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케치북>이 보여준 음악이 가진 또 다른 역할, 위로

 

그들은 모두 검은 정장에 노란 리본을 달고 나와 노래를 불렀다. 관객의 박수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관객이 아예 없기 때문이었다. 악기 또한 피아노나 현악기 몇 개만을 사용했다. 자극보다는 편안한 위로와 진심을 담아내기 위함이었다. 화려함과 자극을 떼어내자 오롯이 가사 한 줄 한 줄이 새록새록 가슴에 와 닿았다. 세월호 참사로 인해 6주 만에 돌아온 <유희열의 스케치북>. ‘작은 위로라고 이름 붙여졌지만 그건 큰 감동이었다.

 

'유희열의 스케치북(사진출처:KBS)'

이러면 안 되지만 죽을 만큼 보고 싶다-” 절제된 피아노 연주로 시작해 반주 없이 시작된 김범수의 보고 싶다는 남다른 의미로 다가와 가슴을 울렸다. 김범수의 절절한 목소리에 집중된 노래는 가사가 주는 힘을 새삼 느끼게 만들었다. 어쿠스틱 버전으로 불려진 2NE1‘Come back home’ 역시 추모의 의미가 더해지자 깊은 슬픔으로 다가왔다. 무엇보다 해외 공연과 바쁜 일정 속에서도 위로가 되고 싶다며 한 달음에 달려온 2NE1의 그 진심이 느껴지는 무대였다.

 

꽃잎 흩날리던 늦봄의 밤 아직 남은 님의 향기 이제나 오시려나 나는 애만 태우네-’ 김윤아가 특유의 읊조리듯 절절한 목소리로 부르는 야상곡도 특별한 의미가 더해지자 그저 노래하는 것이 아니라 흐느끼는 것처럼 들렸다. 힘겨운 시간을 보냈던 동생을 위해 만든 노래라는 ‘Going home’ 역시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단지 내일의 일도 지금은 알 수가 없으니까 그저 너의 등을 감싸 안으며 다 잘될 거라고 말할 수밖에.’ 그 가사는 힘겨운 현실에 위로와 작은 축복을 기원하는 마음이 담겼다.

 

제이 레빗이 부른 조용필의 친구여는 먼저 간 그들을 향한 아련한 그리움을 담았다. 기타 선율과 멜로디언 위에 살짝 얹어진 노래는 한 소절 한 소절 부드럽게 스쳐 지나가며 마치 구름이 흘러가듯 헛되고 속절없는 삶의 무상함 속에 친구에 대한 그리움을 담담히 표현했다. ‘옛일 생각이 날 때마다 우리 잃어버린 정 찾아 친구여 꿈속에서 만날까 조용히 눈을 감네.’

 

2NE1그리워해요는 완전히 새로운 의미로 다가왔다. 그저 떠나간 사랑에 대한 그리움을 전하는 이 노래는 마치 떠나는 혹은 떠나간 이들이 서로에게 보내는 위로처럼 읽혔다. 윤종신, 조정치, 김동률 등 뮤지션들이 위로받는 가수 Kyo(이규호)가 부르는 영원한 길이나 뭉뚱그리다는 중성적인 이미지에서 나오는 나직한 미성으로 듣는 이들에게도 역시 위로를 전해 주었다. 피아노 한 대에 의지한 채 담담히 눈을 감고 부르는 제이레빗의 웃으며 넘길래나 김범수의 지나간다’. <유희열의 스케치북>은 음악이 가진 또 다른 역할과 힘을 보여주었다.

 

가수들 역시 자신들이 힘겨울 때 위로받았던 노래를 소개했다. 김윤아는 신디 로퍼의 ‘Two colors’를 김범수는 강산에의 넌 할 수 있어2NE1의 민지는 리차드 막스의 ‘Right Here Waiting’을 또 제이 레빗은 영화 <모던타임즈>의 수록곡인 ‘Smile’을 소개했다. 위로받았던 노래가 또 누군가에게 위로가 될 수 있다는 것. 특별히 말하지 않아도 그 자체로 마음과 마음을 이어주는 것. 그것이 노래의 또 다른 힘이 아닐까.

 

김범수는 작은 위로라는 주제의 프로그램에 기꺼이 참석한 이유에 대해 제가 지금 해야 될 일은 노래로 여러분들을 위로해야 되는 일이라고 말했다. 유희열은 약은 사람의 몸을 고칠 수 있지만 음악은 사람의 마음을 고칠 수 있어라고 했다는 루시드 폴의 말을 인용했다. 새삼 가사가 주는 메시지의 힘을 느낄 수 있었던 시간. 그 마지막은 가사 없이 피아노와 현악으로만 채워진 유희열의 추모곡 엄마의 바다로 채워졌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애도의 뜻을 담은 <유희열의 스케치북>작은 위로라는 타이틀을 붙이고 보여준 건 음악의 또 다른 힘이었다. 무려 6주 간이나 결방된 이 프로그램이 말해주는 것은 음악에 대한 막연한 편견이다. 음악은 흥을 돋우는 것만큼 한을 위로하는 기능도 갖고 있다. 추모와 애도의 뜻을 담은 작은 위로는 그래서 그 편견을 깨는 시간이기도 했다. 힘겨운 삶과 현실을 보듬어주는 것. 그것 또한 음악의 얼굴임을.

<슈스케4>는 우리에게 무엇을 보여줄까

 

올림픽만 시즌인가. 바야흐로 <슈퍼스타K4(이하 슈스케4)> 시즌이 시작됐다. 올해로 4회째. 1회가 국내 오디션 프로그램의 시작을 알렸다면, 2회는 대중적인 신드롬을 불러일으켰던 허각을 탄생시키면서 명실공히 대국민 오디션으로서의 바탕을 만들었고, 3회는 울랄라세션과 버스커버스커라는 개성강한 팀들을 배출하면서 본격적으로 <슈스케>출신 가수들의 활발한 가요계 활동을 볼 수 있었다. 그렇다면 <슈스케4>는 우리에게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

 

'슈퍼스타K4'(사진출처:Mnet)

혹자는 오디션 프로그램이 이제 거기서 거기라고 말한다. 그도 그럴 것이 <슈스케> 이후 너무 많은 오디션 프로그램들이 쏟아져 나왔고, 비슷비슷한 포맷으로 결국 전체가 식상해져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니 벌써 4회째를 맞이하는 <슈스케>에 대해서도 같은 의구심이 생기는 건 당연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슈스케4>의 첫 회를 보면 이런 의구심이 그저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 자료 속에는 포복절도의 웃음과 음악이 주는 감동, 그리고 참가자들의 눈물겨운 이야기들이 여전했다.

 

도대체 이런 화수분 같은 장면과 순간들은 어디서 비롯되는 것일까. 그것은 결국 이 국가대표급 오디션에 참여하는 참가자들에게서 나온다. 양이 질을 담보하듯이 그만큼 압도적인 숫자의 참가자들이 참여하기 때문에(총 지원자 수, 208만 3447명) 엄청난 스토리들과 독특한 개성과 음악성을 가진 예비가수들이 쏟아져 나오는 셈이다. 매년 형식을 반복한다고 해도 그 안에 참가자들의 면면이 다르기 때문에 완전히 다른 다양한 장면들이 가능하게 된다는 얘기다.

 

하지만 제 아무리 보석 같은 장면들이 쏟아져 나온다고 해도 그것이 얼마나 효과적으로 연출되느냐는 결국 이 오디션 프로그램의 관건이 된다. 그런 점에서 수많은 참가자들을 콘트롤하는 심사위원의 역할은 막중하다. <슈스케4>의 중심을 맡아주는 이승철과 더불어 ‘강남스타일’로 세계적인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싸이, 역시 힙합의 본고장 미국에서도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는 윤미래가 그 자리를 맡았다. 환상의 조합이다.

 

이승철은 베테랑답게 참가자의 음악성을 확인하는 동시에 이 프로그램의 재미와 감동적인 소재들까지 끄집어낸다. 첫 회에서도 이승철의 역량은 역시 빛났다. 안 되는 가창력으로 혼신의 힘을 다해 노래를 부른 한 감동적인 사연을 전한 참가자의 노래를 들은 이승철은 “음치의 노래를 듣고 감동하긴 처음”이라고 살짝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제 아무리 감동적인 사연의 참가자라고 해도 <슈스케4>는 역시 실력이다. 실력이 없다면 가차 없이 불합격을 주는 오디션. 그만큼 프로그램을 살려주는 감동적인 사연, 재미와 더불어 오디션 프로그램 본연의 공정성에 기반한 균형감각을 잃지 않는 것이 <슈스케4>만의 매력이다. 실제로 이번 오디션에 유독 많은 진한 감동을 선사한 무수한 이들이 심사위원들을 감동하게 하고는 불합격 되었다.

 

이런 점은 <슈스케4>가 왜 굳이 ‘국민 오디션’을 주창하고 있는지를 확인하게 해준다. <슈스케4>의 형태는 아직도 열기가 가시지 않은 올림픽을 그대로 빼닮았다. 올림픽이 주는 경쟁과 대결, 그리고 그 참가 선수들이 전해주는 감동적인 사연의 조화와 균형이 <슈스케4>에서 발견되기 때문이다. 마치 올림픽에서 1등을 한 선수만이 주목받는 것이 아니라 저마다의 사연을 가진 많은 참가자들 그 자체가 진한 감동을 주는 것처럼, <슈스케4>는 참가자들을 통해 국민들의 사연과 정서들을 담아낸 흔적이 역력하다. 노래를 통해 벌어지는 대국민 공감대인 셈이다.

 

과연 <슈스케4>는 스스로 주창한 ‘국민오디션’에 걸맞는 공감과 감동을 전해줄 것인가. 모쪼록 노래실력과 상관없이 저마다 독특한 끼를 발산하는 참가자들을 통해 포복절도의 웃음을, 또 노래는 못해도 절절한 사연을 전하는 참가자들을 통해 감동의 눈물을, 무엇보다 우리를 빠져들게 만드는 노래 그 자체가 주는 전율을 전해주기를. 올림픽 시즌의 끝에서 이제 <슈스케4> 시즌이 열렸다.

<나가수2>의 추락, MBC에 시사하는 것

 

<나가수2>는 새로운 가수를 오디션으로 뽑겠다는 이른바 ‘새 가수 선발전’으로 또 논란을 겪었다. 9월의 새 가수를 뽑기 위해 정규앨범 및 싱글을 한 장 이상 발매한 가수를 대상으로 오디션을 보겠다는 것. 이미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는 가수들에게서 볼 멘 소리가 나올 법 하다. 이것은 사실상 <나가수>의 무대를 이제 어느 누구에게나 오픈하겠다는 얘기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나가수'(사진출처:MBC)

섭외가 어려워 선택한 고육책이라는 추측들이 나왔지만 여기에 대해서 김영희 PD는 기자간담회를 통해 “의도와 달리 잘못 해석된 부분”이라고 일축했다. 오히려 <나가수2>에 출연하려는 너무 많은 가수들이 있기 때문에 그들에게 이 무대에 한 번이라도 설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려 했다는 것이 ‘새 가수 선발전’의 진짜 의도라고 했다. 김영희 PD는 이미 9월에 들어올 가수 두 명 중 한 명과 10월에 들어올 가수들도 섭외가 끝난 상태라 ‘새 가수 선발전’은 1회성 이벤트에 그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다지 인지도가 없는 가수가 오디션을 통과해 <나가수> 무대에 오르게 되면 기존 가수들이 갖고 있는 권위는 사라질 수밖에 없다. 여기서 그 가수가 1등이라도 해버리면 더 곤혹스러워진다. 노래에서 순위라는 게 뭐 그리 변별력이 있을 것인가 하겠지만 당하는 입장에서는 그 순위에 일희일비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건 가수들의 얘기다. 가수들은 반발할 수 있다. 그런데 이상하다. 왜 대중들 역시 <나가수2>의 이 선택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 걸까. 이것은 대중들이 원하던 것이 아니었던가. 말 그대로 계급장 떼고 대중들을 감동시킬 수 있는 실력 있는 이들이 그 무대에 오르는 것.

 

<나가수2>가 시작됐을 때 대중들이 비판한 것은 그 무대가 지나치게 신격화되는 것이었다. ‘신들의 무대’니 ‘신들의 축제’니 하면서 특정한 자격을 갖춘 이들만이 그 무대에 오를 수 있다고 선을 긋고 특권의식을 부여하는 행위가 어딘지 현재의 대중정서와 맞지 않아 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종종 <불후의 명곡2>와 비교하면서 위 아래 구분 없이 누구나 원하면 열려있는 그런 무대를 요구하기도 했다. 그래서 투입된 가수들이 국카스텐이고 소향이다. 실제로 이들에 대한 반응은 뜨거웠다. 이들은 등장하자마자 쟁쟁한 가수들을 물리치고 1위에 올랐다.

 

사실 이미 국카스텐과 소향이 <나가수2> 무대에 오르면서부터 이 무대가 가진 특권의식은 벗어던진 것이나 마찬가지다. 무대가 반복되면서 대중들의 관심은 이렇게 어딘지 새로운 가수들에게만 집중되었다. 김건모나 이영현, 박상민, 김연우 같은 가수들이 노래 잘 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여러 번 반복 출연하면서 다소 참신함이 떨어지게 된 것도 사실이다. <나가수2>가 어려운 것은 매회 새로운 느낌이 부족하다는 것인데, 이것은 새로운 가수가 너무 적고 같은 가수들은 너무 많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다.

 

<나가수2>가 이 식상해지는 패턴을 벗어나려면 결국 참신한 새 가수들이 더 많아져야 한다. 현재처럼 ‘고인 물’의 인상을 준다면 연말에 벌어질 ‘올해의 가수전’은 찻잔 속의 폭풍에 머물 수도 있다. <나가수2>는 확실히 너무 닫혀 있다. 열린 구조가 아니라면 진정한 가왕의 의미가 퇴색될 수 있다는 얘기다. 이것은 결국 현재 <나가수2>에 살아남아 있는 가수들에게도 좋은 것이 아니다. 이것을 위해서는 더 과감하게 <나가수> 무대가 가졌던 그 특유의 권위의식이나 메리트 같은 것은 버리는 편이 낫다. 이미 그들끼리만 ‘신들의 무대’가 되어버린 <나가수2>가 대중들과 함께 호흡하면서 진정한 ‘신들의 무대’로 부활하려면 그들도 신들의 권위를 버리고 대중들의 눈높이로 내려와야 한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새 가수 선발전’이라는 카드에 대한 대중들의 반응이다. 권위를 내려놓겠다는 선언과도 같은 이 카드에 대해서 대중들은 그렇게 되면 “아무나 오를 수 있는 무대”가 되어버린다는 우려 섞인 비판을 쏟아냈다. 이것은 <나가수> 무대에 대한 대중들의 이중적 시선이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나가수1>이 보여주었던 그 ‘신들의 무대’에 대한 강한 여운이 남아있는 반면, 이제 ‘신들의 무대’가 되지 못하는 <나가수2>에 대한 변화에 대한 욕구도 있다는 얘기다. 도대체 어느 장단에 맞춰 춤을 춰야 할 것인가.

 

물론 그 내용들이 이중적이라고 하더라도 비판이나 요구는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나가수>에 대한 비판들은 이제 뭘 해도 나오는 그런 상황인 것 같다. 어쩌다 <나가수>가 이런 지경에까지 이르렀을까. 김영희 PD는 <나가수2>의 시청률이 낮은 것에 대해 “파업의 여파”로 떨어지게 된 완성도와 서바이벌 프로그램 전반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이 낮아진 것을 이유로 들었다. 정확한 지적이다. 하지만 그것뿐일까.

 

가장 큰 것은 MBC라는 방송사 자체에 대한 대중정서가 좋지 못하다는 점이 아닐까. MBC는 사실 최근 들어 뭘 해도 욕을 먹는 방송사가 되었다. 올림픽 방송에 잇따라 쏟아져 나온 논란들은 대중정서가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가를 잘 말해준다. 이것은 프로그램에도 그대로 영향을 주기 마련이다. 제 아무리 좋게 잘 만든 프로그램이라고 해도 정서적으로 좋게 보이지 않으면 정반대의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물론 <나가수2>는 김영희 PD의 말대로 파업 여파 때문에 완성도가 떨어졌고, 그 후에 프로그램 운용에 있어서도 원활하지 못했던 점이 있다.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MBC에 대한 대중들의 생각이 예전 같지 못하다는 점이다. 이게 바뀌지 않는 한, <나가수2>가 어떤 포맷의 변화를 시도한다고 해도 대중들에게 받아들여지기보다는 논란과 비판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더 높다. 프로그램의 실수는 있을 수 있고 또 고치면 되는 것이지만, 방송사에 대한 이미지는 좀체 바뀌기가 어렵다.

 

그런 의미에서 <나가수2>의 문제는 어쩌면 MBC가 처한 진짜 중대한 문제를 보여주는 것일 수 있다. <무한도전>이 MBC에 있다는 것이 더 이상 자랑거리가 아니라 불쌍하다고 여기는 작금의 대중정서. 이것이 바뀌지 않는다면 백약이 무효일 수 있다. 질을 떠나서 그 어떤 프로그램이든 지지받지 못하는 방송사가 과연 방송사로서의 기능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오디션, 순위 집착보다는 음악 그 자체

 

버스커 버스커가 <슈퍼스타K3>에 처음 모습을 드러냈을 때만 해도 이 순수한 밴드가 우리네 가요계에 이 정도의 신드롬을 만들어낼 수 있을 지 그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밴드는 오디션 프로그램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으니까. 그들의 음악은 절대 고음으로 듣는 이를 소름 돋게 하는 가창력이나, 누군가를 눈물 흘리게 만드는 절절함과는 거리가 있었다. 심사위원들조차 버스커 버스커의 단점으로 고음이 안 된다는 점을 지목했고, 음악이 반복적이라며 비판하기도 했다. 결국 버스커 버스커는 톱10에 들어가지도 못했다.

 

'버스커버스커'(사진출처:Mnet)

하지만 예리 밴드 사건이 터진 후, 다시 새로운 경쟁자를 뽑는 과정에서 버스커 버스커는 톱10에 합류하게 되었고, 그 후로 점점 그 특유의 감성으로 대중들을 중독시켰다. 버스커 버스커의 리더 장범준의 고음이 안되는 보컬을 비판했던 윤종신은 그것과 상관없이 그만의 독특한 매력이 있다는 것을 인정했다. <슈퍼스타K> 같은 오디션 프로그램과는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그들의 음악은 바로 그 점 때문에 초반 비판받았지만 결국 또 그것 때문에 호평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버스커 버스커는 경쟁과 상관없이 독자적인 자기만의 색깔을 음악을 통해 들려주었다. 그들은 결국 최종 결선에까지 오르는 놀라운 결과를 만들어냈다.

 

이 <슈퍼스타K3>에서 버스커 버스커가 일으킨 변화는 그들이 첫 앨범을 발표하면서 가요계 전체에까지 퍼져나갔다. 봄바람이 산들산들 불어오는 계절에 그들의 '벚꽃엔딩'은 마치 공기처럼 우리의 귀와 온 몸에 스며들었다. 어딘지 순수하면서도 마음에 와닿는 가사와 그저 읊조리는 듯한 목소리, 감성을 자극하는 멜로디, 어쿠스틱한 사운드는 그간 가요계에서 잊고 있던 '진짜 음악'을 떠올리게 했다. 과거 송골매나 산울림을 통해 들었던 마치 비틀스적인 음악 자체의 매력을.

 

각종 오디션 프로그램들이 난무하면서 치달았던 가창력 대결에 피곤을 느낀 대중들은 이 음악 자체를 즐길 수 있고 빠져들 수 있으며 때론 쉴 수 있게 해주는 버스커 버스커를 통해 음악적인 휴식을 가질 수 있었다. K팝으로 시끄러운 한류 바람이 보여준 현란한 시각적 충격과 오디션 프로그램들이 보여준 극한의 목청 대결에서 잠시 벗어나 '이것이 진짜 음악이야'라고 말하는 듯, 그들의 음악은 마치 오랜 겨울을 겪고 있는 가요계에 청춘(靑春)의 설렘을 더해주었다.

 

쉬운 노랫말, 과감하면서도 귀에 쏙쏙 박히는 멜로디, 청춘이라는 주제, 신구세대가 모두 공감할 수 있는 아날로그 감성, 무엇보다 만들어진 느낌이 아니라 즐긴 듯한 느낌의 음악. 버스커 버스커가 보여준 것은 그간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이들로서의 가수들이 점점 포화상태가 되어버린 가요계에 대중들이 얼마나 아티스트로서의 가수를 희구해왔는가 하는 사실이었다.

 

"존 레논이 노래를 잘 하나요?" <승승장구>에 출연한 이승철은 가수의 가창력에 대해서 이렇게 반문한 적이 있다. 가수의 자질은 가창력으로만 판가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 버스커 버스커는 가창력만이 아니라 자신들의 개성 넘치는 음악이 얼마나 대중들의 마음을 뒤흔들 수 있는가 하는 것을 잘 보여주었다. 한바탕 봄날을 놀고는 잠시 활동 중단에 들어간 버스커 버스커. 그들은 가을이든 겨울이든 다시 돌아와 또 그 계절의 감성을 공기 속에 퍼트릴 것인가. 여전히 '벚꽃엔딩'을 들으면 그 벚꽃 날리던 2012년의 봄날을 떠올리게 되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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