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 게임2

“넌 그 비행기를 탔어야 했어. 네 선택을 후회하게 될 거야.”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게임2’는 프론트맨(이병헌)이 기훈(이정재)에게 하는 경고로 문을 연다. 그건 ‘선택’에 대한 경고다. 시즌1 엔딩에서 미국으로 가려던 기훈(정재)은 발길을 돌리며 프론트맨(이병헌)에게 전화로 선전포고한 바 있다. “난 말이 아니야. 사람이야. 그래서 궁금해. 너희들이 누군지. 어떻게 사람에게 이런 짓을 할 수 있는지. 그래서 난 용서가 안돼. 너희들이 하는 짓이.” 만일 기훈이 그대로 비행기를 탔다면 어땠을까.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고 저들이 원하는대로 세상은 흘러갔을 게다. 하지만 발길을 되돌린 그는 저들과 맞서려 하고 이 잔혹한 게임을 끝장내려 한다. 프론트맨의 경고와 기훈의 선전포고. 시즌2는 이 두 흐름의 부딪침을 그리고 있다. 

 

그런데 시즌2에서 저들의 실체에 접근하기 위해 딱지남을 찾는 기훈이 사채업자들을 움직이는 광경은 저 ‘오징어 게임’의 방식들을 연상시킨다. 무려 2년 간이나 지하철 곳곳을 수색해온 사채업자들은 회의감을 느끼지만 기훈이 성공보수 10억을 내걸자 눈빛이 달라진다. 눈앞에 놓인 돈을 향해 달려가는 사람들. 이건 자본의 전형적인 작동 방식이다. 그렇게 드디어 찾아낸 딱지남은 게임에 미친 인물로 노숙자들에게 다가가 빵과 복권을 내밀며 선택하라고 한다. 당장 먹을 수 있는 빵을 선택하는 게 합리적이지만 대부분은 복권을 선택한다. 빵을 선택하면 모두가 나눠먹을 수 있는데도 왜 사람들은 극히 확률이 낮은 복권을 선택할까. 거기에는 더 많은 돈을 버는 것이 당연한 가치로 추구되는 자본의 방식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오징어 게임’은 바로 그 자본의 방식을 게임이라는 틀을 통해 보여준다. 456명이 참여해 1인당 1억씩 배정된 목숨값을 사람들이 죽어나갈 때마다 적립해 최후의 1인이 456억을 독식하는 게임이다. 저 복권과 다를 바가 없다. 다만 이 게임은 그 욕망한 결과가 실패로 돌아올 때 죽음으로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이 달라보일 뿐이다. 그리고 이건 고도화된 자본화가 승자독식의 틀 안에서 운용될 때 실제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다. 몇몇은 엄청난 부를 거머쥐지만 그로 인해 무수한 이들이 길바닥으로 내몰려 죽어간다. 기훈이 공항에서 발길을 돌린 건, 자신이 우승상금으로 받은 456억이 저들의 목숨값이라는 걸 깨닫게 되면서다. 

 

‘오징어 게임’ 시즌1이 그래서 그 자본의 잔혹한 작동방식을 게임을 통해 알게 되는 이야기였다면, 시즌2는 그 게임과 맞서는 이야기다. 기훈은 말이 아닌 사람으로서 대항하려 한다. 그래서 다시 게임에 들어가려 하고, 저들이 원하는 방식대로 흘러가지 않게 하기 위해 사람들을 살려내고 또 설득하려 한다. 그저 놀이로 알았던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가 실제로 참가자들이 사살되는 게임이라는 걸 알고 있는 기훈은 그래서 죽을 위험까지 무릅쓰며 그들이 살 수 있는 길을 알려준다. 

 

시즌2에 새로이 도입된 룰은 매 게임 후 다음 게임을 계속 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두고 투표를 한다는 것이다. 투표에서 한 사람이라도 ‘X’가 더 나오면 게임은 중단되고 그간 적립된 돈을 살아남은 참가자들이 나눠갖고 나갈 수 있게 된다. 일방적으로 강요된 게임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한 게임이라는 걸 강조하는 이 룰은 그래서 이 게임을 멈출 수 있는 기회를 열어준다. 이 방식은 민주주의의 방식이다. 더 많은 이들의 자유로운 선택에 의해 그 공동체의 미래를 결정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민주주의의 방식은 저 비합리적이고 잔혹한 자본의 방식을 가진 게임 앞에 번번히 무력해진다. 참가자들은 나눠가질 돈이 너무 적다는 이유로 ‘한 판 더’ 게임을 하겠다는 ‘O’에 투표한다. 자신들이 희생될 수도 있다는 걸 망각한 채. 

 

게임을 멈추기 어렵게 만드는 또 하나는 프론트맨이 오영일이라는 이름으로 게임에 참가한다는 점이다. 오영일은 기훈의 조력자처럼 굴지만 사실은 그 안에서 이 게임을 계속 움직이게 하는 인물이다. 자본의 방식을 대변하는 프론트맨이 민주주의 방식으로 게임을 멈추려는 기훈 옆에 붙어 있는 이 설정은 그래서 민주주의 시스템 안으로도 깊숙이 들어와 있는 자본의 힘을 은유하는 것만 같다. 자본 앞에 민주주의라는 촛불은 연약하게만 보인다. 

 

과연 기훈은 프론트맨과의 대결에서 승리할 수 있을까. 자본의 무자비한 방식들을 민주주의는 극복해낼 수 있을까. 프론트맨과 기훈으로 대변되는 자본과 민주주의의 대결과 좌절을 그리는 ‘오징어 게임2’는 그래서 시즌3로 가는 빌드업이다. 그래서 좀더 시원시원한 결말 같은 걸 원했던 시청자들이라면 미진한 느낌을 줄 수 있다. 하지만 시즌1의 이야기에서 보다 확장된 세계로 나온 시즌2의 서사는 여전히 흥미롭고 대결의식은 더 팽팽해졌다. 특히 현 탄핵 정국에서 우리가 느끼는 민주적 절차에 대한 희망과 무력감을 떠올려본다면, ‘오징어 게임2’가 던지는 ‘선택’에 대한 질문은 특별하게 다가올 수 있을 게다. (글:중앙일보, 사진:넷플릭스)

강애심, ‘오징어 게임2’로 전 세계가 주목할 한국엄마의 아우라

오징어 게임2

“이러지들 마시고, 여러분, 여러분. 저 나도 그렇고 여러 선생님들도 그렇고 여기 이 선생님 덕분에 아직까지 목숨줄 붙어 있는 거예요. 다들 욕심 좀 그만 부리고 이 목숨 중한 줄 알고 다들 이제 여기서 나갑시다. 예?”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2’에서 아들 용식(양동근)의 빚을 갚겠다며 게임에 참가한 엄마 금자(강애심)는 사실 돈보다 목숨이 더 귀하다는 걸 아는 인물이다. 그저 돈을 벌어보겠다고 참가한 이들과는 사뭇 다르다. 

 

그럼에도 그녀가 이 게임에 들어온 건 아들 때문이다. 아들을 위해 아들이 진 빚을 어떻게든 대신 갚아보겠다며 게임에 들어온 것. 그런데 첫 번째 게임을 통해 이것이 목숨줄을 내놓고 하는 게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후 금자는 어떻게든 게임을 멈추고 나갈 궁리를 한다. 여기서도 그녀가 우선 생각하는 건 자신이 아니라 아들이다. 그녀에게서는 자신보다 자식 걱정이 우선이고 심지어 아들을 살릴 수 있다면 자신이 죽을 수 있는 상황도 마다치 않는, ‘한국 엄마’ 특유의 정서가 묻어난다. 

 

금자는 한국 엄마 특유의 친화력과 포용력도 가진 인물이다. 첫눈에 준희(조유리)가 아이를 임신했다는 걸 알아보고 다가가 언제든 필요하면 자신의 도움을 청하라고 말하고, 트랜스젠더인 현주(박성훈)에게도 “예쁘다고는 못하겠지만 괜찮다”고 말하며 마음을 여는 인물이다. 금자는 심지어 아들 용식이 ‘짝짓기 게임’에서 본인이 살기 급해 자신을 버리고 갔어도, 우리 아들은 그런 아들이 아니라고 역성을 드는 전형적인 한국 엄마다. 

 

시즌1에서 한국적인 정서를 가장 도드라지게 내면서 주목받았던 오일남(오영수)이 ‘깐부 할아버지’로 불렸던 것처럼, 시즌2는 이 금자라는 인물이 ‘한국 엄마’로 주목되는 면이 있다. 남다른 모성애를 가진 이 엄마는 타인들도 자식처럼 바라보며 안타까워하고 보듬으려는 그런 캐릭터다. 살벌한 오징어 게임 같은 경쟁적인 상황 속에서도 그나마 숨쉴 수 있는 따뜻한 온기를 부여하는 인물인 것이다. 

 

이처럼 ‘오징어 게임2’에는 그저 등장한 것처럼 보여도 잘 들여다보면 한국적인 정서가 묻어나는 캐릭터들이 적지 않다. 예를 들어 기훈의 직장 동료이자 오랜 친구이며 경마장에도 들락거렸던 정배(이서환)는 딱 봐도 정이 넘치는 한국의 절친의 모습이다. 혼자 심각해하는 기훈에게 옛 향수가 묻어나는 도시락을 숟가락으로 퍼서 먹으라고 하는 장면부터 나중에는 기훈과 함께 이 게임과 싸워나가는 과정까지 정배는 긴장과 이완을 적절히 해주는 친구 역할을 보여준다. 

 

해병대 출신임을 내세우지만 사실은 유약한 심성을 그것으로 숨기고 있는 대호(강하늘) 같은 인물도 한국인이어서 이해되는 ‘군부심’ 같은 것들을 드러내는 캐릭터다. 같은 해병대 출신이라며 “충성”을 외치는 이 인물은 군대가 의무인 한국적 상황을 잘 드러낸다. 이밖에도 명기(임시완)가 최근 한국에 불고 있는 유튜버 열풍을 대변한다면, 군인 출신이었다가 트랜스젠더를 선택한 현주도 최근 국내에서 이슈화된 성 정체성에 대한 선택문제를 떠올리게 하는 인물이다.

 

즉 ‘오징어 게임2’는 전 세계인들을 겨냥한 작품이지만, 공기놀이나 제기차기 같은 한국의 민속놀이를 소재로 넣는 것처럼 지극히 한국적인 정서를 담은 인물들을 배치해 넣었다. 그래서일까. 금자나 정배, 대호 같은 인물들이 도드라져 보이고 그 역할들을 찰떡 같이 소화해낸 강애심을 위시한 이서환, 강하늘도 글로벌 스타로 발돋움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것이 ‘오징어 게임2’가 만들어내고 있는 파급력이다. (사진:넷플릭스)

‘오징어 게임2’로 돌아온 이정재, 돌고 돌아 서민의 편으로

오징어 게임2

“지금부터 제가 하는 말 잘 들으세요. 이건 그냥 게임이 아닙니다. 게임을 하다 걸리면 죽습니다!”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2’에서 다시 그 죽음의 게임으로 돌아와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를 하게 된 기훈(이정재)은 사람들 앞에 나서서 그렇게 외친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의 말을 믿지 않는다. 미쳤다고 한다. 하긴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를 하다 죽을 수 있다는 말을 그 누가 믿겠는가. 하지만 기훈은 안다. 이미 한 번 그 잔혹한 게임을 치렀고, 그 곳에 참가했던 456명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1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알고 있다. 저 멀리 술래처럼 서 있는 영희 인형의 눈이 사람들의 움직임을 포착하고 있고, 움직임이 걸린 이들은 사정없이 사살될 거라는 걸. 한 번 겪어 봤기 때문에 앞으로 벌어질 일들을 안다는 것. 그것은 기훈이 이들을 피니시 라인까지 이끌어 살아남게 하려는 이유다. 

 

이 장면은 영웅의 탄생이 대단한 운명이나 사명감 같은 거창한 것에 의해서가 아니라는 걸 보여준다. 기훈이 나서게 된 건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사람들이 죽어나갈 거라는 걸 알고 있어서다. 456명이 참여해 1인당 1억씩 배정된 목숨값을 사람들이 죽어나갈 때마다 적립해 최후의 1인이 456억을 독식하는 게임이 오징어 게임이 아닌가. 사실 이건 ‘오징어 게임’ 시즌1의 맨 마지막에서 미국으로 떠나려던 기훈이 발길을 돌리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떠나려던 기훈은 인천공항 지하철역에서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딱지남(공유)’에게 뺨을 얻어 맞아가며 딱지치기를 하는 사내를 보게 된다. 그건 이 잔혹한 게임이 여전히 계속 벌어지고 있다는 걸 말해준다. 어디선가 저마다 절박한 이유를 가진 이들이 모일 것이고, 그들 중 마지막 단 한 사람을 제외한 모든 이들이 처참하게 살해될 거라는 걸 알고 있는 그는 차마 그들을 외면하지 못한다. 

 

‘오징어 게임2’는 바로 그렇게 돌아온 기훈이 어떻게든 게임을 만든 이들을 찾아내 끝장내려는 과정을 담았다. 그런데 ‘오징어 게임’에서 이 평범 이하의 삶을 살다 456명 중 1인이라는 우승자가 되는 기훈의 모습에서는 이 캐릭터를 연기한 이정재가 겹쳐지는 면이 있다. 시작부터 ‘모래시계’로 한 순간에 스타덤에 올랐고, 영화 ‘젊은 남자’, ‘태양은 없다’, ‘하녀’, ‘도둑들’, ‘신세계’ 등등 하는 작품마다 승승장구한 것처럼 보이지만, 이정재는 늘 ‘연기력’에 대한 의문부호를 달고 다니던 배우였다. ‘모래시계’에서 과묵하게 눈빛으로 순애보를 보여주는 보디가드 백재희로 주목받게 된 것도 실상은 연기력이 부족해서 대사가 없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였다. ‘태양은 없다’에서 정우성과 함께 한 연기가 인상적이었지만 대중들은 그것 또한 이 두 배우의 투샷이 주는 비주얼 효과와 김성수 감독 특유의 스타일리시한 영상 연출 때문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실제로 이정재는 배우가 아닌 모델로 시작했다. 그러다 인상적인 초콜릿 광고로 인해 ‘모래시계’ 재희 역할에 발탁됐다. 워낙 좋은 비주얼에 조각같은 몸매를 갖고 있어 일약 스타덤에 올랐지만 그가 배우로서 온전히 성장할 수 있었던 건 다양한 작품에 도전해오면서다. ‘하녀’의 성적 판타지를 자극하지만 무책임한 주인집 남자를 연기했고, ‘도둑들’에서는 비열한 뽀빠이 역할을 소화했다. 또 ‘신세계’에서는 경찰과 조직 사이에서 줄을 타는 언더커버 역할로 아슬아슬하면서도 위태로운 인물을 자기 색깔에 맞게 연기해냈다는 평가를 얻기도 했다. 하지만 배우로서 이정재의 연기에 대한 호평이 쏟아진 건 영화 ‘관상’에서 수양대군 역할을 통해 강렬한 존재감을 드러내면서다. 극 중에서 ‘이리’의 상으로 소개되는 수양대군의 모습을 연기하기 위해 동물 다큐까지 참고해가며 연구한 이정재는 이 역할을 통해 그토록 오래 따라다니던 ‘연기력 논란’의 꼬리표를 뗄 수 있었다. 그 후 ‘암살’에서 희대의 친일파 역할을 소화한 이정재는 이제 그토록 청춘스타라는 이미지와 더불어 따라다니던 연기력에 대한 의구심을 완전히 지워버리고 배우로서 대중들 앞에 서게 됐다. 

 

그를 글로벌한 배우로 등극시킨 ‘오징어 게임’은 이러한 일련의 연기 경험들이 쌓여 만들어진 결과였다. ‘오징어 게임’의 기훈은 그의 빛나는 비주얼을 앞세우는 그런 역할들과는 거리가 있는 인물이었다. 밑바닥 인생이고 그래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잔혹한 게임에 저도 모르게 뛰어들었다가 그 치열한 과정을 거쳐 최후의 1인이 되는 인물이다. ‘오징어 게임’에서 이정재가 한 연기 중 가장 도드라진 장면이 달고나 미션에서 혓바닥으로 달고나를 핥는 장면이라는 외신들의 평가는 그의 연기가 이제 비주얼이나 멋진 이미지와는 상관없는 배역에 대한 깊은 몰입에서 비롯되고 있다는 걸 말해준다. 그렇게 한 때 연기력에 대한 의구심이 늘 따라다니던 이 배우는 ‘오징어 게임’으로 미국 배우조합상, 크리틱스 초이스 시상식, 제74회 프라임타임 에미상 등 미국 메이저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또 그는 디즈니+ ‘스타워즈’ 시리즈의 새 드라마인 ‘애콜라이트’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 어찌 보면 국내 무수한 배우들 중 단연 도드라지는 한국배우로서의 꼭대기에 서게 된 것이다. 

 

이정재는 앞서도 말했듯 시작부터 반짝반짝 빛나는 청춘 스타였다. 워낙 도드라지는 비주얼을 갖고 있어 묵묵히 대사없이 눈빛만 보내도 대중들의 시선을 잡아끌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건 배우로서는 족쇄나 다름 없는 것이었다. 그가 꽤 오랜 세월을 거쳐 그 족쇄를 풀 수 있었던 건 어찌 보면 그 높은 위치에 서 있던 청춘 스타의 이미지를 벗어버리고 밑바닥으로 끊임없이 떨어지면서 서민들 가까이로 다가가려는 노력 때문이었다. 그는 비열한 역할은 물론이고 악역, 친일파 등 자신의 비주얼과는 상관없는 역할들 속에 뛰어들었다. 그 과정을 통해 얻게 된 게 ‘오징어 게임’의 기훈이 가진 서민의 얼굴이었다. ‘오징어 게임2’는 그렇게 지독한 생존을 통과한 그가 영웅적인 선택을 하는 모습들을 담았다. 저 높은 별이 아닌 바로 옆에서 우리와 함께 하며 그 아픔을 공감하는 영웅. 지난한 과정을 거쳐 글로벌 배우가 된 이정재에게서는 우리 시대가 요구하는 바로 그 서민 영웅의 페르소나가 어른거린다. (글:국방일보, 사진:넷플릭스)

‘오징어게임2’, 시즌1과 달라진 건 시스템에 대한 대결의식

오징어 게임2

딱지남(공유)은 노숙자들에게 다가가 빵과 복권을 내밀고 둘 중 하나를 가지라고 한다. 당장 먹을 수 있는 빵을 선택할 것 같지만 이들은 대부분 복권을 선택하고 긁고 난 후 꽝이 된 복권 앞에 절망한다. 딱지남은 그렇게 절망한 모두가 보는 앞에서 빵을 버리고는 이렇게 말한다. “이 빵을 버린 건 제가 아니라 선생님들입니다.” 그리고는 인정사정없이 빵을 짖밟아 버린다.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게임2’ 첫 회에 등장하는 이 장면은 가난한 이들이 더욱 가난해지는 자본주의 시스템의 작동방식을 드러낸다. 골고루 빵을 선택해 나눠 먹으면 똑같이 굶주리지 않을 수 있지만, 이들은 빵보다 더 큰 걸 원한다. 하지만 손에 잡힐 것 같은 돈은 사실상 헛된 욕망이다. 그 많은 욕망들이 빵 대신 희생한 것들을 한 사람이 독식하려는 것이지만, 그 한 사람이 될 확률은 0에 가깝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시스템이 굴러가는 동력은 바로 그 헛되어 보이지만 될 수도 있을 것 같은 욕망들이 결합해서 움직인다는 걸 이 시퀀스는 보여준다. 

 

‘빵과 복권’으로 우리가 살아가는 자본의 시스템을 꺼내놓으며 ‘오징어게임2’가 돌아왔다. 그 시스템은 이미 우리가 시즌1에서 456명이 456억의 상금을 두고 벌이는 게임을 통해 들여다본 것이다. 그 곳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아 그 상금을 갖고 돌아온 기훈(이정재)은 그 시스템을 봤고 경험한 인물이다. 그러니 시즌2로 돌아온 기훈의 목표는 저 시즌1과는 다르다. 

 

“난 말이 아니야. 사람이야. 그래서 궁금해. 너희들이 누군지. 어떻게 사람에게 이런 짓을 할 수 있는지.” 시즌1의 마지막에 기훈이 프론트맨(이병헌)과의 전화 통화를 통해 했던 말은 시즌2의 서사가 시즌1과는 어떻게 달라질 것인가를 알려준다. 시즌1은 결국 돈을 벌고 살아남기 위해 경마장의 말처럼 뛰고 또 뛰어 결국 목표를 이뤘지만 그 돈이 누군가의 목숨값이라는 사실 앞에 절망하게 된 기훈을 그렸다. 시즌2에서 기훈은 이제 그 목숨값으로 저들의 공고한 시스템을 끝장내려 한다.

 

그저 저들의 시스템 안에서 놀아나는 말이 되거나 혹은 저들이 시키는대로 뛰고 짖고 꼬리나 흔드는 개가 되어야 하는 상황 앞에서 기훈은 다시 게임에 들어가 그 시스템과 대결한다. 저들이 원하는대로 움직이지 않기 위해 사람들을 설득하려 하고, 탈락이라고 호명되면 무차별로 총을 쏴 죽이는 저들의 개와도 맞서려 한다. 이미 한 번 그 곳을 경험해본 기훈은 게임의 종목이 달라졌어도 그것으로 사람들이 어떻게 변화할 것이고 또 저들은 어떻게 나올 것인가를 어느 정도 예측해가며 대응하려 한다. 

 

하지만 ‘오징어게임2’에서 기훈의 가장 큰 복병으로 등장하는 건 영일(이병헌)이라는 이름으로 01번을 달고 게임에 들어온 프론트맨이다. 그는 기훈을 돕는 척 하지만 사실은 그의 옆에서 게임을 조종하기도 하고 결정적인 순간 기훈의 계획을 무산시킬 심산이다. 시스템과 대결하려는 기훈 옆에 그 시스템의 정점에 있는 인물이 정체를 숨긴 채 존재한다는 건 ‘오징어게임2’가 이 세계를 통해 은유하려는 자본주의의 섬뜩함을 드러낸다. 시스템의 잔혹함을 알고 있고 그래서 싸우려 해도 적은 저 편이 아니라 바로 내 옆에 있다는 것이 그것이다. 

 

모두가 힘을 합쳐야 그 시스템에 균열을 낼 수 있지만, 사람들이 저마다 갖고 있는 욕망들은(심지어 소박한 꿈이나 소망까지) 이들을 하나로 묶어내지 못한다. 그 욕망의 힘은 심지어 친구나 동료는 물론이고 부모 자식 관계까지 끊어놓을 정도로 강력하다. 기훈과 영일로 대변되는 내부의 갈등들은 게임에 참여한 이들 사이에 벌어지는 갖가지 갈등과 엮어져 시스템과의 대결을 어렵게 만든다. 

 

어찌 보면 게임에 참여해 사투를 벌이는 일련의 시즌2의 과정들은 시즌1과 유사한 느낌을 준다. 하지만 황동혁 감독은 유사한 구조에 달라진 기훈을 투입시킴으로써 변주를 하게 만든다. 예를 들어 시즌1의 오프닝을 열었던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게임에서도 기훈이 전체를 이끌어가며 “얼음!”을 외치는 장면이 그렇다. 또 비석치기, 공기놀이, 팽이돌리기, 제기차기 같은 새로운 우리의 민속놀이가 게임버전으로 등장하고, 무엇보다 “둥글게 둥글게-”하는 음악이 흐르다 멈추면 호명하는 숫자만큼 모이는 게임은 압권이다. 

 

무엇보다 시즌2를 통해 전환된 서사가 시즌3를 통해 시스템과 치열하게 펼쳐질 대결은 시즌1과 달라진 지점이다. 시즌1이 이 게임의 구조를 보여줬다면, 시즌2와 시즌3는 이 비정한 게임을 끝장내려는 과정을 담고 있다. 알다시피 자본화된 세계가 가진 비정함을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하지만 그걸 막지 못하는 건 우리가 이미 그 시스템 안에 들어와 있고 그 방식에 길들여져 있기 때문이다. 과연 기훈은 동료처럼 위장한 채 바로 옆에 존재하는 영일 같은 시스템과의 대결을 이겨낼 수 있을까. (사진: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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