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윅스>, 진정 다 가진 드라마였던 이유

 

<투윅스>가 종영했다. 종영했지만 이 놀라운 드라마가 헤집고 간 파문은 꽤 오랫동안 여운으로 남을 듯하다. 우리네 드라마 현실에서 이처럼 실험적이면서도 대중성을 가진 작품을 시도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투윅스>는 우리네 드라마에서 좀체 성공하기 힘들다는 스릴러 액션을 다루면서도 그 안에 가족드라마의 문법을 성공적으로 묶어낸 작품. 게다가 그 안에 우리네 사회 시스템의 문제를 준엄하게 꾸짖는 시선까지 담아놓았다.

 

'투윅스(사진출처:MBC)'

2주라는 짧은 시간을 나눠 하루를 한 회 분량으로 풀어내는 형식미는 이 드라마의 시간을 훨씬 더 숨 가쁘게 만들었고 그 2주를 끝없이 뛰어다니던 장태산(이준기) 옆에 늘 함께 하는 딸 수진(이채미)을 판타지로 엮어내는 방식은 탈주극이 가족드라마의 테두리 안에 온전히 놓여질 수 있게 해주었다.

 

어찌 보면 이 드라마는 가족의 의미라는 통상적인 메시지를 던지는 드라마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여기서 머물지 않고 범죄자의 가족, 이를테면 김선생(송재림)과 한치국(천호진), 조서희(김혜옥)와 그의 장애를 가진 아들까지 가족 이야기를 확장함으로써 그 의미를 사회적인 시각으로 넓혀놓았다.

 

즉 자신의 가족을 위해 희생하면서도 타인의 가족을 걱정하는 장태산과 그 주변 인물들(임승우(류수영) 같은)이 있는 반면, 제 자식만을 챙기려 타인을 불행에 몰아넣는 조서희 같은 인물이 있고, 뒤늦게라도 가족의 품으로 돌아온 김선생 같은 인물이 각각 사회적인 틀 안에서 가족의 진정한 의미를 되묻는다는 점이다.

 

이것은 가족주의가 가진 이중성이다. 모두가 자신 때문이 아니라 가족을 위해서였다고 말하곤 하지만 그것이 가족의 테두리 안에만 머물 때 가족주의는 가족 이기주의가 된다. 마지막 회에 이르면 <투윅스>는 그래서 가족의 범주를 확장시킨다. 수진이는 사실상 두 명의 아버지를 갖게 된 것이고 박재경 검사(김소연)는 장태산 가족과 유사가족 형태를 이룬다. 장태산에게 살갑게 같이 살지 않겠냐고 묻는 한치국 역시 또 하나의 가족인 셈이다.

 

이렇게 가족의 의미가 사회적으로 확장되자 드라마는 좀 더 사회성 있는 울림을 갖게 되었다. “내가 무서웠던 것도 니 마음이 약해서였고, 내 협박에 도망치지 못한 것도 니가 용기가 없어서였어. 선택은 니가 한 거라고 이 모자란 자식아.” 문일석(조민기)이 장태산(이준기)에게 던지는 이 말이 더 아프게 다가오는 건 5년마다 우리가 듣는 ‘선택’이라는 단어 때문이다. 조서희처럼 겉으로는 번지르르하게 저마다 국민을 외치지만 정작 국민은 없고 사적 이익만 있던 이들을 우리는 얼마나 많이 겪었던가.

 

이 모든 불행이 저들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라 우리의 선택 때문이라는 것. “뭘 시켜도 찍소리 못하는 놈”이었기 때문에 장태산의 불행이 비롯됐다는 문일석의 비아냥은 그래서 그저 드라마의 한 대사로 여겨지지 않는다. 조서희라는 악역이 권력이 목표가 아니라 돈이 목표라는 건 우리를 더 암울하게 만든다. 권력이야 5년의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지만 그렇게 착복된 돈은 두고 두고 서민들의 등골을 휘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 문일석의 비아냥은 그래서 장태산을 변화하게 하는 동기가 되었다. 도망치기만 하던 장태산이 공세적으로 돌변해 문일석과 조서희 일당을 압박하게 됐던 것. 결국 마지막에 문일석과 장태산이 정 반대의 입장으로 바뀌었을 때 장태산은 자신의 선택이 용기가 없어서가 아니라 주변 사람들이 다치는 걸 걱정해서였다고 말한다. 하지만 장태산도 이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들도 이 이주 간의 경험을 통해 알게 되었을 것이다. 그 주변사람을 진정 걱정한다면 제대로 된 선택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것을.

 

이토록 긴박한 탈주극에 이처럼 뭉클한 가족극이면서 동시에 이토록 날카로운 사회극을 한 작품 속에 녹여낼 수 있었던 건 결국 소현경이라는 작가 덕분이다. 이 작품을 쓴 소현경 작가는 이제 확실한 자기만의 작품 세계를 구축했다고 여겨진다. 주말드라마이면서도 미니시리즈의 긴박감을 엮어냈던 <찬란한 유산>으로 비로소 주목을 받기 시작한 그녀는 <검사 프린세스>, <49일> 같은 밀도 있는 작품실험을 거쳐 <내 딸 서영이> 같은 국민드라마를 만들어냈지만 진정한 성취는 <투윅스>를 통해 이뤘다 여겨진다.

 

<내 딸 서영이>가 익숙한 가족드라마 속에서 특별한 지점들을 뽑아낸 작품이었다면 <투윅스>는 낯선 설정 속에서 익숙함을 균형 있게 맞춘 작품이라는 점에서 진일보한 것이다. 물론 시청률에서야 <내 딸 서영이>와 비교할 수 없는 것이지만 이런 실험적인 시도로 10% 시청률을 유지했다는 것은 놀라운 필력이 아닐 수 없다. 이것은 소현경 작가 특유의 균형감각 덕분이다. 이 작가는 보편적인 시청층이 요구하는 드라마적 설정들(가족 설정 같은)마저 장르 속에 잘 녹이는 특별한 능력을 가졌다.

 

좋은 드라마는 좋은 배우를 만든다. <투윅스>의 거의 모든 배우들이 호연을 펼쳤지만 그래도 이 드라마의 중심을 만든 인물을 꼽으라면 단연 이준기와 조민기를 말할 수 있을 게다. 이준기는 이 드라마를 통해 확실히 자신의 연기 영역을 넓혀놓았다. 아빠 연기를 제대로 소화해낸 이준기는 이제 좀 더 폭넓은 연기자의 세계로 들어오게 되었다. 한편 이 드라마의 사실상의 힘을 만들어낸 조민기의 악역 또한 상찬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두 연기자의 팽팽한 대결이 있어 <투윅스>는 긴장의 끈을 놓치지 않을 수 있었다.

 

동시간대 시청률 2위로 종영했지만 <투윅스>는 2등짜리 드라마가 아니었다. 대본과 연출과 연기가 그렇고, 작품성과 대중성을 함께 가져간 점도 그러하며 또한 드라마가 던지는 사회적 메시지 역시 결코 작다 할 수 없었다. 시청률을 무시할 순 없지만 시청률만을 위해 만들었다면 아마도 이처럼 많은 성취들을 이룰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투윅스>는 진정 다 가진 드라마였다.

<투윅스>, 떨어져 있어도 늘 함께 라는 것

 

<투윅스>는 전쟁 같은 삶을 살아내는 우리네 가장들을 위한 헌사다. 문일석(조민기)과 조서희(김혜옥)처럼 많이 가진 자들은 더 많이 가지기 위해 서민들을 짓밟고 그것도 모자라 누군가 대신 죗값을 치를 희생양을 요구한다. 장태산(이준기)처럼 몸뚱어리 하나밖에 없는 서민들은 그렇게 희생당한다. 가진 자들은 더 많이 가지고 없는 자들은 더 살기 힘겨워진다.

 

'투윅스(사진출처:MBC)'

장태산의 딸 수진(이채미)은 “아빠가 슈퍼맨처럼 나타나서 수진아 그랬어. 그랬더니 그 친구라고 거짓말한 나쁜 아저씨가 도망쳤어”라고 엄마 인혜(박하선)에게 말한다. 딸의 말처럼 장태산은 달라졌다. 과거처럼 자책 속에서 자신을 벌주듯 하루하루를 살아가던 그가 더 이상 아니다. 이 전쟁 같은 삶에서 늘 당하기만 하던 장태산이 갑자기 슈퍼맨처럼 강해진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그에게 갑자기 자신이 지켜야할 가족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장태산이 문일석처럼 잔인한 일당들과 조서희처럼 권력을 쥐고 있는 인간과 맞서 싸울 수 있었던 것이 가족의 힘이라는 건 이 드라마의 서로 다른 두 축의 이야기를 하나로 묶어낸다. 즉 <투윅스>는 이 주라는 정해진 시간 동안 장태산이 자신을 죽이려는 문일석과 조서희 일당으로부터 도주하고 그들과 맞서는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장태산이 가족에게 한 걸음씩 돌아가는 그 길을 보여주는 이야기다.

 

<투윅스>의 가장 빛나는 설정은 쓰러지고 피투성이가 되는 전쟁 같은 도주 상황에서 장태산에게 마치 꿈을 꾼 것처럼 수진의 환영이 나타나 말을 거는 장면이다. 이 장면은 장태산이 힘겨운 날들을 버텨낼 수 있는 자그마한 휴식이자, 그가 더 강해질 수 있는 모티브가 된다. 가족의 힘이란 이처럼 멀리 떨어져 있어도 그 사람에게 말을 걸고 더 강하게 해줄 수 있는 놀라운 마법을 발휘한다.

 

또한 가족은 에둘러 이야기해도 서로의 마음을 읽는 놀라운 소통의 능력을 보여준다. 문일석에게 납치당한 인혜가 영상통화를 통해 자신이 있는 위치를 눈동자를 통해 알리자 그것을 장태산이 척척 알아채는 장면이나, 아빠가 수술 날에만 갈 것이며 그 전에는 못 간다는 말을 똑똑히 기억한 딸 수진이 자신을 납치하려는 문일석으로부터 도망치는 장면은 이 가족이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마음을 읽어내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딸 수진은 아빠 장태산에게 자신이 쓴 글을 보여주며 말한다. “아빠 생일 축하해요. 낳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마도 이 말은 자신이 태어난 것조차 잘못처럼 생각하며 살아온 장태산에게는 축복 같은 말이었을 게다. 그 한 마디를 듣기 위해 어쩌면 이 땅의 가장들은 그렇게 버텨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환하게 웃는 아이를 보며 장태산은 그래서 이렇게 속으로 기쁨에 차서 말한다. ‘이 아이가 나를 보고 웃는다. 웃어준다.’

 

추석이면 고향을 찾는 우리네 마음이 장태산 같을 것이다. 그렇게 누군가를 찾아가는 길과 그 누군가와 또 헤어지고 돌아오는 길은 적어도 자신의 마음 속에 자신을 버텨내게 해주는 그 누군가를 떠올리는 시간이기도 했을 테니까. 그 누군가와 함께 있거나 아니면 혹 떨어져 있어도 우리는 늘 함께 라는 것. 추석에 방영된 <투윅스>는 이처럼 그 의미가 더 새록새록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남은 추석 연휴, 떨어져 있어도 늘 함께 있는 그 누군가와 행복한 시간되시길.

<투윅스>가 보여준 이준기의 특별한 연기영역

 

이준기는 온 몸으로 연기하는 연기자다. 물론 모든 연기자들이 그렇겠지만 특히 이준기의 연기 속에서는 그의 몸이 부서질 듯 애처로워지는 지점이 있다. <왕의 남자>에서 여성성을 가진 공길이라는 인물이 그토록 처절하게 여겨졌던 이유는 줄 위에 자신을 세우는 몸의 연기가 보여주는 진정성이 거기에 담겨져 있었기 때문이다. <개와 늑대의 시간>에서 눈에 핏발이 서가며 이중적으로 갈라져버린 자신의 존재를 온 몸으로 고통스러워하던 이준기의 모습은 또 어떻고. 이준기는 실로 그 몸의 진정성이 가진 힘을 아는 연기자다.

 

'투윅스(사진출처:MBC)'

그래서 <투윅스>에서 그가 연기하는 장태산이라는 인물은 이준기가 가진 몸의 진정성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캐릭터처럼 보인다. 첫 회부터 온 몸에 피칠갑을 하고 도망자가 된 장태산은 온 몸이 깨지고 넘어지고 심지어 총에 맞고 물로 떨어지며 도망치기 위해 빨대 하나를 입에 물고 흙 속에 묻히는 그런 캐릭터다. 산 속을 뛰는 장면이나 거친 물살의 계곡물에 휩쓸려 내려가는 장면은 그래서 마치 진짜 사나이들의 야전훈련을 보는 느낌이다.

 

신출귀몰할 정도로 포위망을 빠져나가면서도 장태산이라는 인물이 그저 신창원 같은 희대의 탈주범으로 느껴지지 않는 건 이 몸의 절실함에 덧대진 이준기의 섬세한 내면 연기가 있기 때문이다. <추적자>의 백홍석(손현주)과 비교되는 <투윅스>의 장태산이라는 인물의 변별성은 전자가 말 그대로 추적자인 반면(물론 그래도 쫓기는 인물이 되지만), 후자는 도망자라는 데서 나온다. 추적자가 숨겨진 진실을 파헤치는 쪽에 더 집중한다면, <투윅스>는 그가 왜 도망치게 되었고 왜 살아남으려 안간힘을 쓰는가에 더 집중한다.

 

온 몸이 땀으로 흥건한 이준기의 눈에서 남모르게 쉴 새 없이 흐르는 눈물은 그래서 이 드라마의 핵심적인 주제의식을 내포한다. 그는 왜 필사적으로 도망쳐야만 하는 것일까. 그것은 표피적으로는 보스 문일석(조민기)이 그를 살인자로 누명을 씌우고 그것도 모자라 그를 죽이려 하기 때문이지만, 그 이면에는 문일석과 조서희(김혜옥) 변호사 간의 추악한 거래가 담긴 증거를 그가 갖고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즉 이 부분에서 서민과 권력자 간의 대결구도가 만들어진다. 가진 것 없는 이들은 살인자로 몰려 단 2주도 살기 힘든 세상이다.

 

그런데 <투윅스>는 <추적자>가 가진 사회의 부조리에 대한 분노와 대결보다는 한 개인의 가족애에 더 초점이 맞춰져 있다. 장태산이 끝없는 도주 속에서 그 힘겨움을 버텨낼 수 있는 유일한 이유는 자신이 지켜야할 가족이 있기 때문이다. 장태산은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백혈병에 걸린 딸에게 골수이식을 해줘야 할 몸이다. 그러니 살뜰하게 상처난 곳을 덧나지 않게 살피는 것도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딸을 위해서이고, 그가 단 2주만이라도 버텨내야 하는 것도 모두 딸을 살리기 위함이다. 거기에 자신의 자리 따위는 없다.

 

이준기의 땀과 눈물이 범벅이 된 몸은 그래서 그 어떤 통렬한 비판보다도 더 절절하게 사회의 부조리를 에둘러 말해주기도 한다. 그것은 바로 우리네 가장들의 모습이 아닌가. 온 몸이 부서져라 하루를 보내고 남 모르는 눈물을 흘리면서도 버텨내고 또 버텨내는 건 자신을 기다리는 가족이 있기 때문이다. 잘못된 시스템 속에서 심지어 소모되는 삶을 살아간다고 해도 가족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감당하는 장태산 같은 가장이 그 땀과 눈물로 뭉클해지는 건 그 때문이다.

 

<투윅스>라는 제목은 그래서 이 우리네 시스템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가장의 의미를 떠올리면 지금의 현실이 얼마나 힘겨워졌는가를 에둘러 말해준다. 단 2주다. 단 2주를 버텨내기 힘든 현실. 이준기라는 연기자는 그래서 이 2주 간의 버텨냄을 자신의 온 몸으로 보여주는 중이다. 드라마를 보며 가끔씩 울컥하는 마음이 들었다면 그것은 이준기의 몸이 말해주는 그 진정성을 느꼈기 때문일 게다. 그런 점에서 <투윅스>는 이준기라는 연기자의 특별한 영역을 제대로 드러내주는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준기, 서민으로 돌아와 영웅이 된다

이준기는 한때 꽃미남 이미지로 소비됐다. ‘왕의 남자’에서 공길이라는 역할을 하면서 갖게 된 중성적인 이미지 때문이었다. 실제로 그것 때문에 이준기의 중성적 매력은 광고를 통해 확장되었다. 하지만 이것은 이준기가 바랐던 것도 아니고 본래 갖고 있던 색깔은 더더욱 아니었다. 그것은 상품 광고가 공길이라는 인물을 그저 여장을 한 남자로만 바라보면서 생긴 이미지의 오해였다. 공길은 여장 남자라는 표피를 떼어내고 보면 거기 서 있는 것은 정확히 우리네 민초의 자화상이다.

‘개와 늑대의 시간’은 그러니까 이준기에게 덧씌워진 불편하기 짝이 없는 중성적인 꽃미남의 이미지를 떼어내는 시간이었다. 눈에 핏발이 잡힐 정도로 내면 속에 숨겨진 야수성을 끄집어내는 과정은, 이준기가 스타라는 겉 이미지를 찢어내고 연기자라는 본래의 스펙트럼 속으로 들어오는 시간이 되어주었다. 그리고 그가 다시 돌아간 곳은 바로 그 민초들의 세계였다.

‘일지매’에서 본래 양반의 서자에서 서민의 아들로 내쳐진 뒤, 거기서 다시 일지매라는 서민들의 영웅으로 탄생하는 과정은, 재미있게도 바로 이준기의 변화과정을 미리 예고한 듯 보인다. 화려하지만 허황된 스타의 세계에서 소박하지만 진실된 연기자의 세계로 넘어온 그는 잰 체 하지 않으면서 늘 서민들의 옆자리에서 너스레를 떠는 서민 영웅의 자화상을 그려낸다. 그리고 새로 시작하는 드라마는 제목 자체가 ‘히어로’다.

현대판 일지매를 떠올리게 하는 제목 때문일까. ‘히어로’는 시작 전부터 ‘서민적인 영웅’의 모습을 기대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과연 칼 대신 펜을 들고, 대도의 근성 대신 올곧은 기자정신을 갖고 있는 도혁(이준기)은 진짜 일지매와 판박이일까. 비슷해 보이지만 다른 점이 있다. 그것은 일지매는 평범을 가장하지만 그 면모는 실제 영웅인 반면, 도혁은 우리와 다를 바 없는 그저 평범한 인물일 뿐이라는 점이다.

그는 실제로 삼류 잡지사의 기자이고, 그가 쓰는 기사는 실제로도 자극적인 그저 그런 기사들이다. 결국 그 잡지사는 문을 닫게 되고 그래서 다시 세우게 된다는 신문사 역시 뭔가 대단한 사회 정의의 뜻을 갖고 세우는 그런 회사가 아니다. 그저 먹고 살기 위해 하는 일들이다. 그런데 왜 ‘히어로’일까. 도대체 어떤 면이 도혁을 영웅이라 칭하게 하는 것일까.

그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이 지극한 평범함조차 비범하게 만들어버리는 썩어버린 사회다. 도혁은 그저 정상적으로 평범하게 살아가려 하지만, 세상이 그를 가만 놔두질 않는다. 대세일보라는 거대 언론사의 기자라는 강해성(엄기준)은 대세그룹이라는 기업의 뒤를 봐주는 역할을 할 뿐, 그로인해 피해를 보게 되는 서민들에게는 관심조차 없다. 진실? 돈과 권력 앞에 거짓과 자리바꿈하기 일쑤다. 그러니 그 속에서 피해를 겪게 되는 도혁은 그저 정상적으로 진실을 진실이라고 말하는 일을 할뿐이다.

이 평범한, 아니 심지어는 지질해보이기까지 하는 한 인물이 영웅이 되는 이야기는 거꾸로 평범함이 통하지 않는 세상을 통렬하게 그려낸다. 따라서 '히어로'는 이제 '일지매'를 통해 서민들의 영웅으로 자리한 이준기가 온전히 특별한(?) 서민의 모습으로 돌아오는 작품이 될 것이다. 그러니 이 서민적인 영웅을 통해 이준기에게서 기대하게 되는 것은 따뜻한 면모다. 어딘지 가볍게도 느껴지고, 때로는 초라하게도 보이지만 그래도 모든 낮은 사람들에게 던지는 따뜻한 관심. 이것이 영웅을 잃어버린 시대, '히어로'가 말하는 영웅이다. 그리고 이것은 또한 서민적 이미지로 돌아와 오히려 영웅 그 이상의 매력을 보이게 된 이준기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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