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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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글들/드라마 곱씹기

주말극, 멜로를 보면 드라마가 보인다

D.H.Jung 2009. 11. 23.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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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극을 이끄는 세 커플, 삼색멜로

주말극의 경쟁은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해졌다. 한때 주말극이 전체적인 침체기를 겪었던 것과는 대조적인 양상. 이처럼 주말극이 격전장으로 바뀔 정도로 전성기를 구가하게 된 것은 보수적인 시청층의 눈높이에 맞춘 드라마들이 대거 포진하면서부터다. 이제 주말극은 마치 시간을 돌려놓은 듯한 가족드라마들이 자리하고 있다. 그리고 이 가족드라마가 갖는 안정적인 재미 위에 극성을 끌어올리는 멜로를 빼놓을 수 없다. 저마다 다른 멜로의 양상은 그 드라마의 성격까지 읽게 해준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수상한 삼형제'의 김이상(이준혁)과 주어영(오지은)의 멜로를 일차적으로 끌어올린 장본인은 그 사이에 끼어들어 훼방을 놓는 왕재수(고세원)다. 5년 간 사귀었지만 검사가 되자 가차 없이 주어영을 차버리고 자신은 결혼할 여자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갖고 노는 왕재수는 시청자들의 공분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재수없는 왕재수의 정반대 위치에 서 있는 김이상의 이상적인 모습은 그를 주어영의 구원자로 만들어놓았다. 결국 양다리가 탄로난 왕재수가 물러나게 되지만, 상황은 여기서 그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주어영의 아버지인 주범인(노주현)이 과거 사기 전력이 있는 인물이고, 김이상의 아버지인 김순경(박인환)이 경찰이기 때문.

이처럼 '수상한 삼형제'의 멜로는 인위적인 느낌을 준다. 왕재수의 행동이 이해할 수 없는 범죄적 성격을 갖는다는 점은 상식적인 눈으로 바라보는 시청자들의 분통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하필 이 남녀의 아버지들이 쫓고 쫓기는 사이인 것 역시 그렇다. 물론 이러한 인위적인 장애요소들은 가족드라마의 장르적 성격상 늘 세워지는 것들이다. 하지만 그 선을 어느 정도까지 가느냐 하는 것은 다르다. '수상한 삼형제'는 이 멜로를 통해서 볼 수 있듯이 따뜻함을 희구하게 되는 가족극과, 자극으로 치닫는 막장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는 드라마다.

한편 '천만번 사랑해'의 백강호(정겨운)와 고은님(이수경)의 멜로는 지극히 고전적이다. 아버지를 살리기 위해 대리모를 하게 되고 다시는 사랑을 할 수 없다고 절망하는 고은님을 백마탄 왕자 백강호가 지켜주는 이야기. 여기에 가미되는 백강호와 배다른 형제지간인 백세훈(류진) 간에 벌어지는, 위기에 빠진 가업 살리기의 이야기 역시 전형적이다. 계모 아래서 차별대우 받는 이야기와 사랑의 구원 이야기는 신데렐라 그대로이며, 결혼을 반대하는 남자측 가족들의 이야기는 신파 드라마의 전형이다.

하지만 이 전형적이고 고전적인 이야기가 가진 힘은 의외로 크다. 굳이 새로운 이야기로의 변주를 하지 않아도 신데렐라라는 고전적 틀 속에서 은님을 지켜주고픈 마음은 강호라는 왕자를 희구하게 만든다. 꽤 자극적인 설정으로 치달을 것 같지만 드라마는 의외로 따뜻한 구석을 비춰준다. 은님에 대한 따뜻한 시선은 돈으로 뭐든 움직일 것 같은 세상에 대한 반박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이 드라마는 다분히 신파로 빠져들 수 있는 상황을 갖고 있지만, 전반적으로 밝은 분위기를 연출한 것이 그 위험성을 벗어나게 해주었다. 그리고 그 힘은 결국 멜로에서 나오고 있다. 강호와 은님의 멜로가 전면에 부각되고, 심지어 난정(수진)과 이철(김희철), 청자(김청)와 봉피디(김진수)의 코믹 멜로가 전체적으로 밝은 느낌을 주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불륜 속에 헤매는 세훈(류진)과 연희(이시영)의 어두움이 상쇄되는 결과를 가져오고 있다.

'그대 웃어요'는 서로 다른 계층에 살아가는 두 가족의 한 지붕 살이에서 만들어지는 해프닝들을 다루면서 사회적으로 나뉘어진 이 계층 간의 소통을 그려내는 드라마다. 이 드라마는 제목처럼 시종일관 웃음을 주는 코믹적인 설정들이 곳곳에 들어가 있어, 극적 갈등에서조차 웃음을 뽑아낸다. 이것은 심지어 정인(이민정)을 차버리고는 다시 돌아온 한세(이규한)가 악역이면서도 웃음을 줄 정도다. 물론 이러한 웃음은 풍자에서 비롯되는 것이지만, 드라마가 인물을 바라보는 시선은 그것이 악역이라도 여전히 따뜻하다.

이 드라마에서 현수(정경호)와 정인의 풋풋한 멜로는 그저 멜로에서 머무는 것이 아니다. 이 둘의 멜로는 결국 두 가족의 통합으로 여겨질 만큼 이 드라마의 주제에 맞닿아 있다. 그만큼 장애도 많고 아슬아슬한 점이 있지만, 이것은 또한 보는 이들의 마음을 잡아끄는 힘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이 멜로가 주목되는 것은 그 긍정적인 힘이다. 서로를 이해하지 못했던 두 사람이 서로에게 "이런 나라도 되겠니"하고 물어보는 곳에서는 이 드라마가 가진 상대방에 대한 소통의 욕구를 강하게 드러낸다.

이처럼 멜로가 드라마의 어떤 성격까지를 드러내는 이유는 멜로가 가진 특유한 틀이 드라마의 주제를 엿보게 하기 때문이다. 멜로에는 늘 장애요소가 등장하기 마련인데, 이 장애요소는 결국 그 드라마의 문제제기가 되곤 한다. 즉 시어머니의 방해는 그러한 구세대적 가족제도에 대한 멜로의 문제제기가 된다. 그것을 넘어서는 과정을 멜로가 그려내기 때문이다. 주말극 속에 보여주는 이 세 커플의 멜로가 그 드라마의 성격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것은 그런 이유다. 멜로를 통해 보면 '수상한 삼형제'는 이 드라마의 인위적 성격을, '천만번 사랑해'는 고전적인 성격을, 그리고 '그대 웃어요'는 현실비판과 긍정적인 성격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