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과 밀실.

남북이 분단된 우리에게 이 두 단어는 특별한 은유다.

최인훈의 소설 <광장(1960)>은 일찍이 이렇게 표현했다.

남한은 밀실은 넘치나 광장이 없고, 북한은 광장은 있으나 밀실이 없다고

 

김보솔 감독의 애니메이션 <광장>은 이 소설에 영감을 받은 작품으로

눈보라에 칼바람이 부는 북한이 배경이다. 

노란 머리에 파란 눈의 이방인인 평양 주재 스웨덴 서기관 보리에게 북한은 낯선 곳이다. 

하지만 보리는 그 살풍경한 곳에 조금더 머물고 싶어한다.

그 곳에서 만나 사랑하게된 교통보안원 서복주 때문이다. 

광장

그 곳은 이방인과의 접촉 자체가 감시되고 금지된다.

시장에서 귀여운 어린 아이와 대화를 해도

그 아이와 엄마에게 누군가 다가와 그걸 문제삼는 곳이다.

보리와 복주는 길거리를 함께 걷거나 손을 잡는 일조차 쉽지 않다. 

내밀한 접촉은 자칫 스파이짓으로 오인될 수도 있는 일이다.

 

보리의 북한 통역관인 리명준도 그래서 늘 거리를 둔다.

집에 들어가 삶은 계란에 맥주 한 잔을 하자고 해도

그 사소한 일조차 리명준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광장

사실 알고보면 리명준은 보리를 감시하고 감청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래서 보리가 복주를 만나는 일을 탐탁찮아 한다.

그것이 복주에게 일으킬 파장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행위들은 그들에게는 '평양추방' 같은 조치가 취해질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한겨울의 추위 속에서 내뿜는 입김이 더 뜨거워지듯

금지는 욕망을 더 간절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조금 더 평양에 머물겠다는 간청이 거절되고

복주마저 사라져 버리자 보리의 억눌렀던 감정은 폭발하고만다.

복주를 찾아 평양을 헤매고 찾을 수 없게되자 리명준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하지만 리명준은 그런 보리를 "이기적인 새끼"라 욕하며 비난한다. 

광장

꽁꽁 얼어붙은 동토인지라 더더욱 간절한 온기가 느껴지는 보리와 복주의 사랑이야기를 다뤘지만

<광장>에서 주목되는 인물은 바로 리명준이다.

그는 결코 변하지 않을 것만 같은 굳은 얼굴로 등장하지만

저들의 사랑을 감시하고 바라보면서 조금씩 변화해간다. 

 

김보솔 감독은 아마도 리명준의 변화를 통해 

이 견고해 결코 깨지지 않을 것 같은 체제에도 생겨나는 

작은 균열을 그리고 싶었던 듯하다. 

광장

작품 속에 여러 차례 메타포로 등장하는 계란은 리명준의 변화를 말해준다. 

보리가 호의로 건넸지만 그가 뿌리쳐 깨버린 계란,

감시되는 걸 알아차린 보리가 술에 취해 던져 리명준이 감시하던 건물 창문을 깨버린 계란,

그리고 그것이 삶은 계란인 줄 알고 이마로 깼다가 터져버린 날계란이 그것들이다.

마치 바위를 치듯 날아가던 그 계란들은 조금씩 리명준을 변화시킨다. 

 

끝내 리명준은 보리가 복지를 찾는 일을 돕는다. 

그러면서 왜 이렇게까지 하냐는 외교관의 물음에 이렇게 말한다.

"글쎄요... 외로웠나 봅니다."


왜 외로움일까. 외로움이란 감정이 생겨났다는 건 무얼 뜻하는 걸까.

사실 이 살벌한 감시체계 안에서는 외로움조차 느낄 수 없다.

늘 불안이 공기처럼 흐르고 있어서다.

하지만 외로움을 느꼈다는 건 리명준에게 인간적인 감정이 생겼다는 의미다. 

그건 작은 균열이자 희망이다. 

광장

기억에 선명히 남는 장면은 

눈 내린 광장 위로 리명준이 자전거를 타고

그 위에 자유로운 궤적이 그려지는 장면이다. 

첫 장면에 등장한 북한의 광장에는 

마치 서야할 자리를 지정하는 듯한 숫자가 일정한 간격으로 쓰여 있었다.

그 숫자들이 눈에 덮이고 그 위로 리명준이 자전거로 그려내는 궤적은 

그의 외로움을 드러내는 것이면서 동시에 자유에 대한 갈망을 담는다. 

 

한국의 애니메이션이지만 이토록 스산하고 쓸쓸하게 마음을 휘어잡은 작품이 있었나.

<광장>의 그 궤적이 오래도록 가슴에 선을 그어 놓았다. 

2026.1.22

디즈니+ 오리지널 드라마 ‘지배종’으로 새로운 얼굴 보여준 한효주

지배종

큰 키에 잘 관리된 몸 그리고 작은 얼굴에 빛나는 피부까지... 딱 봐도 우리와는 다른 유전자를 가진 것 같은 배우들이 적지 않다. 그런데 영상으로 볼 때마다 감탄하게 만드는 아우라를 가진 배우들을 직접 만나보면 너무나 다른 느낌을 가질 때가 많다. 그건 화면과 실물 사이의 차이 때문이기도 하지만, 우리가 접하는 배우들이 그 모습 자체가 아니라 작품 속 캐릭터라는 옷을 입고 있기 때문이다. 배우들은 그 자체로도 매력적이지만, 캐릭터에 몰입한 배우들은 더더욱 매력적이다. 실제로 봤을 때 심지어 못알아볼 정도로 캐릭터의 색깔을 온전히 채우고 있는 배우라면 더더욱 그렇다.

 

한효주는 그런 배우다. 작품을 하지 않을 때면 가볍게 차려 입고 여행을 다니는 걸 즐긴다는 이 배우는 그렇게 다녀도 사람들이 잘 알아보지 못한다고 한다. ‘동이’룰 촬영할 때 생긴 유명한 일화가 그걸 잘 말해준다. 어느 식당에 당시 함께 촬영했던 배수빈과 같이 갔는데 식당 아주머니들이 배수빈은 알아보면서 자신은 알아보지 못하더란다. 그래서 한효주가 머리를 묶으며 “저 동이에요”라고 말해 모두를 깜짝 놀라게 했다는 이야기다. 그만큼 그는 작품을 할 때마다 외적으로든 내적으로든 다른 느낌을 주는 배우가 되고 싶어한다. 

 

물론 초창기 한효주 하면 우리에게는 인이 박혀 버린 하나의 이미지가 있는 게 사실이다. 그건 바로 ‘미소천사’다. 특유의 건치에 환한 미소가 잘 어울리는 한효주는 초창기 윤석호 감독의 ‘봄의 왈츠’나 ‘찬란한 유산’ 그리고 ‘동이’ 같은 작품들을 통해 건강한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배우로 대중들에게 각인됐다. 주로 어려워도 슬퍼도 꿋꿋이 웃으며 살아가는 캔디형 이미지랄까. 특히 ‘동이’ 같은 사극으로 20대에 MBC 연기대상은 물론이고 백상예술대상 같은 상들을 휩쓸면서 한효주의 이미지는 바로 그 건강한 미소로 대변되는 단아하고 여성스런 이미지로 상당부분 굳어진 면이 있었다. 

 

하지만 한효주는 그 이미지 하나에 머물러 있지 않았다. 2013년 영화 ‘감시자들’에서 그는 감시반의 신참에서 점점 전문가로 성장해가는 과정을 통해 설경규, 정우성 사이에서도 도드라진 연기를 선보였다. 또 2015년 개봉한 영화 ‘뷰티 인사이드’에서는 무려 123인 1역의 연인과 사랑에 빠지는 역할로 배우 21명과의 감정연기를 소화해냈다. 또 6년만의 드라마 복귀작이었던 ‘W’를 통해서는 웹툰 속에서 튀어나온 남자와 사랑에 빠지는 판타지 장르의 연기를 시도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한효주의 다양한 시도에도 한 가지 고정된 연기 영역이 있었다면 그건 바로 멜로다. 그는 자타공인 멜로퀸으로서의 배우의 길을 걸어왔다. 그건 살짝 미소만 지어도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드는 그의 외모와 이미지가 만들어준 축복이었지만, 배우로서 그런 틀은 족쇄나 다름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작년과 올해 한효주의 행보는 이러한 족쇄를 확실히 끊어버리고 또 다른 새로운 영역으로 나아간 시간들이 아닐 수 없었다. 디즈니+에서 작년에 방영된 ‘무빙’과 올해 방영되고 있는 ‘지배종’에서의 한효주는 이전의 멜로퀸의 이미지와는 너무나 다른 새로운 얼굴들이었으니 말이다. 

 

‘무빙’에서 한효주가 연기한 이미현이라는 인물은 젊어서는 안기부 엘리트 요원으로 활동했지만 나이 들어서는 성장한 김봉석(이정하)의 어머니이자 김두식(조인성)의 아내로 돈가스 식당을 운영하는 인물이다. 연령대의 폭이 넓을 수밖에 없고, 또 그 상황과 연령에 맞는 역할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젊은 날의 이미현은 같은 안기부 엘리트 요원으로서 김두식과 함께 액션과 더불어 달달한 멜로를 그려내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아들이 공중부양 능력을 갖고 있다는 걸 알게 된 후부터 그는 칩거해 평범한 돈가스 식당 사장이자 헌신적인 엄마의 모습을 보여주는 인물로 변신한다. 그렇지만 아들을 지켜내고 남편인 김두식을 구하기 위해 다시 총을 든 모습에서는 안기부 엘리트 요원다운 액션에 모성과 사랑이 더해진다. 그래서 그저 멜로 퀸이라는 평범한 수식어로는 규정할 수 없는 한 사람의 다양한 삶과 인생이 느껴지는 연기에 도전할 수 있게 됐고 한효주는 그걸 보기좋게 해낸다. 

 

‘지배종’은 이제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미소천사’로 불리던 것이 무색할 정도로 웃음기 빠진 모습으로 윤자유라는 인물을 설득시킨다. 2025년 생명공학기업 BF가 성공시킨 인공 배양육 기술을 두고 벌어지는 여러 각계의 욕망과 갈등을 다룬 이 작품에서 한효주는 이 새로운 근미래의 세계관을 단박에 몰입시키는 연기로 드라마의 문을 연다. 드라마 시작과 함께 BF의 기술을 윤자유가 소개하는 장면을 위해 한효주는 테드 영상을 연구하고 모든 대사를 외워 연기에 임했다고 한다. 이로써 윤자유가 보다 전문적이면서 어떠한 외압에도 흔들리지 않는 인물이라는 걸 보여주면서 동시에 시청자들이 자연스럽게 이 세계 속으로 들어올 수 있는 길을 열어준다. 물론 우채운(주지훈)이라는 인물과의 섬세한 감정 교류가 등장하기도 하지만, 한효주는 ‘지배종’을 통해 그간의 멜로 이미지에서 자유로워진 연기를 선보였다. 웃던 얼굴이 굳게 입을 다물자 진지함은 더 깊어졌다. 또한 시시각각 벌어지는 위기 속에서도 과감한 결단을 내리는 모습은 윤자유라는 인물이 얼마나 흔들리지 않는 자신만의 소신과 의지를 가지고 있는가를 알 수 있게 해줬다. 

 

‘지배종’을 통해 한효주의 연기가 보여주는 페르소나는 이 작품의 배역인 윤자유라는 이름에 그대로 녹아 있다고 여겨진다. 그는 이제 가슴을 설레게 하는 멜로는 물론이고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과 액션에, 치열한 심리를 보여주는 내면연기까지 자유로운 배우로 성장했다. 그 성장 과정이 우연이 아니고 매너리즘을 벗어난 부단한 도전과 치열한 노력 속에서 이뤄진 것이란 점에서 어떤 영역에서의 자유란 그저 얻어지는 게 아니라는 걸 이 배우의 페르소나는 보여준다. 그저 미소 한 번 지으면 주변을 환하게 만드는 걸 타고난 이가 그 미소를 거두자 거기 가려져 있던 단단한 내면들이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 어떤 영역에서 지배종이 되기 위해서는 바로 그 자유로움을 얻기 위한 노력의 시간들이 전제 되어야 한다는 걸 한효주의 페르소나는 말해주고 있다. (글:국방일보, 사진:디즈니+)

미야자키 하야오가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로 하려고 했던 이야기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글 중 내용의 누설이 있습니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새 작품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는 소년 마히토가 화재로 인해 어머니를 잃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 화재가 왜 발생했는지는 직접적으로 언급되지 않았지만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무렵이라는 시기는 그것이 그냥 발생한 화재라기보다 폭격의 여파라는 걸 상상하게 한다. 마히토는 그 불길을 향해 달려가지만 어머니는 거대한 불기둥 속으로 사라진다. 

 

전쟁 상황과 화재라는 충격, 그리고 어머니의 부재에 대한 상실감은 그래서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작품이 갖고 있는 판타지의 전제가 된다. 판타지는 결국 현실의 결핍이나 충격에 의해 촉발되어 이세계(異世界)로의 통로를 통과하기 마련이다. 2차 세계대전 중 아이들이 장롱을 통해 나니아라는 곳으로 떨어지며 벌어지는 모험을 다룬 C.S. 루이스의 <나니아 연대기>가 대표적이다. 전쟁이라는 충격, 장롱이라는 통로, 그리고 이세계의 모험. 이건 판타지의 중요한 구조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그려온 판타지의 세계들을 보면 그래서 터널을 통과하는 이야기가 많다. <이웃집 토토로>에서 메이가 처음 토토로를 만나게 되는 것도 무성한 수풀의 터널을 통과하면서였고,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도 치히로가 판타지 세계로 넘어가게 된 것 역시 수상한 터널을 통과하면서였다. 터널은 일종의 판타지의 통과의례로, 미야자키 하야오는 그 장치를 가져와 이세계로의 모험을 풀어간다.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역시 어머니가 화염 속에서 죽는 충격을 겪은 마히토가 어머니의 고향으로 와 말을 하는 왜가리의 인도를 받아 이세계로 넘어가는데 역시 터널을 통과한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판타지에는 어머니에 대한 서사들이 자주 등장하는데, 그건 아마도 실제 자신이 어려서 어머니를 여의었던 경험 때문으로 보인다. 사라진 어머니를 찾거나 구하는 주인공의 이야기는 그래서 <이웃집 토토로>에서는 요양원에 있는 엄마를 회복시키고 싶은 아이들의 욕망으로 그려지고,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는 이세계에서 음식을 먹고 돼지가 된 부모들을 구하려는 치히로의 절박함으로 그려진다.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도 마찬가지인데 여기서 특이한 건 어머니의 죽음 때문에 갖게 된 충격과 상실에 더해져 고향에서 만나게 되는 새엄마에 대해 마히토가 복합적인 감정을 갖는다는 점이다. 이미 뱃속에 아이까지 가진 새엄마에 대해 마히토는 반가워하지도 그렇다고 분노하지도 않는다. 거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데, 그렇다고 무감정한 건 아니다. 특히 금세 새엄마를 들인 아버지에 대해 갖는 마히토의 감정은 이중적이다. 겉으로는 예의를 다하지만 그 속에는 분노 또한 감춰져 있다. 

 

전쟁 상황에 전투기 덮개를 제조해 납품하는 공장으로 큰돈을 벌고 있는 아버지. 어찌 보면 어머니의 죽음은 아버지가 하고 있는 일과 무관하지 않을 테다. 전쟁은 결국 그런 무기들의 개발, 제조와 관련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일본의 막부 시대가 저물고 메이지유신을 촉발시킨 쿠로후네 사건만 봐도 알 수 있다. 결국 미국의 페리 제독이 서양의 신식 증기선 전함을 끌고 와 일본의 개항을 요구했던 이 사건의 이면에는 새로운 무기 기술이 바탕이 되지 않았던가. 

 

그래서 어머니가 사망하고 아버지가 새 엄마를 들이고 심지어 동생까지 임신하게 된 데 대해 갖는 마이토의 복잡한 감정은, 그 개인서사를 넘어서 그 이면에 담긴 전쟁 같은 역사적 사건들과 연결된다. 어머니의 고향에 있는 학교의 첫 등교 때부터 자동차를 끌고 가 시골 아이들의 기를 꺾으려는 아무 생각 없는 아버지는 무기가 되기도 하는 기술과 그걸로 갖게 되는 힘을 낙관하는 인물이다. 심지어 희생이 따르더라도. 

 

하지만 마히토는 아버지가 공장에서 만든 전투기 덮개를 보며 감탄하고, 자신 또한 아버지의 피를 물려받아 칼로 나무를 깎아 활과 화살을 만드는 재능을 보이지만 그러면서도 어딘가 상처와 죄책감 같은 걸 느끼는 인물이다. 영화에서는 대사 없이 원거리 샷으로 동네 아이들과 마히토가 실랑이를 벌이다 싸우는 장면이 등장하지만 그건 당연히 아버지와 관계된 갈등 때문이라고 보인다. 그 동네의 유지지만 무기 제조를 해서 전쟁에 일조한다는 사실이나, 어머니가 죽고 곧바로 새엄마를 들인 사실은 마히토도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 아닐까. 그래서 동네 아이들과 싸우고 나서 그 이유를 그는 아버지에게 말하지 않는다. 대신 돌멩이 하나를 들어 제 머리를 찧고 피를 흘린다. 

 

마히토가 가진 아버지와 새엄마에 대한 양가적 감정은, 새로운 기술과 그 혁신을 통해 만들려는 새로운 체제에 대해 미야자키 하야오가 갖는 양가적 감정 그대로다. 그것에 매혹되거나 이끌리면서도 동시에 그것이 파괴한 것들(어머니)에 대한 회한과 안타까움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 양가적 감정은 마히토가 이제 사라진 새엄마를 찾아 하늘에서 떨어졌다는 탑으로 들어가는 통로를 통해 모험하게 되는 이세계의 풍경들을 만들어낸다. 

 

마히토가 만나게 된 이세계는 이질적인 것들이 겹쳐져 있다. 삶과 죽음이 겹쳐 있고, 인공과 자연이 뒤엉켜 있으며, 창조와 파괴가 동시에 일어난다. 그 세계를 인도하고 그 세계를 채우고 있는 존재들이 왜가리, 펠리컨, 잉꼬 같은 새들이라는 점도 그렇다. 새는 하늘과 땅의 경계를 오가는 은유적 동물이다. 마히토가 만나는 새들은 그래서 자유의 상징처럼 하늘을 유영하는 듯 보이지만, 동시에 먹을 것이 없어 저세계의 생명으로 변화할 와라와라까지 잡아먹는 생존에 구속된 존재로도 또 떼로 몰려다니며 본능에 휘둘리는 존재로도 그려진다. 

 

와라와라를 구하기 위해 불길을 솟구치게 해 펠리컨을 공격하는 히미 역시 펠리컨만을 떨어뜨리지는 않는다. 그 과정에서 와라와라들도 불타 죽게 되는 것. 불을 만들어내는 무기로도 활용되는 기술은 그렇게 무차별적이다. 심지어 선의조차 누군가에게는 악의가 될 수밖에 없다. 이세계로 표현되는 마히토의 감정은 그래서 아버지가 낙관하는 기술에 대한 회의와 의심을 드러낸다. 

 

결국 그 세계로 들어간 새엄마와 뱃속의 동생을 구하기 위한 모험에서, 마히토는 그 곳에서 거대한 바위가 공중에 떠 있는 그곳에서, 도형으로 된 블록을 쌓아 균형을 맞추려는 오랜 선조인 외할아버지를 만난다. 그 할아버지는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탑에 매혹되어 그 탑을 둘러싸는 건물을 짓고 그 안에 책 속에 파묻혀 살다가 사라진 인물이다. 아마도 막부 시절 막강한 부와 권력을 누렸을 것으로 보이는 이 인물의 등장은 서구 열강의 등장으로 서구의 과학기술과 사상을 통해 메이지 유신을 하려했던 그 혁신의 끝단이 과연 성공할 수 있는가를 묻는다.

 

이세계로 넘어와 서구의 사상과 기술을 받아들여 완벽한 세계를 꿈꿨지만 그 결과는 금세라도 무너질 것처럼 아슬아슬한 균형 아래 놓여있다. 그걸 상징하듯 도형모양으로 쌓여 아슬아슬하게 세워져 있는 블록의 균형을 맞추는 일을 할아버지는 마히토에게 제안한다. 자신이 실패한 것을 후대가 완성해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 나타난 펭귄 대왕이 휘두른 단칼에 그 블록이 무너져 내리고 그래서 이세계가 무너지는 광경은 그것이 얼마나 위태롭고 허망한 일인가를 드러낸다.

 

결국 판타지는 떠났던 자가 그 환상의 세계로부터 다시 현실로 복귀하는 서사 구조를 갖는다. 마히토는 이세계의 대혼돈을 경험하고 그 곳에서 새엄마를 찾아 다시 현실로 돌아온다. 그런데 떠나기 전 마히토가 가졌던 그 복잡한 심경들은 이세계의 모험 과정을 통해 정답은 아니지만 어떤 해답을 찾아낸다. 새엄마를 구하기 위해 찾아 나선 모험이지만 그 곳에서 만나게 된 소녀였던 엄마가 결국 훗날 화염 속에서 죽을 걸 알면서도 현실로 돌아가는 그 선택을 통해서다. 그건 새로운 세상에 대한 갈구나 혁신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일들이 아이러니하게도 세상을 파괴하기도 하는 이 혼돈 속에서도 판타지라는 환상에 빠지기보다는 현실을 직시하고 외면하지 않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혹자들은 이 작품 속에 등장하는 군수업자 아버지의 모습이나, 펠리컨이 와라와라를 잡아먹으며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다는 대목 등을 통해 이 작품이 일본의 군국주의를 미화했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보다는 미야자키 하야오가 실제 겪었던 어린 시절의 사적 경험들을 모티브로 해서 막부 시대에서 메이지유신으로 넘어오는 일본의 역사적 변화가 만들어낸 현재를 판타지를 통해 담아낸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즉 그건 군국주의 미화보다는 그런 선택이 결국은 실패했고 그러니 앞으로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묻는 것에 가깝다. 친절한 작품이 아니고 은유와 상징이 많이 들어 있어 어떤 관점으로 보느냐에 따라 해석도 호불호도 나뉠 수 있는 작품이지만, 사적인 이야기와 역사 그리고 지금껏 해왔던 판타지의 세계까지 하나로 품어낸 야심작이 아닐 수 없다. (사진:영화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개훌륭’, 강형욱이 그건 자율이 아닌 방임이라 한 까닭

 

“방임해서 키우고 있다는 거예요.” KBS <개는 훌륭하다’에서 외부인을 공격하는 보더콜리 뚱이에게 ‘자율’이라며 점심 후 개들이 마음껏 산에서 뛰어 놀게 한다는 견주에게 강형욱은 그렇게 말했다. 그건 자율이 아니라 방임이라는 것.

 

그리고 그건 사실이었다. 자율이라고는 해도 차를 보면 마치 양떼를 몰던 그 습성이 그대로 튀어나온 듯 타이어를 향해 돌진하고, 외부인을 공격하며, 산으로 들어가서는 불러도 돌아오지 않아 견주가 찾아다녀야 하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뚱이는 그렇게 ‘자율(?)’ 산책을 하고 돌아온 어느 날 다리를 다쳐 수술까지 받아야 했었다.

 

왜 다쳐서 돌아왔을 것 같냐는 질문에 견주는 “싸워서?”라고 추측했지만 강형욱의 답변은 단호했다. “보호자님이 풀어줘서” 그렇게 됐다는 것이다. 그건 억울한 피해자가 아닌 “예견된 사건”이었다는 것.

 

물론 견주의 생각은 나름 이유가 있었다. 마음껏 자연 속에서 뛰어놀게 하고픈 마음이 있었다는 거였다. 강형욱은 도시에서도 그렇게 뛰지 않고 지내는 보더콜리가 있다고 했지만, 견주는 그런 개들이 불쌍하다고 말했다. 견주 가족은 풀어놓는 것이 개들의 자유를 위해 좋은 거라고 여기고 있었지만 강형욱은 거꾸로였다. 풀어놓은 것 자체가 잘못된 거라고 그는 강변했다.

 

그 말을 납득하지 못하는 견주 가족에게 강형욱은 반대로 생각해보라고 했다. “내 개가 누구를 물고 다닐 수도 있다”는 상황을 이야기했다. “만약에 풀어놓은 개가 여기로 와서 문지(개 이름)를 물면 마음이 어떨 것 같아요? 그러다 아빠가 도와주려고 삽자루 들고 가서 탁 쳐서 그 친구가 어디 다쳐서 도망갔어요. 그러면 그 주인이 어떤 나쁜 놈이 내 개를 때렸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 거 아니에요?”

 

그건 자신들이 키우는 개를 소중히 여기고 그래서 자유를 부여하려 할 정도라면, 역지사지로 그 자유로 인해 누군가 피해를 볼 수도 있다는 걸 생각해보라는 강형욱의 조언이었다. 견주의 어머니는 교육을 통해 영역을 벗어나지 않게 하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다른 개들보다 영리한 개들이라며. 하지만 거기에도 강형욱은 단호했다. “그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시면 돼요.” 울타리를 반드시 쳐야 하고 산책에는 반드시 목줄을 함으로써 통제를 해야 한다는 것이 강형욱의 솔루션이었다.

 

타인에게 공격성을 보이는 뚱이는 역시 영리한 개인 것만은 분명했다. 강형욱 앞에서는 덤비지 않는 것처럼 보이다가 뒷모습을 보이면 달려드는 행동양식을 보였다. 또한 자율운동이 많다보니 규칙을 배우는 걸 힘들어했다. 하지만 강형욱의 지도로 뚱이는 조금씩 규칙을 배워나가기 시작했다. 타인이 와도 기다리라는 주인의 말에 기다리는 모습을 금세 보일 정도로.

 

아마도 도시에서 아파트에 살면서 반려견을 키우는 견주들이라면 이 집의 보더콜리처럼 마음껏 뛰노는 그 모습이 어떤 로망처럼 여겨졌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강형욱이 강조한 건 그런 자율이 아니라 분명한 통제가 되는 상황 하에서 반려견과 사람들이 나름의 관계를 통해 행복하게 공존할 수 있는 그런 상황이었다. 그것은 반려견인 이상 야생 그대로 방치해서는 안된다는 뜻이기도 했다.

 

반려견은 이제 우리에게는 또 하나의 가족이 되었다. 하지만 가족이라는 지칭 때문인지 우리는 가끔 반려견을 사람처럼 대하려 하기도 한다. 우리의 감정을 우리 식대로 이입하고 해석하려 한다. 하지만 강형욱이 강조한 건 가족이긴 하지만 반려견은 우리와는 다르다는 점이다. 저들의 언어를 이해해야 하고 무한한 자율이 아닌 통제를 통한 사회화가 전제되어야 반려견은 우리와 함께 살아갈 수 있다는 걸 강형욱은 분명히 말하고 있다.(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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