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진 작가 아이디어 도둑질, 콘텐츠 산업 최악의 걸림돌

 

tvN <피리 부는 사나이>가 표절 논란에 휘말렸다. 그 진위는 아직까지 명확하게 알 수 없다. 문제를 제기한 건 웹툰 작가 고동동이다. 그는 드라마 <피리부는 사나이>2년 전 자신이 공모전에 출품했다 떨어진 <피리부는 남자>와 유사하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그는 두 작품이 동화 속 <피리부는 남자>를 희대의 테러범으로 해석했고, 테러를 하는 이유가 동화처럼 부패한 권력에서 맞서는 것이며, 가스 살포를 통해 긴장감을 조성하고 진실을 얻어낸다는 등을 들어 두 작품의 유사성을 거론했다.

 


'피리부는 사나이(사진출처:tvN)'

물론 <피리부는 사나이>의 류용재 작가 역시 이에 대한 공식입장을 통해 두 작품이 유사하다는 고동동 작가의 발언에 반기를 제기했다. 류용재 작가의 이야기는 피리부는 사나이라는 동화의 모티브는 이미 영화 <손님>이나 15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인 <피리 부는 사나이>, 네이버에 연재 중인 웹툰 <피리 부는 남자(고동동 작가와는 다른 작품)> 등에 이미 널리 활용되는 보편적인 소재라는 것이다. 또한 이 드라마가 가진 장치 중 가장 핵심적이라고할 수 있는 테러를 통한 사회적 복수이야기 역시 <더 테러 라이브><모범 시민> 등 많은 작품들이 사용하고 있는 모티브라는 것.

 

사실 두 작품이 유사한 지 아닌지, 아니면 류용재 작가의 드라마 <피리부는 사나이>가 고동동 작가의 <피리부는 남자>를 표절한 것인지 아닌지는 분명하지 않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공방에 의혹이 깊어진 까닭은 하필이면 그 공모전에서 심사를 했던 이가 바로 류용재 작가였다는 사실 때문이다. 고동동 작가는 당시 류용재 작가가 “1차 심사면접에서 제 작품을 칭찬하며 얼굴 맞대고 잘 썼다고 힘을 주셨던 분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물론 공모전 심사를 했다고 해서 당시의 작품을 표절했다 단정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이 문제가 중대하게 여겨지는 것은 이런 일들이 알게 모르게 공모전이나 작가들 사이에서 비일비재로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특히 선배 작가들의 신진 작가 아이디어 도용이나 갈취는 심각한 수준이라고 알려져 있다.

 

시나리오 작가를 지망했던 사람들이라면 거의 누구나 경험했을 일들이다. 결국 새롭고 참신한 아이디어나 작품들은 신진 작가들의 머리에서 나오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들에게는 자신의 작품을 지켜낼 만한 힘이 없다. 결국 공모전에 의지하지만 그것 역시 공평한 기회를 주지 못한다는 박탈감을 느낄 때가 더 많다. 필자가 아는 시나리오 작가들 중에도 신인 시절 엄청난 기성 작가들의 갑질에 휘둘려 중도에 펜을 꺾는 이들도 많았다.

 

이른바 입봉을 시켜준다는 빌미로 아이디어만 가져가는 경우도 많고, 공모전에서 괜찮은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낙선시킨 후 그 아이디어를 도용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사실 국내의 드라마와 영화 시장에서 대중들이 왜 참신한 작품들이 잘 나오지 않는가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는 가장 큰 이유는 신진 작가들이 자신의 작품들을 제대로 보여줄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피리부는 사나이>의 표절 논란은 그래서 그 결론이 어떻게 나든 이런 신진 작가들의 숨겨졌던 문제들을 표출시켰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이 작품이 표절이냐 아니냐하는 문제는 차치하고라도 다시금 신진 작가들의 아이디어를 빼먹는 관행처럼 굳어져 버린 행태들은 이번 기회가 그 깊은 뿌리가 캐내지기를 기대한다. 콘텐츠 산업의 최대 걸림돌은 바로 이런 신진작가들의 길을 원천적으로 차단시켜버리는 아이디어 도용문제 같은 권력구조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치즈인더트랩>, 박해진의 대체불가 이중적 매력

 

박해진에게 이런 매력이 있었나. tvN 월화드라마 <치즈인더트랩>이 심상찮다. 첫 회 3.5%(닐슨 코리아)의 괜찮은 시청률로 시작한 이 드라마는 2회에 4.8%를 찍었다. 이런 흐름이라면 tvN 드라마의 새로운 기록을 만들 가능성이 충분하다.

 


'치즈인더트랩(사진출처:tvN)'

놀라운 건 이제 이 드라마가 겨우 시작일 뿐이라는 점이다. 홍설(김고은)과 유정(박해진)의 밀고 당기는 관계가 이제 막 피어나고 있는 상황. 특히 유정이라는 캐릭터는 이 드라마의 가장 강력한 힘이다. 무표정하게 누군가를 바라볼 때는 마치 사이코패스 같은 섬뜩함이 느껴질 정도다. 하지만 그 무표정이 홍설을 향해 살짝 미소를 내비칠 때 섬뜩함은 거꾸로 눈 녹듯 녹아버리는 달달함으로 변한다.

 

홍설의 시선을 따라가면 그 섬뜩한 존재로만 보였던 유정 선배가 점점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에 두려움과 관심이 교차한다. 무언가 사람을 이용하는 듯한 모습이 자신의 오해였다고 믿게 되면서 홍설은 조금씩 마음을 열지만, 그것은 단지 오해만은 아니다.

 

상철(문지윤)이 회비를 횡령했다는 사실을 영수증을 증거로 내세워 폭로했던 이가 유정이 아니라 재우(오희준)였다는 걸 알게 된 홍설은 자신이 유정을 의심했던 것을 미안해하지만, 알고보면 그 재우에게 영수증을 건넨 이가 실제로 유정이었다는 것이 밝혀진다. 바로 이 알쏭달쏭하고 미스테리한 유정이란 캐릭터는 그래서 홍설의 시선에 빙의되기 마련인 시청자들에게 기묘한 매력으로 다가온다.

 

어딘지 상처가 있을 것 같은, 그래서 마음이 뒤틀어진 듯한 그 이중성은 밝은 성격의 홍설과 흥미로운 화학작용을 일으킬 것 같은 기대감을 갖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미 웹툰으로 유명한 작품이긴 하지만, 또 그래서 캐스팅 과정에서도 원작의 캐릭터와의 싱크로율을 갖고 잡음들이 나왔던 작품이긴 하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잘 된 캐스팅에 잘 만들어진 드라마임에는 틀림없다.

 

<은교>, <협녀, 칼의 기억>, <몬스터>, <차이나타운> 같은 전작들이 모두 강렬한 캐릭터들이어서 잘 어울리지 않을 것만 같았던 김고은이었지만 역시 다양한 연기의 결을 갖고 있는 배우라는 게 이 작품을 통해 잘 보여지고 있다. 종잡을 수 없는 유정선배 앞에서 그 밀고 당김에 쩔쩔 매는 모습은 김고은의 귀여운 매력을 드러내준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작품의 중심에 서 있는 연기자는 역시 박해진이다. 이미 <나쁜 녀석들>에서 사이코패스 역할을 통해 차가운 이미지를 충분히 보여줬던 그는 이 작품에서는 차가움과 따뜻함을 오가는 이중적 매력을 통해 드라마의 긴장감을 만들어주고 있다. 그러고 보면 눈을 가늘게 뜨고 무심한 듯 누군가를 바라보고 있는 박해진의 얼굴에는 냉정함과 함께 어떤 우수 같은 것이 느껴진다.

 

많은 멜로드라마들의 남자 주인공들이 처음에는 까칠하게 버럭 대며 등장했다가 차츰 여자 주인공과의 만남으로 달달해지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런데 <치즈인더트랩>의 유정이라는 남자주인공은 그 차가움이 무서울 정도다. 그러니 그와는 대조적인 달달해지는 과정의 힘이 더 강렬해질 수밖에 없다. 이러한 박해진의 밀당 하나만을 이제 겨우 보였을 뿐이다. 그런데 이 정도의 반응들이 나오고 있다니. 실로 놀라운 일이다



<더 폰>, SF 스릴러가 이렇게 토착적인 느낌을 주는 까닭

 

우리에게 SF 스릴러는 어딘지 할리우드 영화에서나 어울리는 어떤 것처럼 여겨지는 면이 있다. 그만큼 많이 시도되지도 않았고 시도됐다고 해도 할리우드를 따라하는 듯한 느낌을 주는 게 다반사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 <더 폰>은 적어도 이런 전형적인 궤도에서는 벗어나 있다. 꽤 촘촘히 짜여진 구성으로 SF와 스릴러가 잘 엮어져 있는데다가 시간을 중첩시키는 편집도 괜찮다.

 


사진출처:영화<더 폰>

하지만 무엇보다 <더 폰>의 성취라고 한다면 SF 스릴러라는 낯선 장르가 꽤 토착적인 느낌을 준다는 것이다. 청계천과 종로 뒷골목에서 추격전이 벌어진다는 사실 때문에 그렇다는 것이 아니고 거기에는 우리네 정서를 자극하는 범죄물의 코드들이 담겨져 있고 무엇보다 가족이라는 끈끈함이 그 바탕에 깔려 있다. 이런 토착적인 느낌은 이 영화에 대한 몰입을 높여준다.

 

<더 폰>의 설정은 그리 새로운 건 아니다. 해외의 SF 스릴러물이나 국내의 웹툰 등에서 종종 봐왔던 시간의 중첩(과거와 현재가 연결되는 것)이 이 영화의 핵심적인 장치다. 1년 전 살해당한 아내 연수(엄지원)에게 1년 후 전화가 오면서 그 남편 고동호(손현주)가 과거를 되돌려 현재를 바꾸려고 뛰고 또 뛰는 것. 이렇게 한 줄로 설명하면 어딘가 뻔해 보이지만 실제 영화는 훨씬 더 긴박감이 넘친다. 게다가 이 첫 번째 SF 설정은 이야기가 진전되어가면서 다양한 방향으로 변주하며 반전에 반전을 일으킨다.

 

과거의 결과가 바로 현재에 변화를 준다는 점에서 그 교차 편집은 이 영화가 가진 스릴러의 긴박감을 높여준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즉 과거의 일들이 벌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 현재 어떤 일들을 해야할 것인가 하는 점과, 과거의 일로 인해 현재 겪게될 것들을 어떻게 미연에 방지해낼 것인가 하는 점들이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교차편집을 통해 효과적으로 중첩되어 있다는 점이다. 클라이맥스의 액션 역시 과거와 현재가 겹쳐지며 벌어진다는 점에서 그 효과도 두 배로 다가온다.

 

하지만 이런 반전의 반전을 거듭하는 스릴러 요소들보다 더 강력한 힘을 만드는 건 부부인 연수와 고동호가 전화를 통해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며 어떻게든 복원해내려고 하는 가족이라는 틀이다. 이들은 1년 이라는 시간으로 떨어져 있지만 서로를 도우며 자신을 대신 희생하려고까지 한다. 그러면서 차츰 깨닫는 건 평상 시 자신이 소홀해왔던 가족의 소중함이다.

 

<더 폰>이라는 한국형 SF 스릴러를 이처럼 토착적인 느낌으로 만들어내는데 가장 큰 역할을 하는 연기자는 단연 손현주다. 이미 드라마 <추적자>를 통해 가족을 위해 뛰고 또 뛰는 가장연기로 한국의 리암 니슨이라는 별칭을 얻은 그가 아닌가. 평범했던 가장이 점점 사건 속으로 깊숙이 뛰어들어 살인자와 대적해가는 과정은 손현주라는 배우에 의해 훨씬 더 현실적인 느낌으로 그려졌다.

 

사실 SF와 스릴러가 연결되어 있는 것도 이색적이지만 거기에 한국형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것도 낯설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영화를 보면 알게 될 것이다. 이것이 그저 무리한 장르의 퓨전만이 아니고 꽤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있고 그것이 효과적인 시너지를 내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중심에는 역시 손현주라는 믿고 보는 배우가 있다



비현실적인 사극보다 현실 같은 사회극

 

<용팔이><미세스캅>은 주중 드라마의 쌍두마차가 되었다. 월화드라마 <미세스캅>은 심지어 사극인 <화정>을 밀어내고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달리고 있고, 수목드라마 <용팔이> 역시 20%에 육박하는 시청률로 역시 사극인 <밤을 걷는 선비>에 대한 화제조차 덮어버렸다. 전통적으로 사극에 강했던 MBC드라마가 사회극적인 요소가 강한 SBS드라마들에 밀려버렸다는 건 여러 가지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미세스캅(사진출처:SBS)'

그 첫 번째는 MBC 사극이 너무 지나치게 허구로 흘러가고 있다는 점이다. <화정>은 초반만 해도 여러 인물들이 저마다의 관점을 드러낸다는 측면에서 그 새로운 시도에 대한 기대감이 높았다. 하지만 정명공주(이연희)를 중심으로 세워 꾸려나가는 이야기에 근본적인 허점들이 드러나면서 이야기는 역사의 재해석을 넘어서 버렸다. 심지어 너무 심한 역사왜곡이라는 비판까지 나왔다.

 

사실 사극에서 역사 왜곡의 문제는 이제 사극이 역사보다는 극에 더 중점을 두게 되면서 조금은 지나버린 구닥다리 논란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최근 들어 사극은 다시 역사로 되돌아오는 느낌이다. 지나친 상상력의 개입은 그것이 역사와는 무관한 허구처럼 느껴지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한때 고개를 숙였던 KBS 사극이 <정도전><징비록>을 통해 재조명된 건 이런 허구화되어가는 사극에 대한 반작용을 잘 말해준다.

 

<밤을 걷는 선비>는 아예 판타지다. 웹툰 원작의 이 작품은 사극과 뱀파이어물을 섞어 놓은 작품. 나쁘지 않은 시도라고 여겨질 수 있지만 지상파 드라마로서는 기획 단계에서부터 어느 정도는 실패요소를 안고 시작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즉 사극에 대한 충성도 높은 중장년 시청층과 뱀파이어물이 갖는 젊은 세대의 시청층이 상승효과를 내기보다는 오히려 너무 집중력을 분산시킨 작품처럼 여겨지기 때문이다.

 

이런 점은 왜 유독 지상파에서 시도된 뱀파이어물들이 모두 실패했는가를 잘 말해준다. 즉 뱀파이어물은 웹툰에는 잘 맞는 장르인지는 몰라도 지상파의 본방 시청 패턴하고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게다가 현실성을 벗어나 판타지로 가는 이야기에 시청자들의 시선을 잘 가지 않는다. 물론 이준기 혼자 북치고 장구 치며 극을 끌고 나가고는 있지만 그 판타지가 현실과 무슨 상관이 있는지 시청자들은 찾기가 어렵다.

 

반면 SBS<미세스캅><용팔이>를 통해 들고 나온 건 사회극이다. <미세스캅>은 자본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부조리한 사회에 정의의 문제를 제기하는 작품이다. 전통적으로 형사물은 장르적 특성상 잘 안 된다는 불문율이 있지만 이 작품은 최영진(김희애)이라는 아줌마 형사 캐릭터를 중심에 세움으로써 중장년 남녀 시청자들을 모두 끌어 모았다. 무엇보다 최근 대중들의 관심사일 수밖에 없는 재벌의 문제나, 치안, 불공정한 정의의 문제에 내포된 현실을 상기시키는 정서가 이 드라마에 기폭제 역할을 하고 있다.

 

<용팔이> 역시 마찬가지다. 의학드라마의 틀을 갖고 있지만 그 바탕은 사회극의 정서를 깔고 있다. VIP 병동과 일반 병동 사이에 느껴지는 갑을 정서는 이 드라마가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가장 중요한 설정이다. 속물 의사처럼 가장된 휴머니스트 김태현(주원)이 이 거대 자본과 맞서 생명을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모습이 한편으로는 짠하고 한편으로는 공분을 일으키며 시청자들을 몰입시킨다.

 

물론 <미세스캅>이나 <용팔이>의 스토리가 현실적이라고 말하는 건 아니다. 그것 역시 판타지를 자극하는 허구적 요소들이 들어 있다. 하지만 중요한 건 거기에 깔려 있는 현실을 환기시키는 정서들이다. 이 정서들은 <미세스캅><용팔이>의 허구적인 이야기가 우리네 현실을 표징한다는 느낌을 만들어낸다. 현실과 무관하게 흘러가는 듯한 <화정><밤을 걷는 선비>와는 확연한 차이다.

 

한때 잘 나가던 MBC 사극이 SBS 사회극들에 밀려버렸다는 사실은 거꾸로 우리네 서민들이 느끼는 현실에 대한 갈증을 말해주기도 한다. 하루하루가 팍팍한 삶에 우리와 무관한 저들의 이야기에 관심을 둘 여유조차 느끼기 어려운 것이다. 그래도 우리 현실을 확인할 수 있고, 그 안에서 판타지를 통해서나마 어떤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는 사회극에 몰입하고 있다는 것. 그래서 그 사회극 속에는 지금 현실을 살아가는 서민들의 좌절과 분노가 뒤엉켜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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