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기피대상 1호 성동일, 꼴찌아빠 아니다

 

아이들은 왜 성동일을 기피대상 1호로 꼽았을까. <아빠 어디가>에서 하룻밤 아빠 바꿔 지내기 미션에서 아이들은 저마다 성동일이 일일아빠 되는 것을 꺼려했다. 그간 방송에 나온 것을 통해 보면 이런 결과는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 수 있다. 성동일은 그간 아이들을 골려먹기도 하고 늘 풀어주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 아빠로서의 권위 아래서 아이가 긴장하게도 만드는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아빠 어디가(사진출처:MBC)'

그런데 준이가 늘 바르고 곧은 모습을 보이는 ‘성선비’로 불리게 된 것은 어쩌면 아빠 성동일의 이런 남다른 교육관 덕분일 수 있다. 누구보다도 부지런하고 타인을 배려하거나 산만하지 않고 침착하며 때론 용기 있는 행동을 보여주는 준이의 모습은 성동일이라는 때로는 넘어야할 산처럼 여겨지게 만드는 아빠가 있기 때문이다. 모든 걸 받아주는 아빠가 아니라 세상에는 타인과 살아가기 위해 어떤 규칙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아빠다.

 

하지만 세상에는 아빠들도 많고 또 그 아빠들의 교육관도 그 수만큼 많을 수밖에 없다. 송종국은 성동일과는 정반대의 교육관을 갖고 있는 아빠다. 그가 지아를 대하는 태도는 말 그대로의 ‘딸 바보’다. 뭐든 아이가 원하는 것은 챙겨주고 아이의 의견을 존중해주는 아빠. 그러니 송종국과 하룻밤을 지내게 된 준이는 이 너무 다른 교육관 사이에서 ‘문화적 충격’을 경험했을 수 있다.

 

마치 하소연하듯 맨날 공부만 해서 놀 시간이 없다고 털어놓는 준이에게 송종국은 아빠가 원한 구연동화를 읽어주기보다는 같이 놀아주었다. 송종국은 아이가 책을 읽고 싶어하는 게 아니라 놀고 싶어 한다고 말했고 함께 나와 축구로 몸을 풀고는 준이가 하고 싶다는 줄넘기 천 번에 도전했다. 그렇게 줄넘기 도전을 성공한 후 받은 송종국의 사인을 다음 날 준이는 아빠에게 자랑하고 싶어했지만 아빠는 여전히 무뚝뚝했다.

 

모든 걸 받아주는 아빠 송종국과 조금은 근엄하고 무뚝뚝한 아빠 성동일은 이 서로 다른 교육관은 그러나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일 뿐이다. 어느 것이 옳고 그른 것이 아니라 저마다 각자의 아이를 키우는 방식이라는 점이다. 당장의 아이의 입장에서 보면 성동일의 교육방식이 너무 옛날식인 것처럼 보일 수 있고 그래서 마치 잘못된 것처럼 여겨질 수 있지만 이러한 엄한 교육방식이 가진 좋은 점도 있기 마련이다.

 

흥미로운 건 하룻밤 아빠 바꾸기 미션에서 아이들이 일순위로 꼽은 아빠가 김성주라는 점이다. 김성주는 방송 초반만 해도 아이와 함께 지내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모습을 보였던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때로는 아이에게 화를 내기도 하는 모습이 보여지기도 했다. 하지만 김성주가 아이들의 일 순위가 된 데는 그가 가진 아이들을 말로 밀고 당기는 재주가 한 몫을 했다. 이것은 그가 타고난 방송인이기 때문일 수도 있고 아니면 아나운서라는 특성상 언변이 좋기 때문일 수도 있다. 어쨌든 이 소통을 통한 교감은 김성주가 가진 남다른 교육방식일 게다.

 

아빠를 바꿔 하룻밤을 지내는 미션은 여러 차례의 교감을 가진 <아빠 어디가>이기 때문에 가능한 미션이다. 그만큼 친밀하지 않다면 어찌 타인의 아이를 거기에 맞춰 챙겨주는 모습이 가능할 것이고, 또 타인에게 자신의 아이를 맡길 수 있겠는가. 중요한 것은 이 과정에서 아빠들도 자신들과 아이의 모습을 한 번쯤은 되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는 점이다. 아이만 배우는 게 아니고 아빠들도 배운다.

 

<아빠 어디가>는 결국 아빠와 아이가 등장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교육에 대한 이야기가 담길 수밖에 없다. 바로 시골에 가서 직접 밥을 해먹거나 떡을 만들어보거나 밤을 따고 개울에서 뛰어노는 그 몸으로 부딪치는 아날로그적인 체험들은 그 자체로 커다란 교육적 효과를 드러낸다. 지금껏 보여진 아이들의 변화를 떠올려 보라. <아빠 어디가>는 분명 지금의 교육현실에 대한 비판적인 정서가 바탕에 깔려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빠들이 보이는 저마다의 교육관에 정답이 있는 것은 아니다. 아이들의 기피대상 1호가 된 성동일이 꼴찌 아빠가 아니고, 성동일과는 정반대의 교육관을 가진 송종국이나 아이들의 1순위가 된 김성주가 일등 아빠는 아니라는 점이다. 각자가 생각하는 교육관이 있을 뿐이다. 어떤 교육관이 맞느냐를 비교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아빠 바꾸기 미션이 보여준 것처럼 아빠들이 타인의 교육관을 인정하는 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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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하라1994>, 왜 촌스러움을 전면에 세웠을까

 

기성 드라마와 비교해보면 <응답하라 1994>는 세련된 드라마는 아니다. 첫 회를 삼천포(김성균)의 상경기 하나로 오롯이 채워 넣은 것은 기존 드라마 문법으로 보면 모험에 가까운 것이었다. 대체로 멜로드라마의 첫 회란 남녀 주인공에 맞춰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응답하라 1994>는 꽤 많은 시간을 삼천포의 상경기에 할애했다. 이것은 자칫 잘못하면 드라마에 시트콤 같은 느낌을 줄 수 있었다.

 

'응답하라1994(사진출처:tvN)'

아마도 이런 선택을 과감하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예능을 해봤던 경험 때문일 게다. 드라마? 꼭 그 문법을 따라갈 필요가 뭐가 있단 말인가. <응답하라 1994>는 그래서 예능이 그러한 것처럼 때론 조금은 과장된 시트콤적인 상황을 통해 캐릭터와 웃음을 만들어내면서 필요하면 내레이션으로 상황을 설명하기도 하고 인물의 심리를 대놓고 드러내기도 한다.

 

성나정(고아라)과 쓰레기(정우)의 멜로 라인도 그 과정을 보여주기보다는 이미 관계가 설정된 상황을 오누이처럼 살짝 가리는 것으로 처리했다. 2회에서 갑자기 쓰레기가 아픈 성나정의 옆자리에 함께 눕는 장면과 함께 이 둘이 오누이가 아니라 오래 만나다보니 오누이 같은 친근함을 가진 특이한 관계라는 것이 설명되었다.

 

이 두 사람의 관계가 발전해가는 과정도 드라마적인 스토리 전개보다는 시트콤에 가깝다. MT를 가서 술 마시기 게임을 하는 성나정이 오매불망 쓰레기의 삐삐만을 기다리는 장면이나 다음 날 아침 일찍 산책 나온 성나정에게 무심한 듯 살짝 애정을 표현하는 쓰레기의 모습은 이야기의 전개라기보다는 상황 속에서 인물들의 심리를 그려낸다는 점에서 시트콤적이다.

 

이것은 칠봉이(유연석)가 어머니의 두 번째 결혼식을 찾아가려다 운전이 미숙한 성동일이 소변이 마려워 화장실을 찾아다니다 늦게 되어, 결국 삐삐 음성으로 마음을 전하는 스토리도 마찬가지다. <응답하라 1994>의 스토리는 어떤 일관된 흐름이나 전개를 갖기 보다는, 그 때 그 때의 상황과 에피소드를 나열하면서 그 안에 캐릭터 하나 하나를 소개하고 그들의 관계를 설명하는 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하지만 조금은 단순해 보이고 심지어는 촌스러워 보이기도 하는 이 전개는 그러나 이 드라마가 가진 소재나 메시지를 떠올려보면 의외로 괜찮은 그림을 만들어낸다. 결국 이 드라마가 전면에 내세운 건 ‘촌스러움’에 대한 것이 아닌가. 지방에서 올라온 대학생들이 하숙집(그 하숙집도 지방에서 갓 올라온 집안이 꾸린 것이다)에서 같이 생활하며 낯선 서울 살이를 체험하는 이야기.

 

이것은 왜 첫 회에 삼천포의 상경기에 그토록 시간을 할애했는가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1994년으로의 초대. 삼천포라는 인물은 그 시절의 조금은 구식의 풍경과 정서들의 세계로 우리를 안내해준 인물인 셈이다. 그런데 왜 굳이 1994년을 다루면서 촌놈들의 서울 체험을 주된 소재로 삼았을까. 이것은 자칫 지금 세대에게 낯설 수 있는 1994년의 공기를 ‘촌놈’이라는 공통된 시선을 통해 보다 자연스럽고 또 재미있게 전하기 위함이다.

 

지금 세대에게 1994년이 낯선 모험의 지대인 것처럼 촌놈들에게는 당시나 지금이나 서울이 모험의 공간이 될 수밖에 없다. 양상국이 ‘네가지’나 <인간의 조건>을 통해 보여준 것처럼. 이 촌놈의 시선은 또한 서울이 익숙한 이들에게도 서울을 낯선 모험의 공간으로 바꿔주는 힘을 발휘하기도 한다. 그래서 여기 표현한 ‘촌놈’이라는 조금은 비하적인 표현은 이 드라마에서는 오히려 정감가고 아날로그적이며 세련됨이 밀어낸 따뜻한 정조를 드러내는 긍정적인 의미인 셈이다. 양상국처럼.

 

삐삐라는 지금은 너무나 투박하고 촌스럽게까지 보이는 물건은 그래서 오히려 스마트폰 하나면 즉각적으로 누군가와 연결되는 지금 시대에는 도저히 경험할 수 없는 관계의 아련함 같은 것을 전해준다. 누군가의 삐삐가 오기를 밤새도록 기다리는 경험이라던가, 직접 통화하지 못하고 메시지를 녹음해 마음을 전하는 방식은 마치 손 글씨로 한 자 한 자 마음을 적어나가던 편지처럼 애틋해지는 구석이 있다.

 

<응답하라 1994>는 분명 촌스러운 드라마다. 하지만 이 촌스러움은 오히려 이 드라마가 지금 시대에 전하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이것은 이 드라마가 단지 과거를 회고하거나 추억하는 향수 드라마의 차원에 머물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디지털 시대가 잃어버린 아날로그적 정조를 ‘촌놈’의 시선으로 끌어내는 것. 이만큼 현재에 괜찮은 의미를 던져주는 주제의식이 있을까. 이것이 이 드라마의 촌스러움에 기꺼이 빠져드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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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상국, 무엇이 이 개그맨을 주목하게 하나

 

<해피투게더> 약한 남자 특집에서 양상국은 같이 출연한 김태원, 이윤석, 김성규와 자신이 왜 함께 앉아 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몸이 약한 남자들(?) 속에서 그는 마음이 약한 남자였다. 개인택시를 운영하는 아버지가 혹시나 사고가 날까 걱정된다며 눈물을 글썽이는 양상국은 눈물 많기로 소문난 ‘국민 울보’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인간의 조건'(사진출처:KBS)

“마음만은 특별시다.”고 말함으로써 그 반전을 통해 웃음을 주지만 양상국은 뼛속까지 촌놈이다. 연예인 같지 않은 수수한 모습에 개그할 때의 사투리 그대로가 평상시 말투인 그는 콩트 속의 캐릭터와 실제 모습의 간극이 별로 없다. 물론 콩트가 만들어내는 상황 속에서 연기를 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 캐릭터의 성격이나 성향이 실제와 거의 같다는 얘기다.

 

이 일관성(?)은 양상국에게서 대중들이 어떤 진정성을 느끼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인간의 조건>을 하면서 유독 양상국이 재조명되고 재발견된 건 특히 진정성이 중요한 이 프로그램의 성격과 그가 잘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양상국은 <인간의 조건>에서 늘 열심히 무언가를 하는 부지런한 모습과, 개그맨 선배 동료들을 기다리며 때로는 그리워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그 따뜻한 심성을 느끼게 해주었다.

 

<개그콘서트>가 콩트 코미디라는 조금은 과장된 영역을 갖고 있다면, <인간의 조건>은 그 가면을 벗고 일상인으로 돌아온 개그맨의 맨 얼굴을 보이는 곳이다. 그런데 이 양상국이 갖고 있는 촌놈 캐릭터는 그저 콩트를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실제였다는 것. 양상국은 필자와 만난 자리에서 앞으로도 이 촌놈 캐릭터를 일관되게 가져갈 것이라고 했는데, 그것은 의도적인 것이라기보다는 그 본래모습을 벗어날 수 없기 때문으로 보였다.

 

<인간의 조건>이 무언가 하나를 빼냄으로써 얻게 되는 어떤 것을 그려내는 ‘아날로그형 예능’이라는 점에서도 양상국의 촌놈 캐릭터는 잘 어울린다. 첫 번째 미션으로 휴대전화와 TV, 인터넷이 없는 생활은 도시인들의 필수품을 제거함으로써 나올 수 있는 해프닝을 보여주는데, 양상국은 그 자체로 도시 속의 촌놈이라는 아날로그형 캐릭터를 갖고 있었던 셈이다. 처음에는 촌놈 캐릭터가 휴대전화와 TV와 인터넷이 없어 답답해하는 반전의 모습을 보임으로써 웃음을 주었고, 그 다음에는 본래 촌놈으로서의 진짜 푸근한 모습이 보여짐으로써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었던 것.

 

서수민 PD는 양상국이 <인간의 조건>을 만들고 있는 신미진 PD의 기획의도를 가장 잘 파악하고 있는 개그맨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본래 <인간의 조건>은 ‘도시라는 정글 속에서 원시인처럼 살아가기’라는 콘셉트에서 시작됐다는 것이다. 물론 이것 역시 의도된 일이라기보다는 양상국의 본래 모습이 그저 잘 맞아떨어진 것일 게다.

 

“멋있는 거 못하는 것도 있고요. 서민에다 바보 이런 걸 많이 했죠. 사람들은 다른 사람보다 낮은 캐릭터에 더 호감을 느끼는 것 같아요.” 누구에게나 주목받는 개그맨이지만 개그맨 같지 않은 수수함과 심지어 쑥스러움을 보여주는 양상국. 그를 보면서 아날로그적인 편안함을 느끼게 되는 것은 그가 어떻게 이 세련됨과 첨단으로 치닫는 세상에서 오히려 주목되는가를 잘 말해준다. 촌놈 양상국에 대한 주목은 그래서 문명을 다 털어내고 마지막으로 남게 되는 진정한 ‘인간의 조건’을 떠올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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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어디가', 이것이 바로 예능 비타민

 

“좋은 꿈꿔.” “아빠도 잘 자고요.” “고맙다 아들아.” “아빠도 절대로 감기 걸리면 안돼요.” “고마워.” “아빠 좋아. 아빠 좋아.” “아빠 좋아? 어이 내 아들. 아빠도 좋아.” 불 꺼진 방 안에서 들려오는 아빠와 아들의 이 짤막한 대화에는 그 끈끈한 사랑이 느껴진다. 평소 아빠를 무서워하며 다가오지 못했던 성동일의 아들 준이. 조금은 자신 없어 보이는 모습이지만 “아빠 좋아”를 연발하는 아이 앞에서 아빠 성동일은 한없이 푸근해졌을 게다. <아빠 어디가>는 어쩌면 성동일처럼 일에 바빠 조금은 소원해졌던 아이와의 관계를 다시 회복하는 과정을 보여줌으로써 보는 이들에게 아빠 미소를 짓게 만드는 프로그램이다. 아이만큼 아빠를 힐링시켜주는 존재가 어디에 있겠는가.

 

'아빠 어디가'(사진출처:MBC)

김성주의 아들 민국이는 첫 회에 아빠와 떠난 여행에서 가장 허름한 숙소가 정해지자 폭풍 오열을 했다. 두모리로 떠난 두 번째 여행에서도 최종 목적지에 가장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텐트를 치고 자야한다는 사실을 알고는 또 눈물을 쏟아냈다. 아마도 어른들만이 떠나는 여행이었다면 제 아무리 야외취침을 한다고 해도 눈물까지 펑펑 흘리며 아쉬워하는 장면은 나올 수 없을 것이다. 나온다고 해도 그 진정성이 묻어나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민국이의 눈물을 그 자체가 진짜라는 점에서 보는 이를 웃음 짓게 만든다.

 

윤민수의 아들 후는 송종국의 딸 지아를 마음에 두고 있다. “어휴 이 귀염둥이!”라며 마음을 드러내고 삶은 계란 하나라도 지아를 챙겨주려 한다. 자신은 숨긴다고 숨기지만 다 드러나는 그 마음은 아빠들을 미소 짓게 한다. 후가 단 몇 차례의 방영만에 ‘국민 아들(?)’로 등극하게 된 것은 그 자신의 본능을 솔직하게 드러냄으로써 그 순수한 마음을 느낄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삶을 계란을 먹고 싶은 마음과, 지아와 민국이형과 나눠먹을 마음 사이에서 갈등하다 자신이 다 먹어버리는 모습은 그 솔직한 속내를 잘 보여준다.

 

저녁 찬거리를 구하러 나온 길에서 만난 강아지나 병아리 때문에 좀체 발길을 돌리지 못하는 지아는 그 존재만으로도 아빠 송종국을 딸 바보로 만들어버리는 아이. 송종국이 지아의 발을 닦아주거나 어설픈 솜씨로 아침을 챙겨주는 등 지극정성을 다하는 모습은 이 땅의 모든 딸 바보 아빠들의 마음 그대로일 게다. 한편 이종혁은 아빠라기보다는 삼촌 같은 모습이다. 귀차니스트들이기 마련인 아빠들의 자화상과 그럼에도 친구처럼 아들과 놀고 싶어하는 나이 들어도 여전히 악동 같은 모습이 거기서는 묻어난다.

 

사실 <아빠 어디가>는 특별히 대단한 이벤트가 있는 예능이 아니다. 아빠와 아이가 함께 시골로 떠나 하는 것이라고는 잠잘 방을 택하고, 저녁거리를 구해 챙겨먹고, 함께 잠을 자고 함께 눈을 뜨며 한바탕 시골길을 걷는 정도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이 더해지기 보다는 빼는 것으로서 더 특별해진 예능은 그저 달걀 몇 알만 갖고도 충분한 웃음을 전해준다. 아빠와 아이가 함께 시골로 여행을 떠난다는 그것 하나만으로도 이미 충분하니 말이다.

 

무언가 많은 것을 설정하고 기획하기보다는 그저 아날로그적인 공간에 아빠와 아이를 함께 내버려두고 그들이 무엇을 하는가를 담담히 포착하는 것만으로도 이 예능은 따뜻한 웃음을 전해준다. <일밤>이 지금껏 고전했던 가장 큰 이유는 웃음이 없어서가 아니라 주말 예능으로서 그 프로그램을 가족 같은 느낌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공간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점에서 <아빠 어디가>는 그 가능성을 새롭게 열어놓았다. 이제 주말이 되면 이 아이들과 아빠들의 관계가 무르익어가는 과정을 우리는 또 하나의 가족처럼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현실에서 매번 부대끼면서 마음만은 그렇지 않지만 가족들과 아이들과 함께 시간 보내는 것조차 점점 힘들어지는 게 우리네 아빠들이다. 그런 아빠들에게 <아빠 어디가>는 비타민 같은 웃음을 전해준다. 그 아이들이 전하는 순수한 웃음은 그 자체로 아빠들에게는 힐링이 될 테니 말이다. 그리고 다시 한번 자신들의 가족과 아이를 돌아 보는 기회가 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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