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상회담>, 스튜디오에서도 연예인이 아니어도

 

벌써 1주년이란다. 짧다면 짧은 시간이지만 그 1년 간 <비정상회담>이 만들어낸 파장은 적지 않았다. “정상인 듯 정상 아닌 정상 같은 너로 시작했지만 <비정상회담>은 적어도 토크쇼의 신기원을 만들었고, 그 분야에서 정상의 위치에 올랐다. JTBC라는 플랫폼이 지상파와는 다르지만 그 플랫폼의 인지도를 만들어내는데 있어 <비정상회담>은 마치 돌연변이 같은 힘을 발휘한 것이 사실이다.

 


'비정상회담(사진출처:JTBC)'

<비정상회담>이 이끌어낸 건 외국인 출연자 전성시대. 이전까지만 해도 대중들이 방송을 통해 접해온 외국인들은 그저 한국말을 잘하는 신기한 존재들이었다. 하지만 <비정상회담>은 달랐다. 그들은 각국의 문화를 소개해주고 또 우리 문화에 대한 각자의 식견을 밝히는 지적인 인물들이었고, 한편으로는 언제든 재치 있는 끼로 즐거움을 줄줄 아는 존재들이었다. 이 진지함과 경쾌함의 조화 속에 우리가 갖고 있던 막연한 외국인들의 이미지는 좀 더 가까이 대중들에게 다가올 수 있었다.

 

<비정상회담>이 놀라운 건 이 회의 테이블(?)에 올라온 토론의 주제가 논술시험에 내놔도 괜찮을 법한 것들이었다는 점이다. 외국인들이 각국의 문화에 맞춰 다채롭게 바라보는 주제에 대한 시선은 시청자들의 식견을 한층 넓혀주었다. 가벼운 문화의 차이에서부터 안락사나 동성애, 낙태, 전쟁 문제 등에 이르기까지 이 테이블 위에는 뭐든지 오를 수 있었다. 그것은 정상회담이 아닌 비정상회담이라는 타이틀을 달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비정상회담>이라는 예능의 테이블은 무거운 주제도 즐거운 토론이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 토론 프로그램에서는 결코 볼 수 없었던 일이다.

 

외국인들이 나오고 또 그 토론 주제가 진지한 문제들이지만 그것이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는 것은 <비정상회담>이 지상파 토크쇼들에게 던지는 질문이기도 했다. 늘 연예인들이 나와 그들의 시시콜콜한 사생활을 털어놓는 것이 지상파 토크쇼가 오래도록 해왔던 것들이다. 한 때는 그것이 시청자들의 시선을 잡아끌었지만 지금은 식상해진 것이 사실. <비정상회담>은 연예인이 아니어도, 또 사생활 토크가 아니어도(아니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충분히 된다는 걸 보여줬다.

 

하지만 뜨거운 화제에 오른 만큼 논란도 많았던 <비정상회담>이었다. 기미가요 논란이 터지기도 했고, 에네스 카야의 사생활 논란은 프로그램의 위기설을 만들기도 했다. 여러모로 외국인들이라는 새로운 인물군들을 출연시키면서 생겨난 논란들이었다. 지금껏 어떠한 전례도 없었기 때문에 이 경험은 향후 <비정상회담>에는 꽤 쓴 약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출연자들에 대한 관리와 이문화를 다룰 때 조심해야 될 민감한 부분들에 대해 <비정상회담>은 비싼 수업료를 낸 셈이다.

 

무엇보다 <비정상회담>의 성과는 그간 야외 예능의 전성시대에 가려 점점 힘이 빠져가고 있던 스튜디오 예능에 그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점이다. 스튜디오가 문제가 아니라 그 안에서 다뤄지는 내용이 문제라는 것. 새로운 인물군을 찾고 콘텐츠를 달리하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는 걸 <비정상회담>은 보여줬다.

 

이제 겨우 1년이 지난 것이지만 <비정상회담>이 만들어낸 길은 의외로 넓고 새롭다. 그 길의 연장선으로서 <냉장고를 부탁해> 같은 프로그램이 가능했을 것이다. 외국인 대신 셰프를 세우고 그들의 콘텐츠를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스튜디오물을 만든 것이 이제는 셰프의 전성시대로까지 이어지고 있지 않은가. 스튜디오물의 돌연변이처럼 나타난 <비정상회담>1년은 그래서 지금 현재 예능의 변화에 상당한 영향을 주었다고 말할 수 있다. 앞으로의 1년이 더 기대되는 프로그램이다.



셰프들이 대세, 정보와 쇼와 인성까지 갖췄다

 

셰프들의 시대가 맞긴 맞나보다. SBS <힐링캠프>에서 이경규는 요리사들의 시대가 왔다고 말했다. 그건 그저 그날 출연한 이연복 대가와 최현석 셰프를 위한 멘트가 아니었다. 월요일 밤, <힐링캠프>는 물론이고 JTBC <냉장고를 부탁해> 그리고 MBC <다큐스페셜>이 모두 셰프들을 방송에 내보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힐링캠프(사진출처:SBS)'

이것은 단지 월요일만의 얘기가 아니다. 화요일에는 tvN <집밥 백선생>의 백종원 셰프가 나와 네 명의 요리무식자들을 상대로 쉽지만 효과적인 요리 비법을 알려준다. 목요일 올리브 TV에서는 심영순, 백종원, 최현석 셰프가 심사위원으로 자리하는 <한식대첩>이 방영된다. 토요일 밤 MBC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서도 단연 주목받는 건 백종원의 쿡방이다.

 

항간에는 너무 이 프로그램 저 프로그램에서 셰프들을 캐스팅해 쉽게 방송을 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온다. 사실이다. 이미 하나의 방송 트렌드가 되어버린 상황이기 때문에 셰프들을 출연시키면 확실히 주목을 끌 수 있다. 웬만한 연예인을 섭외하느니 셰프가 훨씬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셰프들은 기본적으로 자신만의 콘텐츠를 갖고 있다. 그것은 요리 비법이다. 그것을 선선히 알려주고 때로는 쇼를 보여주듯 시연을 해주는 것만으로도 방송은 흥미로워진다. 일종의 정보와 쇼가 결합된 프로그램이 되는 것. 여기에 자연스럽게 먹방이 이어지고 대결구도까지 조미료처럼 처지면 금상첨화다. 요리의 즐거움과 함께 마치 스포츠 경기를 보는 듯한 긴장감까지 만들어주니 말이다.

 

그런데 <힐링캠프><다큐스페셜>을 들여다보면 셰프의 전성시대가 단지 요리라는 콘텐츠 때문만은 아니라는 게 느껴진다. 물론 요리가 주는 푸근함과 넉넉함, 요리하는 모습이 주는 그 신기함이 어떤 아우라를 만드는 건 사실이지만 그것보다 주목되는 건 이들의 인간적인 면모다.

 

<힐링캠프>에 출연한 최현석 셰프와 이연복 대가는 너무나 상반된 매력을 드러내 보여주었다. 허세라고 불릴 정도로 유쾌한 요리를 보여주는 최현석 셰프는 멘트에서도 자신감과 진지함이 묻어났다. 물론 거기에는 시청자들을 즐겁게 하기 위한 유머 코드가 섞여 있었지만 그 근원은 결국 자신감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반면 이연복 대가는 그 인간적인 매력이 돋보였다. 고생했던 과거의 경험들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그 푸근함은 소탈함과 소박함의 끝을 보여주었다. 이런 상반된 매력은 자신들의 음식점에서의 모습에서도 드러났다. 최현석 셰프가 저 드라마 <파스타>에서의 카리스마 넘치는 셰프 스타일이라면, 이연복 대가는 솔선수범해 굳은 일을 도맡아 하는 스타일이었다.

 

결국 이들 셰프들은 요리라는 정보와 함께 요리기술이 주는 쇼적인 요소 게다가 자신들의 인성까지를 보여줌으로써 전성기를 갖게 됐다는 점이다. 이건 최근 점점 방송에서 입지가 줄어들고 있는 연예인들이 한번쯤 생각해봐야 하는 지점이 아닐 수 없다. 과거 연예인들은 말주변이 좋거나, 웃기거나, 개인기가 있으면 그걸로 족하다고 여겨졌었다. 하지만 지금의 시청자들은 무언가 방송을 통해 얻어가고 싶어한다. 콘텐츠를 요구한다는 것이다.

 

또한 지금의 시청자들은 그저 연기하듯 자신의 역할을 보여주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그들의 인성을 들여다보고 거기에 공감하고 싶어 한다. 좀 더 자신의 진면목을 드러내주고 그것이 인성적으로 호감을 갖게 해줘야 한다는 점이다. 셰프들의 시대는 그냥 만들어진 트렌드가 아니다. 거기에는 달라진 대중들의 요구가 느껴진다. 이러한 셰프들의 면면은 이제 연예인들이라면 한번쯤 고려해봐야 하는 것이 아닐 수 없다.

 

<장영실쇼>, 과학과 상상력을 연결한 흥미로운 과학토크쇼

 

이제 3회를 했을 뿐이지만 KBS <장영실쇼>가 보여준 비전은 우리 시대 전체를 아우르는 것이었다. 비록 몇 평 남짓 되는 스튜디오에서 찍혀지는 토크쇼 형식의 프로그램이지만 이 토크쇼에서 나오는 이야기와 상상력은 전 세계를 아우르는 글로벌한 것이었다. 장영실이라는 명명이 지칭하는 것처럼 이 프로그램은 과학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지만 그것은 과학을 뛰어넘어 예술과 종교, 철학 등을 아우르는 통합적인 학문의 폭을 보여주었다.

 

'장영실쇼(사진출처:KBS)'

사실 3D프린터 하면 또 다른 프린터의 하나 정도로 여기고, 드론이라고 하면 가끔 예능 프로그램에서 방송카메라로 등장하던 그것을 떠올리고, 사물인터넷이라고 하면 광고에서 봤던 저 스스로 켜지는 가로등 정도를 떠올리는 게 우리네 보통 사람들의 생각일 수 있다. 하지만 <장영실쇼>는 이러한 발명 혹은 발견이 가져올 거대한 세상의 변화를 다양한 시각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우리의 시야를 넓혀준다.

 

3D프린터는 우리가 프린터하면 무언가를 출력하는 정도의 프린터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모니터로 상상했던 이미지들을 물질의 차원으로 직접 만들어내는 세상을 뜻하는 것이고, 드론은 그저 하늘에 띄우는 아이들 장난감 같은 것이 아니라, 하늘이라는 공간에 열려진 무한한 가능성의 세계를 뜻하는 것이다. 사물인터넷 역시 마찬가지다. 사물인터넷은 그저 하나의 편의성을 얘기하는 개념이 아니라 사물과 사물이 이어지는 초연결사회가 가져올 대변혁을 뜻하는 것이다.

 

마샬 맥루한이 미디어는 메시지라고 하면서 그 미디어의 개념을 TV나 라디오 같은 것에 국한시키지 않고 전신주나 도로, 자동차 같은 거의 모든 사물로 확장시켜 바라봤던 것처럼, <장영실쇼>가 바라보는 새로운 과학적 발견은 거기에 머물지 않고 사회 전체를 변화시킬 하나의 단초로서 바라본다. 이것은 기존의 과학프로그램들이 과학의 발견 그 자체에 더 집중하는 것과는 사뭇 다른 접근방식이다. 과학에 상상력을 덧붙이고 미래 사회를 예측하는 일은 과학의 편의성의 차원을 넘어 세상을 바꾸는데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방송 프로그램이 점점 예능화 되어가는 요즘, 그럴 듯한 과학프로그램 하나를 찾기가 힘든 게 현실이다. 연예인들이 나와 저들끼리의 신변잡기를 늘어놓는 토크쇼들은 대중들에게 식상하다는 평가를 받으면서도 계속 쏟아져 나온다. 이 와중에 우리의 재미란 표피적인 것으로만 길들여진다. 하지만 재미에 어찌 감각적인 재미만 있을까. 거기에는 지적인 재미도 있고 상상력이 주는 재미도 있기 마련이다.

 

<장영실쇼>는 그 지적 상상력의 재미를 선사하는 프로그램이다. 조금 어렵게 생각했던 과학 지식이나 너무 단순하게 바라봤던 과학적 발견들을 한번쯤 더 들여다봄으로써 그것을 통해 우리의 미래를 가늠해보는 일은 흥미로운 일이 아닌가. 게다가 이것은 어쩌면 국가경제의 미래와도 밀접한 일이 될 것이다. 과학적, 지적 호기심과 상상력이 없는 이들에게 어찌 미래가 있을 수 있을까.

 

어찌 보면 <장영실쇼> 같은 프로그램이야말로 KBS라는 공영방송의 정체성을 가장 잘 드러내주는 프로그램일 것이다. 모두가 당장의 상업적 이익을 위해 달려가는 와중에 정작 필요한 정보를 주는 교양 프로그램들은 점점 사라지고 있는 형국이다. 의미 없는 연예인들의 신변잡기만 늘어놓는 토크쇼를 하느니 진지하면서도 흥미로운 지적 토크쇼 하나쯤 있어야 하지 않을까.

 

서장훈, <동상이몽>에서 연예인 역할 보여줘

 

SBS <동상이몽 괜찮아 괜찮아(이하 동상이몽)>는 부모 자식 간의 서로 다른 입장을 각각의 관점으로 보여주는 프로그램이다. 프로그램은 스튜디오에 출연한 방청객들의 투표를 통해 어느 쪽의 입장에 더 동조하는가를 보여주긴 하지만 사실 그런 결과는 별로 중요한 게 아니다. 또 상대방의 입장을 완전히 이해하는데 도달하지 못한다고 해서 큰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다. 제목처럼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이니까 괜찮아라고 보듬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걸 이 프로그램은 말해준다.

 

'동상이몽(사진출처:SBS)'

그러니 이 프로그램의 온전한 주인공은 여기 출연하는 일반인들일 수밖에 없다. 그러니 여기 함께 자리해 있는 유재석이나 김구라 같은 연예인 MC들의 역할은 애매해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번 3회에 출연한 게스트 서장훈은 이 프로그램에서 연예인들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가를 제대로 보여줬다. 그것은 단지 일반인 출연자들에 대한 각자의 입장을 드러내는 것뿐만 아니라, 왜 그런 입장을 갖게 됐는가에 대한 타당한 근거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3회의 주인공은 현대무용계의 김연아라고 불리는 천재 신예 김현아와 그 엄마다. 1등에 집착하며 칭찬에 인색한 엄마 때문에 힘들다는 김현아양의 토로와, 딸을 위해 모든 걸 헌신하는 엄마의 입장이 첨예하게 부딪쳤다. 여기에 대해 서장훈은 좀 강한 어조로 딸을 몰아붙이는 엄마를 비판했다. “나중에 큰 후회를 하실 것이라는 얘기까지 털어놨다. 그것은 엄마의 입장을 대변하는 편집분이 보여질 때도 마찬가지였다.

 

서장훈이 이렇게 단호한 입장을 보이자 김구라와 유재석의 역할 또한 살아났다. 김구라는 서장훈과 각을 세우며 엄마의 입장을 강한 어조로 대변했다. 유명한 선수들 뒤에는 항상 헌신적인 부모들이 있었다는 걸 토로했다. 서장훈과 김구라가 첨예하게 대립하자 유재석 역시 할 일이 생겼다. 그는 두 사람의 대립을 유도하거나 또는 중재함으로서 균형을 맞추는 역할을 보여줬다. 결국 서장훈이라는 게스트가 강하게 자기 입장을 드러냈기 때문에 이 모든 구도가 가능해졌다는 것이다.

 

그런데 서장훈이 강하게 엄마 입장을 반대한 것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는 게 그의 이야기를 통해 밝혀졌다. 그는 평생을 자신의 농구 인생과 함께 한 부모님을 안타까워하고 있었다. 이미 아들이 은퇴했지만 여전히 헛헛한 마음을 다른 농구시합을 보며 거기서 아들의 과거 모습을 찾는 것으로 달래고 있다는 것. 자신이 방송에 나오게 된 이유도 그 헛헛함을 달래드리고 싶었기 때문이라는 얘기도 털어놨다. 결국 서장훈이 엄마 입장을 반대한 것은 그 엄마가 스스로의 인생을 더 즐겼으면하는 마음에서였다.

 

서장훈이 이렇게 자신의 입장을 자신의 이야기를 통해 드러내는 지점은 <동상이몽>의 그간 부족했던 한 조각을 채워주기에 충분했다. 그것은 여러 사연을 갖고 무대에 올라오는 일반인 출연자들의 이야기에 가장 현실적인 이야기를 해줄 수 있는 연예인 게스트를 앉힘으로써 일반인과 연예인의 이야기가 서로 울릴 수 있게 해주는 일이었다. 이렇게 확실한 자기 입장을 드러낼 수 있는 연예인을 세우게 되면 김구라와 유재석의 역할 또한 공고해진다는 것을 서장훈의 출연은 보여줬다.

 

서장훈이 앉았던 그 자리는 그래서 <동상이몽>의 묘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그 자리는 일반인들의 이야기를 공감하는 자리이면서 동시에 연예인들도 일반인들과 다를 바 없는 고민을 갖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자리이기도 하다. 향후 <동상이몽>이 이 자리를 잘 활용한다면 최근 예능의 새로운 경향으로 드러나고 있는 일반인 트렌드에 연예인들이 어떻게 함께 공존할 수 있는가에 대한 한 가지 해법이 될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