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살벌한 어른들과 천진한 아이들의 대결 같다. ENA 수목드라마 <유괴의 날>이 드러낸 최로희(유나)를 두고 벌어졌던 사건의 전말은 ‘천재 아이 프로젝트’라는 끔찍한 실험이었다. 두뇌 기능을 극적으로 향상시키려는 이 실험을 위해 최진태(전광진) 원장은 아이들을 입양했고, 성과가 없으면 파양하는 걸 반복해왔다. 최로희는 그렇게 입양되어 실험대상이 됐던 아이이고 그 실험의 성과가 나오기 시작했던 아이였다.
그런데 이 끔찍한 실험은 최진태 원장이 시작한 게 아니라 그 부친에서부터 이어져온 것이었다. 딸의 병원비를 마련하기 위해 최로희를 유괴하라고 부추겼던 김명준(윤계상)의 아내 서혜은(김신록) 역시 최진태 원장의 부친에 의해 실험됐다가 성과가 나오지 않아 파양됐던 아이였다. 게다가 이 실험에는 모은선(서재희) 박사나 제이든(강영석) 같은 연구비 투자자들이 있었다. 물론 목적은 달랐다. 모은선 박사가 아픈 딸을 위해 최로희가 필요했다면, 제이든의 목적은 오로지 돈이었다.
천재 아이를 만들어내는 실험을 하고, 그 성과가 보이지 않으면 파양시키는 비정한 어른들의 이야기는 마치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엘리트주의’를 은유하는 것처럼 보인다. 성적 상위 몇 프로인 엘리트들만이 살아남고 나머지는 버려지거나 소외시키는 사회가 그것이다. 그 목적은 돈이거나 혹은 가족이기주의 같은 것들이다.
최진태 원장이 살해되자 그 막대한 유산이 최로희에게 갈 것을 우려해 아이를 죽이려고까지 하는 최동준(오만석) 같은 유족들의 모습도 저 천재 아이 프로젝트를 2대에 걸쳐 해온 비정한 어른들과 다를 바 없다. 이들에게는 아이도 하나의 소유물 같은 실험대상이고, 성과를 내지 못하면 버려지는 소모품 같은 존재로 치부된다.
그래서 뒤늦게 밝혀진 ‘천재 아이 프로젝트’의 전말은 애초 어설픈 유괴범 김명준이 최로희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온 사실이 유괴가 아니라 구조였다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만들어낸다. 처음에는 기억을 잃어 김명준을 아빠라 착각하지만, 기억이 되돌아온 후에도 최로희는 따뜻한 마음을 가진 김명준에게 최진태 원장에게서는 결코 느끼지 못했을 끈끈한 정을 느낀다.
흥미로운 건 김명준이 과거 유도를 하다 사고로 상대 선수를 죽게 만들었을 정도의 괴력의 소유자지만, 하는 짓은 어딘가 아이 같다는 점이다. 어른들의 눈으로 보면 모자라다고 느껴지는 이 인물은 그러나 최로희와 함께 할 때는 어른과 아이가 아닌, 아이들 같은 관계를 보여준다. 오히려 천재적인 두뇌를 발휘해 이 복잡하게 욕망들이 꼬여버린 상황들을 헤쳐 나가는 최로희가 어른 같은 역할을 한다.
제이든과 최동준(오만석)이 공조해 최로희를 김명준이 살해한 것처럼 꾸미지만, 그게 사실이 아니라는 걸 폭로하겠다며 저들을 협박해 300억을 내놓으라고 하는 최로희와 김명준의 공조는 그래서 마치 아이들의 놀이처럼 그려진다. 제이든에 의해 납치 구금되어 있고 300억을 두고 벌어지는 치열한 싸움이 있는 상황에서도 최로희와 김명준은 이 판세를 다 읽어가며 여유있게 바닷가에서 모래 놀이를 한다.
<유괴의 날>의 이야기는 이제 본격적인 ‘아이들의 반격’에 들어갈 작정이다. 어른들이 지금까지 해왔던 비정한 짓들을 하나하나 폭로하고 저들의 욕망을 역이용해 저들을 궁지로 몰아가는 것. 그리고 아이 같은 어른 김명준이 끝내 원하는 건 최로희가 ‘천재’가 아닌 그저 평범한 아이로 살아가는 그런 세상이다. 마치 아이들이 놀이하듯 펼쳐지는 김명준과 최로희의 반격이 특히 통쾌하게 다가오는 건 그래서다. (사진:ENA)
도대체 누가 이 아이의 진짜 보호자라고 말할 수 있을까. 지니TV ENA 수목드라마 <유괴의 날>에서 명준(윤계상)은 로희(유나)를 유괴했다. 유괴할 위인이 못돼는 마음 약한 사람이지만 병원에 있는 딸을 살리기 위해 집 앞까지 갔고, 갑자기 차 앞으로 뛰어들고는 쓰러진 로희를 엉겁결에 집으로 데려왔다. 유괴처럼 보이지 않지만 결과적으로는 유괴를 하게 된 것이다. 그는 유괴범이다.
딸의 수술비를 위한 것이라고 해도 그 유괴의 목적은 결국 돈이다. 그 돈을 받아내기 위해 아이는 수단이자 도구가 된다. 그런데 이 어리버리한 유괴범 명준은 깨어나 기억을 잃은 채 자신을 아빠라 여기는 로희 앞에서 어쩔 줄 몰라 하고, 결국 딸처럼 로희를 챙기기 시작한다. 로희에게서 자신의 진짜 딸의 모습이 겹쳐보였을 게다. 여기서 그의 모습은 유괴범처럼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천재적인 두뇌를 가진 로희는 금세 명준이 자신의 진짜 아빠가 아니라는 사실을 간파한다. 그리고 이를 추궁하자 역시 마음 약한 명준은 사실을 토로하고 자수를 한 후 아이를 집으로 돌려보낼 결심을 한다. “집으로 보내 줘”라고 애원하는 로희의 모습은 영락없는 아이의 그것이지만, 이 영민한 아이는 직감적으로 알고 있다. 돌아갈 집이 없다는 걸. 그는 유괴된 아이지만 그 누구도 찾지 않는 버려진 아이가 됐다.
부모는 누군가에게 살해됐고 그 집안은 아이를 찾기는커녕, 이 사건이 대외적으로 알려지는 걸 원치 않아 사건을 공개수사로 전환한 서를 찾아 항의의 뜻을 전한다. 유산상속 문제까지 겹쳐져 아이는 버려진 것이나 다름없다. 그런데 아이의 몸에 있는 주사바늘 자국들은 이 아이가 부모로부터 학대를 받았다는 의심을 하게 만들고, 이 유괴를 부추겼던 명준의 아내 혜은(김신록)은 아이의 아빠가 유명한 의사로 ‘천재 아이 프로젝트’ 연구를 해왔고 로희가 그 연구대상이었다는 이야기를 한다.
여기서 이야기는 다시 저 첫 번째 질문을 하게 된다. 누가 진짜 이 아이의 보호자라고 할 수 있을까. 로희라는 한 아이를 세워두고 <유괴의 날>은 그 질문을 던진다. 친아빠라는 사람은 연구에 미쳐 딸 로희를 대상으로 실험을 한 인물이고, 진짜 천재적인 능력을 갖고 있는 로희를 그 연구의 성공 사례로 여긴 모은선(서재희) 같은 다른 어른들은 그 아빠에게 수십 억씩 투자했다.
로희는 한 아이이고 소중한 생명이 아니라 ‘세상을 바꿀(물론 이 어른들에게는 그게 돈으로 환산되는 가치겠지만)’ 천재 아이 프로젝트를 위한 대상이고 수단이고 도구일 뿐이다. 그러니 어쩌다 유괴범이 된 명준은 로희에게는 이러한 비정한 세상에 유일하게 자신을 지켜주는 보호자가 된다. 부모는 모두 살해됐지만, 로희가 살아있어 연구를 계속 이어가려는 저들은 이 아이를 잡으려 하고, 명준은 자신이 아무런 힘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자수하려 하지만 로희를 지켜줄 이가 자신밖에 없다는 사실에 아이와 약속을 한다. “내가 끝까지 지켜줄게.”
경찰의 추적과 저 투자자들이 보낸 것으로 보이는 청부업자들의 위협 속에서 명준은 로희를 지키기 위해 사투를 벌인다. 칼에 맞아 피를 철철 흘리면서도 끝내 로희를 지켜낸다. 기막힌 풍자가 아닐 수 없다. 유괴범이 한 아이를 지키는 유일한 보호자라니. 자신의 딸을 위해 유괴를 선택했지만 차마 로희를 돈의 수단이자 도구로 삼지 못하고 심지어 딸처럼 여기게 된 명준과, 부모가 죽었어도 연구를 계속하기 위해 로희를 납치하려는 투자자들 중 과연 누가 진짜 유괴범일까.
경찰들은 명준이 명백한 유괴범이고 나아가 로희의 부모까지 죽인 살인범이라고 예단하지만 냉철한 강력계 형사 박상윤(박성훈)은 그런 성급한 판단을 하지 말라고 선을 긋는 인물이다. 대단히 ‘특이한 유괴’라고 사건을 면밀히 들여다보는 상윤의 시선은 그래서 이 사건이 말해주는 진짜 진실(누가 진짜 유괴범인가 하는)을 시청자들이 따라가게 해주는 가이드 역할을 한다. 그래서 시청자들은 어느덧 유괴범 명준과 유괴된 아이 로희가 서로 손을 잡고 그들을 좇는 무리들로부터 도망칠 때 마음속으로 응원하게 된다. 이들의 도주의 끝에 적어도 작은 희망 같은 걸 보게 되기를. 진짜 어른 같은 어른과 아이 같은 아이가 서로를 마주하고 웃게 되기를. (사진:ENA)
바다식당은 옛 모습 그대로였다. 어린 시절 배가 고팠던 문차영이 찾아왔던 그 곳에서 이강은 맛있는 음식을 대접했고, “음식이 너무 맛있어서, 너무 행복해서” 눈물을 쏟았다. 늘 열쇠가 놓여있던 곳에서 열쇠를 찾아 식당 문을 열고 불을 켜자 이강(윤계상)의 기억에도 불이 켜졌다. 어머니가 해주던 음식을 맛나게도 먹었던 기억. 그 뒷모습을 바라보는 문차영(하지원)에게도 추억이 돋아난다. 요리를 직접 한다는 이강의 말에 그 어린 시절 행복했던 맛이 떠올랐을 수도. JTBC 금토드라마 <초콜릿>은 그렇게 먼 길을 돌아 다시 바다식당에서 두 사람을 마주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문차영은 사고로 머리를 다쳐 미각을 잃은 상태였다. 맛이 있을 턱이 없었다. 문차영은 그러나 마치 미각을 다시 찾기나 했다는 듯이 맛있게 음식을 먹었다. 하지만 이강은 모든 걸 알고 있었다. “동생한테서 MRI사진이랑 진료기록 받았어요. 아무 냄새도 맡을 수 없고 아무 맛도 느낄 수 없는 거 알아요. 그래서 아무 식당이나 그냥 데려가고 싶지 않았어요.” 그 말에는 이강의 마음이 담겨있었다.
문차영은 다시 맛있게 음식을 먹으며 눈물을 흘렸다. 그런 문차영에게 이강은 어렸을 때 그랬듯이 휴지를 건넸고, 문차영은 “너무 행복해서 그래요. 음식이 너무 맛있어서, 너무 행복해서 자꾸 눈물이 나요.”라고 그 어린 시절 했던 그 말은 다시 했다. 그 말은 이강에게 오래도록 지워져 있던 기억 하나를 끌어올렸다. 문차영에게 바다식당에 온 적이 있냐고 물었고 자신을 아냐고 물었다. 문차영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어쩌면 <초콜릿>의 이 장면은 이 드라마가 그리려는 궁극적인 지점일 것이었다. 어린 시절 첫 만남과 이별 그리고 한참이 지나 다시 재회했지만 그를 알아차리는 문차영과 달리 기억을 못하는 이강. 그렇게 서로 엇나간 운명 속에서 지내다 결국 다시 그 첫 만남의 장소에서 다시 떠올린 기억.
이것은 <초콜릿>이 다루고 있는 음식이라는 소재와도 딱 맞는 만남과 이별 그리고 재회가 아닐 수 없다. 그걸 매개해주고 있는 것이 바로 음식이니 말이다. 하지만 음식을 통해 만난 두 사람은 과거와 현재가 너무나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과거에는 비록 배고팠지만 맛있는 음식을 먹고 느낄 수 있었고, 그런 모습을 보며 내 일처럼 행복할 수 있었던 그들이었다. 하지만 바다식당을 떠나 저 현실을 떠돌며 살아온 그들은 너무나 많은 상처들을 겪었다.
백화점 붕괴사고로 이강은 어머니를 잃었고 그 어머니가 건네준 초콜릿으로 문차영은 살아남았지만 그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나이 들어 다시 이강을 만났지만 그의 친구 권민성(유태오)의 구애로 운명이 엇나갔고 권민성은 사망했다. 문차영은 그 상처들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호스피스 병동 식당에서 일하며 사람들에게 음식으로 위로를 건네고 있었다. 그것이 자신을 위로하는 일이라는 듯.
이강은 거성재단의 가족이 되어 살아가지만 후계를 두고 벌어지는 이준(장승조)과의 대결과 그를 밀어내려는 이준의 부모들 속에서 힘겨운 현실을 버텨내고 있었다. 어린 시절 바다식당에서 어머니와 함께 지냈던 그 행복했던 시절을 까마득히 잊은 채 하루하루를 치열하게 살아가던 이강은 손까지 떨리게 되자 결국 호스피스 병원으로 좌천되어 내려오게 된다.
이렇게 현실에서 깊은 상처를 입은 두 사람이 다시 바다식당에서 음식을 마주한 채 서로를 기억해낸다는 설정은 그래서 꽤 상징적인 의미로 다가온다. 미각조차 잃어버린 요리사 문차영이 이강이 해주는 음식을 먹으며 “너무 맛있어” 눈물을 흘리는 모습은 음식이 그저 맛과 같은 감각 그 이상이라는 걸 말해준다. 음식을 통해 그는 이강의 마음을 느낀 것이고 그 마음이 너무 행복했던 것.
이건 그간 <초콜릿>이 담아낸 다양한 에피소드들이 음식을 매개로 하고 있는 이유를 드러낸다. 너무나 지쳐 쓰러질 것만 같은 힘겨운 상황 속에서 누군가 건넨 음식 하나가 어떤 위로와 위안을 넘어 힘을 줄 수 있는 건 단지 음식의 맛 때문이 아니라 거기 담긴 음식 만드는 이의 마음 때문이라는 걸 <초콜릿>은 음식을 마주한 두 사람의 마음으로 전하고 있다.(사진:JTB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