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을 걷는 밤', 카카오TV에 최적화된 콘텐츠의 매력

 

이걸 만일 지상파에서 방송으로 만든다면 가능했을까. 카카오TV <밤을 걷는 밤>은 그 콘셉트가 단순하고 명쾌하다. 어둑해진 밤에 유희열이 나서는 마실을 따라가는 것. 그가 첫 번째로 선보인 '밤마실'의 장소는 청운효자동이다. 그 곳은 유희열의 어린 시절 추억이 묻어있는 곳이다.

 

동네는 과거의 풍경을 그대로 갖고 있는 곳도 있고 달라진 곳도 있다. 유희열은 그 길을 걸으며 과거에 대한 기억과 현재의 마음의 시차를 맞춰 나간다. 당시 골목길에서 같이 뛰놀던 친구들을 떠올리고, 저녁 어스름해질 때면 부르는 소리에 모두 집으로 돌아간 그 길에 홀로 덩그러니 서 있던 자신을 기억해낸다.

 

유희열은 어머니가 늦게까지 일을 하시느라 집에 없었다고 했다. 그리고 길을 따라 걷다가 문득 한 버스정류장 앞에 잠시 쉬었다 가자고 말을 꺼낸다. 알고 보니 그 곳은 늦게까지 일하시던 어머니가 버스에서 내리던 곳이었다. 버스가 서면 엄마가 왔나 돌아보곤 했다는 유희열은 자신보다 자신을 발견한 엄마가 더 기뻐하셨던 걸 기억해낸다.

 

<밤을 걷는 밤>은 밤이어서 깨어나는 새로운 감각들을 담는다. 사실 빛은 많은 것들을 희석시키기 마련이다. 너무 노출된 것들은 아이러니하게도 잘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어둠이 내리기 시작한 밤이어야 적당히 가려진 곳에서 우리가 보지 못했던 것들과 듣지 못했던 소리들이 튀어나오기 시작한다. 유희열은 그 길을 걸어가며 밤이 깨어나고 있는 걸 온 몸으로 느낀다.

 

"너무 좋다"고 말하는 그의 모습은 그 길을 영상으로 따라가는 시청자들의 마음 그대로다. 서울하면 번잡한 풍경들만 떠올리곤 했던 시청자들이라면, 그렇게 조용하고 고즈넉한 밤 시간의 마실에 마음이 차분해지고 새로운 감각들이 깨어나는 그 기분을 만끽하는 유희열에 빙의될 수밖에 없다.

 

이토록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밤거리를 걸으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으로 콘텐츠가 될까 싶지만, 바로 그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 <밤을 걷는 밤>의 진짜 매력이다. 아카시아 나무가 있던 곳을 지나며 한창 꽃이 피어날 때는 향기를 떠올리고, 윤동주 문학관의 시인이 걷는 길을 따라 걸으며 괜스레 시인이 된 듯한 감성을 느껴본다.

 

시인의 언덕이라는 곳으로 가려다 그 곳에서 연인들을 발견한 유희열은 서둘러 그 곳을 벗어나며 이 길이 연인들이 같이 걷기에 최적이라는 걸 말해준다. 손잡기 딱 좋은 조금 어둑해진 길을 따라 오르고, 아름다움 이외에는 아무 것도 없다는 뜻의 '무무대'라는 장소에서 내려다보이는 아름다운 서울의 야경을 발견하고는 그 곳이 프러포즈하기 딱 좋은 곳이라는 팁을 준다.

 

밤, 걷는 속도, 별 특별한 것 없는 편안한 이야기들... <밤을 걷는 밤>은 이 단순하지만 강력한 감성을 담아내면서 카카오TV라는 매체에 딱 어울리는 편집과 구성을 보여준다. 세로 화면에 유희열이 하는 멘트들이 마치 카톡 메시지처럼 올라오는 것도 재밌고, 이 영상과 더불어 카카오맵이 전하는 산책코스 정보 또한 실용적이다.

 

카카오TV는 지난 1일 웹 콘텐츠의 시대를 열겠다는 포부로 새로운 플랫폼을 열었다. 새로운 플랫폼은 거기에 맞는 내용과 형식들이 담겨져야 비로소 차별화된 콘텐츠로서의 힘을 발휘할 수 있기 마련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밤을 걷는 밤>은 카카오TV라는 플랫폼의 성격을 잘 보여주는 콘텐츠가 아닐 수 없다. 그저 편안히 유희열을 따라 그 밤마실을 함께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이 색다른 플랫폼의 맛을 느낄 수 있으니 말이다.(사진:카카오TV)

<집밥 백선생>, 시금치 요리로 보여준 백종원 레시피의 진가

 

대충 대충 하는데 맛있어요.” 김국진의 이 한 마디는 tvN <집밥 백선생>이라는 쿡방의 정체성을 거의 담고 있다. 시금치 요리라고 하면 누구나 떠올리는 것이 시금치 무침이나 김밥 속에 들어가는 시금치 혹은 시금치 된장찌개 정도일 게다. 너무 흔하지만 그래서 너무 뻔해보였던 시금치. 하지만 백종원은 이 뻔한 재료를 갖고 세계 음식 기행을 떠난 듯한 다양한 맛을 선사한다.

 

'집밥 백선생(사진출처:tvN)'

항상 시작은 기본부터. 시금치를 데쳐 간장과 간마늘을 넣고 조물조물 무친 후 고소한 깨를 얹어 먹는 시금치 무침. 그 간단한 기본을 하고 나면 그 다음에는 듣도 보도 못한 시금치 된장 죽이나 동남아풍 시금치 덮밥에 말도 안되는 이태리풍 시금치 토마토 피자 같은 것이 레시피로 제공된다.

 

오죽하면 아이들이 잘 안 먹어 <뽀빠이> 같은 만화를 통해 시금치가 인기 음식으로 소개됐을까. 그만큼 시금치라는 식재료는 어딘지 선입견이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시금치 된장 죽 같은 레시피를 보고 나면 해장으로 이만한 게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물론 시금치 토마토 피자는 백종원이 말하듯 맥주를 부르게 만드는 레시피다.

 

마치 수학 공식을 배워 차츰 응용으로 나가듯 <집밥 백선생>의 음식 레시피들은 처음에는 기본 공식으로 식재료 특유의 맛과 향 그리고 특징을 이해한 후 응용으로 들어간다. 시금치의 경우 살짝 데쳐주면 그 거해 보이던 양이 한 줌으로 줄어드는 특징과 특유의 채소가 주는 건강한 느낌이 특징이다.

 

어려울 것 없어요.” 백종원이 입에 거의 달고 다니는 이 말대로, 또 김국진이 대충대충 하는데 맛있다.”는 말처럼, 그의 레시피는 간단하면서도 효과적인 게 강점이다. 요즘처럼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하루 종일 음식을 갖고 씨름하는 건 여러모로 부엌에 들어가지 못하는 큰 장벽을 만든다. 하지만 백종원은 냉장고에 흔한 기본 재료 몇 개를 갖고 슥슥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요리의 세계를 알려준다.

 

또한 본 재료가 없으면 포기하게 되는 게 일반적인 요리자들의 습성이지만, 백종원은 그 맛을 대치할 수 있는 걸 알려준다. 이를테면 동남아풍의 맛을 내기 위해 피쉬 소스가 없다면 액젓을 사용해도 된다고 알려주고, 새우 패이스트가 없다면 건새우를 잘라 그 맛을 내면 된다고 한다. 하다못해 피자 빵을 직접 만들 필요 없이 만두피만으로 퀘사디아도 만들고 피자도 만들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이건 요리 무식자들만을 위한 프로그램의 차원을 넘어선다. 보다 간편하고 보다 쉬우면서도 그 맛을 충분히 낼 수 있는 요리라면 주부들도 눈이 가기 마련이다. 그 뻔하고 흔했던 시금치 한 단이 이토록 그럴싸한 고급진 요리로 만들어질 수 있다는 건 있어빌리티의 세계에서는 흘려보낼 수 없는 귀한 정보일 수밖에 없다. 대충 하는 데 맛있는 요리. 시청자들이 <집밥 백선생>에 빠져드는 이유다

김구라의 무엇이 2015년을 달궜을까

 

올해 MBC 방송연예대상에는 유재석, 김구라, 박명수, 김영철 등이 대상 후보로 올랐다. 이 중 많은 대중들이 지목하는 인물은 두 사람이다. 유재석과 김구라. 유재석은 설명이 필요없을 정도로 올해의 활약 역시 대단했다. MBC 예능의 심장이라고 할 수 있는 <무한도전>무도드림이라는 자선경매쇼 형식의 미션을 통해 이 프로그램이 MBC 전체에 얼마나 지대한 영향력이 있는가를 보여줬다. 유재석은 무도드림을 통해 <내 딸 금사월>에 까메오 출연을 해서 화제가 되었고 건강 문제로 하차한 정형돈을 위해 <서프라이즈>에도 출연했다. 그것만으로도 두 프로그램은 굉장한 화제를 낳았다.

 


'마이 리틀 텔레비전(사진출처:MBC)'

유재석과 함께 유력 대상후보로 거론되는 김구라는 다작(多作)’이라는 한 마디로 올해의 그의 활약이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MBC 주말예능을 다시 일으킨 <복면가왕>은 물론이고, 올해 MBC의 새로운 예능의 발견으로 주목받는 <마이 리틀 텔레비전>의 터줏대감으로 자리해왔다. 거의 지상파 토크쇼의 마지막 보루를 지키고 있는 <라디오스타>에 출연하고 있고 <능력자들> 같은 신생 프로그램에도 여지없이 김구라가 들어 있다는 점에서 과거에서 현재까지를 모두 아우르고 있는 MC가 아닐 수 없다.

 

유재석과 유력 대상후보로 비교 거론된다는 건 김구라로서는 부담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유재석의 팬심이 워낙 강하기 때문에 자칫 그 비교는 김구라에 대한 비판적인 시선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김구라의 다작이 과연 대상후보로서의 자격이 되는가에 대한 의구심을 드러내는 시선들이 나오고 있다.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서의 김구라는 그 많은 출연자들 중 한 명일뿐이고, <복면가왕> 역시 그 주역은 무대에 복면을 쓰고 오르는 출연자들이지 패널 중 하나인 그가 아니라는 것.

 

일견 이해되지 않는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김구라의 다작과 그가 선택한 프로그램들이 모두 괜찮은 성적과 화제를 내고 있다는 것이 그저 우연의 결과라고 보기는 어렵다. 거기에는 김구라가 프로그램을 보는 선구안이 남다르다는 것이 느껴지고 또 새로운 프로그램들에서 김구라에게 어떤 역할을 부여하고 싶을 만큼 그가 급변하는 예능 트렌드에 자기 역할을 분명히 세우고 있다는 것이 눈에 띈다.

 

김구라는 어떻게 그 많은 프로그램들 속에서 성공 가능성이 있는 프로그램들을 선택하고, 그 선택한 데서 자기의 역할을 찾아내는 걸까. 그것은 김구라의 MC 스타일과 무관하지 않다. 김구라는 단지 진행 능력으로 평가받는 MC가 아니다. 물론 과거에는 독설로 주가를 올렸지만 그 독설의 밑바탕이 되는 정보력과 콘텐츠 이해력은 전면에 잘 드러나지 않은 그의 강점이다.

 

그는 <썰전>을 통해 확인됐던 것처럼 현재 트렌드가 어떻게 바뀌고 있는지에 예민하게 촉수를 세우고 있다. 그리고 정보들을 끌어 모으고 대중들이 관심을 가질만한 것들을 뽑아낸다.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서 다른 출연자들이 들락날락할 때 김구라가 떡하니 계속 그 자리를 유지하고 있는 건 PD와 김구라 자신의 입장이 이 프로그램의 정체성과 잘 맞아 떨어지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그저 웃기거나 하는 것이 아니라 정보로 승부하겠다는 그 콘텐츠에 대한 지향점이 프로그램과 잘 맞아떨어졌다는 것이다.

 

지금 현재 예능은 새로운 변화의 기로에 서 있다. 이제 콘텐츠 시대에 예능에도 정보가 들어가지 않으면 어딘지 알맹이가 없는 듯한 느낌을 주게 되었다. 김구라는 어쩌면 그래서 이 콘텐츠 시대에 잘 적응해나가고 있는 MC로 보인다. 물론 유재석이라는 예능의 거목과 비교되는 건 그에게는 영광이자 부담이다. 하지만 그가 연예대상을 받지 못한다고 해도 그의 행보를 통해 우리네 예능의 변화를 느낄 수 있다는 건 그가 올해 꽤 괜찮은 시도들을 해왔다는 걸 말해준다. 상이야 받으면 어떻게 못 받으면 어떤가. 결국 중요한 건 달라지고 있는 대중들의 취향과 얼마나 더 잘 소통해나가고 있는가 하는 점일 것이다.



'마리텔' 출연하기만 하면 왜 뜨거운 화제가 될까

 

MBC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 나오기 전까지 백종원은 그리 뜨거웠던(?) 인물이 아니었다. 그는 EBS 음식 다큐 프로그램에 나와 꽤 진지한 모습을 보여줬지만 푸근한 백주부의 인상이 만들어진 건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서였다. 그는 이 프로그램을 통해 단지 쿡방의 주인공이 아니라 '소통의 달인'으로 등극했고 대세 방송인으로 자리하기도 했다.

 

'마이 리틀 텔레비전(사진출처:MBC)'

<마이 리틀 텔레비전>이 발굴해내는 스타들은 그러나 백종원에서 끝나지 않았다. 그와 함께 출연한 기미작가는 웬만한 방송인보다 더 큰 존재감을 만들었고, 국가대표 코치 예정화는 이 방송을 통해 대중들에게 확실한 눈도장을 찍었으며, 그와 함께 '극한직업'을 보여줬던 모르모트PD 역시 주목받는 <마이 리틀 텔레비전>의 명물이 되었다.

 

이은결은 그저 마술사가 아니라 웬만한 개그맨 뺨치는 연기력과 끼를 가진 인물로 새롭게 포지션을 만들었고, 종이접기 아저씨 김영만은 2030세대의 추억을 방울방울 만들어내면서 코딱지들(?)을 위로해 주었다. 백종원이 잠시 하차한 1위의 빈자리를 김영만과 이은결이 새롭게 채우는 동안에도 새로운 인물들이 쏟아져 나왔다.

 

<복면가왕>의 가면을 디자인하는 패션 디자이너 황재근은 독특한 캐릭터로 조금씩 그 대체불가의 매력을 드러내고 있고, 에이핑크 김남주의 게스트로 출연한 이른바 '마리텔 교수'라고도 불리고 '풍차교수'라는 닉네임까지 얻은 김현아 교수는 독특한 '화술수업'으로 웬만한 개그 프로그램보다 더한 웃음 폭탄을 만들었다. 호흡과 발성이 중요한 화술에서 몸을 풀어내며 하는 발성 연습은 의외의 재미를 선사하며 김현아 교수를 화제의 주인공으로 세워주었다.

 

김구라의 '트루스토리'에 출연한 전직 형사인 김복준 교수 역시 의외로 주목받는 인물이 되었다. 형사다운 부리부리한 눈빛을 가진 김 교수는 화성연쇄살인사건을 직접 수사했던 인물로 당시 상황을 설명하면서, 갑자기 범인에 영상편지를 쓰라는 얘기에 공소시효가 지났어도 "내가 꼭 널 잡겠다"고 말해 강렬한 존재감을 보여주었다. 형사들끼리 쓰는 은어 이야기나, 사실은 충()이라고 가슴에 새긴 문신이 살이 늘어져 중심(中心)이 된 사내의 이야기는 같이 출연한 김새롬을 포복절도하게 만들었다.

 

도대체 <마이 리틀 텔레비전>의 무엇이 이렇게 나오기만 하면 화제의 중심을 만드는 것일까. 그것은 단지 그들의 독특한 매력 때문만은 아니다. 프로그램이 그들의 매력을 포착해 증폭시키는 연출이 덧붙여지지 않았다면 일어나기 힘든 일이다. 예를 들어 새롭게 쿡방의 주인공으로 등장한 오세득 셰프가 기미작가 대신 음식 맛을 본 작가의 무반응 리액션을 극대화해 '로봇작가'로 이름붙이는 식이다. 이것은 짧지만 강렬한 인상을 만들어낸다.

 

교수에 형사에 디자이너, 종이접기 아저씨, 마술사, 요리사 등등. <마이 리틀 텔레비전>이 만들어내는 스타들의 면면은 과거 우리가 봐왔던 방송인들과는 사뭇 다르다. 그들은 자기만의 직업적 경험들을 방송을 통해 전해주고 있는 것이지만 그것은 이 프로그램만의 독특한 연출로 인해 하나의 캐릭터로 세워지고 있다. 만일 이런 흐름이라면 그 어떤 직업인이 등장해도 흥미진진해질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게 한다. 누가 될지 도무지 알 수 없는 <마이 리틀 텔레비전>만의 대체불가 스타들. 아마도 이러한 무한한 가능성과 확장성이 이 프로그램이 가진 가장 큰 힘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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