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 트렌드의 변화, 스타 MC 모두의 문제

 

MBC <별바라기>가 조기종영을 결정하면서 강호동 위기론이 나오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다시 복귀한 후 그가 한 예능 프로그램들의 성적표는 거의 바닥이다. MBC <무릎팍도사>가 폐지됐고, KBS <달빛프린스>SBS <맨발의 친구들>도 모두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헤매다 종영됐다. 그나마 KBS <우리동네 예체능>이 그의 주특기인 운동을 살려 버텨내고 있지만 계속되는 프로그램의 종영은 그에게도 큰 부담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별바라기(사진출처:MBC)'

하지만 결론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이건 강호동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최근 벌어지고 있는 예능 트렌드의 변화는 한 때 스타로서 정상에 군림하던 MC 파워를 바닥으로 떨어뜨렸다. 최정상의 스타MC인 유재석도 이 흐름에서 결코 안전한 상황이 아니다. 그가 새롭게 이끌고 있는 KBS <나는 남자다>는 겨우겨우 5%대의 시청률을 버텨낼 뿐 이렇다 할 파괴력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유재석 스스로도 이런 식으로는 시즌2가 쉽지 않다고 말할 정도다.

 

SBS <런닝맨>도 위기다. 그래도 10%대를 유지했던 <런닝맨>은 최근 6%까지 시청률이 떨어졌다. 반면 동시간대 MBC <진짜사나이> 여군특집이 20%에 육박하는 시청률을 낸 것을 염두에 둔다면, 유재석이 이끄는 <런닝맨>의 추락은 현재 스타MC 파워가 과거에 비해 별 효과를 내지 못한다는 걸 잘 말해준다. 걸스데이 혜리의 3초 앙탈 하나가, 또 저질 체력의 여전사(?) 김소연의 악바리 정신 하나가 그 어떤 스타 MC들의 팬덤보다 더 힘이 세졌다는 것이다.

 

이런 사정은 신동엽이나 김구라 같은 진행형 MC들도 마찬가지다. 그나마 이 두 MC는 비지상파 예능 프로그램에서 새로운 트렌드에 동승함으로서 타 스타 MC들보다 상대적으로 위기감이 덜할 뿐이다. 하지만 지상파 예능프로그램에서 이들의 영향력은 확연히 줄어들었다. 김구라가 출연하지만 3%에 머물고 있는 SBS <매직아이>는 대표적이다.

 

즉 강호동의 위기는 강호동만의 문제가 아니라 스타 MC들 전체가 겪는 문제라는 점이다. 다만 그가 더 위기처럼 도드라져 보이는 건 잠정은퇴 선언을 하면서 과거 그가 했던 프로그램과 단절됐기 때문이다. 그래서 계속 새로운 프로그램을 런칭했지만 마침 그 시기는 스타 MC 파워가 점점 사라지는 시점이었다. 일반인들이 점점 예능의 자리를 채우기 시작했고(외국인도 그 범주의 하나다), 연예인들도 하나의 리더를 중심으로 흘러가기 보다는 각개전투 하는 모습으로 변모했다. 이러니 하나의 꼭지점으로서 전체를 리드하던 스타 MC들의 영향력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스타 MC들의 영향력이 줄어드는 건 최근 예능의 새 트렌드로 자리한 관찰카메라가 가진 특징을 통해서도 쉽게 드러난다. 즉 관찰카메라는 그 자체로 중심이라는 것이 있을 수 없다. 전후좌우 도처에 숨겨져 각각의 인물들의 행동을 찍어내는 것이기 때문에 이런 구도에서는 도드라진 스타 MC들이 불필요해진다. 다만 각자 가진 자신들의 진짜 매력을 숨겨진 카메라를 통해 보여줄 뿐이다.

 

토크쇼 같은 스튜디오 예능이 점점 힘이 빠지는 건 이런 관찰카메라의 시선이 만들어낸 수평적인 느낌과 진정성의 강도를 이들 스튜디오 예능에서 발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스튜디오 예능은 그 구조상 카메라가 중심부를 향할 수밖에 없다. 물론 이걸 깨기 위해 JTBC <비정상회담> 같은 경우에는 아예 탁자를 부채꼴로 놓지 않고 과감하게 일렬로 세우는 파격을 선보이기도 했다. 이것은 중심을 세우기보다는 토론이 갖는 양대 구도를 세우기 위한 포진이다.

 

또한 스튜디오 예능이 태생적으로 가질 수밖에 없는 인위성(스튜디오라는 공간 자체가 일상과는 거리가 멀다)은 최근 시청자들이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진정성의 강도를 떨어뜨린다. 이것은 때로는 <런닝맨> 같은 야외형 예능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런닝맨>처럼 야외로 나간다고 해도 스튜디오와 다를 바 없는 어떤 일정한 틀이 있는 것처럼 보이거나, 일상적으로 보이지 않는다면(최소한 <12>처럼 여행이라면 일상이 되겠지만 <런닝맨>은 여행이 아니라 게임이다) 그 리얼리티가 제대로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즉 강호동이 표징하는 것처럼, 지금 예능의 새로운 트렌드 변화는 스타 MC들 모두에게 새로운 숙제를 안기고 있다. 하지만 거기에 답이 없는 건 아니다. 그나마 강호동이 잘 버티고 있는 <우리동네 예체능>처럼, 자신에게 가장 자연스럽게 일상처럼 맞는 예능이면서 동시에 중심에 서기보다는 많은 출연자들(일반인 포함) 중 하나로 설 수 있는 프로그램은 이제 스타 MC들이 찾아내야할 새로운 위치가 되고 있다. 우리는 이미 스타 MC가 사라져가는 왕좌 없는 예능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주말예능, 재주는 MBC가 부리고 돈은 KBS가 챙긴다?

 

역시 플랫폼으로서의 KBS의 힘이 작용한 걸까. KBS <해피선데이>(12.9% 닐슨코리아)의 시청률이 MBC <일밤>(10.1%)을 압도했다. 한동안 <아빠 어디가><진짜사나이>로 주말 예능의 최강자로 군림했던 MBC는 추락에 추락을 거듭하다 <12>이 새 진용을 짜고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한 후, <슈퍼맨이 돌아왔다> 역시 제자리를 잡게 된 KBS와 엎치락뒤치락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아직 그 승패가 확실히 굳어진 것은 아니지만 분명한 건 KBS <해피선데이>의 약진이다. 무엇이 이런 변화를 만들었을까.

 

'슈퍼맨이 돌아왔다(사진출처:KBS)'

MBC로서는 <나는 가수다>의 악몽이 재현되는 건 아닌가 하는 불안감에 빠질 법하다. 새로운 화제를 만들어낸 <나는 가수다>는 결국 무수한 논란으로 내려졌지만 이 비슷한 형식을 가져와 KBS적으로 버무려 만들어낸 <불후의 명곡2>는 호랑이 없는 산중의 왕좌를 누리고 있지 않은가. <아빠 어디가>와 유사한 육아 예능을 가져와 같은 시간대에 맞불을 놓은 <슈퍼맨이 돌아왔다>의 상승세가 심상찮게 여겨진다.

 

<아빠 어디가>가 최저가 배낭여행과 브라질 월드컵 특집으로 국내에서 자리를 비운 사이, <슈퍼맨이 돌아왔다>는 장윤정-도경완 카드에 이어 송일국과 세 쌍둥이를 연거푸 내놓으며 상승세를 타고 있다. 해외여행을 하는 <아빠 어디가>가 일상을 떠나 있다면, <슈퍼맨이 돌아왔다>는 철저히 일상 속에 들어와 있다. 브라질 월드컵이 그다지 성과를 내지 못하면서 오히려 일상 밀착형의 <슈퍼맨이 돌아왔다>가 더 주목을 끌고 있는 것.

 

항간에는 KBS가 지금껏 보인 이런 포맷 따라 하기가 정당하지 못하다고 말한다. 사실이다. KBS 같은 공영방송에서 새로운 형식을 창출해내지는 못할망정 타 방송사의 잘 나가는 형식을 가져와 KBS적인 변용을 통해 승부를 내는 건 도의적으로 잘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꿩 잡는 게 매라고 KBS의 이 전략은 의외로 힘을 발휘한다. 그것은 비슷한 형식이라고 해도 KBS라는 공영방송의 플랫폼이 훨씬 시청률면에서 유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을 전부 KBS라는 방송 플랫폼 프리미엄 탓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슈퍼맨이 돌아왔다>에서 새롭게 등장한 장윤정-도경완 커플의 이야기는 아기가 태어나는 과정까지 보여주는 과감함은 물론이고 생명과 부모가 보여주는 감동적이고 따뜻한 느낌을 선사했다. 또한 철인의 이미지를 가진 송일국이 세 쌍둥이 앞에서 땀을 뻘뻘 흘리는 모습 역시 새로운 재미임에 틀림없다. 무엇보다 <슈퍼맨이 돌아왔다>가 계속 해서 새로운 인물과 이야기를 찾아내고 있다는 건 어딘지 정체된 느낌의 <아빠 어디가>에 위협적일 수밖에 없다.

 

<아빠 어디가>와 짝을 이룬 <진짜 사나이>가 예전만큼 화제가 되지 않고 대신 <슈퍼맨이 돌아왔다>의 짝인 <12>이 승승장구 하는 것도 MBC 주말 예능을 불안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MBC는 그래도 주말 예능의 경쟁에 들어 있다가 지금은 아예 배제되어버린 SBS <일요일이 좋다>의 상황을 심각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 순식간이다. 주말 예능 경쟁은 어찌 어찌 하다보면 승기를 놓치게 된다. <나는 가수다>가 그랬듯이 재주는 MBC가 부리고 돈은 KBS가 가져가는 상황이 만들어질 것인가. MBC는 지금 한때의 승리에 도취할 때가 아니다.

<인간의 조건>, 시청자와의 권태기를 벗어나려면

 

KBS <인간의 조건>은 초반 <개그콘서트> 개그맨들이 함께 모여 일주일간의 관찰카메라를 선보인다는 점에서 관심을 끌었다. 사실 관찰카메라 형식이 가진 핵심은 결국 누군가의 일상을 바라본다는 재미에서 나올 수밖에 없다. <개그콘서트> 무대 위에서 빵빵 터트리는 개그맨들. 그들의 진면목이 무엇인가는 대중들의 관심사가 되기에 충분했다.

 

'인간의 조건(사진출처:KBS)'

하지만 관찰카메라 형식에서 이 재미적인 부분보다 더 중요한 건 왜 이 사적인 영역에 카메라를 설치하고 들여다봐야 하는가에 대한 대중적인 공감대다. <인간의 조건>은 그래서 그 기획의도로서 더 나은 삶을 택했다. 쓰레기 배출을 하지 않으며 살아가거나, 전기 없이 살아가고, 자동차를 이용하지 않는 삶을 보여줌으로써 그 불편함 속에서 발견되는 새로운 가치를 대중들에게 공감하게 했다.

 

일회용품을 사용하지 않는 미션에서 너도 나도 들고 다니던 텀블러는 그래서 대중들이 함께 참여할만한 캠페인 성격을 띠기도 했다. 자동차 없이 살기 미션은 탄소 배출이 갖는 환경문제를 인식시켜줌과 동시에 걸으면서 비로소 보이게 되는 삶의 진풍경을 새삼 느끼게 해주었다. <인간의 조건>의 힘은 방송이 환기시키는 어떤 문제의식에 대해 대중들이 공감하고 함께 참여하는 마음을 기꺼이 가질 때 생겨났다는 점이다.

 

하지만 캠페인도 반복되다 보면 그저 익숙하게 지나가는 문구처럼 여겨지기 마련이다. ‘물을 아끼자’, ‘전기를 절약하자같은 말들이 지극히 지당하다고 해도 이제는 그 감흥이 별로 없고 마치 통상적인 캠페인 문구처럼 의식하게 되는 건 그 반복적인 노출이 의미를 퇴색시켰기 때문이다.

 

<인간의 조건>은 그래서 새로운 그림을 만들어보려고 부단히 노력한 흔적이 있다. 개그우먼을 출연시켜 지금껏 남자 개그맨들의 일상을 통해 보여준 캠페인에서 벗어나 여성들이 더더욱 공감할 수 있는 아이템(이를 테면 화학제품 없이 살기같은)을 선보였던 것은 이 반복되는 패턴의 함정을 벗어나고자 했던 <인간의 조건>의 몸부림이기도 했다.

 

<인간의 조건>은 여전히 재미있고 의미도 있는 아이템을 선보이고 있다. 새롭게 시작한 나트륨 줄이며 살기는 여전히 사회적인 관심을 둘만한 아이템이고 새롭게 투입된 다이나믹 듀오의 최자나 개코, <개그콘서트>의 김기리는 새로운 조합으로 일상의 웃음을 만들어낸다. 일단 채널을 고정시키기만 하면 충분히 재미있고 그 의미와 가치도 공감하게 된다.

 

하지만 <인간의 조건>에 대한 관심이 예전만하지 못한 건 어쩔 수 없는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그것은 <인간의 조건>의 문제라기보다는 이를 반복적으로 바라본 시청자들이 여기에 익숙해졌기 때문에 생겨나는 일이다. 물론 <인간의 조건>이 본래 갖고 있던 이 캠페인적인 성향의 의미와 관찰카메라가 갖는 일상 엿보기의 재미를 포기해서는 안될 것이다. 하지만 그 재미와 의미에 좀 더 집중시키기 위해서라도 <인간의 조건>은 이 틀을 가끔은 벗어날 필요가 있다.

 

한정된 공간에서의 생활이 비슷한 이야기의 패턴을 불러온다면 때로는 공간을 벗어나볼 필요가 있고, 개그맨들이 비슷한 캐릭터의 반복을 보여준다면 다이나믹 듀오처럼 새로운 구성원들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 이것은 마치 권태기와 같다. 무언가 잘못됐기 때문에 생겨나는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권태기를 지혜롭게 넘기지 못하면 관계 자체가 소원해진다는 것을 생각해봐야 한다. <인간의 조건>은 지금 새로운 자극이 필요한 시점이다.

<한공주>, 어째서 이 사회는 피해자가 도망치게 만드는가

 

이 영화 결코 가볍지 않다. 그것은 영화가 무겁게 주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은 아니다. 오히려 집단성폭행이라는 소재를 다루면서도 17살 또래의 감성을 이토록 생생히 담아내고 있다는 것이 이질적인 부딪침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는 소재 상 무거울 수밖에 없지만 그렇다고 그 무거운 소재에 침잠해 여전히 살아가는 한 피해자 소녀의 소소한 일상까지 뭉개버리지는 않는다. <한공주>라는 영화의 대단함이다.

 

사진출처: 영화 <한공주>

영화는 무언가 엄청난 일이 벌어진 한공주라는 17살 소녀가 타지로 전학을 가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선생님의 어머니가 있는 그 타지에서 그녀는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 한다. 엄마는 재혼했고 아빠는 세상을 떠돌며 자식을 돌보지 않는다. 그 빈 집에서 일이 벌어졌다. 그 와중에 죄책감에 시달리던 친구가 자살했다. 그리고 피해자가 된 그녀는 어찌된 일인지 보호받기보다는 가해자 학부모들에 의해 쫓겨 다닌다.

 

한공주가 새로운 학교로 와서 새 친구들을 만나고 그들과 노래를 하고 또 수영을 배우는 이야기는 집단성폭행이라는 소재를 복수극의 형태로 늘 다뤄왔던 영화들을 떠올려보면 이례적일 수밖에 없다. 사건이 벌어진 후 피해자로 낙인찍혀 평생을 그 끔찍한 사고의 언저리에 붙들려 살아갈 것이라 막연히 생각하는 것 자체가 피해자에 대한 엄청난 폭력이 될 수 있다는 걸 이 영화는 보여준다. 피해자는 어쨌든 상처를 껴안고 다시 삶을 살아가야 한다.

 

그러니 새로운 삶을 위한 작은 노력들이 필요하다. 한공주에게 수영이란 그 작은 노력을 보여주는 행위다. 부모와 어른들에게 휘둘리던 공포의 물 속 같은 삶 속에서 그녀는 온전히 자신의 힘으로 나아가려 안간힘을 쓴다. 자꾸만 가라앉는 한공주에게 친구는 물을 살살 달래야가라앉지 않는다고 말해주지만 그녀에게 물은 여전히 무거운 현실이고 두려움이다.

 

온 몸 구석구석 배어있는 그녀의 고통은 처연한 목소리가 되어 노래로 흘러나온다. 친구들은 그 노래 주변으로 몰려들지만 한공주는 그 노래를 타고 자신의 존재를 세상에 알릴 수 없는 상황이다. 그것이 알려지는 순간 또 다시 가해자의 어른들이 찾아와 자신을 짓뭉개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어째서 어른들은 이토록 부끄러운가. 자신들의 자식만을 생각하는 그 극단적인 가족 이기주의는 한공주를 영원한 피해자로 만드는 이유다.

 

이 영화에서 물의 이미지는 중요한 메타포로 사용된다. 거대하게 넘실대는 한강물이 가녀린 존재들을 삼켜버리는 두려움의 존재라면 동시에 물은 스스로 헤엄칠 수 있을 때 비로소 자유로워지는 영혼의 안식처 같은 존재이기도 하다. 한공주가 그토록 수영에 집착한 것은 두려움을 넘어 자유를 얻고 싶은 마음 때문일 게다.

 

<한공주>는 기존 비슷한 소재의 영화들이 다루던 방식과는 달리 집단성폭력에 대해 다루는 영화다. 그래서 조금은 낯설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그 낯설음이 우리들의 편견(피해자는 피해자로서의 정체성만 있다는 식의)에서 비롯된 것이란 걸 깨닫게 되는 순간부터 영화는 한없이 우리를 부끄럽게 만든다. 어른이라는 게 창피해지는 시간, <한공주>는 피해자가 보호받기 보다는 도망치게 만드는 이 이상한 나라의 부끄러운 자화상을 그려낸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