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극 난무하는 시대, ‘법사’가 선택한 새로운 길

법대로 사랑하라

층간소음, 아동학대, 성폭력, 학교폭력. 소재만 봐도 그 사안의 심각함을 누구나 체감할 게다. 신문 사회면에 등장할 때마다 대중들의 뒷목을 잡게 만드는 사건들. 하지만 끝나지 않고 계속 터져 나오는 사건들. 그래서일 게다. 현실이 해결해주지 않는 이 사건들이 드라마 속으로 들어와 속 시원한 해결을 보여주기 시작한 것은. 

 

사회 문제와 사건들을 소재로 가져온 장르물들이 쏟아져 나오고, 이를 복수극 형태로 시원시원한 사이다를 던지는 드라마들이 많아졌다. 심지어 법이 해결해주지 않는 사건을 사적 복수의 형태로 해결하는 드라마들도 적지 않아졌다. 이런 시대에 KBS 월화드라마 <법대로 사랑하라>는 조금 다른 길을 선택한다. 저 심각한 사안들을 가져오고 그 사안들에 대한 판타지 사이다를 제공하긴 하지만, 그 방식이 다르다.

 

이 드라마는 변호사가 출연하고 있고 그래서 법을 다루고 있지만 법정 안에서의 싸움을 그리진 않는다. 그렇다고 법 바깥에서 사적 복수를 취하지도 않는다. 대신 사안이 발생한 그 서민들의 삶 속 깊숙이 들어가 ‘실질적인 해법’이나 도움이 되는 길을 모색한다. 로펌에서 나와 로(Law) 카페를 차려 법원에 가지 않고 해결책을 찾아주는 김유리(이세영)라는 인물은 그렇게 탄생한다. 그는 저 심각한 사안들을 겪는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같이 울어주며 실질적인 해결방법을 찾아준다.

 

층간소음 문제 때문에 미칠 지경이 된 한 사내가 극단적인 선택까지 하려는 상황이 발생했을 때, 그것이 이웃 간의 에티켓 문제가 아니라 건설사의 부실시공이 문제라는 걸 찾아내고 이를 해결하는 김유리와 김정호(이승기)의 첫 번째 에피소드는 이 드라마가 여타의 법정드라마 혹은 법 밖의 복수극과는 사뭇 다른 길을 걸어갈 것이라는 예고에 가까웠다. 법적 대응을 해봐야 소송비용을 빼고 실질적으로 아파트 주민들이 얻어갈 것이 없을 거라는 걸 간파한 이들은 각자 다른 집에서 악기를 연주해도 하나로 어우러지는 이른바 ‘층간소음 밴드’ 영상을 SNS에 올림으로써 브랜드 이미지 추락에 직면한 건설사의 합의를 얻어낸다. 

 

지속적으로 벌어진 아동학대 때문에 아이가 밤마다 거리로 도망쳐 나와 돌아다니고 김유리가 운영하는 로카페에 까지 들어오게 된 사건도 가해자인 부모를 처벌하는 것보다는 피해자인 아동의 이야기를 김유리와 김정호가 들어주고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아주는 해결책을 보여줬다. 게다가 김유리는 해당 관청에서 이런 신고에 대해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에 항의하지만, 해당 공무원 역시 보호 아동이 갈 수 있는 곳이 없다는 현실적인 토로를 함으로써 아동학대 문제와 연관된 아동보호시설의 부족까지 꼬집기도 했다. 

 

5회에 등장한 가사도우미 성폭력 사건은 흥미롭게도 ‘적극적 동의(Yes means Yes)’에 대한 이야기를 김유리가 김정호에게 동의 없이 키스한 대목을 통해 풀어냄으로써 이 법적인 사건과 드라마 속에 부지기수로 등장했던 이른바 ‘동의 없는 키스들’에 대한 비판을 달달한 멜로와 엮어 풀어내는 기막힌 전개를 보여줬다. 

 

이른바 ‘벽치기’라고도 불리는 드라마 속 동의 없는 키스 장면들은 이제 ‘폭력’으로 간주되어 사라지고 있는 상황이다. ‘키스의 적법성에 관한 고찰’이라는 부제에 맞게 김유리는 자신의 키스가 김정호의 동의 없이 했던 것에 대해 재차 사과한다. 이건 이런 장면에서의 남녀 상황을 뒤집어놓은 설정을 가져와 이러한 친밀감을 표현하는 행위들에 사전 동의가 필요하며 그게 아니면 폭력이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이 이야기는 가사도우미에게 아무런 동의 없이 스킨십을 하려한 집주인의 성폭력 사건과 연결되어 사안을 더 확장해서 보게 해준다. 

 

6회에 다뤄지고 있는 학교폭력 문제도 마찬가지다. 로 카페에 상담하러 온 폭력 피해학생이 ‘촉법소년’에 대해 물어오고 그건 그가 심각한 사건을 일으킬 수도 있다는 위기의 신호를 암시한다. 그 폭력을 옆에서 알아차린 역시 학교폭력으로 동생을 잃은 로카페 바리스타 서은강(안동구)이 피해학생을 돕겠다고 일부로 방화사건을 내고 그걸 가해학생들의 짓이라 거짓 증언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직접적인 보복도 법적인 해결도 아닌 이들이 제시한 제3의 선택이 어떤 결과를 보여줄지 궁금해진다. 

 

사실 <법대로 사랑하라>는 제목이 다소 어색하게 느껴진다. 그것은 주로 ‘법대로 하라’는 말이 법대로 ‘처벌하라’는 의미로 자주 쓰이곤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처벌’ 대신 ‘사랑’을 선택했다. 처벌이 가해자들에 대한 단죄를 말한다면, 사랑은 피해자들에 대한 사랑이 아닐까. 물론 심각한 사건들에서 가해자들에 대한 처벌은 당연히 중요할 게다. 하지만 그러한 처벌만큼 삶이 나아지려면 피해자들을 보듬어주고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사랑의 시선이 필요하지 않을까. 

 

그래서 <법대로 사랑하라>는 제목은 여러 가지 의미로 읽힌다. 김정호와 김유리의 관계로 보면 김유리를 사랑하지만 자신과(혹은 가족) 관계된 일 때문에 다가가지 못하는 김정호엑 이 드라마는 일단 법적인 문제들을 해결하고 당당해진 후 사랑하라고 말하는 듯 하다. 또 앞서 말했듯 ‘법대로’ 처벌만이 아닌 사랑을 하라는 의미로도 읽히고, 저 성폭력 사례의 적극적 동의의 관점으로 보면 법에 저촉되지 않는 방식으로(그것이 가장 안전한 것이기 때문에) 사랑하라는 의미로도 읽힌다. 여러모로 복수의 방식으로 법이 그려지곤 하는 시대에 색다른 선택이 주목되는 작품이다. (사진:KBS)

‘소년심판’, 분노하다 아파하다 먹먹해지는 웰메이드의 탄생

소년심판

“소년 사건은 해도 해도 적응이 안돼. 늘 찝찝하지.”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소년심판>에서 심은석 판사(김혜수)는 차태주 판사(김무열)에게 그렇게 말한다. 이건 아마도 <소년심판>이라는 제목만으로도 이 드라마가 다룰 ‘소년 범죄’에 대한 이야기에 대해 시청자들이 가진 양가감정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게다. 

 

이제 겨우 13세의 나이에 8세의 초등생을 살해하고 시신을 훼손 유기했다고 경찰서 앞에 나타나 흉기로 썼다는 피 묻은 도끼를 꺼내 보이며 자수를 하는 <소년심판>의 첫 번째 사건의 도입 부분에서부터 이런 불편한 감정이 피어오른다. 이걸 소년 사건이라고 치부해 소년법에 따라 솜방망이 처벌을 해도 될 일일까. 그렇다고 어린 소년을 교화가 아닌 처벌의 대상으로 삼아 어른들과 똑같은 살인죄에 해당하는 처벌을 내리는 건 괜찮은 일일까. 

 

사실 <소년심판>은 이러한 양가적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소년 사건들을 우리 앞에 꺼내놓는다는 점에서 어딘가 불편하고 자극적인 이야기만 가득한 건 아닌가 하는 선입견을 주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이건 선입견일 뿐이다. <소년심판>은 불편한 사건들을 다뤄 어떤 분노의 감정들을 느끼게 하지만, 그걸 단지 심판하고 단죄하는 단순한 방식의 사이다를 추구하는 드라마도, 또 그렇다고 답답한 고구마 현실만을 꺼내놓는 드라마도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조금 멀리 놔두고 있어서 막연히 불편하게만 느꼈던 이 문제를 좀 더 가깝게 보게 해주고 거기서 이 심은석이라는 판사의 행보를 통해 어떤 대안들까지 생각하게 해주는 드라마다. 게다가 이 심은석 판사는 “저는 소년들을 혐오합니다”라고 말할 정도로 냉정한 인물이다. 판결의 대상이 소년이라고 해서 감정적으로 휘둘리는 판결을 내리거나 하지 않는다. 물론 그 이면에는 어딘가 상처가 존재하고, 그래서 그것을 가리기 위해 결코 웃지 않는 냉정한 얼굴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따뜻한 판사. 그가 바로 심은석이다. 

 

최근 법정을 다루는 드라마들이나 혹은 범죄 스릴러에서 자주 등장하는 소재가 ‘촉법소년’이다. 하지만 그런 드라마들이 ‘촉법소년’이라는 법을 오히려 이용하는 잔인한 소년범죄를 자극적으로 끄집어내는 정도로 다뤄지는 경우가 많았다면, <소년심판>은 그보다 더 깊숙이 문제의 본질을 파고 들어간다. 현실에서 마주하는 해당 판사들의 고민이 숙고되어 있고, 이를 촘촘히 취재해 드라마적 재미와 함께 잘 녹여내려는 작가의 고민도 느껴진다. 

 

소재가 주는 불편한 선입견을 잠시 접어두고 일단 한 번 보기 시작하면 눈을 뗄 수 없는 몰입감이 있는 드라마다. 그 몰입감은 작가가 이 진지한 문제를 가져오면서도, 매력적 캐릭터들을 창조하고 드라마틱한 구성을 더해 가능해진 일이다. 심은석 판사라는 캐릭터와 이를 연기하는 김혜수는 그래서 이 작품의 기둥이라고 해도 될 법한 존재로 시청자들로 하여금 그 캐릭터에 몰입해 분노하고 속 시원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슬퍼하다가 때론 먹먹해지는 그 감정들을 가이드해주는 장본인이다. 

 

엄청난 카리스마로 부장 앞에서도 결코 굽히는 일이 없는 이 심은석 판사의 냉정하고 대쪽같은 모습은, 그와 함께 사건에 뛰어드는 너무나 따뜻하고 아이들의 입장에서 바라보려 애쓰는 차태주 판사와 극명한 대비를 이루면서 이 논쟁적인 이야기에 균형감각을 만들어낸다. 게다가 에피소드도 시작에는 강력한 살인사건으로 먼저 시선을 잡아 끌지만, 그 이후에는 그런 소년 범죄가 벌어지게 되는 이유로서의 가정폭력 에피소드가 전개되고, 그 다음에는 이런 소년들을 보호하고 보살피는 사회의 안전망으로서의 보호센터가 가진 현실적 문제를 다룬 에피소드로 나아간다. 

 

즉 단순한 에피소드 나열이 아니라, 소년범죄에 대해 보다 입체적이며 심층적인 사안들로 에피소드들이 전개됨으로써 이 문제를 깊이 들여다보게 만든다는 것이다. 4회와 5회에 걸쳐 청소년 회복센터에서 벌어지는 에피소드와 거기서 센터장이 하는 대사는 이 드라마의 이런 깊이 있는 접근을 잘 보여준 사례다. “집에서 상처받으면 아이들은 자신을 학대해요. 평소에는 안했을 범죄를 저지른다거나 나쁜 아이들과 어울리는 식으로. 본인들도 알아요. 하면 안 된다는 거. 알면서 하는 거죠. 나를 학대하는 게 내 고통이 가정에도 상처가 되길 바라면서. 나 좀 봐 달라고, 나 힘들다고, 왜 몰라보냐고. 사실 대부분 비행의 시작점은 가정이거든요.” 

 

겉으로 드러난 것만 보면 소년들이 하는 행동들이나 말은 분노할 수밖에 없는 폭력에 가까운 것들이지만, 그 이면을 파고 들여다보면 거기 드리워져 있는 부모들의 무관심과 심지어 폭력의 그림자가 존재한다. 그리고 이건 부모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국가와 사회가 나서서 보듬어야할 문제들도 존재한다. 심은석 판사는 사실상 국가의 지원에 의해 된다고는 해도 결국 어떤 개인의 희생이 담보된 청소년 회복 센터 같은 시설들에 소년들이 맡겨지는 것의 실체를 날카롭게 꼬집는다. “그걸 바꿔 말하면 국가가 해야 될 일을 오직 개인의 희생에 기대고 있다는 뜻이 되는 거고. 그런 의미에서는 법원도 유죄야.”

 

한 번 보면 밤 새워 몰아볼 수밖에 없는 몰입감을 주는 독보적인 캐릭터와 깊은 취재에서 나오는 에피소드 그리고 작가의 만만찮은 필력이 더해진 극적 구성. <소년심판>은 보면서 참 다양한 감정들이 파도처럼 몰아닥치는 경험을 통해 ‘소년범죄’의 문제를 심층적으로 보게 해주는 웰메이드 드라마다. 작품도 좋지만 김혜수의 연기는 역시 넘사벽이다. 그의 대사 하나 행동 하나에 긴장하며 빠져들게 만드는 힘이 느껴지니 말이다. (사진:넷플릭스)

<피노키오>, 왜 굳이 박신혜와 진경을 대립시켰을까

 

과거 공장에서 커다란 화재사건이 벌어졌고 구조작업을 위해 소방관들이 투입되었지만 폭발사고로 모두 사망했다. 사고의 원인을 밝히는 일이 더 중요한 일이었지만 언론의 방향은 이상하게도 구조작업에 투입시킨 소방관 대장 기호상(정인기)에게 집중되었다. 그가 죽지 않고 살아남았다는 루머는 기호상과 그의 가족들을 순식간에 희생양으로 몰았고 사고의 원인 따위는 잊혀지게 만들었다.

 

'피노키오(사진출처:SBS)'

그리고 13년 후 그 때와 유사한 사건이 벌어진다. 공장에서 폭발사고가 벌어져 사망자들이 나왔는데 이상하게도 사건은 사고의 원인이 아니라 그 날 신고를 받고 왔다가 그냥 돌아간 경찰관 안찬수(이주승)의 안전불감증에 집중되었다. 팩트는 없고 추정이 마치 실제처럼 보도되는 과정에서 본말은 전도되고 무고한 이들은 희생양이 되며 그렇게 국민들의 관심사는 엉뚱한 곳으로 집중된다.

 

<피노키오>는 왜 13년 전의 사고와 유사한 사건이 마치 데자뷰처럼 똑같이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굳이 다루고 있는 것일까. 또 그것은 어떤 의미를 내포하고 있을까. 사실 이런 사건사고의 반복은 우리네 현대사에서는 익숙한 일이다. 삼풍백화점이 붕괴하고 성수대교가 무너지고 지하철에 화재가 나고 도시가스가 폭발하는 그 사건사고들이 세월이 지나도 다시 재연되는 곳이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이다. 작년 세월호 참사는 그 재연의 끝장을 보여주었다.

 

사고가 터졌을 때마다 우리의 시선은 어디에 쏠렸던가. 사고의 원인에 집중하고 그 제대로 된 책임을 묻기 보다는 애꿎은 사안들로 호도되거나 꼬리자르기에 집중했던 건 아니었을까. 그러니 사고의 반복은 어쩌면 예고된 것이나 마찬가지였을 지도 모른다. <피노키오>는 왜 사건사고가 그렇게 반복되는 것인가를 파고든다. 거기에는 사고에 대한 제대로 된 대처를 하지 못하고 그 철저한 책임 추궁을 통해 다시는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처리하기는커녕 정치적인 목적이나 경제적인 이유를 변명으로 서둘러 덮어버린 것에 원인이 있다.

 

<피노키오>는 가진 자들이 언론을 활용해 흐름을 바꾸는이야기를 반복해서 다룬다. 시간이 흘러도 사건이 비슷하게 반복되는 것은 과거나 지금이나 사건사고를 통해서 달라진 것이 하나도 없다는 비극적인 이야기를 전해준다. 흥미로운 건 이 사건에 대처하는 젊은이들과 그들이 싸우는 어른들과의 대결구도다. 피노키오 증후군을 갖고 있는 최인하(박신혜) 기자는 부패한 언론인이 엄마 송차옥(진경) 기자와 대결하고, 범조백화점의 2세인 서범조(김영광)는 송차옥 같은 부패 언론인을 이용하는 재벌인 그의 엄마 박로사(김해숙)와 대결한다.

 

이런 구도로 보면 주인공인 기하명(이종석) 역시 유일하게 남은 보호자였던 그의 형 기재명(윤균상)과 대결구도를 가졌다고 볼 수 있다. 기재명은 과거 자신의 집을 풍비박산 낸 거짓 증언자들을 처단하는 복수의 칼날을 들었던 인물이다. 그런 그에게 동생 기하명은 그런 법 바깥의 방식이 아니라 법 안에서의 방식으로 정의를 되찾겠다고 설득한다.

 

송차옥이 부패 언론을 그리고 박로사가 도덕이나 윤리의식 따위는 없이 돈이 되면 무슨 짓이든 하는 재벌을 표징한다면 그 피해자였던 기재명은 그 복수의 칼날이 제대로 된 대상으로 향하지 못하고 곁가지들에게만 드리워지는 사회의 부조리를 잘 드러내는 인물이다. 기하명은 그런 기재명의 칼날을 거두게 하고 그 방향을 다시 꼬리가 아닌 머리로 집중시키게 한다. 그것은 <피노키오>라는 드라마가 하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런데 왜 최인하와 송차옥 그리고 서범조와 박로사의 대결구도가 보여주는 것처럼 이들은 가족관계로 얽혀 있을까. 아니 좀 더 정확히 질문하면 어찌 보면 우연의 남발처럼 보이는 무리한 가족관계를 왜 박혜련 작가는 대결구도로서 활용하고 있는 것일까. 이것은 단지 편의적인 구도가 아니다. 거기에는 우리가 흔히 터져 나오는 사건사고들의 타인의 시선이 아닌 가족의 시선으로 바라보게 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

 

제 아무리 타인의 고통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 송차옥이나 박로사라고 하더라도 자식들이 연루되어 있다면 다른 느낌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엄마가 친구들을 고통 속에 몰아넣고 있다는 미안함 때문에 피나는 발뒤꿈치의 아픔도 잊고 며칠 째 밤을 새며 사안을 뒤집어보려 안간힘을 쓰는 최인하는 송차옥에게도 눈에 밟히는 존재일 수밖에 없다. 이것은 언론이 사안을 보도할 때 그 대상들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에 대한 이야기다. 만일 가족이라면 그렇게 허투루 마구 보도할 수는 없는 일일 테니.

 

우리는 세월호를 도려내고서는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갈 수 없다. 세월호를 내버리고 가면 우리는 또 같은 자리에서 물에 빠져 죽는다.” 소설가 김훈은 새해 벽두 한 일간지에 낸 특별 기고에 이렇게 썼다. 이미 바닷 속으로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 듯한 세월호를 새해 벽두에 다시 끌어올린 것이다. 그가 이렇게 세월호 이야기로 새해를 연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이 사건을 이대로 덮어두고 제대로 된 진상 조사와 처벌 없이 지나게 되면 또 다른 세월호를 맞이할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피노키오>가 던지고 있는 문제의식은 이것과 다르지 않다. 반복되는 사건과 반복되는 사안 덮기, 흐름 바꾸기, 꼬리 자르기는 또 다른 반복되는 사건으로 이어진다. 만일 그 사건이 나와는 무관한 타인의 일로만 치부된다면 우리는 쉽게 잊어버리고 또 어느 날 갑자기 남 일로 치부하던 그 사건이 내 앞에 터진 것을 바라보며 망연자실해질지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최인하 같은 피노키오 증후군이 가상이 아니라 실제이길 바란다. 많은 기자들의 딸국질 소리가 들려오기를.

 

 

중징계 연예병사보다 징계 안 받은 비가 더 문제

 

결국 춘천시 공연에 참여했던 8명의 연예병사 중 7명이 영창이라는 중징계를 받았고 1명은 근신 10일 처분이라는 경징계를 받았다. 연예병사 제도는 폐지하기로 했다. 그만큼 이번 사안의 중대성에 대해서 국방부도 공감했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이 일련의 조치들 속에 들어있지 않은 인물이면서 빠짐없이 거론되는 인물이 있다. 바로 조치가 내려지기 직전에 전역한 비다.

 

비(사진출처:국방홍보원)

많은 이들이 연예병사 군 복무 기강의 문제를 촉발한 비가 당시에도 7일간 근신처분이라는 솜방망이 처벌을 받았고, 이번 사안에서도 최고참으로서 관리 소홀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처벌을 빗겨난 것에 대해 그 형평성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또 지난 24일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김광진 의원이 밝힌 바에 따르면 비를 포함한 10여 명의 연예병사는 지원 필수서류를 제출하지 않고도 연예병사에 합격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심지어 김 의원측은 전임 홍보원장이 일부 병사를 편애 했다며 “얼마 전 퇴임한 홍보원장은 지난해 2월 비에 대한 연예병사 면접 당시 면접관이었던 5급 사무관에게 ‘월드스타 정지훈의 면접을 감히 5급 사무관이 볼 수 있느냐’고 질타했던 것으로 국방부 감사결과 나타났다”고 전하기도 했다. 이 모든 정황들 속에 비라는 이름이 계속 거론되는 것은 이 문제가 비에게 얼마나 심각한 사안인가를 되새겨준다.

 

이번 논란에 휘말린 연예병사들에게 사실 징계 그 자체는 그다지 큰 문제가 아닐 수 있다. 이들에게 더 중요한 건 전역 후 연예계로 무사히 복귀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다. 그들은 전역한 후에는 대중들의 사랑을 받아야 살 수 있는 연예인으로 돌아와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연예병사들의 해이한 군 복무 행태가 이미 드러난 상황에 이들이 대중들의 비난을 피하기는 어렵다. 결국 잘못 했다면 거기에 상응하는 벌을 받는 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한 때의 실수나 잘못이(그것도 국방홍보원의 잘못된 관리 행태에 의해 거의 방조된) 이들 연예병사들의 앞날까지 모두 막는다는 것은 가혹한 일이다. 죄가 있다면 벌을 받고 진정성 있는 군 복무를 통해 자숙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그들에게도 다시 한 번의 기회는 주어져야 할 것이다. 이것은 이번 사안이 몇몇 연예병사들의 돌출된 행동에서 비롯된 사건이 아니라 잘못된 국방홍보원의 시스템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에 더더욱 그러하다(따라서 이번 문제가 연예병사들만의 중징계로 끝나는 것은 자칫 이 사안을 병사들만의 문제로 축소시킬 수 있는 위험성이 있다).

 

이런 연예병사의 처지를 이해한다면 당장의 징계를 피한 비가 이번 중징계를 받은 연예병사들보다 더 상황이 심각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잘못한 일에 대해 징계를 받는다면 그 자체로 새로운 기회가 생길 수 있겠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그 비난은 앞으로도 끊임없이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대중들에게 노출될 수밖에 없는 연예인으로서의 삶에서 이는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어떤 경우에는 잘못한 일에 대해 합당한 벌을 받게 해주는 것도 당사자를 돕는 일일 수 있다. 시간이 지나면 잊혀질 것이라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특히 다른 문제도 아니고 군 복무 관련 문제가 아닌가. 대중정서가 안 좋아질 대로 안 좋아진 상황에서 혼자만 빠져나간 듯한 인상을 남기는 건 가장 안 좋은 선택이다. 징계를 면한 비의 문제는 그래서 중징계를 받은 연예병사들보다 더 복잡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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