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세스캅>, 일과 가정의 양립은 불가능한 일인가

 

김희애가 돌아왔다. 이번에는 워킹맘이다. 그것도 극한 워킹맘. SBS의 새 월화드라마 <미세스캅>에서 김희애가 연기하는 최영진이라는 인물은 포장마차에서 주인아주머니와 털털한 이야기를 나누며 잠복근무하는 장면으로 등장한다. 무언가 세련되고 우아한 자태를 늘 보여주던 김희애는 이제 나쁜 놈들을 잡기 위해 좁은 골목길을 달리고, 싸워야 하는 인물로 돌아왔다.

 


'미세스캅(사진출처:SBS)'

여성들을 잔인하게 유린하고 살해하는 연쇄살인범을 추적하는 그녀가 일하는 현장에서는 자칫 잘못하면 범인들의 칼에 맞아 사경을 헤매게 되기도 하는 그런 살벌한 일들이 벌어진다. 최영진 팀장의 오른팔인 조재덕(허정도) 경사는 범인의 칼에 맞고서야 비로소 자신이 간경화였다는 걸 발견할 정도로 자신을 돌볼 틈조차 없는 이 일의 세계를 보여준다.

 

그것은 최영진도 마찬가지다. 그녀는 어쩌다 홀로 아이를 키우게 되었지만, 형사라는 직업 때문에 아이의 발표회에도 가지 못하는 나쁜 엄마가 되었다. 대신 그녀의 여동생인 최남진(신소율)이 아이를 돌보지만 아이는 결국 엄마를 그리워하게 된다. 자꾸 물건을 훔치는 아이에게서 그렇게 해서라도 엄마가 보고 싶었다는 얘기를 들은 최영진은 그래서 오열하며 이 일을 때려치울 결심을 한다.

 

그래서 과장에게 사직서를 제출하지만 또한 눈에 밟히는 것이 팀장이라고 자신을 바라보는 팀원들이다. 조재덕에게 칼을 먹인 범인이 등장했다는 이야기에 그녀는 갈등한다. 그와 그의 아내에게 반드시 범인을 잡겠다고 약속했던 그녀였다. 하지만 이렇게 열심히 일한다고 해서 그것이 모두 좋은 결과로 이어지지 않는 게 조직의 생리이기도 하다. 팀장의 상사인 과장은 비리에 얽혀 엉뚱한 사람을 범인으로 성급하게 지목해놓고는 이를 고치려 하지 않는다.

 

<미세스캅>은 일과 가정 사이에서 동분서주하는 우리네 워킹맘들의 이야기를 형사라는 직업을 통해 극화시킨 드라마다. 일 때문에 아이를 돌볼 틈이 없는 워킹맘들의 보이지 않는 속 앓이를 이해하고 공감한다면 최영진이라는 인물에 푹 빠져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누군가의 가족을 지키기 위해 온통 일에 자신을 내던지는 삶을 살고 있지만 정작 자신의 가족은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그런 삶의 아이러니라니.

 

최영진과 최남진 그리고 최영진의 딸이 그려내는 가족의 풍경은 다른 식으로 들여다보면 여성들의 공동체 같은 뉘앙스를 풍긴다. 일과 가정의 양립이라는 과제 앞에서 가녀리게만 보이는 이 여성 공동체의 파편화된 삶은 저 살풍경한 남성성의 세계와 대립구도를 갖고 있다. 최영진의 상사인 염상민 과장(이기영)이나 연쇄살인범이 일 안팎에서 여성성의 삶을 위협하는 존재로 등장한다는 사실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그래서 <미세스캅>은 마치 전형적인 형사 장르물의 하나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우리네 워킹맘들의 초상이 담겨져 있다. 최영진은 아마도 앞으로 일의 세계와 가정이 뒤얽히는 상황을 겪게 되지 않을까. 그 안에서 어쩌면 그녀는 선택을 강요받을 지도 모를 일이다. 일인가. 가정인가. 이러한 질문은 <미세스캅>이라는 장르물에 괜찮은 무게감을 얹어준다. 김희애가 그려나갈 최영진이라는 워킹맘의 삶이 자못 궁금해지는 이유다. 그녀는 과연 일과 가정을 모두 지켜낼 수 있을까.



매회가 공감, <미생> 수직상승의 비결

 

아이를 가졌다는 것만으로도 워킹맘은 죄인이다. 회사에서는 야근시간에 아이를 챙겨줄 시어머니나 친정어머니에게 사정하기 바쁘고, 그도 안 되면 잠깐 나와 어린이집에 있는 아이를 집에 데려다놓고 다시 회사에 출근해야 한다. 회사에서도 눈치를 보지만 워킹맘은 집에서도 눈치를 본다. 맞벌이 하는 남편도 바쁘기는 마찬가지지만 집안일을 도맡아 하는 슈퍼우먼이어야 하고, 아침부터 바쁜 업무로 전화 통화를 하다가 엄마를 보내는 아이의 슬픈 눈빛을 마주하기도 해야 한다. 그것이 tvN <미생>이 보여준 워킹맘의 비애다.

 

'미생(사진출처:tvN)'

첫 회부터 장그래(임시완)를 통해 스펙 없는 청춘의 비애로 깊은 공감을 이끌어낸 <미생>, 2회에서 인턴 장그래가 누명을 쓰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그 진실이 한 가장을 곤란하게 만들 것을 알고는 술자리 푸념으로 풀어내는 팀장으로서 가장으로서 살아가는 중년의 비애를 오과장(이성민)을 통해 보여준 바 있다. 그리고 3회에서는 부하직원의 징계를 막기 위해 싫어하는 상사에게 고개를 숙이는 오과장을 통해 팀장이라는 이름의 무게감을 느끼게 해주었고, 4회에서는 인턴들의 PT를 통해 경쟁과 협력이라는 직장생활의 양면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5회는 여자로서 회사생활을 한다는 것의 비애를 선차장(신은정)과 신입사원 안영이(강소라)가 겪는 차별과 모욕을 통해 보여주더니, 6회에서는 갑과 을의 관계에 대해, 비즈니스를 위해 친한 친구를 접대해야 하는 오과장의 이야기와, 착하고 여린 심성 때문에 거래처에게 오히려 휘둘리는 박용구 대리(최귀화)와 그를 돕는 장그래의 이야기를 통해 전해주었다.

 

회사 생활에서 부딪치는 일들이 얼마나 많겠는가. <미생>이 담아내는 건 완전히 새로운 사건들이 아니라 바로 그 우리네 샐러리맨들이라면 누구나 겪었을 회사 생활의 편린들이다. 거기에는 부하직원으로서의 괴로움도 있지만 팀장으로서의 고충도 있고 단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겪기 마련인 사회적 차별의 시선도 있다. 갑을 관계라고 하면 무조건 을에게 갑질 하는 것만을 떠올리지만 <미생>은 때로는 갑을 두고 을질 하는 거래처도 있다는 걸 보여준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아낸 그들이 그래서 저녁 시간에 너 나랑 술 한 잔 할래?”하고 물어보는 그 말에는 깊은 페이소스가 느껴진다. <미생>에서 종종 나오는 팀장과 부하직원 간의 선술집에서의 소주 한 잔은 그래서 보는 이들의 마음을 짠하게 만든다. 그 소소한 한 잔만이 하루를 견뎌낸 그들이 갖는 유일한 위안과 위로처럼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술 취한 체 돌아온 집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가족은 늘 사직서를 책상 한 귀퉁이에 넣어두고도 그 하루를 버텨내는 힘이 된다.

 

이것은 <미생>이라는 드라마가 매 회 수직상승하는 비결이다. 특별할 것 없는 우리 주변의 이야기들을 카메라는 아주 가까이 다가가 하나하나 포착해내고, 그 이면에 담겨진 소소한 기쁨과 커다란 아픔들을 공감하게 해준다. 이 샐러리맨들의 하루하루 이야기가 특별하게 다가오는 건 그 이야기가 완전히 새롭다거나 극적이어서가 아니다. 그것은 좀 더 가까이 그 이야기에 다가간 바로 그 따뜻한 시선에서 나온다.

 

<미생>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길거리에서 회사에서 혹은 집에서조차 지나치고 마는 샐러리맨들에게 보내는 헌사다. 그들의 일상이 그저 그렇게 지나칠 정도로 가치 없지 않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 드라마의 디테일은 그래서 그 자체로 샐러리맨들에 대한 이 작품의 태도를 담아낸다. 그러니 이제 주변에 사회생활을 하는 이들이 있다면 다시 한 번 그들을 찬찬히 들여다보라. 그들의 삶에서 특별함이 발견될 것이니. 밥벌이 앞에 그 누구도 위대하지 않은 이는 없다.

 

'로필3', 김소연의 로맨스에 빠져드는 까닭

 

왜 이 드라마는 대놓고 로맨스가 필요하다고 외쳤을까. 아마도 그것은 지금 현대 여성들의 욕망으로서의 로맨스를 드라마 전면에 내세우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나 드라마에 있어서 로맨스는 아마도 여성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가장 중요한 요인일 테니 말이다.

 

'로맨스가 필요해3(사진출처:tvN)'

하지만 로맨스가 필요해라고 외쳤다는 것은 어딘지 로맨스 부재의 현실을 말해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현실에 부대끼면서 워킹우먼들이나 워킹맘들에게 로맨스란 사치처럼 여겨지는 어떤 것이다. 그래서일까. 여주인공 주연(김소연)은 약육강식의 직장생활에 서서히 적응하면서 생겨난 마음의 굳은살로 진실된 마음이나 감정에서는 점점 멀어져가는 인물이다.

 

남자와 헤어지는 일에 울고불고 하지 않을 정도로 무덤덤해진 그녀의 감각을 다시 깨우는 인물이 바로 앨런(성준)이라는 가명으로 불리는 주완이다. 그는 어린 시절 주연의 집에서 자라며 그녀에게 배운 감성으로 세계적인 작곡가가 된 인물. 따라서 그에게 주연은 여전히 감성의 한 부분을 건드려주는 싱싱으로 자리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앨런이 주완이라는 걸 모르는 주연에게 두 사람은 전혀 다른 감정으로 다가온다는 점이다. 주완은 어린 시절의 잔상으로 남은 못생긴 고구마지만,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의 앞에 나타난 앨런은 이상하게도 사람을 불편하게 하는(사실은 설레게 하는) 그런 남자다. 어떻게 동일인물에 대해 이토록 다른 감정을 갖는 게 가능해질까.

 

이것은 이 드라마가 말하는 로맨스의 정체다. 로맨스란 특정한 대상이 갑자기 나타나서 생겨나는 감정이 아니라, 똑같은 대상이라도 어떻게 다가가거나 느끼게 되느냐에 따라 나타날 수 있는 감정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로맨스가 필요한 인물은 주연이지만 그것을 막고 있는 것 역시 주연 자신이다. 물론 앨런이 그 역할을 하지만 그것은 하나의 기폭제일 뿐, 실제 로맨스를 만드는 건 주연의 마음에 달린 일이다.

 

결국 이 드라마가 보여주려는 것은 현실에 마모되어버린 주연이라는 인물에게 앨런이라는 로맨스를 자극하는 인물을 엮어 나타나는 그 화학반응이다. 그래서 주연이 잊고 있었던 과거의 싱싱을 다시 찾아가는 이야기가 <로맨스가 필요해3>. 어찌 보면 단순해보이지만 여성 시청자들이라면 한 번쯤 꿈꿀만한 판타지다. 잠시 현실에서 벗어나 주연에 빙의되어 그녀의 변화를 똑같이 느끼고 겪게 된다면 어쩌면 자신 속에 잊혀졌던 저마다의 싱싱을 찾게 될 지도.

 

바로 이 지점이 김소연의 로맨스에 우리가 빠져드는 이유다. 이제는 약육강식의 사회생활에 적응되어 살아가는 워킹우먼들이 그동안 잊고 있었던 것. 혹은 마음 한 구석에서 상처받지 않기 위해 의도적으로 지워버렸던 것. 그것을 김소연은 주연이라는 캐릭터가 싱싱이 되어가는 과정을 통해 조금씩 끄집어내려 한다. 힘겨운 하루하루를 버텨내게 해주는 힘은 어디서 나올까. 그것은 감성을 지워버리고 데드마스크가 되는 것이 아니라, ‘로맨스가 필요해라고 다시 말하는 것이 아닐까.

워킹맘은 없고 불량남편만 활약하는 ‘워킹맘’

‘워킹맘’에는 ‘불량남편 길들이기’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언뜻 보면 이 제목과 부제는 어떤 상관관계를 가진 것인다. 워킹맘, 최가영(염정아)이 불량남편 박재성(봉태규)에 의해 번번이 발목을 잡히는 상황은 실제로 이 상관관계가 더욱 신빙성 있는 것처럼 생각하게 만든다. 하지만 이것은 드라마가 그려놓은 상관관계일 뿐이다. 현실에서 워킹맘의 문제와 불량한 남편의 문제가 겹쳐지는 부분은 그다지 많지 않다. 이 땅에 살아가는 워킹맘들의 고민은 남편이 불량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 사회적인 시스템의 부재와 아줌마 직장인을 바라보는 편견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이 드라마가 워킹맘의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하는 점은 기획의도를 들여다보면 더 자세히 알 수 있다. 기획의도에 들어가 있는 내용은 총 세 가지. 첫째는 워킹맘의 친정엄마 만들기이고 둘째는 짝퉁 친정엄마의 육아파업 선언, 셋째는 연하남편 인간개조 프로젝트다. 즉 워킹맘의 문제를 친정엄마가 없어서라고 상정하고, 그 친정엄마조차 파업을 선언하는 상황을 연출하며 이로써 육아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철부지 연하남편을 개조한다는 내용을 풀어내겠다는 것이다. 작가는 워킹맘의 문제가 육아문제라는 건 인식하고 있지만, 그것의 해결책이 사회(직장 같은)와의 대결에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작가는 육아를 대신해줄 그 누군가를 찾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이처럼 주제의식에서 한참 멀어져 보이는 ‘워킹맘’이 드라마를 끝까지 보게 만드는 어떤 힘이 있었다는 것은. 그 해답은 바로 코미디에 있다. 이 드라마의 진짜 힘은 워킹맘이라는 사회적 약자의 위치에 대한 따뜻한 시선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불량남편이 길들여지고, 없는 친정엄마가 생기고, 육아파업을 선언하는 친정엄마가 결국에는 자식을 맡게되는 그 복잡다단하지만 얽히고 설키는 코미디 상황에 있기 때문이다.

주제의식에서 멀어지는 대신, 코미디를 선택하면서 워킹맘 당사자인 최가영보다 더 중심에 서게 된 박재성과 고은지(차예련)는 매번 코믹한 상황 속에 던져져 시청자들을 포복절도하게 만들면서 이 드라마의 실제적인 주인공이 된다. 여기에 봉태규와 차예련의 몸을 사리지 않는 연기는 김현희 작가 특유의 코미디에 제대로 살을 입힌다. 실로 이 작가의 재능은 사회적 문제를 극화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끝없이 코믹한 상황을 연출해내는데서 반짝반짝 빛난다.

‘워킹맘’은 그다지 심각한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는다면 꽤 재미있게 볼 수 있는 드라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불량남편 길들이기’라는 부제에 해당하는 코미디를 지향하면서 이 드라마는 정작 제목인 ‘워킹맘’을 잃어버린다. 따라서 해외출장의 기회 앞에서 서둘러 최가영이 일보다는 가정을 선택하고 불량남편을 받아들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다. 이 드라마의 결말은 워킹맘으로서의 사회적 성공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길들여진 불량남편과의 재결합에 있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최가영에게 육아문제는 어떤 것도 해결된 것이 없는 반면, 불량남편은 확실히 길들여졌다. 차라리 워킹맘이라는 거창한 제목을 달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하지만 그렇게 했다면 이 드라마에 대한 화제성이나 주목도는 그만큼 떨어졌을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의식적으로 어울리지 않는 제목을 붙일 필요가 있었을까.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니 편하게 웃고 즐기면 그만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워킹맘’같은 사회적 문제를 정면으로 제시하는 제목을 달고 있는 드라마를 그저 즐기면서만 볼 수 있을까.

세상엔 실제 워킹맘들이 많고 그들은 이 드라마의 제목만 보고도 단박에 관심을 가졌을 것이다. 삶이 피곤한 워킹맘들이니 그저 이 드라마를 보며 실컷 웃고 즐기면 되지 않겠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실컷 웃다가 끝에 가서 남는 어딘지 부족한 씁쓸함은 코미디로 전화하면서 이 사회적 문제가 결국은 내 가족이 감당하고 해결해야할 문제로 환원된 그 부분에서 비롯되는 것일 것이다. 이 시대 워킹맘들이 원하는 건, 박재성의 개과천선이 아니라, 최가영이 마음놓고 출장을 갈 수 있을 정도로 편견 없는 사회적 풍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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