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도>의 꺼지지 않는 현실 인식, 이러니 국민예능이지

 

이걸 보면 사람들이 박수를 쳐요.”, “죽을 것 같은데 살아나요.”, “뜨거운 데 만질 수 있어요.”, “엄청 많은 사람들이 이걸 들고 만났어요.” 7살 어린이가 또박또박 던지는 말들이 새삼 가슴에 콕콕 박힌다. 아이가 이야기하고 있는 건 촛불이다. 정답을 확인한 <무한도전> 멤버들은 조금은 숙연해졌다. 정준하는 죽을 것 같은데 살아난다는 아이의 표현에 그게 중의적인 표현이었네라고 한 마디를 덧붙였다.

 

'무한도전(사진출처:MBC)'

물론 아이가 촛불집회를 염두에 두고 한 말은 엄청 많은 사람들이 이걸 들고 만났어요라는 말 하나일 것이다. “이걸 보면 박수를 친다는 건 아무래도 생일을 떠올리는 광경일 테고, “죽을 것 같은데 살아난다는 건 바람 앞에 꺼질 듯 꺼지지 않는 촛불을 그대로 표현한 것일 게다. 하지만 시국이 시국인지라 아이가 던지는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새삼스럽게 다가오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무한도전>이 아이의 목소리를 담아 그걸 퀴즈로 낸 건 이렇게 에둘러 촛불집회에 대한 마음을 전하기 위함이었음이 분명하다.

 

크리스마스를 맞아 이른바 산타를 뽑는 미션을 가진 산타 아카데미라는 특집으로 아이들의 마음을 잘 읽어내는 테스트를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무한도전>은 현실 인식을 놓지 않았다. 산타복을 입은 멤버들의 가슴에는 그 빨간 산타복 때문에 더 선명하게 보이는 노란 리본이 달려 있었다. 아마도 다음 주는 예고된 대로 산타 아카데미가 본격화되며 한바탕 몸 개그의 향연이 벌어질 것이다. 하지만 자막을 통해서건 특별한 상황들이 연출되건 <무한도전>은 현 시국에 대한 의식을 놓지 않을 거라는 게 그 노란 리본 속에 담겨있었다.

 

알고 보면 북극곰의 눈물특집 역시 곳곳에 사용된 자막의 표현들은 현 시국에 대한 정서들을 반영한 것들이 있었다. ‘분노라는 단어도 사지라는 표현도 예사롭지 않았다. 지구온난화로 아직 바다가 얼지 않아 북극해를 건너지 못하는 북극곰들의 기다림은 마치 온 국민이 염원하고 기다리는 모습처럼 안타까움을 주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바다가 조금씩 얼어가는 모습에서 희망을 발견하기도.

 

후일담 형식으로 만들어진 기분 나쁜 날<기분 좋은 날>을 패러디한 것이지만 여러모로 현 시국의 대중정서를 제목을 담은 것이 분명했다. 캐나다에서 북극곰을 보고 돌아온 박명수와 정준하에게 이것저것 묻는 과정에서 엉뚱하거나 무지한 답변을 반복하는 그들을 세워두고 무시하거나 몰아세우는 일종의 상황극으로 그들을 기분 나쁘게하는 콘셉트. “요즘 웃을 일이 없다는 유재석의 멘트로 시작한 코너는 다시 웃을 수 있는 날을 기약하며 끝을 맺었다.

 

마지막으로 유재석이 예고한 2017년 신년 프로젝트 국민내각특집은 <무한도전>이 지금의 시국에 던지는 한바탕 사이다 예능이 될 것으로 벌써부터 기대되고 있다. “그야말로 국민 여러분들의 의견을 듣고자 한 것이라고 소개한 국민내각특집에 대해서 유재석은 예를 들어 우리나라에 어떤 법이 생겼으면 좋겠다 등의 의견을 자유롭게 제시해 주시면 된다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참여와 소통의 의지를 보여주는 <무한도전>은 그 자체만으로도 이 시국에 대한 이야기를 건네고 있다

역사와 힙합, <무한도전>이 현 시국을 꼬집는 방식

 

역시 <무한도전>이라는 말을 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현 시국을 이만큼 <무한도전>만의 방식으로 풀어냈다는 것이 놀라울 정도다. 역사와 힙합의 만남. 그 기획 자체가 그렇다. 이 날 방송에 나온 설민석 강사의 첫 마디로 E.H 카의 말을 빌어 얘기한 것처럼, 역사는 과거를 통해 현재를 이해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 그러니 하필 이 시국에 <무한도전>이 역사를 소재로 들고 나온 건 그 자체가 현재에 대한 문제제기이자 그 해법을 들여다보기 위함이라고 할 수 있다.

 

'무한도전(사진출처:MBC)'

그리고 이것을 힙합이라는 장르를 빌어 하겠다는 건 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들어 누구나 쉽게 사안을 이해할 수 있게 했듯이 누구나 지금의 역사적 문제를 힙합을 통해 익숙하게 하기 위함이다. 물론 힙합이라는 장르가 갖고 있는 사회 비판적 특징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그러니 역사와 힙합의 만남은 이 시국에 정확히 맞아 떨어지는 <무한도전>의 화답이 아닐 수 없다.

 

이미 요즘 뉴스 안 보시는 듯’, ‘상공을 수놓는 오방색 풍선같은 자막을 통해서 <무한도전>이 아예 이 시국에 대해 작정하고 나선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온 바 있다. 역사와 힙합을 소재로 한 위대한 유산특집에서도 이런 자막 센스는 여전히 돋보였다.

 

다이내믹 듀오의 개코가 출연하자 절친인 하하가 계속 칭찬을 해대자, 유재석이 나서서 친한 거 알겠는데 그만 띄워!”라고 일침을 하고 이어진 자막으로 지인 특혜의혹에 추방’, ‘이런 친구는 버리는 게 상책같은 자막도 이 시국에 보면 달리 보일 수밖에 없다.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에서 우리가 무수히 봤던 그런 부적절한 관계를 드러내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송민호가 출연해 을 부를 때 아버지!”라고 부르는 대목을 큰엄마’, ‘고모부’, ‘당숙모등으로 계속 요청해 부르자 이러다 사돈의 팔촌까지 다 나올 기세라고 붙여진 자막도 예사롭지 않게 다가온다. 물론 그건 장난스럽게 노래 가사를 갖고 코믹하게 만든 한 대목일 뿐이지만, 최근 최순실 사태를 떠올리는 분들은 점점 그 사안 자체가 최씨 가족사 전체로 번져가는 상황을 떠올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 역사 강의 도중 정조 이야기가 나올 때 하하와 양세형이 유재석의 완벽함을 찬양하는 목소리를 내자 자막으로 붙은 충성충성충성 MC유님 사랑합니다 충성이란 문구는 다름 아닌 이정현 대표가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에게 보낸 문자를 패러디한 것이다.

 

하지만 이번 위대한 유산특집이 보다 본격적으로 현 시국을 담고 있다고 여겨지게 된 건 설민석 강사가 우리네 역사를 짧게 시대별로 풀어낸 강의의 내용 덕분이다. 단군시대부터 현재까지 이어지는 그 역사를 설민석 강사는 기득권세력의 무능과 방만으로 인해 위기에 처할 때마다 그 위기를 넘어선 장본인이 , 돼지 취급 받은 백성들이었다는 걸 그 밑바탕에 깔아두었다.

 

단군을 설명하며 인내와 끈기가 우리네 원천적 힘이라고 말하고, 몽골의 침략 속에서 왕은 강화도로 숨어들어갈 때 우리네 백성들이 그 환란을 이겨내기 위해 팔만대장경을 만들었다는 이야기와 임진왜란 때 도성을 버리고 도망친 선조의 이야기가 그렇다. 또 자신의 시력을 버려가면서까지 한글을 만들어 백성들에게 전파하려 한 그 애민사상은 거꾸로 지금의 시국을 그 어떤 목소리보다 강하게 개탄하게 만들었다.

 

12<무한도전>이 방영되는 시간, 광화문 광장은 넘실거리는 촛불로 가득 메워져 있었다. 물론 그 광장에 직접 나가지는 않았지만 <무한도전><무한도전>의 방식으로 촛불을 들고 있었다고 보인다. 그건 아마도 광장을 나가지 않았어도 마음만은 광장에 함께 한 많은 분들의 마음과 같지 않았을까. 자신의 위치에서 자신의 방식으로.

<무도>는 왜 500회 특집을 좀비로 마무리 지었을까

 

어쩌다 보니 좀비를 등장시키게 된 걸까 아니면 500회 특집에 맞게 의도한걸까. MBC <무한도전>500회 특집으로 마련한 무도리go’ 게임의 마지막 라운드는 지금은 텅 비어있는 여의도 MBC사옥에서 벌어졌다. 이른바 꼬리잡기형식을 따온 무도리잡기게임. 그런데 엘리베이터에서 각 층에 한 명씩 내려놓고 시작한 게임은 갑자기 좀비들이 출현하면서 좀비 특집이 되었다.

 

'무한도전(사진출처:MBC)'

<부산행>의 좀비 연기를 했던 연기자들이 직접 참여함으로써 그 어느 때보다 실감나는 좀비들의 출현은 출연자들을 혼비백산하게 만들었고, 깜짝 놀라고 쓰러지고 무서워하는 모습만으로도 큰 웃음을 주었다. 특히 산만한 덩치를 갖고 있는 정준하는 시종일관 말을 더듬을 정도로 긴장하며 좀비들이 나타날까봐 전전긍긍하는 모습으로 역시 리액션 왕 다운 면모를 보여줬다.

 

결국 이 게임은 하하가 이겼지만 전체 무도리go’ 게임의 우승은 유재석에게 돌아갔고, 그에게 부상으로 1000회 출연 프리패스가 돌아갔다. 500회를 넘어 1000회까지 계속 쭉 가자는 김태호 PD의 뜻이 담긴 센스 있는 포상(?)이었다. 그런데 궁금해지는 건 왜 하필 이 게임의 마지막을 좀비 특집으로 했을까 하는 점이다. 그건 진정 우연이었을까.

 

이번 500회를 맞아 <무한도전>이 한 무도리go’ 게임은 사실상 그간의 많은 특집들을 회고하고 추억하기 위한 장치였다. 그래서 그 게임을 하며 자연스럽게 장기프로젝트로 했던 조정경기나 에어로빅, 댄스스포츠 등을 다시 상기할 수 있었고, 63빌딩에서 했던 무한알바나 역대급의 몰래카메라를 선보였던 퍼펙트센스게다가 <무모한 도전> 시기에 시도했던 오리배로 유람선 따라잡기같은 도전들을 추억할 수 있었다.

 

이런 콘셉트를 가진 <무한도전> 500회가 가장 아프면서도 레전드로 남은 좀비 특집을 빼놓았을 리가 없다. 무려 400명의 좀비 연기자들을 동원했고 카메라만 48대를 설치했으며 예산 자체가 평시에 2배 정도를 썼으나 박명수가 혼자 살겠다고 사다리를 밀쳐내는 바람에 단 28분 만에 실패로 돌아간 미션. 이 아이템은 <무한도전>의 대표적인 실패사례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이 프로그램만의 고유의 성격, 이를테면 실패해도 그 과정은 성공이라는 그 특징을 상징하는 사례가 되었다.

 

아마도 500회 특집의 마무리에 좀비를 등장시킨 건 그래서 다분히 의도가 깔려 있다고 읽히기에 충분하다. 그 좀비 특집의 실패사례가 보여주는 가치는 다름 아닌 <무한도전> 무려 500회를 달려올 수 있었던 초심이자 원동력이기 때문이다. 늘 도전에 실패하고 나서는 에이스가 아니었습니다라고 외치며 다시 도전하던 그들이 아닌가.

 

김태호 PD는 좀비 특집의 실패에 대해 묻는 필자에게 이렇게 말한 바 있다. “도전의 결과는 성공 혹은 실패예요. 성공하면 성공했으니 좋은 거고 실패하면 다시 한 번 도전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거니 더 좋은 거죠.” 즉 안 되도 될 때까지 계속 도전하고 노력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는 것. 500회 특집 마무리를 좀비로 세운 건 아마도 그런 의미가 아니었을까. 죽어도 다시 살아나는 좀비들처럼 1000회까지 쭈욱-

500회 특집, <무도>에게 장기 프로젝트란 무엇이었을까

 

왜 뜬금없이 500회에 무도리 Go’라는 게임을 하는가 싶었다. 하지만 이 증강현실 기반의 게임이 선사한 것은 단순히 무도리를 잡는 재미 그 이상이었다. 다름 아닌 <무한도전>이 지금까지 했었던 기억에 남는 특집들을 무도리안에 집어넣어 게임을 하는 것이 추억을 되짚는 효과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무한도전(사진출처:MBC)'

1라운드에서 서울 시내 곳곳에 <무한도전>이 추억을 남긴 장소들, 이를테면 여드름 브레이크강변북로 가요제’, ‘빡빡이의 습격같은 특집이 벌어졌던 공간에서 무도리를 잡는 시간은 그래서 출연자도 또 시청자들도 그 추억 속으로 안내하는 시간이 되었다. 어찌 보면 500회를 맞아 자축하는 듯한 인상을 줄 수 있는 특집을 게임을 통해 자연스럽게 풀어낸 것.

 

그런데 이 과정에서 더 흥미로웠던 건 2라운드에 펼쳐진 장기 프로젝트가 벌어진 공간에서의 무도리 잡기였다. 조정, 댄스스포츠, 에어로빅... <무한도전> 멤버들은 장기 프로젝트의 힘겨웠던 기억들을 떠올렸다. 조정경기장에 도착한 유재석은 당시 너무나 힘겨웠던 몇 개월 간의 훈련과 경기 당일 생각만큼의 실력을 보여주지 못해 안타까운 눈물을 쏟아냈던 기억을 여전히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뒤늦게 도착한 하하는 당시 미남 코치였던 김지호를 만나면서 울컥하는 마음을 숨기지 못했다.

 

이런 사정은 다른 멤버들도 마찬가지였다. 댄스스포츠 연습을 했던 강남의 연습장을 찾은 정준하는 당시 안되는 몸으로 땀을 쏟아가며 노력해 무대에 올랐지만 실수를 여러 번 해 무대에서 내려와서는 눈물을 흘렸던 자신의 기억을 떠올렸다. 에어로빅에 도전했던 강북의 한 에어로빅 연습장에서는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강렬한 카리스마를 보이는 할마에가 있었다. 그 곳을 찾은 박명수는 한쪽 벽에 빼곡이 붙어있는 당시 찍었던 사진들을 보며 그 힘들었던 도전의 시간들을 떠올렸다.

 

그들에게 장기 프로젝트란 어떤 의미였을까. 그것은 모두 잊어버린 것 같지만 그들의 몸 속에 그대로 기억되어 있는 시간들이었다. 오랜 만에 조정을 하게 된 유재석은 전부 다 까먹었다고 밝혔지만 막상 배 위에 오르자 마치 계속 연습해온 선수처럼 자연스럽게 그 동작들을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댄스스포츠를 다시 해 보이는 정준하도 마찬가지였다. 전혀 할 수 없을 것만 같던 동작들이지만 그건 그의 머리가 아니라 몸에 각인되어 있었다. 다시 끝없이 이어지는 다이어트 동작을 하는 박명수 역시 체력은 과거보다 많이 떨어졌지만 과거의 장면들과 교차 편집된 모습은 별반 차이가 없어 보였다.

 

머릿속으로 기억되는 것보다 몸에 각인된 기억. 이것은 아마도 <무한도전>이 출연자들뿐만 아니라 같이 11년을 해온 시청자들에게도 특별한 이유일 것이다. 그저 평범한 시도들이었다면 벌써 지워져버릴 도전들일 수 있지만, <무한도전>은 그 도전이 몸속에 박혀 지워지지 않을 만큼 온 몸을 던졌고, 시청자들 역시 그 진정성을 느껴왔기 때문에 그 장소만 가도 잊혀지지 않는 기억이 될 수 있었다는 것.

 

무도리를 잡는 증강현실 기반의 게임을 한 것이지만, 500회 특집은 그래서 <무한도전>이라는 기억이 마치 증강현실처럼 우리가 살고 있는 곳곳에 숨겨져 있다는 걸 보여줬다. 길을 가다가 문득 그 곳에서 <무한도전> 멤버들이 어떤 도전을 했었다는 걸 자연스럽게 떠올리는 일. 이미 우리의 일상 속으로 들어와 결코 지워지지 않고 남아있는 기억들. 500회 특집 무도리 go’는 마치 증강현실처럼 우리 일상 속에 각인된 <무한도전>의 흔적들을 찾는 의미있는 시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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