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남자를 가진 '두 여자', 서로를 이해하다

남편의 불륜녀, 만약 당신이라면 궁금한가. '두 여자'는 바로 이 모티브에서 시작한다. 하지만 그래서 찾아낸 불륜녀와 조강지처가 드잡이를 하는 장면을 떠올리지는 말자. 이 영화는 그런 통속적인 치정극이 아니다. 오히려 이 두 여자가 서로 만나는 지점에서부터 영화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선회한다.

흔한 치정극이었다면, 불륜 상황에서 나올 수 있는 조합은 두 가지다. 하나는 결국 남편이 뒤늦게 뉘우치고 조강지처로 돌아가거나, 아니면 아예 조강지처를 버리고 불륜녀에게로 가는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제 3의 길을 선택한다. 조강지처와 불륜녀가 만나 여자로서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 것. 

산부인과 의사인 소영(신은경)은 남편 지석(정준호)의 제자이자 불륜녀인 수지(심이영)를 알게 되지만 분노하기는커녕 그런 상황에 놓이게 된 수지의 입장을 이해하기 시작한다. 소영은 수지에게 "너는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 여자"라고 말하고, 그녀의 남편이 자신이 사랑하는 지석인 줄 모르는 수지는 "어떻게 이렇게 멋진 여자를 두고 바람을 피우냐"고 말한다.

즉 불륜이라는 상황을 소영이 마치 자신의 일이 아닌 것인 양 객관화하자 두 여자는 서로의 처지에 대해 공감하게 되었던 것. 두 여자가 여행을 떠나 벌거벗은 채 함께 목욕을 하며 서로의 이야기에 웃고 울고 화내는 시퀀스는 그래서 이 영화를 가장 핵심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조강지처니 불륜녀로 규정되던 그녀들의 관계는 훌훌 벗겨지고 대신 같은 여성으로서의 존재가 서로를 바라보게 된다.

이 영화는 한 남자와 두 여자가 함께 누워있는 포스터가 환기하는 것처럼 상당히 노출수위가 높고 파격적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하다기보다는 슬프게 느껴지는 베드신은 영화가 표피적인 자극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몸짓 이면에 숨겨진 두 여성의 절절한 심리를 진지하게 포착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은경은 분노와 공감이 교차하는 이 복잡한 심리를 온몸을 던져 표현해낸다. 어찌 보면 두 여자 사이에서 이리저리 휘둘리는 남자에 머무를 수도 있었던 지석이라는 캐릭터를 그저 피상적인 불륜남 이상으로 연기해낸 정준호의 존재감도 빛난다. 물론 수지라는 또 하나의 축을 제대로 연기해낸 심이영의 때론 풋풋하고 때론 요염한 면면도 빼놓을 수 없다. 바로 이들의 팽팽한 연기가 균형을 이루었기에, '두 여자'가 보여주는 독특한 공감이 가능해졌다.

이 영화가 바라보는 사랑에 대한 시선은 비관적이다. 소영의 내레이션을 통해 전해지듯 사랑은 결국 부질없는 환상이고 결국 우리 모두는 혼자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 사랑에 대한 비관적인 시선 끝에 이 영화는 여성과 여성 사이에 어떤 동지의식 같은 것을 그려 넣는다. 소영과 수지가 긴 터널을 지나 어렵게 잡게 된 그 두 손이 억지스럽지 않고 오히려 잔잔한 여운으로 남는 것은 이 영화의 공감이 적지 않다는 반증일 것이다.

‘검사 프린세스’가 일과 사랑을 다루는 방식

"나처럼 예쁘고 젊고 날씬한 여자가 좋다는데 왜 그렇게 튕겨요. 기분 나쁘게. 아니. 진짜로 진짜로 나에게 아무런 관심이 없어요?" 마혜리(김소연)는 순수하지만 개념이 조금 없다. 자식 딸린 홀아비인 윤세준(한정수)이 자신을 밀어내는 것을 이해할 수 없어한다. 거기에 대고 윤세준이 한 마디 쏘아댄다. "한번 자고 싶단 생각은 들어. 그런 생각 들라고 이러고 다니는 거 아냐?" 늘 공주처럼 차려입고 다니는 마혜리를 에프엠 검사 윤세준이 이해할리 만무다. 거기에 대해 마혜리는 말한다. "나는 소중하니까요. 내 몸이, 내 자신이 얼마나 소중한 건지 아니까요. 남이 뭐라든 남이 어떻게 보든 그따위 거 개나 물어가라고 그래요."

1백 킬로에 육박하는 몸으로 세상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당하고, 자신이 사랑했던 남자가 사실은 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와 연인 관계였다는 것을 알게 됐을 때의 그 참혹함을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그래서 피나는 노력으로 살을 뺀 자신의 몸이, 또 자신이 얼마나 소중한 지를. 그래서였을까. 검사라는 직업을 얻게 된 마혜리에게 여전히 소중한 것은 조직도 아니고, 억울한 누명을 쓰고 온 피해자도 아니다. 오직 자기 자신이다.

미니스커트 차림의 첫 출근에 진정선(최송현) 검사가 시정을 요구하자, "시정했어요. 어제 입었던 치마보다 1센티 길어요."하고 답하고, 6시면 칼퇴근 하는 마혜리를 윤세준 검사가 나무라자, "제가 왜 야근을 해야 돼요? 저 공무원이구요. 공무원 법정근무 시간 있구, 야근한다고 월급 더 나오는 것도 아닌데요?"하고 당당히 무개념의 말을 할 수 있는 건 그 때문이다. 그러니 적어도 그녀에게 있어서 자신은 '또라이'도 아니고 '능력 없는 사람'도 아닌 셈이다.

그녀는 검사라는 직업을 얻었지만 여전히 공주이고 싶어 한다. 그리고 윤세준의 말대로 그것이 그렇게 비난받을 만한 일도 아니다. 여성으로서 자신을 예쁘게 가꾸겠다는 것이 왜 나쁜가. 물론 그녀의 과한 자기애는 타인에게 피해를 끼치지만, 나쁜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런 조직생활이 처음이고 상황자체를 모르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들이다. 하지만 그녀는 윤세준 검사의 말처럼 "한 사람의 인생이 내 손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는 자신의 행동이 조심스러워진다. 공주로서의 삶과 검사로서의 삶은 부딪치기 시작하고, 그녀는 공주로서의 즐거움만큼 검사로서의 보람도 크다는 것을 알게 된다.

'검사 프린세스'는 공주가 검사가 되는 성장 과정을 다루는 드라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공주를 포기하는 것은 아니다. 그녀는 여전히 윤세준 검사가 따라주는 와인을 함께 마시는 달콤한 꿈을 꾼다. 하지만 윤세준 검사는 3년 전 상처(喪妻)한 후로 거기서 벗어나지 못해 사랑에 담을 쌓고 있는 인물이다. 그러니 그는 어쩌면 마혜리와는 정반대에 위치해 있는 지도 모른다. 그가 과거의 뚱뚱했던 마혜리가 겪었던 일과 그 아픔을 이겨내기 위해 피를 깎는 다이어트를 했던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는 아마도 '자신을 아끼고 노력하고 이뤄내는' 마혜리를 진정으로 "멋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과거를 놔줘야 그 자리에 미래가 오는 거야." 윤세준 검사는 이렇게 말하지만, 정작 자기 스스로 "윤세준 니가 그런 말할 자격이 있냐?"고 되묻는 사람이다. 그는 여전히 과거 속에 있기 때문이다. '검사 프린세스'는 따라서 마혜리가 공주에서 검사가 되는 그 성장과정만을 다루는 드라마가 아니다. 이 드라마는 또한 과거의 고통 때문에 검사로서 만의 삶을 살아가는 윤세준이 다시 사랑을 해나가는 성장드라마이기도 하다. 그러니 마혜리의 성장드라마와 윤세준의 성장드라마가 겹쳐지는 지점은, 이 드라마가 꿈꾸는 세상이 검사와 공주 어느 한 쪽을 택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준다.

검사와 공주. 이 두 존재는 여성의 입장으로 보면 일과 사랑의 또 다른 표현이다. 사회생활을 하는 여성들은 이 두 가치가 사실은 상충되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상충되는 것처럼 느끼는 경우가 많다. 일을 위해 사랑을 희생시키고, 사랑 때문에 일을 할 수 없는 사회의 보이지 않는 강요는, 마치 직장 내에서는 공기처럼 당연한 것처럼 떠다닌다. 또한 당당한 여성성으로서의 승부라기보다는 남성들이 만들어놓은 틀에서 승리하기 위해 남성화되어버리는 여성이 바람직한 것이 아닐 것이다. 물론 판타지로서 과장된 면이 있지만, 검사와 공주 둘 다를 희구하는 마혜리의 고군분투가 의미 있어 보이는 건 그래서일 것이다.

사극의 힘, 여성 시청층의 힘, 스토리텔링의 힘

26회 만에 40%에 도달한 ‘선덕여왕’의 시청률 상승이 예사롭지 않다. 이제 반환점을 돈 상태로 드라마의 스토리구조를 기승전결로 봤을 때, 이제 겨우 승에 해당하는 이야기를 다루는 시점의 시청률이기 때문에, 한층 고조될 극의 정황상 50%를 예감하는 것은 비현실적인 것이 아닐 것이다. 보통 드라마라면 꿈도 꾸지 못할 시청률 50%를 쉽게 얘기하게 만드는 ‘선덕여왕’만의 힘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사극의 힘 - 2000년 들어 50% 넘긴 드라마, 사극이 100%
그 첫 번째 이유는 기존 드라마들의 시청률이 통계적으로 말해준다. 2000년대 이전, 드라마 전성시대에는 흔하게 볼 수 있었던 50% 시청률의 드라마는 2000년을 넘기면서 사실상 찾기가 어려워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물에 콩 나듯 50% 시청률의 드라마를 발견할 수 있으니 그것이 바로 사극이다. 2000년 시청률 63%에 도달했던 ‘허준’, 2001년 60% 시청률의 ‘태조왕건’, 2004년 57%의 ‘대장금’, 2006년 51% 시청률의 ‘주몽’이 그것. ‘선덕여왕’에서 50% 시청률의 드라마를 기대하게 하는 것은 바로 이 사극이 가지는 특유의 힘 때문이다.

사극은 타 장르와 비교해 스토리의 힘이 셀 수밖에 없다. 현대극의 담론이 상대적으로 작은데 비해 사극은 그 담론이 운명과 생사, 국가에 연결되는 거대담론을 다룬다. 갈등의 대결국면에서 현대극의 주인공들이 감정적인 상처를 겪게 된다면, 사극에서의 대결에서는 그 결과가 죽음에 이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만큼 극의 힘은 세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사극이 주는 볼거리의 힘 또한 무시할 수 없다. 과거라는 시공간이 주는 이색적인 영상의 힘은 사극에 보다 강력한 힘을 실어주는 요소이다.

여성 시청층의 힘 - 3,40대 여성을 잡아야 시청률이 오른다
AGB 닐슨이 발표한 ‘선덕여왕’의 시청률 분석자료를 보면 여자 30대가 가장 높은 시청 점유율을 보이고 있고, 그 다음으로 여자 40대가 시청률 분포가 높았다. 이처럼 ‘선덕여왕’의 주 시청층이 3,40대 여성층이라는 점 역시 이 드라마의 시청률을 공고하게 해주는 요인이다. 이미 시청률의 키를 쥔 시청층으로서 3,40대 여성층이 주목되는 경향은, 드라마들의 30대 여성 편향으로도 읽어낼 수 있다.

‘선덕여왕’이 사극의 힘에 여성 시청층의 힘을 덧붙이게 된 것은 이 사극이 갖는 진정한 여성사극의 면모에서 비롯된다. 미실(고현정)과 덕만(이요원)의 여성성을 내재한 카리스마의 대결은 여성 시청층은 물론이고 남성들의 시선까지 사로잡는 요인이 된다. 주 시청층을 3,40대 여성층으로 잡으면서도, 동세대 남성층의 시선까지 잡아두게 만드는 매력적인 남성 캐릭터들의 카리스마도 시청률에 고무적인 부분이다. 김유신(엄태웅), 비담(김남길), 알천랑(이승효) 같은 캐릭터는 여성 시청층에게도 매력적이면서 동시에 남성 시청층을 감정이입하게 만드는 캐릭터들이다.

스토리텔링의 힘 - 김영현, 박상연 작가의 환상적인 콤비 플레이
무엇보다 이 사극의 50% 시청률을 꿈으로 보지 않게 만드는 것은, 이 사극만이 갖는 강력한 스토리텔링의 힘이다. 매력적인 캐릭터의 창조와 적절한 미션의 배치, 그리고 적재적소적기에 등장하는 캐릭터와 사건은 이 사극의 스토리텔링을 강력하게 만든다. 자칫 복잡해질 수 있는 다양한 인물들의 사건들을 미실과 덕만으로 끌어 모아 단순화시키는 스토리텔링의 능력과 우리 식의 드라마들이 갖는 감정선에 충실한 이야기진행은 이 사극의 몰입도가 높은 이유다.

이것은 이미 ‘대장금’으로 시청률 50%가 훌쩍 넘는 국민드라마를 써본 김영현 작가의 경험과, ‘히트’를 통해 호흡을 이미 맞춰본 박상연 작가가 가지는 남성적 시각과 디테일의 부여가 조화를 이룬데서 나온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시청률은 말 그대로 수치에 불과한 것일 수 있다. 하지만 40%를 넘기고 50%를 향해 달려가는 ‘선덕여왕’의 시청률이 의미 있는 것은, 그것이 논란이나 막장 같은 편법적인 방식에 의한 것이 아니라, 이처럼 정공법적인 드라마의 힘에 의한 것이라는 점에 있다. ‘선덕여왕’에 있어서 시청률 50%가 꿈이 아닌 것은 그 명백한 성공방정식을 드라마가 이미 탑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돌아온 일지매’, 그 모성 부재의 세계

‘돌아온 일지매’에서 심마니의 딸로 살아가던 달이(윤진서)는 우연히 만나게 된 일지매(정일우)에게 대뜸 이렇게 말한다. “자식. 너 예쁘게 생겼다. 계집애 같애... 일지매. 무슨 이름이 계집애 같애... 눈썹이랑 코, 입 모두 여자 애 같애.” 그녀의 아찔한 도발에 일지매는 진짜 계집애(?)처럼 답한다. “놔라. 부끄럽다. 멋쩍다.” 그런데 다음 시퀀스로 일지매는 아예 달이의 옷을 입고는 마을로 내려가 닭을 훔치는 장면이 나온다. 이 여장한 일지매는 어찌 보면 이 사극에서 생뚱맞아 보인다. 왜 굳이 여장까지 해 보일까. 재미있어서? 일지매가 본래 꽃미남의 원조라서?

고우영 원작의 ‘일지매’를 보면 그 얼굴은 고우영 화백이 즐겨 그리던 여성 캐릭터의 얼굴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달이가 지적한 것처럼 ‘일지매’라는 이름 또한 여성적이다. 훗날 일지매가 일을 치르고 나서(?) 사라지며 남겨놓는 매화 한 가지도 이 활극에 어울리지 않게 자못 여성적이다 못해 미적이기까지 하다. 왜 일지매라는 특별한 영웅은 굳이 여성의 얼굴을 고집하고 있는 것일까.

일지매, 그 모성부재의 세계
‘돌아온 일지매’가 그리는 세계에는 모성이 삭제되어 있다. 일지매는 태어나자마자 어머니와 생이별을 하고, 결국 버려지게 되었다. 저자거리의 걸인인 걸치(이계인)는 버려진 일지매를 데려다 젖동냥을 해가며 키운다. 이 모성 없는 세상에 버려진 일지매와, 그를 키워낸 걸인 아버지 걸치라는 설정은 이 드라마가 그리는 어머니와 아버지의 모습을 압축한다.

모성 부재의 세계 속에는 두 개의 아버지 모습이 중첩되어 있다. 하나는 아들을 눈앞에서 부정해버리는 비정한 아버지이고 다른 하나는 피 한 방울 안 섞였어도 간 쓸개까지 다 내어줄 정도로 지극 정성인 걸치라는 아버지다. 비정한 아버지는 어머니를 내치면서(혹은 방조했고) 일지매 앞에 모성부재의 세계를 만들어냈다. 일지매는 그 부재한 모성을 야성처럼 품고 있는 달이를 만나지만 그녀 역시 아버지들의 세계 앞에 목이 떨어진다.

일지매가 찾는 것은 바로 그 아버지로 인해 잃어버린 모성의 세계다. 반 미쳐 짐승이 되어버린 일지매를 굴(이 드라마 속에는 굴, 즉 자궁의 이미지를 많이 사용한다. 달이와 만나던 동굴 같은)에 가둬버리며 열공스님은 “그 곳이 바로 네 어미 뱃속이다”라고 말한다. 열공스님은 일지매를 가둔 것이 아니라, 그가 그토록 원하던 모성의 세계로 되돌려 다시 태어나게 한 것이다. 그가 밖으로 나오게 될 즈음, “너는 누구냐”고 묻는 열공스님의 질문에 일지매는 말한다. “저는 이입니다. 어미를 찾아 옷섶을 헤매던 더러운 이.”

모성부재의 세계, 서민 아버지들의 모습은?
이 사극에는 모성을 빼앗아버린 아버지와 상반되는 걸치와 열공스님 이외에도 또 존재하는 아버지들이 있다. 그것은 구자명(김민종), 배선달(강남길) 같은 서민적인 인물들이다. 이들은 권력의 핵심에는 근접하지 못하지만 그럭저럭 살아가며 문득문득 부성애를 끄집어낸다. 구자명은 포도청의 냉철한 수사관이지만 또 한 편으로는 힘없는 이들에게 손을 내밀어주는 따뜻함을 가진 인물이기도 하다. 일지매 앞에서 그는 마치 아버지와 같은 걱정을 해준다.

한편 배선달과 차돌이(이현우)는 일지매의 모성부재 상황을 또 다른 버전으로 반복한다. 차돌이는 부모가 없는 천애고아에 동네 왈패들에게 약취를 당하던 아이. 배선달은 차돌이를 자신이 데려다 키우겠다며 아버지의 정을 보인다. 그런데 이 아버지의 상을 보이는 구자명과 배선달 같은 캐릭터는 어딘지 고개 숙인 모습들이다. 구자명은 법을 집행하는 위치에 있지만 법보다 우위에 있는 권력 앞에서 무기력하고, 배선달은 화려한 무예의 세계에 빠져있지만 자신 하나 지켜낼 힘이 없는 소시민이다.

일지매, 여성의 얼굴로 서민들을 품에 안다
모성이 삭제되어있고, 자궁의 이미지가 강조되며, 일지매라는 캐릭터가 여성의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는 것만 보더라도 이 사극이 지향하는 세계가 어떤 것인지를 짐작할 수 있다. 그것은 부재한 모성의 회복이다. 일지매는 바로 여성의 얼굴로 굶주린 서민들에게 먹을 것을 챙겨다 주는 어머니와 같은 존재다. 그러니 이 일찌감치 어머니 없는 세계에 내던져진 일지매가 그 먼 길을 돌아 스스로 품게 되는 것이 바로 모성이다.

국가를 흔히 어머니에 비유하는 것은 그 백성들을 자식으로 여기는 마음을 꿈꾸기 때문이다. 하지만 ‘돌아온 일지매’의 세계 속에서 국가는 백성을 착취하는 아버지(당대 가부장적 사회 속에서 아버지는 종종 권력을 좇는 욕망의 화신으로 그려진다)의 이미지로 표상된다. 그 아버지는 일찍이 어머니(의 마음)를 몰아내고 그 자리에 앉아 있으며, 따라서 일지매는 소년기 그 어머니를 찾아다니다 결국에는 서민들의 어머니를 자처하게 되는 것이다.

반면 가부장적 세계와는 거리가 먼, 서민들의 아버지들은 그저 고개를 숙인 채 측은한 마음으로 서민들의 삶을 바라본다. 그들에게 어머니는 이미 살해된 존재처럼 여겨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지매를 통해 그 모성 회복의 가능성을 확인한 그들도 변하게 된다. 이것은 일지매가 왜 여성의 얼굴을 하고 있는가에 대한 실마리를 전해준다. 그리고 그것은 또한 모성을 형상화한 영웅 일지매가 여타의 영웅들과는 다른 특별한 존재인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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