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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달 연대기’, 송중기와 장동건 대결구도가 만든 시즌2 기대감

 

tvN 토일드라마 <아스달 연대기>가 시즌1을 종영했다. 하지만 이대로 종영하면 안 된다는 목소리들이 더 많다. 심지어 시즌2 안하면 화날 것 같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세 파트로 나뉘어진 시즌1이 파트2까지만 해도 호평보다는 혹평이 많았던 <아스달 연대기>지만 2달 간의 휴지기를 거친 후 돌아온 파트3는 확실한 몰입감이 있었다.

 

그 몰입감의 원천은 인물들이 저 마다의 욕망을 갖고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생겨났다. 아스달의 연맹장으로 올랐던 타곤(장동건)은 자신이 이그트임이 발각되면서 연맹인들의 마음을 얻으려던 노력을 포기했다. 대신 공포정치를 시행했고, 자신의 권위에 도전하는 건 종교적인 것조차 용납하지 않았다. 그는 연맹 대신 나라를 만들고 그 위에 군림하는 왕이 되었다.

 

대제관이 된 탄야(김지원)는 살아남기 위해 타곤을 왕으로 세우지만 자신만의 힘을 키워나가기 시작했다. 그것은 백성들의 마음을 얻는 것이었다. 그래서 가장 힘겹고 비참하게 노예로 살아가는 아이들에게 은혜를 베풀었고, 그의 그런 행위들은 아스달 백성들에게 조금씩 전파되어갈 것이었다.

 

태알하(김옥빈)는 청동의 비밀을 캐기 위해 자신의 아버지 해미홀(조성하)을 고신하게 한 타곤을 알고는 결코 나눌 수 없는 욕망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즉 타곤과 함께 꿈꾸고 나누려 했던 절대 권력이 헛된 꿈이었다는 걸 알고는 자신만의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타곤의 아이를 가진 태알하는 그것으로 타곤의 발목을 잡고, 타곤의 복수를 꿈꾸는 흰산족을 자신의 지지세력으로 끌어들였다.

 

사야(송중기)는 자신과 똑같이 생긴 배냇벗(쌍둥이)이 은섬(송중기)이라는 걸 알아차렸다. 그는 자신의 아버지 타곤을 왕으로 세우려 하면서도 동시에 어려서부터 꿈에 나타나 힘겨운 상황에도 자신을 살게 해준 탄야를 끝까지 지키겠다는 맹세를 했다. 향후 사야가 타곤의 편에 계속 설 것인지 아니면 예언대로 칼인 은섬, 방울인 탄야, 그리고 거울인 그가 새로운 세상을 열게 될 것인지 궁금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돌담불로 노예로 끌려갔다 돌아오는 여정에 모모족과 아고족을 차례로 만나며 그들에게 이나이신기의 재림이 된 은섬은 그 부족들을 하나로 모아 아스달과의 일전을 예고했다. 마침 왕이 된 타곤의 첫 번째 왕명이 아고족 정벌이라는 점은 향후 시즌에 펼쳐질 전쟁을 예감케 만들었다.

 

이처럼 인물들이 살아나고 그들의 욕망과 대결구도가 명확해지면서 <아스달 연대기>가 궁극적으로 그리려 한 세계의 윤곽도 명쾌해졌다. 결국 이 드라마는 나라를 세우려는 타곤으로 상징되는 세력과, 부족을 모아 그들과 맞서려는 은섬으로 상징되는 세력의 대결을 그리고 있다. 이것은 문화인류학에서 자주 던져지는 궁극적인 질문에 닿아있다. 어째서 어떤 부족은 나라가 되었고 어떤 부족은 소수 부족으로 남게 되었는가. 그리고 강력한 힘을 가진 나라와 부족으로 남아 살아가는 이들 중 어떤 삶이 더 가치 있는가.

 

물론 결국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나라를 선택한 거대한 욕망이 승리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건 과연 진짜일까. 국가 간의 거대한 대립과 분쟁이 여전한 우리가 사는 세상 속에 어째서 지금도 소수 부족으로 자연에 순응하며 더불어 살아가는 부족들의 삶이 이 지구적인 재앙 앞에 선 우리들의 대안처럼 보이는 걸까.

 

지금껏 그 어떤 드라마들도 좀체 던지지 못했던 거대한 인류학적인 질문을 <아스달 연대기>는 담으려 하고 있다. 그 밑그림이 시즌1의 인물들 속에 자그마하게 피어나는 욕망의 불씨로 담겨져 있다는 점은 이 드라마가 향후 시즌을 계속 이어나가야만 하는 중요한 이유가 된다. 과연 시즌2는 언제쯤 돌아올 수 있을까. 우리도 매년 새로운 시즌을 기다리는 드라마가 드디어 탄생한 것 같은 섣부른 기대를 갖게 만든다.(사진:tvN)

Posted by 더키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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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동시 방영 드라마와 그렇지 않은 드라마의 차이

 

최근 SBS에서 금토에 방영되고 있는 블록버스터 드라마 <배가본드>는 넷플릭스에서도 동시 방영된다. 사실 지상파들이 넷플릭스 같은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에 그토록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는 걸 떠올려보면 <배가본드>의 넷플릭스 동시 방영은 어딘지 앞뒤가 맞지 않아 보인다. 게다가 지상파 3사는 최근 SK텔레콤과 함께 웨이브라는 OTT를 만들겠다 선언하지 않았던가. 그건 넷플릭스는 물론이고 향후 디즈니 플러스 같은 공룡 OTT들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게 되면서 생겨난 지상파들의 위기감을 반영한 움직임이라 볼 수 있다. 그런데 왜 <배가본드>는 넷플릭스에서 방영되는 걸까.

그런데 이런 이례적인 행보는 SBS <배가본드>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최근 KBS에서 수목에 방영되는 <동백꽃 필 무렵>도 넷플릭스에서 동시 방영되고 있다. 이 작품은 KBS 드라마 중 넷플릭스에서 동시 방영되는 첫 드라마이기도 하다. 이처럼 지상파가 넷플릭스 같은 OTT에 동시 방영을 결정하게 된 건, 지상파 방송3사가 넷플릭스라는 투자자이자 유통사를 외면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상파 3사는 협의를 통해 한 해 몇 편 한도를 정해 넷플릭스와 협업할 수 있는 여지를 열어 놓았다.

이렇게 된 건 tvN이나 JTBC 같은 비지상파들이 일찌감치 넷플릭스와 공동제작, 글로벌 방영을 통해 그만한 효과를 냈기 때문이다. 특히 tvN은 <미스터 션샤인> 같은 작품이나 <아스달 연대기> 등을 만들 수 있는 동력으로서 넷플릭스의 투자를 적극적으로 받아냈다. JTBC는 넷플릭스와 계약을 통해 자사 드라마들을 글로벌하게 선보일 수 있는 기회를 열어 놓았다.

 

그래서 심지어 이제 몇 백 억이 넘어가는 대작 드라마를 만들기 위해서는 넷플릭스 없이는 어렵다는 업계의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430억이 들어간 <미스터 션샤인>이나 540억이 투입된 <아스달 연대기> 같은 작품은 사실상 넷플릭스가 몇 백 억씩 투자하지 않았다면 제작 자체가 어려웠을 드라마다. 250억이 들어간 <배가본드> 역시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렇게 되자, 넷플릭스에 방영되는 한국드라마와 그렇지 않은 한국드라마들 사이에 확연한 차이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제 좀 괜찮다 싶은 드라마들은 여지없이 넷플릭스에서 동시 방영되는 경향이 생기고, 좀 대작이라 생각되는 작품들 역시 넷플릭스에서 방영된다. 냉정한 현실이지만 현재 방영되고 있는 한국드라마들은 많지만 그 중 주목받는 작품들은 몇몇 작품으로 점점 한정되는 경향이 있다. <아스달 연대기>, <배가본드>, <동백꽃 필 무렵> 같은 드라마들이 그렇다.

 

물론 OCN은 넷플릭스 오리지널처럼 일찍부터 ‘OCN 오리지널’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어 넷플릭스 동시 방영 드라마들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하지만 이를 제외한 tvN, JTBC 그리고 지상파 3사의 드라마들은 이제 괜찮다 싶으면 넷플릭스에서도 볼 수 있는 그런 상황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중요한 건 이 과정을 통해 시청자들은 저도 모르게 눈높이가 높아지고 있고, 이른바 ‘글로벌 감성’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그래서 우리네 드라마에도 보다 높은 스케일과 완성도를 요구하게 됐다. 그런데 넷플릭스의 이런 영향은 이제 겨우 시작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이제 디즈니 플러스 같은 글로벌 OTT들이 등장하게 되면 이러한 변화는 급물살을 타게 될 것으로 보인다.

 

넷플릭스에 방영되는 드라마들이 이렇게 도드라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자본의 논리가 들어간 것이지만, 여기에 시청자들이 이미 반응하고 있다는 사실은 국내 드라마 제작사들의 각성이 요구되는 지점이다. 이제 우리네 드라마들도 ‘국내용’의 틀을 넘어 글로벌에도 먹힐 만큼의 완성도가 요구되는 시점이다. 그걸 맞추지 못하면 활짝 열린 글로벌 시장에서 우리네 드라마의 입지는 위태로워질 수밖에 없다.(사진:SBS)

Posted by 더키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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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힘 받은 ‘아스달 연대기’, 시즌제로 이어가야 하는 이유

 

tvN 드라마 토일드라마 <아스달 연대기>에 탄력이 붙었다. 이제 제대로 이야기가 쭉쭉 펼쳐지는 느낌이다. 이렇게 된 건 노예로 끌려갔던 은섬(송중기)이 그 곳에서 탈출해 아스달로 돌아오는 여정 속에서 조금씩 자신의 세력을 넓혀가는 과정이 그려지고, 무혈 왕국을 꿈꾸던 타곤(장동건)이 아사론(이도경)의 계략에 의해 자신이 이그트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결국 피와 공포로 왕좌에 오르게 되며, 대제관에 오른 탄야(김지원)가 와한족을 구하기 위해 아스달 사람들의 마음을 얻어 힘을 가지려하게 되면서다.

 

저마다의 목적과 욕망이 확실해진 인물들이 그 욕망을 막아서려는 세력들과 대결을 벌이고 그 문제들을 뛰어넘고 부딪치는 과정들이 한 회에 촘촘하게 채워져 있다. 회당 80분이 넘는 분량이지만 그 시간이 짧게 느껴질 정도다. 특히 은섬이 ‘은혜를 갚는’ 모모족을 도움으로써 그들의 마음을 얻고, 이제 아고족의 최대 시험인 ‘폭포의 심판’에서 천 년에 단 한 번 살아 돌아온 ‘이나이 신기’의 재림으로 받아들여지게 되는 과정은 흥미진진했다.

 

타곤의 계략에 의해 아고족이 서로 다른 씨족을 잡아 아스달에 노예로 파는 상황을 만들었지만 은섬은 이 상황을 간단히 뒤집을 수 있는 묘안을 제시했다. 아스달에 팔려간 다른 씨족의 노예를 구해주면 이 끝없는 노예전쟁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 하지만 그 말을 아고족 묘씨족이 쉽게 받아들일 리 만무했다. 결국 그들도 이것이 신의 뜻이라고 외친 은섬을 믿을 수 있는 근거가 필요했던 것. 그래서 폭포의 심판에 은섬을 던지지만, 마침 모모족의 샤바라(카라타 에리카)가 물속에서 그를 구해낸다.

 

이야기 전개에 있어 팽팽한 긴장감과 반전이 오가면서도 이 거대한 이야기가 결국 왕국을 만들려는 타곤의 욕망과, 그 왕국을 해체해 각 부족들이 싸우지 않고 평화롭게 살아가게 하려는 은섬의 욕망이 부딪치는 구도를 잃지 않는다는 것이 중요하다. 그만큼 이야기들이 촘촘해졌고, 그 촘촘한 이야기들이 그려내려는 거대한 그림이 조금씩 그려져 가고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아쉽게 느껴지는 건 이처럼 이제 겨우 탄력이 붙은 <아스달 연대기>가 이제 파트3의 2회만을 남기고 있다는 사실이다. 과연 단 2회 만에 지금 이렇게 펼쳐져 있는 <아스달 연대기>의 많은 이야기들이 제대로 정리될 수 있을 지가 걱정되는 상황이다. 인물 하나만으로도 꽤 많은 이야기들을 할 수 있게 된 <아스달 연대기>가 아닌가. 예를 들어 본격적인 이야기 자체가 아직 진행되지도 않은 채은(고보결)과 괴력의 눈별(안혜원)의 이야기만으로도 한 회로 부족할 지경이다.

 

만일 이대로 파트3로 끝을 맺으려 한다면 당연히 나올 수밖에 없는 이야기가 ‘열린 결말’이거나 ‘용두사미’다.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애초 ‘연대기’라는 제목을 달았을 때 기획했던 것처럼 파트를 이어가야 하지 않을까. 꽤 많은 제작비가 세트를 만들어내는데 들어갔을 법한 드라마다. 그렇게 만든 세트를 제대로 활용하기 위해서도 또 이렇게 펼쳐놓은 이야기들을 좀 더 촘촘하게 끌고 가 완결성 있는 작품으로 남기 위해서도 시즌은 계속 이어져야 하지 않을까 싶다.(사진:tvN)

Posted by 더키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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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 대결 들어간 ‘아스달 연대기3’, 결과적으로 휴지기는 득

 

결과적으로 보면 tvN 토일드라마 <아스달 연대기>는 파트2를 끝내고 파트3로 이어지는 두 달 여간의 휴지기가 득이 됐다고 보인다. 워낙 큰 기대를 갖고 시작했지만 파트2까지 방영된 <아스달 연대기>는 적지 않은 혹평에 시달려야 했다.

 

이유는 여러 가지다. 아직까지 다뤄본 적이 없는 선사라는 시대의 낯설음, 그 낯설음을 채우기 위해 여러 콘텐츠들을 참조하다보니 생긴 의상이나 배경, 설정 등의 유사함, 무엇보다 새로운 세계를 창출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만들어낸 과한 설명들이 그 이유들이었다.

 

하지만 어쨌든 파트2까지 진행되며 그 세계의 구조를 어느 정도 인지시킨 <아스달 연대기>는 파트3로 와서는 상황 설명이 아닌 본격적인 대결구도에 들어감으로써 훨씬 몰입감이 높아졌다. 신성한 방울을 찾아냄으로써 대제관의 자리에 오른 탄야(김지원)는 노예가 된 와한족을 구하고 돌담불로 끌려간 은섬(송중기)까지 구해내려 하고, 탄야로부터 아라문 해슬라의 재림으로 지목받아 아스달 연맹 최강자로 우뚝 선 타곤(장동건)은 태알하(김옥빈)와 함께 자신들만의 왕국을 세우려 한다.

 

한편 돌담불에서 탈출에 성공한 은섬은 죽은 사트닉(조병규)의 유언에 따라 주비놀에 갔다가 모모족의 샤바라인 카리카(카라타 에리카)와 아들을 구함으로써 은혜를 갚는 모모족이 그를 따르게 만들었다. 무엇보다 은섬은 와한족을 구해내고 아스달을 무너뜨리기 위해서는 힘이 있어야 하고, 그러려면 부하들을 거느려 힘을 길러야 한다는 걸 알게 됐다.

 

이처럼 <아스달 연대기> 파트3는 저마다의 인물들이 가진 욕망이 뚜렷하게 드러나며 욕망과 욕망이 부딪치며 생겨나는 대결구도가 선명해졌다. 피를 보지 않고 아스달을 장악하려던 타곤의 야망은 아사론(이도경)의 계략으로 그가 이그트라는 게 밝혀지면서 수포로 돌아가고 그는 결국 “모조리 죽여주겠다”며 폭주하기 시작했고, 은섬은 아스달로 돌아오는 여정에서 조금씩 자신의 지지자들을 끌어 모으기 시작했다. 모모족을 얻은 데 이어, 아고족의 지역으로 들어가게 된 은섬의 행보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왕국을 세우고 왕이 되려는 타곤과 그 왕국을 무너뜨리려는 은섬의 대결은 국가의 탄생과 자연 그대로의 삶 사이의 대결구도이기도 하다. 문화인류학에서 말하는 어째서 어떤 종족은 국가가 되고 어떤 종족은 그래도 종족으로 남았는가에 대한 질문이 그 대결구도에 들어가 있다.

 

하지만 <아스달 연대기> 파트3가 훨씬 편안해진 건 이런 문화인류학적인 무게감과 또 단군신화 같은 우리네 선사에 대한 강박 같은 것들을 한 꺼풀 내려놓고 있어서다. 그런 무거움을 벗어버리고 대신 그 안에서 인물들의 욕망이 부딪치는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면서 마치 판타지 게임 같은 대결 구도를 선명히 그려내고 있다.

 

사실 주제의식은 그 게임 같은 흥미진진한 대결구도를 그려나가면서 저절로 붙게 마련이다. 그러니 <아스달 연대기> 파트3가 현재 하고 있는 것처럼 드라마 자체의 재미에 몰입하게 하는 것이 훨씬 더 시청자들이 이 세계 깊숙이 들어올 수 있게 하는 방법이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보면 잠시 가졌던 휴지기는 <아스달 연대기>에는 어떤 국면 전환을 위한 의미 있는 시간이 된 것으로 보인다.(사진:tvN)

 

Posted by 더키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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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9.09.10 17:26 신고 BlogIcon 지후니7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요즘 다시 관심을 가져보려 하는 드라마입니다.~~~

넷플릭스 경험한 시청자들에게 허술한 드라마 더는 안 통해

 

tvN 월화드라마로 종영한 <60일, 지정생존자>는 아마도 미드 원작을 보지 않았다면 괜찮은 웰메이드 드라마로 여겨졌을 수 있다. 실제로 이 드라마는 원작이 갖고 있는 미국적인 상황을 우리의 상황으로 변환하는데 일정부분 성공했다고 보인다. 그건 60일이라는 한정된 기간을 부여했고, 한반도 국제정세 상황을 투영시켰으며 무엇보다 국정농단 사태를 겪은 우리네 정서를 반영해 ‘자격 없는 이가 권력을 갖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가’에 대한 부분을 부각시킨 면 등이 그랬다.

 

하지만 미드 원작을 본 시청자들은 <60일, 지정생존자>에 만족하기가 어려웠다. 그건 원작이 갖고 있는 속도감과 다양하고 풍성한 이야기들에 비해 <60일, 지정생존자>는 상당히 지지부진하고 답답한 전개를 보여줬기 때문이다. 테러범을 찾아내는 과정에 온전히 16부를 할애한 <60일, 지정생존자>는 그래서 박무진(지진희)이라는 권한대행의 국정 수행 능력에 집중하기보다는 빌런으로 등장한 오영석(이준혁)의 국정농단에 더 초점을 맞췄다. 물론 그는 허무하게 죽음을 맞이하고 말지만.

 

이처럼 최근 우리네 시청자들은 넷플릭스나 왓차플레이 등을 통해 거의 실시간으로 들어오는 외국 드라마들에 익숙해져 있다. 워낙 유명한 작품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왕좌의 게임> 같은 작품을 본 시청자들이 tvN <아스달 연대기>에 혹평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도 이런 달라진 환경 때문이다. 사실 이런 비교점 없이 새로운 시도로만 보면 <아스달 연대기>의 성취는 적은 게 아니지만, 이제 미드를 우리네 드라마와 다를 바 없이 소비하게 된 시청자들에게 <아스달 연대기>의 미술이나 의상이 <왕좌의 게임>과 비교되지 않을 수 없었다.

 

MBC 수목드라마 <신입사관 구해령> 같은 사극은 전통적으로 우리네 시청자들에게 강한 드라마지만 생각보다 시청률도 화제성도 나오지 않는 것 또한 달라진 시청자들의 눈높이와 관련이 있다. 사극이 보다 차별화된 확실한 스토리와 메시지를 전하지 못하고 과거 이른바 멜로사극이라 불리던 장르적 틀만을 반복하는 것으로 이제 더 이상 시청자들의 시선을 잡아 끌기는 어려워졌다. 틀에 박힌 복수극의 장르를 반복하는 KBS <저스티스>도 마찬가지다. SBS <닥터탐정>은 물론 그 다큐적 소재를 가져와 드라마화한 부분은 주목할 만하지만 역시 대중적이라 보기는 어렵다.

 

KBS <세상에서 제일 예쁜 내 딸>이 드라마 전체에서 가장 높은 33.5%(닐슨 코리아) 시청률을 내고 있다는 건 꽤 상징적이다. 그것이 어떤 성과를 말해주는 게 아니라, 이제 지상파 시청률이라는 건 고정층들(주로 고령시청자)만을 겨냥할 때 나올 수 있는 수치라는 걸 말해주는 상징. tvN <호텔 델루나>가 그나마 10%가 넘는 시청률을 기록하며 화제가 되는 건, 그 익숙한 <전설의 고향>식의 우리네 귀신 이야기를 트렌디하게 엮어내 나이든 세대와 젊은 세대까지를 모두 끌어안아서다. SBS <의사요한>이 9.4%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는 것도 의학드라마라는 안정적인 포맷 위에 지금껏 다뤄지지 않았던 안락사 문제를 건드리는 뾰족함이 있어서다.

 

하지만 넷플릭스 같은 해외의 드라마들을 경험한 시청자들이 주목하는 드라마는 시청률은 상대적으로 낮아도 몰입감이 남다른 OCN <왓쳐>나 영화적 느낌이 더 많이 나는 JTBC <멜로가 체질> 같은 드라마가 아닐까 싶다. 영화와 드라마 사이의 경계가 이미 헐거워진 해외 드라마들을 접하다 보면 우리네 드라마가 가진 지나치게 드라마적인 색채나 클리셰가 지겨워진다.

 

최근 넷플릭스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다크> 같은 드라마나, 왓차플레이에서 방영되고 있는 <체르노빌> 같은 드라마를 우리네 시청자들이 찾아보고 있는 상황이다. 이제 제작사들이 드라마에 대한 생각 자체를 달리해 봐야 하는 이유다. 보다 완성도 높고 확실히 차별화 되는 스토리와, 영화와 더 이상 경계가 없는 밀도 높은 드라마가 아니라면 갈수록 우리네 시청자들의 이탈은 커지고 빨라질 수밖에 없다. 이미 높아진 눈높이는 되돌릴 수가 없기 때문이다.(사진:tvN)

Posted by 더키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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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두꽃'과 '아스달연대기', 문명이라 칭하지만 야만인 저들

 

SBS 금토드라마 <녹두꽃>에서 백이현(윤시윤)은 상투를 자르고 양복을 입은 채 ‘개화조선’이라고 혈서를 쓴다. 그리고 자신의 일본식 이름을 오니(도깨비)라 명명한다. 그는 일본 유학을 통해 본 문명의 힘을 실감하고 조선이 개화된 세상을 꿈꾸었지만, 높디높은 신분차별의 벽을 실감하고 절망한다. “조선에 설 곳이 없다”는 걸 깨달은 그는 일제의 앞잡이가 되면서도 스스로는 조선을 ‘개화’시킨다는 명분을 내세워 자신 잘못된 행동을 합리화한다.

 

그러면서 그는 구한말의 조선을 ‘야만’이라 칭한다. 즉 일본이 들어와 개화하려는 것이 ‘문명화’된 세상을 만들기 위함이라는 것. 그의 이런 변명과 합리화에 송자인(한예리)은 범궐을 해 무차별로 인명을 살상하고 힘으로 조정을 장악해버린 일제의 만행들을 어찌 ‘문명’이라 말할 수 있겠냐고 꾸짖는다. 무엇이 야만이고 무엇이 문명인가를 명확히 꼬집은 일침이다.

 

백이현이 흔히 말하는 개화니 문명이니 하는 말들은 <녹두꽃>에서 중요한 화두로 등장한다. 그는 일찍이 전봉준(최무성)과 독대하며 “죽창은 야만이고 새로운 세상을 여는 열쇠가 될 수 없다”고 말한 바 있다. 대신 “개화된 세상의 선진 문물, 문명이 사람을 교화시키고 세상을 바꿀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전봉준은 자신이 생각하는 야만 중에 “가장 참담한 것이 문명국이라 자처하는 열강”이라며 “약소국을 쳐들어가 등골을 빼먹고 또 다른 약소국을 놓고 싸우는 짐승”이라 일갈한다.

 

흥미로운 건 이런 문명과 야만에 대한 담론이 구한말을 다룬 <녹두꽃>만이 아니라 심지어 상고시대를 다루고 있는 tvN 토일드라마 <아스달 연대기>에도 똑같이 담겨 있다는 점이다. 일찍이 불을 다루고 그것으로 더 강한 칼을 만들고, 정복전쟁으로 약한 종족들을 노예로 만들어 그 노동력을 착취해 세운 아스달 문명. 그 문명의 침범을 막았던 대흑벽조차 그들이 하늘 높이의 사다리로 연결 지으면서 평화롭게 살아가던 와한족은 살 터전을 잃고 아스달의 노예가 되어버린다.

 

문명이라는 이름으로 풍요를 외양으로 치장하고 있는 아스달이지만, 그 안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은 실상 야만에 가깝다. 아들이 아버지를 죽이고 연맹장에 오르려 하고, 아버지는 딸을 첩자로 이용해 자신의 지위를 지켜내려 한다. 아버지를 죽인 아들, 타곤(장동건)은 나아가 스스로를 신격화하고 아스달을 지배하려는 권력욕을 드러내고, 타곤과 함께 야망을 불태우는 태알하(김옥빈)는 자신을 첩자로 이용하려던 아버지를 배신한다. 그들은 와한족을 ‘두줌생(두 발로 걷는 짐승)’이라 부르며 짐승 취급하지만, 실상 짐승은 무력으로 무고한 생명을 죽이고 노예화하는 그들이다.

 

<아스달 연대기>가 다루고 있는 건 상고시대부터 시작되었던 문명화라는 이름으로 자행된 야만의 연대기다. 세상을 제 손안에 쥐려는 욕망과 권력에 의해 무수히 많은 이름 모를 생명들의 피로 점철된 끔찍한 인간의 연대기. 그 연대기는 그래서 그 후 계속 지속되어 왔고 지금까지도 끝나지 않았다. 그로부터 수천 년이 지난 구한말을 다루고 있는 <녹두꽃>에서도 똑같은 ‘문명의 야만’을 목도하게 되는 건 그래서다.

 

하지만 그래도 이 잔인한 연대기 속에서 어떤 작은 희망의 메시지를 발견하게 되는 건, 그 문명의 야만이 침탈해 들어올 때 이를 막기 위해 나선 많은 이들이 있었다는 것일 게다. <아스달 연대기>의 와한족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건 사투를 벌이는 은섬(송중기)과 탄야(김지원) 같은 인물들이 그렇고, <녹두꽃>의 일제와 맞서다 전장에서 스러져간 무수한 백이강(조정석) 같은 동학군 의병들이 그렇다.

 

그리고 이런 문명의 야만은 지금도 여전하다. 한반도를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는 신 열강들의 힘 대결은 지금까지도 계속 이어져 오고 있지 않은가. <아스달 연대기>나 <녹두꽃> 같은 과거를 담은 이야기들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의미를 갖는 건 그래서다. 그 야만의 역사들을 되돌아보는 것만으로도 우리가 어떤 선택들을 해야하는가가 명확해질 것이니 말이다.(사진:SBS)

Posted by 더키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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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달 연대기’ 파트1, 장동건과 맞서는 천부인의 정체

 

tvN 토일드라마 <아스달 연대기>가 6회로 파트1 ‘예언의 아이들’을 마무리했다. <아스달 연대기>는 총 18부작으로, 파트1 ‘예언의 아이들’, 파트2 ‘뒤집히는 하늘, 일어나는 땅’, 파트3 ‘아스, 그 모든 전설의 서곡’ 이렇게 세 파트로 나뉘어져 있다. 파트1,2는 연이어 방영되고, 파트3는 9월에 방영할 예정이다.

 

그렇다면 파트1을 끝낸 <아스달 연대기>의 성취는 어떨까. 만족스럽다고 얘기할 수도 없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실패했다고 말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그것은 어떤 프레임으로 이 드라마를 바라보느냐에 따른 극과 극의 반응들이 나오기 때문이다.

 

7%(닐슨 코리아) 정도에 머물러 있는 시청률은 이런 상황을 잘 말해준다. 즉 최근 여건을 감안할 때 어떤 드라마가 6회에 7% 시청률이라면 실패했다 말하긴 어렵지만, <아스달 연대기>처럼 애초 기대감이 컸던 드라마로서 7%는 또 아쉬운 수치라고도 얘기할 수 있다. 반응도 마찬가지다. 시작 전부터 한껏 높았던 기대감은 시작과 동시에 양극단으로 나뉘었다.

 

<왕좌의 게임>과의 비교로 인해 지나친 ‘베끼기’가 아니냐는 얘기들이 쏟아졌고 실제로 의상과 미술은 그런 비판이 근거 없다 말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물론 <아스달 연대기>는 ‘나라의 탄생’을 문명 발달사의 문화인류학적 관점으로 풀어냈다는 점에서 <왕좌의 게임>과는 다른 이야기 구조를 갖고 있다. 다만 그 이야기가 드라마로서는 너무 낯설고, 특히 그 판타지적 상상력의 세계가 갖는 ‘탈국적성’은 우리네 시청자들에게는 어딘지 어색하게 느껴질 수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스달 연대기>가 아무런 성취나 재미가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일단 집중해서 이 세계에 몰입해 보기 시작하면 그 이야기 자체의 재미가 충분히 있기 때문이다. 와한족을 구출해내기 위해 은섬(송중기)이 아스달에 들어가, 타곤(장동건)과 대결하는 일련의 과정들은 그 밀고 당기는 구도가 충분히 흥미롭다.

 

예를 들어 타곤이 아버지인 산웅(김의성)을 죽이고 대신 그 자리에 있던 은섬에게 뒤집어씌운 후 아스달을 장악하려는 이야기나, 그 결투 과정에서 타곤이 이크트(사람과 뇌안탈의 혼혈)라는 걸 알게 된 은섬이 이를 이용해 와한족을 구해내려 머리를 쓰는 이야기는 그 자체로도 충분히 재미있는 요소들이다. 결국 아스달족들 앞에서 스스로 ‘신’이라 칭하고 또 그렇게 취급받는 타곤의 정체는, 그의 실체가 이그트라는 걸 쥐고 있는 은섬 사이의 팽팽한 긴장감을 만들기에 충분하다.

 

게다가 이런 이야기들이 그냥 구성된 것이 아니라, 신화와 인류사를 재구성하고 있다는 건 더 흥미로운 부분들이다. 예를 들어 파트1 부제에 담긴 ‘예언의 아이들’은 “세상을 끝장 낼” 천부인을 뜻하는, 칼 은섬과 방울 탄야 그리고 거울을 의미하는 은섬의 쌍둥이 사야라는 게 드러나는데 이것은 단군신화에 등장하는 환웅이 환인에게 받았다고 하는 3개의 신표를 캐릭터화한 부분이다. 결국 파트1은 문명화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정복 전쟁과 권력 투쟁으로 상징되는 타곤이라는 인물과, 이를 견제하고 대결하는 천부인(칼, 방울, 거울로 상징되는 힘, 종교, 부 같은)을 상징하는 은섬, 탄야(김지원) 그리고 사야(송중기)의 대결구도를 담아냈다.

 

중요한 건 이 낯선 세계를 계속 들여다 볼만큼 몰입한 시청자들과 여전히 거리감을 느끼며 낯설게 바라보는 시청자들 사이의 괴리감이다. 파트1에 충분히 몰입해서 그 세계를 조금 익숙하게 받아들인 시청자들이라면 시즌2가 기대될 수 있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시청자들이라면 그 낯선 세계에 발을 딛기가 더더욱 어려워진다.

 

<아스달 연대기>는 역사를 바탕으로 그려지는 사극과 달리 상상력을 더해 신화와 인류사를 드라마적 이야기로 풀어낸 작품이다. 그래서 어떤 사적인 접근이 아니라 이야기 자체가 더 중요하고, 그 이야기가 환기시키는 신화와 인류사에 대한 상징적인 해석들을 즐길 수 있는 작품이다. 그러니 보통의 드라마를 봐왔던 시청자들에게는 낯설 수밖에 없다. 시청자들은 어떤 선택을 할까. 낯설어도 그 이야기 자체를 즐길까 아니면 너무 낯선 이야기의 진입장벽을 느낄까. 파트2의 결과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사진:tvN)

Posted by 더키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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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달 연대기’가 담으려는 자연과 문명의 대결

 

tvN 주말드라마 <아스달 연대기>에서 와한족은 어떻게 아스달족과 같은 말을 쓸까. 대흑벽을 넘어와 이아르크 정복을 시작한 아스달족의 대칸부대원들은 자신들이 노예로 포획한 와한족이 자신들과 같은 말을 쓴다는 사실에 놀란다. 하지만 그들은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를 간파하지 못한 채, 다만 말을 쓴다면 더 높은 가격으로 팔릴 수 있을 것이란 사실만 생각한다.

 

그런데 와한족이 아스달족과 같은 말을 쓴다는 사실은 이미 이들이 이전에 어떤 식으로든 문명의 전파가 있었다는 걸 의미한다. 대흑벽이 아스달과 이아리크를 자연적으로 격리시켜놓은 상황, 와한족의 씨족할머니인 늑대할머니가 바로 그 문명을 전파한 인물. 그는 언어를 주었지만 다만 아스달족이 걸어간 문명의 길과는 다른 길을 걸어가려 했다. ‘씨앗의 지혜를 배우되 기르지 말고, 동물과 이야기를 나누되 길들이지 말라’는 경고가 그것이다. 그건 아스달족이 만들어가는 문명이 가진 파괴적인 폭력성을 말하는 대목이다.

 

대흑벽이 아스달족에 의해 거대한 사다리로 연결되었다는 건 그래서 자연적인 삶을 살아가는 이아르크에 본격적인 문명의 파괴가 시작됐다는 걸 의미한다. 그 사다리를 보고 한없이 놀라던 은섬(송중기)은 아스달의 저잣거리에서 닭장 가득 닭들이 들어 있는 사실을 보고는 끔찍해한다. 그리고 그 일들이 동물들의 일만이 아니라 그 곳에 잡혀온 전쟁 노예들의 일이라는 사실과, 어른 아이 상관없이 착취된 그들의 노동력에 의해 그 거대한 대흑벽의 사다리가 만들어졌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는다.

 

이아르크가 자연이라면 아스달은 문명을 의미하고, 그래서 아스달의 노동력을 빼앗기 위한 정복전쟁으로 와한족이 겪는 고통은 문명의 침탈을 의미한다. 그러고 보면 이미 아스달의 계책에 의해 멸종되어 버린 뇌안탈이라는 종족은 이 문명 정복 전쟁의 시작이었던 셈이다. 인간과 뇌안탈의 혼혈인 이그트로서의 은섬은 그래서 이 문명과 자연의 양자를 한 몸에 갖고 있는 존재다. 그는 아스달족처럼 말을 타려 하고, 곡식을 심으려 하지만 와한족의 어머니는 그걸 금기시한다. 하지만 그는 파괴적인 문명에 대한 욕망보다는 자유가 주어지는 자연의 삶을 선택하는 인물이다.

 

반면 아스달의 대칸부대 수장인 타곤(장동건)은 문명과 야망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그는 이아리크 정복전쟁의 선봉장이고, 아스달 사람들에게 추앙받는 인물. 하지만 그의 섬뜩한 야망의 크기는 심지어 그의 아버지인 산웅마저 두렵게 만든다. 그래서 산웅은 심지어 타곤을 제거하려하고, 타곤은 그런 사실을 알고 산웅과 대립한다. 문명의 끔찍함은 아스달에서는 이처럼 가족 간에도 서로를 이용하려는 모습으로 보여진다.

 

결국 <아스달 연대기>가 은섬과 타곤이라는 인물의 대립을 통해 보여주려는 건 자연적인 삶을 침탈해 들어오는 문명과의 마찰음이다. 소유 개념이 생긴 저들은 정복전쟁을 통해 자연적 삶을 살아가던 이들을 노예로 삼고, 이들을 노동력으로 확보해 점점 문명을 키워나간다. <아스달 연대기>는 문화인류학이 연구해왔던 어째서 누군가는 국가로 나아갔고 누군가는 소수 종족으로 머물렀는가를 은섬과 타곤의 대결구도를 통해 담아내려 하고 있다.

 

물론 판타지적인 설정들이 등장하고, 역사 이전의 상상으로 채워진 이야기들이 전개되고 있지만, <아스달 연대기>가 지금의 시청자들에게 전하려는 건 바로 이 부분이다. 그것은 아주 오래전 태곳적부터 시작된 일이지만, 지금도 여전히 진행 중인 일들이기 때문이다. 거대한 문명국들이라고 하는 이들이 실상 그 힘으로 파괴하고 착취하고 있는 많은 것들을 떠올리게 하는 이야기.(사진:tvN)

Posted by 더키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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