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쩔 수가 없다’, 곰곰 생각하면 빵빵 터지는 박찬욱표 블랙코미디

어쩔 수가 없다

“다 죽여버려.” 재취업 면접에 나가는 남편 만수(이병헌)에게 미리(손예진)는 그렇게 말한다. 면접 경쟁 상대들을 이기라는 말이지만, 박찬욱 감독은 이 말을 실제 사건으로 만들어냄으로써 블랙코미디로 그려낸다. “다 이루었다” 생각했던 중년의 가장이 졸지에 정리해고되어 재취업 전쟁에 뛰어들게 되고, 도저히 그 문턱을 넘을 수 없다 생각 하자 엉뚱하게도 경쟁 상대를 제거하는 일에 뛰어들게 되는 것. 

 

이것은 <어쩔 수가 없다>라는 블랙코미디가 가진 웃음의 코드를 드러낸다. 그건 세상에 대한 풍자다. ‘다 죽여버려’ 같은 말이 이제 별 섬뜩함도 없이 일상적으로 사용되는 경쟁 사회에서 그걸 실제로 감행하는 인물을 통해 그 사회의 단면을 드러내고 이를 통해 쿡쿡 웃게 만드는 것이다. 제목이 ‘어쩔 수가 없다’인 이유도 그것이다. 흔히들 ‘어쩔 수가 없다’는 핑계로 저지르는 일들이(사실 누군가에게는 끔찍할 수 있는) 얼마나 많은가. 

 

역시 블랙코미디는 멀쩡하게 보였던(실제로는 아닌) 누군가가 망가져 가는 과정에서 빛이 난다. 만수는 ‘다 이루었다’고 말할 정도로 성공했고 행복하다 자부하는 가장이다. 교외의 아름다운 전원주택에서 아내와 두 아이 그리고 반려견이 바비큐 파티를 하며 행복하게 살아가는 그런 정경의 주인공이다. 하지만 25년 간 제지 전문가로 일해왔던 회사가 외국계 회사의 투자로 경영권이 바뀌면서 돌연 해고 통보를 받았다. 만수 가족의 행복은 조금씩 균열을 일으킨다.

 

‘모가지를 자른다’고 표현하는 해고가 실제 누군가의 목을 날려버리는(죽이는) 사건으로 벌어지고, “당신이 사라져야 내가 살아” 같은 대사가 실제로 경쟁자에게 총구를 들이대는 광경으로 펼쳐진다. 그래서 취업 전쟁 속에서 생존하기 위한 살벌한 싸움이 펼쳐지고, 여기서 누락된 자들의 처절한 죽음이 그려지는데, 이것이 모두 세태를 꼬집는 풍자적 은유를 담고 있어 잔혹한 장면에도 웃음이 난다.

 

하지만 박찬욱 감독의 야심은 단지 재취업 전쟁에서 싸우는 가장들의 경쟁에만 머물지 않는다. 종이를 생산하는 제지업이라는 산업이 기계화, 자동화 되면서 사람들의 일자리를 빼앗아 심지어 한 가정을 송두리째 파괴하는 일들이 벌어지지만, 동시에 그것은 인간이 자연에게 하는 짓과 똑같이 병치된다. 나무를 송두리째 잘라 내어 인간의 문명을 담고 쌓아온 것이 바로 종이를 만든 인간의 자연 파괴적 폭력이 아니던가. 

 

분재를 취미로 가진 만수가 억지로 나뭇가지의 방향을 뒤틀려다 부러뜨리는 것처럼, 그가 취업 전쟁 속에서 경쟁자들을 제거하기 위해 벌이는 짓은 나무에게 행하는 폭력을 그대로 닮아있다. 차마 사체를 잘라내지 못하는(모가지를 못 자르는) 그는 사체를 분재하듯 뒤틀어 틀을 만들어 놓고 나무를 심듯 땅에 묻는다. 그리고 그 위에 마치 내일 세상이 망해도 자신은 희망을 버리지 않겠다는 위선으로 사과나무를 심는다. 

 

나무나 식물을 자르고, 뽑고, 심는 이미지는 그래서 고스란히 인간의 행위들과 유사한 이미지로 겹쳐진다. 그가 어떻게든 들어가려는 회사의 이름이 ‘문 제지(창업자의 성이 문이다)’인 것은 그래서 이러한 제지 공정을 거쳐 아름다운 예술의 경지로 나오는 종이가 사실은 살벌한 폭력에 기반하고 있다는 ‘문제’라는 걸 드러낸다. 

 

돈이 필요해 사고를 치는 아들이 종이로 말아놓은 담배를 피우고, 첼로에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딸이 나무로 만든 악기와 종이로 만든 악보로 아름다운 음악을 들려주는 건, 이러한 인간이 이룩한 문명의 기반이 어디에서 나오는가를 풍자적으로 담아낸다. 문명이라는 이름으로 처해진 폭력은 저 <포카혼타스>라는 작품에서 아메라카 원주민 포카혼타스와 백인 개척자 존 스미스의 미화된 판타지로 그려진 바 있는데 박찬욱 감독은 이 위선을 가장무도회에 참여하는 만수의 미리의 이야기로 꼬집기도 한다. 

 

심지어 누군가를 죽여가면서도 “어쩔 수가 없다”고 변명하듯 말하는 만수의 모습은 그래서 재취업 경쟁에 뛰어든 가장의 서사를 넘어, 문명이라는 이름으로 폭력을 자행해온 인간의 보편적인 서사로 확장된다. 영화의 엔딩은 이를 영상 이미지로 담아낸다. 갖가지 우악스런 기계에 의해 마구 잘려지는 나무들, 그 나무들로 공장에서 말끔하게 만들어지는 종이들, 그리고 그 종이 위에 그려진 음표들로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음악들. 문명과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그렇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다’며 해온 인간의 폭력이라는 걸 이만큼 영상적으로 압축해 담아낼 수가 있을까.  

 

문명을 비판하고 풍자하는 작품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영화는 음악이 압도적인 작품이다.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3번으로 장중하게 시작한 작품은 조용필의 ‘고추잠자리’와 김창완의 ‘그래 걷자’에서 폭발적인 에너지를 만들어내고, 아름다운 첼로 연주로 소동극의 코미디 끝에 깊은 여운을 담는 처연한 엔딩을 만든다. 영상만큼 뛰어난 음악의 결을 제대로 느끼기 위해 극장에 가야할 이유가 있는 작품이다. 

 

최근 들어 박찬욱 감독의 이야기는 훨씬 더 일상 세계 속으로 들어온 느낌이다. 그래서 <헤어질 결심>에서부터 이번 작품 <어쩔 수가 없다>를 통해 박찬욱 감독 특유의 영상미학이 우리의 일상을 보다 특별하게 바라볼 수 있게 해주는 짜릿함을 주고 있다. 한 번 봤지만 또 보고 싶은 영상미학과 그 안에 담겨진 풍자적 코미디들이 가득한 작품이다. 결코 그 야심찬 기획을 안 보고는 넘어갈 수가 없는. (사진:영화'어쩔 수가 없다')

“네 덕에 나도 많이 배운다.” 김형주 ‘승부’

승부

늘 이기기만 하던 세계 최고의 국수 조훈현(이병헌). 그가 호랑이 새끼를 키웠다. 어린 나이에 벌써부터 기재를 보이는 이창호(김강훈, 유아인)를 거둬 제자로 키운 것. 문제는 너무나 뛰어난 기재를 갖고 있어 제자의 성장이 순식간에 이뤄졌다는 것이고, 그래서 제자를 키운 스승이 도전을 받는 상황을 맞게 됐다는 것이다. 영화 ‘승부’는 바로 이 조훈현과 이창호의 드라마틱한 사제대결을 통해 진정한 승부의 세계가 무엇인가를 그린 작품이다. 

 

사실 영화는 실화 자체가 가진 힘에 상당부분 기대고 있다. 조훈현에게 배웠지만 결국 자기만의 스타일을 찾아내 스승을 이겨버린 이창호의 등장은 당시 바둑계에 충격 그 자체였다. 1990년 벌어진 최고위전을 시작으로 이창호는 스승의 타이틀을 하나하나 빼앗았고 조훈현의 시대는 저무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절치부심해 연구에 연구를 거듭한 조훈현 9단은 91년 이창호와 치러진 대국에서 명승부를 펼치며 이기는 모습을 보여줬다. 

 

바둑에 대한 영화지만, 바둑을 몰라도 될 정도로, 사제지간이라 남다를 수밖에 없는 승부에 집중한다. 이긴 제자는 마음껏 즐거워하지 못하고, 진 스승은 좌절하면서도 그런 제자를 안타까워한다. 하지만 “네 덕에 나도 많이 배운다”며 자신 역시 “언제든 질 수 있는 사람”이라고 인정하는 조훈현은 제자에게조차 배울 수 있다는 ‘패자의 품격’을 보여준다. 그는 “창호가 그랬듯이 이제 제가 창호한테 도전하겠다”고 말하는 스승이자 패자다. ‘제자는 스승을 이기는 것만이 참된 보답’이라고 조훈현은 늘 말했다고 한다. 조훈현은 승자도 언젠가는 패자가 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중요한 건 패자가 됐을 때 보여주는 품격이다. 불복을 모르는 우리의 현 정치가 한 수 배워야할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글:동아일보, 사진:영화 '승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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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징어 게임2

“넌 그 비행기를 탔어야 했어. 네 선택을 후회하게 될 거야.”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게임2’는 프론트맨(이병헌)이 기훈(이정재)에게 하는 경고로 문을 연다. 그건 ‘선택’에 대한 경고다. 시즌1 엔딩에서 미국으로 가려던 기훈(정재)은 발길을 돌리며 프론트맨(이병헌)에게 전화로 선전포고한 바 있다. “난 말이 아니야. 사람이야. 그래서 궁금해. 너희들이 누군지. 어떻게 사람에게 이런 짓을 할 수 있는지. 그래서 난 용서가 안돼. 너희들이 하는 짓이.” 만일 기훈이 그대로 비행기를 탔다면 어땠을까.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고 저들이 원하는대로 세상은 흘러갔을 게다. 하지만 발길을 되돌린 그는 저들과 맞서려 하고 이 잔혹한 게임을 끝장내려 한다. 프론트맨의 경고와 기훈의 선전포고. 시즌2는 이 두 흐름의 부딪침을 그리고 있다. 

 

그런데 시즌2에서 저들의 실체에 접근하기 위해 딱지남을 찾는 기훈이 사채업자들을 움직이는 광경은 저 ‘오징어 게임’의 방식들을 연상시킨다. 무려 2년 간이나 지하철 곳곳을 수색해온 사채업자들은 회의감을 느끼지만 기훈이 성공보수 10억을 내걸자 눈빛이 달라진다. 눈앞에 놓인 돈을 향해 달려가는 사람들. 이건 자본의 전형적인 작동 방식이다. 그렇게 드디어 찾아낸 딱지남은 게임에 미친 인물로 노숙자들에게 다가가 빵과 복권을 내밀며 선택하라고 한다. 당장 먹을 수 있는 빵을 선택하는 게 합리적이지만 대부분은 복권을 선택한다. 빵을 선택하면 모두가 나눠먹을 수 있는데도 왜 사람들은 극히 확률이 낮은 복권을 선택할까. 거기에는 더 많은 돈을 버는 것이 당연한 가치로 추구되는 자본의 방식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오징어 게임’은 바로 그 자본의 방식을 게임이라는 틀을 통해 보여준다. 456명이 참여해 1인당 1억씩 배정된 목숨값을 사람들이 죽어나갈 때마다 적립해 최후의 1인이 456억을 독식하는 게임이다. 저 복권과 다를 바가 없다. 다만 이 게임은 그 욕망한 결과가 실패로 돌아올 때 죽음으로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이 달라보일 뿐이다. 그리고 이건 고도화된 자본화가 승자독식의 틀 안에서 운용될 때 실제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다. 몇몇은 엄청난 부를 거머쥐지만 그로 인해 무수한 이들이 길바닥으로 내몰려 죽어간다. 기훈이 공항에서 발길을 돌린 건, 자신이 우승상금으로 받은 456억이 저들의 목숨값이라는 걸 깨닫게 되면서다. 

 

‘오징어 게임’ 시즌1이 그래서 그 자본의 잔혹한 작동방식을 게임을 통해 알게 되는 이야기였다면, 시즌2는 그 게임과 맞서는 이야기다. 기훈은 말이 아닌 사람으로서 대항하려 한다. 그래서 다시 게임에 들어가려 하고, 저들이 원하는 방식대로 흘러가지 않게 하기 위해 사람들을 살려내고 또 설득하려 한다. 그저 놀이로 알았던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가 실제로 참가자들이 사살되는 게임이라는 걸 알고 있는 기훈은 그래서 죽을 위험까지 무릅쓰며 그들이 살 수 있는 길을 알려준다. 

 

시즌2에 새로이 도입된 룰은 매 게임 후 다음 게임을 계속 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두고 투표를 한다는 것이다. 투표에서 한 사람이라도 ‘X’가 더 나오면 게임은 중단되고 그간 적립된 돈을 살아남은 참가자들이 나눠갖고 나갈 수 있게 된다. 일방적으로 강요된 게임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한 게임이라는 걸 강조하는 이 룰은 그래서 이 게임을 멈출 수 있는 기회를 열어준다. 이 방식은 민주주의의 방식이다. 더 많은 이들의 자유로운 선택에 의해 그 공동체의 미래를 결정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민주주의의 방식은 저 비합리적이고 잔혹한 자본의 방식을 가진 게임 앞에 번번히 무력해진다. 참가자들은 나눠가질 돈이 너무 적다는 이유로 ‘한 판 더’ 게임을 하겠다는 ‘O’에 투표한다. 자신들이 희생될 수도 있다는 걸 망각한 채. 

 

게임을 멈추기 어렵게 만드는 또 하나는 프론트맨이 오영일이라는 이름으로 게임에 참가한다는 점이다. 오영일은 기훈의 조력자처럼 굴지만 사실은 그 안에서 이 게임을 계속 움직이게 하는 인물이다. 자본의 방식을 대변하는 프론트맨이 민주주의 방식으로 게임을 멈추려는 기훈 옆에 붙어 있는 이 설정은 그래서 민주주의 시스템 안으로도 깊숙이 들어와 있는 자본의 힘을 은유하는 것만 같다. 자본 앞에 민주주의라는 촛불은 연약하게만 보인다. 

 

과연 기훈은 프론트맨과의 대결에서 승리할 수 있을까. 자본의 무자비한 방식들을 민주주의는 극복해낼 수 있을까. 프론트맨과 기훈으로 대변되는 자본과 민주주의의 대결과 좌절을 그리는 ‘오징어 게임2’는 그래서 시즌3로 가는 빌드업이다. 그래서 좀더 시원시원한 결말 같은 걸 원했던 시청자들이라면 미진한 느낌을 줄 수 있다. 하지만 시즌1의 이야기에서 보다 확장된 세계로 나온 시즌2의 서사는 여전히 흥미롭고 대결의식은 더 팽팽해졌다. 특히 현 탄핵 정국에서 우리가 느끼는 민주적 절차에 대한 희망과 무력감을 떠올려본다면, ‘오징어 게임2’가 던지는 ‘선택’에 대한 질문은 특별하게 다가올 수 있을 게다. (글:중앙일보, 사진:넷플릭스)

강애심, ‘오징어 게임2’로 전 세계가 주목할 한국엄마의 아우라

오징어 게임2

“이러지들 마시고, 여러분, 여러분. 저 나도 그렇고 여러 선생님들도 그렇고 여기 이 선생님 덕분에 아직까지 목숨줄 붙어 있는 거예요. 다들 욕심 좀 그만 부리고 이 목숨 중한 줄 알고 다들 이제 여기서 나갑시다. 예?”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2’에서 아들 용식(양동근)의 빚을 갚겠다며 게임에 참가한 엄마 금자(강애심)는 사실 돈보다 목숨이 더 귀하다는 걸 아는 인물이다. 그저 돈을 벌어보겠다고 참가한 이들과는 사뭇 다르다. 

 

그럼에도 그녀가 이 게임에 들어온 건 아들 때문이다. 아들을 위해 아들이 진 빚을 어떻게든 대신 갚아보겠다며 게임에 들어온 것. 그런데 첫 번째 게임을 통해 이것이 목숨줄을 내놓고 하는 게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후 금자는 어떻게든 게임을 멈추고 나갈 궁리를 한다. 여기서도 그녀가 우선 생각하는 건 자신이 아니라 아들이다. 그녀에게서는 자신보다 자식 걱정이 우선이고 심지어 아들을 살릴 수 있다면 자신이 죽을 수 있는 상황도 마다치 않는, ‘한국 엄마’ 특유의 정서가 묻어난다. 

 

금자는 한국 엄마 특유의 친화력과 포용력도 가진 인물이다. 첫눈에 준희(조유리)가 아이를 임신했다는 걸 알아보고 다가가 언제든 필요하면 자신의 도움을 청하라고 말하고, 트랜스젠더인 현주(박성훈)에게도 “예쁘다고는 못하겠지만 괜찮다”고 말하며 마음을 여는 인물이다. 금자는 심지어 아들 용식이 ‘짝짓기 게임’에서 본인이 살기 급해 자신을 버리고 갔어도, 우리 아들은 그런 아들이 아니라고 역성을 드는 전형적인 한국 엄마다. 

 

시즌1에서 한국적인 정서를 가장 도드라지게 내면서 주목받았던 오일남(오영수)이 ‘깐부 할아버지’로 불렸던 것처럼, 시즌2는 이 금자라는 인물이 ‘한국 엄마’로 주목되는 면이 있다. 남다른 모성애를 가진 이 엄마는 타인들도 자식처럼 바라보며 안타까워하고 보듬으려는 그런 캐릭터다. 살벌한 오징어 게임 같은 경쟁적인 상황 속에서도 그나마 숨쉴 수 있는 따뜻한 온기를 부여하는 인물인 것이다. 

 

이처럼 ‘오징어 게임2’에는 그저 등장한 것처럼 보여도 잘 들여다보면 한국적인 정서가 묻어나는 캐릭터들이 적지 않다. 예를 들어 기훈의 직장 동료이자 오랜 친구이며 경마장에도 들락거렸던 정배(이서환)는 딱 봐도 정이 넘치는 한국의 절친의 모습이다. 혼자 심각해하는 기훈에게 옛 향수가 묻어나는 도시락을 숟가락으로 퍼서 먹으라고 하는 장면부터 나중에는 기훈과 함께 이 게임과 싸워나가는 과정까지 정배는 긴장과 이완을 적절히 해주는 친구 역할을 보여준다. 

 

해병대 출신임을 내세우지만 사실은 유약한 심성을 그것으로 숨기고 있는 대호(강하늘) 같은 인물도 한국인이어서 이해되는 ‘군부심’ 같은 것들을 드러내는 캐릭터다. 같은 해병대 출신이라며 “충성”을 외치는 이 인물은 군대가 의무인 한국적 상황을 잘 드러낸다. 이밖에도 명기(임시완)가 최근 한국에 불고 있는 유튜버 열풍을 대변한다면, 군인 출신이었다가 트랜스젠더를 선택한 현주도 최근 국내에서 이슈화된 성 정체성에 대한 선택문제를 떠올리게 하는 인물이다.

 

즉 ‘오징어 게임2’는 전 세계인들을 겨냥한 작품이지만, 공기놀이나 제기차기 같은 한국의 민속놀이를 소재로 넣는 것처럼 지극히 한국적인 정서를 담은 인물들을 배치해 넣었다. 그래서일까. 금자나 정배, 대호 같은 인물들이 도드라져 보이고 그 역할들을 찰떡 같이 소화해낸 강애심을 위시한 이서환, 강하늘도 글로벌 스타로 발돋움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것이 ‘오징어 게임2’가 만들어내고 있는 파급력이다. (사진: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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