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태규 그리고 여자 봉태규, 차예련

악역이 이토록 귀여울 수가 있을까. SBS 수목 드라마 ‘워킹맘’에서 워킹맘 최가영을 힘겹게 하는 주요인물은 박재성(봉태규)과 고은지(차예련)다. 그런데 코믹극으로 그려지기 때문일까. 이 사회성 짙은 소재의 워킹맘을 다룬 드라마 속에서 진지하게 다뤘다면 천하의 악당이 될 이들이 오히려 귀엽게까지 느껴지는 것은. 악당은 악당인데 좀 어수룩해 보이고, 결국에는 늘 당하기만 하는 이들을 어찌 미워할 수 있을까. 조금은 본말이 전도된 느낌이지만, 평면적인 워킹맘 최가영보다 더 주목하게 되는 이들 캐릭터는 지금 ‘워킹맘’을 보게 만드는 진짜 힘이 분명하다.

울고 있어도 웃음이 터지게 하는 남자, 봉태규
이 잘생긴 것과는 거리가 먼 남자의 매력은 도대체 뭘까. 필요하다면 눈물에 콧물까지 질질 흘리면서 연기에 몰입할 수 있는 그 망가짐의 미학이 아닐까. 놀라운 것은 봉태규가 이렇게 절절하게 울 때마저 보는 이들은 폭소를 터뜨린다는 점이다. ‘워킹맘’에 있어서 봉태규가 하는 박재성이란 역할은 이 드라마의 전체 분위기를 좌우한다.

악하다기보다는 철부지에 가까운 박재성이란 캐릭터는 바로 그것 때문에 워킹맘 최가영을 힘겹게 만든다. 고은지의 유혹에 쉽게 넘어가 늘 일을 저지르고는 배구선수 출신인 최가영에게 얻어맞기 일쑤다. 그러면서도 상황파악 못하고 그다지 귀엽지도 않은 ‘장화 신은 고양이’ 흉내를 낸다. 결국 이혼까지 당하고 노숙자 신세까지 전락하는 박재성은 따라서 드라마 속에서 악역으로 존재한다기보다는, 이 땅의 모든 워킹맘들의 속을 시원하게 해주는 샌드백 역할을 하고 있다.

봉태규가 연기하는 박재성은 그가 가장 잘 하는 역할이라 할 수 있다. 이미 코믹 연기로 물이 오른 봉태규는 이제 더 이상 데뷔 영화인 ‘눈물’에서의 반항기 어린 캐릭터가 아니다. 그는 ‘애정결핍이 두 남자에게 미치는 영향’, ‘두 얼굴의 여친’, ‘가루지기’를 통해 가장 불쌍한 얼굴로 가장 웃음을 끌어내는 캐릭터로 자리잡았다. ‘워킹맘’에서 봉태규가 주인공이어야 하는 최가영 역의 염정아보다 더 주목을 끄는 것은 코믹 드라마의 성격상 웃음을 주는 인물에 더 주목이 가는 이유도 있지만, 봉태규 특유의 개성에서 비롯된 바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여자 봉태규로 피어난 차예련의 매력
이 드라마에서 발견한 또 하나의 배우는 차예련이다. ‘못된 사랑’의 조앤 역할은 그녀의 매력을 끌어내기에는 너무 평범했다. 눈부신 외모와 몸매에 완벽한 성격의 캐릭터는 드라마 속에서는 너무나 정형화된 이미지를 만든다. 게다가 요즘의 대세는 섹시함과 털털함이 합쳐진 ‘섹시털털’이 아닌가. ‘워킹맘’에서 고은지를 만나 차예련의 매력이 피어나는 건 그 때문이다.

초반부에는 그저 악역처럼만 보였던 고은지는 그러나 차츰 무너지기 시작하면서 이제는 박재성과 소울메이트처럼 통하는 캐릭터가 된다. 여기서 고은지를 연기하는 차예련은 거의 여자 봉태규가 된다. 불쌍할 정도로 깨지고 당하는 악역으로서 고은지는 박재성과 똑같이 미워할 수 없는 드라마에 웃음을 주는 존재다.

그녀의 매력이 드러나기 시작한 것은 고은지가 집밖으로 쫓겨나기 시작하면서. 명품으로 치장했던 그녀는 차츰 하나씩 그 명품을 팔아 생활하는 처지로 전락하고, 잠자리로 찾는 찜질방에서 심지어 박재성의 입에 들어간 계란을 빼서 먹을 정도로 망가진다. 그 상황에서도 여전히 공주병에 빠져 자신이 원하면 누구든 자기의 매력에 빠져들거라 착각하는 고은지는 이제 어느새 누군가 사주는 자장면을 입에 덕지덕지 바르며 먹는 자신을 깨닫지 못한다. 고은지를 통해서 차예련은 마치 리얼 버라이어티쇼에 등장한 듯한 효과를 거두고 있다.  섹시한 이미지에 인간적인 면모가 덧붙여지고 있는 것이다.

‘워킹맘’에는 따라서 두 명의 봉태규가 존재한다. 문제를 만드는 장본인이지만 늘 깨지는 역할로 보는 이들에게 기꺼이 통쾌함을 선사하는 그들. 이 드라마는 거의 이 두 인물의 힘으로 움직이고 있다. 이렇게 보면 이 드라마는 이 시대의 워킹맘의 문제를 진지하게 끄집어낸다기보다는 오히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워킹맘들의 막혔던 울분을 터뜨려 주는 정도의 드라마라는 걸 알 수 있다. 문제에만 천착했다면 이런 코믹한 접근은 할 수도 또 해서도 안 되는 것이었을 테니까. 워킹맘이라는 심각한 소재 때문에 이러한 코믹터치에는 분명 위험성이 존재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어쨌든 ‘워킹맘’이라는 드라마를 통해 두 봉태규(?)의 가능성을 발견한 것은 부정하기 어려운 사실이다.

지위가 올라도 일은 더 많아진 이 시대의 엄마들

확실히 여성들의 사회진출이 많아진 시대다. 그래서일까. 주말극의 주도권을 잡고 있는 건 여성들이다. 그 여성들이라 함은 TV 앞에서 리모콘을 들고 있는 여성들이기도 하고, 그 TV 속 드라마에 등장하는 여성들이기도 하다. 드라마 속 여성 캐릭터들이 보여주는 일상은 따라서 이 시대 여성들이 처한 상황을 가늠하게 해준다. 과연 이 시대의 여성들은 사회진출도 많아지고 위상도 높아진 만큼 덜 피곤한 삶을 살게 된 걸까.

‘엄마가 뿔났다’의 엄마, 김한자(김혜자)의 일상은 노동 그 자체다. 자식들 때문에 늘 뿔이 나있으면서도 손에서는 일을 놓지 않는다. 그녀는 그 누구도 대신 감당해줄 수 없는 뿔을 저 스스로 끌어안고, 툴툴대면서도 늘 가족들의 밥상을 차리고, 방을 청소하고, 빨래를 하며, 시아버지 뒷바라지를 하고, 노처녀로 늙어 가는 딸의 반찬까지 챙긴다. 세상이 여성들의 손을 들어주었다고는 하지만 이 엄마의 일상은 달라진 것이 별로 없다.

이것은 이 드라마가 그만큼 보수적이라는 걸 말해주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 드라마는 마치 리얼리티쇼를 보는 듯한 현실의 리얼함을 담고 있다. 드라마 진행과는 전혀 상관없는 대사들, 예를 들면 ‘동네의 한 가게 주인이 무슨 일을 당했다’는 걸 가지고 떠는 수다들이 마구 캐릭터들을 통해 쏟아져 나올 때면 이거 진짜 상황 아냐 하는 착각이 들 정도다. 어쨌든 이 드라마가 보여주는 엄마의 일상이 갖는 피곤함은 보수적 시선에 의해 그려져서가 아니라 실제를 잘 반영하고 있다는 말이다.

그럼 조금 나이를 낮춰 이 시대의 젊은 엄마들은 어떨까. ‘천하일색 박정금’의 형사 박정금(배종옥)은 참 치울 것이 많은 엄마다. 일터에 나가면 나쁜 놈들을 세상에서 치워 깨끗하게 만들어야 하고, 집으로 돌아오면 일상이 만들어내는 자잘한 삶의 부스러기들을 치워야 한다. 그녀는 이른바 이 시대의 워킹맘을 대표한다. ‘워킹맘’이라는 그 뉘앙스는 참 현대적이고 세련된 느낌이 있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노동에 찌든 여성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걸 발견하게 된다.

게다가 박정금의 가정은 피곤한 일상에서 파김치가 되어온 엄마의 피로를 풀어줄 만큼 편안하지가 못하다. 새엄마를 들인 아버지와 아픈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데다, 아파트 청약에 사기를 맞아 외간남자들과 같이 살아가야 하는 처지다. 게다가 어린 자식을 잃어버린 그녀는 늘 그 죄의식에 살아가야 한다. 즉 그녀는 육체의 피가 튀는 일터와 정신의 피가 튀는 가정을 가졌다. 그녀는 진정으로 쉴 곳이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달라진 게 없는 건 아니다. 달라진 건 엄마들이 아니라 이들 엄마들 주변에 서 있는 인물들이다. ‘엄마가 뿔났다’에서 김한자의 가족들은 저마다 엄마를 안쓰러운 눈으로 바라보면서 이해하려 애를 쓰고 또 그걸 보듬으려고 노력한다. 그것은 과거에 가부장적인 가족에서 자라났을 시아버지에서부터 저 막내딸과 심지어는 사위까지 포함해서 그렇다. 모두들 김한자의 노동과 맘 고생을 의식하면서 그녀의 투덜거림을 진정으로 걱정한다.

박정금도 마찬가지다. 그녀는 변호사인 한경수(김민종)와 의사인 정용준(손창민)에게 그 고충을 이해 받는다. 한경수는 그 자신이 버려진 고아였기에, 아들을 잃은 그녀를 이해하고 그러면서 점점 그 동병상련의 마음은 애정으로 변해간다. 사기분양으로 함께 살게된 초등학교 동창 정용준은 자기가 무슨 남편이나 된 듯 그녀를 챙긴다. 정용준의 형인 정용두(박준규)가 주부 역할을 하고, 박정금의 어머니가 집안 어른 역할을 하는 그녀의 집은 이 시대의 유사가족을 형성한다. 이 안에서 남녀간의 과거적 역할은 역전되어 있다. 물론 이것은 환타지다. 현실이 채워주지 못하는 것에 대한 작가의 희구인 셈이다.

주말극을 엄마들이 쥐고 있다고 해도 그 TV 바깥이나 안쪽의 엄마들은 모두 여전히 피곤하다. ‘엄마가 뿔났다’는 이것을 리얼하게 그리고 있고, ‘천하일색 박정금’은 이것을 환타지로 그리고 있을 뿐이다. 이 피곤해진 엄마들이 말해주는 것은 이렇다. 과거 전통적인 가치관과 현재의 가치관이 공존하는 가정 속에서 엄마들의 사회적 위상이 높아졌다는 것은 그만큼 더 많아진 노동을 의미하는 것이지, 그 노동에서의 탈피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 이것이 현실이라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적어도 이 엄마들을 바라보는 주변의 시선들이 달라졌다는 점일 것이다. 이것은 지금의 과도기를 넘어 언젠가는 좀더 편안해진 그녀들을 기대할 수 있게 만드는 유일한 단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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