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가 그려내는 이 시대의 부자와 가난한 자

물론 드라마는 현실을 반영한다. 사회를 반영하는 거울로서의 현실이라는 기본 전제가 없는 한, 드라마가 가진 공감의 틀은 만들어지기 어렵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부자를 동경한다거나 좋은 배경의 배우자를 만나 결혼하는 것은 그 사회가 가진 현실의 한 측면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드라마들이 잡아내는 현실은 과거와 같은 그런 막연한 현실, 혹은 천편일률적인 현실이 아니다. 그것은 좀더 구체적인 현실이다. 마치 시사고발 프로그램에서 다루어질 만한 사회적 이슈를 담은 소재들이 드라마의 영역으로 들어오고 있다. 그것은 또한 우리 사회가 가진 문제를 직접적으로 다룬다.

‘쩐의 전쟁’, 개인부채 문제를 건드리다
우리 사회가 가진 개인부채와 파산의 문제를 사채업자라는 구체적인 직업을 통해 신랄하게 그려내고 있는 ‘쩐의 전쟁’, 겉으로 보기엔 백수들의 희망가처럼 보이지만 밑바닥에 청년실업에 대한 강력한 비판의 목소리를 담고 있는 ‘메리 대구 공방전’, 그리고 우리의 암담한 교육현실은 물론 천민자본주의가 가진 천박한 현실 등 가장 첨예한 지역불균형의 문제를 건드리고 있는 ‘강남엄마 따라잡기’가 그것이다.

‘쩐의 전쟁’은 최근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사채 대부업의 폐해에 직격탄을 날린다. 돈에 웃고 돈에 우는 세상을 정작 드라마는 만화처럼 그려내고 있지만, 거기에 대한 현실의 반응은 뜨겁다. 연예인들의 잇따른 대부업체 광고 중단은 물론이고 그로 인해 급격히 떨어진 이미지를 만회하기 위해 금리인하까지 고려하게 된 대부업체들의 상황은 이 드라마가 건드린 현실이 얼마나 뜨거운 것인지를 실감하게 만든다.

‘메리 대구 공방전’, 청년실업문제를 다루다
‘메리 대구 공방전’은 장기화되고 있는 청년실업의 문제를 다룬다. 3번 정도 회사의 문을 두드리면 입사할 수 있었던 70년대의 상황은 이제 아련한 향수가 됐다. 지금은 심지어 300번을 두드려도 열리지 않는 취업의 문 앞에 청년들은 절망하고 있는 상황이다. 메리(이하나)와 대구(지현우)는 바로 그들을 대변한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다른 드라마와는 달리 좀더 우회적으로 사회문제를 다루고 있다.

메리와 대구가 처한 사회현실은 이야기의 모티브가 되지만 그것을 직접적으로 비판하기 보다 드라마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갖는 꿈과 희망’의 이야기로 발전시킨다. 이것은 드라마적으로만 보면 좀더 세련되고 완성도 높은 시도라고 할만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것이 다루는 현실이 너무나 무겁기 때문에, 이러한 시도가 시청률 상승 같은 즉각적인 반응으로 이어지지는 않고 있다.

‘강남엄마 따라잡기’, 교육 불평등 문제를 다루다
새로 시작한 ‘강남엄마 따라잡기’는 이 모든 사회문제의 총체를 보여준다 할 수 있다. 거기에는 천민자본주의가 가진 경박한 세태는 물론이고, 강남강북으로 나누어진 지역 불균형의 문제, 입시위주 교육정책이 양산하는 사회문제가 들어 있다. 청년실업과 사채업의 문제가 이 교육문제, 경제적 불균형의 문제를 벗어날 수는 없을 것이다. 어느 지역에서 태어나고 그 지역에서 공부한 결과가 성공의 원인이 된다는 것은 사회적인 성공과 실패가 이렇게 부의 세습과 직결된다는 것을 에둘러 말해주기 때문이다.

이 세 드라마가 결국 다루고 있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가 갖고 있는 돈의 문제다. 부자와 가난한 자의 문제. 물론 부자는 모두 잘못됐고 가난한자는 모두 옳다는 식의 이야기는 아니다. 이들 드라마가 그려내는 부자들의 모습이 정당한 방법으로 돈을 모아 제대로 쓰는 이가 없기에 비판적으로 그려지고 있다는 이야기다.

재미있는 것은 이들 드라마의 주인공들이 가난한 자라는 점이고, 그들이 이런 사회적 문제 앞에 취하는 태도가 이중적이라는 점이다. 그들은 자신들을 힘겹게 만든 이 돈을 마치 경멸하는 것처럼 대하지만 결국 그 욕망 앞에 비굴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그것은 그만큼 부자와 가난한 자의 대물림의 틀이 견고하다는 방증이며, 그만큼 우리에게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은 그 견고함을 넘어서고 싶은 욕망이 강하다는 이야기도 된다.

이것이 이들 드라마 속의 인물들이 평면적이기보다는 강력한 욕망을 가진 입체적인 인물로 그려지는 이유이며, 또한 이들 돈의 현실을 다루는 드라마가 인기를 끄는 이유이기도 하다.

돈더미 앞의 금나라 혹은 연예인들

역시 돈의 위력은 대단하다. 드라마 ‘쩐의 전쟁’은 마동포(이원종)가 사무실 지하비밀금고에 숨겨둔 돈더미로 첨예한 긴장을 유발하고 있다. 숨기려는 자와 찾으려는 자의 두 욕망이 부딪치면서 시청자들은 돈에 대한 은밀한 쾌감을 만끽하는 중이다. 마동포가 숨겨놓은 돈이 몇 장의 수표도 아니고, 은행계좌의 수치도 아닌, 만 원짜리 돈더미란 점은 금나라(박신양)가 그 돈을 찾는 이야기를 자본주의라는 섬에서 보물을 찾는 이야기로 환원시킨다. 돈 다발이란 구체적인 돈의 형태는 수치로 포장된 자본주의 사회의 속살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그런데 여기서 생각해봐야 할 것이 그것은 보물이 아니고 돈이라는 점이다. 보물이야 낭만이라도 있겠지만, 돈 다발은 무언가 어둡고 음침한 구석이 있다. 그것도 사채업으로 서민들의 고혈을 짜내서 모아진 돈 다발은 더욱 그렇다. 비공개적인 돈의 흐름이 가능한 돈 다발에는 사실 그 돈을 벌기 위해 떨어진 땀 냄새보다는 누군가 흘린 피 냄새가 더 진동한다. 그 돈더미 앞에서 금나라는 갈등한다. 아니 그 어느 누구라도 그 앞에서는 갈등하게 될 것이다.

마동포가 서민들의 희망을 짓밟아가며 지하 비밀금고에 쌓아놓은 돈 다발의 적나라함은, 연예인들의 이미지를 덧씌운 대부업체 광고의 포장을 벗겨버린 이 드라마의 적나라함을 고스란히 닮았다. 손만 뻗으면 자기 손에 잡히는 그 돈 다발 앞에서 갈등하는 금나라의 모습은, 대부업체들의 광고 앞에 선 연예인들을 연상케 한다. “무이자 무이자-”를 외치며 유혹하는 돈은 자칫 이미지 실추라는 살인적인 이자로 되돌아올 판이다.

적어도 ‘쩐의 전쟁’을 두고 드라마는 그저 드라마일 뿐이란 얘긴 하지 못할 것 같다. 연예인들은 줄줄이 대부업체와의 광고 계약을 거절하거나, 취소했고, 대부업체들은 벗겨진 실체로 인해 추락된 이미지를 금리인하라는 최후(?)의 방법으로 넘어서려 하고 있다. 정치권에서도 살인적인 이자율에 대한 제도적인 장치가 필요하다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쩐의 전쟁’의 인기는 이런 현실까지 움직이는 리얼한 스토리, 연출, 연기 때문이거나, 드라마가 그리는 현실 자체의 지독함 때문이다. 혹은 그 둘 다일 수도 있다.

이 드라마는 그저 ‘쩐’을 다루는 게 아니고, ‘쩐의 전쟁’을 다룬다. 즉 쩐에도 ‘좋은 쩐’과 ‘나쁜 쩐’이 있어서 서로 전쟁을 벌인다는 말이다. 이것은 단순한 선악구도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돈이란 욕망에서 얼마나 자유로운가가 그걸 구분하는 기준이다. 금나라는 바로 그 사이에서 갈등하는 인물이다. 드라마 속 대사대로 “법보다는 주먹이 앞서고, 주먹보다는 돈이 앞서는” 세상에서 돈의 욕망을 포기한다는 것은 실로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드라마가 그리는 쩐의 전쟁의 승리자는 아마도 그 욕망으로부터의 자유를 얻은 사람이 아닐까. 돈더미 앞에 앉아 갈등하는 금나라도, 많은 연예인들이 광고라는 유혹의 쩐의 전쟁 속에서 포기함으로써 승리한 그 어려운 길을, 걸어가게 될까. 아마도.

흔히 시쳇말로 ‘돈에 웃고 돈에 운다’는 표현은 뒤집어 말하면 같은 돈이라도 그 얼굴(?)은 제각각이란 말이 된다. 돈에는 얼굴이 있다. 착한 얼굴, 나쁜 얼굴, 더러운 얼굴, 땀에 젖은 얼굴, 심지어는 사랑하는 사람이 갖는 애증의 얼굴까지. SBS 수목드라마, ‘쩐의 전쟁’은 바로 그 돈의 다중적인 얼굴 보는 재미가 쏠쏠한 드라마다.

돈에 대한 이중적인 모습의 금나라
사채업자란 직업의 설정은 돈이 가진 더러움과 숭배 사이의 간극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금나라(박신양)는 돈, 특히 사채를 철천지원수로 여기는 사람이다. 사채 빚 때문에 부모도 잃고 사랑하는 사람도 버렸지만 여전히 사채의 올가미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다. 그에게 돈은 똥보다도 더 더러운 존재다. 하지만 그는 “돈 많이 벌어 돈 땜에 힘들고 어려운 사람을 돕겠다”는 명분으로 사채업에 뛰어든다. 여기서 돈의 얼굴은 바뀐다. 돈은 어려운 사람을 돕는 숭고한 존재가 된다.

그래서 그가 하는 일이 아이러니하다. 그의 아버지를 자살로 이끌었던, 그래서 돈을 똥보다 더럽게 생각하게 했던 그 집요한 빚 독촉을 하러 다닌다. 드라마는 기술적으로 금나라가 돈을 받으려는 채무자들을 도박중독자, 조폭, 명품중독자 등으로 그린다. 이를 통해 금나라의 빚 독촉을 당연한 것으로 치부하면서 주인공의 딜레마를 의도적으로 가려버리기 위함이다. 재미있는 것은 이런 아이러니 가득한 금나라란 인물에 별 저항감 없이 감정이입되는 자신을 발견할 때이다.

돈에 쪼들렸던 기억 한번쯤 가져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만일 그런 사람이라면 이 드라마는 재미없을 것이다. 하지만 시청률이 폭발적인 걸 보면 지금은 역시 돈이란 얼굴에 태연할 수는 없는 시대가 분명한 것 같다. 그러니 드라마 초반부에 금나라가 가졌던 그 추락에 누구든 쉽게 빠져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바닥에서 쓰레기를 주워먹으며 가지는 감정은 저 금나라가 그런 것처럼 복수심이다. 돈 나도 한번 벌어보겠다는 강력한 욕망이다.

하지만 이 욕망은 금기와 동의어다. 자신을 그렇게 비참하게 만든 바로 그 (타인의)욕망이기 때문. 그래서 그는 명분이 필요하다. 그것이 바로 ‘돈 벌어 돈 땜에 어려운 사람 돕고 산다’는 것이다. 신문 사회면에 ‘평생 벌은 몇 억 원을 사회에 환원했다’는 미담이 그런 명분을 가당한 것으로 여기게 하지만 여기엔 조건이 있다. ‘평생 벌은 몇 억 원’의 얼굴이 착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금나라가 하는 사채업으로 돈을 벌어 어려운 사람 돕겠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만, 드라마가 표현한대로 ‘낙타가 바늘구멍 지나가기’만큼 어려운 일이다.

어쨌든 시청자들은 기꺼이 금나라의 명분을 받아들인다. 현실에선 어려운 일, 드라마에서라도 주인공에 감정이입되어 신나게 돈을 벌어보겠다는데 뭐가 문제일까. 드라마 초기에 사채업이 보여주는 돈의 무서움은, 금나라가 사채업자가 되어 피해자에서 가해자로 변신하면서 벌면 벌수록 즐거운 대상이 된다. 이제 돈에 대한 시청자의 감정은 교차된다. 금나라의 여동생 은지(이영은)의 포장마차를 때려부수는 사채업자들을 보면서 더러운 돈에 혀를 차다가, 금나라가 불량채무자들에게 돈을 받아내기 위해 벌이는 기상천외한 장면들에서는 재미와 욕망의 대상이 된다.

쩐의 전쟁에서 살아남는 법
이 드라마의 돈에 대한 집요함은 멜로조차 채권과 채무의 관계로 풀어낸다. 서주희(박진희)는 금나라의 담보(?)로 둘 관계는 외견상 채무자와 채권자로 설정된다. 그런 낌새를 차린 금나라의 옛 애인, 이차연(김정화)은 서주희를 불러서 그 돈 대신 갚아줄테니 그 관계를 청산하라고 말한다. 그 말을 전해들은 금나라는 이차연을 찾아와 함부로 서주희를 대하지 말라고 하는데 그 순간, 이차연은 각서를 끄집어낸다. 그 각서는 ‘다시는 이차연을 만나지 않겠다’는 전제로 금나라가 돈을 빌렸을 때 쓴 것. 이차연은 금나라에게 돈을 갚고 이 각서 가져가라고 한다. 이차연이 채권자고 금나라는 채무자가 되는 순간이다.

이런 멜로의 관계를 돈으로 풀어내는 이면에는 ‘돈이면 사랑까지 가능한’ 세태를 꼬집는 풍자가 들어있다. 실제 드라마 속 상황은 표현만 채권 채무로 했을 뿐, 사랑하는 마음을 전한 것이지만 이런 얘기에서 재미를 느끼게 되는 것은 그 돈에 대한 풍자적인 접근방식 때문이다. 이차연에게 하우성(신동욱)이 “당신이 원하는 대로 해줄 수 있다. 대신 망가뜨릴 수도 있다”고 말했을 때, 이차연이 “나한테 데려올 수 있냐?”고 말하는 부분에서 이 드라마의 멜로는 정확히 이 이야기가 하려는 돈의 이중성과 맞닿는다. 하우성이 말한 건 ‘돈이면 다 되는 세태’이고 이차연은 ‘돈으로 얻을 수 없는 사람 마음’을 말한 것이다.

돈에 대한 ‘쩐의 전쟁’의 메시지는 대부분 이 이야기의 중심에 서있는 독고철(신구)이란 전설적인 사채업자에게서 나온다. “이제 그만 마동포 밑에서 나와 독립하라”면서 툭 던지는 말, “욕하면서 닮아간다”는 말은 이 드라마가 말하려는 핵심에 근접한다. 자신은 다를 거라 명분 세우며 뛰어든 진흙탕 속에서 결국은 누가 누군지 모르게 되어버리는 것은 그 진흙탕의 원료가 돈이라는 다중적 얼굴을 가진 놈이기 때문이다. 결국 금나라의 아버지가 죽은 것도 “돈 때문이지 마동포 때문이 아니다”라는 그의 말은 돈 세상에 살아가야만 하는 우리에게 돈의 실체를 드러낸다.

이 드라마는 사채업을 내세우고 있지만 그것은 돈에 대한 이야기의 극단을 만들기 위한 장치에 불과하다. 샐러리맨식으로 말하면 돈 벌기 위해서 간도 쓸개도 집에 놔두고 직장이란 전쟁터로 나가는 건 돈 벌어 행복을 찾기 위한 것이지만, 차츰 돈에만 끌려 다니다가 행복을 내팽개치게 되는 식이다. 그러니 이 드라마는 사회라는 틀 속에서 누구나 하면서 살아야 하는 우리 모두의 ‘쩐의 전쟁’에 대한 이야기다. 매일 우리는 돈이란 다중적 얼굴을 가진 괴물과 싸우러 저 쩐의 전쟁 속으로 뛰어든다. 그런데 괴물과 싸울 때 가장 조심해야할 것이 있다. 그것은 자신이 괴물이 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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