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퀴즈', 돈도 중요하지만 일에 대한 소명의식이 없다면

 

"진짜 지쳤을 때 집에 와서 집어 들 수 있는 책이었으면 좋겠다. 좀 따뜻하고 내일 일어날 힘을 줄 수 있는 그런 책을 쓰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우리에게 <보건교사 안은영>의 원작 소설가로 잘 알려진 정세랑 작가는 자신이 쓰고픈 책에 대해 그렇게 말했다. 어려서부터 책 읽는 걸 유독 좋아했고, 또 글 쓰는 걸 좋아해 매일 샐러리맨처럼 시간을 정해놓고 글을 쓰고 일이 끝나고 나면 타인의 글을 잃거나 작품을 보며 논다는 정세랑 작가. 책 판매부수에 대해 신경이 쓰이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그가 글을 쓰는 진짜 이유는 그의 그 말 속에 담겨 있었다. 누군가에게 힘이 되고 싶다는 것. 

 

tvN 예능 <유 퀴즈 온 더 블럭(이하 유퀴즈)>이 '겨울방학 탐구생활'이라는 부제를 달고 어떤 분야를 탐구함으로써 그것을 직업이 된 이들을 담은 이야기는, 직업이 갖는 진정한 가치를 다시금 생각하게 만들었다. 사실 우리에게 직업이라고 하면 먼저 '밥벌이'에 '생계'를 생각하고 그래서 현실적인 '돈'을 떠올리는 게 보통이 된 게 사실이다. 그래서 소명의식 같은 것들은 그 직업을 선택하는데 있어서 후순위로 밀리거나, 당장의 선택기준이 되지 못하는 일이 다반사다.

 

당연한 것이 당연한가라는 질문으로부터 새로운 상상력이 가능하다고 말하는 정세랑 작가는 '어떤 질문이든 답을 알려주는 사전이 있다면 묻고 싶은 질문'이 뭐냐는 물음에, "이 시대에 가장 중요한 질문이 무엇인가"를 묻고 싶다고 했다. 가장 시급하게 모두가 고민해야 할 문제를 알면 다 같이 해결할 수 있을 거라는 정세랑 작가는 "지금까지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쓰고 싶다"고 했다. 그는 우리가 지금 주의를 기울여야할 사회 문제나 약자의 목소리를 담는 일이 자신의 소명이라는 걸 은연 중에 말하고 있었다.

 

<조선잡사>를 쓴 강문종 교수는 조선시대를 연구하다 가장 궁금했던 게 사람들이 어떤 일을 하며 살아가는가 였다고 했다. 그래서 조선시대 직업을 탐구한 그는 <의궤>라는 책에만 160개에서 200개의 직업이 있다고 했고, 가장 큰 돈을 번 직업이 사쾌(부동산 중개업자), 수모(웨딩플래너) 같은 직업도 있었지만, 매품팔이(매를 대신 맞아주는) 대장자 같은 불법이지만 살기 위해 대신 맞는 일까지 했던 직업도 있었다고 했다. 

 

막힘없이 조선시대 직업에 대해 다양한 정보들을 풀어내주는 강문종 교수에게 조세호가 놀랍다고 말하자, 그는 인문학을 전공한 사람들이 돈을 벌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권력을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라며 '잘난 척 하는 것'이 그 동기라는 소탈한 이야기를 내놨다. 최근 개그 프로그램들이 사라지고 방송사에서도 개그맨 공채를 하지 않는 현실을 이야기하며 유재석이 개그맨이라는 직업이 사라지는 건 아니냐고 묻자, 강교수는 즐거움을 주는 직업은 사라지지 않을 거라며 직업에 대한 남다른 가치관을 들려줬다. 

 

그는 이 탐구를 통해 "아주 사소하지만, 아주 지저분하지만 본인의 생계를 위해 또는 본인의 가치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던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됐다"며 분뇨를 처리하던 '똥장군'을 연암 박지원이 <예덕선생전>에서 '선생'이라 표현했던 대목을 들려줬다. "좀 더러운 것 또는 뭐 중요하지 않게 생각되는 수많은 직업들이 끊임없이 유지가 되고 거기에 종사하면서 생활했던 사람들은 무슨 힘으로 살아갔을까"하는 스스로 드는 의문에 대해 그는 '자기만의 문법과 자기만의 가치를 만드는 것'이 그 힘이었을 거라고 말했다.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22개국의 참전용사를 찾아가 사진을 찍어 전달하고 그 기록을 남기는 일을 사비를 들여 하고 있는 사진작가 라미는 바로 그 '자기만의 가치'를 만들어가는 직업인이었다. 2017년부터 개인작업으로 시작한 이 일로 그가 찍은 참전용사의 수만 1400명. "사진은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 될 수 있지만 궁극적인 목표는 무언가를 기록해서 다음 세대에 전달하는 것"이라고 은사가 말해준 사진의 진정한 가치를 그는 빚을 내서도 하게 된 그 일을 통해 실행에 옮기고 있었다. 

 

영국의 참전용사였던 크리스토퍼 콜드레이는 불편한 몸에도 군인으로서 서서 찍겠다 말하며 아내의 부축을 받고 사진을 찍었는데, 라미는 그 사진을 전달하러 갔을 때 며칠 전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에 아내와 함께 눈물을 흘렸다고 했다. 결국 크리스토퍼 콜드레이는 라미가 말한 사진의 가치 그대로 '기록'을 통한 '기억'으로 남게 됐다. 직업이 단지 생계를 위한 돈의 차원을 넘어 소명의 가치를 갖는다는 걸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물론 직업 선택에 있어서 현실적인 '밥벌이'는 그 어느 것보다 중요한 요인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요즘처럼 취업 자체가 힘겨워진 현실에는 더더욱 그러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업에 돈만이 가치 기준이 되는 건 아니라는 걸 <유퀴즈>는 에둘러 보여줬다. 최근 출연자 논란으로 질타를 받은 뒤 "제작진의 무지함으로 큰 실망을 안겼다"며 공식 사과문을 내놓은 <유퀴즈>가 프로그램 내용으로 그 사과의 진정성을 드러낸 셈이다. 그리고 이런 관점이야말로 코로나로 인해 '직업의 세계'를 주로 다뤄왔던 <유퀴즈>가 향후 계속 추구해야할 방향성이 아닐까 싶다. 그저 연봉이나 수입 그리고 그 수치로 얘기되는 성공에 경도될 것이 아니라 소박하게 살아도 저마다의 소명의 가치를 드러내는 그런 이들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것.(사진:tvN)

'놀면 뭐하니', 김소연의 무엇이 우리를 흠뻑 빠져들게 만들었나

 

같은 사람 맞아? MBC 예능 <놀면 뭐하니?>에 출연한 배우 김소연은 너무나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다. 척 보기에도 떨고 있었고, 카놀라 유(유재석)와 영길(김종민) 그리고 동석(데프콘)의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예민한 반응과 리액션을 보여줬다. 등장부터 너무나 수줍어했고 세 사람을 대하는 김소연의 모습은 나긋나긋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 모습은 SBS 드라마 <펜트하우스>에서 봤던 광기어린 천서진 역할을 그가 한 게 맞나 싶을 정도로 다른 모습이었다. 무려 28.8%(닐슨 코리아)의 최고시청률을 기록하며 시즌1을 종영한 화제의 드라마. 하지만 막장 논란으로 호불호가 갈릴 수밖에 없는 이 드라마에서, 그럼에도 누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었던 건 김소연의 연기였다.

 

아버지의 죽음을 방치하고 도망친 후, 피가 묻은 손으로 웃음과 눈물이 겹쳐진 채 피아노를 치는 광기어린 모습은 시청자들을 소름 돋게 만든 바 있다. 김소연의 연기가 놀라웠던 건, 짧은 순간 슬픔과 분노와 희열 같은 복합적인 감정이 교차하는 표정 연기였다. 그래서 '코리안조커'라 불릴 정도로.

 

하지만 그런 연기를 펼쳐보였던 배우가 그 연기에 대해 호평을 쏟아내는 카놀라 유 앞에서는 민망해 견딜 수 없겠다는 듯 낮게 비명(?)을 지르고, 어색하기 이를 데 없는 반응을 보이는 모습은 의외의 웃음을 제공했다. 그는 자신의 연기를 자신이 보면서도 낯설게 느낀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 연기 장면을 함께 보며 명연기에 박수를 치는 세 사람 앞에서도 김소연은 어쩔 줄 몰라 했다. 긴장해서 습관적으로 두 손을 꼭 쥐며 이야기하는 김소연은 광기 가득한 얼굴로 피아노 치는 그 연기를 위해 두 달 반 동안 연습을 했다는 걸 너무나 해맑게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그는 배우로서 그런 멋진 장면을 찍을 수 있었던 것에 대해 영광이었다고 했다.

 

사실 카놀라 유라는 새로운 부캐를 유재석이 가져온 건 '예능 투자자'라는 수식어처럼 올해 예능의 새로운 얼굴들을 발굴하겠다는 취지 때문이었다. 그는 김태호 PD와 새로운 미션을 상의하는 과정에서 옛 세대나 현 세대를 막론하고 발굴되지 않은 예능의 얼굴을 찾아보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래서 최근 <SKY캐슬>, <스토브리그>에 이어 <경이로운 소문>으로 화제가 됐던 조병규가 출연했고, <펜트하우스>의 김소연이 나오게 됐던 것.

 

지금껏 예능 프로그램에서 그다지 주목하지 않았던 김소연은 카놀라 유와 영길, 동석이 콕콕 집어내는 캐릭터로 인해 의외의 매력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손바닥을 치며 "해야겠다"고 말하는 그 특유의 동작도 이들이 집어내면 김소연만의 캐릭터로 만들어졌다. 예능에 나오기만 하면 너무 긴장해 손을 덜덜 떤다는 김소연은 바로 그 지점이 색다른 예능 캐릭터의 가능성이었다. 시청자들이 새로운 얼굴로 보고 싶은 건 예능에 능숙한 그런 모습이 아니고 오히려 어색한 모습일 테니.

 

너무 긴장하는 모습 때문에 어머니가 보기 힘들다며 예능 출연을 하지 말라고 했지만 의외로 많은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음악중심>의 MC로 활약하기도 했고, <진짜사나이>에도 출연한 바 있었으며 <복면가왕>, <개그콘서트>에도 출연했다. 그런데 연기에서 주어진 역할을 200% 소화해내는 김소연의 모습과,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자기가 맡은 바를 충실히 해내는 모습 이면에는 그의 남다른 심성이 숨겨져 있었다.

 

<복면가왕> 출연 당시, 한 기자와의 에피소드는 그의 타인을 배려하려는 심성이 어느 정도인가를 잘 말해줬다. 마침 <복면가왕> 녹화가 있던 날, 한 기자가 이상우와의 열애 기사를 쓰겠다고 해서 하루만 기다려 달라 했는데, 그 날 다른 기자가 먼저 기사를 내서 너무나 미안했던 김소연은 녹화 전 시간을 내 기자에게 전화해 사과하고 인터뷰까지 했다는 것. 그 에피소드는 그가 얼마나 자신에게 주어진 일과 주변 사람들을 성실하게 대하고 있는가를 말해주는 대목이었다.

 

쉽지 않은 작품에 쉽지 않은 연기지만 놀라울 정도로 복합적인 감정을 잘 소화해내는 모습이나, 또 긴장하는 모습이 역력한 예능 출연에서도 최선을 다하는 모습. 그 밑바탕에는 타인을 배려하고 폐를 끼치지 않으려는 그의 착한 심성이 있었다. 그것이 예능의 새 얼굴을 찾아내려는 카놀라 유를 매료시킨 부분이었다. 이러니 연기든 예능이든 안 될 리가 있나. 임하는 마음 자체가 다르니.(사진:MBC)

'유퀴즈'가 한 해의 마무리에 들려준 해고, 은퇴, 사별의 이야기

 

"기장님들이나 나이가 좀 있으신 사무장님들은 가정을 책임지셔야 하고 자격증이 되게 전문적이잖아요. 항공쪽 아니면 이걸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이 없으니까, 간담회 같은 데 가보면 택배 알바를 가셔서 다리를 다치셔서 목발을 짚고 오신 분도 계시고... 거의 눈물바다였던 것 같아요."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이 한 해의 마무리 방송에 '시작과 끝'이라는 주제로 초대한 한 항공사 승무원이었다 정리해고된 류승연씨는 의외로 너무나 활력이 넘치는 모습이었다. 그래서 자신의 어려움보다 간담회 같은 데서 봤던 나이가 있으신 선배들에 대한 걱정을 이야기했다. 선배들은 늘 밝고 긍정적인 류승연씨를 보며 힘이 난다고 말하기도 했다고 한다. 

 

아르바이트를 너무나 잘 구해서 '알바몬(알바괴물)'이라는 별명으로 불린다는 류승연씨는 무급휴직 7개월 동안 전시회 안내, 텔레마케터 꽃집 판매원, 피부 테라피샵 접수원 등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했다는 이야기를 꽤 밝은 얼굴로 웃으며 전해줬다. 지난 2월에 입사해 비행을 1년 정도 하다 해고통지를 받았다는 류승연씨. 취업 시험에만 30번 정도 떨어져 500대1의 경쟁률을 뚫고 된 승무원이라는 직업이 얼마나 소중했을까. 

 

누구도 그런 이야기를 해주지 않아 자신에게 "넌 잘하고 있어"라고 스스로 자꾸 이야기한다며 밝게 얘기하던 류승연씨는 그러나 다른 동료들에게 한 마디를 해달라는 제작진의 질문에 먹먹해했다. 그는 자신을 보며 힘이 난다 말해주는 선배, 동료들의 이야기 때문에 애써 밝게 웃고 있었다. 힘겨워도 애써 웃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잘 될 거라 말하는 그 모습이 오히려 더 감동적으로 다가왔다. 이런 분들이 있어 이 어려운 시국에도 우리는 또 다른 시작을 얘기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유 퀴즈 온 더 블럭>이 올해의 마지막 초대손님으로 소개한 허필용씨의 이야기 역시 이 날의 주제였던 '시작과 끝'에 너무나 잘 어울리는 것이었다. 36년간 몸담았던 직장에서 정년퇴직을 앞두고 있다는 허필용씨. 하나의 끝과 새로운 시작을 마주하고 있는 그의 이야기는 평범해 보여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누구나 위대함이 느껴지는 우리네 보통 사람들의 삶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한 직장에서 아내도 만나 결혼하고 한 평생을 보냈던 허필용씨는 직장이 그저 일터가 아닌 '가족'이나 다름없다고 했다. 그러니 그 곳을 떠나는 소회와 상실감이 어찌 없을까. 은퇴자가 갖게 되는 막막함이 있지만 함께 온 아들과 딸은 그가 그래도 든든해하는 의지처이기도 했다. 12월 31일자로 정년퇴직하지만 3개월 휴가를 줘서 마지막 출근을 하게 됐던 날 딸이 차려줬다는 아침상의 이야기에서 그가 느꼈을 고마움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왜 아침상을 차려주셨냐는 유재석의 질문에 딸은 "일부러 기억을 했다"고 했다. "아빠가 마지막 출근인데 어떤 심정이실까 저로서는 상상이 안 되는 거예요. 해드릴 수 있는 게 그것밖에 없었어요." 그렇게 말하는 딸의 아버지를 생각하는 마음 또한 따뜻하게 느껴졌다. 허필용씨는 조심스럽게 올해 먼저 떠나간 아내의 이야기를 꺼냈다. 자신은 직장을 떠나게 됐는데 아내는 세상을 떠났다고. 딸이 아버지에게 마지막 날 아침상을 차려드린 데는 바로 그 마지막 길을 외롭지 않게 해드리려는 마음이 있었던 거였다. 

 

올 7월 암으로 사별했다는 아내를 매일 생각한다는 허필용씨는 "퇴직의 의미"보다는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냈다는 상실감"이 더 많고 늘 함께 했던 사람을 먼저 보냈다는 사실에 마음이 저리다고 했다. 상태가 심각하다는 사실을 알고는 자신보다는 남편과 아이들 걱정 때문에 눈물을 많이 흘렸다는 아내에게 전한 허필용씨의 영상편지는 짧아도 우리네 삶이 얼마나 위대한가를 말해주고 있었다. 

 

"사랑하는 박순애. 나란 사람 만나서 6년 연애하고 29년 동안 우리가 부부로 살았어. 인생 살다보니 이런 일 저런 일도 많이 겪었고, 같이 살면서 나는 그대와 같이 살았던 시간들이 내 몸 속에 다 녹아있어. 행복했어.. 자기가 걱정하지 않게 아이들 잘 뒷바라지하고 하늘에서 만났을 때 나 이렇게 살았다고 자랑할게. 그 때 다시 만나면 말 많다고 흉봐도 좋아. 할 얘기 많이 있어." 

 

유재석은 엽서로 보내 준 자기님들의 사연 중, 올 해 가장 기억에 남는 분이 누구냐는 질문에 어느 한 사람을 꼽을 수 없다며 이렇게 답했다. "한 분 한 분 인생을 어떻게 보면 다 드라마이고 영화입니다." 실로 이 말은 사실이었다. <유 퀴즈 온 더 블럭>이 지금껏 만난 분들의 이야기는 뭐 대단할 것 없는 소박한 삶들이었지만 그 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한 편의 드라마, 영화 아닌 게 없었다. 누구나 그렇게 한 세상 살다 떠나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안의 삶이 이토록 반짝반짝 빛날 수 있다는 걸 이 프로그램은 비춰주고 있었으니까. 한 해를 마무리하지만 또 다른 한 해의 시작점에 있는 지금, 우리 곁에 있는 사람들의 삶이 모두 한 편의 드라마고 영화라는 걸 말해주며.(사진:tvN)

유재석 대상 수상 소감에 담긴, 가족애·동료애·인간애

 

<2020 MBC 연예대상>의 대상은 유재석에게 돌아갔다. 그 누구도 이견이 있을 수 없는 대상 수상이었다. MBC를 넘어서 올해 방송 전체를 통틀어 봐도 <놀면 뭐하니?>가 가장 독보적인 예능 프로그램의 성과라고 말할 수 있는 한 해였고, 그 주인공은 다름 아닌 유재석이기 때문이었다.

 

 

이런 상황은 <2020 MBC 연예대상>에서 <놀면 뭐하니?>가 각 부문에서 상을 휩쓰는 결과로 나타났다. 대상의 유재석은 물론이고, 최우수상을 화사, 이효리가 각각 받았고 올해의 예능프로그램상도 <놀면 뭐하니?>였다. 그밖에도 올해의 예능인상(유재석), 우수상(김종민, 엄정화, 제시), 베스트 커플상(지미유, 린다G), 올해의 작가상(최혜정)이 모두 <놀면 뭐하니?>로 돌아갔다.

 

유재석 대상에는 여러 가지 의미들이 겹쳐졌다. 수상 소감에서도 밝힌 것처럼 <무한도전>이 시즌 종영한 후 새로 돌아온 <놀면 뭐하니?>가 1년 반 만에 확고한 자리를 잡았다는 사실이나, 유튜브 같은 뉴미디어로 인해 바뀌고 있는 예능 트렌드 속에서 유재석이 이른바 '부캐'의 세계로 또 다시 독보적인 위치에 서게 됐다는 사실도 놀라운 것이었다.

 

유재석에게는 개인 통산 15번째 대상 수상인데다, <MBC 연예대상>만 총 7회 대상을 수상해 그간 이경규와 6회로 동수였던 최다 대상 수상 기록을 넘어섰다. 사실 트렌드가 바뀌는 와중에도 계속 대상을 거머쥘 수 있다는 건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유재석은 어떻게 이런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할 수 있었을까.

 

물론 김태호 PD라는 독보적인 연출자와의 협업이 전제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을 게다. 하지만 제 아무리 뛰어난 연출자가 있어도 그것을 찰떡 같이 해내는 유재석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그는 수상소감에서 이런 결과를 처음 <놀면 뭐하니?>를 시작할 때까지만 해도 예견하지 못했다고 했다. 하지만 그의 수상소감을 잘 들어보면 그가 어째서 올해의 이런 성과를 냈는 지와, 지금도 여전히 대세로 자리하고 있는가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먼저 가족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유재석은 어머니, 아버지만이 아닌 장인, 장모님에게도 그 마음을 전했고, 무엇보다 "저도 나경은씨의 남편인 게 자랑스럽고 너무 고맙다"는 말로 남다른 애정을 드러냈다. 그가 방송에서 타인을 배려하는 그 마음은 어쩌면 이러한 가족애로부터 비롯되는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그리고 유재석은 김태호 PD는 물론이고 <놀면 뭐하니?>의 작가부터 스텝까지 제작진들에 대한 고마움을 전했고, 나아가 이 프로그램에 참여해준 많은 연예인들을 일일이 언급하며(특히 이효리의 존재감은 독보적이었다) 이 상이 그들과 함께 받는 상이라는 걸 강조했다. 그의 동료들에 대한 남다른 애정이 묻어나는 대목이다.

 

또한 코미디 프로그램이 사라져버린 개그맨 후배들을 위해 MBC에 그들이 꿈꿀 수 있는 작은 무대가 생겼으면 한다는 바람과 올해 이른 나이게 먼저 떠난 고 박지선씨에 대한 애도를 빼놓지 않았다. 그의 남다른 후배에 대한 애정을 들여다볼 수 있는 소감이 아닐 수 없었다. 그리고 그는 올해 코로나19로 인해 일선에서 헌신한 많은 의료진과 방역 관계자분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도 전했다.

 

즉 그는 수상소감에서 대상을 받은 것이 모두 주변 사람들 덕분이라는 걸 밝혔다. 가족이 있었고 제작진과 동료가 있었으며 후배가 있었고 나아가 어려움 속에서도 묵묵히 헌신하는 사람들의 노고가 있었다. 거기에는 가족애와 동료애 그리고 인간애가 느껴졌다.

 

그는 수상소감에서 어떤 프로그램을 할 때 자신 있다고 한 적은 없지만, 어떤 결과가 나와도 받아들이고 책임지겠다는 자세로 임했다고 했다. 아마도 그 안에는 가족, 동료 그리고 동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에 대한 그의 남다른 태도가 스며 있었을 게다. 그것이 있어 그는 트렌드가 바뀌어도 여전히 대세의 위치에 서 있는 것일 테니.(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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