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골 때리는 그녀들’, 여성 스포츠예능의 색다른 진화

 

최근 들어 <골 때리는 그녀들>이 화제다. 연예인들이 팀을 꾸려 여자 축구에 도전한다는 소재 자체도 흥미롭지만, 특히 이 프로그램이 화제가 된 건 여기 출연하는 이들이 보이는 진심 때문이다. 무엇이 이들을 이토록 축구에 빠져들게 만들었을까. 

골 때리는 그녀들

<골 때리는 그녀들>, 파일럿의 문제들을 단박에 날린 건

지난 설 연휴에 파일럿 프로그램으로 등장했던 SBS <골 때리는 그녀들>은 최고 시청률 10.2%(닐슨 코리아)를 기록할 정도로 독보적인 성공을 그려낸 바 있다. 하지만 이런 성공이 정규행을 일찌감치 예고한 건 아니었다. 몇 가지 심각한 논란의 요소들이 등장했고, 무엇보다 10%가 넘는 시청률에는 명절이라는 특수한 시점과 부담 없이 볼 수 있는 스포츠예능이라는 소재가 맞아 떨어진 면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지난 6월 정규로 돌아온 <골 때리는 그녀들>은 평균 6%대로 낮지 않지만 그렇다고 대단히 높지도 않은 시청률을 유지하고 있는 중이다. 중요한 건 시청률보다는 논란의 요소들을 어떻게 지워내고 시청자들의 마음을 잡아끌 것인가 하는 점이었다. 

 

논란의 요소는 엉뚱하게도 ‘여성 예능’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시작했지만, 오히려 여성출연자들을 소외시키는 프로그램의 감수성 부족한 상황들에서 비롯됐다. 축구에 도전하는 출연자들은 그 누구보다 열심히 뛰는데, 이들을 중계하는 이들의 말들에는 ‘성차별적’ 요소들이 담겨 있었다. 칭찬처럼 한 것이지만 “남자축구 못지않다” 같은 부적절한 멘트들이 해설에 들어갔고, 무엇보다 전직 국가대표나 국가대표 가족으로 구성된 ‘국대패밀리팀’은 ○○○의 며느리, ○○○의 아내로 소개됐다. 심지어 운동복에도 그런 식의 표기가 들어가면서 출연자 자신으로 오롯이 소개하지 않은 방송에 대한 질타가 이어졌다. 전반적인 예능 프로그램의 여성 출연자 성비가 현저히 낮기 때문에, 여성 연예인들이 팀을 꾸려 벌이는 여자축구는 그 자체로 가치 있는 도전으로 여겨졌지만 정작 ‘질적인’ 면모를 보이지 못하면서 생긴 한계였다. 

 

하지만 이러한 파일럿의 문제를 단박에 날린 건 다름 아닌 출연자들이었다. 파일럿에서 그저 새로운 체험 정도로 참여했던 출연자들은 당시 경기를 하면서 점차 축구 자체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날아오는 공을 피하지 않고 온몸으로 받아내고, 여러 명이 팀을 이뤄 패스를 주고받으며 결국 골을 이뤄내는 그 과정은 이들의 심장을 뜨겁게 만들었다. 파일럿에서 발톱이 빠진 한혜진은 곧바로 “저희 정규 언제 할 건데요?”라고 물을 정도로 열정을 보였고, 정규방송이 정해지자 파일럿에서 1승도 못하고 전패를 기록했던 모델팀 FC구척장신은 절치부심해 누가 시키지도 않은 훈련에 매진했다. 파일럿에서 승승장구하며 절대강자로 떠올랐던 FC불나방(<불타는 청춘> 멤버들로 구성)에 결승에서 일방적으로 진 FC개벤져스는 복수전을 꿈꾸며 열정을 불태웠다. 이런 열정들이 모여 진심을 만들었다. 정규 프로그램으로 돌아온 <골 때리는 그녀들>은 그래서 예능이라기보다는 이들의 진심이 담긴 축구 한 판의 묘미를 제대로 담아내며 시청자들의 마음을 잡아끌었다. 

 

이게 뭐라고... 목숨 걸고 뛰는 출연자들

얼굴에 웃음기 하나 없이 “집중!”을 서로 외치고, 날아오는 축구공을 머리로 받고, 가슴으로 트래핑하며 패스하고 슈팅을 날리는 그 모습들은 진지하기 이를 데 없었다. FC개벤져스, FC불나방, FC국대패밀리, FC월드클라쓰, FC구척장신, FC액셔니스타의 감독을 각각 맡은 황선홍, 이천수, 김병지, 최진철, 최용수, 이영표 역시 자세가 달라졌다. 처음에는 예능을 한다 생각했지만, 차츰 감독들 간에도 승부욕이 피어올랐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팀원들이 너무나 승리를 갈망하는 모습이 절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패배한 후 그 아쉬움에 쏟아내는 팀원들의 눈물은 감독들의 각오로 이어졌고 그래서 더 열정적으로 축구를 가르쳐주면서 진짜 팀으로서의 끈끈함과 공동의 목표 같은 게 세워졌다. 

 

물론 축구 자체가 낯설었던 이들이 이런 단기간의 훈련으로 엄청난 기량을 보인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하지만 기량과 상관없이 보이는 이들의 승부욕과 골이 들어갔을 때의 환희와 골을 먹었을 때의 아쉬움은 시청자들을 매료시켰다. 게다가 절대강자인 FC불나방과 이 팀을 이끄는 ‘절대자’ 박선영의 존재는, 다른 팀들과의 팽팽한 대결구도를 만들면서 경기를 더욱 쫀쫀하게 해줬다. 또한 파일럿 당시 한 번도 이기지 못한 FC구척장신의 절치부심 1승을 향한 혼신의 경기나, FC개벤져스의 FC불나방에 대한 리벤지 매치 역시 특별한 관전 포인트를 만들어줬다. 매 회 경기 중심으로 대부분의 방송분량이 채워줬지만, 그것만으로도 몰입감이 생긴 이유였다. 

 

스포츠 예능의 각본 없는 드라마는 어떻게 가능한가

사실 스포츠 예능이 성공하기 어려운 이유 중 가장 큰 건 스포츠 자체가 더 재미있기 때문이었다. 흔히들 ‘각본 없는 드라마’라 부르는 스포츠는 그 경기가 실시간으로 벌어지고 그 결말을 알 수 없는데다, 엎치락뒤치락하는 변수들이 계속 생겨난다는 점에서 강력한 몰입감을 만들어낸다. 그러니 제 아무리 스포츠를 예능으로 가져와 재밌게 구성하려 해도 그 ‘각본 없는 드라마’의 극성을 이겨내긴 어려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최근 들어 스포츠 예능들은 확실히 달라졌다. 먼저 예능보다는 스포츠에 더 방점을 찍기 시작했다. KBS <씨름의 희열>은 물론 씨름 경기에 오디션 프로그램의 형식을 차용했지만, 그 목적은 예능적 재미가 아니라 씨름의 묘미를 좀 더 깊이 담아내기 위함이었다. 선수들의 장기를 먼저 알고 경기를 보고, 거기 들어간 기술을 여러 차례 슬로우모션으로 보여주며 설명을 더해주자 씨름은 프로그램 제목처럼 시청자들에게 희열을 주는 스포츠로 다가왔다. JTBC <뭉쳐야 찬다>는 처음에는 전직 스포츠 레전드들이 모여 하는 조기축구라는 예능적 설정으로 시작했지만, 뒤로 갈수록 경기 하나를 통째로 중계해 보여주는 스포츠 자체를 보여줬다. <골 때리는 그녀들>도 마찬가지다. 파일럿에서는 여자축구에 도전하는 출연자들의 예능적인 상황들을 보여줬지만 정규방송에서는 오롯이 축구 자체의 묘미와 여기에 진심인 출연자들에만 집중했다. 이러니 스포츠의 ‘각본 없는 드라마’는 예능이어서 가능한 다양한 편집들을 통해 훨씬 강화된 힘을 발휘하게 됐다. 전후반 각각 10분씩 뛰는 경기지만 <골 때리는 그녀들>의 축구가 박진감 있게 느껴지는 건 이런 예능적인 편집들을 통해 가능해졌다. 

 

<골 때리는 그녀들>은 축구를 잘 몰라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이 됐고, 그걸 보다보면 축구의 진짜 묘미를 알아가는 프로그램으로도 자리했다. 혼신을 불사른 경기에서 지고는 쓰러져 눈물 흘리는 선수들을 찾아와 감독이 “이게 바로 축구야”라고 말하는 대목은 그래서 시청자들을 공감하게 만든다. 심지어 경기 룰조차 잘 몰라도 지는 건 싫고 이기고픈 욕망이 큰 선수들이 그 경험들을 통해 조금씩 성장해가는 과정은 우리가 스포츠 중계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스포츠의 진짜 맛이 아니던가. 

 

물론 여전히 부지불식간에 습관적으로 나오는 성차별적 멘트들이 눈에 거슬리는 면이 있지만, 이것 역시 이런 경험을 하지 못했던 이들에게서 의도치 않게 생기는 실수들일 게다. 그런 실수들을 조금씩 바꿔나가면서 여성과 스포츠를 다루는 예능 프로그램들의 성장 또한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 여자 축구라는 스포츠 자체에 진심인 이 프로그램의 출연자들이 만들어낸 변화의 파괴력은 그래서 결코 작다 말할 수 없다. (글:매일신문, 사진:SBS)

씨름, 트로트 그리고 뮤지컬까지... 오디션 2.0의 시대

 

오디션 시대는 지나갔다? 지난해 오디션 조작 사건이 터지면서 오디션 프로그램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생겼던 게 사실이다. 또 오디션 프로그램이 갖는 경쟁적 틀은 더 이상 시청자들이 원하지 않는다는 인식의 변화도 생겨났다. 그래서 오디션 형식은 이제 끝났을까.

 

그것이 섣부른 속단이었다는 걸 증명하듯 오디션 형식을 가져온 프로그램들이 그 건재함을 드러내고 있다. KBS <씨름의 희열>과 TV조선 <미스터트롯>은 단적인 사례다. 하지만 오디션 형식을 가져왔다고 해도 이들 프로그램들이 과거의 오디션과 같다고 보기는 어렵다. 거기에는 이 프로그램들만의 독특한 진화가 엿보이기 때문이다.

 

<씨름의 희열>은 씨름이라는 민속 스포츠를 소재로 예능 프로그램에 담으면서 그 형식으로 오디션 프로그램을 차용하는 신선한 시도를 실험했다. 선수들을 캐릭터화하고 그 특장점을 오디션에서 자주 봐왔던 짤막한 영상으로 스토리텔링화한 후, 씨름판의 대결로 이어 붙였다. 그러자 우리가 명절 때 주로 봐왔던 씨름 중계방송과는 사뭇 다른 그림이 나오기 시작했다.

 

마치 무대 밑에서 노래하는 가수의 스토리를 들려준 후 그걸 기반으로 부르는 노래를 감상할 때의 느낌이 다르듯, 씨름 선수들도 그 스토리가 더해지면서 경기가 훨씬 재미있어졌다. 여기에 마치 심사를 하듯 코멘트를 달아주는 중계와 해설이 더해지고 여러 대의 카메라로 정교하게 찍혀진 경기 영상들이 슬로우 모션으로 경기를 정밀중계하면서 씨름은 훨씬 박진감 넘치는 스포츠로 변모했다.

 

오디션 형식을 차용하면서 씨름선수들이 아이돌처럼 스타화하는 팬덤 현상도 가속화되었다. 말미에 치러진 관객들이 직관하는 경기는 그래서 아이돌에 열광하는 팬들의 풍경을 재연시켰다. 관객이 사라졌던 씨름이란 종목이 오디션이라는 형식을 차용하면서 얻은 큰 성과다. 비록 코로나19로 인해 쓸쓸한 무관중 결승전을 벌여야 했지만 이 성과는 향후 여타의 비인기 종목으로 치부되던 스포츠를 소재로 하는 다양한 예능 프로그램으로 시도될 수도 있다는 여지를 남겼다. 같은 스포츠라도 보는 관점을 달리해줌으로써 달라질 수 있다는 걸 오디션 형식을 차용한 <씨름의 희열>이 보여줬기 때문이다.

 

TV조선 <미스터트롯>은 종편 역사상 최고의 시청률인 30%대를 넘겨버렸다. <미스터트롯>이 몰려든 참가자들을 추리고 추려 101명을 세웠다는 건 꽤 의미심장하다. 그건 마치 Mnet <프로듀스101>의 트로트 버전을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디션 조작논란으로 추락한 <프로듀스> 시리즈와 달리 <미스터트롯>은 고공행진을 거듭하며 모든 세대가 찾아보는 오디션 프로그램으로 성장했다.

 

이렇게 될 수 있었던 건 무엇보다 트로트라는 장르가 그간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던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따라서 <미스트롯>으로 그 성공기를 들여다본 많은 실력 있는 지망생들이 몰려들었고 타 장르에서도 지원이 잇따랐다. 이렇게 되자 프로그램은 자연스럽게 오디션이면서도 경쟁을 그리 강조할 필요가 없어졌다. 실력자들이 만들어내는 다양한 무대를 선보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차고 넘쳤기 때문이다.

 

트로트 같은 지금껏 주목받지 못했던 장르를 오디션 형식으로 담았을 때 그만한 시너지가 생긴다는 건 이미 JTBC가 <팬텀싱어>나 <슈퍼밴드>를 통해 입증해보인 바 있다. 뮤지컬, 성악이나 밴드 뮤지션들이 주목받게 되는 자리인 만큼 오디션 형식은 그들이 설 수 있는 무대를 제공한다는 의미만으로도 환영받고 응원 받았다. 이런 경향은 최근 tvN <더블캐스팅>이 뮤지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역할을 하지만 ‘병풍’으로 불리곤 하던 앙상블을 하는 뮤지컬가수들의 오디션으로 이어지고 있다. 즉 음악 오디션 프로그램의 경우, 아이돌이나 K팝 가수를 뽑는 것 이외에 그간 소외됐던 분야를 가져온다면 여전히 환영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결론적으로 이야기하면 오디션 시대는 끝나지 않았다. 이전까지 경쟁을 중심으로 합격이냐 불합격이냐를 드라마틱한 스토리텔링으로 세우던 트렌드가 오디션 1.0 시대의 풍경이었다면, 지금은 경쟁보다는 상생을 목적으로 형식적으로 오디션을 차용하는 오디션 2.0 시대가 열렸다고 볼 수 있다. 향후 어떤 장르와 소재가 이 형식을 타고 등장할지 주목해볼 일이다.(사진:KBS)

‘씨름의 희열’ 초대 태극장사 임태혁, 하지만 모두가 승자다

 

KBS <씨름의 희열>이 임태혁이 초대 태극장사의 주인공이 되면서 마무리됐다. 지금껏 씨름의 부흥이라는 기치에 맞게 차곡차곡 매 회 그 매력을 쌓아왔던 <씨름의 희열>. 하지만 결승전 무대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많이 남을 수밖에 없게 됐다. 코로나19의 여파로 매회 수천 명이 몰렸던 결승전은 무관중 경기를 치르게 됐기 때문이다.

 

물론 경기만 두고 봤을 때 결승전은 역시 결승다운 명경기들이 펼쳐졌다. 만만찮은 경기로 계체량까지 재며 김태하 선수를 이기고 4강전에 오른 김기수, 막강한 헤라클레스 파워로 손희찬을 이기고 4강에 오른 윤필재, 사실상 결승전 같았던 이승호와 맞붙어 저력을 보여준 임태혁, 그리고 역시 젊은 패기로 맞선 노범수를 이기고 4강에 오른 최정만. 한 경기 한 경기가 손에 땀을 쥐고 봐야 하는 긴박감이 묻어났다.

 

이전 경기들에서는 의외의 패배를 보여주기도 했지만 역시 임태혁은 확실히 다른 클래스를 보여줬다. 그는 막강한 우승 후보로 지목되었던 이승호, 최정만을 연달아 꺾고 씨름의 세대교체를 외치며 기세가 오른 김기수까지 모래판에 눕혀 최종 우승을 차지했다. 임태혁은 우승 소감으로 “멸망전이라고 해서 대진표 안 좋다고 했는데 그 어려운 걸 또 해냈다”며 “씨름 많이 사랑해달라”는 당부도 빼놓지 않았다.

 

임태혁 선수가 초대 태극장사에 올랐지만 사실상 <씨름의 희열>에 출연했던 모든 선수들이 승자나 다름없었다. 선수들보다 관객이 없는 씨름경기장에서 외롭게 경기를 치렀던 선수들이 아니었던가. 아쉽게도 코로나19로 결승전이 무관중 경기로 현장에서는 다소 쓸쓸하게 마무리되긴 했지만 관중이 모인 가운데 직관 경기로 펼쳐졌던 8강전은 이들 선수들에게는 잊지 못할 기억으로 남게 됐다.

 

동작 하나와 얼굴 표정 하나까지 관객들을 환호하게 만들었던 경기들은 그 자체만으로도 씨름선수들에게는 자신들의 존재를 증명시키는 무대일 수밖에 없었다. 가족들과 팬들의 함성을 들으며 경기를 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은 승패를 떠나 이들이 계속 모래판에 설 수 있게 하는 힘이 되지 않았을까.

 

만일 코로나19가 아니었다면 결승전은 지금까지의 그 어떤 씨름경기보다 뜨거웠을 거라는 건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간 <씨름의 희열>에 쏟아졌던 관심들이 그 예측의 증거들이다. “씨름이 이렇게 재밌었어?”하고 말하는 반응들이 나오게 됐던 건 예능 프로그램의 접근방식을 썼다고는 하지만 오디션 형식을 차용해 선수들을 캐릭터화하고 그 주기술들을 소개하면서 시청자들에게 훨씬 더 가까이 씨름에 다가가게 해줬기 때문이었다.

 

<씨름의 희열>이 거둔 성취는 향후 스포츠를 소재로 하는 예능 프로그램들이 어떤 지향점을 가져야 하는가를 보여준 것이기도 했다. 다소 대중들의 눈에서 벗어나 소외되고 있는 종목이라도 어떻게 접근해 어떤 방식으로 보여주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스포츠의 맛을 되살릴 수 있다는 것. <씨름의 희열>은 그걸 보여준 것만으로도 큰 성공을 거뒀다 평가될 수 있다. 무관중으로 진행된 최종회는 자체 최고 시청률을 경신하며 유종의 미를 거뒀다. <씨름의 희열> 마지막회 시청률은 4.2%(이하 닐슨코리아 기준)로 첫 회 시청률 2.0%와 비교하면 무려 두 배 이상 폭등했다. 무엇보다 시청자들을 팬으로 만들어버린 선수들 모두가 승자일 수 있는 경기를 보여준 프로그램의 가치는 코로나19의 여파에도 지워질 수 없을 것이다.(사진:KBS)

예능화 된 스포츠에서 리얼 스포츠 예능으로

 

새로 시작한 SBS 예능 <진짜 농구, 핸섬타이거즈(이하 핸섬타이거즈)>에서 처음으로 체육관에 모인 출연자들은 관중석을 가득 메운 관객들의 환호성에 놀란다. 감독으로 자리한 서장훈은 곧바로 유니폼을 나눠주며 옷부터 갈아입으라 한다. 그리고 서장훈의 모교였던 중등농구 최강자 휘문중학교 선수들과의 한 판 대결이 벌어진다.

 

보통 스포츠예능들은 본 게임으로 가기 전 몸 풀기에 가까운 인물 소개가 이어지곤 했다. 그 인물 소개에는 당연히 예능적인 포인트들이 들어가고 인물 한 사람 한 사람의 캐릭터가 부여되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핸섬타이거즈>는 이런 부분들을 재빠르게 편집을 통해 보여준 후 거두절미하고 경기부터 시작한다.

 

한 번도 맞춰본 적이 없는 핸섬타이거즈 선수단. 그러니 초반부터 휘문중학교 선수들에게 밀리는 기색이 역력하다. 던지기만 하면 들어가는 3점 슛에 난감해하는 핸섬타이거즈 선수들. 하지만 금세 경기에 몰입하면서 이들의 근성이 발휘된다. 체력과 근력이 좋은 줄리엔 강을 센터로 세워 몸싸움을 하며 던지는 공들이 들어가며 가능성을 보인다.

 

여기에 모델 문수인이 투입되면서 분위기는 반전된다. 이미 농구 실력으로 정평이 나있던 문수인은 골밑을 공수로 장악해내며 골을 넣기 시작한다. 이상윤은 전체 게임의 흐름을 파악하고 전략을 짜내고, 김승현과 줄리엔 강은 골밑에서 맹활약한다. 키가 작은 쇼리는 빠르고 재치 있는 패스로 기회를 만들어내고, 차은우는 골은 번번이 아깝게 빗나갔지만 굉장한 승부욕과 순발력으로 팀에 기여한다. 여기에 강경준, 이태선, 유선호까지 골고루 활약하며 의외로 핸섬타이거즈는 선전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흥미로운 건 서장훈의 감독으로서의 면모 또한 확실히 빛났다는 점이다. 서장훈은 정확히 선수교체를 통해 팀에 분위기를 반전시켰고, 빠른 패스를 주문하거나 후반에 이르러 좀 더 빨리 상대 진영으로 뛰어 들어가라 주문하는 것으로 실제 득점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물론 점수에서는 졌지만 괜찮은 가능성을 보여준 경기였다. 다짜고짜 경기부터 시작한 첫 방송은 그래서 예능 프로그램이라기보다는 진짜 농구 경기 한 편을 본 것 같은 리얼함을 안겨줬다. 어째서 <핸섬타이거즈> 앞에 ‘진짜 농구’라는 수식어가 붙었는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최근 들어 스포츠 예능프로그램이 많아지고 있다. 그런데 이 스포츠 예능들은 과거의 그것들과는 사뭇 다른 양상을 보여준다. 예를 들어 KBS <천하무적 야구단>이나 <우리동네 예체능> 같은 스포츠예능은 상당부분 예능적인 요소에 신경을 썼다. 하지만 <핸섬타이거즈>를 보면 그런 것보다 스포츠 자체의 묘미에 더 집중하는 모습이다. 농구가 갖고 있는 골과 패스로 이어지는 팀플레이 그리고 작전과 정신력 같은 스포츠 자체의 요소들이 주 관전포인트로 제시되고 있는 것.

 

최근 씨름의 새로운 붐을 만들어내고 있는 KBS <씨름의 희열>도 그런 관점에서 보면 비슷한 양상을 띠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씨름의 희열>은 심지어 그간 스포츠중계로 보던 씨름에서는 자세히 들여다볼 수 없어 느끼지 못했던 재미요소들을 오히려 더 부각시킴으로써 시청자들을 즐겁게 하고 있다. 선수들의 특장점을 충분히 캐릭터화해 보여주고 그 기술들을 슬로우모션으로 자세히 설명해줌으로써 경기장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실감나는 씨름의 세계를 들여다보게 해준 것.

 

초반에는 몸 풀기에 가까운 선수들의 라이벌전이 이어졌지만 이제 본격적으로 탈락자가 생기는 대결로 들어오면서 이변이 속출하고 있다. 작은 체구의 태백급 선수인 윤필재가 금강급 최강자인 임태혁을 무너뜨리고, 최약체로 여겨졌던 박정우 선수가 철저한 준비로 황재원과 허선행을 꺾는 이변은 역시 예측할 수 없는 씨름 승부의 세계로 시청자들을 빨아들였다.

 

물론 <씨름의 희열>은 상당한 예능적 요소들을 가미하고 있지만 그래도 주 관전 포인트로서 경기 자체가 주는 ‘희열’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 점에서 <핸섬타이거즈>와 <씨름의 희열> 같은 스포츠 예능은 비슷한 방향성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웃음을 만들어내려는 예능적 포인트가 아니라, 경기장이나 중계에서 제대로 포착해내지 못한 스포츠의 다양한 매력들을 전하기 위한 예능적 접근을 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한때 스포츠 예능이 잘 안됐던 건 스포츠 자체가 더 재밌기 때문이었다. 흔히들 스포츠를 ‘각본 없는 드라마’라고 부르지 않던가. 그러니 스포츠를 보는 편이 스포츠 예능을 보는 것보다 훨씬 나은 지점이 있었다. 하지만 최근의 스포츠 예능은 스포츠 자체에 더 집중함으로써 ‘각본 없는 드라마’를 더욱 드라마틱하게 만들어내고 있다. 늘 비슷한 형식으로 보여줬던 스포츠중계가 이제는 스포츠 예능의 방식을 차용하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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