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 게임2

“넌 그 비행기를 탔어야 했어. 네 선택을 후회하게 될 거야.”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게임2’는 프론트맨(이병헌)이 기훈(이정재)에게 하는 경고로 문을 연다. 그건 ‘선택’에 대한 경고다. 시즌1 엔딩에서 미국으로 가려던 기훈(정재)은 발길을 돌리며 프론트맨(이병헌)에게 전화로 선전포고한 바 있다. “난 말이 아니야. 사람이야. 그래서 궁금해. 너희들이 누군지. 어떻게 사람에게 이런 짓을 할 수 있는지. 그래서 난 용서가 안돼. 너희들이 하는 짓이.” 만일 기훈이 그대로 비행기를 탔다면 어땠을까.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고 저들이 원하는대로 세상은 흘러갔을 게다. 하지만 발길을 되돌린 그는 저들과 맞서려 하고 이 잔혹한 게임을 끝장내려 한다. 프론트맨의 경고와 기훈의 선전포고. 시즌2는 이 두 흐름의 부딪침을 그리고 있다. 

 

그런데 시즌2에서 저들의 실체에 접근하기 위해 딱지남을 찾는 기훈이 사채업자들을 움직이는 광경은 저 ‘오징어 게임’의 방식들을 연상시킨다. 무려 2년 간이나 지하철 곳곳을 수색해온 사채업자들은 회의감을 느끼지만 기훈이 성공보수 10억을 내걸자 눈빛이 달라진다. 눈앞에 놓인 돈을 향해 달려가는 사람들. 이건 자본의 전형적인 작동 방식이다. 그렇게 드디어 찾아낸 딱지남은 게임에 미친 인물로 노숙자들에게 다가가 빵과 복권을 내밀며 선택하라고 한다. 당장 먹을 수 있는 빵을 선택하는 게 합리적이지만 대부분은 복권을 선택한다. 빵을 선택하면 모두가 나눠먹을 수 있는데도 왜 사람들은 극히 확률이 낮은 복권을 선택할까. 거기에는 더 많은 돈을 버는 것이 당연한 가치로 추구되는 자본의 방식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오징어 게임’은 바로 그 자본의 방식을 게임이라는 틀을 통해 보여준다. 456명이 참여해 1인당 1억씩 배정된 목숨값을 사람들이 죽어나갈 때마다 적립해 최후의 1인이 456억을 독식하는 게임이다. 저 복권과 다를 바가 없다. 다만 이 게임은 그 욕망한 결과가 실패로 돌아올 때 죽음으로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이 달라보일 뿐이다. 그리고 이건 고도화된 자본화가 승자독식의 틀 안에서 운용될 때 실제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다. 몇몇은 엄청난 부를 거머쥐지만 그로 인해 무수한 이들이 길바닥으로 내몰려 죽어간다. 기훈이 공항에서 발길을 돌린 건, 자신이 우승상금으로 받은 456억이 저들의 목숨값이라는 걸 깨닫게 되면서다. 

 

‘오징어 게임’ 시즌1이 그래서 그 자본의 잔혹한 작동방식을 게임을 통해 알게 되는 이야기였다면, 시즌2는 그 게임과 맞서는 이야기다. 기훈은 말이 아닌 사람으로서 대항하려 한다. 그래서 다시 게임에 들어가려 하고, 저들이 원하는 방식대로 흘러가지 않게 하기 위해 사람들을 살려내고 또 설득하려 한다. 그저 놀이로 알았던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가 실제로 참가자들이 사살되는 게임이라는 걸 알고 있는 기훈은 그래서 죽을 위험까지 무릅쓰며 그들이 살 수 있는 길을 알려준다. 

 

시즌2에 새로이 도입된 룰은 매 게임 후 다음 게임을 계속 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두고 투표를 한다는 것이다. 투표에서 한 사람이라도 ‘X’가 더 나오면 게임은 중단되고 그간 적립된 돈을 살아남은 참가자들이 나눠갖고 나갈 수 있게 된다. 일방적으로 강요된 게임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한 게임이라는 걸 강조하는 이 룰은 그래서 이 게임을 멈출 수 있는 기회를 열어준다. 이 방식은 민주주의의 방식이다. 더 많은 이들의 자유로운 선택에 의해 그 공동체의 미래를 결정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민주주의의 방식은 저 비합리적이고 잔혹한 자본의 방식을 가진 게임 앞에 번번히 무력해진다. 참가자들은 나눠가질 돈이 너무 적다는 이유로 ‘한 판 더’ 게임을 하겠다는 ‘O’에 투표한다. 자신들이 희생될 수도 있다는 걸 망각한 채. 

 

게임을 멈추기 어렵게 만드는 또 하나는 프론트맨이 오영일이라는 이름으로 게임에 참가한다는 점이다. 오영일은 기훈의 조력자처럼 굴지만 사실은 그 안에서 이 게임을 계속 움직이게 하는 인물이다. 자본의 방식을 대변하는 프론트맨이 민주주의 방식으로 게임을 멈추려는 기훈 옆에 붙어 있는 이 설정은 그래서 민주주의 시스템 안으로도 깊숙이 들어와 있는 자본의 힘을 은유하는 것만 같다. 자본 앞에 민주주의라는 촛불은 연약하게만 보인다. 

 

과연 기훈은 프론트맨과의 대결에서 승리할 수 있을까. 자본의 무자비한 방식들을 민주주의는 극복해낼 수 있을까. 프론트맨과 기훈으로 대변되는 자본과 민주주의의 대결과 좌절을 그리는 ‘오징어 게임2’는 그래서 시즌3로 가는 빌드업이다. 그래서 좀더 시원시원한 결말 같은 걸 원했던 시청자들이라면 미진한 느낌을 줄 수 있다. 하지만 시즌1의 이야기에서 보다 확장된 세계로 나온 시즌2의 서사는 여전히 흥미롭고 대결의식은 더 팽팽해졌다. 특히 현 탄핵 정국에서 우리가 느끼는 민주적 절차에 대한 희망과 무력감을 떠올려본다면, ‘오징어 게임2’가 던지는 ‘선택’에 대한 질문은 특별하게 다가올 수 있을 게다. (글:중앙일보, 사진:넷플릭스)

파친코2

“왜 한국인 이야기를 쓰나요?” 한국판으로 번역되어 나온 소설 ‘파친코’에 한국독자들을 위한 서문에서 이민진 작가는 그런 질문을 자주 받는다는 이야기를 꺼내놓는다. 그도 그럴 것이 이민진 작가는 10년 넘게 집필해 ‘파친코’를 낸 후에도 ‘아메리칸 학원(American Hagwon)’을 쓰고 있는데 이 역시 한국인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질문에 이민진 작가가 내놓은 답변이 인상적이다. “우리가 매력적이기 때문에 한국인 이야기를 씁니다.” 

 

애플TV+ 오리지널 드라마 ‘파친코’가 시즌2로 돌아왔다. 2년만에 돌아왔지만 선자(김민하)의 얼굴을 보는 순간 시즌1에서의 그 매력이 다시 상기된다. 그 매력은 핍박받고 차별받는 상황에서도 당당한 이 인물의 태도에서 나온다. 어쩌면 저렇게 가난하고 힘겨운 상황 속에서도 꼿꼿할 수 있을까. 이민진 작가가 말하는 한국인의 매력이란 바로 선자가 보여주는 바로 이 모습 그대로일 게다. 

 

‘파친코’ 시즌1에서 선자는 한수(이민호)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아이까지 갖게 됐지만 청천벽력 같은 이야기를 듣게 된다. 한수가 이미 일본에 아내와 딸들이 있고 곧 일본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마침 하숙집을 찾아와 죽을 위기를 넘긴 이삭(노상현)이 홀로 아이를 키우려는 선자의 사정을 알게 된 후 함께 오사카로 가자고 제안한다. 그렇게 선자는 고향을 떠나 오사카로 오지만 그 곳의 삶 또한 팍팍하기 이를 데 없다. 어려운 노동자들의 편에 서서 싸우다 이삭마저 감옥에 끌려가자 홀로 두 아이(한수의 아들과 이삭 사이에서 낳은 아들)를 키워야 하는 선자는 길거리에 나와 김치 장사를 시작한다. 시즌2는 바로 그 오사카에서 그 힘겨운 삶을 버텨내는 선자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7년이 넘었지만 이삭은 돌아오지 않고, 궁핍한 삶에 밀주를 담가 밀거래까지 하다 체포된 선자는 감옥살이를 해야할 처지에 놓이지만 한수의 도움으로 풀려난다. 오사카에 선자와 이삭이 왔을 때부터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한수는 들여다보고 있었다. 자신의 아들 노아(김강훈)가 어떻게 자라나고 있는지 역시 살피고 있었던 것. 마침 미군의 대규모 공습이 있을 거라는 정보를 알게 된 한수는 선자에게 그 곳을 떠나라고 말하지만 선자는 단호히 이를 거부한다. “옥살이 중인 남편 두고 내 어디 못갑니더. 그 사람 두고 내 어디 안갑니더. 못가예.” 여기서 한수와 선자의 대비되는 모습이 드러난다. 한수가 저 살 궁리만 하는 사람이라면, 선자는 자신과 아들을 거둬준 이삭을 끝까지 기다리는 사람의 도리를 지키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파친코’는 일제강점기 고국을 떠나 일본에 정착해 살아가는 재일 한인들의 이야기를 통해 핍박받는 한인들과 그들을 핍박하는 자들 사이의 대비를 드러낸다. 그것은 크게 보면 총칼에 의한 무력과 돈에 의한 금력이다. 즉 제국주의와 더불어 자본화되어가는 세상의 폭력이 이들 재일 한인들의 삶을 고통스럽게 만든다. 그런데 ‘파친코’는 제국주의와 자본의 폭력에 대한 저항을 그 앞에서도 무너지지 않고 당당한 한인들의 태도를 통해서 보여준다. 그 당당함은 가난하고 배운 것 없어도 인간으로서의 도리를 외면하지 않는 삶에서 나온다. 

 

언청이에 다리를 저는 장애를 가졌지만 누구보다 강인하게 선자를 키워낸 아버지, 그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 하숙집을 홀로 운영하며 억척스럽게 살아낸 선자의 엄마 양진(정인지), 자신을 밀고해 감옥살이를 하게 만든 이를 용서하고 죽는 순간에도 아내와 아이 걱정을 하는 이삭, 그렇게 죽어가는 남편을 똑바로 바라보며 “내는 내 남편한테 사랑받고 존중받았으예. 전부 다 받은 거라예.”라 말하는 선자... ‘파친코’에는 저 이민진 작가가 말했던 매력적인 한국인들이 넘쳐난다. 대지진으로 도시가 무너지고 전쟁으로 쑥대밭이 되어버린 세상 속에서도 지켜야 할 것은 지키며 살아가는 한인들이 보여주는 당당함은 그래서 자본과 무력이 권력이 된 세상을 숙연하게 만드는 카타르시스를 준다. 

 

‘역사는 우리를 저버렸지만 그래도 상관없다.(History failed us, but no matter)’ 인상적인 이 ‘파친코’ 원작 소설의 첫 문장이 담고 있는 의미도 바로 그것이다. 역사가 되기도 하는 세상의 폭력 앞에서도 당당하게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 대한 헌사. ‘파친코2’가 우리는 물론이고 전 세계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매력이 바로 거기에 있다.(글:일간스포츠, 사진:애플TV+)

‘종이달’, 세상을 지배하는 돈, 그걸 거부하는 김서형

종이달

“돈의 위치를 바꾸는 거야. 자신이 얼마를 가졌는지도 모르는 추악한 노인보다 꼭 필요하고 절박한 그 손자에게로.” 지니TV 오리지널 드라마 <종이달>에서 이화(김서형)는 자신이 담당하게 된 VIP 병식의 통장에 손을 대며 그렇게 생각한다. ‘돈의 위치를 바꾸는 것.’ 하지만 그건 세상의 말로 하면 ‘횡령’이다. 저축은행 직원이 VIP 고객의 돈을 인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종이달>에서 돈은 세상을 지배한다. 이화의 남편은 모든 게 계산적이다. 마트에서 어떤 노인이 계산도 안하고 계산했다 생떼를 부릴 때 자신이 대신 돈을 내준 일을 남편 기현(공정환)에게 ‘재미있는 일’로 이야기하자, 그는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자기 카드를 건네준다. “자 써요. 노인처럼 현찰만 고집하지 말고.” 그러면서 이 이야기를 카드 하나 만들어달라고 한 소리로 듣는다. 

 

모든 걸 계산적으로 생각하고 사내에서 승진하기 위해 상사들을 접대하고 그 자리에 이화 또한 나서서 도우라고 은근히 부추기는 기현은 그런 말과 행동들이 아내를 얼마나 수모주고 굴욕을 느끼게 하는지 모른다. 아이를 갖기 위해 이화가 주사를 맞고 산부인과를 다니다 지쳐 이제 그만 하고 싶다고 하자, 그것조차 계산적으로 받아들인다. “요즘 스마트한 사람들은 다 딩크지. Double Income No kids. 왜 그런 말 있잖아. 아이는 지구상에서 가장 큰 좀이라고. 죽을 때까지 파먹기만 한다고.”

 

이화가 저축은행 면접을 보겠다고 하자 기현은 돈이 필요하냐, 생활비 부족하냐고 묻는다. 돈이 아니면 집에서 살림만 하기 미안해서 그러냐고 한다. 하지만 이화가 원하는 건 그런 게 아니다. ‘자신의 존재감’이다. 자신이 누군가에게 어떤 필요한 존재로서 인정받는 것. 그는 숨막히는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다. “난 내가 이 집 빌트인 같아요. 그냥 아무 의미 없이 자리만 차지한 것 같아요. 이 집이 내가 돌아오고 싶은 곳이었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저축은행에 들어가게 된 이화는 거액을 예치한 VIP 고객을 관리하는 일이다. 거기서 돈밖에 모르고 심지어 저축은행에서 고객관리를 위해 온 여자들에게 성추행까지 하는 고약한 노인 병식을 만난다. 롤 케이크 선물이라고 속옷을 주는 그런 인물. 거기서 우연히 다친 친구의 수술비를 구하기 위해 병식을 찾아온 외손자 민재(이시우)를 보게 된다. 영화에 꿈을 갖고 있지만 등록금도 없고 학자금 대출도 더 이상 받을 수 없어 휴학한 채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사는 청춘. 이화는 병식이 믿고 맡긴 통장에서 돈을 인출해 민재를 돕고 싶어진다. 

 

돈에 의해 통제되고 구별되는 세상. 이화가 저지르는 행동들은 그래서 신문 사회면에 나올 법한 ‘은행 여직원의 횡령 사건’이지만, <종이달>은 이 돈이 지배하는 세상이 얼마나 사람을 소외시키고 수모주고 굴욕감을 느끼게 만드는가 하는 그 비정함을 꺼내놓음으로써 이 사건의 이면을 들여다본다. 즉 이화의 행동들이 돈이 지배하는 세상에 대한 반항과 거부처럼 느껴지게 하는 것. 

 

시작부터 해외로 도주한 이화가 어느 숙소에서 갈 곳 몰라 하는 모습은, 그가 어쩌다 그 먼 길까지 가게 되었는가 하는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민재라는 청년을 만났고, 거기서부터 비롯되어 고객의 돈에 손을 대기 시작했으며 그건 결국 거액의 횡령으로까지 이어졌을 게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이화가 원한 건 돈이 아닌 사람으로서 자신을 대해주는 누군가가 아니었을까. 다친 친구를 위해 보증금까지 빼서 수술비를 내놓는 민재처럼, 돈이 아닌 사람이 있는 그런 세상에 대한 갈증이 아니었을까. 

 

최근 들어 <사랑의 이해>처럼 은행이라는 공간이 자주 드라마의 배경으로 등장한다. 거기에는 좀 더 직설적으로 자본화된 세상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비정한 삶이 포착되기 때문일 게다. 그래서일까. <종이달>에서 이화가 저축은행에 들어가고 그곳에서 다양한 VIP들을 만나고 그들의 돈에 손을 대고 급기야 횡령을 해 외국으로 도피하는 그 일련의 과정은 이 자본화된 세상으로부터 탈주하는 하나의 모험처럼 느껴진다. 과연 이화는 이 돈의 세상을 벗어나 자신이 그토록 원했던 ‘돌아가고픈 집’을 찾아낼 수 있을까. 그의 모험이 기대되는 이유다.(사진:지니TV)

 

‘작은 아씨들’, 역대급 캐릭터 만난 엄지원, 자본이 캐릭터화한 듯

작은 아씨들

역대급 캐릭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tvN 토일드라마 <작은 아씨들>에서 엄지원이 연기하는 원상아라는 인물 이야기다. 물론 이 작품 속 인물들은 대부분 캐릭터들이 파격적이고, 선명하며, 그 자체로 은유적인 깊이를 갖고 있다. 등장과 함께 사망한 진화영(추자현)이라는 캐릭터가 가진 것 없이 태어나 무언가를 갖기 위해 자신의 존재 자체를 지워버리고 또 다른 부캐로 살아가다 결국 불나방처럼 타버리는 강렬한 인상과 여운을 남긴 건 대표적인 사례다. 그는 첫 회에 사망했지만 그의 잔상과 아우라는 그 후 몇 회 동안 계속 드라마 속 공기에 떠다니는 여운으로 남았다. 

 

역시 등장한 후 한 회도 지나지 않아 의문의 교통사고로 사망한 신현민 이사(오정세)라는 캐릭터도 그렇다. 신발에 남다른 페티시즘을 갖고 있는 이 인물은 죽은 진화영의 발에 신겨진 빨간 하이힐의 잔상으로 남아있다. 오인주(김고은)의 동생이자 사회부 기자인 오인경(남지현)을 자신이 이끄는 부동산 회사의 후계자로 세우고 싶어 하다 의문의 죽음을 맞이한 세 자매의 고모할머니 오혜석(김미숙)이란 인물도 마찬가지다. 그는 죽었지만 정난회의 일원이었다는 그의 비밀은 앞으로도 여전히 이 인물을 드라마가 소환해낼 것이라는 걸 말해준다. 

 

이처럼 모든 인물들이 허투루 그려지거나 소비되지 않는 <작은 아씨들>에서 특히 역대급 아우라로 그려진 인물이 바로 원상아다. 아름답지만 위험해보이고, 환하게 웃고 있는 것 같지만 그것이 섬뜩한 속내를 숨기기 위한 위장처럼 보이는 인물. 하지만 모든 게 우아하고 화려해 보여 유혹적인 향기를 내뿜고 그래서 그 향기에 취한 이들이 결국은 수족처럼 그의 말을 따르게 하는 힘을 가진 인물. 그게 원상아다. 

 

그런데 원상아의 이런 이미지는 이 드라마 속에 미스테리로 세워져 있는 ‘푸른 난초’를 닮았다. 사망한 진화영의 발목에 새겨진 문신 속에는 이 푸른 난초와 더불어 어머니가 사망한 기일이 새겨져 있었고, 갑작스런 자동차 사고로 사망한 신현민 이사의 차 안에도 푸른 난초가 있었다. 또 원상아가 건네준 푸른 난초에 취해 정신을 잃은 오인주는 어떻게 된 일인지 사망한 오혜석을 마주하게 된다. 푸른 난초가 모든 죽음에 연결되어 있다는 것. 

 

그렇다면 푸른 난초는 도대체 무얼 의미하는 걸까. “푸른 유령이라는 난초예요. 자기 전에 뚜껑을 열고 침대 옆에 놔둬요. 오늘 밤에는 꽃이 필거예요. 이 난초에는 힘이 있어요. 밤새 향기를 들이마시면 진짜 자기가 원하는 걸 볼 수 있을 거예요.” 환각, 환영을 일으키는 난초. 그런데 그 난초를 통해 원상아는 자기가 원하는 걸 볼 수 있을 거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싱가폴에서 열리는 국제난초협회에 가서 일을 하라고 한다. 그 일은 마치 예술품으로 정재계 로비를 위해 하는 것처럼 희귀 난초를 통해 비자금을 만드는 일이다. 그 돈의 10%+알파를 원상아는 인주에게 주겠다고 한다. 

 

원상아가 인주에게 속삭이듯 전하는 이 말들은 자본이라는 괴물이 건네는 유혹적인 속삭임처럼 연출되어 있다. 남편이 서울 시장이 되면 그 이권이 어마어마할 거라는 이야기도 빼놓지 않는다. 그러면서 그 푸른 난초와 ‘아버지 나무’에 대한 기묘한 이야기를 한다. “인주씨가 싱가폴에서 잘 해주면 나는 이 나무를 아버지 나무에 걸 거예요. 이 난초는 아버지 나무를 떠나면 오래 살 수 없어요. 난초에 필요한 미생물, 곰팡이들을 아버지 나무에서만 얻을 수 있거든. 그건 인주씨 꿈의 난초를 우리가 보살핀다는 뜻이고. 인주씨도 우리와 함께 한다는 얘기예요.”

 

아마도 이런 속삭임은 인주가 처음은 아니었을 게다. 그는 죽은 진화영에게도 이런 유혹과 푸른 난초를 건넸을 것이고, 이미 인주의 동생 인혜(박지후)를 그 저택 지하에 숨겨진 아버지 나무로 데려가 푸른 난초 하나를 건네주며 “네 것”이라고 한 바 있다. 흥미로운 서사지만 원상아가 푸른 난초를 건넨 이들은 마치 아버지 나무와 그 난초의 관계처럼 엮어진다. 그 곳을 오래 떠나면 살 수 없는 그런 관계. 인혜는 원상아의 집으로 아예 들어가 살게 되고, 오인주 역시 원상아의 비밀스러운 난초협회 정난회에 가까이 다가간다. 그리고 그 깊숙이 들어간 이들은 쓸모가 다해졌다 여겨졌을 때 사망한다. 아버지 나무로부터 버려져 말라비틀어진 푸른 난초와 함께. 

 

아직 모든 사건의 전말을 단정할 수는 없지만, 아버지 나무와 푸른 난초의 관계는 마치 자본주의 시스템과 그 시스템에서 살아가는 이들을 상징하는 것처럼 보인다. 미생물, 곰팡이 같은 시스템을 움직이는 자본의 힘이 있어야 살아갈 수 있고 벗어나면 죽을 수밖에 없지만, 겉보기에 아름답고 화려한 자태로 살아남는다고 해도 독하디 독한 향을 품고 있는 그런 삶. 원상아는 베트남 참전 용사인 아버지 원기선 장군이 자신에게 남겨준 건 재산이 아니라 바로 그 난초들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건 일종의 그 아버지 나무와 푸른 난초처럼 관계가 엮어진 네트워크, 시스템을 준 것이라고 해석된다. 아마도 박재상(엄기준) 역시 그 푸른 난초 중 하나라 짐작되는. 

 

원상아라는 캐릭터는 그래서 자본이라는 괴물이 가진 유혹적이면서도 치명적인 면면을 동시에 품고 있는 인물이다. 그는 웃고 있지만 그 미소는 어딘가 섬뜩하다. 진심이 없기 때문이다. 흔히들 ‘새빨간’ 거짓말이라고 하지만 이 인물의 미소는 ‘새파란’ 거짓말이어서 더 섬뜩하다. 어찌 보면 텅 비어 허망해 보이지만 어찌 보면 그래서 모든 이들을 빨아들이는 힘을 가진 인물.

 

알맹이는 없지만 그 기능으로 존재하는 삶. 그가 과거 연기자였고 발연기를 그 길을 떠났지만 이제 실제 삶에서 연기를 하고 있다는 말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그는 심지어 실제로는 폭력적인 남편이지만 겉으로는 사회사업가처럼 연기하며 살아가는 박재상과 자신이 연기를 하고 있고 그것을 벗어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연기하는 삶’이 그의 실체인지라 그걸 떠나면 존재 자체가 지워지기 때문이다. 

 

원상아는 푸른 난초를 닮았다. 아니 그 푸른 난초들을 묶어두고 조종하는 아버지 나무를 닮았는지도 모른다. 그게 무엇이든 이 인물이 그려내는 자본의 유혹과 폭력이라는 섬뜩한 현실이 있어 <작은 아씨들>의 세 자매의 목숨을 건 사투가 더 팽팽해지고 의미를 갖는다. 그러고 보면 세 자매가 나란히 위쪽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는 포스터에 반을 사선으로 가리고 있는 푸른 색이 다시금 보인다. 푸른 난초 같은 자본 시스템의 삶이 부여하는 위기 속으로 이 세 사람은 빠져 들어가는 것처럼 보이고, 어찌 보면 그 위에 얹어져 있는 것처럼도 보이기 때문이다. 과연 푸른 난초를 닮은 원상아의 ‘새파란’ 유혹 앞에서 세 자매는 어떤 선택들을 할 것인가.(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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