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팔>, 평범해서 더 예쁜 안재홍-이민지 커플

 

tvN <응답하라1988>에는 못생김을 연기하는 이민지가 있다. 그녀는 덕선(혜리)의 절친으로 장만옥으로 불리는 미옥 역할을 연기하고 있다. 이민지가 못생김을 연기한다면 그녀의 남자친구 정봉 역할의 안재홍은 어눌함을 연기하고 있다. 어딘지 바보스러운 그는 그래서 웃음을 주지만 동시에 짠한 느낌을 선사하는 인물이다.

 


'응답하라1988(사진출처:tvN)'

미옥과 정봉이 만나서 사랑하게 되는 그 과정은 너무나 옛날식의 느낌을 준다. 비오는 날 갑자기 우산 속으로 뛰어 들어온 정봉이 그 만남을 운명이라고 미옥에게 말하는 장면은 과거 구닥다리 멜로의 한 장면처럼 그려진다. 물론 그건 <늑대의 유혹>을 패러디한 장면이지만 운명적인 만남이라는 그 설정은 지금의 청춘들에게는 어딘지 예스러운 느낌을 주는 것.

 

두 사람이 편지를 주고받으며 마음을 키워가는 장면도 그렇다. 지금처럼 스마트폰으로 얼굴까지 봐가며 화상통화를 할 수 있는 시대에 편지를 주고받는 이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당대만 해도 전화기 앞에서 전화를 기다리는 건 다반사였다. 그런데 정봉과 미옥은 전화보다도 편지를 택한다. 미옥의 편지를 기다리며 우편함 앞을 서성이는 정봉의 모습은 그래서 더 절절한 느낌을 준다.

 

데이트를 하기로 한 날 층이 엇갈려 서로 다른 층에서 기다리는 장면도 지금의 커플들에게는 이해가 되지 않을 장면이다. 커피 한 잔이 다 식어갈 동안 하염없이 기다리는 그 마음은 휴대전화가 일상화되지 않던 시절을 겪은 이들에게는 아련한 추억의 하나로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 결국 기다리다 지쳐 돌아온 미옥에게 아직도 그 카페에서 정봉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다는 소식을 전하는 혜리의 안타까움이나, 그 얘길 듣고 카페로 달려가는 미옥, 그리고 추위에 손이 꽁꽁 얼어도 꽃다발을 꼭 쥔 채 그녀를 꿋꿋이 같은 자리에서 기다리는 정봉. 이런 풍경들은 아날로그 시대의 아련함을 전해준다.

 

꽁꽁 얼어 벌겋게 된 정봉의 손을 잡아주는 미옥과 그 가슴 설렘이 과연 사랑인가를 시험해보고 싶어 그녀에게 입맞춤을 하는 정봉의 모습은 그래서 그 어떤 멋진 커플들보다 더 아름답게 다가온다. 거기에는 어떤 삿된 계산도 의도도 들어가 있지 않은 순수한 사랑 그 자체가 느껴지기 때문이다.

 

<응답하라1988>이 정봉과 미옥 커플을 통해 보여주고 있는 못생김어눌함은 이 드라마가 추구하고 있는 하나의 미학처럼 보인다. 이 드라마에는 물론 잘생긴 택이(박보검) 같은 인물도 있지만 어딘지 평범해보여도 멋지게 느껴지는 정환(류준열)이나 선우(고경표) 같은 인물이 대부분이다. 이건 단지 젊은 역할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라미란과 김성균, 김선영과 최무성 같은 인물들은 지극히 평범해보여서 오히려 더 우리의 마음을 울리는 면면을 가진 인물들이다.

 

이것은 못생김과 어눌함의 미학일 것이다. 세상에서 주목받는 이들은 잘생기고 언변도 좋은 인물들이지만 이 드라마는 그런 특별한 사람들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오히려 지극히 평범하거나 아니면 평범 그 이하의 인물들에 주목하고 있다. 그래서일까. 그들의 평범한 보통의 이야기들은 어딘지 남 얘기라기보다는 우리 이야기처럼 다가오는 면이 있다. 그리고 이 드라마가 이제는 사라져가는 아날로그 정서를 건드리는 것도 상당부분 이 못생김과 어눌함의 미학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무도'는 왜 이틀을 날아가 음식을 배달했을까

 

"어여 먹어 이 미꾸라지 같은 놈아." 할머니 분장을 한 정준하는 가봉에서 대통령 경호원으로 일해 온 박상철씨에게 그렇게 말했다. 한참 나이 많은 박상철씨지만 정준하의 그 말에 웃음이 피어나왔다. 하지만 그 얼굴에는 이미 눈물이 가득했다. 낯선 타향에서 그토록 오랫동안 살아오면서도 결코 보이지 않았을 눈물. 정준하의 '꾸지람(?)'에서 박상철씨는 어린 시절 되비지를 해주시며 그런 말을 건네곤 했던 엄마의 모습을 떠올렸을 것이다.

 

'무한도전(사진출처:MBC)'

<무한도전> '배달의 무도' 편에서 정준하가 40시간이나 비행기를 타고 아프리카 가봉으로 날아가 전한 건 단지 엄마의 음식이 아니었다. 그것은 엄마의 아들을 생각하는 마음이었고, 사랑이었다. 아들 역시 머리가 희끗희끗해져가고 있었지만 정준하가 배달해준 엄마가 정성스레 준비한 만둣국과 되비지는 순식간에 시간을 어린 시절로 되돌려 놓았다. 40시간을 비행기를 타고 가야 되는 이역만리에서 꽤 오랜 세월 떨어져 있었지만 엄마의 음식은 그 거리와 시간을 훌쩍 뛰어넘게 해주는 마법 같았다.

 

"음식 먹을 때 엄마 생각하며 울지 말고 먹어라." 노모가 보낸 영상 편지 속에서 엄마는 이렇게 말했다. 울지 말고 먹으라니. 엄마는 그 순간에도 아들이 울다가 먹지 못할까를 걱정하고 계셨던 것이다. 음식을 만든 자신을 떠올리기 보다는 아들이 한 끼라도 잘 챙겨먹길 바라고 계셨던 것이다.

 

노모가 정준하를 아들처럼 껴안아주었던 그 따뜻한 온기를 이제 정준하가 그 아들을 껴안아주며 전하는 장면은 '배달의 무도'가 전하고 있는 것이 음식이 아닌 마음이라는 걸 분명히 보여주었다. 아들은 정준하가 진짜 엄마라도 되는 양 오래도록 꼭 껴안고 있었다.

 

최근 음식은 방송의 주재료가 되었다. 여기저기 틀기만 하면 나오는 게 쿡방이고 먹방이다. '배달의 무도'는 그러나 그 흔해진 음식의 또 다른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음식이란 본디 그걸 해주는 사람의 마음이 담기기 마련이고, 함께 먹던 사람의 추억과 기억이 스며들기 마련이다. 우리가 흔히 표현하는 '엄마의 손맛'이라는 말은 그 음식의 맛만을 얘기하는 게 아니다. 거기에는 엄마의 자식 생각하는 그 마음이 주는 푸근함과 따뜻함이 깃든 맛일 것이다.

 

<무한도전> 굳이 이틀 가까이나 되는 시간을 들여서 이역만리의 땅으로 날아가 '배달'을 하겠다고 했는지에 대한 의아함은 노모와 정준하 그리고 아들이 이어지는 장면을 통해서 거대한 '공감'으로 변모했다. 실로 편해진 세상이 아닌가. 이제 스마트폰만 켜면 지구 반대편에서도 얼굴을 보며 통화를 할 수 있는 세상이다.

 

그렇게 '글로컬(글로벌+로컬)'한 세상이지만 그래도 마음과 마음을 이어주는 것은 그런 문명의 이기들이 아니라는 것을 <무한도전>은 보여주었다. 엄마의 따뜻한 마음이 담긴 음식 한 끼에는 그래서 이 글로컬한 세상이 결코 쉽게 전하지 못하는 아날로그의 감동이 있었다. 나이가 들어도 이역만리 떨어진 곳에 있어도 늘 아들이 제대로 먹고 다니는지를 걱정하는 노모의 마음과 그 마음을 음식 한 끼를 통해서도 그대로 전해 받고 우는 아들. <무한도전> 정준하가 배달한 건 그저 음식이 아니었다.

 

 

가슴에 쥐나는 드라마, <사랑하는 은동아>

 

무모한 시도처럼 보인다. 이 시대에 순애보를 얘기하는 것은. 그래서 이 드라마의 시청률이 2%를 넘지 못하는 것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마음 한켠에서는 어떤 아쉬움과 씁쓸함이 남겨진다. 이 시대는 이제 이런 사랑에 그다지 관심이 없는 걸까. 그저 즉물적이고 직설적이며 감각적인 사랑의 시대. JTBC <사랑하는 은동아>가 주는 아련함과 그리움은 도무지 공감되기 힘든 걸까.

 


'사랑하는 은동아(사진출처:JTBC)'

제목이 벌써 <사랑하는 은동아>. 세련되지도 않고 어찌 보면 너무 구시대적인 느낌마저 주는 제목. 그래서 선뜻 들여다보지 않았던 시청자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하지만 막상 한 번 보고 빠져들게 되면 이만큼 늪처럼 시청자를 몰입시키는 드라마도 없다. 마치 과거 우리네 가슴을 먹먹하고 훈훈하게 했던 옛 사랑이야기에 대한 기억들이 방울방울 피어나는 것만 같은 느낌. 일드 <러브레터>를 보며 느꼈던 기억 같기도 하고, 윤석호 PD의 계절 드라마가 주던 기억의 숨은그림찾기를 보는 듯한 기억 같기도 한 그런 느낌.

 

이야기는 어찌 보면 단순하다. 어린 시절 우연히 만나게 된 은동이를 한 남자가 잊지 못하고 20여년 넘게 그리워하고 사랑하는 이야기. 몇 차례 만나서 사랑이 깊어갈 즈음, 갑작스런 사고로 기억을 잃어버린 채 살아가는 은동이(김사랑)와 운명처럼 다시 만난 지은호(주진모)가 그 옛 사랑의 기억을 다시 찾아가는 이야기다.

 

이야기의 구조는 단순하지만 그 안에 촘촘히 들어가 있는 장치들은 이 느릿느릿 흘러가는 이야기에 촉촉한 감성의 비를 내려준다. 자서전이라는 장치는 마치 <러브레터>의 연애편지처럼 시청자들의 가슴에 쥐가 나게 만든다. 은동이 자신이 은동인 줄 모른 채 지은호에게 들은 은동이와의 사랑 이야기를 적어나간다는 설정은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한 설렘과 먹먹함을 갖게 한다.

 

그러면서 자신도 모르게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옛 사랑의 기억이 자서전의 글귀들 속에 들어가게 되고 그것이 하나의 단서가 되어 다시 지은호와 은동이를 이어준다는 설정도 그렇다. 그리고 이제 조금씩 상대방의 정체가 누구인지를 알게 되면서도 이미 달라진 상황(은동이는 이미 결혼했고 아이까지 있다)으로 인해 더욱 안타깝게 느껴지는 두 사람의 관계는 시청자들을 몰입시키는 중요한 장치다.

 

<사랑하는 은동아>는 뭐든 즉각적으로 연결하고 이뤄지고 헤어지는 디지털 시대의 사랑과는 정반대의 모습을 보여준다. 가까이 있어도 그 사람이 그리운 그런 사랑. 마음이 있어도 그 마음을 맘대로 표현할 수 없는 사랑. 그래서 가슴 한 켠이 무너지지만 그런 아픔조차 넉넉히 감당해내게 하는 사랑. 어찌 보면 너무 구닥다리처럼 보이지만 그렇게 한 걸음씩 거리가 유지되어 있어 더더욱 마음과 마음이 전해지는 사랑 이야기.

 

시청률은 낮지만 그 낮은 시청률로 모든 걸 평가하기에는 아까운 드라마가 <사랑하는 은동아>. 일단 첫 회를 보게 되면 끝까지 빠져서 볼 수밖에 없는 이 드라마는 그 느릿느릿하지만 가슴을 후벼 파는 진중한 사랑의 이야기로 이 시대에 잊고 있던 진짜 사랑의 기억들을 되살려 놓고 있다. 지은호가 은동이의 이름을 부를 때마다 마치 그녀가 된 듯 가슴에 먹먹함이 느껴졌던 것처럼. 은동이의 잊혀진 기억이 지은호의 순애보로 조금씩 깨어나고 있는 것처럼



아이유의 무엇이 대선배들을 극찬하게 하는가

 

서태지는 정규 9집 앨범 콰이어트 나이트(Quiet Night)’ 발매 기념 기자 간담회에서 아이유 덕분에 잘됐다는 표현을 썼다. 그는 자신을 보컬리스트라기보다는 싱어송라이터면서 프로듀서라 생각한다며 내 노래를 남이 부르면 어떨까를 항상 생각하고 아이유를 떠올렸다고 했다. “10대들에게 영향 미친 건 아이유 덕을 많이 봤다. 아이유를 업고가고 싶다. 나는 아이유 초기 음악을 많이 들었다. ‘’, ‘마시멜로는 댄스가 아니라, 락킹하다고 생각했다. 아이유의 보이스 컬러는 보물이다. 여자싱어에서 기적이다. 나보다 아내가 더 팬이다고 말하기까지 했다.

 

'아이유(사진출처:서태지 컴퍼니)'

아이유는 김창완의 너의 의미를 되살려놓은 장본인이기도 하다. 즉 본래 김창완의 곡인 너의 의미를 아이유가 리메이크해서 불렀는데 거기에 김창완이 자청해 피처링을 한다는 것은 주객이 전도된 상황이다. 그만큼 아이유가 재해석해놓은 너의 의미가 김창완에게도 특별하게 다가왔다는 것이다. 두 사람은 함께 너의 의미를 부르기도 했는데, 한 인터뷰에서 서로에게 어떤 의미냐는 물음에 김창완은 아이유를 나의 청춘이라고, 또 아이유는 김창완을 나의 미래라고 답했다고 했다.

 

이제 가요계는 아이유와 콜라보레이션을 하면 성공한다는 얘기가 심심찮게 흘러나온다. 이미 정규3모던 타임즈에서 최백호, 양희은 등과 작업하면서 수십 년의 세월을 훌쩍 뛰어넘는 신구의 조화가 만들어내는 기묘한 감성의 가능성을 우리는 이미 느낀 바 있다. 그런 점에서 아이유의 목소리는 서태지의 표현대로 보물이다. 통기타 하나 들고 목소리로만 승부해도 충분할 만큼 깊고도 잔잔한 아날로그적 정서가 그녀에게서는 묻어난다. 물론 그녀의 스펙트럼은 그 아날로그에서 디지털까지 훨씬 폭이 넓지만.

 

김창완의 너의 의미를 비롯해, ‘꽃갈피앨범에 수록된 리메이크곡 거의 대부분이 부활된 것은 마치 과거의 시간과 현재의 시간을 공존시키는 그녀의 마법 같은 목소리가 있기 때문이다. 조덕배의 나의 옛날이야기나 김완선의 삐에로는 우릴 보고 웃지또 이문세의 사랑이 지나가면은 그렇게 흘러간 노래에서 소환되어 우리 앞에 다시 그 명곡의 얼굴을 드러냈다.

 

아이유는 초창기 시절부터 지켜주고픈 아저씨 팬들을 양산했던 가수였다. 귀여운 외모와는 달리 단단한 가창력은 아저씨 팬들의 감성을 자극했다. 하지만 그것이 상대적으로 어떤 이미지적인 효과 덕분이었다면 지금은 가수라는 본분으로서 아저씨들의 감성을 파고들고 있다. 그녀를 뮤직비디오나 무대에서 확인하지 않아도, 그 목소리만으로 빠져들게 만들고 있는 것.

 

무엇이 이 어린 소녀에게 이토록 원숙하면서도 단단한 자기만의 세계를 가능하게 만든 걸까. 영락없는 소녀의 톡톡 튀고 밝은 모습 이면에서 느껴지는 나이답지 않은 성숙함은 아마도 그녀가 살아낸 현실의 무게감을 말해주는 것일 게다. 그래서일까. 김창완이 너의 의미의 말미에 도대체 넌 나한테 누구니?”라고 피처링한 것처럼, 그녀의 노래를 들은 이들은 같은 질문을 던지고 싶어진다. 넌 도대체 누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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