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버스:뉴 블러드

넷플릭스 예능 ‘좀비버스’가 시즌2로 돌아왔다. 부제는 ‘뉴 블러드’다. 이런 부제가 붙은 건 좀비 바이러스에 감염된 이들과 일반인으로 나뉘던 두 부류에 ‘새로운 피’로서 좀비와 일반인 사이에 놓여진 존재가 등장하기 때문이다. 시즌1에서 박나래에게 물려 좀비가 됐던 노홍철이 바로 그 장본인이다. 좀비가 된 줄 알았는데 멀쩡하게 양양의 한 리조트에 나타난 노홍철은 좀비 반 사람 반이다. 어깨에 물린 자국이 역력하지만 상처가 아물었고, 왼쪽 눈이 파랗게 변했다. 하지만 의식은 또렷해 대화를 나누고 농담을 하는 등 일반인과 다를 바 없는 모습이다. 그 중간자적인 모습에 데프콘은 ‘좀반인’이라는 센스있는 지칭을 만들었다. 

 

‘좀반인’의 등장은 그저 재미를 위한 설정만이 아니다. 그건 ‘좀비버스’ 시즌2의 새로운 세계관과 진화된 서사를 위한 사전 포석이다. 좀비이자 일반인인 이 존재는 그 경계의 어느 쪽이든 설 수 있다는 점에서 ‘좀비버스’에 색다른 긴장감을 부여한다. 처음에는 다시 만나게 된 이시영과 딘딘, 덱스, 츠키와 짐짓 반가워하는 듯한 분위기를 자아내지만 그것도 잠시 뿐, 노홍철은 순식간에 그 화기애매(?)한 분위기를 깨고 긴장감을 부여한다. 도망친 노홍철이 좀비 떼들 속으로 들어가면서 그들을 조종하기도 하는 한 부류로 활동하고, 시즌1에서 자신을 버린 이들에 대한 분노 또한 조금씩 드러내기 때문이다. 

 

좀반인 노홍철과 다른 일반인 출연자들 사이를 더욱 애매하게 만드는 건, 질병관리청에서 이러한 새로운 존재들을 직접 데려오면 50억을 포상하겠다는 발표가 나오면서다. 순간 일반인들의 눈에는 노홍철이 50억 포상금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물론 질병관리청에서 좀반인이 필요한 이유는 이들의 새로운 피를 통해 이 사태를 해결할 수 있는 치료법과 항체를 개발할 수 있어서다. 즉 좀반인은 이 종말론적인 사태를 종식시킬 수 있는 희망이 되기도 한다는 점이다. 50억 포상이 만들어내는 저마다의 세속적 욕망들과,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대의적인 희망이 교차하고, 여기에 좀비와 인간 사이에 선 노홍철의 예측하기 어려운 욕망들이 겹쳐지면서 ‘좀비버스’의 서사는 더 흥미진진해진다. 

 

사실 대부분 시즌1보다 시즌2는 더 어렵다. 그건 시즌1에서는 새로웠던 요소들이 이제는 익숙해져 이를 반복했다가는 식상해질 수 있어서다. 나아가 시즌2가 시즌1과 유리되어 완전히 새로워지는 것도 시청자들은 그다지 원하지 않는다. 연결고리가 확실하면서도 새로움이 더해져야 하는 숙제가 시즌2의 숙명인 셈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좀비버스:뉴 블러드’는 이 숙제를 제대로 푼 느낌이다. 일단 시즌1의 연속성을 갖기 위해서 제주도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들이 한 자리에 모인다. 시즌1의 마지막이 수륙양용버스를 타고 바다를 항해하며 끝났기 때문에 제주도라는 공간은 서사적으로도 이들이 다시 모이기에 적합한 지대가 된다. 

 

그 곳에 기존 생존자인 딘딘, 츠키, 이시영, 덱스와 더불어 새로운 생존자들인 조세호, 데프콘, 코드쿤스트, 태연, 육성재, 파트리샤, 김선태, 안드레 러시 등이 등장한다. 익숙함과 새로움이 출연자 구성으로 적절히 배치된다. 그리고 펼쳐지는 좀비들과의 사투를 벌이는 미션들은 시즌1에 비해 확실히 강력해졌다. 좀비들과의 끝없는 추격전이 벌어진 네버엔딩 원형 복도를 탈출하는 미션이나, 좀비들이 위아래서 공격하는 와중에 그물망을 타고 올라 건물의 유리창을 깨고 들어가는 미션, 헬기를 타고 제주도를 탈출하는 미션, 클럽에서 음악을 활용하는 구출작전 등등 스케일도 커졌고 액션의 강도도 세졌다. 물론 예능으로서의 깨알같은 웃음들도 빠지지 않는다. 한껏 긴장하며 진지하게 상황에 과몰입하다가 어느 순간 그걸 깨버리는 현실감이 만들어내는 웃음이 도처에서 빵빵 터진다. 

 

시즌1에서 예능인지 액션 영화인지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멋진 모습을 보여준 덱스와 이시영의 액션은 이번 시즌에도 빛을 발한다. 하지만 이번 시즌2의 압권은 역시 노홍철이다. 과거 ‘무한도전’ 시절부터 그랬지만 언제 배신으로 돌아설지 알 수 없는 이 인물은 ‘좀반인’이라는 캐릭터를 입고 더 강력한 반전의 몰입감을 선사한다. 예능이지만 그 틀을 수시로 넘나드는 ‘좀비버스’의 확장된 세계에 딱 어울리는 인물 노홍철의 등장. 시즌2가 한껏 쫄깃해진 이유다. (글:일간스포츠, 사진:넷플릭스)

‘유퀴즈’, 페이커의 말이 이 프로그램의 가야할 길처럼 들린 이유

유 퀴즈 온 더 블럭

“우승컵을 따겠다는 목표보다는 최선을 다하겠다는 목표가 있었고 결승 끝나고 인터뷰에서도 3대0으로 졌어도 웃는 모습으로 그만큼 경기를 즐기자는 생각으로 임했다 말씀 드렸는데 그런 목표가 있었기 때문에 우승은 사실 뭐 팬분들이 원하는 거니까... 그런 면에서 저는 좀 기뻤죠.” 

 

페이커(이상혁)가 tvN <유퀴즈 온 더 블럭>에 나왔다. 3년 전에도 출연한 적이 있었지만 그 때와 지금은 상황이 또 달라졌다. 2023 리그 오브 레전드 월드챔피언십 우승. 누적 시청자가 4억명이고 마지막 결승에는 전 세계 1억명 시청자가 동시 접속을 했을 정도로 세상이 집중했던 그 경기에서 그가 이끈 T1이 우승을 차지했다. 롤을 잘 모르는 이들조차 응원전에 참여했고, 광화문광장에는 월드컵도 아닌데 1만5천명이 모여 야외에서 응원전을 펼치기도 했다. 그러니 이 엄청난 관심이 집중됐던 경기에서 우승을 차지하고 돌아온 페이커의 3년 만의 재출연이 각별할 수밖에. 

 

페이커는 그러나 게임에서만 빛나는 존재가 아니었다. 그가 그렇게 게임을 잘하게 된 데는 단단한 마인드와 생각들이 존재한다는 걸 <유퀴즈>에서의 이야기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경기 후 카메라 감독님이 패배한 상대팀을 향해 엄지를 내리는 포즈를 해달라고 요청한 일이 있었는데 페이커가 정반대로 ‘엄지척’을 했던 상황에 대해 유재석이 묻자 내놓은 답변에서부터 그가 얼마나 타인을 배려하고 생각하는가가 묻어났다.  

 

아마도 자신이 엄지척했던 이유만 얘기했다면, 자칫 엄지를 내리는 주문을 했던 카메라 감독님이 오해받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페이커는 “사실 엄지 내리는 포즈는 스포츠에서 자주 쓰는 포즈”라며 그래서 해도 괜찮았다고 먼저 전제함으로써 카메라 감독님의 의도를 오해받지 않게 한 후, “경기 자체가 재밌어서” 굿 게임의 의미로 엄지척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려줬다. 

 

게이머 하면 떠올리는 이미지가 하루종일 게임만 하는 모습이지만 그것이 편견이라는 것도 그는 알려줬다. ‘평정심’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하는 그는 게임을 마인드 스포츠라 불렀다. 그래서 롤을 잘 할 수 있는 방법이 뭐냐는 질문에 자신은 책이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책을 통해 어떤 마음 자세를 가져야 하는가 태도를 가져야 하는가 하는 것들을 생각한다는 거였다. 

 

그 말이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는 건, 이번에 손목 부상으로 한 달 간 쉬게 됐던 상황에 대해 물어봤을 때 했던 답변을 통해 알 수 있었다. “팀의 문제점이나 개선점을 제 부상으로 인해서 많이 볼 수 있어서 그런 것들은 오히려 긍정적으로 많이 된 것 같아요.” 어찌 보면 자신은 물론이고 팀의 위기일 수 있는 그 상황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는 관점. 그것은 아마도 책을 통해 얻어진 것이라 여겨져서다. 

 

이 날 페이커의 <유퀴즈> 출연이 특별하게 느껴진 건 ‘최고의 위치’에 선 이가 보여주는 삶의 태도가 어떤 품격을 만드는가를 그가 보여줬기 때문이다. 그는 솔직하게 어렸을 때는 돈을 많이 벌고 싶어서 게임을 했다고 했다. 하지만 그 목표를 달성하고 나서는 명예가 목표가 됐다고 했다. 그렇지만 커리어도 쌓이자 동기부여를 위해 새로운 목표가 필요해졌는데 그래서 세운 목표가 ‘팀을 위한 우승’이었다고 했다. “저 스스로보다는 다른 사람을 위한 목표가 있으면 계속해서 내가 그 목표를 따라갈 수 있겠구나 생각했습니다.”

 

이 말은 <유퀴즈>나 이 프로그램을 이끌어가는 유재석에게도 인사이트를 주는 이야기가 아닐 수 없었다. 어찌 보면 <유퀴즈>라는 프로그램도 이 프로그램을 이끄는 유재석도 예능에 있어서 가장 높은 위치에 서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게다. 일반인도 유명해질 정도로 영향력이 있는 프로그램이고, 유재석이야 두말 할 필요가 없는 자타공인 유느님이니 말이다. 스스로가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한 목표를 세운다는 페이커의 말은 그래서 하나의 삶의 지혜처럼 들렸다. 

 

또 책을 보는 것만큼 사람을 만나는 것도 좋더라며 “사람도 책과 비슷하다”고 한 페이커의 말 역시 <유퀴즈>와 너무나 어울리는 말이다. 사람을 만나는 프로그램이 아닌가. 하나의 책을 들려주듯, 어떤 책을 들려줄 것인가를 심사숙고하고 그 책을 어떤 자세로 읽을 것인가를 고민해온 것이 이 프로그램이 걸어왔던 길이다. 물론 초창기의 모습에서 조금은 빗겨나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보다 유명인이나 연예인들의 이야기가 많아진 아쉬움이 있지만. 

 

무엇보다 <유퀴즈>가 가야할 방향에 대한 덕담처럼 들린 페이커의 말은 ‘겸손’에 대한 이야기였다. “겸손이 가장 중요하다고 느끼는 게 겸손한 자세로 저 사람이 어떤 의도로 말을 하는 구나를 거름없이 들을 수 있어야지 더 많이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예를 들면 물병이 있는데 이렇게 반 정도가 차 있으면 반 밖에 못 담잖아요. 근데 내가 비어있는 물병이고 그거를 다 받아들일 수 있다라고 생각을 하면 더 많이 배울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렇게 느껴서 겸손이 제일 중요한 것 같습니다.” 이미 가득 채워진 잔은 더 이상 채워질 수 없다. 화려하게 채우려 하기보다 오히려 비워내고 맞아들이려 하는 자세가 더 많은 걸 담아낼 수 있다는 페이커의 말을 <유퀴즈>는 경청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사진:tvN)

'유퀴즈', 낮은 곳에서 묵묵히 일하는 마술사들 위한 헌사

 

방화동 사거리 한 복판에는 매일 마이클 잭슨이 출몰한다?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이하 유퀴즈)>이 '시간의 마술사들' 특집에서 소개한 이철희씨는 칠순의 나이에도 어김없이 사거리로 나서 절도 있는 동작과 현란한 손짓으로 교통정리를 하고 있다. 벌써 40년째 '인간신호등'을 자처했다는 이철희씨는 150cm의 작은 키지만 지나는 낯선 사람들에게 반갑게 인사하고, 덕담을 한다. 모르던 이들도 여러 차례 인사를 받고 덕담을 듣다 차츰 이철희씨와 가까워지고, 이제 아침마다 서로 인사를 주고받는 사이가 된다고 한다.

 

그가 이렇게 40년째 교통정리를 하게 된 계기는 누나의 뺑소니사고 때문이었단다. 보험을 들지 않아 재산을 탕진했고, 더 입원하기도 어려워 3년 뒤 퇴원한 누나는 그 후로도 7년 간 후유증으로 고생했다고 했다. 도로가 원망스러웠고 운전자들을 보면 '일을 낼 것 같은' 분노가 있었지만, 그가 선택한 건 사거리로 나서 교통정리를 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렇게 그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하루도 빼놓지 않고 40년 간을 교통정리 봉사를 해오고 있었다.

 

'시간의 마술사들' 특집은 '시간'이라는 키워드를 가져왔지만, <유퀴즈> 특유의 보이지 않는 낮은 곳에서 묵묵히 일하며 세상을 밝히는 이들의 이야기로 가득 채워졌다. 인형병원 김갑연 원장은 낡고 헤진 인형을 수술(?)하고 고쳐주는 일로 누군가의 추억 가득한 시간들을 되살려주는 일을 하고 있었고, 무려 30년 전 세계 최초로 '자율주행'을 선보였던 한민홍 대표는 기술을 개발하기보다는 사서 쓰려는 기업들의 잘못된 인식 속에서 지금껏 홀로 외롭게 그 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김갑연 원장이 복원해준 건 단지 인형이 아니고, 우리 모두가 갖고 있었지만 언젠가부터 잊고 지냈던 동심이었다. 또 낡으면 당연히 버려지는 어떤 것들이 아니라, 그 낡은 것 속에 담겨진 시간들을 소중하게 간직하게 해주는 일. 그래서 인형을 수선해주는 일은 마치 그걸 가진 이의 마음을 수선해주는 일처럼 보였다.

 

너무나 차분하게 자신이 일찍이 했던 자율주행에 대한 연구와 성과들을 이야기하는 한민홍 대표의 모습에서 어떤 뭉클함이 느껴졌던 건, 제작진이 "외롭지 않으셨냐"고 묻는 대목에서였다. 너무 시대를 앞서갔던 그의 연구에, 미래를 위해 투자하지 않는 당대의 분위기는 그를 얼마나 외롭게 만들었을까. 하지만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묵묵히 자기의 그 길을 지금껏 걸어가고 있다고 했다.

 

영화 <승리호>, <기생충>, <신과 함께> 등 다양한 영화에 VFX 작업을 한 덱스터 강종익 대표는 할리우드의 10분의 1 예산으로 <승리호> 같은 작품의 CG를 만들어냈던 장본인이다. 그런데 이건 굉장히 가성비 높은 기술력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만큼 열악한 노동환경 속에서도 최고의 퀄리티를 냈던 그 힘겨운 시간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물론 지금은 과거와 달리 노동환경이 상당 부분 개선되어 있다 했지만 그것 역시 그간의 노력의 결과가 아니었을까.

 

이날 마지막 출연자였던 김범석 종양내과 의사가 들려준 이제 삶의 끝을 앞둔 환자들의 이야기가 특히 감동적이었던 것도, 그렇게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자리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그 같은 인물이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흉부외과만큼 찾지 않는 종양내과 의사로서 살려내기 보다는 좀 더 오래, 고통 없이 남은 시간들을 보낼 수 있게 해주는 김범석 같은 인물은 보이지 않지만 세상을 움직이는 인물이 아닐 수 없다. 이런 분들이 있어 세상은 조금 따뜻해지고 살만해지는 것일 테니까.

 

마침 '시간의 마술사' 특집편이 방영된 날은 서울과 부산의 보궐선거가 치러진 날이었다. 저마다 자신이 왜 당선되어야 하는가를 강변하고, 경쟁자의 약점을 물어뜯는 네거티브 선거를 봐왔던 대중들이라면, 이렇게 보이지 않게 묵묵히 무려 수십 년 간을 누가 시키지 않아도 사거리로 나서 인간신호등을 자처하고, 낡은 인형을 수선해 누군가의 추억을 복원해주며, 아무도 걷지 않는 길을 외로워도 걸어가고, 조악한 노동환경 속에서도 최고의 결과물을 내놓으며, 마지막 가는 분들의 이야기에 귀기울여주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특별하게 다가왔을 게다. 실제로는 이런 분들이 있어 세상이 바뀌고 있는 것이니까.(사진:tvN)

'유퀴즈'가 조명한 숨겨진 주인공들의 가치

 

"난리 났네 난리 났어-" 부산세관에서 일하는 김철민 팀장이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이하 유퀴즈)>에 나와 했던 영화 <범죄와의 전쟁> 성대모사는 순식간에 짤이 되어 유행어로 자리 잡았다. 유재석과 조세호가 다른 출연자들이 나왔을 때도 수시로 이를 따라하면서 마치 이 프로그램의 공식 유행어가 됐고, 이는 <난리 났네 난리 났어>라는 스핀오프격의 프로그램으로까지 런칭되어 이제 방영을 앞두게 됐다. 

 

이 유행어가 특히 기분 좋게 느껴졌던 건, 그것이 영화나 드라마의 주연배우의 대사에서 탄생한 게 아니라, 주연 옆에서 잘 드러나진 않지만 맛깔스런 연기로 그 장면들을 빛내주는 조연의 대사에서 탄생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그건 늘 TV를 틀면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이들만이 아니라, 길거리에서 우연히 만난 분들이나 세상 구석구석에서 유명하진 않아도 자신의 본분을 다하는 분들을 카메라 앞에 보여준 이 프로그램의 성격과도 잘 맞는 일이었다. 

 

마침 'Unsung Hero(드러나지 않는 영웅)'라는 주제로 방영된 <유 퀴즈 온 더 블럭>이 바로 그 "난리 났네 난리 났어-"의 원조라 할 수 있는 <범죄와의 전쟁>에서 최민식의 아내로 출연했던 배우 김영선을 초대했다는 사실은 그래서 방영 전부터 기대감을 모았다. 예능, 아니 방송 출연 자체가 낯설다는 김영선 배우는 자신을 알린 작품으로 <유퀴즈>를 꼽을 정도로, 여러 작품에 출연하긴 했지만 했던 역할에 비해 스포트라이트를 받지는 못했다. 

 

강우석 감독의 <한반도>로 데뷔했다는 김영선 배우는 27년 간 연기의 길을 걸어왔다고 한다. 물론 연기만으로 생활하기가 어려워 대리운전, 학습지 배달, 호프집 서빙 등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병행했다고 하는 김영선 배우는, 여러 일을 해봐도 자신에게 맞는 건 역시 연기라고 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은행에 들어갔지만 숫자에 약하다고 했고, 옷 장사도 해봤지만 대인기피증이 생겼다고 했다. 연기할 때가 가장 행복하다는 그는 천상 배우였다. 

 

놀라웠던 건 눈물 연기를 몰입하는 건 기본이고, 상대 배우가 감정이 잘 안 잡힐 때 그걸 유도해내는 역할 또한 해내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조세호를 대상으로 김영선 배우가 손을 잡고 얼굴을 마주보는 것만으로 조세호의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지는 기막힌 광경이 연출될 수 있었다.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흘린 조세호는 김영선 배우가 눈빛으로 자신을 위로하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고 했다. 그래서 눈물이 쏟아졌다는 것. 

 

김영선 배우가 보여준 것처럼 세상에는 드러나지 않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기 역할을 충실히 해내는 이들이 적지 않다. 영화 판으로 보면 주인공 몇 명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지만 김영선 배우처럼 그들 주변으로 수십 명의 인물들이 존재한다. 어찌 보면 주인공을 빛내주는 그들이야말로 숨겨진 주인공들인지도. 

 

<유퀴즈>가 조명한 국내 1호 로케이션 매니저 김태영이나, 불펜포수 안다훈, 액션 대역 배우 김선웅이 그런 인물들이다. 무수히 많은 작품에서 독특한 분위기를 가진 장소들이나 공간들을 찾아내기 위해 전국을 돌아다니는 김태영 같은 로케이션 매니저가 있어 작품이 빛나고, 불펜에서 선수들의 볼을 받아주고 그들의 매니저 역할을 해주는 불펜포수 안다훈 같은 인물이 있어 팀의 보이지 않는 전력이 생겨난다. 또 자신을 최대한 지우고 주인공을 드러내게 하는 게 일일 수밖에 없는 액션 대역 배우 김선웅 같은 인물 또한. 

 

스포트라이트 뒤쪽에 있는 일이 어찌 어렵지 않을까. 안다훈 불펜포수가 자신을 '야구하는 피에로'에 비유한 건 그런 고충이 잘 드러나는 대목이었다. 팀 선수들의 컨디션까지 체크해야 하는 자신의 직업 속에서 그는 늘 웃고 있어야 한다고 했다. 자신의 힘겨운 일은 피에로처럼 숨겨야 되는 직업이라는 것. 하지만 그래도 그가 그렇게 말하는 목소리에는 '자부심'이 들어 있었다. 누가 뭐라 해도 자신이 하는 일의 가치가 분명히 있다는 걸 그는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 배우 김영선과 불펜포수 안다훈 같은 인물들이 넘쳐날까. 그들은 눈에 띄지는 않지만 진짜 세상이 움직이는 동력이 아닐까. 그러니 운 좋게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입장이 된 이들이라면 그들 뒤에 이처럼 실제 동력이 되어주는 'Unsung Hero'들이 존재한다는 걸 잊지 말기를. <유퀴즈>는 말하고 있다.(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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