그리게 하는 것이 어떤 것에 대한 그리움이라면, 그것은 거꾸로 삶에서 그가 갖는 결핍을 말해주기도 한다. 우리가 흔히 알 듯이 예술가의 결핍은 예술 작품의 탄생으로 이어지는 과정.

드라마적 설정으로서의 남장여자라는 코드는 이러한 예술가의 결핍상황을 미적으로 상징해낸다. 즉 자신이 갖고 있으나 표출할 수 없(게 사회가 강요하)는 아름다움(美)을 정향(문채원)이라는 뮤즈로 해소하거나, 사회 비판적인 그림으로 풀어내는 상황을 남장여자란 코드를 활용해 쉽게 구상화해냈다는 말이다.

신윤복의 ‘기다림’이란 그림이 드라마 초반에 등장하고, 후반에 그 그림을 통해 신윤복이 사실은 여성이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아채는 김홍도의 시퀀스가 등장하는 것은 따라서 여러 모로 의미가 있다. 그것은 김홍도가 신윤복을 한 인간이자 예술가로 이해해 가는 과정을 그 그림을 통해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김홍도의 이해는 또한 이 사극을 함께 본 시청자들의 이해와 맥을 같이 한다.

‘군선도’- 서민 지향적 세계관
김홍도와 신윤복이 저잣거리를 돌아다니면서 먼저 그 군상들을 본 후, 화포 앞에서 군선도를 그리는 장면은 이 사극이 지향하는 서민 지향적 가치관을 드러낸다. “보이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 것을 그리고,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이는 것을 그린다.”는 김홍도의 말은 저 서민들의 얼굴 속에서도 신선을 찾아낸다는 말로 해석된다.

사실 고미술에 대해 지금껏 대중들이 가졌던 인식을 생각한다면, 이 고급예술로 치부되는 소재가 드라마라는 대중적인 장르 속으로 들어온 것은 이례적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은 가능하게 해주는 것은 다름 아닌 김홍도와 신윤복의 풍속화이다. 때아닌 신윤복 신드롬으로 한 고미술관에 이어진 대중들의 발길은 신윤복의 그림이 가진 서민성의 재발견인 동시에, 일정부분 그것을 대중적으로 전파한 이 사극의 기여가 있었다고 생각된다.

‘단오풍정’- 여성성의 시선
‘단오풍정’을 그리기 위해서 신윤복은 극중에서 단오날 금남의 지역인 계곡으로 들어간다. 그 곳에서 여장을 하고(물론 신윤복은 본래 여자 캐릭터이지만) 여성들의 세계를 둘러보는 신윤복과 김홍도를 그려낸 장면은 상징적이다. 즉 남성의(혹은 강요된 남성의) 시선으로 여성의 세계를 살피고 그 속에서 여성들이 단 하루지만 느꼈을 자유에의 희구를 그림 속에 담는다는 장면은 이 사극이 주목하는 여성성의 시선을 드러낸다.

‘주사거배’ - 억압된 사회에 대한 비판의식
김홍도와 신윤복이 정조(배수빈)에게 동제각화(같은 화제를 갖고 각각 그림을 그리는 것)를 명 받아 그리게 되는 선술집 풍경에는 대화원들이 각각 가진 그림에 대한 철학이 담겨져 있다. 그것은 주막 앞에서 배경을 두고 벌이는 그림 논쟁을 통해 드러난다. 김홍도는 배경보다는 인물 그 자체만으로도 그 성정이 다 드러난다고 주장하고, 신윤복은 그 사람만 봐서는 그 사람이 뭐를 원하는 지 알 수 없으며 오히려 그 배경이 그 마음을 알게 해준다고 한다.

신윤복은 주막 평상 위에 물로 찍어 새 그림을 그리고는 이렇게 말한다. “이 새는 이렇게 있으면 그저 새일 뿐입니다. 허나 이렇게 새장을 그려놓으면 그저 새이기만 했던 이 새가 무엇을 원하는 지 그 마음을 알 수 있지 않습니까?” 이 대목은 신윤복이 그리고픈 자유로운 그림(새)과 그것을 허하지 않는 상황(새장)을 상징화해낸다. 신윤복이 그린 ‘주사거배’로 정조가 조정대신들의 숙청을 단행하는 시퀀스는 바로 이런 억압된 상황에 대한 비판의식을 에둘러 보여주는 대목이다.

‘월하정인’, ‘월야밀회’, ‘유곽쟁웅’ - 욕망과 인간애의 대립
조정대신들에 의해 도화서에서 쫓겨나 김조년(류승룡)의 사화서에서 일하면서 신윤복이 그리게 되는 일련의 그림들, 즉 ‘월하정인’, ‘월야밀회’, ‘유곽쟁웅’은 남녀 간의 사랑을 담고 있다. 하지만 드라마는 이 그림의 이야기를 조금은 다른 식으로 풀어낸다. 그것은 신윤복과 정향, 그리고 김조년 사이의 밀고 당기는 상황으로 그려내는 것. 김조년은 돈과 권력으로 정향을 붙잡아두고 있으나 마음을 얻지 못하고 있고, 신윤복은 정향의 마음을 얻고는 있으나 자신이 여성이라는 한계 때문에 그저 그림을 통해 사랑을 표현할 뿐이다.

재미있는 것은 이 두 사랑의 차원이 극명히 대비되는 지점이다. 김조년의 사랑은 욕망이지만 신윤복의 사랑은 동성이라는 한계 속에서 인간애에 가깝게 그려진다. ‘월야밀회’를 가지고 김조년과 벌이는 해석에서 드러나는 남성성의 시각과 여성성의 시각의 부딪침은 욕망과 인간애의 대립으로 보여지기도 한다.

‘서직수 초상’ 같은 초상화들 - 기록으로서의 그림
사극의 중반 이후부터 시작된 정조의 사도세자 초상을 두고 벌어지는 숨가쁜 추리극은 그 바탕에 ‘기록으로서의 그림’이라는 그림의 다른 한 편의 얼굴을 그려낸다. 정조가 김홍도와 신윤복을 불러 “너희들은 내 눈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그림이 예술적 차원 이외에 사진 같은 기록적인 차원으로 기능함을 말해준다.

이 사극이 그림을 사진의 기록적 기능으로 판단하고 있다는 단초들은 여러 차례, 몽타쥬 기법으로 초상을 완성해내는 에피소드를 통해 드러난다. 이것은 풍속화로서 예술적이면서도 기록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신윤복의 그림 이야기가 어떻게 팩션이라는 역사추리에서 주목받게 되었는가를 말해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미인도’ - 저널리스트의 면모를 가진 예술가
이 사극이 ‘미인도’에서부터 시작해 ‘미인도’로 끝나는 것은 그만큼 이 그림이 갖는 다층적인 의미에 주목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그 첫 번째는 “‘미인도’는 신윤복의 자화상이었다”는 도발적인 팩션의 상상력이다. 바로 이 상상은 신윤복을 남장여자로 재탄생시켜 그의 그림과 삶을 재조명해줄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한다. 둘째는 이 ‘미인도’에 내포된 신윤복의 미의식의 세계이다. 섬세한 여성적 필치로 그려진 여인의 모습은 그 자체로 신윤복이 가진 여성적 미의식의 세계를 드러낸다.

하지만 무엇보다 주목되어야 할 것은 바로 그 ‘미인도’의 주인공이 여성이며, 그것도 기생이라는 사실이다. 정향이라는 기생으로 대변되던 거세된 미의식을 통해 단 한 번 자신을 그녀의 모습으로 화해 그림에 담아 넣은 그 정신 속에는 신윤복이 가진 시대에 대한 저널리스트적인 면모가 숨겨져 있다. 그것은 양반들의 초상이나 임금의 어진과 함께 나란히 기생의 그림을 거의 실물 크기로 그려 넣는 마음 속에 드리워진 비판의식을 말한다. 따라서 ‘미인도’는 신윤복의 예술적 성취와 저널리스트적인 면모를 드러냄과 동시에 이 드라마가 취하려한 팩션의 상상력까지 아우르는 그림이라 할 수 있다.

‘바람의 화원’은 교과서나 화첩 속에 박제되어 있던 그림들을 끄집어내 생생한 영상과 상상력을 동원한 스토리를 통해 다시 살아나게 했다. 수백 년을 건너온 그림이라는 매체를 따라서 과거와 현재가 이어지는 이 경험은 고미술관에서 보여주지 못한 새로운 예술적 경험이었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물론 사실과 허구 사이에 놓인 거리가 있지만 이것은 이 사극을 통해 환기된 옛 그림에 대한 지대한 관심만으로도 충분히 상쇄될 수 있는 것이다. 여기까지가 드라마의 몫이다. 깨워낸 그림들을 통해 진짜 사실을 찾아가고, 또 지속적으로 옛 그림에 대한 관심을 이어가는 것은 이제 우리에게 남겨진 숙제다.

Posted by 더키앙

지난 달 간송미술관 앞은 때아닌 관객들로 장사진을 이뤘다. 미술관 입구에서부터 늘어선 줄은 골목을 빠져나와 대로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고적하기로 유명한 그 미술관에 무슨 일이 벌어졌던 걸까. 이유는 단 한 점의 그림 때문이었다. 신윤복의 ‘미인도’. 지금껏 다른 화원에 비해 상대적으로 조명된 적이 없는 신윤복, 게다가 조선시대의 춘화(?)로까지 오도될 정도로 흔하게 보여진(그래서 본격적인 미적 가치에 대한 조명은 덜 된) 그의 ‘단오풍정’, ‘과부탐춘’, ‘월야밀회’같은 그림이 아닌 ‘미인도’에 대한 관심은 이례적이라 할 수 있다. 무엇이 이 신드롬이라고까지 지칭할 수 있는 신윤복에 대한 열기를 만들었던 것일까.
그것은 한 편의 팩션에서부터 비롯됐다. 바로 ‘바람의 화원’이다.

미술관 풍경이 말해주는 신윤복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
미술관에 들어가기 위해 줄선 사람들은 본래부터 고미술에 관심을 가졌던 이들은 아닌 것이 분명했다. 그들은 줄을 서서 기다리며 주로 드라마 ‘바람의 화원’에 대한 이야기들을 나누고 있었다. 박신양의 연기가 어떻고 문근영이 진짜 소년 같다는 그런 이야기들. 그리고 막상 미술관에 들어서게 된 그들의 발걸음이 먼저 닿는 곳은 오로지 ‘미인도’였다. 간간이 보이는 신윤복과 김홍도의 작품들이 발길을 끌뿐, 웅장한 자태로 서 있는 겸재 정선의 산수화나 추사 김정희의 글씨, 혹은 김명국의 그림은 지나치기 일쑤였다. 하지만 ‘미인도’나 ‘단오풍정’같은 신윤복의 그림 앞에서는 저마다 한 마디씩 감탄을 하거나 평을 보태기도 했다. 어떤 사람은 그림을 자세히 뜯어보고는 “신윤복은 완벽주의자였던 것 같다”는 나름대로의 생각을 정리하기도 했다.

대중들의 신윤복에 대한 각별한 관심은 바로 그 지점, 쉽게 단평까지 내릴 수 있는 그 친근함에서 비롯된 바가 크다. 이것은 물론 우리네 고미술에 대한 대중들의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흔히들 무언가 선비정신이나 단아함, 혹은 추상적인 세계관 같은 것으로 오인되는 우리네 고미술에 대한 편견. 따라서 그런 그림들 앞에 서게 되면 친근함보다는 어딘지 올려다봐야만 할 것 같은 위압감 같은 것. 하지만 이것은 우리네 겉핥기식 미술교육이 만들어놓은 편견이다. 우리가 익히 임권택 감독의 영화 ‘취화선’을 통해 만난 장승업을 보고 알 수 있듯이 이들의 삶은 지극히 서민적(혹은 그 이하였다, 환쟁이라 불릴 정도로)이었다. 장승업과 또 한 명의 조선시대 신필로 불리는 김명국 역시 마찬가지. 그는 주광(酒狂)이라 불릴 정도로 술을 마셨는데, 취해야만 그림을 그렸다는 일화까지 있을 정도다. 그만큼 당대의 화원들이란 환쟁이로 천시되던 풍토 속에서 살아왔던 것이다. 따라서 신윤복에 유독 대중들이 관심을 보이는 것은 아마도 드라마나 책을 통해 박제된 천재가 아니라 살아있는 한 위대한 인간으로 재조명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고 신윤복의 그림과 지금 시대의 코드가 맞닿는 지점을 간과할 수는 없다. ‘미인도’를 보면 그 한 올의 터럭까지 잡아내는 그림의 섬세한 필치와 다소곳이 서 있는 여인의 자태가 주는 미적 감동을 느낄 수 있다. 신윤복 스스로 “그녀의 마음까지 잡아넣었다”고 만족해했을 만큼 그 그림의 여인은 수백 년이 지난 지금에도 금방 살아날 것 같은 생생함을 전해준다. 하지만 단지 그것뿐일까. 미적인 성취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거기 놀라운 저널리스트로서의 신윤복의 가치가 드러난다. 바로 그 ‘미인도’의 주인공이 기생이라는 사실. 여인조차도 그림의 한 구석에만 자리해야하는 존재로 여겨지던 시대에 당당한 화제로서 그려진 기생의 초상은 저 양반들의 초상이나, 어진의 그것과의 대결의식을 그 자체로 담고 있다. 즉 신윤복의 그림의 화제는 늘 보통 사람들의 눈높이에서 건져 올려진 것들이다. 서민들이 보기에 속시원했을 양반들의 허위의식을 그 속에 담으면서도 또 한 편으로는 미적인 성취를 이뤄내는 신윤복의 그림은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대중들의 정서와 맞닿는 대목이 있다. 신윤복은 그렇게 수백 년을 지나 지금 시대에 다시 걸어 들어온 것이다.

팩션과 영상 시대가 요구한 천재
유독 신윤복이 팩션이라는 장르를 통해 이 시대에 재조명된 이유는 무얼까. 이를 알기 위해서는 먼저 팩션이 무엇인지를 명확히 알아야 할 것이다. 흔히들 팩트(사료)+픽션(상상)을 팩션이라 생각해, 여기저기 팩션이란 용어를 남발하고 있지만, ‘바람의 화원’의 원작자인 이정명 작가는 팩션을 역사소설 혹은 소설과 오인하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사실상 소설이란 어느 정도의 팩트(그것이 작가 개인의 것이든)에 상상을 더한 것으로 그렇게 생각하면 팩트+픽션이 아닌 소설이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팩션은 역사적 사실에 추리형식을 곁들여 상상력으로 풀어낸 이야기로서, 하나의 새로운 장르라는 것. 이정명 작가는 굳이 표현하지만 팩션은 ‘역사추리’에 가깝다고 했다.

따라서 이미 다 알고 있는 역사적 사실은 팩션의 소재가 되지 못한다. 차라리 역사적 사료가 누락된 부분에서 팩션은 탄생한다. 이것은 역사에 대한 인식 자체가 변화하면서 생겨난 욕구의 소산이라 할 수 있다. 푸코가 주장하는 권력으로서의, 지배자들의 전유물로서의 역사가 가진 한계를 상상력을 동원해 뒤집어보는 것으로서 팩션은 그 자체로 존재의 의미를 가진다.

신윤복은 그런 면에서 이 팩션의 시대가 요구한 천재이다. 동시대의 화원으로서 김홍도가 역사의 전면에 등장해 있는 반면, 신윤복은 그렇지 못하다. 도화서 화원이었다가 술과 여자, 혹은 난잡한 그림(?) 때문에 쫓겨났다는 식의 단편적인 기록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사료뿐만 아니라 신윤복은 그 흔한 일화조차 남아있질 않다. 사료에 기록이 선연히 남아있는 김홍도나 기록이 별로 없어도 수많은 일화로 그 면면을 짐작하게 해주는 연담 김명국 같은 다른 화원들과는 사뭇 대조되는 모습이다. ‘바람의 화원’ 원작의 이정명 작가는 바로 이 기록이 남아있지 않은 점이 오히려 더 많은 상상력을 불러일으켰다고 한다. 오로지 남아있는 그림들을 통해 신윤복을 상상해야 하는 그 지점에서 작가는 그 그림 속에 들어있는 이야기들을 재구성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

또한 신윤복이 화원이라는 사실, 즉 그림이 소재가 된다는 점은 영상 시대에 걸맞는 시각적인 즐거움을 제공한다. 읽는 것보다는 보는 것이 더 익숙해진 요즘, ‘바람의 화원’이라는 팩션은 영상화하기에 최적의 컨텐츠라 할 수 있다. “오히려 드라마가 원작보다 더 낫다”고 말하는 이정명 작가는, 세세한 일상까지를 잡아내는 리얼리티의 힘을 영상 컨텐츠를 통해 느낄 수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단지 영상화하기 좋은 미적인 소재라는 점에서 신윤복의 그림이 주목되었을까.

여기에는 한 가지 더 부가되는 점이 있다. 이것은 이미 전술했듯 신윤복의 그림 속에는 저널리스트로서의 시선이 있다는 점이다. 단적으로 보면 ‘그리움’이라는 제목의 그림 속에는 여염집 아낙네가 고개를 돌리고 서 있는 모습이 어떤 아련한 그리움을 자아내게 만드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아낙네가 들고 있는 모자가 송락이라 불리는 것으로 스님들이 쓰는 것이다. 그 하나의 오브제만으로 이 그림은 전혀 다른 새로운 이야기의 가능성을 갖게 된다. 바로 이런 점은 역사 속에 숨겨진 그 어떤 것을 상상력을 통해 추리해가는 팩션의 장르와 잘 맞아떨어진다. 거기서 발전된 형태가 ‘미인도’에 대한 ‘바람의 화원’의 해석이다. ‘미인도’를 통해 신윤복의 자화상을 떠올리는 것은 마치 ‘다빈치 코드’에서 모나리자의 그림을 통해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자화상을 연결시키는 것과 갖은 맥락이다.

드라마가 살려낸 박제되었던 천재
그렇다면 이런 팩션을 드라마는 어떻게 시각화했을까. 드라마는 팩션이 구상했던 그 길을 그대로 따라간다. 그것은 그 중심에 그림을 세워두고 그 안에 있는 이야기들을 들여다보는 식이다. 먼저 신윤복의 ‘기다림’이라는 그림은 드라마 속에 들어오면 외유사생(생도들이 하루 바깥에 나가 자유롭게 그림을 그리는 것)을 통해 신윤복(문근영 분)이 담아온 그림으로 표현된다. 소설에서는 그 그림의 음란성을 가지고 문제를 삼는 정도에서 그치지만, 드라마는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거기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여인이 사실은 정순왕후였다는 충격적인 설정으로 가는 것이다. 이렇게 극적으로 설정되자 정순왕후는 그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그 그림을 그린 생도를 찾아내기 위해 혈안이 된다는 조금은 과장된 스토리. 하지만 이것은 드라마 초반부의 시선을 잡아두기 위한 방편의 설정일 뿐, 진짜 그림에 대한 깊이 있는 해석은 이후에 등장하는 ‘군선도’에서 보여진다.

‘군선도’편에서 신윤복과 김홍도(박신양 분)는 먼저 함께 저잣거리를 활보하며 거기서 장사치들과 서민들이 살아가는 생생한 모습들을 보게된다. 그 하릴없이 지나치는 듯한 하루의 일과는 그러나 빈 화폭 앞에 서면서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김홍도는 군선도(群仙圖), 즉 신선들의 무리를 그리는 그림 속에 그 저잣거리 사람들의 얼굴과 표정을 잡아넣는다. 그러면서 “보이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 것을 그리고,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이는 것을 그린다”는 말로 화법의 기본을 신윤복에게 설명한다. 즉 화원의 눈이란 저잣거리 사람들의 얼굴에서도 신선을 볼 수 있다는 말이다.

이러한 오랜 세월이 지나온 그림 한 장 속에 잠들어있는 이야기를 깨어내기 위해 ‘바람의 화원’은 초현실적인 연출을 활용한다. 그림이 꿈틀꿈틀 살아 움직이며 실사로 변하거나, 실사가 화원의 붓끝에 의해 그림으로 변하는 식이다. 신윤복의 ‘기다림’이라는 그림은 정순왕후가 나무 곁에 서서 잠깐 동안의 여유를 즐기는 모습을 크로키처럼 빠르게 신윤복이 그리는 장면으로 연출된다. 여기서 실사는 그대로 붓끝의 질감으로 서서히 변하면서 그림으로 나타난다. 이것은 김홍도의 ‘군선도’에서도 마찬가지다.

또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는 신윤복의 그림, ‘단오풍정’은 단오에 계곡에 모여 머리를 감고 그네를 타는 여인네들을 드라마 속 에피소드로 풀어냄으로서 정지된 그림 속의 이야기를 눈앞에 생생히 보여주었다. 기생 정향(문채원 분)과 신윤복이 함께 그네를 뛰면서 그 부서지는 풍광들 속에 계곡의 여인네들이 하나하나 그림의 부분으로 바뀌는 장면은 이 드라마가 가진 연출미학의 백미라 할 수 있다.

화원들의 철학까지 담아낸 팩션 드라마
이러한 연출은 그저 볼거리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스토리와 함께 당대 화원들의 화풍과 철학까지도 담아낸다. 그 대표적인 것이 김홍도와 신윤복이 같은 소재로 다르게 그려낸 주막 그림 에피소드이다. 그들은 정조에게서 동제각화(同題各畵 : 같은 화제로 각자 그림을 그리는 것)를 명 받고는 뭘 그릴까 고민하다가 선술집을 보며 때아닌 그림 논쟁을 벌인다. “저 주모 얼굴을 좀 봐라 밤낮으로 술을 팔아서 얼굴에 피곤이 덕지덕지 붙었지 않느냐? 술장사가 잘 안 되나보다. 아이고 저 양반 놈 보게. 대낮부터 불콰하게 취해 가지고 헤롱헤롱 아이고 꼴 좋다. 야 저 얼굴 저 표정 저 몸짓에 모든 게 다 들어있지 않느냐?” 하지만 여기에 대해 신윤복은 다른 관점을 제시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어디에 있는 지를 화폭에 담아야 그들의 마음을 알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 간단한 대사 속에는 김홍도와 신윤복의 그림관이 들어있다. 즉 김홍도는 배경보다는 인물 그 자체만으로도 그 성정이 다 드러난다고 주장하고, 신윤복은 그 사람만 봐서는 그 사람이 뭐를 원하는 지 알 수 없으며 오히려 그 배경이 그 마음을 알게 해준다고 한다. 김홍도의 반박에 신윤복은 주막 평상 위에 물로 찍어 새 그림을 그리고는 이렇게 말한다. “이 새는 이렇게 있으면 그저 새일 뿐입니다. 무엇을 원하는 지 이 그림만 봐서는 알 수가 없죠. 허나 이렇게 새장을 그려놓으면 그저 새이기만 했던 이 새가 무엇을 원하는 지 그 마음을 알 수 있지 않습니까?”

배경 그림 없이 인물에 더 집중했던 김홍도와 달리 배경을 통해 그 안에 갇힌 대상의 마음을 잡아내려 했던 신윤복은 그만큼 조선이란 사회가 가진 틀과 억압에 민감했던 것이 틀림없다. 그는 저 스스로도 조선에 갇힌 새였으며, 그림을 통해 그 새장을 벗어나고자 했던 것이다. 그의 그리움은 바로 이 떠나지 못하게 하는 현실의 족쇄에서 비롯된 것이다.

한편 신윤복이 그린 ‘주사거배’와 ‘무녀신무’는 드라마 속으로 들어와 그림이 현실에 어떻게 영향을 주는가에 대한 단초를 제시한다. 즉 대낮에 일은 하지 않고 선술집에서 불콰한 모습을 취해있는 이들과 혹세무민하는 무당들이 담겨진 그림을 보고 정조는 그 풍경이 말하는 고발정신을 읽어낸다. 이 저널리스트의 눈을 가진 신윤복의 면모를 드러내주는 에피소드는 정조가 신윤복과 김홍도를 불러 “너희들은 내 눈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 것처럼 그림이 마치 지금의 사진처럼 그 이미지 이상의 의미를 전달해준다는 것을 드러내는 대목이기도 하다.

역사왜곡과 재해석 사이
하지만 팩션이 아무리 없는 사료 속에서 상상력으로 그 빈곳을 채운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굳이 신윤복을 왜 남장여자로까지 그렸어야 했을까. 이것은 지금 학계에서 ‘지나친 역사왜곡’이라며 우려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빌미가 되고 있다. 한동안 잠잠했던 사극의 역사왜곡 논란이 ‘바람의 화원’을 통해 또다시 고개를 쳐든 것. 문화재 위원장인 안휘준 전 서울대 명예교수는 연합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백 번 양보해도 남자를 여자로 그리는 건 과하다”고 지적하면서 “국민에게 역사를 알게 하려면 그 작업을 제대로 해야지 흥미를 유발시키기 위해 사실을 왜곡하는 것은 긍정적이기보다는 부정적인 측면이 크다”고 말했다.

안휘준 위원장의 이 같은 발언은 문화재 위원장으로서 어쩌면 타당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은 역사가 한 가지 사실로만 받아들여졌던 시대에는 온당하지만, 지금처럼 한 가지 사실에 대한 한 가지 기록으로서 받아들여지는 시대에는 그다지 효율적인 태도가 아니다. 역사왜곡과 재해석의 차이는 그렇게 이미 가까워져 있다. 안휘준 위원장의 발언은 학자의 절대적인 텍스트가 되어야 하는 역사를 뒤흔드는 팩션이나 드라마에 대한 당연한 입장일 것이다. 그 말은 거꾸로 보면 ‘사극이 국민들에게 역사공부를 시켜줄 정도의 어떤 것’이라는 생각이 담겨있다. 영상매체로서의 사극이 갖고 있는 영향력을 자인해주는 셈. 그리고 이것은 실제로 신윤복 신드롬으로 드러난 바 있다.

정통사극이 이미 사라져버린 요즘, 사극을 두고 역사왜곡을 말하는 것은 이제 좀 식상한 논쟁이 되어버렸다. 퓨전 사극이 대세로 자리잡은 요즘의 사극트렌드에서 사극은 역사 그 자체보다 오히려 상상력을 더 중요시 여기게 되었다. 사극에 대한 대중들의 인식도 그만큼 달라졌다. 사극이 역사 그 자체라면 그것은 재연 다큐멘터리이지 드라마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제 사극은 더 이상 역사공부가 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하지만 바로 그 역사를 버림으로 해서 사극이 얻은 것이 있다. 그것은 진위를 떠나 역사 자체에 대한 관심을 제고한다는 점이다. 어떤 특정 역사에 대한 주의 환기로서만 사극은 그 효용성을 가진다.

‘바람의 화원’이 등장하기 이전까지 신윤복이나 김홍도에 대한 학문적 관심을 끌기 위해 학계에서는 어떤 노력을 해왔던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사극이 이처럼 역사공부를 시켜줄 정도의 영향력을 가질 동안, 학계에서는 대중들을 방치하고 있었던 게 사실이다. 달라진 대중들의 역사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할 때 이제는 하나의 사극을 역사왜곡이라 일축하는 식이 아니라, 좀더 사극의 상상력 또한 가슴에 품어주는 넓은 도량으로서의 접근이어야 하지 않을까. 중요한 것은 이렇게 사극 혹은 팩션을 통해 환기된 역사와 함께, 동시에 정확한 역사로 바로잡아주는 학계의 노력이 공조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신윤복의 그림에 대한 관심으로 촉발된 간송미술관의 성황 속에서 안타까웠던 점은 바로 이 점이다. 대중들은 신윤복을 통해 우리네 고미술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 미술관에서는 정작 그림 감상을 돕는 어떤 설명조차 없었다는 점이다. 물론 갑작스런 상황에 대처하지 못했을 수도 있지만, 만일 거기 있는 다른 미술작품들에 대한 설명 같은 것까지 준비되어 있었다면 신윤복 신드롬이 신윤복에서 멈추지 않고 다른 고미술에 대한 것으로 넘어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어쨌든 간송미술관의 최완수 한국민족연구소 연구실장은 이런 현상에 대해 “드라마의 영향으로 전시의 가치나 내용을 잘 모르고 오는 손님들도 꽤 있지만, 어떻든 우리 문화재의 중요성을 느낄 수 있는 기회가 된다면 좋은 일(한국일보 10월15일자)”이라고 말했을 정도로 상황을 긍정적으로 바라보았다.

그럼에도 왜 꼭 남장여자여야 했을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휘준 위원장의 표현처럼 “백 번을 양보해도” 왜 꼭 남장여자였을까에 대한 의문은 남는다. 이것의 효용성은 아마도 작품 속에서 이 남장여자가 기능하는 바를 찾아내야 드러날 것이다. 즉 작품 내적인 문제라는 말이다. 만일 그것이 단지 안휘준 위원장의 말대로 “흥미를 유발시키기 위해 사실을 왜곡”했다면 그것은 문제가 된다. 하지만 작품이 신윤복을 남장여자로 설정하는 타당한 이유가 있었다면 그것은 하나의 예술적 상상력으로서 포용되어야 한다.

이정명 작가는 여기에 대한 하나의 일화를 들려주었다. 어린 시절 보았던 성냥갑에 그려진 신윤복의 섬세한 필치와 분명한 색조가 드러나는 ‘단오풍정’을 통해 작가 자신은 신윤복을 여성으로 생각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다 어느 날 교과서를 통해 신윤복이 남자라는 것을 알게되고는 오히려 깜짝 놀랐다는 것이다. 즉 이정명 작가가 본 것은 그 여성성이 묻어나는 신윤복의 그림이다.

신윤복의 그림에는 남자와 여자가 확연히 대비된다. 즉 남자, 양반들은 그 위선적인 모습들을 보여주고, 여자 기생들은 자유스러우면서도 아름다운 파격을 보여준다. ‘미인도’가 그저 아름다운 여인을 그린 것이라 생각한다면 아무런 감흥이 없을 것이나, 그 그림의 주인공이 기생이라면 깊은 감흥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아무도 기생을 그림의 소재로 세우지 않던 시대에 신윤복은 그 기생을 그림으로써 아름다움이란 신분이나 지위와는 상관없는 것이라는 말을 전해주었다. 그것은 또한 신분, 지위 같은 남성성을 강요하는 사회에 아름다움과 생산성, 창조성을 내포한 여성성을 그리워한 신윤복의 마음이 담겨진 그림이기도 하다.

신윤복이 이 시대의 컨텐츠 속에서 남장여자로 되살아난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 아니었을까. 남장여자는 단지 사료부족을 상상력으로 채우는 과정에서 나온 것이라든가, 그림의 필치가 여성적이라는 데서 착상한 그런 단순한 것이 아니다. 여성이지만 남자로서 살아가야 하는 남장여자는 분명 여성성을 희구하지만 남성성의 사회 속에 살아가야 하는 현대인들과의 공감이 바탕에 깔려있다. 즉 여성성의 삶, 생산적이고 창조적인 삶을 희구하지만 현실은 남성성의 삶, 경쟁적인 삶 속에 매몰될 수밖에 없는 현대인들의 공감 말이다. 이것은 또한 당대 신윤복이 가졌던 배경(사회환경의 현실)과 그 배경을 화폭 속에 비틀어 그려내면서 그 구속을 벗어나려 했던 욕구와 같을 것이다.

남성과 여성이라는 성적 구분이 역할 구분과 맞닿아있었던 과거 농경사회 속에서는 남성과 여성의 차이는 엄격했을지 몰라도, 지금처럼 성별과 상관없이 각각의 능력으로 인정되는 정보화 사회 속에서는 그 생물학적 구분은 문화 컨텐츠 속에서 그렇게 엄격하지 않을 수밖에 없다. 지금은 남성과 여성의 시대가 아니라 남성성과 여성성의 시대다. 신윤복이 팩션과 드라마 속에 들어와 남장여자로 설정됨으로써 본질은 여성이지만, 여성으로 살 수 없는 상황을 극대화하고, 따라서 자신 스스로에 내재된 여성을 표현할 수 없는 그 마음을 그림 속에 더 절실하게 구현한다는 것은 작품으로서 의미가 있다. 이것은 또한 남성성의 사회 속에서 여성성의 사회로 변화해 가는 지금, “왜 신윤복인가”하는 질문에도 충분한 답변을 제공하는 대목이다.
(이 글은 월간중앙에 게재되었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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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인도’의 남장여자, ‘바람의 화원’과 뭐가 다른가

신윤복 열풍이다. 이정명 작가의 팩션 ‘바람의 화원’이 이 불황기에도 연일 베스트셀러를 기록하고 있고, 드라마 ‘바람의 화원’은 매회 시청자들의 눈을 즐겁게 해주고 있다. 드라마의 영향으로 지난 달 열렸던 간송미술관 개관 70주년 행사에는 때아닌 관객들이 몰려 장사진을 이루었다. 다름 아닌 신윤복의 ‘미인도’를 보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영화 ‘미인도’가 개봉함으로써 신윤복 신드롬은 앞으로도 한동안 지속될 전망. 왜 신윤복은 갑자기 이 시대에 등장했을까. 그것도 남장여자로.

드라마 ‘바람의 화원’, 예술가의 초상
드라마, ‘바람의 화원’에서 신윤복이 남장여자로 설정된 것은 별로 남아있지 않은 사료가 만든 상상력의 소산이면서 동시에, 그나마 남아있는 그림들의 필치가 여성적인 섬세함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흔하게 알려진 ‘단오풍정’같은 그림을 두고 봐도 세세한 붓 터치와 인물묘사, 게다가 철저히 계산된 듯한 구도와 색감까지를 쉽게 느낄 수 있다. 이것은 호방함이 느껴지는 김홍도의 남성적인 필치와는 대조적이다. 이정명 필자 스스로도 밝혔듯이 신윤복이 남장여자로 설정된 것은 바로 그 그림이 전해주는 여성성의 느낌에서 비롯된 것이다. 하지만 그것뿐일까.

신윤복과 김홍도가 그림의 배경을 가지고 논쟁하는 장면에 등장하는 새 그림은 신윤복이 당대 조선사회에서 얼마나 억압적인 체제 속에 자유를 갈구했는가를 알 수 있다. 배경은 없고 중심인물만 가지고도 충분히 그 사람의 심정을 드러낼 수 있다고 주장한 김홍도와는 달리, 신윤복은 새를 그려놓고 “이 새는 배경이 없을 때는 그저 새일 뿐”이지만, 배경으로 새장을 그려 넣으면 “새장 밖으로 날아가고픈 심정”을 알 수 있다고 말한다.

이것은 그림의 소재나 화풍이 이미 정해져 있어 그 틀을 벗어나면 이단이 되어버리던 당대 사회에서 신윤복이 가졌던 ‘배경에의 의식’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창조하려는 그 여성성의 마음을 가졌지만 체제에 순응해야 하는 남성성의 사회 속에서 겪었을 억압. 그것을 잘 표현한 것이 남장여자라고 볼 수 있다.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는 남자로서 살아가야 하고, 대신 자신 속의 여성을 숨겨야 하는 신윤복이 자신이 채우지 못하는 여성의 욕구를 그림을 통해 표출한다는 설정이다. 따라서 드라마 속, 신윤복의 작품, <미인도>가 가지는 의미는 그저 그것이 신윤복의 자화상이라는 표면적인 설정에만 있지 않다. 거기에는 남장여자로서 억압된 미적 욕구를 채우려는 욕망이 꿈틀댄다. 그리고 이것은 예술가들의 초상이기도 하다.

영화 ‘미인도’, 성이라는 자유
하지만 영화 ‘미인도’로 오면 이 남장여자라는 껍질은 조금 다른 의미를 가지게 된다. 그것은 자연스러운 성을 억압하는 사회를 담는다. 각종 성행위를 묘사한 그림들에 대해 조정대신들이 음란하다고 꾸짖을 때, 신윤복은 자신의 손이 하나도 부끄럽지 않다고 당당하게 말한다. 그 그림 속의 남녀는 자연스럽게 그 무엇에도 구애받지 않고 서로에게 이끌리는 모습들이며 그 인간적인 부족함은 자신에게는 오히려 사랑스럽게 다가오는 것이라고 신윤복은 말한다.

영화 ‘미인도’에도 새장과 새의 이미지가 등장하지만 그것은 예술에 대한 것이라기보다는 한 인간의 자유에 대한 의미로 읽힌다. 스승 김홍도가 그 그림이 가진 체제반항을 운운할 때, 신윤복은 자신은 그런 의도가 전혀 없었다고 말한다. 자신은 그저 보이는 대로 자연스럽게 그리고 싶은 대상을 그렸을 뿐이라는 것이다.

즉 ‘미인도’는 어린 시절 자신 때문에 오빠가 자살을 했다는 죄책감에 사로잡혀 남자의 굴레를 뒤집어쓰고 살아가다 어느 날 당당히 자신의 성 정체성을 드러내는(그것도 아주 자연스럽게) 그 지점에 남장여자의 포인트가 맞춰져 있다. 극중 신윤복이 껍질로서의 옷을 다 벗어 던지고 알몸으로 오로지 한 남자에게 안겨 있는 모습이 가장 자유롭고 자연스러운 인간의 모습으로 비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영화는 분명 지나치게 멜로와 성적 묘사에 집착한 면이 있다. 따라서 남장여자 설정이 가진 본래의 이 자유로운 인간에 대한 이야기는 오히려 그 속에 묻혀 버린다. ‘센세이션 조선 멜로’라는 문구는 자칫 신윤복이라는 천재를 상업적으로 활용한 혐의를 갖게 만든다.

그 성과가 무엇이든 간에 신윤복이라는 인물이 남장여자로 이 시대에 탄생한 것은 아마도 지금 시대가 지향하는 여성성의 사회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남성과 여성으로 나누던 과거에서 이제는 남성성과 여성성으로 나누어지는 시대, 남장여자는 어쩌면 바로 이 중성적인 시대를 담는 아이콘인지도 모른다.
(본 원고는 청강문화산업대학 사보 100도씨(100C)에 게재된 원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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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화원’은 바람 같은 작품”

이런 인터뷰는 처음이다. 아니 이건 인터뷰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저 강남의 한 찻집에서 그를 만났고 차를 마시며 ‘바람의 화원’에 대해 이야기했다. 개인적인 사생활을 중시해 인터뷰를 극도로 꺼린다는 ‘바람의 화원’의 이정명 작가를 만나기 위해 필자는 사진기와 녹음기, 심지어는 노트까지 포기했다. 대신 이야기를 들을 작정이었다. 그러니 이 글은 애초부터 인터뷰 형식에 앉혀질 운명이 아니었다. 다만 가물가물한 기억 속에 바람처럼 떠다니는 이정명 작가의 이야기, 그 단편들을 적어놓은 것일 뿐이다. 하지만 그래서일까. 이 막연함 속에서 이정명 작가가 신윤복의 그림을 앞에 두고 그 뒤에 숨겨진 이야기를 상상하며 느꼈을 막막함과 또 그 속의 어떤 설렘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것은.

첫 인상, 성냥갑에 그려진 신윤복의 ‘단오풍정’
이 불황에, 그것도 한번도 불황 아닌 적이 없었던 출판계에서 꾸준히 베스트셀러로 자리 매김하고 있는 이정명 작가의 첫인상은 의외로 평범하다는 것이었다. 길거리에서 우연히 보게 되는 그런 사람, 마치 신윤복과 김홍도의 그림 속 그저 지나가는 행인 같은 평범함을 간직한. 하지만 환하게 웃으며 동그란 안경 너머로 진지하게 쳐다보는 그 눈빛은 ‘바람의 화원’의 애체를 끼고 서글서글하게 웃고 있는 김홍도를 닮았다. 어딘지 빈 듯 보이지만 막상 작품 앞에 서면 특유의 열정 속으로 빠져드는 그런 사람.

그의 첫인상이 익숙해질 즈음, 그가 신윤복이란 화원을 접하게된 첫인상이 궁금해졌다. “처음 신윤복을 접한 건 아주 어렸을 적 성냥갑에 그려진 여인이 그네를 타는 그림에서였습니다.” 그건 다름 아닌 신윤복 작품 중 가장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그림, ‘단오풍정(端午風情)’이었다. 그 그림의 여성적으로 보일 만큼 섬세한 필치와 색감을 보면서 어린 미래의 작가는 그 그림의 화원을 여성으로 상상해왔다고 했다. 오히려 나중에 그 화원인 신윤복이 남자라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랄 정도로.

그림은 그리움, 그 그리움을 이야기로 엮다
“그린다는 것은 무엇이냐?” 이 김홍도의 질문에 도화서 생도인 신윤복은 이렇게 말한다. “그린다는 것은 그리워하는 것이 아닐지요?” ‘바람의 화원’에 등장하는 이 대화는 또한 이정명 작가가 이 작품을 어떻게 써나갔는지를 보여주는 단서이기도 하다. “연대기적으로 신윤복의 삶을 담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대신 그가 선택한 것은 그림들이었다. 신윤복과 김홍도의 그림 속에 담겨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싶었다고 했다. 그림을 앞에 놓고 그 속에 있는 인물들이 말해주는 것을 그리움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고 상상하는 작가의 눈길이 느껴졌다.

“서양화에는 그림만큼 유명한 일화들도 많이 내려오고 있죠. 그 이야기들이 모두 역사적인 사실은 아닐지 몰라도 그것들은 그림을 더욱 풍요롭게 해줍니다.” 작가는 우리네 그림들 속에 숨겨져 있을 지도 모르는 그런 일화를 찾아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이정명 작가가 밝힌 ‘바람의 화원’의 작법은 그림들이 말해주는 그 이야기를 듣고 짧은 이야기들을 구성과 상관없이 적어두는 것이었다. 사실상 작가의 전작인 ‘뿌리깊은 나무(2006)’보다 더 먼저 이 작품에 대한 구상과 작업이 시작되었다고 하니 꽤 오랜 시간 켜켜이 쌓여진 메모들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겠다. 그 메모만큼 쌓여진 그리움은 다시 작품으로 꿰어졌을 터였다.

드라마가 소설보다 좋은 이유
“이 작품은 장태유 PD가 아니면 어려운 작품이라 생각합니다.” 이정명 작가의 장태유 PD에 대한 신뢰는 깊었다. 장태유 PD 특유의 미술적인 감각은 물론이고, 특유의 완성도에 대한 근성은 남다르다고 한다. 이것은 작품을 통해 고스란히 드러나는 점이기도 하다. 특히 이정명 작가는 사실 별로 드라마에 대해 상의를 한 적도 없지만, 자신의 생각과 장태유 PD의 생각이 딱 맞아떨어지는 장면들을 드라마를 통해 확인하면서 전율했다고 한다. “김홍도의 캐릭터를 생각할 때, 조금은 허술한 듯 보이면서도 작업에 들어가면 무서울 정도의 집중력을 보이는 그런 인물로 그려졌으면 하고 생각”했다는 이정명 작가의 마음을 읽었다는 듯이 장태유 PD는 그렇게 그려냈다고 한다.

무엇보다 드라마가 소설보다 낫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은 (상대적으로 소설에서는 군더더기로 생각되어 사용하지 않았던) 그 일상적이고 가벼운 대화 같은 것들이 오히려 드라마에서는 리얼리티를 강화해준다는 점이라고 이정명 작가는 밝혔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장PD를 신뢰하는 것은 아마도 작가가 이미 밝혔던 ‘그림 속의 이야기에 대한 매혹’을 드라마가 실제 영상으로 구현해냈다는 점일 것이다. ‘단오풍정’ 그림 속의 아낙네들은 드라마 속으로 걸어나와 신윤복을 만나고, 드라마는 신윤복이 그 그림을 그리게 되는 상상의 이야기를 눈앞에 그려낸다. 하지만 이것은 어쩌면 이정명 작가의 겸손일 지도 모른다. 소설 속에는 또한 드라마가 보여주지 못하는 또 다른 재미가 있기 때문이다.

드라마보다 소설이 좋은 이유
“팩션은 역사소설과는 다릅니다. 그것은 역사에 추리가 들어가는 하나의 장르개념으로 받아들여야 하죠. 굳이 말하자면 팩션은 역사추리에 가깝습니다.” 이정명 작가는 최근 영상 컨텐츠로 각광받고 있는 팩션이 그저 말 그대로의 팩트(사실)+픽션(상상)의 결합체로 광범위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작금의 상황을 바로 잡아주었다. 팩션은 저 ‘장미의 이름’처럼 역사적인 팩트를 추리형식으로 파고 들어가는 하나의 특정한 장르라는 것이다.

드라마 ‘바람의 화원’과 소설 ‘바람의 화원’이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바로 이 팩션이라는 장르의 성격으로 규정되는 추리형식이 소설 속에 더 많이 구현되어 있다는 점이다. 아직 드라마가 반 정도만 진행되어 있어 후반에는 어떻게 될지 모르나, 현재까지 드라마 ‘바람의 화원’은 추리형식보다는 신윤복이라는 인물의 화원으로서의 성장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드라마와는 달리 소설은 팩션 특유의 추리가 주는 묘미가 특별한 재미를 선사한다.

신윤복 신드롬? 바람으로 끝나지 않길
“매체의 힘을 느꼈지요.” 드라마화 되면서 불기 시작한 신윤복 신드롬에 대해 작가는 이렇게 운을 뗐다. 신윤복의 ‘미인도’를 보기 위해 몰려든 인파로 즐거운 비명을 질렀던 간송미술관은 신윤복 신드롬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이 신드롬은 현재 개봉을 준비중인 영화 ‘미인도’를 통해 또 한번 이어질 태세다. 하지만 이런 신드롬에 대해서 작가는 신중했다. “하지만 조금 지나면 이런 신드롬은 금세 언제 그랬냐 싶게 사라지는 것이 우리네 생리죠. 제발 한 때의 바람으로 끝나지 않고 우리 그림에 대한 관심으로 꾸준히 이어지길 바랍니다.”

‘바람의 화원’은 그 제목처럼 손아귀에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바람 같은 작품이라고 작가는 밝혔다. 드라마 속에 드러나는 인물들 간의 사랑은 사제지간(김홍도)의 정인지, 형제지간(신영복)의 우애인지, 혹은 예술가가 갖는 미의 화신, 즉 뮤즈(정향)에 대한 사랑인지 모든 것이 복합적이고 애매모호하게 그려진다. 그런데 바로 그런 점이 ‘바람의 화원’만이 주는 독특한 아우라라고 할 수 있다. 때로는 그림자처럼 보이고, 때로는 실체처럼 보이는 그 지점에서 우리는 김홍도가 어진화사 앞에서 신윤복의 그림자에 매혹되면서 느꼈던 그 당혹감을 느끼게 된다. 작품과 작가는 닮는다더니, 이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바람의 화원’과 이정명 작가는 서로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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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을 버리자 여성이 된 문근영, 그리고 신윤복

문근영은 국민여동생이라는 이미지를 얻는 순간 딜레마에 빠졌다. 귀엽고 순수함이 묻어나는 미소, 특유의 선해 보이는 커다란 눈망울은 그녀를 순식간에 스타덤에 올려놓았지만, 그것은 또한 족쇄이기도 했다. ‘어린 신부(2004)’, ‘댄서의 순정(2005)’으로 구축된 여동생 이미지를 벗어나기 위해 그녀는 ‘사랑따윈 필요없어(2006)’의 비련의 여주인공을 맡는 한편, 모 이동통신사의 CF를 통해 섹시한 이미지로의 변신을 시도했다. 하지만 대중들은 여전히 그녀를 여동생 이미지로 두고 싶어했다.

2년여의 공백기를 거쳐 문근영에게 다가온 ‘바람의 화원’의 신윤복이라는 캐릭터는 그녀에게 새로운 기회를 제공했다. 남장여자란 그녀가 강요받아온 국민여동생이라는 이미지와, 또 변신해야할 성인연기자라는 이미지를 벗어난 제3의 선택이 될 수 있었다. 우리네 연예계에서 여성연기자들에게 강요되는 두 이미지, 즉 귀엽거나 섹시한 그 이미지의 짐을 벗어버릴 수 있었다. 하지만 기묘한 것은 그녀가 여성의 이미지를 버리자 오히려 여성으로 성큼 다가왔다는 점이다.

‘바람의 화원’의 신윤복이라는 캐릭터는 화동(畵童)같은 이미지를 갖고 있다. 이것은 문근영이라는 국민여동생이라 불리던 연기자에게 가장 편안한 옷이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녀가 연기하는 신윤복은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남성으로 살아가지만 그녀의 마음 속에서 꿈틀대는 여성성은 신윤복의 겉모습인 화동의 이미지를 깨고 바깥으로 슬쩍슬쩍 빠져나온다. 스승인 김홍도(박신양)의 등에 업혀 가슴이 설레기도 하고, 그림을 가르쳐주기 위해 잡은 김홍도의 손길에 마음이 떨리기도 한다.

이러한 ‘강요된 남성성, 드러내고 싶은 여성성’은 문근영이라는 연기자가 꿈꾸던 것이 아닐 수 없다. 여성의 이미지보다는 아이의 이미지로서 보여지길 원하는 대중들의 욕망과 그 속에서 본인 스스로 보여주고픈 여성의 이미지는 정확하게 문근영이라는 배우의 상황과 연결된다. 따라서 그녀가 연기하는 신윤복이 그림 속에서 여성성에 끌리는 것(여성을 주로 그리고 화풍 또한 여성성을 따른다)은 그대로 그녀의 마음의 표현이기도 하다. 이것은 또한 신윤복의 그림을 통해 보여지는 ‘정해진 틀에서 벗어나려는 몸부림’과도 연결된다. 신윤복은 그려서는 안 되는 것들에 대한 당대의 틀을 깼던 화원이다.

극중 신윤복이 정향(문채원)을 대하는 태도 역시 남성성을 드러내기보다는 여성성을 더 강조한다. 신윤복은 금기된 것, 즉 여성성에 대한 희구를 여성의 아름다움에서 찾으려 한다. 신윤복이 그녀를 그리워하고 그림에 담으려 하는 것은 단순한 남녀 간의 애정이 아니다. 그녀는 정향을 자신의 그림 속에 담음으로써 자신의 여성성을 채워 넣으려 하는 것이다. 그녀가 ‘단오풍정’의 그림을 펼쳐놓고 정향에게 “이 그림 속에 들어와 주시요”하고 말하는 장면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이렇게 보면 문근영이란 연기자와 신윤복이라는 캐릭터의 만남은 운명적이라 할 수 있다. 문근영은 연기자로서 강요된 이미지와 드러내고픈 이미지를 신윤복이라는 캐릭터를 통해 드러내고 있고, 신윤복이라는 캐릭터는 문근영이라는 연기자의 훌륭한 옷이 되어주고 있다. 신윤복을 통해 보여준 문근영의 이미지 변신은 또한 우리네 여성 연기자들이 가진 딜레마를 넘어서는 것이기도 하다. 여성 연기자로서 강요되는 이미지를 넘고 나서야 비로소 ‘여성’이라는 꼬리표를 떼고 ‘연기자’로서 살아갈 수 있다는 것, 문근영은 신윤복을 통해 그걸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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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의 강마에 김명민, ‘바람의 화원’의  신윤복 문근영

명작은 명캐릭터와 명연기로 만들어진다. 지금 수목드라마에서 ‘베토벤 바이러스’의 강마에라는 캐릭터를 연기하는 김명민이 그렇고, ‘바람의 화원’에서 신윤복을 연기하는 문근영이 그렇다.

까칠한 듯 부드러운 강마에, 김명민
‘베토벤 바이러스’를 이끌어 가는 힘의 원천은 강마에라는 캐릭터에서 비롯된다. 고집불통에 따뜻한 표정이라도 하면 무슨 큰 일이라도 날 것처럼 늘 견지하는 퉁명스러운 얼굴, 게다가 빙빙 돌려 얘기하지 않고 면전에다 대고 쏟아 붓는 직설어법의 독설까지, 강마에는 까칠한 캐릭터의 모든 것을 갖추고 있다. 동정심이 일어날 만한 아줌마 정희연(송옥숙)에게 거침없이 ‘똥 덩어리’라고 말하고, 이제 귀가 멀게 될 두루미(이지아)에게 ‘귀가 먼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 낱낱이 말하며 절망을 끄집어내는 인물이다.

하지만 그 까칠함이 시청자들의 환호를 받는 이유는 무얼까. 그 첫 번째는 강마에가 지금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오케스트라 단원들)에게 그 동안 외면하려 해왔던 자기 자신의 모습을 직시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강마에는 현실이라는 핑계거리를 내세우며 꿈을 버리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특유의 독설로 깨우쳐 그 현실과 맞서게 만든다. 바로 거기서부터 변화는 가능하기 때문이다. 강마에의 까칠함은 표현의 문제일 뿐이다. 강마에와 정명환(김영민)이 천재 제자 강건우를 두고 나누는 뒷 얘기는 진정한 스승으로서의 그의 면모를 드러낸다.

이 명 캐릭터를 연기하는 김명민은 과거 ‘하얀거탑’의 장준혁이라는 카리스마와는 약간 결이 다른 새로운 카리스마를 선보이고 있다. 장준혁에서부터 강마에까지 현실에 대한 삐딱함을 표현하는 특유의 비뚤어진 입 꼬리는 이제 김명민의 트레이드 마크가 될 정도다. 하지만 강마에의 비뚤어짐은 조금은 과장된 연기와 맞물려 오히려 웃음을 자아내게 만든다. 그의 완벽에 가까운 지휘 연기와 까칠함과 부드러움을 오가는 야누스적인 연기는 강마에라는 캐릭터를 살리고, 또 드라마를 살리는 힘이 되고 있다.

순진한 듯 강인한 신윤복, 문근영
한편 ‘바람의 화원’을 이끌어가는 힘은 천재화가인 신윤복이라는 캐릭터다. 화원으로 살아가기 위해 남장을 해야하는 천재 신윤복은, 그 설정 그대로 당대의 벽들과 마주선다. 그 첫 번째는 그림에 대한 장벽이다. 그가 그리고픈 여성성이 충만한 그림들은 춘화로 매도되고 장파형(손을 돌로 으깨는 형벌)의 위기에까지 몰리게 만든다. 도화서는 규율에 맞는 틀에 박힌 그림을 그에게 강요한다.

이 거대한 시대의 장벽 앞에 선 인물은 가녀린 도화서의 화원도 되지 못한 일개 제자인 신윤복이다. 하지만 신윤복은 겉보기처럼 약하지만은 않다. 자기 대신 장파형을 당하려하는 스승 김홍도(박신양)와 늘 맞서고, 가문을 위해 자신을 화원으로 만들려하는 아버지와도 맞선다.

문근영은 이 천재화가를 마치 어린아이 같은 특유의 해맑은 얼굴로 연기한다. 동그랗게 뜬 두 눈은 천재들이 가진 특유의 호기심을 잘 표현하고 거침없는 행동 속에도 아이 같은 순진무구함을 드러낸다. 하지만 장파형 앞에 격정적인 감정에 휘말리는 상황에서 문근영은 절정의 눈물 연기를 소화해낸다. 자신의 손을 돌로 내리치는 장면은 마치 그 동안 귀엽기만 한 국민여동생 이미지를 저 스스로 깨버리려는 듯한 몸부림처럼 보인다. 신윤복이 가진 캐릭터의 변화과정, 즉 남장여인에서 다시 김홍도에 의해 깨어나는 여성성이 드러나는 그 과정을 통해 문근영은 역시 그동안 갇혀있던 이미지를 깨고 새로운 여성 이미지로 거듭날 기회를 가지게 된 셈이다.

명작을 만드는 명캐릭터와 그 명캐릭터를 만드는 명연기. 지금 그 연기의 중심에는 김명민과 문근영이 있다.

Posted by 더키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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