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아 사랑이야>가 깨는 정신질환자들에 대한 편견

 

우리 사회에서 정신질환자들을 보는 시선은 편견 그 자체다. 그래서 심지어 정신적인 병을 앓고 있어도 정신과를 찾지 않는 경우도 많다. 정신과에 대한 편견의 문턱을 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관점으로 바라보면 <괜찮아 사랑이야>가 보여주는 정신질환자들에 대한 각별한 시선을 읽어낼 수 있다. 거기에는 편견마저 감싸 안는 드라마의 따뜻한 시선이 느껴진다.

 

'괜찮아 사라이야(사진출처:SBS)'

이광수가 투렛증후군 연기를 위해 각별히 노력한 이유 중에는 자칫 잘못하면 그 연기가 해당 질환자를 희화화시킬 위험성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던 것처럼 <괜찮아 사랑이야>가 정신질환자들을 소재로 다루는 방식은 극히 조심스럽다. 아니 어떤 면에서는 특정한 정신질환자들을 다룬다기보다는 멀쩡하게 보이는 사람도 경중의 차이가 있을 뿐, 마찬가지의 정신적 상처를 갖는다는 얘기를 건네고 있다.

 

장재열(조인성)이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받은 폭력으로 한강우(디오)라는 환상으로 어린 시절의 자신을 마주한다는 상황이 그렇다. 그는 모든 여성들이 보기만 하면 하트를 날리는 연예인에 가까운 추리소설작가다. 그런 그가 정신적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정신질환에 대한 우리네 편견을 깨준다.

 

정신질환자라고 하면 어딘지 괴상하고 이상하게 생긴 무서운 존재를 떠올리기 마련이지만 장재열 같은 멋진 남자는 그 선입견을 보기 좋게 깨주는 멋진 남자다. 특히 이 드라마에는 캐스팅에 공을 들인 흔적이 역력하다. 예를 들어 지해수(공효진)가 찾아간 윤철의 부인은 정신분열 환자지만 외모는 평범 이상으로 출중하다. 해수가 재열에게 그녀를 가리키며 “예쁘지 않냐?”고 묻는 대목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조연으로 잠깐씩 등장하는 정신질환자들의 배역으로 지나치게 평범하거나 아니면 평범 이상의 외모를 가진 배우들을 캐스팅한 건 그래서 다분히 의도적이라고 보인다. 정신질환자의 이미지? 혹여나 ‘싸이코’라고 부르는 그런 섬뜩함이나 불편함을 떠올렸다면 이 드라마는 오히려 그 반대를 보여준다.

 

이 드라마가 정신질환자에 대한 일반적인 생각들을 뒤집고 있다는 가장 강력한 증거는 지해수라는 정신과의사 역시 자신만의 트라우마를 갖고 있다는 설정일 것이다. 정신질환을 갖고 있는 정신과의사. 그러고 보면 여기 등장하는 인물들은 크건 작건 자기만의 정신적인 문제들을 안고 있다. 하지만 다소 간의 부딪침과 소란이 있을지 몰라도 모두 문제없이 잘 살아간다는 게 이 드라마가 하고 있는 이야기다.

 

장재열과 지해수는 어찌 보면 둘 다 정신질환을 갖고 있는 환자들이다. 하지만 지해수는 장재열이 무언가 트라우마를 갖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그걸 안고 살아가겠다는 그에게 대수롭지 않게 얘기한다. “그래도 필요하면 약도 먹고 상당도 받으라”는 것이 고작이다. 어린 시절 엄마의 불륜을 지속적으로 목격한 후 남자와의 스킨십을 거부하는 지해수에게 장재열은 “그냥 확 해버리라”고 말하며 그녀를 계곡 물 속에 빠뜨려 버린다. 지해수는 그에게 “그냥은 그냥이네.”라고 답하며 자신의 트라우마가 별게 아니라는 걸 점점 확인해간다.

 

<괜찮아 사랑이야>는 마치 <다모>의 한 대사처럼 “아프냐? 나도 아프다”라고 말하는 것 같다. 사실 멀쩡해 보여도 우리는 모두 다소 아프게 저마다의 상처를 부여안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 그래서 괜찮다는 것. 그것은 감기 같은 병일뿐이라는 것. <괜찮아 사랑이야>는 재열과 해수의 로맨틱 코미디를 빙자해 정신 질환에 대한 우리의 편견을 깨고, 결국 한 똑같이 아픔을 느끼며 살아가는 자들의 인간애를 얘기하고 있다.

 

728x90

<괜찮아>, CF처럼 살지만 상처투성이 현대인들에 보내는 위로

 

왜 하필 조인성이어야만 했을까. SBS <괜찮아 사랑이야>에서 조인성이 연기하는 장재열은 마치 광고 속에서 살아가는 인물처럼 보인다. 그가 집에 들어오면 마치 아파트 광고의 한 장면 같고,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 마시면 냉장고 광고 혹은 생수 광고처럼 보이며, 멋진 스포츠카를 타고 달리면 자동차 광고 같다.

 

그렇게 보이는 가장 큰 이유는 조인성이라는 배우가 가진 독특한 아우라 덕분이다. 그가 공개된 DJ 부스나 클럽에서 음악에 맞춰 살살 춤을 추기만 해도 순간 그 장면은 광고의 한 부분처럼 느껴진다. 그것은 조인성이 광고를 통해 대중들에게 이미지화된 모습이기도 하다. 그는 그저 걷거나 숨만 쉬어도 광고 같은 완벽한 비주얼과 느낌을 보여준다.

 

하지만 광고란 일종의 환상이다. 사람은 결코 광고처럼 살아갈 수 없다. 그래서 <괜찮아 사랑이야>의 장재열은 조인성이라는 배우가 가진 광고 같은 삶이 사실은 환상에 불과하다는 걸 보여주는 캐릭터다. 그는 아프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폭력 때문에 맨발로 피가 나도록 집으로부터 도망쳤던 인물이고, 아버지에게 맞는 엄마를 놔두고 도망쳤다는 것을 자책했으며, 그러던 어느 날에는 아버지에게 주먹을 날려 코피를 터트리기도 했던 인물이다.

 

그 상처는 현재의 장재열의 주변을 여전히 맴돈다. 그래서 한강우(디오)라는 자신의 어린 시절이 투영된 가상을 만들어내고는 그를 때로는 다그치고 때로는 보듬어 안고 때로는 함께 웃으며 밤거리를 달리는 중이다. 광고 같은 삶? 그렇게 쿨하고 멋지게 보여 지고 싶지만 그것은 결코 장재열의 현실이 아니다.

 

그는 어쩌면 가족을 비극으로 몰아넣는 아버지의 폭력에 맞서다 그를 죽음에 이르게 했을 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의 형 장재범(양익준)은 그의 말대로 억울하게 동생의 죗값을 대신 치르고 있는 지도 모른다. 엄마는 동생을 살려내기 위해 형을 범인으로 지목했는지도 모른다. 그게 아니라면 이 모든 것이 장재범의 착각인지도 모른다. 그도 사실은 이 사건이 너무나 충격적이어서 어느 게 진실인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투약하면 진실을 말하게 된다는 아미탈 같은 약물의 힘을 간절히 원할 정도로.

 

하지만 어느 것이 진실이라고 하더라도 이 가족이 모두 비극적인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것만은 사실이다. 장재범이 교도소 철창 안에 갇혀 지내고 있지만 장재열 역시 마음의 감옥에서 복역 중이다. 그 둘을 바라보는 엄마의 마음은 또 어떨까. 이미 선택할 수 없는 선택을 해버린 그녀는 사는 게 사는 게 아닐 것이다.

 

그러고 보면 이처럼 광고처럼 쿨하게 보이는 이 드라마의 등장인물들은 저마다 아픔 하나씩을 껴안고 살아간다. 홈 쉐어라는 어찌 보면 쿨해야만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주거 환경 속에서 광고의 한 장면 같은 파티를 벌이는 그들이지만, 각자의 방으로 돌아가면 그들은 다시 자신을 기다리는 상처를 껴안고 잠들어야 한다.

 

당찬 정신과 의사 지해수(공효진)는 어린 시절 지속적으로 목격한 엄마의 불륜으로 일종의 남성 기피증을 갖고 있고, 멀쩡한 허우대에 쿨한 성격의 박수광(이광수) 역시 어린 시절 이유 없이 찾아온 투렛증후군으로 쉽지 않은 삶을 살아간다. 재혼해 기러기 아빠로 살아가며 아픈 이들을 돕는 조동민(성동일)도 마찬가지다. 껄껄 거리고 웃는 그의 얼굴 이면에도 어떤 허허로운 아픔 같은 것들이 어른거린다.

 

<괜찮아 사랑이야>는 마치 광고의 한 장면처럼 깔끔하고 쿨하고 괜찮아 보이는 현대인들의 삶 이면에 놓여진 결코 괜찮지 않은 아픔을 꺼내놓고는 “괜찮다”고 보듬어주는 드라마다. 상처 입은 영혼들은 각각 힘겨워 하지만 의외로 타인에게 간단한 해법을 제시하기도 한다. 스킨십 기피증을 갖고 있는 지해수에게 그냥 하면 된다며 장재열이 키스를 하는 장면이 그렇다. 지해수는 그 방법을 결벽증을 가진 환자에게 적용한다. 사랑은 상대방을 치유하면서 동시에 그 주변 사람들까지 치유시켜준다.

 

겉보기에 우리의 삶을 나아진 것처럼 보인다. 광고 속의 삶을 꿈꾸고 어느 정도 성공한 이들은 그 삶을 현실로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그 멀쩡해 보이는 삶의 진면목은 심지어 병을 앓을 정도로 아파하고 있는 현대인들의 상처다. 사랑? 물론 사랑이 모든 걸 해결해줄 수는 없다. 다만 모두 상처받은 이들이라는 타인과의 공감과 그 서로의 상처를 핥아주는 교감이 그래도 우리네 삶을 괜찮게 만들어줄 것이라는 믿음. <괜찮아 사랑이야>가 하고 있는 이야기다.

 

섹스 이야기를 그토록 입에 달고 다녀도 섹스 한 번 하지 못하는 스킨십 거부증을 갖고 있는 지해수와 연예인인지 작가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인기를 한 몸에 받고 살아가지만 사실은 자신만의 감옥에 갇혀 있는 장재열의 사랑은 그래서 어쩌면 우리에게 희망이자 위안이 될 지도 모른다. 화보처럼 살아가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은 없다. 다만 괜찮다고 애써 말하며 버텨내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들의 삶은 그래서 더 아름다워 보인다.

 

728x90

조인성의 남몰래 흘리는 눈물과 <그 겨울>

 

조인성의 연기에 대한 대중들의 기억은 오래도록 <발리에서 생긴 일>에 멈춰져 있었다. 그것도 예능 프로그램에서 개그맨들이 흉내 내곤 했던 입에 주먹을 넣을 듯 눈물을 삼키며 전화를 거는 장면으로. 이렇게 된 것은 그 역할이 조인성이 가진 이미지와 가장 잘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다. 당시 찌질하다고 표현될 만큼 자기 욕망에 충실한 그가 전화를 통해 말로는 “괜찮다”고 하면서도 상대방 몰래 솟구치는 눈물을 흘리는 연기에는 연약함과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고통스럽게 참아내야 하는 마음이 절절히 묻어났던 것이다.

 

'그 겨울, 바람이 분다'(사진출처:SBS)

바로 그 겉으론 강한 척(심지어 나쁜 척) 하면서도 사실은 그 연약하리만치 섬세한 감정이 터져 나올 때 조인성이라는 연기자는 자신의 매력을 드러낸다. 한 마디로 ‘남 몰래 흘리는 눈물’이랄까. 드라마적으로 이런 장면이 효과적으로 표현되려면 조인성과 상대역 사이에 어떤 차단막이 필요하다. <발리에서 생긴 일>에서 전화기가 그 소통과 차단막의 역할을 해주었듯이 <그 겨울 바람이 분다>에서는 오영(송혜교)이 시각장애인이라는 설정이 그 차단막 역할을 해주고 있다.

 

보이지 않는 상대인 오영과 오수(조인성)가 엮어가는 멜로가 가슴 아픈 것은 그들 간의 소통이 거의 말로 이뤄질 수 있지만 시청자들의 눈에는 그들이 하는 말 이면에 놓여진 숨겨진 얼굴이 보이기 때문이다. 오영 앞에서도 심지어 오수는 짐짓 나쁜 척, 쿨한 척 하지만 자꾸만 솟아나는 먹먹해지는 마음을 애써 숨기려 한다. 그녀가 보이지 않기 때문에 이런 장면이 주는 소통의 일시적인 단절은 시청자들을 애타게 만들 수밖에 없다.

 

물론 시각장애인이라는 설정 이외에도 이 드라마는 꽤 많은 차단막들을 설치해두었다. 예를 들어 돈 때문에 접근한 오수라는 겉면과 점점 돈이 아닌 마음으로 다가가는 오수의 속내도 조인성이라는 연기자의 애써 다문 입술과 힘준 눈빛을 통해 드러나고, 잠자는 오영의 입술에 닿을 듯 멈춰서 있는 그의 입술은 연인 감정을 느끼지만 결국 오빠라고 속일 수밖에 없는 그 상황의 차단막에 의해 머뭇거린다.

 

겉으로 드러나는 표현과 속내 사이에 놓여진 이러한 차단막은 오수와 오영이 가진 삶에 대한 태도 속에도 들어가 있다. 사랑 따윈 필요 없고 살고 싶지 않다는 오영과 삶의 의미 따윈 필요 없고 그저 살아 있으니 살아봐야겠다는 오수는, 서로 만나 감정을 나누면서 상대방을 통해 자신의 속내를 드러낸다. “왜 날 이렇게 자꾸 약하게 만들어 넌. 왜 날 자꾸 살고 싶게 만들어 넌.” 겉으론 화를 내고 있지만 오영은 오수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드러낸다.

 

오영에게 “살고 싶다”는 얘기를 들으려는 오수와, 오수에게 자꾸만 오빠 이상의 감정을 갖게 되는 오영. 결국 이 오영과 오수의 사랑을 더 절절하게 만드는 순간은 이들의 단단한 겉껍질이 벗겨져나가고 서로의 진짜 알맹이가 드러날 때이다. 죽음을 앞두고 있으나 그 앞에서 애써 쿨한 가면을 써오던 두 사람이, 바로 그 죽음을 앞두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결국 마음을 열고 더 아프게 서로를 껴안는 것. 이것은 어쩌면 우리네 삶과 사랑에 대한 작가의 시선이 아닐까.

 

조인성이 <그 겨울 바람이 분다>에서 특히 그만의 매력을 폭발시키는 이유는 이 작품이 갖고 있는 차단막(시각장애, 오빠동생 설정, 돈과 사랑 같은)이 워낙 훌륭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조인성이라는 연기자가 가장 자신의 매력을 끌어낼 수 있는 영역이니까. 그가 미간을 찡그리고 시선을 살짝 피하며 입술을 앙다물면서 속에서 솟구치는 감정을 억누르려 할 때 그 아픈 감정은 시청자들의 마음에 바람을 불게 만든다. 마치 차가울수록 자그마한 따뜻함에도 눈물 흘리는 겨울처럼.

728x90

' 그 겨울 ', 송혜교·조인성 그 눈빛에 빠져드는 이유

"멜로영화는 더 별로. 말이 별로 없잖아요. 요즘 멜로 영화는 음악만 나오고. 사실 멜로영화에서 내가 진짜 보고 싶은 건 남자가 여자를 볼 때 어떤 눈빛인가. 여자가 남자를 볼 때 또 어떤 눈빛인가. 둘이 어디서 만나고 무슨 옷을 입고 뭘 먹나 그런 건데 보다시피 난 눈이.." < 그 겨울, 바람이 분다(이하 그 겨울) > 의 오영(송혜교)의 이 대사 속에는 이 특별한 멜로가 여타의 멜로와 달리 어떻게 더 절절한 감정을 보여줄 수 있는가에 대한 비밀이 담겨져 있다.

'그 겨울 바람이 분다'(사진출처:SBS)

 

실제로 음악만 나오고 말이 별로 없는 그런 멜로는 시청자들에게 그다지 강렬한 인상을 남기지 못한다. 오영이 얘기하는 것처럼 멜로에서 우리가 보고 싶은 것은 남자와 여자 사이에 오고 가는 눈빛과 그 속에 담겨진 감정일 것이니. < 그 겨울 > 이 이 감정을 더 정밀하고 섬세하게 전달할 수 있는 것은 그 클로즈업의 미학에 있다. < 그 겨울 > 의 카메라는 배우에 1센티 더 근접함으로써 그 얼굴의 미세한 움직임이 포착하는 작은 감정들까지 고스란히 시청자들에게 전달한다.

그 가까이 다가간 카메라는 송혜교의 앙다문 입을 통해 밖으로 터져 나오려는 절망감을 애써 누르는 오영의 감정을 포착하고, 조인성의 흔들리는 눈빛을 통해 오영이라는 여자에게 자꾸만 마음을 쓰게 되는 오수(조인성)의 진심을 담아낸다. 앞이 보이지 않는 오영과 그녀를 바라보는 오수 사이에 놓여진 미묘한 마음의 간극을 < 그 겨울 > 의 카메라는 좀 더 근접한 영상으로 잡아낸다.

겉으로 던져지는 독한 대사와 그와는 상반되게 가녀린 감정을 담아낸 송혜교의 표정은 그래서 오영이라는 인물의 외로움을 극적으로 보여준다. 얼마나 외롭고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없으면 그 상처받은 마음을 짐짓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감추려 하는 걸까. 그녀에게는 엄마 행세를 하지만 엄마는 아닌 왕비서(배종옥)가 있고, 오빠 행세를 하지만 진짜 오빠가 아닌 오수가 있으며, 약혼자처럼 행세하지만 실제로는 돈에만 관심 있는 이명호(김영훈) 변호사가 있다. 마치 가족처럼 그녀의 주변을 감싸고 있지만 그 누구도 가족은 아닌.

이 가족처럼 굴면서 사실은 오영에게 다른 목적으로 접근하는 이들의 속내는 그래서 말이 아니라 표정과 행동으로 드러날 수밖에 없다. < 그 겨울 > 의 카메라가 인물들이 어떤 대사를 던질 때 그 대사의 내용보다 그 표정에 더 집중하는 건 이처럼 그 속내가 가진 끔찍함이나 혹은 절절함을 보다 강렬하게 전하기 위함이다. 이 클로즈 샷 속에서 앞을 보지 못하는 오영 앞에 서 있는 이들의 진짜 모습이 드러나고, 또 그들을 보지 못하면서도 그들의 진심을 알아채는 외로운 오영의 마음이 포착된다.

그래서 이렇게 굳은 표정으로 마치 '난 외롭지 않아'하고 외치듯 버티던 오영이 오수 앞에서 무너져 내리며 "내가 널 믿어도 된다고 해줘."라고 말할 때 그 외로운 감정은 더 극적으로 전해질 수밖에 없다. '믿어'도 아니고, '믿어도 돼?'라고 묻는 것도 아닌 '믿어도 된다고 해달라'는 요청 속에는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도 믿고 싶은 오영의 절박함이 담겨있다. "난 내 옆에 그 누구도 믿을 수가 없어. 제발 오빠 너만은 내가 믿어도 된다고..."

그런 오영 앞에서 오수도 흔들리는 마음을 어쩌지 못한다. 돈을 위해 오빠라고 속이고 접근했지만 그녀의 절망을 들여다보고는 오빠가 아닌 남자로서 자꾸 마음이 끌리는 것. 오영의 손을 잡는 떨리는 오수의 손과 그녀의 얼굴을 쓰다듬는 그의 손, 또 저도 모르게 키스할 듯 다가가는 그의 입술은 그의 흔들리는 마음을 그대로 보여준다. '인생 참 별거 아니라고 그저 살아지는 거니 사는 거라는 내가 한 모든 말들은 어쩌면 모두 거짓말이었나.' 오수는 자신에게 그렇게 되묻게 된다.

< 그 겨울 > 의 송혜교와 조인성이 만들어가는 멜로가 더 강렬한 것은 시각장애인 오영이라는 캐릭터가 가진 상황이 멜로와 범죄(사기 혹은 거짓) 사이에 걸쳐져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멜로의 감정을 극적으로 잡아내는 클로즈업의 미학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것은 당연하게도 이들 연기자들의 놀랄 만큼 섬세해진 연기력이 그 클로즈업의 압박을 이겨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제는 송혜교와 조인성의 얼굴 표정 하나, 손 동작 하나에도 그 감정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 그 겨울 > 이 만들어내는 극성은 바로 여기서부터 비롯된다.

728x90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