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상회담>, 에네스 간 자리 다니엘이 메우나

 

JTBC <비정상회담>에서 사생활 문제로 중도 하차한 에네스 카야는 프로그램에 커다란 타격을 입혔다. 그가 갖고 있는 토론에 불을 지피는 역할은 초창기 <비정상회담>의 확실한 동력이었다. 보수적인 입장을 내세우면서도 논리적으로 접근하기 때문에 뭐라 반박하기 어려운 그 존재가 빠져나가면서 <비정상회담>이 위기를 맞게 된 건 당연한 결과였다.

 

'비정상회담(사진출처:JTBC)'

하지만 그가 빠져나가자 그에게 가려져 있던 <비정상회담>의 다른 출연자들이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샘 오취리야 본래부터 예능에 깊숙이 들어와 있었기 때문에 그다지 주목되기 어려웠지만 한국말이 어색한 장위안이나 기욤이 점점 토크의 중심으로 들어왔고 여기에 알베르토와 다니엘 그리고 똘똘이 스머프 타일러가 가세하면서 토크의 격을 높였다.

 

그 중에서도 특이한 인물은 단연 독일 대표로 뒤늦게 합류한 다니엘이다. 다니엘은 사실 이 프로그램에서 예능감이 거의 없는 인물이다. 누군가를 웃긴다기보다는 누군가의 이야기에 웃음을 빵빵 터트리는 인물에 가깝다. 본인이 웃어버리는 존재는 타인을 웃기기는 힘들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니엘에 대한 대중적인 지지는 뜻밖에도 대단하다. 그것은 그가 보여주는 독일인 특유의 이성적인 태도에서 비롯된다.

 

자국의 세금제도를 얘기하면서 독일의 싱글세가 급여의 50%로 심각하다고 한 다니엘의 말은 즉각적으로 대중들의 관심을 끌어 모았다. 싱글세 논란은 이미 국내에서도 벌어졌던 사안이다. 싱글세를 부여하진 않아도 결과적으로는 싱글들이 세금을 더 많이 내게 되어 있는 세제 시스템에 대해 국내의 많은 혼자 살아가는 이들은 반발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다니엘은 결과적으로 이런 정책이 결혼과 출산률이 낮은 사회문제에 대한 또 다른 접근일 수 있다는 걸 말해줘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었다.

 

다니엘의 존재감이 가장 빛났던 것은 히틀러에 대해 그가 얘기할 때였다. 그는 잘 몰라서 그런 거 같은데 가끔 히틀러가 멋있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만날 때가 있다. 그런 이야기는 안했으면 좋겠다.”고 하면서 택시에서 (이런 얘기를) 들을 때면 독일 사람으로서 내리고 싶다. 독일에서 그런 말을 하면 잡혀간다. 히틀러는 정말 악마였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솔직하게 “1차 대전은 독일이 잘못했다고 자국의 잘못을 반성하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거기 앉아있는 출연자들을 뭉클하게 만들었다. 장위안은 방금 다니엘이 한 말 중 감동받은 게 있다. 그냥 자연스럽게 제1차 세계대전은 독일이 잘못한 거라고 하는 걸 들었다. 나중에 우리 아시아도 유럽연합처럼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비정상회담>을 하기 전엔 마음이 닫혀있었는데 방송을 통해 만나 서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마음이 열리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다니엘은 토크 방식은 확실히 에네스와는 다르다. 에네스가 상당히 공격적이라면 다니엘은 모든 걸 포용하는 태도를 보여주고 그 속에서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접근을 보여준다. 때로는 자신만이 갖고 있는 소신을 드러내기도 한다. 물론 에네스만큼의 위트나 유머를 갖고 있지는 못하지만 어찌 보면 바로 그 점 때문에 다니엘에 대한 호감은 더욱 커지는 것 같다. 결국 <비정상회담>이란 프로그램의 힘은 각자 자국의 문화를 소개하고 타국과 비교해보고 또 어떤 사안에 대해 이성적인 토론을 해보는 것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누구도 <비정상회담>이 예능이 흔히 하는 웃음과 재미만을 추구하는 토크쇼로 흘러가는 걸 원하지 않는다. <비정상회담>의 핵심은 이문화에 대한 이해와 소통에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웃기지 않고 때로는 지나치게 진지해 보이는 다니엘에 대한 대중들의 호감은 당연하게 여겨진다. 그는 웃기지 않아서 또 예능감이 없어서 오히려 주목받는 인물이다.

 

강호동보다 최대리, <투명인간>의 가능성

 

대중들은 특히 강호동에게 인색하다. 한 때 국민 예능이라고도 불렸던 <12>로 무려 40%가 넘는 시청률을 기록하기도 했던 그 기억이 여전히 그에게는 꼬리표처럼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새로운 프로그램이라고 해도 첫 회 4%를 기록한 강호동의 <투명인간>은 낯설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그래서 성급한 이들은 강호동이 출연한 프로그램의 낮은 시청률을 그대로 실패로 단정하곤 한다.

 

'투명인간(사진출처:KBS)'

이것이 강호동의 딜레마다. 다른 출연자가 하는 예능 프로그램이 첫 회에 4%를 기록하면 요즘 같은 지상파 상황에서는 가능성을 보였다고 평가될 수 있지만 강호동은 다르다. 이것은 그와 쌍두마차를 이뤄 한 시대를 구가해온 유재석도 마찬가지다. 한때 최고의 시청률로 기억되던 그들을 시청자들은 좀체 기다려주지 않는다. 그래서 한때 이들을 섭외하려고 줄을 섰던 방송가의 분위기는 사뭇 달라졌다. 물론 여전히 이들에 대한 매력은 분명하지만 또한 부담감도 그만큼 크다는 걸 일선의 제작진들이 실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투명인간>은 올해 강호동이 새롭게 시작한 프로그램으로서 주목됐다. 하지만 첫 회에 4%, 2회에 3.5%(닐슨 코리아)로 떨어지면서 벌써부터 실패를 단정하는 이야기들이 나온다. 그렇지만 프로그램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첫 회와는 조금 달라진 2회의 변화를 통해서 이 프로그램이 가진 가능성을 찾을 수 있다.

 

첫 회가 문제가 됐던 것은 웃음과 재미의 포인트가 약했다는 점이다. 웃음을 잃은 직장인들에게 웃음을 되찾아준다는 그 취지와 의도는 대중들이 공감할만한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찾아간 회사에서 억지로 웃기기 위해 안간힘을 쓰다 보니 진짜 웃음의 포인트들이 별로 보이지 않게 된 것은 문제로 지목되었다. 웃음은 상당부분 리액션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데 웃지 않으려 작정한 직장인들을 웃긴다는 건 전문 예능인들에게도 결코 쉽지 않은 과제였다.

 

2회는 첫 회와 달리 그냥 무작정 웃기는 게 아니라 어떤 미션을 부여함으로써 약간의 준비를 시키는 모습을 보여줬다. 강호동에게 김우빈의 극중 대사를 하게 하고, 강남에게 노래를 통해 반응을 이끌어내게 하며 또 게스트로 출연한 이유리에게 국민 악역 연민정의 연기를 하게 하는 설정은 확실히 준비 없이 웃기는 맨땅의 헤딩식의 첫 회보다는 더 많은 웃음의 포인트를 찾게 만들었다.

 

중요한 것은 성공이냐 실패냐의 결과를 떠나서 그 과정 자체가 훨씬 나아졌다는 점이다. 웃기려는 투명인간과 웃음을 참으려는 직장인의 대결 그 자체를 통해 보는 이들이 웃을 수 있다면 성패는 사실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닐 것이다. 그 과정에서 가장 빛난 건 로션 최승진 대리가 하하와 정태호의 로션 공격을 막아내면서 준 큰 웃음이다.

 

소개에서부터 학창시절 부처라 불렸다는 최승진 대리는 삼둥이를 닮은 외모에 어딘지 초탈한 듯한 평정심을 보이는 모습으로 보는 이들을 포복절도하게 만들었다. 최대리의 얼굴부터 머리까지 로션으로 새로운 스타일을 만드는 하하와 정태호의 모습은 그 자체로 하나의 콩트 코미디를 구성하는 힘을 발휘한다. 여기서 웃음은 하하나 정태호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래 그 와중에도 평정심을 유지하려 애쓰는 최대리에게서 나온다.

 

이것이 <투명인간>이 발견해낸 새로운 웃음의 포인트다. ‘부처 핸섬이 된 최대리의 모습은 <투명인간>의 방향성을 확실하게 만들어낸다. 우스운 상황에서 웃지 않는다는 것은 얼마나 웃긴 일인가. 그 사실을 묵묵히 버텨내는 직장인들을 통해 찾아낼 수 있다면 이 프로그램의 취지도 재미도 거기서 발견될 수 있을 것이다.

 

4%에서 3.5%로 떨어진 시청률의 수치가 모든 걸 말해주는 건 아니다. 또 지나친 강호동에 대한 의지는 강호동 본인에게도 또 프로그램에도 오히려 부담이 될 수 있다. 중요한 건 연예인과 직장인이 유리되는 것이 아니라 대결과정 속에서도 하나의 팀이 되어 웃음을 줄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강호동보다 더 최대리가 <투명인간>의 가능성이라는 걸 알 수 있다.

 

'개콘-젊은이의 양지’, 웃긴데 슬픈 건...

 

그깟 떨어지는 면접은 안 보면 되고, 직장은 안 가면 되며, 돈은 안 벌면 된다? <개그콘서트>의 새 코너 젊은이의 양지의 백수 김원효가 면접에서 떨어진 후배 취업준비생 이찬에게 건네는 조언이다. 행복을 묻는 이찬에게 김원효는 취직해 대기업 들어간다고 뭐가 행복하냐며 잘 돼봤자 빌 게이츠라고 말한다.

 

'개그콘서트(사진출처:KBS)'

뭐가 좋은데? 빌 게이츠가 친구랑 피시방을 가봤겠나. 지 이름 넉자를 한자로 적을 줄 아나. 물냉 비냉을 구분할 줄 아나. 버스 타고 지하철 타고 마을버스 타고 환승을 해봤겠나. 인생의 낙이 없다. 그렇게 살라 해도 그렇게 못살겠다.”

 

기막힌 역설이다. 김원효라는 백수의 역설은 그 아무 것도 없는 처지에 빌 게이츠의 삶을 불쌍하게 여기는 모습에서 빵 터진다. 하지만 그 가진 것 없이 살아가는 것이 체화되어 이제는 나름의 행복의 논리(?)’로 가진 자들의 불행을 논하는 모습에서는 마음 한 구석이 짠하게 느껴진다.

 

누구나 꿈꾸는 좋은 집에서 살아가는 그런 꿈조차 그는 좋은 집 살아봤자 펜트하우스라며 줄줄이 펜트하우스의 안 좋은 점들을 열거한다. “잠 좀 잘만하면 햇빛 엄청나게 들어오지. 환기 시키려고 문 열어놓으면 새 지나다니지. 혼자 전 층을 다 쓰니까 이웃 없지. 외롭지. 우울하지. 병 오지. 병 오면 죽지. 펜트하우스 살면 죽는다. 나는 그렇게 살라 해도 못살겠다. 인생에 낙이 없어요.”

 

하지만 이 말 뒤에는 햇빛 안 들어오는 반 지하에서 살아가며, 환기 시킬 창문조차 없는 방에 다닥다닥 붙은 이웃들과 지지고 볶으며 살아갈 법한 이 백수의 삶이 느껴진다. 백수의 허세. 게다가 그건 고착화되어 나름의 논리까지 세워져 있다. 소소한 행복을 얘기하지만 그것은 어쩌면 안 바뀌는 현실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포기한 자의 넋두리처럼 들린다.

 

반면 재벌 2세 이문재는 면접에서 떨어진 취업준비생 친구 이찬에게 야 너는 이 회사 저 회사 면접 볼 자유라도 있지. 나는 그런 선택의 자유도 없어. ? 아빠 회사 물려받아야 하니까. 나 들어가자마자 사장이야.”라고 말한다. 부러울 것 없어 보이는 재벌2세가 취업준비생을 부러워하는 듯한 이 역설에 또 웃음이 터져 나온다.

 

회사 가면 오십 줄 넘은 직원들이 90도로 인사를 한다며 어른을 공경하려야 공경할 수가 없는그 상황이 얼마나 불편한 일인 줄 아냐고 되묻는다. 가진 자의 엄살이다. 그의 논리는 너는 뭐든지 될 수 있는 자유로운 백수지만 난 기껏해야 미래가 정해진 불쌍한 재벌2라는 데서 나온다.

 

젊은이의 양지라는 코너는 이처럼 자기 상황과는 정반대의 이야기를 쏟아내는 청춘들의 군상을 통해 반전의 웃음을 만들어낸다. 백수는 자신의 삶이 빌 게이츠보다 낫다는 식으로 말하고, 재벌2세는 취업준비생의 삶이 자신보다 낫다는 식으로 말한다. 하지만 그 말들에 관객들이 빵빵 터지는 건, 그 말이 냉혹한 현실에서는 얼마나 공허한 이야기인가를 실감하기 때문일 것이다.

 

많은 이들이 행복을 이야기하고 태생적으로 정해지는 삶이 아닌 자기 스스로가 개척해가는 삶을 이야기한다. 그 말이 잘못된 건 아닐 것이다. 하지만 도저히 태생적으로 정해지는 삶을 바꿔나갈 수 없는 냉혹한 현실에서는 그 자족적인 행복에 대한 이야기나 개척하는 삶의 이야기가 패배의식이나 위선으로 들리기 마련이다.

 

젊은이의 양지는 그 아픈 현실의 이야기를 웃음의 코드 속에 녹여 제대로 짚어내고 있다. 웃다 보면 어딘지 슬퍼지는 건 그네들이 그토록 말로써 빌 게이츠를 불쌍히 여기고 재벌2세의 불행을 논해도 달라지는 현실은 아무 것도 없다는 점일 게다. 그들은 여전히 취업준비생이고 백수이고 재벌2세다. 자신의 노력으로 자신의 삶이 세워질 수 있는 세상. 우리네 청춘들에게는 사치인걸까. 지금의 젊은이들에게 과연 양지는 있는 것일까.

 

<개콘> ‘10년 후’, 채무관계를 인간관계로 바꾸는 훈훈함

 

도대체 이 짠함과 웃음의 정체가 뭘까. <개그콘서트> ‘10년 후라는 코너에는 10년 째 빌려간 돈을 받으러 오는 사채업자 권재관이 등장한다. 그런데 돈을 빌린 가겟집 아줌마 허안나를 10년 째 찾아오는 권재관은 겉으로는 사채업자의 으름장을 보여주지만, 그 속내는 완전히 다르다. 10년 전과 후의 모습이 교차하며 전혀 다른 권재관과 허안나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 이것이 이 코너가 갖고 있는 웃음의 원천이다.

 

'개그콘서트(사진출처:KBS)'

10년 전의 권재관은 허안나에게 아줌마. 돈 빌렸어요? 남의 돈 안 갚고 살면서 숨 쉬어져 숨쉬어지냐고?”라며 윽박지르지만 10년 후의 권재관은 똑같은 말을 하면서도 마치 익숙한 듯 옷을 꺼내 신상품 딱지를 붙여 진열할 만큼 이 가게에 익숙해진 모습이다. 그 익숙함은 가게 주인인 허안나도 마찬가지다. “아주 이 놈의 가게를 싹 다 엎어버려!”하며 옷을 던지는 권재관에게 10년 전은 두려운 모습이었지만 10년 후는 그 옷을 척척 받아서 진열대에 정리해 놓는 능숙함을 보여준다.

 

나 여기서 돈 받을 때까지 한 발자국도 안 움직여. 10년이 지나고 20년이 지나도 한 발자국도 안 움직인다. 알겠어?” 권재관이 던진 이 한 마디는 10년 동안 그를 이 작은 가게와 친숙하게 만든 동인이 된다. “아줌마. 오늘은 돈 갚아야지. 어떻게 사람을 여기 10년째 매일 오게 만들 수가 있어.”라는 투덜거림 속에는 그래서 알게 모르게 이 사채업자의 아줌마를 향한 연정을 엿보게 된다.

 

이런 설정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낯선 것이 아니다. 이미 황정민 주연의 <남자가 사랑할 때> 같은 영화가 이런 식의 사랑이야기를 우리에게 건넨 바 있다. 사실 채무관계라는 것이 돈을 받아오라고 지시하면서 빚쟁이와 직접적인 대면을 하지 않는 이들에게는 그다지 감정적 개입이 생기지 않는 법이다. 하지만 그 돈을 받으러 가는 어찌 보면 똑같이 어려운 현실에 접한 이들에게는 때때로 동병상련의 마음이 생기기도 한다.

 

‘10년 후의 세계는 그래서 그 10년 동안 벌어졌던 일들을 미루어 짐작하게 만든다. 옆 가게와 능숙하게 청바지와 티셔츠를 교환하고 청바지 사이즈가 28이라고 말하는 손님에게 그게 원래 조금 작게 나왔어라고 말하는 모습은 사채업자라기보다는 가게 주인이나 점원에 가깝다. 바지를 줄여달라면 척척 줄여주고, 그걸 던지면 종이백에 담아 손님에게 건네는 권재관과 허안나의 모습은 그래서 채무관계를 넘어선 가족관계를 보여준다.

 

이 감상적인(?) 사채업자는 심지어 허안나의 아들까지 챙겨준다. “마 엄마 바쁠 때 나한테 전화하라고 그랬잖아! 내가.”라고 하는 말이나, 야간 자율학습 땡땡이 쳤다는 사실에 애를 다그치자 애 때리지 말어! 얘 밤에 알바해.”라고 말하는 권재관에게서는 깊은 관심과 애정이 느껴진다. 헤드폰 갖고 싶다는 아이에게 마네킹에 선물을 걸어놓고 무심한 듯 마네킹이 뭐 하나 사왔나 보지.”라고 말하는 그에게서는 숨겨진 속내가 드러난다.

 

도대체 이 웃음과 짠함이 뒤섞인 ‘10년 후의 감정적 실체는 무엇일까. 그것은 우리네 사회 시스템과 무관하지 않다. 잘 먹고 잘 사는 사람들은 세상의 어려움을 외면한다. 그래서 어려운 일들은 자신의 손을 쓰지 않고 가난한 사람들을 앞세운다. 세상이 가난한 자들끼리의 경쟁의 장이 되는 건 바로 이런 부조리한 시스템에서 비롯된 일이다. 이것을 무수한 콘텐츠를 통해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 사채업자와 채무자의 관계일 것이다. 그들은 아무런 연원관계도 없으면서 오로지 돈 문제 하나로 불행한 관계를 만든다.

 

하지만 ‘10년 후가 보여주는 것은 이러한 부조리한 시스템 속에서 꿈꾸는 자그마한 반전이다. 가난한 자들이 경쟁하기보다는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 그 지점에서부터, 이제는 그들을 그런 관계로 몰아넣은 세상이 제대로 보여지게 된다. ‘큰 형님은 돈 때문에 아줌마의 인생을 종치게 만들려 한다. 거기에 던지는 권재관의 한 마디. “여기서 인생 끝나고 싶어? 여기서 인생 마감하고 싶냐고? 그렇게 되기 싫으면 나한테 오든가.” 부채관계가 인간관계로 넘어오는 순간이 주는 그 훈훈함. 이것이 웃기면서도 짠한 ‘10년 후의 세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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