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철 입국거부, 왜 일본의 자충수일까

 

저도 송일국씨의 귀여운 세쌍둥이 이름을 불러봅니다! 대한 민국 만세~~!!!” 이승철은 자신의 트위터에 이런 글을 남겼다. 지난 9일 아내와 함께 일본 지인의 초대로 하네다 공항에 내렸지만 석연찮은 이유로 출국사무소에 4시간 가량 억류된 후 국내로 돌아온 후의 심경이었다.

 

'이승철의 독도공연(사진출처: 진앤원뮤직웍스)

소속사측이 말하는 것처럼 독도 이슈 후 첫 일본 방문이었던 이승철의 이번 일은 표적 및 보복성 입국 거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이승철은 JTBC <뉴스룸>에 출연해 이번 일을 계기로 국민 참여를 통한 독도 지킴이 행사 같은 건 좀 열심히 적극 나서야겠다는 뜻을 전했다.

 

사실 연예인들의 입국 거부 사례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11년 비스트와 씨엔블루가 비자 문제를 빌미삼아 공항에 8시간가량 억류됐던 적이 있었고, 송일국은 2012년 독도 수영횡단 프로젝트에 참여한 후 일본 외무성 야마구치 츠요시 차관으로부터 송일국은 일본에 입국하기 힘들 것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당시 송일국은 이 같은 조치에 대해 그냥 제 아들 이름이나 불러봅니다. 대한 민국 만세라는 글을 SNS에 올린 바 있다.

 

한일 관계는 늘 민감한 부분이 있어왔지만 일본이라는 시장은 우리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왔던 것이 사실이다. 한류만 하더라도 배용준 열풍으로 시작해 K팝 열풍과 장근석 열풍으로 이어지는 일본이 거의 독보적인 시장으로 자리해왔다. 하지만 아베 총리의 집권으로 인해 한일 관계가 급속도로 냉각되면서 일본의 한류도 차츰 식어가는 모양새다. 한류 드라마가 차지하는 비중은 20115.9%에서 지난해에는 4.5%까지 줄어들었다.

 

즉 이승철의 입국 거부 사건은 이미 이러한 한일 관계에 의해 틀어지기 시작한 문화 교류에서 이미 예고된 것이었다는 점이다. 물론 과거사에 대한 일본의 태도 때문에 우리에게도 일본은 가깝고도 먼 나라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최근 들어 우리네 대중문화계는 일본인들의 출연이 부쩍 잦아지고 있다. <비정상회담>의 타쿠야, <학교 다녀왔습니다>의 강남, <헬로 이방인>의 후지이 미나, <슈퍼맨이 돌아왔다>의 야노시호 등이 그들이다. 정치적으로는 민감하더라도 문화적으로는 열린 자세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승철의 입국 거부 같은 노골적인 사건은 우리의 시선을 일본에서 중국으로 자꾸만 옮겨가게 만드는 요인이 되고 있다. 이미 <별에서 온 그대><아빠 어디가>, <런닝맨> 등이 중국 내에서 한류 열풍을 만들어내고 있고, 우리의 배우들이 중국 드라마에 진출하는 것도 이제는 낯선 풍경이 아니게 되었다. 지난 10일 체결된 한 중 FTA 타결은 이러한 한중 간의 관계를 더욱 돈독하게 만들어줄 가능성이 높다.

 

이런 문화 교류의 시기에 최근 일본 정부가 보여주는 행보는 시대에 반하는 것이 분명하다. 마치 시대를 과거 6,70년대로 되돌리려는 듯한 이런 행태가 가져올 결과는 뻔하다. 그것은 고립이다. 최소한의 물꼬로서 문화의 교류는 보다 복잡한 사안들의 해결을 위해서도 허용되어야 한다. 하지만 일본 정부의 행태를 보면 하나는 알아도 둘은 모르는 유치한 수준을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아마도 일본 대다수의 국민들이 원하는 것도 아닐 것이다.

 

탈 많은 <룸메이트>, 오히려 돋보인 송가연의 진심

 

아마도 상대적으로 방송경험이 일천해서일 지도 모른다. SBS <룸메이트>의 송가연을 보다 보면 언뜻 언뜻 그녀의 진짜 얼굴이 느껴진다. 연예인들이라면 숨기고픈 얼굴이다. 그 웃는 얼굴 뒤에 드리워진 그늘. 이제 겨우 만 19세의 나이에 무엇이 이 어린 소녀의 얼굴에 그림자를 만들었을까.

 

'룸메이트(사진출처:SBS)'

<룸메이트>에서 자기 생일 때 살짝 고백한 것처럼 그녀는 고등학교 때 아버지를 여의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후로는 운동하는 형들(?)이 가족처럼 자신을 챙겨줬다고. 이런 사연 때문인지 그녀가 그토록 앳된 얼굴과 달리 험악한 격투기에 몰두하는 모습을 보면 어딘지 슬픈 느낌이 든다. 마치 그런 육체적인 고통 속에서 있어야 현실의 아픔이 잊혀지는 듯한 절실함이 거기서 느껴지기 때문이다.

 

<룸메이트>는 사실 그다지 성공적인 프로그램이 되지 못하고 있다. 대안적인 삶의 방식으로 홈 쉐어 문화를 기치로 내걸었지만 시청률이 뚝 떨어지면서 자꾸만 인위적인 재미를 가미하려는 제작진이 문제의 원인이다. 쓸데없이 몰래카메라를 하고 편집해야 될 부분을 버젓이 내놓아 논란을 만들기도 하는 통에 프로그램의 진정성이 훼손될 대로 훼손되어버렸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송가연의 모습은 가식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꾸밈이 없다. 처음 함께 사는 집에 들어왔을 때, 파이터 형들과 지내던 습관 그대로 군대식 말투를 벗어버리지 못했던 모습이 그렇고, 남자들이 로우킥을 날려달라고 하면 적당히 해줄 만도 한데 오히려 진지해지는 모습이 그랬다. 생일에 자신을 챙겨주는 이소라에게 울컥해 그녀를 꼭 껴안는 모습에서는 이 어린 소녀가 얼마나 가족에 대한 아픔과 그리움이 있는가를 잘 보여주었다.

 

그리고 이런 모습은 <룸메이트>라는 프로그램의 정체성에 가장 부합한 모습이기도 하다. 모두가 가족을 떠나와 혼자 살아가는 외로운 도시인들이 함께 모여 대안적인 가족의 정을 찾는 것. 이것이 공동주거가 갖는 문화적인 의미일 수 있다. 송가연의 때로는 어눌하고 항상 타인의 기색을 살피는 모습에서는 그녀의 관계에 대한 갈증을 느끼게 된다. 설거지를 늘 자기가 한다며 투덜대는 박민우 옆에서 어쩔 줄 모르고 앉아 있는 송가연은 어찌 보면 늘 벌 받듯 살아가는 어린 아이를 보는 듯한 느낌을 만들었다.

 

그런 그녀의 격투기 프로데뷔전은 그래서 더더욱 큰 의미로 다가온다. 육체적인 고통 속에 자신을 밀어 넣을 정도로 간절해진 그 마음이 그 프로데뷔전을 통해 어떤 식으로든 폭발할 것 같은 기대감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이번 <룸메이트>의 일본 방문편에서도 단연 주목된 것은 세계 챔피언 홍창수 선수 앞에서 그녀가 보인 파이팅이다. 어깨 부상으로 무리하면 안 되는 상황이었지만 그녀는 결국 홍창수 선수와 함께 진지한 스파링을 펼치며 한 수 배우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사실 말을 많이 한다고 또 나서서 자꾸만 뭔가를 하려 한다고 해서 그 사람의 진심이 드러나는 건 아니다. 그것은 평상시에 했던 일관된 습관이나 자기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드러나는 표정, 그리고 말보다는 몸이 전하는 진정성을 통해 전해지기 마련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룸메이트>에서 송가연이라는 진심 하나는 확실히 얻었다고 말할 수 있다. 다부지게 앙다문 입으로 애써 웃는 모습 속에는 그녀의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과 가녀린 소녀지만 무언가 한계를 뛰어넘고 싶은 강한 의지가 엿보인다. 그 얼굴이 진심으로 활짝 웃는 날이 오기를.

 

프로답지 못한 카라, 언제까지 사과만 할건가

 

걸 그룹 카라의 니콜은 소속사인 DSP미디어와 재계약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지만 카라 활동은 계속 하고 싶다는 의견을 내비쳤다. 소속은 아니지만 함께 활동하고 싶다는 것. 이것을 니콜은 “카라로서의 재계약이 아니라 아티스트로서의 소속계약”이라고 표현했다. 즉 니콜은 소속사 계약에서 벗어나 자신을 위한 시간을 가지면서 동시에 카라 활동도 하겠다는 얘기다.

 

'카라(사진출처:DSP미디어)'

심정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건 아니지만 니콜의 이 이야기는 현실성은 그다지 없다고 여겨진다. 즉 1년 내내 스케줄이 빡빡하게 잡혀있는 카라에서 니콜 혼자 자유로운 활동을 한다는 것은 사실상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즉 이 이야기는 현실적으로 그렇게 하겠다는 것이라기보다는 카라 탈퇴 발표로 난감해진 니콜의 입장을 심정적으로 토로한 것에 불과하다. 즉 마음은 ‘카라와 영원히’지만 자신은 자신의 길과 카라 활동을 동시에 하고 싶다는 것이고 그것이 불가능하다고 여긴다면 혼자 활동하겠다는 것. 즉 자신이 들고 있는 뜨거운 공을 카라 소속사에게 넘긴 것이나 마찬가지다.

 

물론 니콜의 탈퇴가 팬들 입장에서 보면 안타까운 일이긴 하지만 니콜이 스스로 자신만의 길을 걷겠다는 것이 그다지 잘못된 일은 아니다. 한번 소속이라고 영원히 그 틀에만 묶여 살라는 법이 어디 있나. 그러니 니콜이 절실하게 독자노선을 원한다면 정확하게 선을 긋는 자세가 오히려 프로다운 선택이다. 물론 후에 카라의 공연에 니콜이 콜라보레이션 형태로 함께 설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맺고 끊는 것에 있어서는 좀 더 명쾌해질 필요가 있다.

 

카라는 이전에도 거의 해체 수준의 분열을 겪은 적이 있다. 그 때도 이상하게 여겨졌던 것은 카라 멤버 그 누구도 분열을 원치 않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잔류하는 두 사람과 나가려는 세 사람으로 나뉘어 무수한 뒷이야기들이 쏟아졌다. 결국 멤버로서의 문제라기보다는 매니지먼트와 소속사의 문제 때문에 불거진 일이라는 점. 크게 보면 카라의 문제는 역시 소속사와의 관계나 수익배분 등의 문제와 얽혀있다.

 

흥미로운 건 이러한 카라를 바라보는 국내의 시선과 일본의 시선이 정반대라는 점이다. 국내에서는 카라의 이런 연거푸 벌어지는 해체 이야기에 냉랭한 반응이다. 이전 <라디오스타>에서 애교를 보여 달라는 말에 눈물을 흘린 것에 대해서 ‘프로답지 못하다’는 비판이 쏟아진 것은 그 사안 자체에서 비롯됐다기보다는 카라에 대한 국내의 시선이 그만큼 차가운데서 비롯된 일이다. 이것은 독도 발언 문제가 터졌을 때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일본 팬들은 이번 사태에 대해 심지어 니콜의 카라 잔류를 희망하는 릴레이 서명운동까지 하고 있는 상황이다. 일본 공연에서 구하라가 “걱정 끼쳐드려 죄송하다”는 말을 한 것을 갖고도 국내에서는 “일본만 팬이냐”는 식의 비난이 나오고 있지만 일본의 분위기는 사뭇 다른 듯하다. 국내에서도 사실상 니콜이 팬들에게 죄송하다는 이야기를 한 것이 사실이지만 이런 식의 비난이 나오는 것은 그만큼 카라에 대한 반감이 정서적으로 깔려 있다고 여겨진다.

 

이렇게 국내와 일본의 반응이 사뭇 다르게 된 것은 카라의 활동이 사실상 일본을 주무대로 하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물론 국내에서 활동을 하지 않는 건 아니지만 수익의 거의 대부분은 일본에서 압도적으로 거둬들이고 있다. 그만큼 외화벌이를 하고 있다는 것이니 이것은 결코 나쁜 일이 아니다. 그런데 왜 카라의 해체설이 나올 때마다 국내 팬들은 차라리 일본에서나 활동하라는 식으로 냉담한 반응을 보일까.

 

어쩌면 이것은 카라가 한일 정서의 프레임 속에서 비춰지고 있기 때문일 게다. 그저 한 아티스트의 해외 활동으로 여겨져야 할 일이 마치 일본에 맞춰진 그룹처럼 비춰지게 된 것은 이처럼 거대해진 팬덤을 가진 카라의 관리가 체계적으로 이뤄지지 못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어쨌든 이런 정서 속에서 니콜의 탈퇴는 카라에 대한 국내의 반응을 더욱 악화시키는 계기를 만들었다.

 

니콜이 탈퇴하든 아니면 따로 또 같이 카라 활동을 병행하든 그간 벌어진 일련의 사태들을 보아온 대중들에게 카라는 어딘지 프로답지 못한 인상을 만들었다. 늘 “죄송하다”고 사과하는 모습만 반복되고 있는 건 대중들에게도 어떤 피로감을 남긴다. 게다가 이 정서에 한일 정서의 프레임까지 덧붙여지면 문제는 더 복잡해진다. 좀 더 쿨해질 필요가 있고 명쾌해질 필요가 있다. 어차피 갈라지기로 마음먹은 이상, 팬들은 어떤 식으로든 상처받을 수밖에 없다. 적어도 애매모호한 입장으로 팬들을 더 깊은 혼란에 빠뜨리지 않는 게 진정한 팬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

<수상한 가정부>, 설마 일본 시청자만 겨냥한건가

 

그래도 우리나라에서 다시 리메이크한 것이니 최소한 우리식의 정서 변환은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SBS 드라마 <수상한 가정부>는 도무지 우리 정서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설정과 상황들이 난무하는 드라마가 되어가고 있다. 원작인 일본드라마 <가정부 미타>를 보지 않았다고 해도 <수상한 가정부>에 등장하는 장면들 곳곳에서 일본식의 정서를 느낄 수 있을 정도다.

 

'수상한 가정부(사진출처:SBS)'

먼저 이 드라마의 은상철(이성재)이라는 아빠 캐릭터는 우리에게는 일반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인물이다. 자신의 불륜으로 아내가 자살을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여자에 대해 순정에 가까운 연정을 보여주는 캐릭터. 심지어 이 사실을 아이들이 알게 되어 집밖으로 쫓겨나다시피 했지만(이런 설정도 이해하기 힘들지만) 그는 여전히 그녀를 잊지 못하는 그런 인물이다.

 

이런 캐릭터라면 응당 우리네 정서로 보면 악역(가정을 파괴하는)으로 그려져야 공감이 갈 것이다. 하지만 그는 이 와중에도 아이들을 살뜰히 챙기고 걱정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물론 여자와 아이들 사이에서 우유부단하고 갈팡질팡하는 캐릭터가 현실적이지 않다는 것이 아니다. 다만 우리네 정서에서 이런 가장의 모습이 낯설게 다가오기 때문에 은상철이라는 캐릭터에 공감하기가 어렵다는 얘기다.

 

물론 더 극단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캐릭터는 이 드라마의 주인공인 박복녀(최지우)다. 분명 과거에 엄청난 사건을 겪고 그 후유증으로 전혀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인물이 되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녀가 아이들을 대하는 태도는 지나치게 극단적이다. ‘시키면 뭐든지 한다’는 것이 캐릭터지만 그래도 어떤 정서적인 선이라는 것이 있게 마련이다.

 

죽은 엄마를 잊지 못하는 혜결(강지우)이 엄마한테 가자고 하자 엄마가 자살한 강물로 그녀를 데리고 들어간다거나, 이제 성에 눈을 뜬 두결(채상우)이 “그것도 할 수 있냐”고 하자 아이 앞에서 옷을 벗는다거나, 한결(김소현)이 망가지겠다며 가출을 할 때 “잘 다녀오십시오”라고 얘기한다는 건 우리네 정서로서는 공감하기가 힘들다.

 

감초 같은 캐릭터로 말 많은 옆집 아줌마인 어진 엄마(방은희) 역시 지나치게 과장되어 있어 억지스럽게 여겨진다. 망원경으로 사람들을 관찰하는 행동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그 집 분위기도 이상하고 지나치게 상철의 집에 관심을 보이고 이상한 소문을 퍼트리고 다니는 것도 정상적이라 생각되지 않는다.

 

문제는 캐릭터만이 아니다. 특정한 상황 속에서 인물들이 하는 행동들 역시 우리 정서와는 잘 맞지 않는 부분이 많다. 정상적인 부모나 할아버지가 아이의 뺨을 때린다거나, 왜 등장했는지 모르겠지만 우연히 이제 열다섯인 두결이 가정부 박복녀의 가슴을 만지게 된다거나, 한결이 망가지겠다며 가출해서 혼자 살고 있는 수혁(서강준)의 집을 찾아간다거나 하는 설정들은 우리 정서에서는 그다지 공감가지 않는 부분들이다.

 

그렇다면 이것은 이 드라마의 원작인 <가정부 미타>에서 상당 부분 그대로 가져온 결과일 것이다. 왜 우리나라에서 방영되는 드라마에 우리 정서에 맞는 리메이크 과정이 없이 일본 정서에나 받아들여질 내용들이 그대로 보여지고 있는 걸까. 이것은 일본에서도 성공했으니 국내에서도 성공할 거라는 안이한 기획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고, 어쩌면 <가정부 미타>가 갖고 있는 자극적인 설정들을 과감히 버리지 못한 데서 생겨난 문제일 수도 있다.

 

그 이유가 무엇이든 <수상한 가정부>가 일본식 정서를 그대로 담은 채 국내에서 방영되고 있다는 것은 대단히 수상하다고밖에 볼 수 없다. 최지우를 굳이 캐스팅한 것에서 느껴지듯이 혹 이 드라마는 우리가 아니라 아예 대놓고 일본을 겨냥한 건 아니었을까. 과거 일본에 한류 드라마들이 퍼져나갔을 때 적당한 한류스타를 세워 마구 만들어짐으로써 한류에 오히려 먹물을 뒤집어쓰게 했던 그런 식의 드라마제작이, 최근 들어 점점 많아지고 있는 일드 리메이크의 역수출에도 적용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어 우려스럽기 그지없다. 이런 식의 접근은 성공하기도 어렵고 심지어 한류 드라마의 위상마저 깎아먹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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