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퀴즈’, 사람들의 다채로운 색이 만든 다양한 이야기들

 

휴먼다큐보다 먹먹하고 코미디보다 빵빵 터지며 멜로보다 달달하다. tvN <유퀴즈 온 더 블럭>이 만난 분들을 볼 때마다 느끼는 감정이다. 방송이 전혀 익숙하지 않은 분들이지만 이분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듣다보면 가슴이 뜨거워지고 때론 한없이 유쾌해졌다가 새록새록 연애감정이 피어오른다. 만들어진 이야기가 아니라 길거리에서 우연히 만난 저마다의 색을 지닌 분들의 이야기에서 어떻게 이런 보물 같은 감정들을 느끼게 되는 걸까.

 

성수동에서 길을 가다 유재석과 조세호가 만난 구두 장인 조영학씨는 7,8년 된 자전거를 끌고 런닝셔츠에 모자를 쓴 채 반갑게 “안녕하세요”하고 먼저 인사를 했다. 너무나 편안하게 보이는 그 모습에 대해 조영학씨는 “일을 하다가 이러고 창피한 줄 모르고 다닌다”며 그러면서도 “먹고 사는데 창피함은 없다”고 말씀하셨다. 구두 만드는 작은 공장을 하고 있다는 조영학씨는 14살부터 먹고 살기 힘들어 초등학교 졸업하고 명동에서 구두 만드는 일을 배웠다고 했다. 그의 굳은살이 박인 손바닥이 결코 쉽지 않았을 그 세월들을 말해줬다.

 

아직도 여유가 없다는 조영학씨는 그래도 후회한 적은 없단다. 50년 동안 버텨온 힘이 “언젠가 일어날 수 있다 생각하며 하는 것”이었다는 말에는 그 힘겨웠던 삶의 흔적이 느껴졌다. 특히 조영학씨는 입만 열면 아내 이야기를 꺼냈다. 가장 큰 즐거움이 뭐냐는 질문에도 그는 일 년에 두세 차례 아내가 좋아하는 장어를 먹는 일이라고 했고, 포부가 뭐냐는 질문에도 아내를 위해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처음 만났을 때의 그 여유 있어 보이는 모습은 어찌 보면 너무 힘겨운 삶을 넘어오면서 얻은 긍정이 아닐까 싶었다.

 

노력을 해도 안 되더라는 조영학씨는 그래도 자신이 만든 신발이 편하다 할 때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아프신 어머니를 모시고 살아오다 보니 아내를 만난 지 오래 되지 않았지만, 결혼 후 삶은 매우 곤궁했다고 한다. “몇 년 전에 한 보름 정도를 밥을 안하더라고요.” 밥 챙겨먹기 힘들 정도의 어려움으로 국수를 한동안 먹고 살면서 묵묵히 옆에서 지켜봐준 아내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함이 애틋해졌으리라. “다시는 집사람이 슬픈 마음 갖지 않게끔 웃는 모습 볼 수 있게끔 열심히 사는 거죠.”

 

놀라운 건 그 여유 없는 삶에도 퀴즈 맞춰 100만 원 타면 뭐하고 싶냐는 질문에 1초도 망설임 없이 “기부”라고 말하는 조영학씨의 마음이었다. 현실적으로 여유가 없으니 거기에 써야 되지 않냐는 이야기에 “그건 내가 노력해서 풀어나갈 문제”라고 하셨다. 새삼 아무리 각박한 세상이라도 살만하다 느끼게 만드는 우리 사회의 숨은 존재들이 있다는 마음에 가슴이 따뜻해졌다. 다행히도 ‘1+1 찬스’로 퀴즈까지 맞춰 기부도 하고 100만 원도 탄 그는 이 돈으로 뭘 할 거냐는 질문에 겸연쩍게 또 아내 이야기를 꺼냈다. “와이프 줘도 되나 모르겠네...”

 

<유퀴즈 온 더 블럭>이 찾아간 한 혼수 이불 전문점에서 만난 가족은 웬만한 코미디보다 즐거운 웃음을 안겨줬다. 자신은 종업원이고 아내를 ‘디자인 사장님’이라 부르는 박성규씨와 사실상 사장님인 아내 김순자씨 그리고 거짓을 얘기하지 못하는 순수하고 순박한 모습으로 큰 웃음을 준 아들 박종현씨가 그 주인공들.

 

아내에 대한 남다른 고마움과 애정으로 다시 태어나도 다시 만날 거라는 남편과 달리, 그렇게는 안한다는 아내의 단호한 모습이나, 둘 사이에서 엄마의 고생을 안쓰럽게 생각하고 아빠가 생각만큼 많이 도와주지 않는다며 감동파괴 솔직 토크를 해준 아들의 모습이 기분 좋은 웃음을 만들었다. 끝까지 서운하지 않다면서 그래도 다시 태어나도 아내와 살겠다는 남편과 그러지 않겠다는 아내 사이에서 아들은 “그래도 둘이 다시 만나야 자신이 생길 거 아니냐”는 솔로몬의 지혜(?)를 보여줬다.

 

또 길거리에서 우연히 만나게 된 10년 간 연애 중이라는 장유정, 조윤호 커플은 갑자기 <유퀴즈 온 더 블럭>을 한 편의 멜로드라마로 만들었다. 군대에 갔을 때 한 달 간 무려 100통의 편지를 보냈다는 장유정씨의 애틋한 마음과 연기자의 꿈을 계속 꿀 수 있게 옆에서 지켜봐주고 기다려주는 그의 마음이 고마워 끝내 눈물까지 보인 조윤호씨. 이젠 함께 하지 않는 게 이상하다 느껴질 정도라는 두 사람의 달달한 모습에 유재석은 과몰입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먹먹한 휴먼다큐에서 빵빵 터지는 코미디에 달달한 멜로드라마까지 길거리에서 우연히 만난 분들이 전해주는 이야기를 보다보면 세상이 수백 가지의 색깔을 가진 사람들로 가득하다는 걸 새삼 느끼게 된다. 그저 지나치던 사람들이지만 한 걸음 더 다가가 깊게 들여다보는 것만으로 그 분들이 살아왔던 세월의 색에 젖어보는 것. 그것이 <유 퀴즈 온 더 블럭>이 가진 힘의 원천이다.(사진:tvN)

‘유퀴즈’ 흉년만 가득했다는 부부가 남긴 삶의 지혜

 

“우리는 얘기를 할 줄 모르는데...” 머리에 고춧가루가 묻은 채로 나와 유재석과 조세호를 맞은 이기향·이송식 부부는 tvN 예능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하는 걸 겸연쩍어 하셨다. 동네 가득 고소한 기름 냄새를 퍼트리며 참기름 가게를 운영하는 부부. 결혼한 지 37년이 된 부부에게 첫 인상이 어땠는가를 묻자 엉뚱하게도 둘 다 서로가 별로였다는 솔직한 답변이 웃음과 함께 나온다. 시아버님이 자기가 좋다며 중매로 맺어준 인연이라고 밝힌 기향씨는 당시에는 사랑 이런 것도 잘 몰랐다고 했다. 하지만 남편이 착하고 살아가면서 맞춰가며 살게 되더라고...

 

남편 송식씨는 무뚝뚝했다. 기향씨의 매력을 묻는 질문에도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매력을... 어디서 찾노..” 했다. 반면 기향씨는 송식씨의 매력을 묻는 질문에 술술 입을 열었다. “항상 성실하고요. 여보 이러면 다 해결이 되니까. 내가 만약에 TV를 이쪽으로 옮겼다. 벌써 말을 안해도 전기선이 따라와 있어요.” 기향씨가 말하는 그 매력이 너무나 수수하고 소박해서 어딘가 가슴이 저릿해졌다. 말이 아닌 묵묵히 행동으로 보이는 송식씨도 어딘가 달라보였다.

 

그리고 20년 된 기름집을 하게 된 사연이 소개됐다. 본래 화물업을 했다는 송식씨. 화물차 10년, 앰블런스 10년, 직업을 많이 바꿨다고 했다. 그는 그 일이 ‘고독한 직업’이라고 했다. 혼자 계속 가야만 하는. 어딘지 무뚝뚝하고 묵묵히 행동으로 보이는 송식씨의 이런 면들이 이 직업과 무관하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별거 아닌 것처럼 지난 일을 얘기하지만 사실은 굉장히 고단한 삶이었을 게다.

 

“환경미화원을 했어요. 2년. 그 일 할 때는 밤 12시에 나가요. 비가 막 억수같이 왔어요. (남편이) 우비를 입고 터덜터덜 나가는데 여기 서서 울었어요. 저렇게 해서 먹고 살아야 되나 싶은 게.. 그 뒤로는 잠을 못자는 거예요. 그 때는 분식집을 했어요. 떡볶이 이런 걸 했는데 그걸 해가지고는 아이들 고등학교를 못 보낼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기름집을 시작했어요. 그래서 내가 보탬이 되고 신랑이 한 번이라도 덜 가도 생활할 수 있게 하려고 저도 굉장히 열심히 살았죠. 그래서 이거 해가지고 애들 둘이 고등학교 마치고 대학교 마치고 둘이 다 직장 나가있고...”

 

그렇게 힘겨웠던 삶과 기름집을 하게 된 사연을 얘기하는 기향씨에게 이 날의 ‘공식질문’이었던 “내 인생의 풍년, 흉년은 언제였냐”고 물었다. 그런데 돌아오는 답변이 너무나 아팠다. “풍년은 뭐 거의 없는 것 같아요.” 얼마나 삶이 쉽지 않았으면 풍년의 한 순간조차 떠올리기가 어려울까. 대신 흉년을 이야기하며 기향씨는 울컥 올라오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했다.

 

“한 3년 너무 힘들었어요. 죽고 싶어가지고. 큰 아이가 조금 아팠어요. 희귀성이라고 해서... 열다섯 살부터 진행이 됐대요. 그것도 몰랐어요. 엄마 아빠가 너무 바쁘게 살아가지고. 그 죄책감으로 견딜 수가 없어요. 초등학교가 여긴데 운동장 복판에 가서 밤에 수건으로 입을 막고 하느님 하느님 울다가 한 시고 두 시고 되잖아요.”

 

오죽했으면 한 밤 중에 학교 운동장 복판에서 수건으로 입을 막고 오열을 했을까. 그 와중에도 소리 죽여 울었던 기향씨의 타인을 생각하는 마음이 느껴졌다. 그리고 어쩌면 그것이 우리네 서민들이 사는 삶이 아닐까 싶었다. 누군가는 큰 성공을 꿈꾸겠지만 서민들은 그저 하루하루의 흉년들을 견뎌내며 자식들이라도 그 흉년을 겪지 않으려 애써왔을 게다. 그래서 자식들의 삶이 풍년이 되길 기원하며... 마지막으로 기향씨가 던진 한 마디가 최근 우리네 복잡다단한 현실에 던지는 울림은 그래서 더더욱 클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지금은 많이 나아서 괜찮아졌고 중한 병이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시라고... 지금은 건강하세요가 인사에요. 부자도 필요 없고 예쁜 것도 필요 없고 다 필요 없어요. 우리는 어차피 한 번 태어나면 한 번 죽어요. 그러니까 그 사는 날 동안 그냥 건강하게, 정직하게 그냥 욕심 부리지 말고 그렇게 살다가 그렇게 가는 거예요.”(사진:tvN)

‘유퀴즈’, 이토록 따뜻한 미래의 의사들이라니

 

tvN 예능 <유퀴즈 온 더 블럭>이 아니라 한편의 휴먼 메디컬 드라마를 보는 기분이었다. 어쩌면 이토록 따뜻한 마음을 가진 의료인과 미래의 의사들이 있을까. 흔히 병원과 의사라고 하면 느껴지던 차갑고 돈만 잘 버는 그런 이미지들이 선입견과 편견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혜화동에 간 <유퀴즈 온 더 블럭>이 이런 병원의 의료진과 미래의 의사들을 담게 된 건 거기 있는 서울대 의대가 있어서다. 그 병원과 캠퍼스를 찾아가 유재석과 조세호가 만난 직원과 미래의 의사들은 놀라울 정도로 반듯하고 따뜻한 면모들을 보여줬다.

 

이 날의 공식 질문으로 “무엇이든 치료할 수 있다면 어떤 걸 치료하고 싶냐”는 질문에 심장 초음파 검사실에서 일하고 있는 윤혜린양은 “저는 다리를 완치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었으면 좋겠다”며 “생각보다 거동이 불편하신 분들이 진짜 많으셔서요.”라고 말했다. 평소 넓은 병원에서 이동이 불편하신 환자들이 못내 눈에 밟혔던 모양이다. 그는 “얼른 익숙해져서 다른 사람들까지 보듬어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얼른 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의사가 아니라고 해도 또 의사라고 해도 아픈 이들을 치료해주고 싶은 마음은 매한가지였다. 신아영양은 이 질문에 “엄마의 수술로 인한 림프 부종을 낫게 해드리고 싶고 아버지가 택배 일을 하셔서 허리를 요새 다치셨나 봐요. 그래서 그런 허리를 낫게 해드리고 싶어요”라고 답했고, 최은진 양은 “저는 아빠요. 요즘에 일이 힘드셔 가지고 되게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셔서 그거를 치료해드리고 싶다”고 말하며 배시시 웃었다.

 

문원숙씨는 “우연찮게 내가 2017년도에 암이라는 걸 알게 됐다”며 그래서 “누구라도 암 환자들을 다 고쳐주고 싶다”는 얘기를 내놨다. 암이 너무나 고통스럽고 힘들다는 걸 실감하게 된 것이다. 한편 어머니와 함께 인터뷰에 응한 아들 유경현씨는 바로 옆에 앉은 어머니를 치료해주고 싶다고 말해 뭉클한 감동을 주었다. “최근 들어 옆에서 아들로서 계속 봤을 때 굉장히... 힘들어하시는 걸 옆에서 봐왔고 동생이랑 제가 있는데 저희라도 신경을 덜 쓰시게 해드려야 하는데 그것도 잘 못한 것 같고..”

 

가슴 아픈 사연을 내놓은 손훤영씨는 동갑인 사촌이 지적장애인데 그 장애를 고쳐주고 싶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저랑 나이는 동갑인데 지능은 여덟살이어서 사실 대화 자체가 좀 안되는 부분이 많아요. 이 친구의 장애를 고쳐주고 싶어요.” 또 의대생인 송해수양은 최근 벌어졌던 강원도 산불 피해자들의 마음을 치료해주고 싶다고 했다. “얼마 전에 강원도 가족여행을 갔는데 거기 아직 산불 피해 부분이 아직 남아있더라고요. 까맣게. 그것 때문에 피해를 입으신 분들은 아직까지 치유가 안되고 그 산을 보면서 얼마나 답답하실까 생각했어요. 아픈 사람들이 많을 텐데 그 사람들의 마음을 치료할 수 있다면 치료해주고 싶어요.”

 

바람일 뿐이지만, 거기에는 사람들이 누군가의 아픔과 고통을 공감하고 치료해주고픈 마음이 담겼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그런 마음이 있다는 건 세상이 그래도 아직 살만하다는 이야기이고, 그런 마음에서 비롯되어 조금 더 나은 세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일 테니 말이다.

그 곳에서 만난 미래의 의사가 될 학생들의 포부도 남다른 것이었다. 성공이 아닌 환자를 생각하는 마음이 묻어났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서울대 의대 본과에 편입한 김건호 학생은 “순위를 매기지 않는 미국과 달리 성적마다 순위가 떠서 당황했다”며 그럼에도 소신있는 자신의 생각을 털어놨다.

 

“무슨 과 이런 거는 크게 상관은 없고 의사 생활하면서 나름대로 여기저기 베풀면서 살 수 있는 그런 의사... 여러 의사 중의 하나는 되고 싶지 않은 것 같아요. 제가 없어도 충분히 다른 사람으로 대체할 수 있고, 물리적으로 치료만 해주고, 별로 그러고 싶지는 않고요 사람들을 치료하면서 나름 내 삶을 살 수 있는 것 하고 편안함에 안주하지 않는 그런 의사가 되고 싶습니다.”

 

본과 4학년 학생인 이현지양은 “차트로만 계속 환자를 확인하는 게 아니고 자주 얼굴 보면서 어떤지 물어보고 직접 얘기도 나누는” 의사가 되고 싶다고 했다. “예전에는 병만 잘 치료해주면 되지 아마 환자들도 빠른 시간에 딱딱 해결해주는 의사를 좋아할 거야 이렇게 생각했어요. 근데 그건 당연한 거고 나는 어떻게 더 좋은 의사가 될 수 있을까 했을 때 병 얘기 말고 일상생활에 간단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의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류현보군은 “공부량에 치여서 살다보니까 그런 생각을 자주 못하긴 한다”며 “못하긴 하는데 같이 아파할 수 있는 의사”가 되고 싶다 했고, 이준현씨는 “매정하면서도 실력있는 의사가 될까 아니면 조금 실력은 부족해도 따뜻한 의사가 좋을까 이런 것을 많이 생각해봤는데 저는 실력이 조금 부족하다 보니까 따뜻한 의사 쪽으로 계발하도록 노력해 보겠습니다.”라고 겸손한 바람을 전했다.

 

이들은 자신의 성취나 성공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환자들에게 보다 좋은 의사가 되고픈 열망을 이야기했다. 그것 모습만으로도 어떤 희망 같은 게 느껴졌다. 특히 이현지양이 가장 어려웠던 점을 물어보는 질문에 대해 답변하며 들려준 당뇨병 환자의 이야기는 이들의 좋은 의사가 되기 위한 고민이 느껴지는 대목이었다.

 

“아버지랑 딸이랑 병원을 같이 왔는데 당뇨병 때문이었어요. 당뇨병 때문에 아버지가 한쪽 눈을 잃으셨는데 반대쪽까지 실명 위기가 온 거에요. 딸은 수술하면 시력이 돌아오나요 하고 묻는데 의사는 안돌아와요 하고 말하는 거예요. 딸은 안 돌아오면 왜 수술을 해요 라고 말하면 또 의사는 더 안 나빠지게 하는 거예요. 수술을 안 받으면 무조건 실명입니다. 이렇게 말하는 거예요. 환자는 이해가 안 간다고 똑같은 질문을 하고 의사는 같은 대답만 하는 거예요. 결국에 그 두 분이 나갔는데 평소에는 울음을 잘 참겠는데 그 때는 못 참겠는 거예요. 매번 증상이 안 좋은 환자를 만나게 됐을 때 그렇게 매번 감정이입을 해서 나도 울고 그렇게 하면 오래 이 일을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가슴 속에는 냉정함이 있지만 환자를 대할 때는 공감을 표현할 수 있으면 제일 좋겠죠. 어렵고 복잡한 이야기입니다.”(사진:tvN)

‘유퀴즈’와 ‘일로 만난 사이’, 유재석의 다른 토크 방식

 

유재석은 바른 이미지를 벗으려 하는 걸까. 최근 유재석의 토크 방식이 달라지고 있다. 그 징조를 가장 먼저 보여줬던 건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이다. 조세호와 함께 길거리를 돌아다니고, 거기서 만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유재석은 조세호와 이야기할 때와 보통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의 톤이 다르다. “자기야-”하고 조세호가 하는 말을 툭 자르기도 하고, 대놓고 구박을 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보통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면 우리가 늘 봐왔던 그 바른 유재석으로 돌아간다. 지적하고 구박하는 모습과 경청하고 공감하는 모습이 수시로 바뀌는 것.

 

김태호 PD와 함께 시작한 MBC <놀면 뭐하니?>에서 유재석은 훨씬 더 직설적이다. 김태호 PD와 툭탁대거나 유희열, 이적과 서로의 공이 크다고 허세를 부리는 모습은 물론 캐릭터의 냄새가 나지만 유재석의 토크는 확실히 전보다 강도가 높아졌다. 물론 여기서 유재석의 변화는 극명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강도가 높아졌을 뿐 그건 <무한도전> 시절에도 자주 보였던 캐릭터의 하나였으니까.

 

하지만 tvN <일로 만난 사이>에서 유재석은 좀 다르다. 여전히 ‘투 머치 토커’의 면모를 보이지만 그가 처한 상황이 달라서다. 첫 회에 제주의 녹차밭에서 이효리, 이상순 부부와 고된 일을 하게 된 유재석은 말 그대로 투덜이의 면면을 드러낸다. 그건 의외로 이런 일들이 익숙한 이효리, 이상순과 달리 일에 적응하지 못하는 유재석의 모습이 극명히 대비되면서 그가 연실 힘겨움을 토로하는 대목에서 보여진다.

 

일 자체의 노동 강도가 높다보니 괜한 웃음을 만들기 위한 캐릭터 설정 같은 것들은 보여질 여유도 없다. 대신 노동 자체가 주는 힘겨움을 온몸으로 보여준다. 차승원과 함께 고구마밭에 대기 위한 해수를 퍼 담는 장면은 마치 과거 <무한도전> 초창기 시절의 연탄 나르던 모습을 연상케 하지만 확연히 다른 건 이것이 게임이나 미션이 아니라 진짜 일이라는 점이다.

 

강도 높은 노동 후에 잠시 갖는 휴식 시간에 유재석과 차승원은 나이 들어가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이제 50줄에 들어선 차승원에게 그 나이가 실감 되냐고 묻고, 차승원은 몸에서부터 느껴진다고 솔직히 털어놓는다. 두 사람 사이에 오고가는 대화는 유재석이 토크쇼나 리얼 버라이어티에서 출연자와 나누는 대화와는 살짝 다르다. 그건 아마도 땀에 흠뻑 젖을 정도로 힘겨운 노동을 함께 한 사람들이 갖게 되는 남다른 유대감이 더해지기 때문일 게다.

 

흥미로운 건 <유 퀴즈 온 더 블럭>에서 유재석이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를 끌어내는 것과 달리 <일로 만난 사이>에서는 그런 시도를 좀체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차승원과 함께 한 고구마 밭 사장님이 일일이 지적하는 통에 유재석은 자신들끼리 일하게 좀 놔두라는 요구까지 한다. 그건 그 일이 너무 힘들다는 표현이지만 유재석이 늘 보여 왔던 ‘바른 이미지’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일로 만난 사이>의 유재석이 그렇다고 일터에서 만난 보통 사람들을 도외시하거나 소외시키는 건 아니다. 즉 <일로 만난 사이>에서 유재석이 그 분들의 노동에 경의를 표하는 방식은 그 일이 얼마나 힘든가를 스스로 체험해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보통 사람들과의 대화를 통해 그 이야기를 끄집어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체험으로 보여주는 방식. 이것이 <유퀴즈 온 더 블럭>과 다른 방식으로 <일로 만난 사이>에서 유재석이 진심을 드러내는 방식이다.

 

그런데 이렇게 노동 깊숙이 들어가게 되자 유재석의 바르기만 하게 느껴지던 이미지는 살짝 벗겨져 나간다. 물론 여전히 그의 배려는 몸에 배어있지만, 그래도 너무 힘들어 투덜대거나, 남 탓을 하거나 하는 자신의 감정들이 조금씩 바깥으로 나온다. 이런 변화된 면모를 보다보면 최근 유재석이 자신을 새로운 환경 속에 집어넣어 바른 이미지로 꼭꼭 잠가두었던 솔직한 감정들을 끄집어내려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는 과연 바른 이미지를 벗어버리려는 것일까.(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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