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P.2’, 사병이 죽어도 은폐만 하려는 군 시스템과의 전쟁

D.P.2

“그러면 그 개인은 무엇 때문에 함께 모여 있습니까? 무엇을 위해서 군대에 왔습니까? 그들은 모두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 군대에 왔습니다. 같이 생활을 하다가 누가 누구를 죽이는 일이 발생을 했는데 ‘나라는 아무런 책임이 없다’ ‘증거가 없다’ ‘직접적인 원인이 아니다’? 아니, 그러면 그런 나라를 위해서 그들은 무엇을 지키기 위해서 군인이 되었습니까?” 법정에 증인으로 선 임지섭(손석구) 대위는 총기난사사건의 원인을 개인으로 몰아가려는 국군본부 법무실장 구자운(지진희) 준장에게 그렇게 일갈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D.P.2>가 돌아왔다. 시즌1에서 조석봉(조현철)이 제 얼굴에 권총을 쏘면서 했던 이야기 “뭐라도 바꾸려면 뭐라도 해야지”라는 말을 남겼지만 그가 끝내 버텨내지 못하고 벌인 일탈은 과연 고질적인 군 문화를 바꿔놓았을까. 안타깝지만 아니다. 시즌2는 조석봉에 이은 김루리(문상훈) 일병의 총기 난사사건으로 문을 연다. 조석봉의 절친이기도 했던 김루리 일병이 함께 생활하던 사병들을 향해 총기를 난사하는 사건은 왜 벌어지게 된 걸까. 

 

지속적이고 집단적인 가혹행위 때문이다. 하지만 김루리 일병이 저지른 이 사건에 대해 군 수뇌부는 그 진상을 제대로 파악하려 하기보다는 교묘하게 그 책임을 ‘개인의 잘못’으로 돌리는 작업을 한다. 언론 플레이를 통해 피해자들에 대한 안타까움만 집중적으로 보도하고 김루리 일병을 악마화하려 한다. 피해자 가족들은 김루리 일병의 엄마가 운영하는 식당까지 찾아와 항의를 하는데 오로지 엄마만이 아들을 걱정한다. “근데요. 우리 루리가 잘못한 건 맞는데 루리를 그렇게 만든 건 애한테 돼지 새끼라 그러고 애 얼굴에 살충제 뿌리고! 맨날 욕하고! 때리고!” 

 

<D.P.> 시즌1이 폭력이 일상화된 군 문화의 병폐가 만들어낸 비극을 그렸다면, 시즌2는 이런 중대한 사건들이 벌어졌음에도 변화하지 않는 군대와 그렇게 된 이유를 제공하는 군대의 조직적인 은폐 시스템을 저격한다. 국군본부 법무실장 구자운 준장은 이를 진두지휘하는 인물로 등장하고, 국군본부 고등검찰부 군수사관 오민우(정석용)는 이를 현실화시키는 행동대장으로 맹활약한다. 막강한 권력을 가진 이들은 군대 내에서 벌어진 사건들을 덮기 위해 무장한 사병들을 동원하기도 하고, 때론 지휘 체계 앞에서도 물러나지 않는다. 

 

은폐 시스템을 운용하는 고위급 간부들과의 대결을 그리고 있어, 이들과 대결하는 서사의 중심축도 <D.P.> 시즌1의 안준호(정해인), 한호열(구교환)만이 아니라 그 상급자들인 임지섭 대위, 박범구(김성균) 중사 같은 간부들의 활약으로까지 넓혀진다. 서사는 훨씬 장르화된다. 군 수뇌부가 그간 사건을 은폐하고 조작해왔던 정황이 담긴 USB를 둘러싼 추격전과 쟁탈전이 벌어지고, 그 과정에서 안준호와 그를 잡기 위해 동원된 수십 명의 군인들이 전쟁에 가까운 사투를 벌이는 장면들도 펼쳐진다. 그리고 마지막은 법정물의 흐름으로 이어진다. 

 

장르물의 색깔이 짙어지면서 다소 슈퍼히어로화 된 안준호의 맹활약이 펼쳐지고 상대적으로 한호열과 함께 티키타카를 만들던 버디물의 색깔이 줄어들었다. 정해인의 액션과 더불어 손석구, 김성균의 내면 연기와 무엇보다 악역으로서 강렬한 인상을 남긴 지진희, 정석용의 존재감이 두드러진다. 물론 처절한 상황에 놓인 사병들의 역할을 미친 연기로 펼쳐낸 문상훈, 최현욱, 배나라 같은 배우들도 빼놓을 수 없다. 

 

물론 <D.P.> 시즌1이 갖고 있던 버디물과 사회극적인 색깔을 좋아했던 시청자라면 살짝 아쉬움이 남는 대목일 수 있다. 하지만 <D.P.2>는 시즌1과의 단단한 연결고리를 갖고 있다. 시즌1 엔딩에서 안준호가 고 신우석의 납골당을 찾아왔다가 그 누나를 만나는 장면은 그가 왜 그토록 시즌2에서 자신을 돌보지 않고 맹렬히 군 비리와 맞서게 됐는가로 이어진다. 탈영한 그를 체포하려 나왔다가 우연히 라이터를 건넸는데 그걸로 번개탄을 피워 자살한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던 그가 아니었던가. 

 

무엇보다 시즌2는 군대 안에서 이런 사건들이 반복해서 벌어지는 이유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문제의 핵심을 향해 달려간다. 진상 규명 없이 은폐하려고만 하는 군대가 그 이유이고, 그래서 시즌2는 그걸 바꾸려 안간힘을 쓰는 이들의 절절한 마음이 담겨진다. 그래서 절망의 끝에 작지만 분명한 희망의 메시지도 담긴다. 보다 장르화된 맛으로 돌아왔지만 <D.P.2>가 남기는 일갈과 여운은 여전히 날카롭고 길다. (사진:넷플릭스)

‘닥터 프리즈너’, KBS도 이런 웰메이드가 가능한데 어째서

 

KBS 드라마 <닥터 프리즈너>가 종영했다. 마지막까지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전개였다. 나이제(남궁민)와 이재준(최원영)의 대결은 결국 나이제의 승리로 돌아갔다. 되돌아보면 약자들 위에 군림해 권력을 휘두르며 그들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흔들던 이재준 같은 인물이 제대로 처벌받기 위해서는 얼마나 힘겨운 싸움이 필요한가를 보여준 드라마였다. 엔딩에 이르러 감옥 속에서 이재준이 끝까지 나가겠다고 의지를 밝히고, 나이제가 “그냥 거기서 죽어”라며 짓는 미소는 사이다 엔딩이면서도 씁쓸함을 줬다. 결국 복수를 끝내고 성공한 나이제 역시 어딘가 저들을 닮은 미소를 짓고 있으니 말이다.

 

<닥터 프리즈너>는 최고 시청률 15.8%(닐슨 코리아)를 기록했고 방영 내내 화제성도 뜨거웠다. 처음에는 나이제의 선민식(김병철)과의 대결을 보여주더니 그 다음에는 이재준과의 대결이 이어졌다. 그 과정에서 이재준이 공동의 적이 되면서 나이제와 선민식이 손을 잡았지만,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 하는 선민식이란 캐릭터는 극을 뻔하지 않게 만들었다.

 

감옥과 병원이라는 공간을 이어 붙여 이 두 공간이 만들어내는 장르적 특징을 이색적으로 결합한 면도 <닥터 프리즈너>의 성취였다. 흔히 감옥드라마라고 하면 탈옥 혹은 탈출의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의학드라마라고 하면 병원에서 환자를 치료하는 이야기가 주를 이루지만, 두 장르를 이어 붙이자 전혀 다른 결의 이야기가 만들어졌다. 감옥은 VIP들의 형 집행 정지가 시도되는 공간이 되었고, 누군가를 살리는 의사가 아닌 죽이는 의사들이 등장했다.

 

나이제라는 인물은 ‘복수의 화신’으로서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닌 독특한 캐릭터로 그려졌다. 그래서 드라마는 단순한 선악구도 혹은 갑을대립의 형태를 벗어날 수 있었다. 이렇게 될 수 있었던 건 이 드라마가 바라보는 현실인식이 그만큼 무거웠기 때문이다. 세상은 그렇게 단순한 선의로만 바뀌지 않는다고 이 드라마는 말하고 있었다. 저들처럼 독해지지 않으면 성실한 악을 결코 처단할 수 없다고.

 

<닥터 프리즈너>의 성취는 KBS 드라마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을 지워버리기에 충분했다. 최근 들어 KBS 드라마라고 하면 뻔한 멜로거나 흔한 출생의 비밀이거나 여전히 가족드라마의 범주 안에 머물러 있는 것처럼 여겨질 정도로 어떤 성취를 발견하기가 어려웠다. 지난해에는 그래도 실험적인 장르드라마들을 선보이기도 했지만 시청률에서 난항을 겪으면서 올해는 수목 시간대에도 <왜그래 풍상씨> 같은 주말에 어울릴 법한 드라마를 편성하기도 했다.

 

하지만 실험적이면서도 완성도도 높은 <닥터 프리즈너>의 성공은 KBS 드라마도 그만한 투자가 전제된다면 좋은 장르물을 편성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 KBS라고 해서 뻔한 드라마들만 세워질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또 다소 복잡해 보이는 장르물이라도 완성도가 높은 드라마에는 채널과 상관없이 시청자들이 찾아본다는 걸 <닥터 프리즈너>의 성공은 말해준다.

 

<닥터 프리즈너>는 성공했지만 여전히 KBS 드라마는 위기다. 물론 이건 KBS만이 아니라 지상파들이 모두 처한 위기지만, 그걸 깨칠 수 있는 건 역시 보다 완성도 높은 드라마에 더 많은 투자를 하는 방법 밖에는 없다. <닥터 프리즈너>의 성취가 KBS 드라마에 시사하는 건 바로 그것이다.(사진:KBS)

‘닥터 프리즈너’, 남궁민의 감옥 메디컬에 빠져들게 된 건

단 2회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압도적인 몰입감에 속도감이다. KBS 새 수목드라마 <닥터 프리즈너>가 제대로 사고를 칠(?) 기세다. 그 압도적인 몰입감의 정체는 제목 속에 담겨있듯 의학드라마와 감옥서사가 제대로 엮어져 힘을 발휘하고 있어서다. 

그 힘의 중심에 서 있는 나이제(남궁민)이고, 그에게 강력한 동인을 만들어주는 악역이 태강그룹 2세인 이재환 상무(박은석)다. 태강그룹 내에서 배다른 형인 이재준(최원영)과 경영권을 두고 치열한 대결을 벌이는 그는 안하무인에 폭력적인 성향까지 가진 ‘갑질 망나니’다. 그 때문에 나이제는 자신이 돌보던 환자를 모두 잃고, 의료계에서 퇴출될 위기에까지 몰린다. 

하지만 태강병원 응급의학과의 에이스였다 밑바닥으로 떨어졌지만 나이제는 이재환에 대한 복수를 위해 서서울 교도소의 전임의로 돌아오게 된다. 의사였던 그가 복수를 위해 교도소 전임의로 돌아오게 되는 상황이 개연성 있는 이야기가 될 수 있었던 건, 이른바 ‘형 집행정지’라는 권력자들의 편법 행위 때문이다. 경영권 다툼을 벌이는 이재준이 이재환의 범법행위를 폭로해 감방에 넣으려 하지만, 이재환은 ‘형 집행정지’를 이용해 빠져나오려 한다. 그 중간에 나이제가 끼어들어 이재환이 ‘형 집행정지’를 받지 못하고 자신이 부임한 서서울 교도소에서 오래도록 수감생활을 하게 만들려는 것.

이 지점은 <닥터 프리즈너>가 현재의 대중들이 갖고 있는 법 정의에 대한 정서를 정확히 짚어낸 부분이다. 각종 사건에 휘말려 감옥에 가도 병보석 같은 형태로 ‘형 집행정지’를 받아 나오는 이들을 뉴스 속에서 우린 너무나 많이 봐왔다. 휠체어를 타고 초췌한 몰골을 한 채 병원으로 들어가는 뻔한 장면들을.

<닥터 프리즈너>는 그것을 일종의 병원의 ‘VIP 사업(?)’으로 그려낸다. 교도소의 의사들은 기업과 결탁하여 이른바 VIP들을 병보석 같은 형 집행정지로 빼내 유관 병원으로 이송시키고, 병원은 이들을 받아 엄청난 수익을 올린다. 물론 드라마로 극화된 것이지만, 그리 개연성 없는 이야기도 아닐 것이다. 돈이 드라마 같은 일들도 현실로 만들어주는 그런 세상이 아닌가. 

<닥터 프리즈너>는 바로 법 집행에 있어서조차 벌어지고 있는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사이의 불평등과 편법, 그리고 가진 자들의 갑질에 대한 대중들의 분노를 촉발시키면서, 이를 드라마적 몰입감으로 이끌어낸다. 나이제가 실력을 갖춘 외과의면서 동시에 만만찮은 인물이라는 점은 이 가진 자들과의 한 판 싸움에 대한 어떤 기대감을 갖게 만든다. 또 복수극과 스릴러적인 장르 문법을 가져와 반전에 반전을 더하며 주도권이 어느 쪽으로 갈지 알 수 없게 만드는 이야기구조는 시청자들의 궁금증을 증폭시킨다. 

다소 장르적이고 과장된 서사를 안정감 있게 만들어주는 연기자들의 호연 또한 몰입감을 높여주는 중요한 요소다. 그가 하는 장르물은 믿고 보게 만드는 남궁민은 물론이고(그에게서는 어딘지 <김과장>의 그 장난기 가득하지만 통쾌한 캐릭터가 엿보인다), <스카이 캐슬>로 선굵은 자신들만의 캐릭터가 가진 매력을 한껏 보여줬던 김병철과 최원영 게다가 드라마 시작의 힘을 만들어내는 배우로 자리한 김정난의 연기도 빼놓을 수 없다. 

오랜만에 KBS 드라마가 제대로 웰메이드 장르물을 선보이고 있다. 그간 막장과 퇴행 드라마로 논란을 일으켰던 KBS 드라마의 위기상황을 떠올려보면, <닥터 프리즈너>에 거는 기대는 더더욱 커진다. 어쩌면 이 드라마는 그간 주춤했던 KBS 드라마의 저력을 보여줄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이만큼의 몰입감과 안정감을 끝까지 밀어붙일 수 있다면.(사진:KBS)

주말극 같은 장르물, 이건 ‘열혈사제’의 진화인가 퇴행인가

분명 장르물의 색깔을 지녔는데 어딘지 주말극 같다. 나쁜 놈들 때려잡는 전직 요원 출신의 신부. 동료애 하나만큼은 분명히 갖고 있지만 두려움 때문인지 트라우마 때문인지 조폭들에게 휘둘리는 형사. 마음 한 구석에 살해당한 신부님을 외면하지 못한 채 살아가지만 성공하고픈 욕망 때문에 흔들리는 검사. 이들이 정치인에서부터 경찰, 검찰, 조폭들까지 결탁해 구담시를 좌지우지하는 악의 카르텔과 대적해가는 이야기. SBS 금토드라마 <열혈사제>는 분명 액션이 더해진 장르물의 구조다. 하지만 이야기가 전개된다기보다는 캐릭터 중심으로 자잘하고 일상적인 코미디에 더 집중하는 이 드라마는 어딘지 전형적인 주말극을 닮았다. 

시청률표를 보면 금토에 SBS가 새롭게 시간대를 마련해 들어온 이 드라마가 완벽한 성공을 거두었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전국시청률이 16.1%(닐슨 코리아)에 이르고, 특히 타깃시청률이라고 할 수 있는 2049시청률 또한 9.4%를 달성하고 있다는 건 실구매층으로 여겨지는 젊은 세대들 또한 이 드라마에 몰입하고 있다는 걸 말해주니 말이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어딘지 변종이다. 지금껏 시청자들이 OCN이나 tvN 등에서 자주 봐왔던 장르물과는 너무나 다른 색깔을 지니고 있어서다. 예를 들어 OCN에서 방영됐던 <나쁜녀석들> 같은 드라마와 <열혈사제>를 비교해보면 그 차이가 확연히 드러난다. 사실 <나쁜녀석들>이나 <열혈사제>나 그 이야기 설정과 구조만 보면 그리 다른 장르물은 아니다. 현실을 대변하는 악의 무리들이 존재하고(이들은 대부분 권력과 결탁해 있다), 검찰이나 경찰 같은 법집행기관은 부패해 있다. 그러니 더 ‘나쁜 놈들’이 나서 그들과 싸우거나, 참다못한 열혈신부가 나서 그들과 대적해나간다. 그리고 이들은 혼자가 아니라 비슷한 부류의 소외된 이들과 함께 팀을 이룬다. 

<나쁜녀석들>과 <열혈사제>는 이야기 구조는 비슷해도 장르물의 색깔은 완전히 다르다. <나쁜녀석들>은 긴장감 넘치는 대결구도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사건이 어떻게 전개될지 또 언제 어떤 반전이 생겨날지 알 수 없는 그 이야기에 시청자들을 몰입시킨다. 반면 <열혈사제>는 정반대다. 시청자들은 이미 이 전직 요원 출신의 신부와 지금은 악의 무리들에 반쯤 발을 걸치고 있는 형사와 검사가 이 구담시라는 곳에서 살아가는 선량한 이들과 힘을 합쳐 결국은 정의를 세울 거라는 걸 알고 있다. 

이야기 전개도 전혀 빠르지 않고 어떤 면에서는 동어반복적인 같은 상황이 빙빙 도는 듯한 느낌마저 준다. 이 드라마의 전제가 되는 이영준 신부(정동환) 살해사건은 일찌감치 벌어졌지만 아직 그 갈피조차 잡지 못했다. 대신 악의 세력들과 결탁한 불량급식업체의 비리를 캐나가는 김해일(김남길) 신부의 이야기가 몇 회에 걸쳐 이어진다. 대신 이 드라마는 느린 전개 속에 자잘한 캐릭터 코미디를 채워 넣는다. 마치 만화에서나 가능할 법한 우스꽝스런 장면들이 연출되고, 실제로 태국인 출신 노동자인 쏭삭(안창환)이나 배부르게 먹으면 놀라운 청력을 발휘하는 요한(고규필)이 보여주는 코믹한 캐릭터 플레이는 의외의 정감과 재미를 더해 넣는다. 

그래서 시청자들은 또 다른 의미의 ‘시간 순삭(순간삭제)’을 경험한다. 뭐 별 이야기도 아직 진행된 게 없는 것 같은데 어느새 한 시간이 훌쩍 지나가버리는 경험. 하지만 그건 긴장감 넘치는 전개 때문에 생겨나는 ‘시간 순삭’과는 사뭇 다르다. 이야기는 실제로 별로 전개되지 않지만 대신 깨알 같은 캐릭터들의 유머 코드들이 채워져 있어 시간가는 줄 모르고 보게 되는 그런 의미에서의 ‘시간 순삭’이다. 

이건 도대체 어떻게 봐야할까. 장르물이 지상파 주말극이라는 시간대를 공략하기 위해 시도된 새로운 의미의 진화일까. 아니면 본래 속도감 있는 사건 전개로 팽팽한 긴장감을 주는 장르물의 퇴행일까. 여러모로 아슬아슬한 지점에 서 있는 <열혈사제>지만 그 느린 전개에도 남다른 몰입감을 느끼며 젊은 시청자들까지 들여다보게 되는 건 이런 장르의 변종이 그 안에 들어 있어서다. 

장르물은 이제 드라마의 중요한 트렌드가 되어가고 있다. 하지만 지상파들은 여전히 그 플랫폼이 지금껏 유지해온 색깔과 시청층들(신구세대를 모두 아우르려는)을 겨냥해 본격 장르물보다는 변종들을 시도해왔다. 멜로에 가족까지 더한 이른바 ‘복합장르물’ 같은 게 대표적인 사례다. 그런 점에서 보면 <열혈사제>는 또 하나의 변종 장르물이라 여겨진다. 장르물이지만 주말극 같은 느슨함을 오히려 장점으로 만들어내고 있는.(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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