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상이몽>, 균형감각 유지가 관건이다

 

SBS <동상이몽>은 어떤 사안에 대한 서로 다른 시각차를 극적으로 보여주는 프로그램이다. 어느 한 욕쟁이 소녀의 이야기는 엄마의 관점으로 보면 심지어 집안에서도 쉴 새 없이 욕을 해대며 그것이 그냥 일상어라고 말하는 소녀를 전혀 이해할 수 없게 된다. 하지만 소녀의 관점으로 다시 보게 되자 그녀가 중3 때 눈이 작다고 놀림을 받았으며 그것 때문에 욕을 하게 됐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게다가 잘못한 남동생을 오히려 두둔하며 소녀가 욕하는 것만을 나무라는 엄마의 모습도 살짝 드러난다.

 

'동상이몽(사진출처:SBS)'

사실 관찰카메라 형식으로 되어 있지만 <동상이몽>은 있는 그대로의 사건을 처음부터 보여주는 프로그램은 아니다. 편집을 통해 이해할 수 없는 소녀의 행동을 먼저 부각시키고 나중에 그 이유를 편집된 부분을 보여줌으로 해서 드라마틱한 반전을 만들어낸다. 어찌 보면 악마의 편집처럼 보이지만 결코 <동상이몽>은 그런 자극으로만 흘러가지는 않는다. 당사자들이 가족인데다, 그들이 모두 스튜디오에 함께 자리해있기 때문이다. 관찰카메라의 시선이 보여주는 편향은 극적인 편집을 사용하긴 해도 그것이 거기 서 있는 서로 다른 입장을 표현하는 것만은 분명하다.

 

이 드라마틱한 구성은 그 자체로 극적인 효과를 낸다. 소녀가 욕을 하게 된 이유를 알게 되자 엄마의 얼굴은 금방이라도 울 것처럼 안쓰러운 마음이 묻어나고, 결국 숨겼던 속내를 털어내고 그 마음을 읽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된 소녀는 눈물을 터트린다. 방청석에 앉아 있던 그 개구진 남동생 역시 눈물을 터트리고 사안의 심각성을 이제야 깨달은 아빠도 눈시울이 붉어진다. 일종의 소통 단절이 가져온 오해가 관찰카메라의 관찰을 통해 소통의 물꼬를 여는 것. 그것이 <동상이몽>이 갖고 있는 재미이자 의미다.

 

이 프로그램은 최근 달라지고 있는 예능의 경향들을 기막히게 연결한 하이브리드의 성격을 보여준다. 거기에는 요즘 트렌드라고 하는 관찰 카메라 형식이 있지만 또한 시청자들에게는 익숙하게 보이는 스튜디오물이 존재한다. 토크쇼처럼 보이지만 그들의 토크는 마치 TV를 보면서 수다를 떠는 듯한 모습이다. 그들끼리의 이야기가 아니라 특정한 주제가 드러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유재석과 김구라 같은 톱 MC들이 자리하지만 이 프로그램의 실질적인 주인공은 사연을 갖고 무대로 올라오는 일반인들이다. 즉 최근의 예능이 갖고 있는 일반인 트렌드를 보여주면서 동시에 연예인 MC가 합류하고 있는 모습이다. 유재석과 김구라의 조합도 특이하다. 김구라가 욕에 대해 얘기하며 자신은 과거의 욕 때문에 존경받지 못한다고 경험적인 이야기를 털어놓는 역할이라면, 유재석은 이 서로의 입장이 첨예한 이들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

 

흥미로운 건 이 예능 프로그램이 웃음만을 주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우리 사회의 일단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기회 역시 제공해준다는 사실이다. 욕하는 소녀의 이야기는 학교의 왕따 문제나 학생들의 언어생활을 통해 우리 사회의 일단을 보여준다. 사실 그 어떤 사회 문제에 대한 주제토론보다 이런 여러 입장을 드러내주고 거기에 대해 각자의 의견들을 더하는 형식이 더 효과적이다.

 

<동상이몽>은 이처럼 여러 이질적인 요소들을 하나로 끌어안아 융합시킨 새로운 예능 형식을 갖고 있다. 거기에는 관찰카메라도 있지만 스튜디오의 안정감이 있고 일반인들의 놀라운 사연들이 있지만 연예인들의 재치 있는 입담도 곁들여진다. 재미와 의미는 그 안에서 자연스럽게 공존한다. 이것은 <동상이몽>이 가진 최대의 장점이지만 만만찮은 도전도 있다. 이 많은 요소들이 균형을 이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욕쟁이 소녀의 사연은 <동상이몽>의 가능성을 제대로 보여주었다.

 

도의적 책임 김준호가 타깃이 되는 까닭

 

도대체 김준호는 무슨 잘못을 한 걸까. SBS <한밤의 TV연예>에 나온 김준호는 먼저 인터뷰를 자신도 녹음하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제발 인터뷰한 대로 나갔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곁들였다. 그간 자신이 한 얘기와는 상관없이 근거 없는 추측성 기사들이 나온 것에 대한 일종의 방어심리가 거기서는 느껴졌다.

 

'한밤의 TV연예(사진출처:SBS)'

김준호는 폐업을 결정한 코코엔터테인먼트의 콘텐츠 대표. 이 낯선 직함은 이 회사가 경영과 콘텐츠 부문을 나누고 있다는 걸 말해준다. 회사 돈을 횡령해 도주한 김우종 대표는 경영대표다. 코코엔터테인먼트의 콘텐츠는 대중들이 잘 알다시피 방송가에서는 최고의 주가를 올리고 있다. 전성기를 맞은 이국주가 그렇고, 광고계의 에이스가 된 김준현이 그러하며, 오랜 무명을 털고 이름을 떨친 조윤호가 그렇다. 코코엔터테인먼트의 콘텐츠는 그 어떤 회사보다 우수하다.

 

따라서 그런 회사가 폐업 결정까지 내려지게 된 건 한 마디로 경영 문제 때문이다. 제 아무리 밖에서 일 잘하고 돈을 많이 벌어 와도 안에 새는 바가지가 있으면 소용이 없기 마련이다. 김우종 대표는 콘텐츠 사업(이를 테면 소극장 설립 같은)에 해야 할 투자를 엉뚱하게도 외식사업에 투자했다가 회사에 엄청난 손실을 끼쳤다. 그 사실이 드러나자 며칠 안에 해결하겠다고 말하고는 회사 돈을 빼내 외국으로 도망쳤다.

 

그리고 그 뒤처리는 엉뚱하게도 경영 부실과는 상관없이 콘텐츠를 잘 키워온 김준호에게 떨어졌다. 일부 주주들이 폐업을 결정한 코코엔터테인먼트에 반발하며 김준호에게 책임을 물었다. 사실 이건 방향이 잘못된 것이다. 그들이 책임을 물어야 할 사람은 김준호가 아니라 경영부실도 모자라 돈을 갖고 튀어버린 김우종 대표다. 그런데도 일부 주주들이 김준호에게 책임을 묻는 이유는 분명하다. 그가 이 사태에 있어서 당장 대중들의 눈에 잘 보이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주주들이 갖고 있는 그 주식은 그냥 숫자가 아니다. 거기에는 경영에도 관여할 수 있다는 의미가 들어 있다. 결국 경영부실로 생겨난 이 사태에 대해 주주들 역시 분명한 책임이 있다. 주주들은 코코엔터테인먼트에 투자를 한 것이지 돈을 빌려준 것이 아니다. 투자를 했다면 회사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고 또 돈이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지, 이를테면 김우종 대표가 외식사업에 투자를 하는 것에 대해 잘 알아야하고 또 어떤 경우에는 개입을 하기도 해야 하는 일이다. 그것이 주주로서의 권리이자 의무일 것이다.

 

경영부실의 일차적 책임은 도주한 김우종 대표에게 있고 주주들 역시 2차적 책임을 피하긴 어렵다. 그 결과 회사가 50억 부채를 안고 도무지 회생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면 그것을 감수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김준호의 책임이라면 그 역시 주주로서 이러한 경영 부실에 대해 인지했어야 한다는 것으로 다른 주주들의 책임과 그다지 다르지 않다. 이 상황에서 일부주주가 김준호를 마치 이 회사의 경영자처럼 내세워 공격하는 건 모양새가 이상하다.

 

김준호에게 죄가 있다면 그건 그가 대중들에게 노출되어 있는 연예인이라는 사실일 것이다. 도망친 김우종 대표의 이야기보다 대중들의 귀를 더 쫑긋 세우게 하는 건 김준호의 이야기다. 김준호가 대중들에게 노출되어 있는 연예인이라는 이유로 일부 주주들이 그를 희생양으로 삼는 건 온당치 못한 일이다.

 

대중들의 사랑을 받는 존재로서 그는 어쨌든 벌어진 이번 사태에 대해 도의적인 책임을 지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다. 그런데 그 도의적인 책임을 확대해석해 김준호의 이미지를 공격함으로써 거기서 이번 사태에 대한 어떤 보전을 얻으려는 시도는 너무나 악의적이다. 그나마 콘텐츠를 통해 소속 연예인들을 이만큼 성장시킨 김준호가 대체 잘못한 게 뭐란 말인가.

 

 

클라라, ‘성적 수치심발언이 가져온 후폭풍

 

클라라가 기획사 폴라리스 엔터테인먼트와의 전속계약 취소를 요구하며 그 이유로 내세운 건 다름 아닌 성적 수치심이었다. 클라라는 작년 9월 폴라리스 엔터테인먼트 회장의 언행에 대해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수차례 성적 수치심을 느끼도록 했다전속계약효력부존재확인소송을 냈다.

 

사진출처: 영화 <워킹걸>

소속 연예인과 소속사 간의 전속 계약 분쟁은 늘 있어왔던 일들이다. 그러니 만일 클라라가 그저 폴라리스 엔터테인먼트와의 문제를 그런 계약 분쟁으로 얘기했다면 이 사안은 이만한 파장을 만들지는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가 들고 나온 성적 수치심이라는 발언은 파장을 키웠다. 그것이 어떤 목적을 가진 행동이었든 아니든 상관없이 폴라리스 입장에서는 회사 차원에서도 또 회장 사적인 차원에서도 커다란 타격이 될 수밖에 없는 발언이었다.

 

특히 사람을 관리하고 매니지먼트 하는 기획사에서 성적 수치심같은 발언은 한 방에 회사를 휘청하게 만들 수도 있는 파괴력을 만든다. 연예계에 공공연히 존재하는 성추행이나 성희롱 같은 일들이 그 발언 하나에서 연달아 연상되기 때문이다. 만일 이것이 사실로 밝혀진다면 그런 회사에 매니지먼트를 맡길 연예인은 없을 것이다.

 

게다가 클라라가 가진 이미지는 이 성적 수치심이라는 발언에 상상력을 촉발시켰다. 부정하려고 해도 클라라는 여전히 섹시 이미지가 아이콘화 되어 있는 연예인이다. 그러니 다른 이도 아니고 그녀 측에게서 나온 성적 수치심이라는 말이 얼마나 대중들의 이목을 집중시켰을 지는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그만큼 이 발언은 폴라리스 엔터테인먼트 측에게는 민감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공개될 줄 몰랐던 클라라와 폴라리스 엔터테인먼트 회장 사이에 오간 메시지들이 공개되면서 이 성적 수치심이라는 발언은 고스란히 클라라에게 후폭풍이 되어 되돌아오고 있다. 클라라측은 물론 디스패치가 공개한 내용이 전문이 아닌 편집된 것이라고 말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 메시지들이 보여주는 뉘앙스는 클라라측이 얘기한 성적 수치심과는 정반대의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그 메시지 내용들은 어찌 보면 평범한 계약문제로 야기된 분쟁처럼 보인다. 이중 계약을 하게 된 클라라가 폴라리스 엔터테인먼트 측의 배려와 도움을 요청했고, 그걸 도와주기로 했지만 폴라리스 엔터테인먼트 측에서도 기획사로서 응당 요구할 걸 요구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분쟁. 그 와중에 클라라가 독단적인 행동을 한 부분도 분쟁의 작은 빌미들이 된 것으로 보인다.

 

물론 그 계약 분쟁은 좀 더 자세한 내용들이 밝혀져야 확실한 정황이 드러날 것이다. 하지만 이런 계약 분쟁의 문제를 굳이 성적 수치심을 근거로 들어 계약 취소로 끌고 간 것이 합당했던 것인지 의문이 든다. 계약 분쟁의 법적 결말이 나오기 전에 성적 수치심을 언론에 토로하고, 또 어디서 흘러나온 것인지 확실히 알 수는 없지만 이 성적 수치심의 근거를 확인하기 위해 메시지 내용이 공개되는 이 과정을 보면 계약 분쟁의 핵심은 성적 수치심이 아니라 다른 것이 아닐까 싶은 심증이 생긴다.

 

클라라측으로부터 나오게 된 성적 수치심이라는 발언은 결과적으로 이 법적으로 처리되면 될 사안을 언론을 통한 여론의 문제로 비화시킨 면이 있다. 만일 이 문제의 핵심이 성적 수치심이 아니라 계약 과정의 문제였다면 클라라는 그런 성적인 문제제기를 한 후폭풍을 감당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게 될 것으로 보인다. 물론 그 성적 수치심이 사실이라면 소속사가 그만한 타격을 입게 되겠지만. 어느 쪽이든 먼저 이 발언이 문제의 핵심처럼 부각된 건 너무 의도적이었거나 성급했다는 느낌이다.

 

<해피투게더> 서태지보다 <12> 조인성인 이유

 

서태지가 KBS <해피투게더>에 단독으로 출연한다는 사실에 대해 반가움보다는 불편함을 거론하는 이들이 더 많다는 사실은 작금의 달라진 예능의 생태계를 가늠하게 한다. ‘신비주의의 대명사이자 마지막 남은 신비주의라고까지 불리던 서태지가 아닌가. 하지만 지금은 신비주의가 심지어 마치 연예인병처럼 거드름으로 느껴지는 시대다.

 

사진출처:서태지 컴퍼니

아마도 그렇기 때문에 서태지는 그간 좀체 내밀지 않았던 얼굴을 예능에서 보이겠다고 마음먹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신비주의를 벗어나 좀 더 친근한 모습으로 대중들에게 다가가겠다고 마음먹는다고 해서 탈신비주의가 될 수 있는 건 아니다. <해피투게더>의 제목에 걸맞지 않게 다른 게스트 없이 단독 출연해, 그것도 유재석과 11 토크를 한다는 건 그래서 여전히 서태지의 이미지가 과거 90년대에 머물러 있다는 인상을 준다.

 

그것이 서태지의 의도인지 아니면 <해피투게더> 제작진의 과잉 배려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어차피 너무 과도하게 만들어진 신비주의 이미지가 버겁고, 그래서 보다 편안한 음악인 서태지로서 대중들에게 다가오려 마음먹었다면 일단 그 등장하는 방식부터 과거와는 다른 모습을 보였어야 한다.

 

이른바 이 다르기 때문에 함께 할 게스트가 애매하지 않냐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그 이른바 이라는 것을 깨는 것이 가장 필요한 게 서태지다. 물론 음악인으로서의 급은 당연히 지켜내야 하는 것이지만 그것이 아니라면 서태지는 좀 더 자신을 일상인에 가깝게 내려놓아야 지금 시대의 대중들과 눈높이를 맞출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조인성이 <12>에 차태현 쩔친(쩔은 친구)’으로 깜짝 등장한 것은 여러 모로 서태지의 행보에 시사 하는 바가 많다. SBS <괜찮아 사랑이야>로 그 어느 때보다 이미지가 신비화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시점에 자신을 찾아와 무작정 함께 여행을 떠나자는 차태현에게 그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조인성에게 예능감이라는 것이 있을 리 없고, 그러니 이런 갑작스러운 방송 출연이 부담되지 않을 리 없다. 하지만 선배 형을 위해서 열심히 방송에 임하는 조인성에게서는 신비주의의 그림자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심지어 드라마에서 뭘 해도 CF 같은 그림을 만드는 그가 아닌가. 그런 그가 깨는 이미지를 만드는데 선수인 독하디 독한 <12>의 복불복을 한다고 생각해보라.

 

차태현과 함께 실미도로 들어오는 조인성을 보며 다른 게스트들과 출연자들 그리고 심지어 작가들마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그것은 조인성 같은 인물이 다른 게스트들과 함께 어우러지는 것 자체가 이질적으로 여겨졌기 때문일 게다. 하지만 오히려 이런 면이 조인성의 <12> 출연에 대한 호감으로 이어졌다는 사실을 상기해보라. 지금 시대에 대중들이 스타들에게 무엇을 요구하는지를 거기서 발견할 수 있다.

 

서태지는 좀 더 타인들과 함께 섞일 필요가 있다. 그것만이 이미 지나가버린 신비주의 시대에 여전히 마지막 신비주의라는 불편한 수식어를 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요즘 대중들이 원하는 것은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소통하는 것이다. 조인성의 <12> 출연에 쏟아지는 박수와 서태지의 <해피투게더> 단독 출연에 쏟아지는 불편함은 바로 이 차이에서 비롯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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