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용석과 장동민, 과연 자숙기간은 불필요한 일인가

 

과거 인터넷 방송에서 했던 부적절한 멘트 때문에 대중들의 질타를 받았던 장동민은 그 후 자숙의 기간을 갖지 않고 방송을 강행했다. 많은 논란 연예인들이 논란이 터지고 나서 그 진위와도 상관없이 자숙 기간을 가졌던 것과는 사뭇 다른 행보였다. 여기에 대한 불편함을 느끼는 시청자들의 목소리가 나오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최근 장동민은 한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자신이 생각하는 자숙에 대한 남다른 생각을 털어놓았다.

 


사진출처:MBN

그는 자숙이라는 것은 방송을 쉬고 해외로 여행을 떠나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고 오히려 그렇게 칩거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짐을 안고 계속해서 사죄를 하고 사과를 하면서 벌을 받는 것이다라고 했다. 집안의 가장이고 생업으로 방송을 하는그로서는 과거에 저지른 잘못의 대가로 방송을 쉬어라라고 하는 것은 너무 가혹하다고 말했다. 또 그는 잘못을 하거나 실수를 한 다른 연예인들이 방송을 그만두고 쉬는 것은 각자의 판단이며 그의 판단으로는 가장으로서의 역할을 하면서 잘못한 분들께 사과하고 웃음을 드리는 것이 사죄라고 얘기했다.

 

장동민의 이 이야기는 지금까지 대중들과 논란 연예인들 사이에 존재해오던 이른바 자숙의 문제에 대해 완전히 다른 생각을 보여준다. 방송을 그저 잠시 접는 것이 자숙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말이 그리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 왜냐하면 자숙이라는 것도 또 그 자숙기간이라고 하는 것도 법적으로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고, 사안에 따라 또 각자 연예인들의 판단에 따라 다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장동민은 일하면서 자숙하겠다는 자신만의 자숙방법을 얘기한 것이다.

 

틀린 이야기는 아니지만 이것이 대중들에게는 달리 들릴 수 있다는 오해의 소지도 분명히 존재한다. 즉 결과적으로 보면 자신이 저지른 잘못에 대해 별다른 조치 없이 똑같이 일을 하며 생활한다는 것이 액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자숙으로 인한 징벌적 영향이 전혀 미치지 않는 자숙을 자숙으로 볼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이런 입장을 가진 대중들이라면 장동민의 말은 말장난처럼 들릴 수도 있다.

 

물론 이것도 법적인 사안이 아니다. 그저 호불호의 문제일 뿐이다. 장동민은 이렇게 일하면서 자숙하기로 결정한 것이고 그것이 대중들의 마음을 움직여 진심이 닿을 것인지, 아니면 오히려 정반대의 결과로 역효과를 낼 것인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결국 선택의 문제라는 점이다. 장동민의 선택이 있었고, 이제 남은 건 거기에 대한 대중들의 선택이 있을 뿐이다.

 

자숙이나 자숙기간에 대한 이런 새로운 생각은 최근 강용석이 했다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 속에서도 들어가 있다. 그는 그 인터뷰에서 과거 아나운서 성희롱 발언 논란으로 “11개월을 그냥 놀았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그렇게까지 조용히 지낼 필요가 있었나 싶다자숙 기간이 1개월이든 1년이든 10년이든 비난할 사람은 비난한다. 그래서 이번엔 바로 일을 시작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 말을 섣불리 들을 수 없는 게 강용석의 말이 그리 틀린 얘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즉 자숙 기간을 갖고 어떤 인물은 몇 개월만에 쉽게 돌아오기도 하지만 어떤 인물은 몇 년이 지나도 여전히 비난을 받는 것이 현실이다. 자숙기간이 그만한 징벌적 의미를 갖고 있다면 그 효과가 있어야 할 텐데 전혀 효과가 없는 경우가 많다는 것. 그러니 스스로 결정하는 자숙기간을 굳이 가질 필요가 있겠냐는 게 강용석이 얘기하는 요지다.

 

실제로 최근 들어 자숙기간은 그다지 큰 의미를 주지 못하는 경향이 만들어지고 있는 게 현실이다. 대중들에게 자숙의 의미란 사실상 한 번 엇나가면 영영 보기 불편한 사람을 앞으로도 계속 보고 싶지 않다는 뜻을 의미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니 이것은 자숙을 선택하는 연예인들 입장과는 사뭇 상반되는 일이 된다. 연예인들이 자숙을 선택하는 건 다시 연예계로 돌아오기 위함이다.

 

그렇다면 과연 자숙기간은 불필요한 일일까. 여기에 대한 열쇠도 결국은 이제 대중들이 쥐게 되었다. 자숙기간을 갖지 않는 것에 대해 남다른 자숙의 의미를 이해할 수도 있지만, 그것이 오히려 너무 뻔뻔한 태도가 아니냐는 식으로 또 다른 논란을 만들 수도 있다. 논란과 자숙. 연예계에 불변의 룰처럼 여겨져 왔던 그 공식은 앞으로도 지속될 수 있을까. 아니면 이에 대해 새로운 생각을 하는 이들에 의해 파기될 것인가.



정신과 치료 받겠다던 김수미, 방송은 괜찮을까

 

KBS <나를 돌아봐>에서 하차를 선언했던 김수미는 제작진과 출연진들의 끈질긴 설득 끝에 이를 번복했다. 이미 방영된 예고편에서는 김수미가 등장해 드루와 드루와 드루와 드르와를 외치는 장면이 방송을 탔다. 사태가 벌어지기 이전에 만들어진 예고편이라고 해도 이것은 김수미의 복귀를 기정사실화하는 것이다.

 


'나를 돌아봐(사진출처:KBS)'

그런데 김수미의 복귀가 단지 환영받을 일인가는 한번쯤 생각해봐야 할 문제다. 즉 그녀는 이번 사태에서 인터뷰를 통해 <나를 돌아봐> 전격 하차는 물론이고 연예계 활동 중단까지 얘기했었다. 장동민 대신 박명수와 짝을 이루게 되면서 전라도라 꽂아줬냐는 식의 지역 색을 드러내는 악플에 괴로웠다는 것. 그녀는 악플의 괴로움 때문에 스스로 울며 머리카락을 잘랐다고 말했고, 방송 대신 정신과 치료를 받으며 다시 한 번 나를 돌아 보겠다고도 말했다.

 

악플과 자해, 그리고 정신과 치료. 이건 결코 쉽게 넘어갈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그만큼 김수미의 심적 상태가 불안정하다는 얘기다. 그런데 문제의 갈등이 빚어졌던 조영남이 꽃다발을 선물하고 손 편지를 쓴 것으로 김수미는 결국 하차 번복을 하기에 이르렀다.

 

시청률 운운하며 빚어진 김수미와의 갈등으로 제작발표회장을 무단으로 이탈했다가 다시 돌아온 조영남이나, 그 후 악플에 시달린다며 하차 선언을 해버렸다가 또 복귀하게 된 김수미. 너무 쉬운 하차 선언과 그만큼 또 쉽게 이뤄진 하차 번복을 바라보는 시청자들의 시선을 씁쓸하기 이를 데 없다. 마치 나이를 훈장처럼 달고 하는 전횡을 보는 듯한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모든 사안들의 불편함과 씁쓸함을 떠나서 정신과 치료까지를 얘기했던 김수미가 <나를 돌아봐>에 복귀한다는 사실은 그리 간단하게 보기가 어렵다. 즉 이렇게 불안정한 상태에서 방송을 강행한다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인지, 또 그렇게 한다고 해도 제대로 된 방송이 나오기는 하는 것인지가 의문이기 때문이다.

 

이번 사태를 통해 시청자들은 김수미와 조영남의 실체를 마주하게 되었다. <나를 돌아봐>라는 프로그램은 제목처럼 역할을 바꿔 놓아 자신을 되돌아보는 역지사지의 콘셉트를 갖고 있다. 그런데 이번 사안으로 자신을 돌아봐야 할 이들은 김수미와 조영남 자신들이라는 의견이 많다. 그들이 누군가를 돌아보게 만들 상황이나 처지가 아니라는 거다.

 

이미 생긴 불편한 마음은 김수미와 조영남의 방송 출연을 영 탐탁찮게 만들어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방송에 나오게 되면 자칫 지속적인 비난에 직면할 수 있다. 그것은 김수미가 머리카락을 자르게 된 악플의 고통만큼 클 수 있다. 이것은 정신과 치료까지를 얘기했던 김수미에게는 더 치명적일 수 있다.

 

무엇보다 이런 행보들은 김수미 본인에게 결코 좋은 선택이 아니다. 그녀는 지금 마음을 추스르는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다. 오래도록 해온 방송활동과 실제의 여린 모습과는 상반되게 비춰지는 방송 이미지 사이의 괴리는 그녀에게 많은 심적 괴로움을 주었을 것으로 보인다.

 

어찌 보면 이번 사태는 더 큰 문제가 벌어지지 않도록 생겨난 기회일 수 있다. 그녀의 말대로 찬찬히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 그런데 방송 강행은 그런 소중한 기회를 저버리게 하고 있다. 과연 김수미의 방송 복귀는 환영받을 일일까



옹달샘의 급부상과 추락, 그 후폭풍이 의미하는 것

 

왜 갑자기 2013년에 있었던 사안이 지금 현재 옹달샘에게 끝없는 논란의 샘이 되었을까. 당시만 하더라고 옹달샘은 이른바 A급 연예인으로 뜨진 못했었다. 그러니 상대적으로 말의 수위가 높은 인터넷 팟캐스트 같은 공간을 통해 문제의 발언들을 쏟아낼 수 있었을 것이다. 거기에는 세 사람이 함께 모여 수다를 떠는 과정에서 생기기 마련인 일종의 상승작용 같은 것도 있었다. 기자회견을 통해 장동민이 거론한 막말의 이유에는 그 내용이 들어가 있다.

 

'SNL코리아(사진출처:tvN)'

방송이란 틀을 벗어나 저희들이 방송을 만들어 가고 청취자들과 가깝게 소통하며 즐거움을 느꼈고, 더 많은 분들에게 큰 웃음 드리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웃음만을 생각하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서로가 내뱉는 발언이 세졌고, 더 자극적인 소재, 격한 말들을 찾게 됐다. 그 웃음이 누군가에게 상처가 될 것이란 생각은 하지 못했다. ‘재미있으면 되겠지란 안일한 생각을 가졌다.”

 

그것은 진심일 것이다. 하지만 진심이라고 해도 그 막말들은 용서되기 어려운 것들이다. 이것은 마치 왕따를 시킨 아이들이 그 당사자가 심각한 고통을 받고 있다는 것을 전혀 인지하지 못하는 것과 거의 유사하다. 그들은 후에 피해자가 극단적인 일을 벌인 뒤에야 자신이 했던 일을 깨닫곤 한다. 즉 왕따를 시키는 아이들은 애초부터 악의를 갖고 있는 악의 존재들이 아니라는 것이다. 다만 그런 환경 속에서 자신이 무슨 짓을 하는지 전혀 모르기 때문에 그런 이해할 수 없는 짓까지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저 인터넷이라는 조금은 사적인 느낌을 주지만 결코 사적이지 않은 공간에 머물러 있을 때만 해도 문제는 드러나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이들이 이 막말의 이미지를 캐릭터화하여 성장하고, 지상파 같은 방송 그것도 <무한도전> 같은 최고의 예능 프로그램에 들어오게 되면서 문제는 달라진다. 물론 수위조절을 하겠지만 대중들로서는 그 인터넷 팟캐스트 등에서 했던 B급 막말의 캐릭터들이 지상파와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판단하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그 막말의 수위는 약자들을 지목한 언어폭력에 가까운 것이었으니 더더욱 그렇다.

 

그래서 이 문제는 <무한도전> 식스맨이 촉발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무한도전>과는 무관한 일이다. 옹달샘은 결국 성장을 원했고 B급의 세계가 아닌 제대로 된 세계에서의 활동을 원했다. 그것은 어쨌든 지금까지와의 활동과는 전혀 다른 것을 해야 하는 것이고, 또한 책임도 그만큼 막중해진다는 걸 의미한다. 당연히 과거 자신들이 했던 발언에 대한 책임도 지고 가야 한다.

 

그래도 여전히 옹달샘을 지지하고 동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것은 그들을 오래도록 봐오며 그 진면목을 잘 아는 관계자들이거나 가까이서 응원해온 팬층일 수 있다. 하지만 지금 옹달샘은 그 소규모 집단의 지지를 넘어서 더 큰 대중들 앞으로 나오려 하고 있다. 그것은 또 다른 세계다. 유세윤이 상대방의 상처와 아픔을 모르고 사태의 심각성도 몰랐다.”고 뒤늦게 사죄를 한 건 그가 여전히 이 과거의 위치에 머물러 있다는 걸 말해준다.

 

옹달샘은 프로그램 하차에 대해서 제작진의 뜻에 전적으로 따르겠다고 밝혔다. 이것은 단지 책임을 프로그램 제작자들에게 넘기려고 하는 의도는 아닐 것이다. 갑자기 급부상하면서 너무 많은 프로그램에 발을 들여놓다 보니 모든 걸 내려놓고 하차한다고 하더라도 그 피해도 너무나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옹달샘 스스로 모든 프로그램에서의 전격하차를 선언하는 것이 또 다른 피해로 이어진다는 미안함이 거기에는 깔려있다.

 

하지만 방송 하차는 지금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일정한 휴지기를 갖는 것이 장기적으로 보면 훨씬 더 좋은 선택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상황에 계속 방송을 강행한다면 과거를 떨치고 나갈 기회를 잃게 된다. 고름은 짜내고 가야한다. 그걸 안고 가다가는 고통도 고통이거니와 새 살이 날 수 있는 기회를 영영 놓치게 된다.

 

프로그램 제작자들은 저마다 옹달샘이 괜찮은 재능을 가진 이들이라는데 이견이 없다. 하지만 요즘은 재능보다 더 중요한 것이 그 사람에 대한 호감도와 지지다. 그것을 생각한다면 제작자들도 일단은 이들을 놓아주는 게 오히려 더 큰 도움을 주는 일이다. 재능은 언제든지 다시 살릴 수 있다. 다만 한번 잃어버린 호감도와 지지는 프로그램을 통해 생겨나기보다는 이들의 선택과 삶을 통한 진정성 같은 걸 통해 회복될 수 있다.

 

옹달샘이 했던 일련의 막말만을 계속 떠올리면 도무지 이들을 이해하기가 어렵게 된다. 하지만 이번 문제에서 그 문제의 막말들이 나올 수 있는 인터넷 팟캐스트의 그 독소적인 환경에 대한 점검 또한 필요한 시점이다. 지금껏 우리는 이 방송들을 사적인 것이라 치부해왔지만 그것이 얼마나 공적일 수 있는가를 잘 보여준 사건이기도 하다. 옹달샘은 현명한 선택을 통해 새로운 길을 걸을 수 있어야 할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인터넷 문화에 대한 재점검 또한 이뤄져야 할 것이다. 이 문제는 이제 옹달샘 멤버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상처 많은 <무도> 식스맨, 이제라도 시각을 바꿔야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제 바람과 욕심이 <무한도전><무한도전>을 사랑하시는 모든 분들께 누를 끼치지 않도록 미약하나마 후보 사퇴를 통해 제 잘못에 대한 뉘우치는 마음을 전하려 합니다.” 마치 장관이나 국무총리의 청문회 끝에 나올 것만 같은 이야기가 장동민의 입에서 나왔다. 그는 결국 2013년에 팟 캐스트에서 했던 문제의 발언들이 빌미가 되어 <무한도전> 식스맨 후보에서 자진사퇴를 결정했다.

 

'무한도전(사진출처:MBC)'

과거를 반성하고 이제 비상하려던 한 개그맨이 대중적인 심판대에 올라 꿈이 꺾인 것에 대해 안타까움이 없는 것은 아니나, 이 또한 어쩌면 장동민으로서도 치러야할 과정일 것이다. 인터넷은 잘못된 과거를 덮지 못한다. 그것들이 분명한 사죄의 절차적 과정을 통해서만이 그저 받아들여질 뿐이다. 우리는 이 사태를 김구라를 통해 확인한 바 있다. 대중적인 지지가 높아질수록 검증의 잣대는 더 날카로워진다.

 

장동민에 대한 논란은 여전하지만 그보다 이 논란이 가져온 <무한도전>에 남긴 여파는 자못 크다고 할 수 있다. 이건 결코 <무한도전>이 식스맨 특집을 통해 원했던 결과가 아니다. <무한도전> 식스맨 특집을 기획한 것은 실제로 그 여섯 번째 멤버가 필요하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김태호 PD도 밝힌 바대로 이보다 더 큰 것은 우리 예능계에 이처럼 많은 가능성의 존재들이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서였다. 물론 장동민은 가능성만큼 위험성도 컸다는 걸 말해주지만.

 

하지만 이런 의도에도 불굴하고 <무한도전>이 가진 현실적인 영향력과 팬덤은 이 일종의 선거전을 그저 웃으며 바라볼 수 없게 만들었다. 누가 식스맨이 될 것인가에 더 초점이 맞춰졌던 것. 그러니 그 물망에 오른 인물들에 대한 대중적인 호불호는 <무한도전>의 팬덤을 흐트러뜨리는 결과로 이어졌다. ‘축제니 뭐니 말하지만 선거란 냉철하게 말하면 낙선자를 지지한 이들의 상처를 남기기 마련이다.

 

본래 의도와 상관없이 생겨난 <무한도전> 식스맨 특집의 상처는 너무 결과 지향적으로 이 아이템을 바라본 데서 발생한 일이다. 누가 될 것인가. 누가 떨어질 것인가. 그런데 사실 이건 지금껏 결과가 아니라 과정을 중시하고 그것을 모토로 하는 <무한도전>의 색깔과는 너무 동떨어진 시각이다. 어찌됐든 의도와 달리 이렇게 바라보는 시각이 생긴 만큼 그 집중도는 높아졌을지 몰라도 그 뜨거워진 만큼의 상처들도 생겨날 수밖에 없었다.

 

장동민의 자진하차는 이번 식스맨 특집의 의도와 달리 만들어진 상처의 가장 큰 표본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 이면에는 이미 불편함과 상처들이 존재했을 거라 여겨진다. 이를테면 유병재 같은 후보가 탈락했을 때 그를 지지하던 팬들은 어떤 식으로든 실망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심지어 이번 장동민 사태가 갑자기 불거진 것에 대해 배후가 있다는 식으로 음모론이 나오는 건 예상외로 치열해진 식스맨 선거전의 양상을 잘 드러내준다.

 

물론 이 모든 건 <무한도전>이 의도한 게 아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렇게 흘러왔다면, 거기에 대해 결자해지를 하는 것도 <무한도전>이 해야 할 일이다. 지금으로서 가장 좋은 방법은 애초의 의도대로 식스맨이라는 자리를 한 사람의 자리로 부여하는 일을 피하는 것이다. 지금 현재 막상 식스맨이 된다고 해도 그 위치가 편할 수 있는 후보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결과는 선거전의 여진으로 남아 식스맨 당사자에게도 부담을 줄 수밖에 없다.

 

왜 굳이 식스맨은 한 사람이어야 할까. 지금껏 이 아이템을 위해 노력해온 많은 후보군들이 그 자리를 돌아가며 차지할 수는 없는 일일까. 이것은 그간 고생한 후보들에 대한 예우이기도 하고, 본래 식스맨 특집 기획의 본질적인 의도에 부합하는 일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무한도전>의 상수로만 이뤄진 견고한 가족 시스템이 자연스럽게 변수를 하나씩 집어넣어 새로운 이야기를 창출해내는 장치가 될 수도 있다. 늘 그래왔듯, <무한도전>이 이번 사안에서도 모두가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묘수를 내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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