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애에 이미연, 게다가 이승기까지 실패할 수 없는 섭외

 

나영석 PD의 섭외력은 실로 놀랍다. <꽃보다 할배>를 잇는 두 번째 배낭여행 프로젝트에 섭외된 여배우들이 윤여정, 김자옥, 김희애, 이미연이란다. 윤여정이나 김자옥이야 가끔 토크쇼 등에서 존재감을 보여줬던 여배우들이지만 김희애에 이미연이라니. 드라마에서 카리스마를 보여주던 여배우들이지만 거의 예능에 맨얼굴을 드러내지 않던 그들이 아닌가.

 

'나영석PD(사진출처:CJ E&M)'

나PD의 섭외력은 단지 섭외를 잘 한다는 그런 의미만이 아니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섭외된 이들에 대해 대중들이 갖는 기대감을 정확히 알고 있다는 점이고, 또한 이들의 조합이 주는 기대감 역시 꿰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이미 <꽃보다 할배>에서도 보여진 적이 있다. 배낭여행을 이순재, 신구, 박근형, 백일섭이 함께 떠난다는 사실은 그 명배우들의 면면만으로도 기대감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그들이 짧게 보여준 이른바 ‘일섭다방’에 대한 폭발적 반응은 사실상 본방 전에 이미 승부를 끝낸 것이나 마찬가지 결과를 가져왔다.

 

이것은 배낭여행 프로젝트 2탄으로 떠나는 여배우들도 마찬가지다. 윤여정이 누군가. ‘여배우’라고 하면 딱 떠오르는 얼굴이 아닌가. 김기영 감독에서부터 김수현, 인정옥, 노희경 작가, 최근에는 임상수 감독까지 페르소나로 여겼던 배우. 김수현 작가는 그녀 특유의 툭툭 끊어지는 대사와 독설에서 밉지 않은 중년여자 캐릭터를 발견해냈고, 노희경 작가는 그녀에 대해서 “막말조차 정이 묻어나는 위안이나 쓸쓸한 인생에 대한 정의”로 만들어버리는 배우라고 했다. 그 윤여정이 페르소나를 벗고 맨 얼굴을 드러낸다는 것.

 

김희애가 <내 남자의 여자>에서 보였던 독한 카리스마는 또 어떻고. 아마도 이 카리스마는 배낭여행을 통해 보여지는 새로운 면모와의 비교영상만으로도 큰 웃음을 선사할 수 있을 것이다. 또 “내가 조선의 국모다”를 외쳤던 <명성황후>의 이미연의 이미지 역시 예능에서의 보다 극적인 반전을 보여줄 것이라 여겨진다. 김자옥은 이 낯선 조합에 안정감을 주는 캐스팅이다. 이미 시트콤 등을 통해 편안한 웃음을 선사한 적이 있는 배우가 아닌가.

 

여기에 여배우들의 짐꾼으로 이서진의 바톤을 이어받는 이승기라는 좋은 느낌의 청년은 이미 <꽃보다 할배-디렉터스 컷>에 짧은 등장만으로도 엄청난 반응을 만들어냈다. ‘좋은 여행’을 떠날 것이라 생각하고 있는 이승기를 걱정하는 이서진의 모습은 그의 여배우들과의 여행이 그다지 순탄치만은 않을 것을 예고하면서 더 높은 기대감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나PD의 이러한 섭외력은 이서진의 섭외 비하인드 스토리에서 나왔던 것처럼 평상시에도 주의 깊게 관찰함으로써 원석에서 보석을 볼 수 있는 특유의 감각에서 나온다. 이미 예능에서 보석으로 드러난 인물들을 피하는 것도 그의 섭외의 한 방법이다. 제아무리 유명한 출연자 후보라고 해도 이미 너무 많이 방송을 통해 소비된 인물은 아무래도 대중들의 기대감이 적기 때문이다.

 

또한 지금껏 보지 못했던 낯선 조합을 만드는 것도 그의 섭외가 빛나는 이유 중 하나다. <꽃보다 할배>의 성공은 국민배우들을 배낭여행이라는 낯선 환경과 엮는 순간부터 이미 예고됐던 것이다. 우리나라의 여배우로서 한 존재감을 갖고 있는 이들이 떠나는 배낭여행은 국민배우들과는 또 얼마나 다른 재미를 선사할 것인가.

 

나PD의 섭외가 예능에 낯선 인물과 낯선 조합으로 꾸려지는 이유는 그가 연출하는 예능의 특징이 ‘발견의 예능’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많은 준비를 하기보다는 돌발적인 상황들을 현장에서 진두지휘하며 포착해내고 발전시킴으로써 지금껏 보지 못한 면들을 재발견하게 해주는 것. 본방 전에 이미 승부를 끝내는 섭외. 실로 그의 예능이 힘을 발휘하는 이유의 대부분은 여기서 비롯된다고 말할 수 있을 게다.

반인반수 영웅으로 재탄생된 이승기의 구미호

 

왜 <구가의 서>가 다루는 우리네 민초들의 영웅은 반인반수로 태어났을까. 이승기에 의해 재탄생된 구미호는 우리가 <전설의 고향>에서 보던 “서방님 하루만 더 참았어도...”하며 원망의 눈길을 보내던 그 구미호가 아니다. 우리네 전설에서 구미호라는 존재가 한이 내면화된 민초들의 억압에서 탄생한 존재라면, <구가의 서>의 반인반수 최강치(이승기)는 안으로 꼭꼭 숨겨두는 한보다는 겉으로 터져 나오는 분노에서 탄생한 존재다.

 

'구가의 서'(사진출처:MBC)

확실히 지금은 조선시대의 수동적인 구미호의 신파가 감흥을 잃은 시대다. 아마도 70년대 가부장적인 가족체계 내에서라면 이른바 고부갈등과 시집살이에 꾹꾹 눌려진 억압이 구미호의 신파적인 변신만으로도 눈물로 풀어져버렸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달라진 시대는 달라진 구미호를 요구한다. 최강치가 그려내는 구미호 이야기는 그래서 신파가 아니라 활극에 가깝고, 내면화된 욕망을 풀어내는 공포가 아니라 좀 더 겉으로 드러내는 판타지에 가깝다.

 

“다 죽여버릴거야!”라고 외치는 분노의 최강치는 그래서 그 최대의 적이 바로 자신이다. 물리적인 힘으로는 도무지 그 누구도 그를 이길 수 없지만, 바로 그런 엄청난 반수의 힘은 어느 쪽으로 사용되느냐에 따라 그 결과가 달라진다. 마치 핵을 가지고도 누가 사용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듯이, 최강치는 지금 왜구의 침략에 대비하여 거북선을 만들려는 전라좌수사 이순신(유동근)과 백년객관을 빼앗고 왜구들과도 결탁해 무언가를 꾸미고 있는 희대의 간웅 조관웅(이성재) 사이에서 줄다리기가 되고 있는 존재다.

 

조선시대의 구미호 전설을 재해석하고 있지만 <구가의 서>는 그래서 무수한 현대의 영웅담과 판타지물의 흔적들이 들어있다. 분노하면 반수로 변신해 자신도 모르게 모든 적을 살상하는 그 모습은 헐크를 닮았고, 다른 존재로서의 외로운 영웅의 모습은 스파이더맨이나 슈퍼맨을 닮았으며, 영웅의 인간적인 고뇌는 배트맨을 닮았다. 그래서인지 이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전라도는 배트맨의 고담시처럼 고립된 인상이 짙고, 그걸 장악하는 조관웅은 고담시나 뉴욕을 꿀꺽 삼키기 위해 테러를 일삼는 악당을 닮았다.

 

물론 여기에는 영웅담 이외에 판타지물의 흔적도 담겨 있다. 지리산을 지키는 신수 구월령(최진혁)과 소정법사(김희원)는 <반지의 제왕>의 요정과 마법사를 떠올리게 하고, 담여울(수지)과 최강치의 관계 설정은 일본 만화 <이누야사>를 닮았다. <구가의 서>는 이처럼 그간 <전설의 고향>이 다루던 전통적인 구미호와는 확연히 다른 캐릭터다. 우리만의 특수성을 가진 구미호라는 캐릭터를 전 세계 보편적인 변신 캐릭터들(이를테면 뱀파이어나 늑대인간에서 현대적인 슈퍼히어로에 이르는)로 그리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달라진 구미호 최강치는 민초들에게 어떤 영웅일까. 과거의 구미호 텍스트들은 구미호보다 더한 인간의 모습을 그려내는 것으로 당대의 신분구조가 주는 억압을 해체시켰다. 양반과 상놈의 신분구조는 인간과 구미호로 치환되었고, 구미호는 공포의 존재가 되어 인간을 깨우치는 이야기로 그려진다. 2000년대가 넘어 재탄생된 구미호 이야기들은(이를 테면 <여우누이뎐>같은) 구미호보다 심지어 더 공포스런 인간들을 비판한다. <구가의 서>가 그리는 구미호도 다르지 않다. 여기에는 인간이지만 반인반수보다 못한 조관웅이 등장한다.

 

하지만 최강치라는 새로운 영웅이 하려는 것은 조관웅을 죽이는 사적인 복수에 머물러 있지 않다. 이순신이라는 존재가 굳이 등장한 이유다. 이 반인반수의 영웅은 임진왜란과 무적의 이순신이라는 존재 옆에 생겨난 판타지다. 그런 점에서 <구가의 서>의 구미호는 사회적 억압이 만들어낸 공포의 캐릭터가 아니라, 사회적 분노가 만들어낸 영웅에 가깝다. 권세에 기대 뭐든 갖고 싶은 것을 취하려는 조관웅은 그래서 사회적 분노를 일으키는 공공의 적이 된다.

 

최강치라는 새로운 구미호는 현대인들의 분노가 응축되어 만들어진 캐릭터다. 분노에 의해 만들어진 그의 강력한 힘은 이미 신분체계의 벽을 넘어선다. 하지만 괴물과 싸우면서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은 스스로가 괴물이 되지 않는 일이다. 최강치에게 남겨진 문제는 그래서 그 힘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가 된다. 현대인들이 갖고 살아가는 분노가 그러한 것처럼.

<장옥정>의 끝없는 추락, 그 이유는 뭘까

 

역시 김태희의 사극 캐스팅은 무리수였나. <장옥정, 사랑에 살다(이하 장옥정)>의 시청률이 7%대까지 추락하면서 그 원인으로 김태희의 연기력이 도마 위에 올랐다. 어색한 표정 연기와 어려운 사극 톤에 어울리지 않는 발성이 몰입을 방해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이유 때문일까. <장옥정>의 부진은 과연 온전히 김태희의 연기력 부족 때문일까.

 

'장옥정 사랑에 살다'(사진출처:SBS)

물론 김태희의 연기력은 <아이리스>에서 보여준 가능성을 되살려내지 못하고 있다. 특히 사극 특유의 맛을 내기에는 역부족으로 보인다. 사극의 대사 톤은 현대극과는 확연히 다르기 때문에 일상적인 발성으로는 어색해지기 십상이다. 사극 특유의 연기 톤을 자기 특유의 색깔과 맞춰 자기화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한 법이다. 하지만 김태희의 목소리는 복색만 한복을 입었을 뿐, 현대극의 그것과 그다지 달라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김태희의 연기력보다 더 큰 문제는 연기자들 사이에 조합이 잘 맞지 않는다는 점이다. <장옥정>의 유아인과 김태희 캐스팅은 극중 캐릭터와 부합하지 않는 면이 있다. 멜로 드라마의 경우 드라마를 보는 관점은 캐스팅된 배우들의 조합 그 자체가 될 때가 많다. 그런 점에서 나이 많은 김태희와 한참 어려보이는 유아인의 조합은 자연스러운 멜로의 결을 만들어내는데 장애요소가 되는 게 사실이다.

 

이런 남녀 연기자들 사이의 조합 문제는 동시간대 타 방송사의 드라마들과 비교해보면 금세 알 수 있다. <직장의 신>의 김혜수와 오지호 조합이나, <구가의 서>의 이승기와 수지의 조합을 생각해보라. 그 캐스팅 자체가 기대감을 만드는 것이 사실이다. 기대한 대로 김혜수는 카리스마와 코믹과 슬픔을 모두 껴안을 수 있는 연기를 보여주고 있고 오지호는 <환상의 커플>과 <내조의 여왕>에서 보여줬던 코믹하고 과장된 캐릭터를 잘도 소화해내고 있다. 또 <구사의 서>의 이승기와 수지는 그 확실한 비주얼만큼 안정적인 연기를 보여주고 있다.

 

물론 이것도 작품 속 캐릭터의 힘이 만들어내는 착시현상일 수 있다. 본래 연기력 논란은 캐스팅 논란이나 캐릭터 논란과 겹쳐져 나타나곤 한다. <장옥정>은 사극의 옷을 입고는 있지만 현대극을 더 많이 떠올리게 하는 드라마다. 제목을 장옥정으로 달고 있기는 하지만, 만일 다른 이름으로 한다고 해도 그다지 어색하지 않을 거라는 점이다. 이 드라마에서 장옥정은 심지어 그 시대에 패션쇼를 여는 패션 디자이너다.

 

만일 장옥정이라는 역사적 인물을 들이대지 않았다면 조선시대의 패션 디자이너라는 설정은 그 자체로 흥미로웠을 수 있다. 실제로 군복 디자인을 하기 위해 이순(유아인)의 친위대 비밀야영지로 들어온 장옥정이 군복을 직접 입어보고 군영을 체험하는 장면은 사극으로서는 이색적이다. ‘옷을 만드는 여인’이 그저 미적인 것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군사력을 위한 기능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은 충분히 흥미로운 일이 아닌가.

 

하지만 장옥정이라는 역사적 인물로 그 패션 디자이너를 세우자 충돌이 생겨난다. 장희빈으로 기억되는 그 강렬한 이미지는 아마도 대부분의 시청자들의 뇌리에 각인되어 있을 것이다. 비록 악녀로 낙인찍히기는 했어도 그 절절함과 절실함은 시청자들의 마음에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것이 사실이니까. 하지만 <장옥정>에 등장하는 패션 디자이너는 기존 장희빈이 갖고 있던 그 절실함이 빠져 있다. 오로지 사랑에 목매는 여인이라도 역사적 인물로서 장희빈을 내세웠다면 적어도 그 절절함만큼은 가져갔어야 했던 것이 아닐까.

 

그래서 <장옥정>은 기존 장희빈을 기억하는 사극의 시청자들에게는 너무 가벼운 사랑타령이 되어버렸고, 또 새로운 사극을 희망하는 젊은 시청자들에게는 너무 무거운 옷(무려 장희빈이라는!)을 입은 드라마가 되어버렸다. 마치 조선판 패션 디자이너를 그리는 퓨전사극에 어색하게도 장희빈이라는 역사적 인물을 억지로 꿰어 덧댄 느낌이다. 작품이 이렇게 어정쩡한 선에 서 있으니 그걸 연기하는 연기자들이 입은 캐릭터라는 옷이 잘 맞을 리 없다. <장옥정>의 추락은 물론 김태희 연기력의 문제일 수도 있지만, 바로 현대극인지 사극인지 알 수 없는 위치에 어정쩡하게 서 있는 작품의 문제가 더 클 수 있다.

김종국과 김종민, 그들의 공통고민은?

 

이제 김종국 없는 <런닝맨>을 상상하긴 어려울 것이다. 제리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톰이 있어야 하고, 뽀빠이가 힘을 쓰기 위해서는 브루터스가 있어야 하듯이 이광수나 지석진 같은 초식동물들이 있는 <런닝맨>이라는 정글에서는 김종국 같은 육식동물이 반드시 필요하다. 운동으로 다져진 몸을 바탕으로 <X맨>에서 주목을 받은 그는 <패밀리가 떴다>를 거쳐 <런닝맨>에서는 확실한 예능의 ‘능력자’로 자리매김했다.

 

사진출처: 원오원엔터테인먼트

<런닝맨> 같은 게임 예능에서 김종국 같은 능력자가 부여하는 긴장감은 필수적이다. 그가 얼마나 <런닝맨>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가는 그가 없다고 상상해보면 바로 알아차릴 수 있다. 그가 없었다면 배신의 아이콘 광수도 없었을 것이고, 서로 만나면 형 동생 하면서 때론 짓궂은 장난을 치는 하하도 없었을 거다. 심지어 그와 대립각을 세우는 유르스 윌리스 같은 캐릭터도 그렇게 멋있게 포장되기 어려웠을 게다.

 

최민수 같은 공포(?)의 캐릭터가 나왔을 때 그 공포감을 더 극대화시켜주는 역할도 역시 김종국의 몫이다. 능력자인 그가 꼬리를 내리거나 게임에서 지게 되면 그를 이긴 게스트는 더 강하다는 것이 그 자체로 입증되기도 하니까. 한편 반전을 통해 놀라움을 안겨주기도 한다. 추신수와 류현진이 나왔을 때 모두가 벌벌 떨던 추신수의 이름표를 떼어냄으로써 그에게 승부욕을 자극한 것도 김종국이고, 얘기하는 척 하다가 갑자기 이름표를 떼 내면서 류현진이 가진 의외의 귀여운 면모를 끄집어낸 것도 김종국이다.

 

<런닝맨>은 물론이고 예능에서 능력자로 자리매김한 그지만 바로 예능에서 너무 뛰어난 기량(?)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은 그에게 고충이 되기도 한다. 그가 예능에서 확실히 자리를 잡을수록 그의 본업이라고 할 수 있는 가수라는 직업은 가려지기 마련이니까. 2010년 1월에 6집 ‘열한번째 이야기’를 발매하고 근 3년이 지난 올 10월 그는 7집을 발표했다. 다행히 반응이 나쁘지 않은 편이다.

 

예능 동료가 된 개리와 하하가 피처링한 ‘너에게 하고 싶은 말’과 마이티 마우스가 피처링한 ‘남자도 슬프다’에 이어 타이틀곡인 ‘남자가 다 그렇지 뭐’도 특유의 하이톤의 미성 보컬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하지만 예능에 출연하는 가수들이 모두 김종국 같은 것은 아니다. <1박2일>의 김종민은 그룹 코요테에서 끊임없이 새 곡을 발표하고 있지만 그다지 주목받지는 못하고 있다. 물론 이것은 코요테에서 거의 신지가 노래하는 분량이 절대적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가 워낙 <1박2일>을 통해 갖게 된 이미지가 강력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유독 가수 출신 MC들이 많았던 <1박2일>은 가수들이 예능을 통해 어떤 시너지를 낼 수 있는가를 보여줬던 프로그램이기도 하다. MC몽과 이승기, 김C, 은지원은 <1박2일>을 통해 갖게 된 확고한 캐릭터를 통해 자신의 음악활동에 활기를 불어넣기도 했다. 하지만 이 상황이 오래 지속되자 이들에게도 같은 고충이 생겼던 게 사실이다. MC몽은 물의를 일으키면서 하차했지만, 스스로 하차한 김C는 최근 한 인터뷰에서 예능으로 소비되는 자신의 이미지가 부담으로 작용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승기는 드라마를 통해 연기자로서의 발판을 만들었지만 역시 가수라는 본업에 아쉬움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은지원도 <1박2일>을 하차하고 클로버를 결성해 좀 더 음악활동에 매진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길과 개리 그리고 하하 같은 예능인이 다된 가수들은 그 두 영역을 잘 넘나들며 균형을 맞추고 있지만 그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슈퍼7>콘서트가 논란에 빠지자 길과 개리가 선뜻 하차를 표명하고 본업인 ‘좋은 음악’을 만들겠다고 한 것은 이들에게 음악이 얼마나 돌아가고픈 고향인가를 잘 말해주는 대목이다.

 

가수들에게 분명 예능은 하나의 기회가 된다. 그리고 이것은 이제 가수 활동의 한 영역이 된 상황이다. 성시경이 성발라에서 성충이가 되는 과정은 어쩌면 이 멀티 플레이어를 요구하는 연예환경 속에서 꼭 필요한 통과의례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도 성충이의 이미지가 너무 강해져 성발라가 잊혀지는 단계에 이르게 되면 고민이 될 것이다. 중요한 건 균형 감각이다. 어느 한 이미지가 다른 이미지를 덮어버리지 않게 양쪽을 공존하게 하려면 두 배의 노력이 필요하다. 물론 노래 하나로 승부해도 충분하다면 최선이겠지만, 예능이 가수로서의 활동에 어떤 도움이 된다면 그만한 노력을 기울일만한 가치는 분명 있을 것이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