밝은 이승기, 어둠까지 품는다면

 

이승기에게 <더킹 투하츠>는 그가 연기에 도전했던 이전 작품들과는 다르게 다가올 것이다. 물론 첫 연기 경험이었던 <소문난 칠공주>의 황태자 역이나, 그에게 트리플 크라운의 영광을 안겨준 <찬란한 유산>의 선우환 역, 그리고 코믹 연기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던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에서의 차대웅 역에서 모두 이승기는 무난한 연기를 보여주었다.

 

 

'더킹 투하츠'(사진출처:MBC)

아니 무난하다기보다는 호평이었다. 거기에는 당시 이승기가 갖고 있는 독특한 위치가 한 몫을 차지했다. 즉 이승기는 본격적인(?) 배우는 아니었다. 가수가 본업이었고 <1박2일>을 통해 가수 이외에 예능인으로서의 새로운 매력을 드러내는 중이었으며, 여기에 배우라는 새로운 도전을 성공적으로 치르고 있다는 것이 호평으로 이어졌을 뿐이었다. 하지만 <더킹 투하츠>의 이재하 역할을 연기하는 이승기는 상황이 이때와는 다르다.

 

이승기는 사실상 그의 가치를 세워주었던 예능을 모두 접었다. <1박2일> 시즌2에 잔류하지 않았고, <강심장> MC도 내려놓았다. 가수로서의 활동도 전무하다. 오로지 <더킹 투하츠>라는 드라마 하나에 전력 질주하는 모습이다. 즉 이승기는 가수와 예능인을 잠시 접어두고 제대로 배우라는 영역에 도전하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일 것이다. <더킹 투하츠>에서의 이승기의 연기가 이전의 연기와는 다르게 느껴지는 것은. 이 드라마에서 이승기는 꽤 준비된 연기를 보여주었다. 드라마 초반에 그는 어딘지 왕제와는 어울리지 않는 바람둥이의 모습을 얄미울 정도로 잘 연기해냈다. 김항아(하지원)에게 "넌 여자가 아냐"라고 하는 대사에서는 보는 이마저 화가 나게 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갑자기 한 나라의 왕제로서의 모습을 보여주었을 때(예를 들면 미국의 간섭에 대해 속 시원한 한 방을 날렸을 때 같은)는 그 가벼운 겉모습 밑에 숨겨진 믿음직한 구석을 느끼게 해주었다. 자유를 구가하려던 왕제가 형의 죽음 이후 곧바로 왕위를 물려받으면서 겪게 되는 그 변화를 연기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이건 왕이 아닌가. 왕이라는 위치에서는 상당 부분 겉모습(왕으로서의 위엄을 갖추어야 하는)과 실제 내면(한 인간으로서의)이 다를 경우가 많을 수밖에 없다. 이재하는 그 양자를 오가면서 김봉구(윤제문)라는 희대의 악당과 때로는 대면해야 하고 그 고통 속에서도 웃으며 상대방을 제압해야 한다. 게다가 이제 결혼할 사이인 김항아와의 멜로도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배우로 서려는 이승기로서는 제대로 된 역할을 만난 셈이다.

 

이승기는 잘 알려진 대로 그 특유의 노력과 근성으로 이 복잡한 연기를 잘 해내고 있다. 김봉구가 형인 이재강(이성민)을 죽였다고 제 입으로 말할 때도, 이승기는 그 분노를 억누르며 김봉구에게 맞서는 재하의 왕으로서의 면모를 드러내주었고, 믿었던 비서실장 은규태(이순재)의 배신 사실을 알고는 분노를 터트리면서도 그 마음 한 구석에 남아있는 믿음과 정을 놓지 않는 재하의 인간적인 면모도 보여주었다. 왕으로서의 얼굴과 한 인간으로서의 얼굴, 이 둘을 한꺼번에 보여준다는 것. 이승기는 확실히 이 작품을 통해 배우로서도 한 단계 더 내디딘 셈이다.

 

이처럼 배우로서도 이제 어엿한 면모를 보여주는 이승기에게 그러나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 연기는 물론 노력과 연습이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채워질 수 없는 부분이 있다는 것. 연기자에게서 굳이 연기하지 않아도 뿜어져 나오는 그 특유의 느낌은 대본과 캐릭터를 연구하는 것으로 얻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삶의 경험치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승기의 장점으로 여겨지는 늘 밝은 모습, 선한 심성 같은 이미지는 배우로서는 한편으로 단점이 되기도 한다.

 

아픔을 연기할 때 진짜 아프게 다가오는 건 그걸 표정으로 연기해내기 때문이 아니다. 그 연기자의 안에 있는 진짜 아픔을 끄집어냈을 때 그것이 비로소 전달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왜 이승기가 이처럼 연기 호연을 펼치고 있으면서도 오히려 조정석의 눈물 한 방울에 더 가슴이 와 닿는가를 이해할 수 있다. 조정석은 밝은 이미지가 있지만 동시에 어두운 구석도 갖고 있는 배우다. 그것이 보는 이들에게는 그 자체로 마음 시리게 다가온다.

 

아마도 이것은 노력하는 이승기가 배우로서 서기 위해 마지막으로 넘어야할 한 가지가 아닐까 싶다. 인간적인 매력에는 밝은 면만 있는 게 아니다. 누군가는 그것을 '폐허'라고 표현했고 누군가는 그것을 '우수(憂愁)'라고 표현한다. 밝은 껍질 아래 무언가 아프고 무너질 것 같은 면면. 그것이 배우가 연기 연습을 통해 얻어내는 기술적인 성취만큼 중요할 수 있다. 그것은 능력이 아니라 매력의 영역이다.

이승기는 예능에서의 다분한 끼와 순발력, 가수로서의 감성 또 배우로서 갖추어야 할 성실성을 다 갖추었지만, 단 한 가지 그 자체로 뿜어져 나오는 (보는 이들로 하여금 한없이 보듬어주고픈 마음을 갖게 하는) 아픈 매력이 부족하다. 물론 지금도 충분한 다른 매력이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바로 이 '우수' 깃든 매력이 덧붙여진다면 이승기는 독특한 자신만의 아우라를 갖는 배우로서 설 수 있을 것이다.

가수가 연기하고, 배우가 웃기는 시대

 

사실 몇 년 전만 해도 가수들의 드라마 진출은 혹독한 신고식을 치러야 하는 일이었다. 물론 지금도 연기 못하는 가수들은 이른바 연기력 논란을 겪기도 하지만 적어도 이제 가수들이 주인공을 맡는다는 그 사실 하나로 비판을 받지는 않게 되었다. 그만큼 드라마의 주인공으로 가수들이 많이 등장하고 있고, 또 성공사례도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고쇼'(사진출처:SBS)

이승기와 박유천은 드라마로 간 연기돌의 좋은 예다. '더킹 투하츠'에서 이승기는 깐족대면서도 때론 위엄을 보여주는 왕제 역할을 잘 소화해내고 있고, '옥탑방 왕세자'에서 박유천은 현대로 온 조선의 왕세자 역할을 코믹하게 보여주고 있다. '해를 품은 달'에서 주목받고 '적도의 남자'에서 매력이 확인된 임시완, '사랑비'와 '패션왕'에서 각각 활약하고 있는 소녀시대의 윤아와 유리 등등 지금 드라마의 중심에는 가수들이 있다.

 

물론 여전히 연기가 어색한 가수들도 있지만 그래도 과거에 비해 확실히 나아진 건 사실이다. 이것은 이제 가수들이 연기 영역에 진출하는 것을 쉽게 보지 않는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아이돌들 같은 경우에는 자체적으로 연기를 배우는 것이 하나의 코스가 되어 있다. 가수들은 캐스팅이 문제가 아니라 그 역할을 제대로 소화해내야 그만한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걸 알고 있다. 오히려 소화를 못했을 때는 연기력 논란으로 자칫 가수 활동 자체에도 악영향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가수들의 드라마행이 이제 보통의 일이 되어버린 반면, 작년부터 배우들의 예능러시가 주목된다. 엄태웅은 '1박2일'의 멤버가 되면서 그간 드라마나 영화에서 올리지 못했던 주가를 올렸다. 그는 영화 '특수본'에 이어 '건축학개론'에도 출연했고, 최근에는 드라마 '적도의 남자'에서 맹활약 중이다. 송지효 역시 예능을 통해 주가를 올린 대표적인 사례다. '런닝맨'은 '쌍화점'에서의 이미지를 털어내고 그 위에 송지효 특유의 편안한 매력을 부각시켰다. 그녀는 심지어 드라마 '계백'을 촬영하면서도 '런닝맨'에 출연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이것은 사극에 있어서 전례가 거의 없는 일이다. 그만큼 송지효가 '런닝맨'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는 지를 알 수 있었던 대목이다.

 

한혜진은 '힐링캠프'가 발견한 예능의 보석이 되었다. 상대방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면서도 자기가 할 이야기는 빼놓지 않고 콕콕 집어 말하는 직설어법은 '힐링캠프'에서 그녀만의 존재감을 세워주었다. 이러한 성공사례들 덕분일까. 배우들의 예능 러시는 가속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고현정이 자신의 이름을 딴 '고쇼'로 예능 신고식을 치렀고, 이동욱은 이승기가 떠난 '강심장'에 MC를 맡아 첫 회부터 공동MC인 신동엽보다 더 확실한 존재감을 만들어냈다. 물론 시트콤은 예능으로 분류돼도 드라마에 가깝지만 아직까지 이 분야에 발을 딛지 않았던 차인표(선녀가 필요해)나 류진(스탠바이)이 최근 여기에 합류했다는 것도 배우들의 예능 러시와 같은 궤로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배우들 중 특히 여배우들의 예능 활약은 두드러진다. 사실 여배우들의 예능 출연은 대부분 그들의 작품 홍보 시기와 맞물려 출연하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만큼 여배우라는 존재 자체가 예능에서는 하나의 블루오션처럼 되어 있었던 것. 여배우라면 흔히 떠올리는 여신 같은 이미지들이 있기 때문에 이것을 걷어내는 것만으로도 예능에서는 확실한 반전 효과를 줄 수 있다. 송지효나 고현정 같은 경우를 보면 그녀들이 본래 갖고 있던 이미지들을 예능을 통해 상당히 부드럽게 만들어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배우가 예능을 하고 가수가 연기를 하는 것처럼 연예인들이 점점 멀티 플레이어화되는 이유는 뭘까. 이것은 점점 퓨전화되고 섞이는 콘텐츠들의 시대적인 요구에서 비롯된다. 예능이 다큐나 드라마적인 요소와 섞이고, 드라마가 예능과 접목되는 등의 콘텐츠 퓨전화 경향은 그 종사자들인 연예인들의 자기 정체성 또한 하나에 머무르게 하지 않는다. 또한 경쟁이 그만큼 치열해지기 때문에 좀 더 다양한 콘텐츠를 통해 자신을 어필하려는 것도 연예인들이 다양한 분야를 넘나드는 이유가 될 것이다.

 

또 다양한 분야의 콘텐츠들이 섞일 때 그 연예인 당사자에게 그것이 시너지를 만들 가능성도 훨씬 높다. 과거에는 배우가 예능에 출연하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기도 했다. 이미지의 충돌이 생기기 때문. 하지만 요즘은 확실히 달라졌다. 예능 출연의 이미지와 영화나 드라마 출연의 이미지를 별개로 생각하는 경향들이 있기 때문이다. 엄태웅 같은 경우에 '적도의 남자'나 '건축학 개론'에서의 진지한 이미지와 예능에서의 편안한 이미지가 서로 부딪치지 않고 상생하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

 

스타들에게 멀티 플레이어를 요구하는 이러한 사회의 변화는 물론 그만큼 치열해진 경쟁을 얘기해주는 것이지만, 또 한 편으로 특정 영역의 장벽이 허물어지고 뒤섞이는 문화적 변화를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콘텐츠의 퓨전화 경향처럼 이제 연예인들 역할도 퓨전화되고 있다. 가수가 연기하고 배우가 웃기는 시대다.

'더킹 투하츠', 이승기에 맞춤인 이유

 

'더킹 투하츠'에서 재하(이승기)는 왜 항아(하지원) 앞에서 자꾸만 마음이 변덕을 부리는 걸까. 자신을 거부한 항아에게 철저히 복수하겠다며, 그 마음을 빼앗은 후 헤어져 평생 잊지못할 상처를 주겠다는 엉뚱한 계획을 세우고 실제 실행에까지 옮기지만 재하는 막상 자신을 향해 돌진해 들어오는 항아를 보고는 마음 한 구석이 찜찜해진다. 거기서 진심을 봤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용히 우리는 이루어질 수 없는 사이라고 말하려는데, 불쑥 항아가 "약혼을 하겠다"고 하자 또 마음이 바뀐다. "너랑 왜 내가 약혼을 하겠냐"며 독설을 날린다.

 

 

'더킹 투하츠'(사진출처:MBC)

도대체 왜 재하는 이토록 변덕이 심한 걸까. 사실 이 부분은 이 드라마의 제목하고도 관련이 있다. 재하의 갈등은 항아에 대한 자신의 생각이 수시로 변하기 때문에 생기는 게 아니다. 재하는 제목처럼 두 개의 심장을 가질 수밖에 없는 인물이다. 그 하나는 남한의 왕제로서의 심장이고, 다른 하나는 한 남자로서의 심장이다.

 

그가 모의 훈련 중에 항아를 향해 총을 쏘는 상황은 이 재하라는 인물이 가진 두 개의 심장이 모습을 드러내는 장면이다. 남자로서는 차마 할 수 없는 일이지만, 한 나라의 왕제로서 인질이 되어 국익에 손실을 줄 바에는 총을 쏠 수밖에 없는 그런 상황. 물론 모든 게 모의훈련으로 드러났지만, 후에 재하는 항아와 행군을 하면서 그 때 상황을 얘기한다. 자기의 마음도 뻥 뚫리는 것 같았다고. 이것이 한 남자로서의 심장이 전하는 말이다.

 

재하는 이 두 개의 심장 사이에서 갈등한다. 그래서 남자로서 항아라는 알 수 없는 매력의 소유자에게 흔들리다가도, 남과 북으로 갈라져 오래도록 다른 환경에서 살아왔다는 점, 게다가 복잡한 정치적인 사안들과 맞물려 있는 결혼이라는 문제에까지 다다르면 또 마음 한 구석이 흔들리게 된다. 자신은 평범하게 살아가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왕제로서 어떤 선택을 하게 되는 상황에 몰리게 되면 그는 또 개인이 아닌 왕제로서의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 기자회견장에서 갑자기 항아가 약혼을 하겠다고 발표해버리자, 그 즉시 부인할 수 없는 게 왕제로서의 그의 마음이다(거부하면 이것은 남부 간의 불편한 관계로 이어진다).

 

이 두 개의 심장을 가진 왕제, 재하라는 역할은 결코 쉬운 게 아니다. 때론 완전히 개념 없는 인간처럼 행동하는 모습을 보이다가도 어떤 순간이 오면 왕제로서의 근엄함을 유지하는 진중함으로 돌변해야 한다. 이것은 멜로 연기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날라리처럼 행동하다가도 때로는 마음을 찡 울리는 진심이 묻어나야 하는 인물이 재하라는 캐릭터다. 다행스러운 건 이 두 개의 상반된 이미지를 이미 이승기는 드라마와 예능, 가수 활동을 하면서 겪었다는 점이다.

 

그의 첫 이미지는 '황태자'였다. 그것도 누나들의 로망으로서의 황태자. 하지만 그 황태자가 '1박2일'이라는 예능을 통과하면서는 형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막내가 되기도 하고, 때론 허술함이 드러나는 허당이 되기도 한다. 그러다 '찬란한 유산'을 통해서는 개념 없던 황태자가 진솔한 청년이 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고, '내 여자 친구는 구미호'에서는 사랑을 알아가는 순수한 청춘을 연기하기도 한다. 또 홀로 '강심장'을 맡았을 때는 이제 상대방의 약점을 파고드는 짓궂은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더킹 투하츠'는 이승기에게 이 황태자의 진중함과, 막내이자 허당으로서의 가벼움을 동시에 품게 하는 드라마다. 이 작품 속에서 이승기는 때론 지독할 정도의 악동의 모습이었다가 또 순간 진중한 모습으로 돌변해 그 악동 이면에 있는 왕제로서의(황태자의 삶으로서의) 쓸쓸함을 드러낸다. 이 두 가지 이미지의 통합은 '더킹 투하츠'의 두 개의 심장을 가진 왕제 재하라는 캐릭터의 연기를 통해 이뤄지고 있다.

 

그런 점에서 '더킹 투하츠'는 지금껏 가수이자 연기자이자 MC로 활약하며 다양한 모습을 끄집어냈던 이승기에게 이 이미지들을 통합해 한 단계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을 만들어주는 드라마라고 말할 수 있다. 진중함과 가벼움, 이 두 개의 심장을 가진 황태자의 탄생. 이것이 '더킹 투하츠'에 이승기가 맞춤인 이유다. 이승기는 지금 진정한 '킹'이 되기 위한 '투하츠'를 준비하고 있는 셈이니까.

연기력 논란 없는 그들, 캐릭터가 답

도대체 이들은 언제부터 이렇게 연기를 잘했나. '더킹 투하츠'의 이승기와 '옥탑방 왕세자'의 박유천 얘기다. 흔히 가수들의 연기 도전에 꼬리표처럼 따라붙는 것이 연기력 논란이다. 하지만 이승기와 박유천의 경우, 논란이 아닌 호평이 대부분이었다. 물론 연기를 대단히 잘한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캐릭터에 대한 몰입은 충분히 느낄 수 있게 해주고 있고, 또 상대적으로 적은 연기경력에도 불구하고 매 편마다 일취월장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도대체 그 비결은 어디에 있을까.

 

'옥탑방왕세자'(사진출처:SBS), '더킹 투하츠'(사진출처:MBC)

'찬란한 유산'에서 정극연기를 경험하고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의 코미디를 거친 이승기에게 '더킹 투하츠'의 재하라는 캐릭터는 코믹함과 진지함을 둘 다 갖고 있다는 점에서 도전이면서도 발전의 기회가 된다. 사실 상대 배우들을 톱스타 반열로 올려놓을 정도로 연기호흡이 좋은 하지원과 함께 하는 연기는 이승기에게는 부담이기도 하다. 많은 이들이 하지원을 주목할 것이기에 자칫 그녀의 보조 역할로 전락하거나, 혹은 끌려가는 인상을 지울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우려는 보기 좋게 빗나갔다. 이 드라마 속에서 이승기의 존재감은 하지원과 거의 대등하게 나타난다. 두 사람은 팽팽하게 대립하면서도 알 수 없는 감정이 오고가는 상황들을 잘 표현해내고 있다. 특히 조금은 가벼운 듯 보이는 껄렁함 속에 왕재로서의 진중함과 그 굴레의 힘겨움을 숨기고 있는 재하라는 캐릭터는 이승기에게는 딱 맞는 옷처럼 잘 어울린다. 왕자 같은 귀공자 이미지이지만 '1박2일' 같은 예능 속에서는 한없이 천진한 장난꾸러기의 모습을 보이던 이승기 아닌가. 정극과 코미디를 넘나들 수 있게 된 점은 이승기가 이 작품을 통해 얻은 분명한 수확으로 보인다.

한편 '성균관 스캔들'로 첫 등장해 첫 연기라고는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의 몰입을 보여준 박유천은 '미스 리플리'의 정극을 경험한 후, '옥탑방 왕세자'라는 자신에게 잘 맞는 옷을 입고 돌아왔다. 사극과 현대극을 넘나들고, 코미디와 멜로를 넘나드는 연기는 결코 쉬운 것이 아니지만, 적어도 박유천에게는 다른 것 같다. 그는 본인이 진지해짐으로써 상황에 의해 웃음을 줄 수 있는 캐릭터 연기에 능수능란함을 보이고 있다.

사극 속에서 현대극으로 뛰어 들어왔지만, 여전히 자신이 사극 속의 왕인 줄 알고 있는 '옥탑방 왕세자'의 이각이라는 캐릭터는 그래서 마치 박유천의 연기 과정을 얘기하는 것만 같다. 그래서 '옥탑방 왕세자'는 '성균관 스캔들'을 연기하던 박유천이 현대로 뛰어넘은 것 같은 인상을 주기도 한다. 이 작품에서 박유천 역시 한지민이라는 든든한 상대역을 맞아 너무나 자연스러운 코믹 멜로 연기를 보여주고 있다.

둘 다 가수 출신이면서 연기력 논란이 없다는 점(아니 나아가 보통 연기자들보다 오히려 연기력이 좋게도 보인다)은 이들이 가진 특유의 연기에 대한 몰입에서 비롯된다. 아직 연기가 섬세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완전히 그 인물에 동화되는 몰입이 좋기 때문에 보는 이들도 연기자보다는 캐릭터를 볼 수 있게 되는 셈이다. 이것은 타고난 것이라기보다는 전적으로 노력에 의한 것이다.

또한 중요한 것은 캐릭터다. 연기자가 연기를 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어떤 캐릭터를 연기할 것인가를 선택하는 일이다. 그런 점에서 이승기가 선택한 재하라는 캐릭터와 박유천이 선택한 이각이라는 캐릭터는 자신들이 도전하고 소화할만한 가장 적합한 선택으로 보인다. 가수와 연기자의 경계를 희미하게 만드는 두 사람. 이러다가는 가수와 연기자라는 본말이 전도될 지도 모르겠다. 혹시 이제는 거꾸로 '가수 맞아?' 하는 질문이 나올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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