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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콜릿’, 고통스런 현실 우릴 살게 하는 초콜릿 하나

 

고통 속에서 우리를 살게 해주는 힘은 어디서 오는 걸까. JTBC 금토드라마 <초콜릿>에 등장하는 문차영(하지원)의 아버지는 지병으로 돌아가셨고 사치벽이 있던 엄마는 동생 태현(민진웅)만 데리고 야반도주해버렸다. 만나기로 했던 백화점에서 엄마를 기다리다 갑자기 무너져 내린 건물에 갇혀 죽을 위기에 처했는데 그 때 그 건물더미 속에서 한 아줌마를 만났다. 그 아줌마가 아들을 위해 샀다는 초콜릿 하나가 문차영을 살렸다. 그 고통을 버티게 해준 달콤한 초콜릿 하나.

 

그 건물더미에서 죽은 아줌마가 바로 이강(윤계상)의 엄마다. 거성재단의 둘째 아들과 사랑에 빠져 이강을 낳았지만 헤어져 시골마을에서 식당을 운영하며 살았던 그들이었다. 하지만 둘째 아들이 사망하자 거성재단 이사장 한용설(강부자)은 손자인 이강과 그 엄마를 데려간다. 엄마가 백화점 붕괴로 사망한 후 이강은 거성재단에서 살아남기 위해 요리사의 꿈을 접고 의사가 된다. 그렇게 실력 있는 뇌신경외과의사가 되지만 이준(장승조)을 거성재단의 후계자로 만들려는 부모들은 이강을 사지로 내몬다.

 

하지만 폭탄이 터지는 전쟁터로 내몰리기도 하고, 위험한 수술을 떠맡기도 하며 힘겹게 고군분투하며 살아가는 이강에게도 초콜릿 한 조각 같은 인물이 있었다. 그의 절친인 권민성(유태오) 변호사다. 이강은 문차영이 자신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까마득히 모른 채 그와 연인이 된 권민성의 행복을 기원했다. 그런 그에게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전해진다. 친구가 더 이상 손을 쓸 수 없어 호스피스 병동에 들어가게 됐다는 것. 이강은 친구가 죽기 전 마지막으로 문차영이 끓여주는 만두전골을 먹고 싶다는 말 때문에 그리스로 떠난 문차영을 찾아 나선다.

 

그 만두전골 한 그릇이 권민성의 마지막 남은 삶을 붙들어주었던 것일까. 소식을 듣고 그 먼 길을 찾아와 권민성을 위해 만들어준 만두전골 한 그릇을 마지막으로 먹고 그는 세상을 떠난다. 자신을 버티게 해줬던 힘겨운 삶의 한 조각 초콜릿 같던 친구를 잃어버린 이강은 문차영을 다시는 보지 말자고 말한다. 그건 트라우마 속에서 힘겹게 버티며 살아가는 문차영에게 단 한 조각남은 초콜릿이 영영 떠나버리는 것이나 마찬가지의 일이었다.

 

<초콜릿>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대부분 힘겹고 고통스런 현실 속에서 하루하루를 버텨내고 있다. 그 원인은 사적인 것이면서도 삼풍백화점 붕괴 사건이나 거성재단의 승계를 두고 벌어지는 아귀다툼처럼 사회적인 것이기도 하다. 그 속에서 문차영이나 이강이 원하는 건 엄청난 욕망이나 성공 욕구 같은 것이 아니다. 다만 그 고통을 잠시 잊고 버텨내게 해줄 수 있는 어떤 작은 위로 혹은 위안일 뿐이다.

 

무너진 건물더미 속에서 어린 문차영은 이강의 엄마가 건네 준 초콜릿 하나를 아껴 먹고 버틴 끝에 끝내 살아남는다. 초콜릿 하나는 아주 작은 것처럼 보이지만 때론 그 선의가 누군가의 생명을 살려낸다. 바로 이 초콜릿 하나가 가진 기적 같은 힘이 바로 <초콜릿>이 차려놓은 음식들을 통해 보여주려는 것이다. 세상은 무너져 내렸고 그 누구 하나 쉬운 삶은 없다. 그럼에도 우리를 살아가게 해주는 힘. 그건 바로 작은 초콜릿 하나 같은 누군가의 마음 한 자락이라는 걸 이 드라마는 그리려 하고 있다.(사진:JTBC)

Posted by 더키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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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콜릿’, 죽을 듯한 삶에도 우리를 살게 하는 건

 

“밥 더 줄까? 밥 갖고 온다. 점심때도 밥 먹으러와 점심 때 오면 나가 초코 샤샤 만들어 줄테니께. 나도 요리사여. 배고프면 아무 때나 와. 돈 없어도 되니께. 아무 걱정 말고.” 배고픈 소녀에게 상다리 부러지게 밥 한 상 차려 준 소년은 그렇게 말했다. 오디션을 봐야 한다며 밥을 제대로 못먹게 한 엄마 때문에 배가 고팠던 소녀는 그 음식을 먹으며 눈물을 뚝뚝 흘렸다. 너무 맛있었고 행복했기 때문이었다.

 

JTBC 새 금토드라마 <초콜릿>은 바로 그 소녀가 먹었고 소년이 챙겨줬던 밥으로부터 시작한다. 그 한 끼가 줬던 행복감을 잊지 못하던 소녀는 삼풍백화점 붕괴로 엄마를 잃고 자신 또한 트라우마를 갖게 됐지만 요리사가 됐다. 요리사가 된 문차영(하지원)은 그래서 누군가 마음에 상처를 입은 이들을 위해 음식을 만든다. 자신이 그 밥 한 끼를 통해 가졌던 큰 위로와 행복감을 그들에게도 전해주기 위함이다.

 

소녀를 위해 팔을 데여가면서까지 초코 샤샤를 만들어 놓고 기다리던 소년은 갑자기 나타난 거성재단 한용설(강부자) 이사장의 손자가 되어 그 곳을 떠나게 된다. 그리고 거성병원 뇌 신경외과 의사가 되어 매일 전쟁 같은 삶을 치른다. 환자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사투를 벌이고, 거성재단의 후계자 자리를 놓고 그를 내치려는 이준(장승조)의 부모들 때문에 심지어 전쟁터로 내몰리기도 한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버텨내며 살아가던 이강(윤계상)은 그 전쟁터에서 한 아이가 폭탄이 터져 죽는 걸 목격하게 된다.

 

문차영은 요리로 누군가를 위로하고 행복하게 하려 하지만 정작 본인이 트라우마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이강은 거성재단 이사장의 손자로 거성병원의 의사가 됐지만 그건 자신이 하고픈 일이 아니었다. 엄마는 “맛있는 음식 만들어 사람들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 꿈”이었지만 아들을 위해 거성가로 들어온 뒤 삼풍백화점 붕괴로 허망하게 사망했다. 이강 역시 엄마와 꿈이 같았었지만 이제 거성가에 살아남기 위해 의사가 되어 매일 매일을 전쟁처럼 살아간다.

 

<초콜릿>이 하려는 이야기는 단순 명쾌하다. 그리고 어찌 보면 향후 일어날 이야기들도 어느 정도는 예상가능한 것들이다. 이강은 문차영을 다시 만날 것이고, 어쩌면 그 어린 시절이 문차영이 밥 한 끼로 위로 받았듯이 이제는 그가 차려주는 한 끼로 치열하게 살아오며 상처 가득한 자신의 삶을 위로 받을 수도 있을 게다. 또 어쩌면 상처 가득한 이강은 같은 상처를 입고 있는 문차영을 삶의 의사로서 치료해줄 수도 있을 게다.

 

저 편에 거성재단 같은 거대한 성공의 신기루가 손을 내밀고 있지만, 이강과 문차영이 선택하는 건 그런 거대한 성공이 아니다. 그 거창함이 동반하는 아픔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이 상처 입은 존재들은 그래서 이를 벗어나 치유의 삶을 선택하려 한다. 그리고 그 치유의 길은 의외로 간단하다. 그저 자신을 위한 따뜻한 밥 한 끼를 챙기고 또 누군가와 그걸 나누는 것이다. 전쟁 같은 하루를 치르고 집으로 돌아와 초콜릿 한 조각을 먹으며 “고맙습니다. 열심히 살겠습니다”라고 읊조리는 문차영처럼.

 

<초콜릿>은 색다른 이야기가 아니다. 어쩌면 너무 익숙한 이야기일 수 있다. 하지만 그 익숙함에도 충분히 훈훈함과 포만감을 줄 수 있는 드라마다. 물론 때론 강렬한 맛의 반찬들이 놓이기도 하겠지만 그 모든 걸 따뜻한 밥 한 그릇의 위안이 든든히 채워줄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감이 드는 드라마. 하루하루를 힘겹게 버텨내고 있는 이들이라면 충분히 잠시 기댈 수 있는 그런 드라마가 되길 기대한다.(사진:JTBC)

Posted by 더키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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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모이', 생명력을 불어넣어 주는 배우 유해진의 진가

우리는 조선어학회라는 곳이 있었다는 걸 교과서를 통해 한번쯤 본 적이 있다. 또 아무리 몰라도 주시경 선생이나 최현배 선생의 이름 정도는 알 것이다. 하지만 한글을 지킨다는 것이나 우리말 사전을 편찬한다는 일이 일제강점기에 어떤 의미인가는 크게 실감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직접적인 항일투쟁을 했던 김구 선생이나 김원봉 선생 같은 독립투사의 삶과는 조금 다르게 느낀다는 것.


이것은 아마도 ‘글’이 갖는 엘리트적인 선입견이 그 실상을 바라보는 눈을 가리기 때문일 게다. 그런 점에서 보면 영화 <말모이>의 주인공이 류정환(윤계상) 같은 뜻을 갖고 한글을 지키기 위해 사전 편찬을 해온 엘리트가 아니라, 극장 직원으로 일하다 쫓겨나 길거리에서 소매치기를 하기도 하는 전형적인 생계형 인물 김판수(유해진)라는 점은 굉장히 중요한 시점 선택으로 보인다.

이 작품의 극본을 쓰고 연출을 한 엄유나 감독이 시나리오를 썼던 영화 <택시운전사>에서도 그랬던 것처럼, <말모이>는 조선어학회 사건이라는 역사적 현장 속으로 들어가면서 김판수라는 평범하고 어찌 보면 밑바닥 인생을 살아가는 인물을 중심으로 세운다. 김판수가 류정환의 가방을 소매치기하며 악연으로 시작된 이들의 관계는, 과거 감방에서 인연이 있던 조갑윤(김홍파)의 추천으로 김판수가 조선어학회에서 잡일을 도와주게 되면서 갈등과 화해를 이어간다.

김판수를 그저 그런 밑바닥 인생으로 바라보며 자신과 선을 그어온 류정환이 조금씩 그의 진심을 알게 되는 과정은 그가 한계를 드러냈던 엘리트주의가 깨져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관객들은 김판수라는 평범한 인물의 시선으로 당대에 한글을 지킨다는 일이 어떤 의미인가를 실감하게 된다. 사전을 만들기 위해 전국의 사투리를 모으고, 전국 교사들이 함께 모여 표준어를 정하는 그 지난한 과정들을, 일제의 감시와 폭력 속에서 해낸다는 건 그 어떤 독립투쟁보다 쉽지 않은 일이다.

이 영화에서 가장 감동적이면서 동시에 중요한 메시지이기도 한 대목은 “한 사람의 열 걸음보다 열 사람의 한 걸음이 더 멀리 갈 수 있다”는 대사를 김판수가 길거리 사내들을 모아놓고 실연해 보이는 장면이다. 전국에서 올라온 그 길거리 사내들은 조선어학회가 사전편찬을 위해 사투리를 수집하는 일에 날개를 달아준다. 사전을 편찬하고 한글을 지키는 일은 결국 그 말을 사용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고, 그래서 함께 해나가야 하는 일이라는 걸 그 장면이 보여준다.

결국 류정환은 김판수를 통해 자신이 그토록 한글을 지키기 위해 노력해온 삶이 사실은 저들 민초들을 위한 일이고, 또 저들이 있어 자신이 이 일을 할 수 있다는 걸 깨닫게 된다. 김판수는 아이들을 위해 어떤 일이든 해온 사람이지만 차츰 류정환을 통해 ‘적어도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아버지’의 길이 무엇인가를 알아간다. 그래서 김판수라는 이름 없이 민들레처럼 스러져간 민초들의 희생이 있어 역사적인 기록에 남은 조선어학회나 몇몇 선구자들 역시 존재했다는 걸 이 영화는 말해준다.

엄유나 감독이 “평범한 대사에도 생명력을 불어넣어 주는 배우”라고 칭찬한 유해진은 이 작품에서 절대적인 힘을 보여준다. 그것은 감독이 말했듯 이 영화가 “평범한 사람들의 귀한 마음을 다룬 작품”이기 때문이다. 유해진은 김판수라는 인물이 가진 평범하지만 귀한 마음을 지극히 보통의 서민들 입장에서 천연덕스럽게 연기해냄으로써 그의 진가가 어디에 있는가를 잘 보여준다. 그는 교과서에서나 봤던 역사적 사실에 특유의 너스레로 숨결을 불어넣어준다.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그 거칠지만 선한 웃음이 선연하게 느껴질 정도로 유해진은 스스로가 얼마나 대단한 배우인가를 입증해냈다.(사진:영화'말모이')


Posted by 더키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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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든슬럼버' 어리바리 강동원, 미스 캐스팅 우려 잠재우다

영화 <골든슬럼버>는 원작이 일본 소설이다. 일본에서는 2010년에 영화화되어 큰 화제가 된 바 있다. 사실 일본 원작의 작품을 리메이크할 때 가장 먼저 우려가 가는 건 그 정서가 우리에게 맞게 제대로 변환되었는가 하는 점일 게다. 하지만 <골든슬럼버>는 적어도 일본 원작 영화에서도 우리가 정서적으로 공감하는 면이 충분한 작품이었다. 그것은 평범함 서민과 그를 둘러싼 추악하고 거대한 권력과의 사투라는 점이 국적을 초월하는 힘을 발휘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영화 제목의 모티브가 된 비틀즈의 명곡 ‘골든슬럼버’라는 음악이 감동적인 장면들 속에 배경음악으로 깔리는 점도 이런 국적 차이가 만드는 정서를 하나로 묶어주는 힘으로 작용한다. 다른 것도 아니고 비틀즈의 노래가 아닌가. ‘골든슬럼버’라는 곡은 그래서 이 작품을 특정 국적의 색깔을 드러내는 것이 아닌, 글로벌한 콘텐츠의 느낌으로 만들어준다. 

영화는 인기 아이돌을 강도로부터 구해준 선한 서민들의 영웅 택배기사 김건우(강동원)가 고교시절 함께 밴드를 했던 신무열(윤계상)을 만나면서 시작한다. 그의 눈앞에서 차기 유력 대권후보로 지목되던 정치인이 폭탄 테러로 사망하고, 신무열은 건우에게 이 모든 것이 그를 암살범으로 만들기 위한 조직의 계획이라고 말하고는 결국 사망하게 된다. 

조금 어려운 사람을 그저 지나치지 못하고 선하다 못해 심지어 어리바리해 보이기까지 한 건우는 그래서 그를 죽이기 위해 쫓는 거대 권력 조직으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사투를 벌인다. 매스컴에 의해 서민 영웅으로 추대되었던 김건우였기에 갑자기 테러범으로 오인된 그는 모든 주변인물들을 믿을 수 없게 된다. 신무열이 죽기 직전 “그 누구도 믿지 말라”고 했던 말이 자꾸만 떠오른다. 

게다가 건우는 자신으로 인해 주변인물들마저 죽거나 고통을 겪게 되는 걸 알게 된다. 함께 카페를 하려던 후배는 살해되고, 과거 함께 밴드를 했던 장동규(김대명), 최금철(김성균), 전선영(한효주)에게도 조직의 인물들의 협박과 회유가 이어진다. 너무나 엄청난 권력을 가진 조직의 힘 앞에서 건우는 그저 힘없이 당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몰린다. 

아마도 이런 주인공을 이 작품의 원작이 내세웠던 건 일본이 갖고 있는 집단주의적 풍토 속에서 쉽게 희생되어버리는 개인의 문제를 건드리고 싶었기 때문일 게다. 때론 조직은 그들의 이익을 위해 미디어를 통한 이미지 조작을 하기도 한다. 그래서 힘없는 개인들은 아무런 토로조차 하지 못한 채 희생되어버린다. 

하지만 기묘하게도 이런 정서적인 동질감이 지금의 우리에게도 고스란히 이어지고 있다는 점은 국내의 리메이크판 ‘골든슬럼버’가 토착적인 느낌을 주는 이유다. 이 착하기만 하고 ‘조금 손해보는 삶’이 뭐가 나쁘냐고 항변하는 건우라는 인물은 지금의 우리네 대중정서가 가진 소시민적 영웅의 단면을 보여준다. 그래서 그가 거대 조직과 맞서 싸우고, 또 아무도 믿을 수 없는 세상 속에서 그를 여전히 믿고 도와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이야기는 심정적 지지를 갖게 만든다. 

이 작품을 얘기하면서 강동원의 공을 빼놓을 수 없다. 그가 이 작품에 캐스팅되었다는 사실은 어딘지 어울리지 않을 것 같다는 인상을 줬던 게 사실이다. 그 잘생긴 얼굴이 지극히 서민적인 캐릭터와 부조화를 이루지 않을까 저어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강동원은 이 작품을 통해 미남이 아닌 아주 평범한 얼굴에 그저 선한 눈빛을 담은 건우라는 인물에 전혀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의 몰입을 보여줬다. 아마도 그의 선한 눈빛만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뭉클해지는 감정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사진:영화'골든슬럼버')

Posted by 더키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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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와이프>, 그 어려운 걸 해낸 연기자들의 놀라움이란

 

tvN <굿와이프>는 종영했지만 이 작품이 남긴 연기자들의 잔상은 여전히 남아 있다. 드라마가 끝나고 기자간담회를 통해 전도연이 눈물을 보였다고 한다. 그 정도로 연기자에게 감정적으로 쉽지 않은 작품이었다. 미드 리메이크작으로서 정서적 충돌이 분명히 있었지만 이걸 넘게 해준 건 역시 연기자들의 빛나는 연기 덕분이었다.

 

'굿와이프(사진출처:tvN)'

그 중심에 서 인물은 단연 전도연이다. 사실 김혜경 같은 인물이 우리네 정서에서 심정적 지지를 받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전도연은 이 인물이 어떤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어서는 과정에서도 섬세한 연기를 통해 시청자들을 설득한 면이 있다.

 

남편의 외도와 자신을 이용하려는 속내를 알아차리고, 억누르며 살았던 자신을 끄집어내 그 욕망을 분출시키는 과정들이 그저 불륜이라고 치부되지 않았던 건 그녀가 연기를 통해 보여준 김혜경이란 인물의 내적 갈등이나 억압 그리고 아이들 앞에서와 남편 앞에서 또 일터에서 각기 다른 면을 보여주며 그것이 모두 합쳐진 복합적인 인물로서의 김혜경을 그려냈기 때문이다.

 

또한 유지태 역시 초반에는 권력을 추구하는 것인지 아니면 한번 실수를 저지르고 아내에게 참회하는 것인지 알 수 없는 미스테리한 이태준의 캐릭터를 구축함으로써 드라마에 긴장감을 만들어냈다. 그러다 조금씩 숨겨져 있던 욕망을 드러내고 김혜경, 서중원(윤계상)과 각을 세우는 나쁜 남편의 모습을 그렸지만, 그러면서도 섹시한 이미지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쓰랑꾼(쓰레기+사랑꾼)’이라는 이중적 이미지를 확보할 수 있었다는 건 유지태의 연기가 얼마나 빛났던가를 드러내는 대목이다.

 

윤계상 역시 안정적인 연기를 보여줬다. 김혜경과 점점 가까워지면서도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냉철함을 보이는 인물이었다. 마치 두 사람의 불륜이 이뤄질 것처럼 여겨졌지만 결국 친구처럼 남아버린 결말에도 그것이 이해될 수 있었던 건 윤계상이 연기한 서중원이라는 캐릭터가 가진 냉철함이 충분히 시청자들에게 납득되었기 때문이다.

 

김서형은 커리어우먼으로서의 전문적인 이미지가 묻어나는 서명희 역할을 제대로 소화해냈다. 워낙 이런 역할이 잘 어울리는 배우지만 <굿와이프>에서는 로펌의 오너로서의 판단과 동생인 서중원의 누나로서의 판단 그리고 같은 여성으로서 김혜경과 어떤 동질감을 공유하는 워킹우먼으로서의 판단이 부딪치는 캐릭터로서 훨씬 다양한 매력을 보여주었다.

 

김단 역할로 인생 캐릭터를 만난 나나는 이 작품을 통해 연기자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한동안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등장하며 부정적인 이미지가 생겨났었다면 <굿와이프>의 나나는 이런 이미지를 일거에 날려버리는 효과를 만들어주었다. 사실상 김혜경의 뒤에서 거의 모든 일을 해내는 만능 캐릭터였던 김단은 일을 위해서는 뭐든 하는 열혈 여성의 걸 크러시까지를 보여주기도 했다.

 

<굿와이프>는 분명 우리네 드라마에서는 문제작이었다. 그러니 자칫 잘못했다면 논란거리가 양산됐을 드라마다. 하지만 이것을 충분히 눌러주었던 건 연기자들이 섬세한 연기를 통해 시청자들을 설득해줬던 그 노력 때문이다. 결국 그저 불륜드라마가 아니라 좋은 아내에 대한 도발적인 질문이 가능할 수 있었던 것. 그 어려운 걸 해낸 건 다름 아닌 연기자들이다.

Posted by 더키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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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와이프>의 쿨한 도발, 충분히 의미 있는 까닭

 

tvN <굿와이프>는 여러모로 도발적이다. 그것은 두 가지 측면에서 그렇다. 하나는 법정극을 다루지만 우리네 법정드라마들이 하듯 법 정의를 내놓고 기치로 내걸지 않는다는 점이다. 김혜경(전도연)은 새로 로펌에 들어와 변호사 일을 하면서 의뢰인과의 거리를 두지 않고 마치 자신의 일처럼 감정이입하는 모습을 보이다 로펌 대표인 서명희(김서형)로부터 한 소리를 듣는다. 변호사의 일은 의뢰인을 변호하는 것이지 사회 정의를 구현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

 

'굿와이프(사진출처:tvN)'

이 대단히 쿨하다 못해 비정하게까지 여겨지는 법에 대한 태도는 <굿와이프>라는 법정드라마의 독특한 질감을 만들어낸다. 우리네 드라마에서 변호인들이 대부분 약자들의 편에 서서 법 정의를 실현해내는 소시민들의 영웅처럼 그려지고 있다면, <굿와이프>에서 변호사들은 프로들이다. 김혜경과 계속 맞닥뜨리는 상대편 변호사 손동욱(유재명)은 이기기 위해서는 별의 별 꼼수까지 다 쓰지만 결과가 나오고 나서는 마치 스포츠라도 한 판 한 듯 쿨하게 그녀와 웃으며 농담을 주고받는다.

 

이것은 우리네 법정드라마에서 법 정의를 둘러싸고 선과 악이 극명히 대립하는 모습과는 너무나 다르다. 선도 없고 악도 없다. 다만 의뢰인에 따라 결정되는 직업적인 역할이 있을 뿐이다. 그래서 이기거나 지거나 하는 것에 굉장한 도취감이나 좌절은 없다. 다만 성취나 낙담 정도가 있을 뿐이다. 이런 쿨한 태도는 아마도 좀 더 실제에 가까운 변호사들의 모습일 것이다. 그래서 이 프로의 세계를 들여다보고 있자면 저 선과 악을 운운하고 서민들의 영웅으로 그려지곤 하는 우리네 변호사들이 순진하게 여겨질 때도 있다.

 

하지만 그게 순진해보여도 바로 우리네 정서인 것만은 분명하다. 드라마가 결국 현실을 그대로 그린다기보다는 현실에 부재한 판타지를 건드린다고 볼 때, 우리에게 드라마가 그리는 변호사에 소시민의 문제를 해결해주었으면 하는 판타지가 들어가는 건 당연한 일처럼 보인다. 실제 현실에서는 도무지 일어나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더더욱 드라마에서 희구되는.

 

그래도 법 정의의 문제일 때는 <굿와이프>의 이런 직업적이고 프로적인 쿨한 태도는 그런대로 흥미롭게 다가오는 면이 있다. 하지만 이 드라마가 그리고 있는 또 한 축, 즉 남편과 남자친구 사이에서 만들어지는 삼각관계의 이야기로 들어가면 정서는 좀 더 복잡해진다. 김혜경의 남편 이태준(유지태) 검사는 한 마디로 나쁜 남편이다. 그는 이미 불륜을 저질러 김혜경을 배신한 바 있고, 그래서 잘못했다 말하면서도 아내의 그 좋은 이미지를 자신의 권력을 위해 이용하려고 한다.

 

김혜경은 그 남편과 살아왔던 세월을 뒤늦게 후회한다. 그래서 스스로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 다시 변호사 일을 시작하지만 거기서 상사이자 오랜 친구인 서중원(윤계상)과 점점 가까워진다. 그리고 결국 선을 넘어버린다. 이 부분은 미국적 정서라면 당연히 받아들여질 수 있는 이야기일 수 있다. 그간 김혜경이 살아온 세월과 당해온 일들을 생각해보라. 그녀도 자신의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고 당연히 여겨진다.

 

하지만 우리네 정서에서 마음이 걸리는 건 아직 아이들이 있고 남편과 이혼을 명쾌하게 하지 않은 사이에서 김혜경과 서중원이 선을 넘는 모습이다. 그건 마치 옳지 않은 일을 저지른 남편과 똑같이 옳지 않은 행동으로 대항하는 것처럼 보인다. 결국 이러한 행동도 선과 악의 윤리적 잣대로 바라보는 우리네 시선과는 상당히 다른 미국적 정서가 들어가 있는 대목이다.

 

그러고 보면 <굿와이프>는 우리네 드라마 정서에는 태생적으로 문제작일 수밖에 없다. 제목이 <굿와이프>지만 그것은 좋은 아내로서의 김혜경을 그리려는 게 아니라, 이른바 좋은 아내로 상정되는 여성들에게 가해지는 암묵적인 사회적 압력 같은 것들을 보기 좋게 깨버리는 김혜경을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김혜경의 성장은 그래서 일에 있어서는 쉽게 선악으로 감정이입을 하지 않는 프로페셔널로 서는 것이고, 사랑에 있어서는 좋은 아내같은 때로는 폭력적인 억압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다.

 

이처럼 <굿와이프>가 하려는 이야기는 도발적이지만 충분히 의미가 있다. 하지만 그것이 정서적으로 우리네 대중들에게 100% 공감을 일으키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드라마가 가진 가치는 지금껏 선악구도와 윤리적 잣대에만 매몰되어 아무도 질문을 건네지 않았던 일과 사랑에 대한 파격적인 질문들을 이 드라마가 던지고 있다는 점이다

Posted by 더키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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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와이프>, 불륜 미화인가 미러링 효과인가

 

제목은 <굿와이프>인데 불륜은 무슨 의미일까. tvN <굿와이프>의 선택은 자못 도발적이다. 이 드라마는 우리네 정서에 통상적으로 좋은 아내라면 떠올리는 그런 이미지에 정면으로 대결하고 있는 듯하다. 김혜경(전도연)이 바로 그 장본인이다. 그녀는 남편의 성 스캔들에도 불구하고 남편을 이해하려 애썼지만 자신의 조사관인 김단(나나)과 남편이 과거 관계를 맺은 일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결국 참지 못한다. 남편과 별거를 선언하고 호감을 갖고 있던 서중원(윤계상)과 마음을 나누고 불륜까지 감행한다.

 

'굿와이프(사진출처:tvN)'

그것은 분명 불륜이지만 시청자들은 김혜경의 이런 선택에 대한 공감이 적지 않다. 그녀가 사실 할 만큼 했다는 반응이다. 정치적 야심을 갖고 심지어 아내의 좋은 이미지를 이용하려는 남편이지만 그 남편을 위해 기꺼이 그 옆자리에 서서 손을 잡아주었던 그녀다. 그런 선택은 물론 아이들을 위한 것이었다. 가정만은 꼭 지키고 싶은 마음에 남편 이태준(유지태)한번 실수라고 한 말을 믿고자 했던 것. 하지만 김단과의 관계를 알고 난 그녀는 그것이 단 한 번의 실수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됐고 더 이상 남편에게 휘둘리는 삶을 살지 않겠다고 결심한다.

 

이렇게 달라진 관점으로 드라마를 다시 들여다보면 이 드라마가 굳이 <굿와이프>라는 제목을 통해 그리려는 게 통상적인 좋은 아내상이 아니라는 걸 말해준다. 결국 이태준도 그를 뒤에서 후원하는 정치세력도 김혜경의 좋은 아내이미지를 활용하려는 모습을 보인다. 그리고 이것은 김혜경 스스로도 잘 알고 있는 일이다. 다만 가정을 지키기 위해 그걸 허용하고 있을 뿐이다. ‘좋은 아내란 결국 이미지이고 허상일 뿐이다. 솔직한 내면으로 들어가면 거기에는 희생되고 희생을 강요받는 한 여성의 불행한 삶이 보인다.

 

이것은 어찌 보면 우리네 사회에서 늘 좋은 아내라는 금과옥조로 강요되던 삶처럼 보인다. 물론 미드의 리메이크인지라 그 정서적 격차는 분명히 존재한다. 미드에서라면 김혜경 같은 선택을 하는 인물이 훨씬 바람직하고 쿨한 여성상으로 받아들여질 만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네 정서에서는 사뭇 다르다. 여전히 이유야 어떻든 아내가 가정이 아닌 개인의 선택을 추구할 때 이를 보는 사회의 시선은 냉담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김혜경의 선택은 우리네 사회가 갖고 있는 좋은 아내라는 이미지에 던지는 선전포고처럼 다가온다. 그것은 어쩌면 하나의 이데올로기가 아닌가. 왜 남편이 바람을 펴도 그걸 용서해주는 아내만이 좋은아내가 될 수 있는가. 그걸 용서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가는 여성상은 왜 좋은사람이 아닌 것처럼 백안시할까.

 

물론 그렇다고 불륜이 용인되는 건 아니지만, <굿와이프>의 이런 파격적인 설정은 좋은 아내라는 말 속에 은연 중에 담겨져 있는 남성 중심적 시각을 뒤집는 일종의 미러링효과를 주고 있다. 남성의 불륜은 한 번 실수라고 용인되는 사회. 그걸 받아들이고 나아가 희생함으로써 좋은 아내이미지조차 남편의 성공을 위해 내조해야 하는 것이 당연한 듯 요구되는 사회. 불륜 미화라는 논쟁점이 남지만 그래도 <굿와이프>의 강요된 좋은 아내이미지 깨기가 의미 있게 다가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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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6.08.27 22:58 하늘소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김혜경과 이태준을 갈라놓은 것이 부부간에 불신과 스캔들 이라면 김혜경은 진정한 사랑을 찾은건가요? 진실한 사랑이 위기에서 피는거라서, 대부분의 첫사랑이 이루어지지 않는거군요, 불륜이 사랑이되는건 맘먹기 달렸다는 내용 하나도 와닿지 않습니다.

  2. 2017.09.06 04:02 제라드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똑같이 불륜이기 때문에 둘다 쓰레기임...누가 더 큰잘못을 한것일뿐 불륜 자체가 잘못된거아님?

<굿와이프>의 낯선 인물들, 과연 미드 리메이크 때문일까

 

섹스 스캔들로 인해 남편의 불륜 장면이 만천하에 공개된다면 그 아내는 어떤 감정을 갖게 될까. 만일 우리네 드라마의 상투적인 전개였다면 그 이후의 장면들은 불을 보듯 뻔하다. 남편과의 관계는 끝장을 향해 달려갈 것이고, 만일 내연녀에게 전화라도 온다면 욕지거리 정도는 기본일 게다. 제아무리 좋은 아내라고 해도 이혼을 염두에 두는 건 당연지사일 지도.

 

'굿와이프(사진출처:tvN)'

하지만 tvN <굿와이프>는 다르다. 섹스 스캔들에 휘말린 남편 이태준(유지태)에게 김혜경(전도연)은 끓어오르는 분노를 갖고 있지만 이를 외부에는 전혀 표출하지 않는다. 그 스캔들을 설명하는 공식석상으로 나가는 첫 장면부터 김혜경은 이태준의 손을 꼭 잡고 있다. 그리고 그녀는 아이들을 책임지기 위해 변호사 일을 다시 시작한다. 그러면서도 가끔 남편을 면회 가고 감정은 있지만 그래도 대화를 하려는 노력을 보인다.

 

그녀가 과거 젊었던 시절에 자신에게 호감을 보인 서중원(윤계상)의 키스를 받았을 때, 잠시 흔들렸지만 그녀는 이건 아닌 것 같다며 그를 밀어낸다. 그리고 사무실을 빠져나오다 갑자기 마음이 바뀌었는지 다시 서중원의 사무실로 올라간다. 그가 자리에 없는 걸 알고 아쉬운 듯 돌아선 그녀는 집으로 오자 갑자기 남편의 품으로 파고든다.

 

그 속내를 대사로 드러낸 부분이 없기 때문에 이 장면은 여러 가지 해석들을 가능하게 한다. 그건 그녀의 내면에 잠재되어 있었다가 서중원에 의해 풀린 욕정일 수도 있고, 그런 욕정 때문에 갖게 된 남편에 대한 죄책감일 수도 있다. 다른 한 편으로는 그것은 남편에 대한 복수일 수도 있다. 너도 하듯이 나도 불륜을 할 수 있다는 것을 그런 행위로 표현했을 수 있다는 것.

 

그러고 보면 남편 역할인 이태준 검사 역시 그 속내를 잘 알 수 없는 이중적인 태도들을 보인다. 한편으로 보면 아내에게 죄책감을 가진 남편처럼 보이지만 그가 심지어 감방에 있을 때조차 인맥을 돌려 일을 뒤에서 꾸미는 걸 보면 아내를 이용해먹는 권력자처럼도 보인다. 그가 자신의 섹스 스캔들을 일으킨 상대 여자를 납치해 와 협박을 하는 모습에는 이 이중적인 면면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건 전형적인 권력자들이 하는 행동이지만 그는 그 자리에서도 나는 아내를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한다고 말할 정도로 아내를 사랑하는 남편처럼도 보인다.

 

사실 김혜경이나 이태준이라는 캐릭터의 이러한 행동들은 우리네 시청자들을 혼돈스럽게 만든다. <굿와이프>라는 제목처럼 김혜경을 좋은 아내캐릭터로 바라보는 시청자들은 그녀가 다른 남자와 불륜의 욕망을 드러내는 장면이 낯설게 다가온다. 그건 우리네 정서에서 좋은 아내라는 이미지로 드라마가 그려낸 적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또한 이태준 역시 마찬가지다. 그가 한 때 실수를 저질렀지만 그래도 아내를 지극히 사랑하는 건 맞는 것 같다. 그럼에도 자신의 성공을 위해 아내를 이용하는 듯한 모습은 우리네 시청자들에게는 낯선 느낌을 준다.

 

이건 과연 미드의 리메이크 때문에 생기는 정서적 간극일까. 아니면 우리네 드라마들이 너무 선악구도로만 나누어 극적 갈등들을 그려낸 데서 생겨난 낯설음일까. 아마도 두 가지가 모두 혼재된 느낌이다. 미드의 리메이크이기 때문에 확실히 <굿와이프>는 그 관계들이 우리와는 조금 달리 쿨한 면면들이 묻어난다. 하지만 이런 간극을 메워주는 건 다름 아닌 연기자들이다. 전도연과 유지태의 연기는 그 간극마저 이해될 만큼 자연스럽게 우리네 대중을 설득시켜준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네 드라마들이 너무나 천편일률적으로 남녀 관계, 부부 관계를 그려온 건 아닌가 하는 반성을 하게도 만드는 면이 있다. 어찌 남녀 관계 부부 관계가 선악 구도로 무 자르듯 나뉠 수 있을까. 거기에는 사람이 어쩔 수 없는 금기를 넘보는 욕망 같은 것들이 있기 마련이다. 좋고 나쁨은 한 사람이 선택되는 캐릭터가 아니라 한 사람 속에 혼재된 캐릭터라는 점이다.

 

그런 관점으로 보면 <굿와이프>는 우리네 드라마들에 상당히 괜찮은 시사점을 제시하고 있다고 여겨진다. 창작이란 때론 굳어진 틀을 벗어나고 깨는 데서부터 비롯된다. 또 삶의 진면목이란 어떤 틀에 박힌 편견과 선입견을 넘어서는 데서 보이기 마련이다. <굿와이프>가 보여주는 새로운 인물들은 그래서 낯설기도 하지만 그것이 본래는 진짜 우리네 얼굴이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 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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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시세끼>의 자연, 사람, 음식이 남긴 것들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것을 잊고 살아가는 지...” <응답하라1988>에 흘러나오는 동물원의 혜화동에는 이런 가사가 나온다. <삼시세끼> 어촌편 시즌2가 종영했다. 종영에 즈음해 생각해보면 <삼시세끼>가 하려던 이야기는 그 가사의 한 구절이 아니었을까. 우리가 잊고 살아왔던 참 많은 것들이 <삼시세끼>를 통해 환기되었다.

 


'삼시세끼(사진출처:tvN)'

만재도는 이제 너무나 친숙한 섬이 되었다. 그 누가 열 시간 넘게 달려가야 비로소 닿을 수 있는 외로운 섬이라고 하겠는가. <삼시세끼> 어촌편이 두 차례의 시즌으로 펼쳐놓은 만재도의 구석구석들. 바다가 멀리 내려다보이던 세끼 집과 주인이 있는 날보다 없는 날이 더 많아 보이는 만재슈퍼, 정상에 오르면 끝없이 펼쳐지던 수평선들, 늦여름에 물장구 치고 놀던 바다, 참바다 유해진이 낚시를 하던 포인트들과 잔뜩 기대하게 만들던 통발 놓던 포인트들. 그리고 무엇보다 그 곳에서 소박하게 살아가는 가족 같은 사람들. 도시에서 눈 돌려봐야 건물에 막히고 마는 우리의 시야가 잊고 있던 그 자연의 구석구석을 <삼시세끼>는 우리에게 돌려주었다.

 

그 곳에 좋은 사람들이 모이니 더욱 좋을 수밖에. <삼시세끼>의 진정한 힘은 바로 이 보고 싶을 정도로 좋은 사람들이 함께 한다는 점에서 나온다. 투덜대고 어딘지 결벽증이 있어 보이지만 만드는 음식 속에 그 사람의 정이 듬뿍 느껴지는 차중마 차승원, 물고기를 잡지 못한 날이면 한껏 의기소침해지고 그러다 물고기를 잡은 날은 한껏 허세를 부리는 인간미가 느껴지는 참바다 유해진 그리고 두 사람 사이에서 마치 자식처럼 동생처럼 끈끈함을 만들어내는 기분 좋은 막내 손호준.

 

그 곳을 찾은 박형식, 이진욱, 윤계상은 손님이라기보다는 머슴에 가까웠다. 그런데 그것이 어쩌면 그들을 더욱 기분 좋게 만들었을 것이다. 손님이 아니라 한 가족 같은 느낌을 주었을 테니 말이다. 그들은 함께 음식을 나눠 먹으며 진정한 식구의 훈훈함을 보여주었다. 하루하루를 전쟁처럼 살아가는 도시인들에게 만재도의 자연과 사람과 음식은 그렇게 우리가 잊고 살아가던 것들의 가치를 되새겨 주었다.

 

도시에 다시 모여 결국은 잡지 못한 참돔과 돌돔을 먹으며 차승원, 유해진, 손호준이 나누는 대화 속에는 만재도에 대한 그리움이 벌써부터 묻어나 있었다. 유해진은 언제고 힘들어질 때 혼자라도 만재도를 꼭 찾아갈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아마도 다시 제각각 돌아간 일터에서 또다시 하루하루를 전쟁처럼 살아갈 것이지만 그럴 때마다 그들은 만재도에서의 그 여유롭던 한 끼와 바다를 내려다보며 한가롭게 낮잠을 즐기던 한 때와 산체 벌이와 함께 뒹굴던 시간들을 떠올릴 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네 시청자들도 마찬가지다. 그 곳을 직접 가보지는 못했지만 <삼시세끼>를 통해 그 곳의 기억을 공유하게 된 우리들도 간혹 만재도가 그리워지는 날이 올 지도. 그럴 때면 우리도 잠시 이 곳을 떠나 저 곳으로의 일탈을 꿈꿔보는 건 어떨지. 그 곳에 가면 어쩌면 우리가 바쁘게 살아가며 잊고 있던 것들을 되찾을 수도. 차승원과 유해진과 손호준이 그러했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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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트>가 해부하고 있는 시스템의 밑바닥

 

수 백 억씩 주무르던 펀드매니저가 하루 아침에 노숙자 신세가 된다면 어떤 기분일까. JTBC <라스트>는 이른바 작전 주식을 쥐고 흔들던 장태호(윤계상)가 오히려 누군가 주도한 역작전에 걸려 밑바닥으로 떨어지는 장면에서부터 시작한다. 책상머리에서 숫자로만 수 십 억씩 봐온 돈은 별다른 감흥을 주지 않지만, 막상 노숙자 신세가 되어보니 단 몇 천 원이 아쉽다. 배고픔은 밥 한 끼에 영혼이라도 팔 수 있을 것 같은 처절함을 안겨준다.

 


'라스트(사진출처:JTBC)'

그런데 이 <라스트>가 그리고 있는 밑바닥의 풍경이 심상찮다. 거기에는 노숙자들 위에 군림하는 지하 경제 시스템이 있다. 그 시스템의 맨 꼭대기에 있는 곽흥삼(이범수)은 길거리 맨 밑바닥에서부터 시작해 지금은 펜트하우스에서 지내며 100억 규모의 지하 경제를 움직인다. 넘버1 곽흥삼부터 넘버7까지 서열로 이뤄진 시스템은 위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파티라고 불리는 대결에서 이겨야 한다. ‘파티에서 지면 그 패배자의 몸은 공장으로 가서 해체되는 최후를 맞이한다.

 

살벌한 시스템이지만 이 구조는 다름 아닌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의 시스템 그대로다. 태생으로 결정되는 일종의 사회적 서열 구조는 그 한 단계를 뛰어넘기 위해 사력을 다해야 한다. 그게 아니라면 자신의 서열 위치에서 윗 서열을 위해 열심히 봉사해야 한다. 그것이 시스템에서 생존하는 길이다. 그리고 그 넘버 1은 마치 맨 꼭대기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 위에 보이지 않는 또 다른 윗 서열들이 숨겨져 있다. 밑바닥은 그것이 주먹의 논리로 돌아가지만 윗 세상은 자본의 논리로 움직인다.

 

<라스트>가 그리고 있는 건 장태호라는 인물을 통한 이 시스템의 모험이다. 맨 밑바닥으로 떨어져 한 단계씩 위로 올라가며 알게 되는 시스템의 생리들. 저 위에서 펀드 매니저로 있을 때만 해도 잘 몰랐던 시스템의 구조를 온 몸으로 겪으며 체험해가는 것이 이 드라마가 하려는 이야기다. 장태호는 그래서 서울역 노숙자들의 세상으로 내려와 거기 길거리를 전전하는 이들의 삶을 조금씩 알아간다. 또 신나라(서예지) 같은 길거리의 천사가 어떻게 그 시스템 바깥으로 나와 노숙자들을 돕는 삶을 살아가는지를 목도하게 된다. 길거리에 버려져 죽을 뻔 했던 삶에 내밀어준 누군가의 손길을 이제는 그녀가 내밀며 살아가게 된 것.

 

흥미로운 건 <라스트>의 밑바닥 시스템 안에 살아가는 인물들은 그 서열이 어떻든 결코 행복해보이지가 않는다는 점이다. 장태호가 제끼려고 하는 넘버1 곽흥삼 역시 때때로 쓸쓸한 어깨를 드러내준다. 과거 그가 살아왔던 어두운 삶에서 그가 잔혹해진 건 어찌 보면 시스템에서 생존하기 위한 몸부림처럼 다가온다. 서로 대결하는 것처럼 보여도 한 때는 곽흥삼이나 넘버 2 류종구(박원상)나 서로 의리로 뭉쳐 있던 인물들이다. 그들은 내색은 안 해도 서로 위기에 처했을 때 몸을 사리지 않고 서로를 도우려고 한다.

 

즉 이들의 밑바닥 삶은 그 서열로서 서로 치열하게 싸우고 있지만 그 누구도 행복하지 않다는 점이다. 그런데 이들의 피땀으로 적셔진 생존이 거대한 지하경제를 만들고 그것이 저 지상의 삶을 사는 상류층의 삶들에 이익으로 상납되고 있다는 건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이 어떻게 구획되어 있는가를 잘 말해준다. 즉 저들의 밑바닥이 누군가의 호화로운 삶의 토대가 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 시스템의 부조리는 그래서 밑바닥들이 그 부조리한 시스템과 대적하기보다는 그들끼리의 살기 위한 경쟁을 부추긴다는 점이다.

 

장태호의 모험은 그 시스템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위의 세계와 밑바닥의 세계를 모두 들여다본 자로서의 장태호는 그 부조리한 관계를 아는 인물이다. 그들을 비참하게 만든 건 저 바깥에 있는데 그들끼리 파티라는 이름으로 생존경쟁을 하는 그 광경들이 씁쓸하게 여겨지는 건 그래서다. <라스트>가 액션 느아르 같은 장르적 성격을 보여주면서도 그 안에 어떤 쓸쓸한 밑바닥 정서를 담고 있는 건 이것이 우리 현실의 일단을 해부하듯 잘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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