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아닌 몸으로 보여주는 샘 해밍턴의 진정성

 

바야흐로 외국인 예능 전성시대다. 이제 예능 프로그램만 틀면 출연자 중 한 명은 외국인인 경우가 다반사다. MBC <나 혼자 산다>의 파비앙은 우리나라 사람보다 더 우리나라 사람 같은 입맛에다 우리 문화 전도사 같은 인상으로 시청자들의 눈을 잡아끌었다. <진짜사나이>는 샘 해밍턴에 이어 헨리를 투입시켜 그 이질적인 군대문화 체험의 묘미를 살리고 있다.

 

'진짜사나이(사진출처:MBC)'

JTBC <비정상회담>은 아예 여러 나라의 비정상들을 출연시켜 화제가 되고 있다. 여기 출연하는 터키 출신의 에네스 카야나 가나 출신의 샘 오취리는 준 연예인이다. 에네스 카야는 영화 <초능력자>에 출연한 바 있고 샘 오취리는 tvN <황금거탑>에도 출연하고 있다. SBS의 강제 처가살이 프로그램인 <백년손님 자기야>에도 이제 외국인 사위 마크 테일러가 출연해 장인 장모와의 흥미진진한 동거생활을 보여주고 있다.

 

외국인들이 이렇게 예능 프로그램에 대거 출연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외국인을 바라보는 대중들의 시선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이미 외국인 근로자들이나 다문화 가족들도 점점 많아지고 있는 추세다. 게다가 글로벌 지구촌 사회가 되다보니 해외를 찾는 일도 잦아졌고 당연히 외국인에 대한 인식도 달라졌다. 과거라면 막연한 부담감과 불편함으로 다가오는 존재였지만 지금은 지구촌의 일원이라는 느낌이 더 강해졌다.

 

하지만 외국인 예능 전성시대가 열린 직접적인 원인은 그것이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그 효과를 가장 먼저 보여준 인물은 다름 아닌 샘 해밍턴이다. <진짜 사나이>의 구멍병사로 등극한 그는 외국인의 시선으로 우리네 군대를 들여다보는 기회를 제공해 주었다. 사실 외국인이 군대에서 유격 훈련을 받다가 구토 증세를 보이며 쓰러져 구급대에 실려가는 장면은 흔한 것이 아니다. <정글의 법칙>에서 리키김이 정글 생존을 하는 것과는 사뭇 다른 그림이다. 정글이야 외국인도 가겠지만 군대야 어디 그럴 수 있겠는가.

 

이 색다른 그림 하나만으로도 샘 해밍턴은 화제가 되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구멍병사로서 웃음을 주면서도 정작 진지한 그의 모습은 심지어 대중들에게 감동을 안겨주기도 했다. 특히 그가 병사들의 노고를 치하하거나 그들 못지않게 열심히 훈련에 임하는 자세를 보여줄 때 그 감동은 더 했다. 그럴 필요가 없는 샘 해밍턴이 아닌가. 하지만 우리 문화라면 빠질 수 없는 군대문화를 이해하려 노력한다는 건 이 이국의 젊은이가 우리나라를 얼마나 생각하고 있는가를 잘 말해주는 대목이다.

 

외국인 예능 전성시대에 외국인들은 대체로 능숙한 우리말로 우리 못지않게 우리나라에 적응된 모습을 보여준다. 사투리를 쓰거나 사자성어를 쓰고 술 마신 다음날은 뜨끈한 국물이 최고로 시원하다고 하거나 감기 걸렸을 때 소주에 고춧가루를 타서 마시는 모습을 보여주면 시청자들은 한국사람 다 됐네라며 반색한다.

 

하지만 샘 해밍턴이 보여주는 모습은 말에서 그치지 않는다. 그는 그 육중한 몸으로 우리의 문화가 있는 곳으로 뛰어든다. <진짜 사나이>에서의 병영 체험이 그러하고 <섬마을 쌤>에서 섬의 분교를 찾아 들어가는 모습이 그렇다. 물론 요즘은 점점 외국인 출연자들이 현장으로 뛰어드는 경우가 더 많아졌다. 그것은 예능 프로그램 자체가 야외로 나가는 경우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상하게 온 몸을 던져 그 진정성을 보여주는 외국인 출연자를 생각하면 먼저 샘 해밍턴이 떠오른다.

 

헨리가 <진짜 사나이>에 들어오면서 샘 해밍턴은 위치가 애매해졌다. 외국인 병사로서의 방송분량을 거의 헨리가 가져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샘 해밍턴은 그 안에서 헨리를 챙겨주고 자신만의 위치를 찾아내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아마 이런 면은 그의 인성과 관련된 것일 게다. 그는 여전히 우리 문화가 어색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익숙하고 편안한 느낌을 주는 아저씨 같은 인상이다. 물론 가끔씩 발끈하는 모습에서 자존심 강한 남자가 나오기도 하지만.

 

<비정상회담>, 이런 기적 같은 토크쇼가 있나

 

점점 이 외국인들의 매력에 빠져든다. JTBC <비정상회담>에 가나 대표 샘 오취리처럼 이미 예능 프로그램으로 익숙해진 웃기는(?) 외국인만 있는 줄 알았는데, 차츰 그 옆에 앉아 있는 자못 진중하고 신뢰가 가는 중국 대표 장위안이 눈에 들어오고, 우리나라 사람보다도 더 보수적인 터키 대표 에네스 카야의 까칠함도 매력으로 다가온다. 이지적인 미국 대표 타일러 라쉬나, 여성을 예술작품처럼 대한다는 이태리 대표 알베르토 몬디, 또 멋진 영국 신사 제임스 후퍼도 빼놓을 수 없다.

 

'비정상회담(사진출처:JTBC)'

세계 남자 실체 보고서라는 주제로 나누는 대화는 마치 <마녀사냥>의 글로벌판 같은 흥미로움을 안겨준다. 거기에는 나라는 달라도 남자라는 똑같은 지점이 주는 국가를 초월한 공감대가 있기도 하고, 때로는 국가 간 문화의 차이에 따라 너무나 다른 의견의 충돌이 생겨나기도 한다. 마치 워밍업을 하는 듯 각 국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늘어놓고 각국 비정상 대표들이 그 편견에 대한 반박을 하는 과정에서는 솔직한 그들의 마음이 느껴진다.

 

또 여자의 핸드백을 들어주는 것에 대해서 여자처럼 행동하는 남자는 여자들이 싫어한다며 진심으로 발끈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터키 대표 에네스 카야와 그래도 여자가 원한다면 들어줘야 한다고 말하는 샘 오취리의 설전은 물론이고, 갑자기 벌어진 샘 오취리와 기욤 패트리의 자존심을 건 팔씨름도 흥미롭다. <비정상회담>이 이토록 별거 아닌 이야기와 상황에도 흥미로움을 주는 건 여기 출연하는 외국인들이 예능을 한다기보다는 진짜 진지한 대화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다지 많은 이야기를 하지 않지만 한 번 입을 열 때마다 큰 반향을 몰고 오는 장위안의 경우, 중국에 대한 편견을 하나하나 들어보며 어이없어 하다가도 스스로 중국인에 대해 어떻게 생각 하냐는 질문에는 겸허하게 도덕의식의 부족에 대한 걱정을 털어놓는다. 자칫 보수적인 이미지가 될 수도 있는 에네스 카야가 괜찮게 다가오는 것도 그가 말하는 대목이 진짜 자신들의 문화이며 생각이라는 걸 솔직하게 전해주기 때문이다.

 

사실 이태리 남자들이 여자를 밝힌다는 말은 발끈할 수 있는 이야기일 것이다. 하지만 이 이야기에 대해서도 이태리 대표 알베르토는 어느 정도는 그것이 사실이라고 인정하고는, 그렇게 남자들이 여자를 좋아는 이유에 대해 설명해준다. 우리나라에 노인 공경이 있듯이 이태리에는 여성 공경(?)’이 있다는 것. 여성을 먼저 배려하고 챙기는 것이 어렸을 때부터 몸에 밴 결과라는 것이다.

 

사랑 표현에 대해 이야기 하다 갑작스레 제안된 일본 대표 타쿠야의 중국 대표 장위안을 상대로 한 사랑고백 상황극은 이전에 이 토크쇼에서 만들어졌던 일본과 중국의 심상찮은 기류를 떠올려 보면 더욱 흥미로워진다. 타쿠야의 사랑고백에 장위안이 역사를 들고 나오자 타쿠야가 상황극일 뿐인데 그걸 그렇게 진지하게 받으면 어떡하냐고 장위안을 질책하고, 그 말에 장위안이 미안해하는 모습은 이 토크쇼가 가진 특별한 점을 잘 드러낸다. 국가 간의 다소 껄끄러운 문제들도 <비정상회담>이 추구하는 지극히 비공식적인 토크쇼에서는 충분히 풀어질 수 있는 여지가 있다는 것. 두 사람이 토크쇼가 끝난 후 소주를 기울이는 장면이 살짝 들어간 것은 이 토크쇼의 지향점을 잘 보여준다.

 

놀라운 건 이들이 이렇게 때론 의견충돌을 일으키고 때론 공통분모를 찾아내고는 즐거워하는 모습들이 반복되면서 시청자들이 느끼는 외국인들에 대한 생각의 변화다. 물론 요즘은 해외여행이 그만큼 자유로워져서인지 외국인을 보는 시각이 많이 달라졌지만, 그래도 여전히 외국인하면 어딘지 나와는 다른 존재로 다가가기가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하지만 <비정상회담>을 통해 보여지는 외국인들의 모습은 더 이상 그런 존재가 아니다. 문화적 차이는 조금 있어도 우리와 그다지 다르지 않은 그들은 언제든 우리와 소통할 수 있다는 신뢰감을 준다.

 

이것은 <비정상회담>이 만들어내는 기적 같은 변화가 아닐 수 없다. 백 번 외국인도 우리와 다르지 않다며 함께 공존할 것을 외치는 것보다 이렇게 한 테이블에 둘러앉아 특정한 화제를 갖고 벌이는 토크의 용광로가 훨씬 더 효과적이라는 점이다. 생각해보라. 지금 여기 출연하고 있는 외국인들에게서 왠지 정감이 느껴진다는 것은 얼마나 대단한 변화인가.

 

샘 해밍턴, 이 솔직한 시선에 비친 우리의 자화상

 

<해피투게더>에 출연한 샘 해밍턴은 한국에 처음 왔을 때의 첫인상을 묻는 질문에 “별로였다”고 솔직한 답변을 내놨다. “너무 시끄럽고 사람이 많았다”는 것. 샘 해밍턴은 한국어를 배우게 된 계기에 대해서도 굳이 듣기 좋은 의미부여(?)를 하지 않았다. “이력서에서 튀고 싶어” 선택했다는 것. 그는 클럽에서 한국여성에게 한국말로 작업(?)을 걸던 에피소드를 말하기도 했고, <개그콘서트>의 기수에 포함되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도 자신이 “낙하산”이었기 때문이라고도 말했다.

 

'해피투게더(사진출처:KBS)'

사실 우리나라에 대한 외국인의 평가에 유독 민감한 우리에게 샘 해밍턴의 거침없는 솔직함은 위태로울 수도 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샘 해밍턴의 말에는 거부감은커녕 심지어 속 시원함마저 느껴진다. 도대체 무엇이 이런 그만의 매력을 만드는 걸까. 그것은 흔하디흔한 영혼 없는 통상적인 답변들에 식상해진 우리에게 그의 솔직하고 진정성 있는 이야기가 한없이 참신하게 여겨지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 대한 평가에 대해서 우리는 이중적이다. 갑을 관계로 점철된 사회 현실이나, 무기징역을 받고도 돈만 있으면 진단서 하나 끊어 호화병실에서 생활할 수 있는 비뚤어진 사법 현실, 타의 모범을 보여야 할 대변인이 성추행을 해 국제적인 망신을 당하는 공직자들의 부끄럽기 그지없는 윤리의식 등등. 우리나라지만 우리 스스로도 창피할 수밖에 없는 부끄러움을 느끼는 건 인지상정 아닌가. 하지만 외국인이 여기에 대해 비판을 한다면 발끈하는 게 또한 우리들이다. 이것은 애국의 문제가 아니라 외국인의 시선에 그만큼 민감한 우리네 정서의 문제다.

 

<진짜 사나이>에서 샘 해밍턴이 주목을 받게 된 것은 이른바 ‘구멍 병사’로 큰 웃음을 주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외국인으로서 우리네 군대 체험에 뛰어들었다는 사실 그 자체 때문이기도 했다. 관등성명 같은 좀체 이해하기 힘든 군대 문화를 열심히 따라하려 하지만 잘 안 되는 모습은 마치 조직 부적응자 같은 인상으로 웃음을 주면서도 그 지나치게 경직된 군대 문화를 다시 쳐다보게 만든다. 딱딱한 군대 문화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지만 꼭 그렇게 해야 하는가 하는 새로운 시점을 샘 해밍턴이 만들어낸다는 점이다.

 

물론 그렇게 칭찬에 인색한(?) 샘 해밍턴이 “한국군인들 정말 대단하다”고 얘기할 때는 그 진심이 배가 된다. 좋은 건 좋다 말하고 나쁜 건 나쁘다 말하는 그이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해피투게더>에서 보여진 것처럼 토종 리액션을 선사해 ‘뼛속까지 한국사람’으로 여겨지게 만드는 그의 자연스러움이 들어있다. 마치 관광지 앞에서 사진을 찍고 원더풀을 연발하는 이들을 우리가 외국인 관광객으로 여기는 것과는 정반대로, 샘 해밍턴은 자연스러운 비판이나 솔직함으로 관광객이 아니라 우리와 같은 공간을 살아가는 인물로 여기게 만드는 구석이 있다.

 

이렇게 우리에 대한 칭찬일색이 아니라 솔직한 평가를 내리는 것으로 주목받는 또 한 명의 외국인이 있다. 바로 사유리다. 한때 <트루맛쇼>로 각종 음식 프로그램의 천편일률적인 리액션이 사실은 영혼 없는 연출에 불과 했다는 것이 폭로될 즈음, 사유리는 음식 소개 프로그램에 등장해 음식점 사장님 앞에서 “맛이 한 개도 없어요”라고 말함으로써 우리를 포복절도하게 만들었다. 엉뚱한 캐릭터이기도 하지만 그 솔직한 평가에 우리도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는 것이다.

 

과거 개그맨 정철규는 “사장님 나빠요”로 외국인노동자의 목소리를 담아 주목을 끌었다. 이제는 캐릭터가 아니라 실제 외국인들이 한국 문화에 대해 솔직한 평가를 던져 주목을 끌고 있다. 샘 해밍턴이나 사유리는 그런 점에서 우리에게 특별한 시선을 제공하는 셈이다. 실로 비판을 할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 문화에 대해 동화되어 있다는 반증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샘 해밍턴이나 사유리를 그저 외국인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적어도 이들이 던지는 우리에 대한 평가는 그래서 별다른 이중적인 시선 없이 공감하게 되는 것일 게다. 우리가 봐도 비판받을 만한 우리의 자화상이 아닌가.

배수정은 영국인이 맞다, 하지만..

 

“영국인으로서 자랑스럽다.” 올림픽 개회식 방송에 파격적으로 투입된 배수정은 그 개회식에 대한 느낌을 묻는 김성주 아나운서의 질문에 이렇게 말했다. 그녀는 실제로 영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영국인이 맞다. 그러니 그녀에게 이런 답변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방송을 보고 있던 시청자들은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그 ‘영국인’이라는 말이 그간 덮여져 있던 실체를 끄집어낸 것처럼 당혹스러웠기 때문이다.

 

올림픽 개막식 방송(사진출처:MBC)

왜 이런 당혹감을 갖게 되었을까. 그것은 우리가 갖고 있는 특유의 국적에 대한 과도한 민감함에서 비롯된다. <위대한 탄생> 같은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영국에서 온 회계사에 예쁜데다가 노래도 잘하는 배수정이 나왔을 때 우리가 가진 감정은 복합적이었다. 그녀는 분명 영국에서 태어나 자라고 거기서 직업까지 갖고 있으니 영국인이 맞지만, 그녀의 부모는 한국인이니까(게다가 그녀는 한국어도 유창하다) 이 엄친아 역시 한국인일 거라는 암묵적인 동의가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그녀는 외국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여전히 뭐든 잘 하는 한국인으로서의 자랑거리로 대중들에게 인식되었던 것. 하지만 이것은 실체가 아니다. 그리고 그것은 방송을 통해 본인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영국인이라는 선언으로 나타났다. 그러니 대중들은 일종의 ‘속은 느낌(사실은 스스로 속은 것이지만)’을 갖게 된 것이다. 물론 배수정은 속인 적이 없지만.

 

이것은 올림픽이라는 국가 간의 스포츠 행사 속에서 더 도드라지게 드러날 수밖에 없었다. 올림픽은 ‘세계는 하나’라고 소리치지만, 동시에 국가의 존재감을 더 공고히 하는 행사이기도 하다. 올림픽 같은 스포츠를 통해 우리의 스포츠 선수들은 ‘태극 전사’로 거듭난다. 그들이 이기면 국가가 들썩거리는 축제 분위기로 이어진다. 메달 수로 순위 경쟁이 시작되면 몇 위권에 들었느냐가 그 국가의 세계에서의 위치 같은 착각을 주기도 한다. 그런 올림픽에서 자신의 국적을 당당히 드러냈기 때문에 배수정에 대한 배신감은 더 커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것은 사실 과도한 국적에 대한 집착에서 비롯된 해프닝이기도 하다. 영국에서 벌어지는 축제이고 그러니 영국인으로서 자랑스럽다고 한 것이 뭐가 이상할까. 그렇지만 방송으로서 잘못된 부분은 분명히 있다. 방송을 하나의 쇼라고 본다면 그 내용이 일관성을 가져야 하는 것은 맞다. 옆에 선 김성주 아나운서가 자신의 국적성을 드러내며 ‘우리 선수들’ 혹은 ‘태극 전사들’ 운운하고 있는 상황에서(이것은 그대로 배타적인 한국선수들에 대한 응원방송의 메시지를 갖는다) 돌연 ‘영국인’ 발언은 방송의 일관성에서 적절하다 얘기하기 어렵다.

 

배수정의 발언으로 사실상 대중들의 암묵적인 동의 하에 이면에 놓여져 있던 연예인들의 국적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왔다. 사실 많은 연예인들 중에는 국적이 외국인 경우가 많지만 자신이 한국인임을 전면에 내세우며 활동하는 이들이 많다. 유난히도 연예인들의 군복무 문제에 대중들이 예민한 이유도 바로 거기서 이 숨겨진 국적의 문제가 들어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심지어 어떤 연예인들은 국적이 외국이면서도(그래서 군대에 갈 필요가 없는데도) 굳이 군대에 자원하기도 한다. 그만큼 우리 사회에서 국적은 뜨거운 문제다.

 

하지만 20세기도 아니고 21세기에 이토록 국적에 대해 과도하게 배타성을 갖는 건 바람직해 보이지 않는다. 사실 우리는 ‘국가가 우리에게 해준 게 무엇인가’라고 비판하면서도 동시에 그 국가에 대한 소속감을 그 어느 나라보다 더 굳건히 지키려고 안간힘을 쓴다. 아마도 짧고 굴곡진 근대화 과정이 남긴 잔재일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외국인 근로자들이 점점 늘어나고 외국인과 결혼해 꾸려진 가정도 점점 늘고 있는 상황에 지나친 국적에 대한 배타성은 위험할 수도 있을 것이다.

 

국적성을 전면에 끌어내기 마련인 올림픽 방송으로서 배수정이 한 말은 그 방송으로서는 적합하다 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이면에 놓여진 우리네 국적에 대한 과도한 집착 또한 좋게 보이지는 않는다. 어쨌든 배수정은 결과적으로 이 우리에게 뜨거운 국적의 문제를 끄집어냈다. 그것도 올림픽이라는 국가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국제적인 행사에서. 그렇다면 생각해보자. 우리는 올림픽이 주창하는 ‘세계는 하나’라는 가치를 볼 것인가, 아니면 그 속에 숨겨진 국가의 존재감이 주는 몰입의 희열에 머물러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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