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바스’와 ‘바람의 화원’의 초현실적인 연출력

“눈 뜨지 마세요. 자 어디선가 새소리가 들립니다. 졸졸졸졸 시냇물 소리도 들립니다. 나뭇가지 사이를 파고드는 따스한 햇살도 느껴집니다. 다람쥐가 지나가는 바스락 소리도 들리고 바람도 살랑살랑 불어옵니다. 그 바람에 섞여서 상쾌한 풀잎 향기도 느껴집니다.” 강마에(김명민)의 말소리에 귀 기울이며 눈을 감은 단원들의 모습이 비춰지고 살짝 살짝 파란 하늘과 하얀 구름, 그리고 거길 지나가는 새 한 마리가 보이더니 단원들은 어느새 평원에 앉아있다. 이어 들리는 강마에의 목소리. “느껴지세요. 여기는 사람의 때가 묻지 않은 새로운 세계입니다. 넬라 판타지아의 세계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보이지 않는 소리를 보이게 하는 연출
MBC 수목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에 등장하는 이 초현실적인 장면은 클래식 연주와 연주자의 느낌이라는 영상으로는 표현하기 곤란한 시퀀스를 잘 표현하고 있다. 강마에식으로 표현하면 사실 “박자 맞추고 음 안 놓치고 그런 건” 중요한 게 아니다. 그건 혼자 죽어라 연습하면 다 되니까. 중요한 건 관객에게 무얼 전달하려 하느냐는 그 마음, 그 느낌이다. 대사로 전달하면 통상적인 말에 끝났을 이 시퀀스는 그러나 이 초현실적인 장면으로 연출되면서 생생함과 함께 깊은 감동을 주게된다.

이제 곧 귀가 먹게될 두루미에게 그 절망적인 상황을 인지하게 하려고 강마에가 물 속으로 들어가 보라고 종용하는 장면에서도 이러한 연출력은 돋보인다. 그 아무 것도 들리지 않는 암흑 속의 절망감을 표현하기 위해 카메라는 물 속에서 연주하는 연주자들을 그려냈다. 연주광경은 있으나 소리가 들리지 않는 그 장면은 고스란히 두루미가 겪게될 상황을 감각적으로 전해준다. ‘베토벤 바이러스’의 이러한 연출은 소리가 주는 절망감과 환희를 영상으로 표현하려는 욕구에서 비롯된다.

이것은 강마에가 어떻게 지휘자의 길로 들어섰는가에 대한 에피소드에서도 등장한다. 가난했던 강마에가 병져 누운 어머니에다 수재까지 겪으며 절망해 자살하려 했던 그 순간, 그의 귀를 괴롭히던 어머니의 가래 끓는 소리 속에서 합창 교향곡으로 연결되는 장면이 그렇다. 여기서 어린 강마에가 현재의 강마에를 조우하는 초현실적인 장면이 연출된다. 여기서 지옥 같던 소리는 아름다운 합창교향곡으로 구원받는다.

그림 속에 박제된 시간을 살리는 연출
한편 SBS 수목드라마 ‘바람의 화원’에서는 오랜 세월이 지나온 그림 한 장 속에 잠들어있는 이야기를 깨어내기 위해 초현실적인 연출을 활용한다. 그림이 꿈틀꿈틀 살아 움직이며 실사로 변하거나, 실사가 화원의 붓끝에 의해 그림으로 변하는 식이다. 신윤복의 ‘기다림’이라는 그림은 정순왕후가 나무 곁에 서서 잠깐 동안의 여유를 즐기는 모습을 크로키처럼 빠르게 신윤복(문근영)이 그리는 장면으로 연출된다. 여기서 실사는 그대로 붓끝의 질감으로 서서히 변하면서 그림으로 나타난다.

이런 장면이 가장 뛰어나게 연출된 것은 김홍도의 ‘군선도’에 있어서다. 먼저 저잣거리를 돌아다니는 신윤복과 김홍도(박신양)의 눈에 다양한 인물군들이 포착되는 장면들이 연출되고, 이어서 김홍도가 그림을 그리는 장면에서 그림 속의 인물이 그 저잣거리의 인물들과 오버랩된다. 이러한 연출은 지금 현재 박제로 남아있는 그림을 살아있게 만드는 동시에 김홍도가 가지고 있는 그림의 철학을 엿보게도 해준다. ‘군선도’를 그리며 “보이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 것을 그리는 것”이라는 말은 저잣거리의 인물들을 통해서도 신선을 볼 수 있다는 말과 다름 아니다.

또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는 신윤복의 그림, ‘단오풍정’은 단오에 계곡에 모여 머리를 감고 그네를 타는 여인네들을 드라마 속 에피소드로 풀어냄으로서 정지된 그림 속의 이야기를 눈앞에 생생히 보여준다. 기생 정향(문채원)과 신윤복이 함께 그네를 뛰면서 그 부서지는 풍광들 속에 계곡의 여인네들이 하나하나 그림의 부분으로 바뀌는 장면은 이 드라마가 가진 연출미학의 백미라 할 수 있다.

두 드라마가 예술을 다루고 있기 때문일까. ‘베토벤 바이러스’와 ‘바람의 화원’은 영상미학에 있어서도 뛰어난 면모를 보이고 있다. 보이지 않는 소리를 보이게 하고, 오랜 시간 동안 화폭 속에 박제된 시간을 열어 그림을 꿈틀대게 만드는 초현실적인 연출의 힘은, 그저 보여지는 영상 그 이상의 것을 전달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드라마인지 꿈인지 착각될 정도의 영상 연출은 우리로 하여금 시각에만 매몰되어 있던 영상을 상상력의 세계로 넓혀나가게 해준다. 그리고 그것은 어떤 면에서는 바로 음악과 미술 같은 예술 자체가 지향하는 것이기도 하다.

귀로 보는 영화 ‘원스’

“때론 ‘음악’이 ‘말’보다 더 큰 감동을 전할 수 있다.”
지난 9월 10개관으로 개봉했던 ‘원스’는 13주차가 되면서 20개관으로 확대 개봉되었고 20만 명의 흥행에 육박하고 있다. 제작비가 1억4천만 원에 불과한 독립영화로 보면 이 영화의 흥행은, 더 많은 물량이 투여되는 기획영화들이 거둔 약 500만 명의 흥행에 버금가는 성공을 이룬 셈이다. 그 성공의 이유는 바로 존 카니 감독의 말과 다르지 않다. ‘원스’는 음악이 우리 인생에 주는 최고의 선물들을, 그 순간들을 86분 짜리 영상에 담아 전하는 음악에 관한, 음악에 의한, 음악의 영화다.

음악의 기적1. 노래의 진심이 다른 마음에 닿는 순간
사람의 마음을 다른 사람의 마음 속에 전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도 잘 아는 사람도 아닌 불특정 다수를 향해 전하는 마음이라면 더욱 그렇다. 그러니 그 마음이 노래를 통해 전달되는 그 순간은 음악이 기적을 만드는 지점이다. ‘원스’는 바로 거기서부터 시작한다. 길거리에서 노래하는 남자는 자신의 상처 입은 마음을 절규하듯 노래한다. 노래란 본디 상처를 어루만지는 자기 위안과 같은 것이기도 하니까. 그러니 그 노래는 누군가를 위해 하는 것이 아닌 자신을 위한 것이 된다. 그런데 혼자 마음을 다독이던 그 순간, 그 마음의 노래를 알아듣는 사람이 나타난다. 이것은 음악이 우리에게 전하는 기적적인 순간이면서 우리네 인생에서 누구나 맞닥뜨리게 되는 사랑의 메타포이기도 하다.(OST. Say it to Me Now)

음악의 기적2. 음악이 서로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순간
그렇게 만난 그들은 한 악기점에서 피아노와 기타 선율 속에 노래를 담아 서로의 마음을 어루만진다. 길거리에서 기타 하나 들고 절규하는 가난한 남자와, 피아노가 없어 맘씨 좋은 악기점에 잠깐 들러 피아노로 마음을 위안하던 가난한 여자는 아무런 설명 없이도 음악만으로 서로를 이해하게 된다. 그것은 고단한 삶 속에서 그 고단함을 버티게 해주는 것이 다름 아닌 음악이며 악기라는 공감대 때문이다. 가사의 내용을 음미하지 않아도 서로의 목소리와 악기의 선율이 하나로 어우러지는 영화 속 장면은 감동적이다. 그 노래와 연주가 서로의 상처를 쓰다듬기 때문이다. 이 기적적인 순간은 음악이 아니라면 영화 한 편을 통해서도 설명되기 어려운 장면이 아닐까. 눈이 아닌 귀로 보는 영화이기에 가능한 것이 아닐까. (OST. Falling slowly)

음악의 기적3. 음악으로 마음을 전하다
남자가 여자에게 자신이 만든 곡을 주고 여자가 거기에 가사를 붙이는 이 시퀀스는 이 영화의 백미다. 누군가에게 자신의 곡을 내준다는 것은 어쩌면 대단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것이 되지만, 영화 속 남자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곡을 건넨다. 자신은 도저히 가사를 붙일 수 없을 것 같다며. 하루가 끝나고 다들 잠든 시간에 어두운 불빛에 의지해, 남자가 주고 간 CD플레이어를 들으며 여자는 곡에 가사를 붙인다. 그리고 CD플레이어에 소모된 건전지를 다시 사기 위해 딸의 소중한 저금통을 털고 파자마 차림으로 가게를 찾는 장면은, 그녀의 남편에 대한 마음과 그 마음을 담는 것을 허락한 남자가 주고간 곡에 대한 애정이 담겨 있다. (OST. If you want me)

음악의 기적4. 함께 노래하다
남자와 여자가 길거리의 음악가들을 모아 녹음실을 빌려 노래를 CD에 담는 장면은 이제 둘 사이에 흐르는 공감대와 사랑의 노래를 이제 세상을 향해 들려주겠다는 실천의 의미를 담고 있다. 시큰둥하던 엔지니어의 귀를 활짝 열게 만들고, 시간이 돈인 녹음실에서의 밤샘 작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만드는 그들의 음악은, 영화 속을 빠져나와 현실에 선 관객들의 마음마저 움직이게 한다. 밤샘 끝에 남자와 여자의 손에 쥐어진 CD는 몇 개에 불과하지만 그 CD에 담겨진 노래는 그들이 함께 노래했던 기적 같은 순간들과 마음들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그 어느 것에도 비교될 수 없는 가치를 지닌다. 이로써 그들은 서로 헤어지지만 영원히 음악 속에서 하나가 된다. 이미 마음이 정해졌다면 어쩔 수 없겠지만 언제든 부르면 달려갈 것이라 노래하는 남자처럼. (OST. When Your Mind's Made Up)

현실 속에서 음악이란 때론 모든 사람들에게 공평한 어떤 것이다. 그것은 가난한 사람이라도, 마음에 깊은 상처를 입은 사람이라도 찾으면 그 마음을 보듬어주는 우리네 삶의 치유제가 되기도 한다. 그러니 돈도 아니고, 화려한 영상도 아니며, 놀라운 스토리도 아닌 이 영화가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다름 아닌 가난한 자들에게 더욱 공평한 음악에 기대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가난하지만 그들의 음악은 가난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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