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도>가 노잼과 실패를 대하는 방식

 

<무한도전>에서 박명수가 낸 읏음사냥꾼기획은 한 마디로 폭망이었다. 전국에 숨겨진 웃음의 주인공들을 찾아 나선다는 기획은 그럴 듯 했지만 실상 나서보니 준비 없이 웃음을 즉석에서 만들어낸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실감하게 했다. 평상시에는 꽤나 웃겼다는 이들도 막상 멍석을 깔아주자 전혀 끼를 보여주지 못했다.

 


'무한도전(사진출처:MBC)'

물론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 출연해 웃음사망꾼이 된 박명수의 웃음장례식이라는 도입부의 상황극은 기발한 웃음을 유발했다. 웃기지 못했다는 사실 앞에 오열하는 유재석과 멤버들 그리고 조문객들(?)이 던지는 멘트 하나하나에 심지어 그들조차 웃음을 참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조문을 온 <마이 리틀 텔레비전>의 박진경, 이재석 PD가 박명수에게 발길질을 당하는 모습은 그가 웃음을 되찾겠다며 나선 이 기획의 감정적(?) 근거를 마련해주기도 했다.

 

하지만 바야바 분장까지 하고 나선 정준하가 이렇게까지 하고 나와 보람 없는 적 처음이라고 말한 것처럼 애초의 의욕과는 너무 다른 결과였다. 유재석은 평소와는 달리 끊임없이 실패를 걱정했고 어떻게든 리액션을 주려고 해도 그럴 기회가 없었다. 결국 이 아이템이 확인한 건 웃음을 준다는 것이 결코 만만치 않다는 점이었다.

 

그나마 백전의 노장들인 <무한도전> 멤버들이 있어 이 노잼 상황 자체를 하나의 재미요소로 만들어내기는 했다. 즉 베테랑 웃음사냥꾼이 웃기지 못한다는 것을 오히려 웃음의 포인트로 만들려 했던 것. 마치 과거 정형돈이 웃기지 못하는 개그맨이라는 콘셉트로 웃음을 주었던 것과 마찬가지의 방식이었다.

 

앞부분에 웃음장례식이라는 상황극을 붙이고 다시 그 공간으로 돌아와 상황극으로 마무리하는 구성은 그나마 이 웃음을 찾는데 실패한 박명수의 도전을 연출적으로 잘 끌어안았다고 볼 수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전체를 하나의 상황극(웃음을 주지 못하는 이의 희비극)으로 포장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현장에서 일반인들을 세워 웃음을 시도하려 했던 건 결코 상황극이 아니지만.

 

과거 좀비 특집에서 단 몇 분만에 그 블록버스터 기획이 박명수의 어이없는 선택으로 실패하게 됐을 때도 김태호 PD가 선택한 건 재촬영이 아니라 그 실패를 그대로 보여주면서도 그 과정조차 하나의 이야기로 담아내는 것이었다. 그래서 당시에도 김태호 PD는 앞 부분에 장황한 상황극을 덧붙여 실패에 대한 대국민 사과로 마무리하는 재기발랄함을 보여준 바 있다.

 

자막에 슬쩍 집어넣은 것처럼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는 찰리 채플린의 명언이 의미하는 건 결코 웃음에의 도전이 쉽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그들이 바보 분장을 하고 서로가 서로의 얼굴을 때리고 물을 끼얹고 심지어는 백주대낮에 창피하기 그지없는 복장을 한 채 거리를 활보했던 일들이 그래서 새삼 이 아이템을 통해 새록새록 피어난다. 웃음 만들기가 어디 그리 쉬운가? <무한도전>이면 땅콩 한 알 놔두고도 웃음을 줄 수 있다고 믿고 기대하지만 그들 역시 결코 이게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걸 이번 아이템의 폭망은 오히려 증거해주고 있다.



<그녀는 예뻤다>가 재조명한 빼꼼녀 황정음의 진가

 

MBC <그녀는 예뻤다>에 등장하는 르누아르의 작품 시골의 무도회는 이 드라마의 모티브를 제공한다. 무도회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춤을 추고 있는 남녀. 남자에게 이끌려 한껏 행복에 가득 찬 표정으로 정면을 바라보고 있는 여자가 무언가 시선으로 말을 건네는 듯한 그림. 그런데 <그녀는 예뻤다>가 주목하는 건 이 여자가 아니다. 이 드라마는 발코니 밑에서 춤을 추고 있는 그들을 슬쩍 훔쳐보고 있는 이른바 빼꼼녀에 주목한다.

 


'그녀는 예뻤다(사진출처:MBC)'

주역이 되지 못하고 그걸 쳐다보고 있는 조연. 그녀는 어쩌다 자기 인생에서 주역이 아닌 조연 역할을 맡게 되었을까. <그녀는 예뻤다>의 혜진(황정음)은 역변한 외모와 보잘 것 없는 스펙과 처지 때문에 어린 시절 첫 사랑이었던 성준(박서준) 앞에 나서지 못한다. 평범한 얼굴이거나 못생긴 얼굴의 여 주인공이 미남에 능력 있는 남자와 어쩌다가 로맨스를 갖게 되는 그렇고 그런 로맨틱 코미디의 설정이 아닐까 생각된다. 하지만 그것만일까. 그 이면에는 이른바 스펙사회로 대변되는 번지르르한 이력서 뒤로 제 진면목을 제대로 드러낼 기회조차 갖지 못하며 심지어는 그 자체를 포기하는 젊은 세대의 고충이 깔려 있다.

 

누구나 화보 속의 인물이 되고 싶어 하지만 우리는 그 화보 속 인물을 흘낏 흘낏 훔쳐보며 살아가는 경우가 더 많고, 누구나 잡지 속의 멋진 인물을 꿈꾸지만 어쩌다 보니 험하디 험한 그 잡지를 만드는 일을 하는 사람으로 살아간다. 주인공은 저 편에 있고 우리는 늘 관객의 입장에 서 있다. 저 르누아르의 빼꼼녀처럼.

 

하지만 우리는 모두 누군가 주목하고 바라봐주지 않았을 때 누구나 저 빼꼼녀였다. 훈남이 되어 돌아온 성준도 혜진이 우산이 되어주지 않았다면 비오는 거리 한 구석에 앉아 과거의 고통 속에 떠는 빼꼼의 존재였을 것이다. 그가 유학 가는 날 시골의 무도회의 퍼즐에서 그 빼꼼녀부분을 떼어내 혜진에게 건네준 건 그런 의미가 아니었을까. ‘빼꼼의 존재였던 자신을 잊지 말아달라는.

 

시간이 흐른 뒤 돌아온 성준의 시골의 무도회퍼즐에는 그 빼꼼녀의 조각이 빠져있다. 드라마는 성준이 이제 빼꼼녀의 조각처럼 되어버린 혜진을 찾는 이야기다. 달라진 얼굴. 보잘 것 없는 스펙으로 인턴으로 들어와 마치 심부름센터 직원처럼 시키는 일이라면 뭐든 토달지 않고 열심히 하는 그녀는 더 모스트라는 잡지를 만드는 사무실에서도 빼꼼녀. 그런데 과연 그녀의 진가가 빼꼼녀에 불과한 것일까.

 

사무실에서 그녀의 진가를 먼저 발견한 인물은 신혁(최시원)이다. 호텔 스위트룸 장기투숙객이면서 편의점 컵라면을 즐기는 이른바 스위트룸 노숙자라는 독특한 캐릭터인 그는 사무실 바닥에 떨어진 빼꼼녀퍼즐 조각을 주워 혜진에게 건넨다. 이 사무실에서 마치 빼꼼녀 퍼즐 조각 같은 혜진의 진가를 그가 먼저 발견한 것처럼. 혜진이 예전에는 자신이 예뻤다고 말하는 대목에서 그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지금도 그래하고 한 마디를 툭 던진다. 과거형으로 살아가는 혜진을 현재형으로 끌어낸 것.

 

<그녀는 예뻤다>는 그래서 우리 사회가 신분으로 태생으로 학벌 같은 스펙으로 또는 외모로 덮어놓고 있는 많은 진가들을 발견하고 상찬하는 드라마다. 이 드라마를 보면서 단지 혜진이라는 인물의 로맨스에만 마음이 심쿵한 것이 아니라, 늘 바닥으로 떨어져도 계속 해서 심기일전하는 그녀에게서 알 수 없는 저릿함을 느꼈다면 그것은 바로 이 드라마가 건드리고 있는 진짜를 느낀 것일 게다.

 

캐스팅의 최적 조건은 그 배우의 입장과 캐릭터가 딱 맞아 떨어질 때 만들어진다. 그런 점에서 혜진을 200% 생생하게 연기해내고 있는 황정음은 이 드라마에 안성맞춤이 아닐 수 없다. 시트콤 <지붕 뚫고 하이킥>으로 주목받았을 때까지만 해도 황정음이라는 배우는 말 그대로 빼꼼녀였다. 어딘지 과장된 연기 때문인지 그녀가 이 정도의 배우로 성장할 것이라고는 예측하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그 빼꼼녀는 실로 긍정적으로 역변했다. <내 마음이 들리니>를 거쳐 <비밀>에서 연기의 영역을 확장한 그녀는 <킬미 힐미>로 확고한 배우의 위치로 올라섰다. 그리고 <그녀는 예뻤다>는 황정음의 확실히 깊어진 연기의 다채로운 결을 느끼게 해주는 드라마다. 그녀의 표정에서는 로맨틱 코미디가 가져야할 웃음은 물론이고 그 밑바닥에 깔린 슬픔까지도 느껴진다. <그녀는 예뻤다>. 이건 드라마의 제목에만 해당하는 말이 아니다. 빼꼼녀의 가치를 끄집어낸 연기자로서의 황정음도 그렇다. 과거형이 아닌 현재형으로.



우리 코미디를 살리기 위해 필요한 행보와 가능성

 

어째서 나이 들어가는 배우를 보는 느낌과 코미디언을 보는 느낌은 다를까. 이순재, 박근형, 최불암. 나이 든 노년의 배우들에게서 연륜은 나이테처럼 쌓여 연기에서도 더 깊은 맛을 준다. 하지만 우리의 기억 속에 지워져가는 코미디언들을 떠올려보라. 한때 우리를 그토록 웃게 만들었던 고 배삼룡 선생이나 고 서영춘 선생. 아니 그렇게 멀리 갈 것도 없이 한 때를 풍미했던 최양락, 김학래, 엄용수 같은 현역 방송활동을 하고 있는 코미디언들에게서도 배우들과는 달리 느껴지는 건 어떤 애잔함이다.

 


'김준호(사진출처:부산국제코미디페스티벌)'

아마도 그건 직업적인 차이에서 비롯되는 것일 수 있다. 늘 밝게 웃으며 웃음을 주던 이들이 어느 날 나이 들어간다는 걸 확인하게 되는 데서 오는 애잔함. 하지만 그것뿐일까. 혹 배우를 보는 시선과 코미디언을 보는 시선이 다르고, 배우들이 가진 환경과 코미디언들의 그것이 다르기 때문은 아닐까. 이제 3회를 맞은 <부산 국제 코미디 페스티벌>에서 느껴지는 공기는 그런 것이었다. ‘부산바다 웃음바다라는 캐츠 프레이즈에 걸맞게 다이내믹 부산의 이미지와 왁자지껄 한 바탕 유쾌한 웃음이 터져 나오는 이 페스티벌은 너무나 잘 어울린다. 하지만 그 이면에 이 행사를 이토록 세우려 노력하는 이들의 안간힘을 슬쩍 슬쩍 발견하게 될 때면 느껴지는 것이 저 애잔한 마음이다.

 

이 행사를 처음부터 기획하고 지금껏 이끌어온 김준호에게서 느껴지는 것도 그런 것이다. 방송에서 보면 영락없는 살살이캐릭터지만 행사장에서 본 그의 모습은 진지하기 이를 데 없었다. 3회를 거치며 규모가 커진 행사에 꽤 많아진 하객과 관계자들을 한 명 한 명 만나 담소를 나누었고, 우리네 코미디와 코미디언들이 제대로 설 수 있기 위해서 행사가 어떻게 자리 잡아야 하는가에 대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모습이었다. 그의 동분서주 속에는 왜곡되고 편향된 우리네 코미디의 현실 그리고 <부산 국제 코미디 페스티벌>이 앞으로 나가야할 길들이 담겨져 있었다.

 

우리네 코미디는 너무나 방송 중심으로 왜곡되어 있다. 코미디를 얘기하면 <개그콘서트>, <웃찾사>, <코미디 빅리그> 정도를 얘기하는 수준이다. 대학로를 중심으로 공연형 코미디가 없는 건 아니지만 그건 이 방송 코미디와 그다지 다르다고 말하기 어렵다. 공연형 코미디가 없고 방송형 코미디만 남아 있다는 건 코미디의 저변이 약하다는 얘기다. 해외의 코미디가 페스티벌 현장은 물론이고 거리에서, 광장에서, 카페에서, 공연장에서 생활 속으로 들어와 있다면 우리의 코미디는 방송에 포박되어 있다.

 

방송형 코미디가 마치 코미디의 전부인 것처럼 되다보니 대사 중심으로 흐르는 개그가 그 중심이 되어버렸지만 사실 우리네 코미디가 본래부터 이런 편향과 왜곡을 갖고 있던 건 아니다. 굳이 남사당패 같은 먼 과거로 가지 않더라도 유랑극단이나 서커스의 시절 코미디는 만담만이 아니라 기예를 포함한 쇼적인 요소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저글링을 하거나 두발 자전거를 타거나 마술을 하고 심지어는 공중그네를 타면서도 코미디가 가능했다. 그건 저 남사당패 줄타기 명인이 제 몸을 살판과 죽을 판 위에 세워두고 그 아슬아슬함을 이완시켜가며 웃음을 만들 던 것과 맥이 닿아 있다.

 

이번 <부산 국제 코미디 페스티벌> 개막식에 갈라쇼로 보여진 해외의 코미디는 대부분 기예를 포함한 공연형 코미디들이었다. 그들은 저글링을 하거나, 아크로바틱에 가까운 체조를 보여주고, 놀라운 복화술이나 마술은 물론이고 독특한 예술적인 느낌을 만들어내는 그림자 연극을 코미디와 버무려 보여주었다. 물론 그것은 논버벌이 훨씬 더 효과적인 코미디의 언어이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가 한때 저질 코미디로 비하하며 버렸던 그 공연형 코미디들을 저들은 자연스럽게 보여주고 있었던 것이다.

 

공연형 코미디가 중요한 건 그것이 생활 밀착형으로 들어오기 때문에 거기에 종사하는 코미디언들의 생계와도 무관하지 않다는 점이다. 방송형 코미디는 물론 고유의 가치가 있다. 하지만 코미디언들의 살길이 오로지 이 방송에만 집중된 구조는 오히려 이들의 생계를 위협한다. 그것은 생계를 넘어 코미디언에 대한 인식조차 너무 고정적으로 굳혀버린다.

 

왜 코미디언들은 아티스트가 되면 안 되고, 배우가 되면 안 되는가. 왜 웃음을 준다는 사실이 그토록 저평가 받아야 한단 말인가. 왜 개그맨들은 잔뜩 보이는데 코미디언들은 잘 보이지 않는 현실이 되었나. 왜 한때 우리네 삶에 즐거움을 주었던 동춘 서커스 같은 기예를 포함한 웃음들은 지금 어느 변방으로 밀려난 공터에서 쓸쓸한 천막을 치며 살아가게 됐을까. <부산 국제 코미디 페스티벌>의 그 왁자함과 유쾌함 이면에 이처럼 왜곡된 우리네 코미디의 현실을 되돌리려는 간절함과 그 가능성을 발견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리 뛰고 저리 뛰는 김준호를 보는 것만으로도.



<미세스캅>의 균형 맞춰줄 손호준-이다희 콤비

 

SBS <미세스캅>의 추동력은 최영진(김희애)에게서 나온다. 엄마이자 형사인 워킹맘으로서의 고충과 비리에 연루된 상사와의 갈등, 아줌마 특유의 촉을 보여주는 수사는 물론이고, 아버지를 죽인 살인범의 출소로 새로운 긴장감을 만들어내는 것까지 모두 최영진의 역할이다.

 


'미세스캅(사진출처:SBS)'

이처럼 최영진의 역할은 이 드라마에서 절대적이지만 그렇다고 드라마가 한 사람의 힘으로만 굴러가는 건 아니다. 게다가 요즘은 드라마의 다양한 곁가지 잔재미들이 있어야 시청자들이 지루해하지 않는다. 각종 강력범죄를 수사하는 과정은 그래서 피해자들의 이야기까지 덧붙여져 무거울 수밖에 없지만, 드라마가 시종일관 무거워서는 곤란해지는 이유다.

 

하지만 <미세스캅>에서는 적어도 이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듯싶다. 최영진이 다시 강력계로 돌아와 팀을 꾸리게 되면서 새로운 케미를 보여줄 인물들을 구성해 넣었기 때문이다. 한진우(손호준)와 민도영(이다희)이 그들이다.

 

도무지 앞뒤가 꽉 막힌 것처럼 고집을 피우고 생각보다는 행동을 앞세우는 한진우가 이 팀의 손발과 같은 존재라면 민도영은 행동하기 전에 먼저 꼼꼼히 따져보고 생각하는 머리 같은 존재다. 두 사람이 의견대립을 보이고 부딪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하지만 이 두 사람의 대립에서 기대되는 또 하나는 의외로 피어날 케미다. 같이 현장을 뛸 수밖에 없는 두 사람은 서로 다른 성격 때문에 대립하게 될 것이지만 바로 그런 점이 서로를 보완해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점은 <미세스캅>에서 의외로 달달한 멜로와 웃음을 만들어줄 것으로 기대된다.

 

<미세스캅>은 자못 진지한 드라마일 수밖에 없다. 거기에는 시스템의 부조리와 자본의 갑질 그리고 정의의 문제는 물론이고, 이를 사수하는 과정에서 워킹맘이 보여주는 일과 가정의 문제까지 다양한 사회의 문제들을 건드리면서 결코 가벼워질 수 없는 드라마다. 그러니 그 중심을 세워주는 최영진이라는 인물은 결코 가벼워질 수 없다.

 

대신 그런 잔재미들을 채워주면서 동시에 가족 같은 팀이라는 판타지를 자극하는 존재들로서 한진우와 민도영이라는 캐릭터는 중요하다. 여기에 최영진과 우정인지 애정인지 알 수 없는 미묘한 관계를 보여주는 박종호(김민종) 계장과 최영진의 든든한 오른팔인 재덕(허정도)도 빼놓을 수 없는 팀의 일원이다.

 

그 연기를 보여줄 손호준과 이다희는 둘 다 늦게 주목받은 연기자들이다. 외모로만 보면 아직도 창창한 20대처럼 보이지만 두 사람 모두 나이 서른을 갓 넘긴 경력의 소유자들이다. 최근 들어 <삼시세끼><진짜사나이 여군특집>같은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각각 주목받은 두 사람. 연기를 통한 이들의 의외의 케미는 <미세스캅>을 보는 또 다른 재미요소로 자리할 것으로 보인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