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도><1>, 헛똑똑이 세상에 던지는 바보들의 일침

 

주말 내내 김종민은 바빴다. <무한도전> ‘바보전쟁에 빠질 수 없는 캐릭터이면서 동시에 <12>의 터줏대감(?)이기 때문이다. 이른바 바보 캐릭터’. 진짜 바보인가 아니면 바보를 가장한 천재인가에 대한 의문은 끊임없이 김종민에게 제기된 바 있다. 은지원이 그는 사실 천재라고 했던 말은 이런 의문에 불을 지폈다.

 


'무한도전(사진출처:MBC)'

경북 성주군으로 떠난 <12>에서 마침 김종민이 보인 새로운 면면들은 이것이 단지 농담만은 아닐 거라는 심증을 줬다. 씨름 복불복에서 스모를 배웠다는 료헤이와 접전을 벌이다 결국 이기고, 퀴즈 대결에서도 척척 맞추는 모습을 보여줬다. 지금껏 김종민이 갖고 왔던 이른바 신바(신난 바보)’ 캐릭터와는 사뭇 다른 행보였다.

 

사실 방송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니 그 일을 이토록 오래도록 잘 해온 그가 진짜 바보일 리 만무다. 하지만 그토록 많은 의문 제기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 캐릭터를 저버린 적이 없다. 그 이유는 하나다. 그것이 많은 시청자분들에게 웃음을 줄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다. 시청자분들이 보면서 훨씬 편안하게 볼 수 있게 만드는 길이기 때문이다. 그 이외에 무슨 이유가 있을까.

 

<무한도전>은 왜 갑자기 바보 전쟁이라는 타이틀로 이른바 바보 어벤져스를 모으고, 또 그렇게 어벤져스에 선택된 출연자들은 기꺼이 거기에 응했던 걸까. 물론 <무한도전>에 나간다는 건 심형탁이 말했듯 소속사가 축하 파티를 할 일이다. 하지만 그렇게 막상 프로그램에 나왔다고 해도 거기에서 적극적으로 조금은 모자란 모습을 보여주거나 자신이 희화화되는 걸 기꺼이 감수한다는 건 또다른 얘기다.

 

심형탁은 지금까지 우리가 보지 못했던 독특한 바보 캐릭터의 모습을 보여줬다. 댄스 신고식에서 무반부로 듣도 보도 못한 뚜찌빠찌뽀찌를 연발하며 <미니언스>의 노래를 부르는 그에게 거기 있는 모든 사람들이 처음에는 멍해졌다가 잠시 후에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평소 피규어 마니아다운 모습으로 그는 엉뚱한 매력을 쏟아냈다.

 

<12>에서 가장 드러내지 않고 바보 캐릭터를 연기하는 인물은 김준호다. 그는 프로그램을 위해 적당히 무식함을 드러낼 줄도 알고 기상미션으로 김종민의 노비가 되자 비굴함을 연기해 웃음을 만들어낸다. 그것은 누가 봐도 코미디언으로서의 연기다. 김준호가 대단하게 여겨지는 건 그가 광대의 역할을 정확히 알고 있다는 것이다. <12>의 맛을 계속 살려낸 건 다름 아닌 그가 자처한 바보스런 광대 역할 덕분이다.

 

김준호와 김종민이 떡 하니 붙어 양대 바보 캐릭터를 선보이니 게스트로 초대되어 그 중간에 선 존박이 두드러지게 보인다. 별로 중요하지도 않을 것 같은 일에 너무 열심히 하는 모습이 드러나면서 존박은 어딘지 김종민을 닮은 듯한 이미지로 캐릭터화되었다. 그러고 보면 <12>이든 <무한도전>이든 항상 그들은 바보 캐릭터가 가진 낮은 위치를 지향하고 있었다. 그것이 자신들이 시청자들에게 웃음을 주는 본분이라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뇌섹남(뇌가 섹시한 남자), 뇌섹녀가 새로운 신조어로 올라왔고, 이를 표방한 예능 프로그램들도 생겼다. 하지만 이런 뇌섹남, 뇌섹녀보다 바보 캐릭터에 대한 갈증이 훨씬 깊었던 모양이다. <무한도전>이 바보 어벤져스를 꾸리고 <12>이 늘 그렇듯 바보 같은 복불복 게임에 집착하는 건 그래서가 아닐까.

 

<무한도전>의 이른바 바보 어벤져스가 찾아간 숙소에는 이런 문구가 적혀 있었다. ‘바보 같은 세상에 바보가 아닌 것이 바보다.’ 아마도 바보에 대한 희구는 어쩌면 바보 같은 세상에 의해 비롯되는 일일 게다. 저마다 똑똑하다고는 하지만 어째서 세상은 이토록 살기가 힘들어지는 걸까. 똑똑함을 주장하지만 그래서 헛똑똑이인 세상. 우리가 바보들에게서 심지어 삶의 위로를 받는 이유다



썸 타는 예능, 썸보다 가족

 

드디어 채연과 윤소이가 22 미팅을 나선다고 하지만 SBS <썸남썸녀>에서 기대되는 건 다른 곳에 있다. 그것은 오히려 채연과 윤소이, 채정안이 함께 지내며 공통의 관심사를 통해 서로를 알아가는 자매 같은 관계가 어떻게 발전해갈 것인가다. 이것은 남자들보다 여자들과 더 잘 어울릴 것 같은 김지훈이 김정난과 선우선 같은 누나들과 오늘은 어떤 이야기를 주고받을까가 그들이 앞으로 어떤 연애를 할 것인가 보다 더 관심이 가는 것과 마찬가지다.

 

'썸남썸녀(사진출처:SBS)'

새롭게 참여한 강균성이 동거에 대한 자신만의 연애학 개론을 설파할 때 은근히 설득되는 서인영과 이수경, 심형탁의 반응을 보는 재미 또한 쏠쏠하다. 이미지와는 달리 털털하기 그지 없는 이수경의 반전매력과, 도라에몽 캐릭터 팬티가 말해주는 것처럼 엉뚱한 행동으로 웃음을 유발하는 심형탁이 강균성과 어떤 형제 같은 관계를 보여줄 것인지도 흥미진진하다.

 

이렇게 보면 <썸남썸녀><룸메이트>를 닮았다. 하지만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룸메이트>의 출연자들은 왜 거기 함께 모여 있는지 그 목적성이 불분명했다. 따라서 그들이 하는 행동 하나하나는 그저 보여지기 위한 것 그 이상을 담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썸남썸녀>는 다르다. 그들은 모두 공통의 목적을 갖고 있다. 누군가를 만나 실종됐던 연애세포를 다시 깨우겠다는 것. 홀로 된 그들이 겪는 갖가지 상황들에 대한 공감대는 바로 이 각각의 인물들이 가진 절실함과 진정성에서 나온다. 하지만 이런 공감대는 막연한 만남이 가로막을 수 있는 그들 간의 관계의 썸을 열어주는 열쇠가 된다.

 

이것은 최근 들어 남녀가 서로 만나 이른바 썸을 타는이야기를 다루는 예능 프로그램들이 갖고 있는 특징 중 하나다. 예를 들어 SBS <불타는 청춘> 같은 프로그램은 50대를 넘긴 남녀들이 함께 모여 나이 들어도 여전한 청춘의 감정을 보여주지만, 그 안에 깔린 건 남녀 간의 썸이라기보다는 좀 더 가족적인 분위기다. 같이 나이 들어간다는 것을 공유한 그들은 그 점 하나로도 서로를 가족처럼 받아들인다. <불타는 청춘><썸남썸녀>의 미래처럼 보이는 건 그래서다. 그들은 굳이 결혼이나 연애에 그다지 집착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대신 같은 연령대와 처지가 갖기 마련인 공감대를 함께 하며 서로의 외로움을 달래주는 모습을 보여준다.

 

확실히 우리의 결혼관은 과거와는 달라졌다. 30대 중반을 훌쩍 넘겨 미혼으로 살아가는 삶이 이제는 그다지 특이한 일처럼 보이지 않게 되었다. 일을 하는 것이 결혼보다 우선시되고, 결혼은 반드시 해야 할 인륜지대사가 아니라 하나의 선택이라는 생각이 조금씩 사회에 젖어 들어가고 있다. 하지만 생각의 변화가 실제 삶을 적응시키는 건 아니다. 그러니 이 과도기적 상황 속에서 여전히 외로움을 느끼는 이들은 이 외로움을 털어낼 대안적인 방법들을 모색 중인 것이다.

 

그것은 배우자나 연인이 아니라도 그런 문제에서 나오는 저마다의 심경을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가 될 수도 있고, 아니면 아예 결혼 같은 건 이미 초월한 상태로 그저 즐거운 한 때를 보낼 수 있는 같은 세대일 수도 있다. <썸남썸녀><불타는 청춘>은 바로 이 변화해가는 삶과 관계의 양태를 들여다볼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그래서 <썸남썸녀> 같은 프로그램을 보면 남녀 간의 썸 보다는 가족이 될까 말까하는 그 관계의 썸을 먼저 발견하게 된다. 그들은 모두 저마다 쿨한 얼굴로 잘 살아가고 있었지만 사실은 외로웠던 것이다. 그 외로움을 공유한다는 일은 얼마나 우리를 푸근하게 만드는 일인가. 이미 해체되어가는 전통적인 가족 구조 속에서 이들 대안적인 관계는 다가올 미래의 또 다른 가족이 아닐까.

 

<내 딸 서영이>, 새 인물들 많아진 이유

 

<내 딸 서영이>는 연장 없이 50부작으로 끝낸다고 한다. 이제 41부를 끝냈으니 거의 마지막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막판에 <내 딸 서영이>는 새 인물들이 유독 눈에 띈다. 이제 이혼까지 하고 새롭게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한 서영이(이보영) 앞에 갑자기 나타난 학창시절 그녀를 쫓아다니던 성태(조동혁)가 그렇고, 믿었던 남편에게 뒤통수를 제대로 맞고 재차 며느리마저 거짓말로 결혼한 것을 알고는 충격에 빠졌던 차지선(김혜옥) 앞에 갑자기 나타난 배영탁(전노민)이라는 미스테리한 인물이 그렇다. 이제 곧 몇 회면 종영할 지점에서 왜 이들은 갑자기 투입되었을까.

 

'내 딸 서영이'(사진출처:KBS)

성태의 출연은 당연하게도 서영이를 잊지 못하는 우재(이상윤)와의 삼각관계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첫 등장에서부터 성태의 첫사랑이 서영이었다는 것을 공공연히 드러냈다는 건 이유가 있는 셈이니까. 여기에 대해서 많은 이들은 이제 우재와 이혼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부터 다른 남자를 만나느냐며 우려를 표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삼각관계는 서영이와 우재와의 관계를 다시 돌아보는 계기를 마련해주기 위한 것이지 그들 사이를 확고하게 깨기 위한 것은 아닐 것으로 예상된다.

 

결국 홀로 선 서영이는 바로 그 새로운 출발선에서부터 다시 시작하고 싶을 것이다. 애초에 서영이와 우재의 비극은 그 첫 출발선이 엇나가면서 생겨난 것이니 말이다. 우재와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도 바로 이렇게 다시 첫 출발선에 서는 것이다. 다시는 누군가와 엮이고 싶지 않은 서영이를 다시 연애감정으로 되돌릴 수 있는 방법으로 성태 같은 인물은 그래서 필요할 수 있다. 이는 또한 이혼해서 남남이 된 우재를 다시 서영이 앞에 세워놓을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차지선 앞에 나타난 배영탁이라는 인물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어찌 보면 마치 의도적으로 접근한 사기꾼 같기도 하고, 어찌 보면 진짜 로맨틱한 남자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그가 누구든 누군가의 남편 혹은 엄마로만 살아왔던 차지선을 자기 이름으로 설레게 만들어줄 인물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서영이나 차지선이나 모두 이 드라마에서 지금 하려는 것은 관계에 매몰되었던 자신의 삶을 홀로서기를 통해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리고 다시 시작해보려는 것이다. 바로 이 과정을 극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건 새로운 인물들과의 관계인 셈이다.

 

좀 더 폭넓게 보면 <내 딸 서영이>에서 관계에 실패한 이들은 새로운 관계를 통해 그 고통을 넘어서는 모습을 보였다는 걸 알 수 있다. 서영이의 아버지 이삼재(천호진)는 목공가구점 사장인 방심덕(이일화)과의 관계를 통해 과거를 넘어서 현재의 삶을 살아내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고, 서영이 때문에 강미경(박정아)과 헤어지고 대신 최호정(최윤영)과 결혼한 이상우(박해진)는 그 최호정이라는 속 깊고 착한 아내 덕분에 새 삶을 살아갈 수 있었다. 또 그렇게 이상우와 헤어진 강미경 역시 그 앞에 최경호(심형탁)라는 인물과 관계가 만들어지고 있다.

 

즉 엇나간 운명으로 혹은 한 때의 실수나 잘못으로 틀어진 관계가 삶을 불행의 나락으로 떨어뜨린다고 해도 결국 새로운 삶은 다시 시작된다는 것. 그리고 그 새 삶에는 새로운 관계와 인물이 요구된다는 것은 <내 딸 서영이>를 통해 보여주고 있는 작가의 세계관이다. 물론 서영이와 우재는 다시 재결합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홀로 서기를 통해 자신을 먼저 사랑하게 된 이가 진정으로 타인을 사랑할 수 있다는 점에서, 서영이가 앞으로 만들어갈 새로운 관계는 과거와는 확연히 달라질 것이다. 그것은 이 드라마에 등장하는 다른 인물들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다.

 

<내 딸 서영이>의 막바지에 이르러 새로운 인물들이 투입되고 그들과 새로운 관계들이 만들어지는 것은 그래서 어쩌면 이 비극적인 인물들이 갈등을 이겨내고 새로운 행복을 찾아가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다. 물론 많은 시청자들은 서영이와 우재가, 또 서영이와 아버지가 다시 서로를 이해하고 사랑하기를 바랄 것이다. 하지만 한 번 심하게 엇나간 관계를 다시 회복하는 데는 그만한 과정들이 필요하기 마련이다. 지금 <내 딸 서영이>는 그 과정을 거치고 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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