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 예능은 안된다? <삼시세끼>가 다른 까닭

 

농사과 예능의 만남은 <삼시세끼>가 처음이 아니다. 이미 KBS <청춘불패>가 아이돌들과 함께 농촌으로가 정착형 예능을 보여준 바 있지만,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그것은 농사가 생각과 달리 쉽지 않고 또 그렇게 노동이 많이 투여되는 만큼 방송으로서 그림이 많이 나오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삼시세끼(사진출처:tvN)'

하지만 그래도 농사라는 소재를 예능은 끊임없이 건드렸다. MBC <무한도전>이 벼농사 미션을 무려 1년간 해 뭥미를 기부하기도 했지만 역시 예능의 한 미션에 1년을 투여한다는 건 무리한 감이 있었고, KBS <인간의 조건-도시농부> 역시 도시의 옥상에서 농사를 짓는 시도를 했지만 생각만큼 좋은 결과를 얻지는 못했다.

 

<삼시세끼> 고창편이 본격적인 벼농사를 시도하겠다는 얘기가 나왔을 때 이러한 많은 시도들과 그 어려움이 먼저 떠오르는 건 그래서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삼시세끼> 고창편은 차승원이 말하듯 만재도에 비해 몇 배는 힘들다는 것이 느껴졌다. 만재도에서야 할 수 있는 게 물고기를 잡거나 홍합 같은 걸 채취해 먹는 것이니 생각보다 노동이 세지는 않았을 게다. 하지만 <삼시세끼> 고창편이 살짝 보여준 모내기는 이 벼농사가 만만찮음을 보여준다.

 

그래도 고무적인 것은 <삼시세끼>가 첫 회에 10% 시청률을 훌쩍 넘겨버림으로써 농사 예능이라는 미션을 하면서도 대중성을 확보해야 하는 그 부담감을 없애버린 점이다. 이것이 가능했던 건 다름 아닌 출연자들과 제작진의 힘이다. 뭐든 척척 멋지게 요리를 해내는 차승원이 있고, 그를 그림자처럼 보조해주는 손호준과 새내기 남주혁이 새로운 케미를 만들어가는 와중에 영화 촬영을 하면서도 선뜻 합류해준 유해진으로 분위기는 훨씬 화기애애해졌다.

 

특히 차승원과 유해진의 이른바 아재 파탈<삼시세끼> 고창편이 다소 힘겨운 벼농사 미션을 함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이 프로그램을 즐길 수 있게 해주고 있다. 오랜 세월 함께 해온 콤비답게 툭툭 건네는 아재 개그는 잘 웃지 않던 남주혁마저 점점 빠져들게 만든다. 차승원을 까마득한선배라 칭하더니, 손호준을 마득한선배, 자신을 득한선배라고 말하는 식의 유해진의 농담은 조금은 긴장하고 있는 남주혁을 풀어주기에 충분했다.

 

또한 프로그램을 조금은 자유롭게 내버려두고 실제로 느끼는 대로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려는 제작진의 접근방식도 이번 <삼시세끼>에 대한 몰입이 높은 이유 중 하나다. 육체적으로 피곤하면 낮잠 한 잠 자는 것이 훨씬 자연스럽다는 걸 제작진은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그 자는 모습 또한 그대로 내버려두고 방송에 내보낸다. 모내기를 할 때는 그만큼의 힘겨운 노동의 모습을 보여주고, 그것이 저녁 때의 삼겹살 파티가 주는 즐거움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게 한다. 그것이 바로 노동이 주는 힘겨움과 즐거움이 아닐까. 농사는 힘들지만 그렇게 하루의 피곤을 맛난 저녁으로 풀어내는 것.

 

그러다 보면 <삼시세끼>가 이번 고창편에서 궁극적으로 그리고 싶어 하는 그 그림, 바로 한 끼의 밥을 위해 농부들이 하는 그 숭고한 노동이 주는 그 감동을 선사할 수도 있을 것이다. 비와 햇볕과 그리고 농부의 노동이 만들어내는 위대한 작품, 그것이 삼시세끼 우리가 먹는 그 밥의 행복이 아닌가.

 

무엇보다 이런 어려운 미션을 즐겁게 풀어가는 아재 파탈, 차승원과 유해진의 힘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힘들어도 농담 하나를 툭툭 던져 그걸 웃음으로 풀어내고, 소박한 저녁 한 끼로 하루를 보상받게 해주는 그런 능력은 다름 아닌 이 놀라운 아재들의 삶의 경륜에서 나오는 것들이다. 그들이 있어 그 어렵다는 농사 예능도 즐거워질 수 있으니.

<삼시세끼>, 유해진 합류 전과 후 뭐가 달랐나

 

차승원은 어딘가 어색해했다. 당연할 것이다. 얼굴만 봐도 척척 그 속내를 알아채고 같은 나이 또래에 함께 배우 생활을 해온 그 경험치를 공유해온 친구, 유해진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를 맞아주는 손호준과 새롭게 가족이 된 남주혁은 반갑게 그를 맞아주었지만 툭 던지는 아재개그 앞에 어쩔 줄 몰라 하는 그들을 보며 차승원은 난감해질 수밖에 없었다.

 

'삼시세끼(사진출처:tvN)'

물론 차승원 역시 새로 합류한 남주혁을 세심히 살피고 챙겨주었다. 배우 이전에 모델 대선배인 차승원이 남주혁에게는 못내 어려운 선배일 수 있기 때문이었다. 마트에서 남주혁이 우유를 만지작대면 그걸 좋아하나보다 하며 사주고, 그의 입맛을 배려해 떡볶이 떡을 사와 닭복음탕에 넣어주었다. 어려워할 그에게 불 잘 지핀다며 칭찬을 해주고 뭔가를 시킬 때도 조심스러워하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이런 배려의 모습은 훈훈하긴 하지만 <삼시세끼>가 본래 갖고 있는 그 편안함과 자연스러움과는 살짝 벗어나 있는 것이었다. <삼시세끼>가 애초에 정선에서 이서진과 옥택연을 출연시킨 건, 그들이 이미 <참 좋은 시절> 같은 드라마로 가까운 사이였기 때문에 굳이 어색한 만남의 과정을 가질 필요가 없어서다. 그래서 시작부터 투덜대고 못하는 밥이나마 챙겨 먹으며 자연스럽게 웃을 수 있었던 것.

 

하지만 별다른 사적 관계가 없는 남주혁의 출연에 유해진의 부재는 차승원으로서는 이번 <삼시세끼>가 만만찮게 다가왔을 것이다. 유해진 같은 존재가 있어 같은 또래끼리 치고 박고해야 편안해질 텐데, 두 명의 후배들 위에서 선배로 시키는 입장에 설 수밖에 없는 차승원은 오히려 자신이 불편해질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차승원은 새 삼시세끼 집에 도착하자마자 거두절미하고 요리에 들어갔다. 텃밭에서 야채를 가져와 간단하게 해먹을 수 있는 비빔국수를 만들어 먹은 것. 그렇게 뚝딱 한 끼를 해먹고는 바로 저녁엔 뭐 먹을까를 고민하는 그들은 읍내에 나가 장을 보고 돌아와 닭볶음탕을 해먹는다. 그렇게 어찌 보면 이 첫 날의 모습은 마치 차승원이 요리를 하는 미션을 수행하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하지만 이런 다소 어색한 분위기는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다음 날 아침 유해진이 이 마을로 슬슬 걸어 들어오면서 깨져나갔다. 특유의 사람 좋은 웃음을 지어보이며 아재개그를 툭툭 던지는 유해진은 바로 어제 만재도에서 나온 사람처럼 변함이 없었다. 그는 동네 이장님댁에 가서 차승원을 놀래키기 위한 이장 분장을 하면서도 너무 잘 그 동네에 어우러졌다. 물론 뒤태만 봐도 목소리만 들어도 그가 유해진이라는 걸 척 알아맞히는 차승원 때문에 몰래카메라는 실패로 돌아갔지만 그래도 이렇게 완성된 완전체는 이제야 비로소 <삼시세끼> 같다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했다.

 

시골 길을 함께 걸어가며 유해진과 차승원은 비로소 특유의 아재스럽지만 푸근한 웃음을 짓게 만드는 개그들을 늘어놓는다. 후배인 남주혁을 편안하게 해주기 위해 선배들을 친구처럼 대하라며 이런 저런 농담을 던지는 그 모습은 당사자들은 물론이고 후배들까지 빠져들게 했다. 카메라가 부감으로 빠져나가며 비추는 네 사람의 즐거운 모습은 그래서 고창의 어느 마을과 조금씩 어우러져가는 이들을 잘 표현해주었다.

 

도대체 유해진의 무엇이 이런 효과를 가져온 것일까. 그것은 그에게서 배어나오는 시골스러움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차승원과 손호준 그리고 남주혁은 아무래도 그저 서 있기만 해도 모델 같은 도회적 느낌을 준다면, 유해진은 진짜 시골 이장님 같은 푸근한 인상이다. 그것은 외적인 것만이 아니라 그가 하는 말투나 사람을 대하는 방식 또한 그렇다. 이러니 <삼시세끼>에 그를 빼놓고 얘기할 수가 없는 것이다.

 

스케줄 때문에 생겨난 일이지만 하루의 격차를 두고 유해진 합류 전과 후로 <삼시세끼>는 분명한 차이를 보였다. 이것만큼 유해진의 존재감을 증명하는 일이 있을까. 유해진의 합류로 본격화된 완전체의 고창에서의 시골 살이가 더더욱 궁금해진다

유해진의 사람냄새, <삼시세끼>의 정서

 

tvN <삼시세끼> ‘고창편에 유해진이 합류한다는 소식에 팬들은 반색했다. 사실 차승원과 손호준 그리고 새롭게 남주혁이 합류했지만 영화 스케줄 때문에 유해진의 참여여부가 미정이라는 소식은 아쉬움을 넘어서 <삼시세끼> ‘고창편에 대한 불안감까지도 갖게 만들었다. 역시 완전체는 차승원과 유해진 그리고 손호준의 조합이라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 스케줄을 조정해 유해진이 합류한다는 소식으로 불안감은 기대감으로 바뀌었다. 도대체 유해진의 무엇이 이토록 대중들의 환호를 이끈 것일까.

 

'삼시세끼(사진출처:tvN)'

사실 만재도에서 찍은 <삼시세끼> 어촌편에서 화려하게 시선을 잡아끄는 존재는 차승원이다. 이른바 차줌마라는 닉네임까지 얻은 차승원은 뭐든 척척 요리를 해내는 모습으로 시청자들의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가 어떤 요리를 할 것인가에 대한 궁금증과 호기심은 <삼시세끼> 어촌편이 섬이라는 공간에 붙박여 있으면서도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 이유이기도 했다.

 

하지만 눈을 즐겁게 하고 식욕을 자극하는 차승원과는 사뭇 다른 정서를 만들어내는 존재가 유해진이다. 물론 하루의 저녁거리를 위해 물고기를 잡으려는 그 갈증이 분명 있었지만, 그것보다 더 유해진에게서 남은 인상은 아무 것도 잡지 못한 채 헛헛한 발걸음으로 되돌아오는 모습이 주던 쓸쓸함같은 것이다.

 

아무런 소득이 없어(?) 미안한 마음에 괜스레 웃어 보이고 허세를 떨기도 하지만 거기서 고스란히 느껴지는 건 서민들의 퇴근길 정서다. 쥐꼬리 만 한 월급을 위해 하루를 열심히 살다가 돌아오는 가장의 발길. 가족들의 저녁이 걱정이지만 그래도 애써 가장으로서 웃어 보이며 건재함을 과시하려는 모습 같은 것들이 유해진에게서 전해지는 짠한 정서였다. 물론 그러다 어느 날 물고기 횡재를 얻어 어깨가 들썩들썩하는 모습도 정겨웠지만.

 

차승원이 차려주는 저녁을 먹고 나서 어스름해지는 시각, 술 한 잔의 힘을 빌어 이런 저런 살아왔던 이야기를 건네는 유해진의 모습은 자연스럽다. 그것은 <삼시세끼>라는 프로그램을 찍는다기보다는 그저 오래도록 함께 해온 동료와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떠난 여행에서 진솔한 마음을 털어내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처럼 보인다.

 

무엇보다 유해진의 이러한 힘을 쭉 뺀 자연스러운 모습은 <삼시세끼>라는 프로그램에는 특유의 공기 같은 걸 만든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옛날식 라디오를 찾아 <배철수의 음악캠프>에 신청한 노래를 들으며 흥겨워하는 모습. 이만한 자연스러움이 있을까. 그것은 서민들 누구나 퇴근 후 자신에게 주는 작은 선물 같은 것이 아니었던가.

 

차승원이 <삼시세끼>를 지루할 틈 없이 음식의 향연으로 채워준다면, 유해진은 그 음식을 놓고 갖는 저녁 시간의 사람 냄새 가득한 정서를 채워준다. 입도 즐겁고 속도 든든하지만 마음까지 푸근해지는 건 다름 아닌 유해진의 이런 사람 냄새 덕분이다. 그의 합류에 팬들이 환호하는 건 그래서다.

<삼시세끼>의 자연, 사람, 음식이 남긴 것들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것을 잊고 살아가는 지...” <응답하라1988>에 흘러나오는 동물원의 혜화동에는 이런 가사가 나온다. <삼시세끼> 어촌편 시즌2가 종영했다. 종영에 즈음해 생각해보면 <삼시세끼>가 하려던 이야기는 그 가사의 한 구절이 아니었을까. 우리가 잊고 살아왔던 참 많은 것들이 <삼시세끼>를 통해 환기되었다.

 


'삼시세끼(사진출처:tvN)'

만재도는 이제 너무나 친숙한 섬이 되었다. 그 누가 열 시간 넘게 달려가야 비로소 닿을 수 있는 외로운 섬이라고 하겠는가. <삼시세끼> 어촌편이 두 차례의 시즌으로 펼쳐놓은 만재도의 구석구석들. 바다가 멀리 내려다보이던 세끼 집과 주인이 있는 날보다 없는 날이 더 많아 보이는 만재슈퍼, 정상에 오르면 끝없이 펼쳐지던 수평선들, 늦여름에 물장구 치고 놀던 바다, 참바다 유해진이 낚시를 하던 포인트들과 잔뜩 기대하게 만들던 통발 놓던 포인트들. 그리고 무엇보다 그 곳에서 소박하게 살아가는 가족 같은 사람들. 도시에서 눈 돌려봐야 건물에 막히고 마는 우리의 시야가 잊고 있던 그 자연의 구석구석을 <삼시세끼>는 우리에게 돌려주었다.

 

그 곳에 좋은 사람들이 모이니 더욱 좋을 수밖에. <삼시세끼>의 진정한 힘은 바로 이 보고 싶을 정도로 좋은 사람들이 함께 한다는 점에서 나온다. 투덜대고 어딘지 결벽증이 있어 보이지만 만드는 음식 속에 그 사람의 정이 듬뿍 느껴지는 차중마 차승원, 물고기를 잡지 못한 날이면 한껏 의기소침해지고 그러다 물고기를 잡은 날은 한껏 허세를 부리는 인간미가 느껴지는 참바다 유해진 그리고 두 사람 사이에서 마치 자식처럼 동생처럼 끈끈함을 만들어내는 기분 좋은 막내 손호준.

 

그 곳을 찾은 박형식, 이진욱, 윤계상은 손님이라기보다는 머슴에 가까웠다. 그런데 그것이 어쩌면 그들을 더욱 기분 좋게 만들었을 것이다. 손님이 아니라 한 가족 같은 느낌을 주었을 테니 말이다. 그들은 함께 음식을 나눠 먹으며 진정한 식구의 훈훈함을 보여주었다. 하루하루를 전쟁처럼 살아가는 도시인들에게 만재도의 자연과 사람과 음식은 그렇게 우리가 잊고 살아가던 것들의 가치를 되새겨 주었다.

 

도시에 다시 모여 결국은 잡지 못한 참돔과 돌돔을 먹으며 차승원, 유해진, 손호준이 나누는 대화 속에는 만재도에 대한 그리움이 벌써부터 묻어나 있었다. 유해진은 언제고 힘들어질 때 혼자라도 만재도를 꼭 찾아갈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아마도 다시 제각각 돌아간 일터에서 또다시 하루하루를 전쟁처럼 살아갈 것이지만 그럴 때마다 그들은 만재도에서의 그 여유롭던 한 끼와 바다를 내려다보며 한가롭게 낮잠을 즐기던 한 때와 산체 벌이와 함께 뒹굴던 시간들을 떠올릴 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네 시청자들도 마찬가지다. 그 곳을 직접 가보지는 못했지만 <삼시세끼>를 통해 그 곳의 기억을 공유하게 된 우리들도 간혹 만재도가 그리워지는 날이 올 지도. 그럴 때면 우리도 잠시 이 곳을 떠나 저 곳으로의 일탈을 꿈꿔보는 건 어떨지. 그 곳에 가면 어쩌면 우리가 바쁘게 살아가며 잊고 있던 것들을 되찾을 수도. 차승원과 유해진과 손호준이 그러했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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