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의 무도>, 그 어떤 역사 교육보다 효과적이었던 까닭

 

그저 전 세계로 떠나는 배달 정도가 아닐까 생각했다. 하지만 <무한도전>이 기획한 배달의 무도는 그런 정도가 아니었다. 일단 배달하는 것이 음식이라는 점이 시청자들의 마음을 뭉클하게 만들었다. 머나먼 이국 생활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다름 아닌 고향의 음식이 아닐까. 거기에는 그리워하는 사람들과 고향의 기억들이 방울방울 묻어나기 마련이었다.

 


'무한도전(사진출처:MBC)'

그래서 가족과 친지가 보낸 음식을 먹으며 그 마음을 나누는 이 훈훈한 이야기는 그저 배달이상의 의미를 담아냈다. 하지만 역시 그 정도의 감동일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배달의 무도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갔다. 일본 우토로 마을의 아픈 사연들이 소개되면서 우리가 잊고 있었던 그 곳 우리 동포들의 삶이 하하와 유재석에 의해 담겨진 데 이어, 이번에는 일본의 세계문화유산 등재 논란을 일으켰던 하시마섬의 묻혀지고 있는 아픈 역사가 하하와 서경덕 교수의 두 차례에 걸친 방문으로 소개됐다.

 

파고가 높아 들어가지 못하게 되자 굳이 다시 찾아가 하시마 섬에 직접 발을 딛게 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강제 징용되어 지옥 같은 삶을 살았던 우리네 동포들의 아픈 이야기가 삭제된 채 세계문화유산 등재되어 그저 일본 근대화의 상징처럼만 포장되어 있는 그 곳을 찾는 관광객들은 그 아픈 역사를 까마득히 모른 채 기념사진을 찍고 있었다.

 

사진으로 보여지는 당시 하시마 섬의 일본인 광부들은 제복을 차려입고 당시 무려 50만엔에 달하는 봉급을 받으며 풍족한 삶의 모습을 보여준 반면, 이제 90줄을 넘기신 하시마섬의 생존자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통해 전해진 당시 강제 징용된 우리 동포의 삶은 끔찍하기 이를 데 없었다. 팬티 한 장 입고 온 몸에 탄가루를 뒤집어쓴 채 탄광에서 일했던 어르신은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비명 소리와 배고픔에 대한 호소로 당시 상황은 아비규환이었다고 했다.

 

그렇게 어린 나이에 강제로 끌려가 노역을 하시다 돌아가신 어르신들은 사람들의 발길이 도저히 닿기 어려운 외진 곳에 초라하게 합장되어 있었다. 합장되기 전, 그들의 인명부조차 모조리 태워버려 그 분들이 누구인지조차 모르게 덮여진 채, 쓸쓸한 비석 하나로 남아있는 그 곳을 땀을 뻘뻘 흘려가며 찾아간 하하와 서경덕 교수는 말을 잇지 못했다. 다시 그 곳을 찾은 하하와 서경덕 교수가 챙겨 간 그분들이 그토록 먹고 싶었다던 쌀밥 한 그릇과 뜨끈한 고깃국은 저 우토로 마을을 찾았던 유재석이 했던 말처럼 너무 늦어 죄송한 배달이 아닐 수 없었다.

 

사실 우토로 마을에 대한 이야기나 하시마 섬의 아픈 역사는 여러 차례 뉴스나 다큐멘터리를 통해 소개된 바 있다. 하시마섬이 아픈 역사를 숨긴 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을 당시만 해도 신문지상에서는 이 문제를 심층 보도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안타까운 건 뉴스나 다큐멘터리 같은 매체를 통한 이런 보도들이 대중들에게는 그다지 큰 임팩트를 주지 못하는 현실이라는 점이다. 특히 청소년들의 경우 입시경쟁 속에서 역사교육에 대한 관심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다큐멘터리나 시사 프로그램이 몇 주에 걸쳐 한다고 해도 과연 이번 배달의 무도가 불러일으킨 관심만큼을 이끌어내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무한도전>이라는 가장 뜨거운 예능 프로그램이기에 이번 우토로 마을이나 하시마 섬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은 각별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무한도전>은 물론 예능 프로그램이다. 그러니 즐거움과 재미를 줘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 즐거움과 재미 역시 그저 휘발되는 것만이 아니라 의미와 가치 있는 것들을 추구할 때 지속 가능한 것이 될 것이다. 물론 <무한도전>은 계속 해서 새로운 도전들을 즐겁게 추구해야하겠지만, ‘배달의 무도라는 아이템은 일회적으로 끝내기에 너무나 아쉽게 느껴진다. 이런 프로그램이야말로 상시적으로 방송이 해줘야 하는 아이템이 아닐까. ‘배달의 무도는 분명 다큐보다 시사보다 더 효과적으로 우리에게 중대한 사안들과 가치들을 일깨워줬다.



<삼시세끼>가 수미쌍관으로 보여준 변화들

 

<삼시세끼> 1년 간 어떤 변화들이 있었을까. 이서진은 처음 모습 그대로 툴툴거리며 요리는 역시 인스턴트야라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그의 표정은 즐거움이 가득하고 손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재게도 움직인다. 옥택연은 여전히 어딘가 조금은 어색한 음식을 하며 정통은 아니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꽤 그럴싸해졌다. 중간에 합류한 김광규는 애써 갖가지 양념을 들이부어 꽤 먹을 만한 겉절이를 내놓는다.

 


'삼시세끼(사진출처:tvN)'

여전히 툴툴대고 어딘지 정통은 아닌 듯 별다를 바 없는 밥상을 보여주며, “직접 키워 해먹는다는 건 하지 말아야할 일이라고 얘기하면서도 그들의 얼굴에는 어떤 보람 같은 것들이 느껴진다. 나영석 PD 역시 1년 간 삼시세끼 해먹으면서 그 의미가 사 먹으라고 결론 내주어서 고맙다고 비아냥대면서도 그리 싫지만은 않은 모습이다.

 

그렇다. 달라진 건 별로 없어 보인다. 여전히 옥순봉 아래 집이 덩그라니 한 채 서 있고 그 모두가 떠난 자리에 이서진과 옥택연이 서 있다. 하지만 그 별다를 것 없다는 그들의 이야기와는 달리 그 안에는 어마어마한 일들이 있었다. 아무 것도 없던 하트 밭에 옥수수들이 가득 자랐고 거기서 수확한 옥수수들은 그들은 한 때나마 흥청망청 고기 부호 놀이를 하게 해주기도 했다.

 

옥택연과 박신혜가 심었던 야채들은 무성하게 자라 그 열매들을 내주었다. 잭슨과 밍키는 어느새 엄마가 되어 2세들과 새로운 가족을 이루었고 꿀벌들은 옥순봉 사람들을 위해 야생화들에서 꿀을 애써 날랐다. 처음 낯설었던 시골살이는 이제 뭐든 척척 해내는 익숙함으로 다가왔다. 여전히 도시의 삶이 좋다고는 하지만 이서진은 이 시골 삶 역시 꽤 즐거운 기억으로 남았을 것이다.

 

무엇보다 그 곳을 찾았던 무수히 많은 게스트들에게 줄 수확한 작물들을 챙기자 그들과의 추억들이 방울방울 피어올랐다. 김치를 담그며 이서진의 보조개를 패이게 했던 담그지우’, 망친 감자옹심이 때문에 속상해했던 김하늘과 버럭 셰프의 면모를 보여줬던 이선균, 늘 부지런한 보조로 묵묵히 일만 했던 손호준, 마치 형제처럼 읍내를 활보했던 지성 등등. 그들의 면면들이 그 아무 것도 일어나지 않은 것만 같은 옥순봉 세끼 집에는 여기저기 서려 있었다.

 

박신혜로 시작해서 박신혜로 끝내는 그 수미쌍관을 <삼시세끼> 시즌2가 굳이 선택했던 건 그 처음과 끝의 변화가 얼마나 다른가를 보여주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어느새 박신혜는 게스트가 아니라 신혜렐라가 되어 갖가지 맛나는 음식들을 척척 맛보게 해주는 그런 존재가 되어 있었다. 그녀가 부여한 밝은 에너지가 너무나 컸기 때문일까. 그녀가 떠난 자리에는 커다란 허전함이 남았다.

 

아마도 이 박신혜의 빈자리에서 느껴지는 허전함은 <삼시세끼>라는 프로그램에 대한 시청자들의 소회 그대로일 것이다. 한바탕 왁자했던 한 여름의 그 즐거웠던 기억들을 이제는 정리하는 시간이다. 그들이 애써 달라진 건 없다고 말하는 것 역시 그 아쉬움을 숨기기 위함이 아닐까.

 

실제로 달라진 건 없을 것이다. 내년에도 다시 씨앗은 뿌려지고 작물은 자라고 텅 비었던 그 곳에 사람들의 왁자한 목소리들이 들려올 것이다. 그리고 어느 시간이 되면 그들은 아쉽게도 헤어져야 한다.

 

하지만 <삼시세끼>1년 간을 들여다보면서 이 보통의 일들이 이제는 대단히 특별한 일들로 다가온다. 매일 매일 반복되는 그 일상이 주는 특별함. 시간의 더깨가 쌓이면서 생겨나는 기적 같은 순간으로 남은 추억들. <삼시세끼>가 보여준 보통의 1년은 어느새 특별한 시간으로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 별다를 것 없이 흘러가는 듯 보이는 우리네 삶이 그렇듯이.



안방을 눈물바다로 만든 <무도>의 음식 배달

 

모두가 엄마의 밥으로 큰다. 하지만 그것이 너무나 당연하다보니 늘 밥은 먹었니하고 묻고, 나이 들어도 여전히 어린 자식 대하듯 어떻게든 밥을 챙겨주려 애쓰는 엄마에게 괜스레 툴툴댔던 기억이 누구에게나 한번쯤은 있다. 너무 편하고 익숙해 잊고 있던 엄마의 음식에 담긴 가치. <무한도전>이 이역만리에 떨어져 살고 있는 분들에게 전해준 음식이 그토록 시청자들의 마음을 울린 건 잠시 잊고 살았던 엄마의 음식에 담긴 애틋한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졌기 때문이다.

 


'무한도전(사진출처:MBC)'

유재석이 배달한 엄마의 음식이 각별하게 다가온 건 그 주인공인 선영씨가 아기 때 해외로 입양된 분이었기 때문이다. 그 잃어버렸던 아이에게 엄마가 가졌을 미안함이 얼마나 컸겠는가. 그 아이가 이제 아이를 가졌다는 소식에 엄마가 먼저 떠올렸을 것은 그래서 미역국이었을 지도 모른다. 그 먼 길을 찾아온 유재석이 그녀에게 좋아하는 음식을 묻자 그녀는 엄마가 해주는 음식이라고 말했다.

 

엄마와 딸 사이지만 서로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건 둘이 각각 걸어온 삶이 너무나 멀었다는 걸 말해준다. 하지만 그 멀고도 먼 삶을 말이 통하지 않아도 연결해주는 건 엄마의 음식이었다. 혼자서도 챙겨먹을 수 있게 미역국 끓이는 법을 알려주는 엄마와 딸 사이에 언어의 장벽 따위는 없었다. 그리고 딸에게 정성스레 음식을 챙겨주는 엄마와 그 음식을 너무나 맛있게 먹으며 행복해하는 딸 사이에는 언어 그 이상의 사랑이 전해졌다.

 

엄마와 딸이, 사위와 장모가, 또 그 낳아주신 엄마와 길러주신 아빠가 말도 통하지 않는 상황에서도 그 누구보다 살갑고 정이 느껴지는 진짜 가족의 모습을 보여주는 장면은 그래서 기적 같은 느낌마저 주었다. 낳아주신 엄마가 해주는 밥을 사위와 길러주신 아빠가 오래도록 앉아 먹는 모습 속에는 서로 연결되어 있는 이 특별한 가족의 끈끈함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 끈끈한 가족이 전해주는 이야기는 거기서 머물지 않고 같은 경험을 한 통역사에게도 그대로 전해졌다. 어린 시절 입양된 그녀의 남편은 지금도 부모를 찾고 있지만 못 찾았다고 했고, 그런 그녀에게 선영씨의 엄마는 마치 친부모처럼 다독이며 기다리면 언젠간 만날 것이라고 얘기해주었다.

 

사실 만나기 힘든 가족을 다시 상봉시키는 그런 이야기를 우리는 TV를 통해 여러 차례 봐온 바 있다. 하지만 <무한도전>의 가족 상봉기가 특히 우리의 마음을 울렸던 건 거기 음식이라는 매개체가 있었기 때문이다. 말로 전하는 사랑보다 음식이 전하는 사랑에는 말로 표현하지 못할 수만 가지의 이야기들이 담겨져 있기 마련이었다.

 

떨어져 있는 가족을 위해 정성껏 음식을 만들어준 엄마의 마음, 그 마음을 고스란히 전해주기 위해 지구 반 바퀴를 도는 걸 마다치 않은 <무한도전>의 마음, 음식을 통해 전해진 그 마음 앞에 한없이 느껴지는 행복감, 그 광경을 보며 각자의 엄마의 음식을 떠올렸을 시청자들의 마음까지. <무한도전>이 배달한 음식 속에는 그 많은 마음들의 오고감이 기적처럼 느껴졌다.



'무도'는 왜 이틀을 날아가 음식을 배달했을까

 

"어여 먹어 이 미꾸라지 같은 놈아." 할머니 분장을 한 정준하는 가봉에서 대통령 경호원으로 일해 온 박상철씨에게 그렇게 말했다. 한참 나이 많은 박상철씨지만 정준하의 그 말에 웃음이 피어나왔다. 하지만 그 얼굴에는 이미 눈물이 가득했다. 낯선 타향에서 그토록 오랫동안 살아오면서도 결코 보이지 않았을 눈물. 정준하의 '꾸지람(?)'에서 박상철씨는 어린 시절 되비지를 해주시며 그런 말을 건네곤 했던 엄마의 모습을 떠올렸을 것이다.

 

'무한도전(사진출처:MBC)'

<무한도전> '배달의 무도' 편에서 정준하가 40시간이나 비행기를 타고 아프리카 가봉으로 날아가 전한 건 단지 엄마의 음식이 아니었다. 그것은 엄마의 아들을 생각하는 마음이었고, 사랑이었다. 아들 역시 머리가 희끗희끗해져가고 있었지만 정준하가 배달해준 엄마가 정성스레 준비한 만둣국과 되비지는 순식간에 시간을 어린 시절로 되돌려 놓았다. 40시간을 비행기를 타고 가야 되는 이역만리에서 꽤 오랜 세월 떨어져 있었지만 엄마의 음식은 그 거리와 시간을 훌쩍 뛰어넘게 해주는 마법 같았다.

 

"음식 먹을 때 엄마 생각하며 울지 말고 먹어라." 노모가 보낸 영상 편지 속에서 엄마는 이렇게 말했다. 울지 말고 먹으라니. 엄마는 그 순간에도 아들이 울다가 먹지 못할까를 걱정하고 계셨던 것이다. 음식을 만든 자신을 떠올리기 보다는 아들이 한 끼라도 잘 챙겨먹길 바라고 계셨던 것이다.

 

노모가 정준하를 아들처럼 껴안아주었던 그 따뜻한 온기를 이제 정준하가 그 아들을 껴안아주며 전하는 장면은 '배달의 무도'가 전하고 있는 것이 음식이 아닌 마음이라는 걸 분명히 보여주었다. 아들은 정준하가 진짜 엄마라도 되는 양 오래도록 꼭 껴안고 있었다.

 

최근 음식은 방송의 주재료가 되었다. 여기저기 틀기만 하면 나오는 게 쿡방이고 먹방이다. '배달의 무도'는 그러나 그 흔해진 음식의 또 다른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음식이란 본디 그걸 해주는 사람의 마음이 담기기 마련이고, 함께 먹던 사람의 추억과 기억이 스며들기 마련이다. 우리가 흔히 표현하는 '엄마의 손맛'이라는 말은 그 음식의 맛만을 얘기하는 게 아니다. 거기에는 엄마의 자식 생각하는 그 마음이 주는 푸근함과 따뜻함이 깃든 맛일 것이다.

 

<무한도전> 굳이 이틀 가까이나 되는 시간을 들여서 이역만리의 땅으로 날아가 '배달'을 하겠다고 했는지에 대한 의아함은 노모와 정준하 그리고 아들이 이어지는 장면을 통해서 거대한 '공감'으로 변모했다. 실로 편해진 세상이 아닌가. 이제 스마트폰만 켜면 지구 반대편에서도 얼굴을 보며 통화를 할 수 있는 세상이다.

 

그렇게 '글로컬(글로벌+로컬)'한 세상이지만 그래도 마음과 마음을 이어주는 것은 그런 문명의 이기들이 아니라는 것을 <무한도전>은 보여주었다. 엄마의 따뜻한 마음이 담긴 음식 한 끼에는 그래서 이 글로컬한 세상이 결코 쉽게 전하지 못하는 아날로그의 감동이 있었다. 나이가 들어도 이역만리 떨어진 곳에 있어도 늘 아들이 제대로 먹고 다니는지를 걱정하는 노모의 마음과 그 마음을 음식 한 끼를 통해서도 그대로 전해 받고 우는 아들. <무한도전> 정준하가 배달한 건 그저 음식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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