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스테이'가 코로나 시국에 내놓은 명민한 선택

 

tvN <윤식당>이 <윤스테이>로 돌아왔다. 코로나19로 해외에 더 이상 나갈 수 없게 되었고, 그래서 미뤄지다 결국 국내를 선택하면서 식당보다는 '한정된' 인원만 예약을 받아 할 수 있는 외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한옥 숙박업을 미션으로 삼게 된 게 <윤스테이>의 기획의도였다. 

 

사실 코로나19 3차유행이 본격화되지 않았던 지난 11월에 촬영된 것이지만, 방영시점이 현재 3차유행의 변곡점을 지나고 있는 상황이라 <윤스테이>가 보여줄 '대면의 풍경'들은 보는 이에 따라서는 불편한 지점들이 생길 수 있다. 그래서 <윤스테이>는 시작 전부터 그 '송구스러운 마음'을 자막으로 전제하고, 방송 중간 중간에도 여러 차례에 걸쳐 사전방역과 철저한 검사를 한 후 촬영에 임했다는 고지를 담았다.

 

또한 <윤스테이>의 '대면 공간'을 전남 구례에 외부와 격리된 한옥 고택으로 삼은 점도 다분히 코로나 시국을 염두에 둔 선택이라고 볼 수 있다. 그것은 원천적으로 우연한 외부인들의 틈입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것이고, 도시에서 떨어진 만큼 코로나의 영향이 적은 지역의 공간을 선택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사전에 예약을 받아 외국인들이 이 곳을 찾아오지만, 모두 사전 검사를 하고 그들만의 시간들을 담아낸다는 점에서 '프라이빗'한 공간이 주는 안전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윤스테이>는 이런 코로나 시국에도 굳이 이 프로그램을 하는 이유 또한 제시했다. 그것은 '한국 체류 1년 미만의 외국인 손님들'로 참여를 제한한 데서 드러난다. '한국 체류 1년 미만'이라는 의미는 나영석 PD의 설명대로 일 또는 학업 때문에 한국에 들어왔지만 코로나 때문에 외부활동을 거의 못하신 분들이고 그만큼 한국문화를 접할 기회가 없는 분들이라는 뜻이다. 그러니 이분들을 위해 1박2일 간의 한옥 스테이를 통해 한옥과 한식 같은 한국문화를 경험하게 해준다는 취지가 그 안에는 들어 있다. 

 

<윤스테이>는 그래서 최근 들어 해외에서도 이른바 'K'를 붙여 지칭하곤 하는 한국의 다양한 문화들을 그 시공간 안에 채워 넣었다. 먼저 곶감을 매달아 놓은 풍경과 대나무 사이로 난 길을 걸어 올라가면 널찍한 정원을 만나고 그 곳에 비밀스럽게 들어 앉아 있는 고즈넉한 한옥이라는 공간이 그렇다. 그 곳을 찾은 외국인들은 옛날에 사용하던 자물쇠를 여는 것만으로도 신기해하고, 털 달린 고무신을 신고 즐거워한다. 구비되어 있는 팽이나 제기 같은 전통놀이를 해보기도 하고, 구들장이나 비밀공간을 발견하고는 반색한다. 

 

'한식은 손맛'이라며 떡갈비를 위해 고기를 다지는 데만 1시간 넘게 들어갈 정도로 정성이 가득한 매 끼니들은 아마도 <윤스테이>의 가장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가 될 것으로 보인다. 베지테리안을 위한 요리는 물론이고, 매운 음식을 잘 못 먹는 외국인들을 위한 덜 매운 요리들까지 손님 하나하나에 신경을 쓴 서비스들에 담길 가족 같은 '한국의 정'도 빼놓을 수 없다. 

 

하지만 예능프로그램으로서 그저 훈훈한 광경만이 아닌 '긴장감' 또한 <윤스테이>는 놓치지 않았다. <윤식당>처럼 음식과 접객에만 신경 쓰면 되는 것과 달리 <윤스테이>는 하루 숙박이 갖는 무게감이 더해진다. 손님을 픽업해와야 하고, 좀 더 편안한 잠자리를 위해 숙소도 준비되어야 한다. 식사 때가 되면 한꺼번에 몰리는 손님들을 불편함 없이 접대해야 하는 숙제도 만만찮다. 과연 이걸 잘 해낼 수 있을 것인가가 적당한 긴장감을 제공하고, 그걸 해냈을 때의 뿌듯함 같은 걸 시청자들도 느끼게 될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윤스테이>가 'K'로 가득 채운 나영석표 블록버스터 예능이라는 걸 잘 보여주는 건 출연자들의 면면일 게다. 최근 영화 <미나리>로 미국 영화제를 휩쓸고 있는 윤여정은 물론이고, <보건교사 안은영>과 영화 <82년생 김지영>으로 주목받는 정유미, 영화 <기생충>의 최우식과 박서준 그리고 나영석표 예능의 페르소나나 다름없는 이서진까지. 아마도 K콘텐츠에 관심이 있는 외국인들이라면 이들이 접객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놀라울 수밖에 없다. 

 

코로나 시국은 여러모로 예능 프로그램에 장애요소들을 가져왔다. 해외로 나가던 예능들은 그래서 국내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고, 그나마 누군가를 만나는 일조차 '거리두기'로 인해 꺼려지거나 불편해지는 상황마저 만들었다. <윤스테이>는 그런 불편한 지점이 있다는 걸 스스로 인정하면서 '송구한' 마음을 전제하고는, 최대한 조심하며 이 장애요소들을 오히려 기회로 삼으려는 선택을 했다. '거리두기'로 인해 지친 시청자들에게 일종의 대리충족의 기회를 주겠다는 것. 중요한 건 '진정성'일 게다. 그저 강행하는 프로그램이 아니라 애초 취지에 맞게 한국문화를 체험하게 해주겠다는 그 진심이 전달될 때 시청자들은 불편함이 아니라 잠시 동안의 숨 쉴 기회를 가질 수 있을 테니.(사진:tvN)

'여름방학', 소소하지만 이 방학이 남기는 깊은 여운은

 

저런 방학을 지냈던 때가 언제였던가. 방학이 되면 시골 할머니댁에 놀러가 한 달 간 산으로 들로 뛰어다니며 유년시절을 보냈던 시절이 있었다. 아마도 일찍부터 학원 다니며 방학이 되도 그 반복되는 일과를 보내는 지금의 초등학생들에게는 낯선 풍경일 게다. 간간이 나는 시간에 모바일 게임을 하는 것이 더 익숙한 방학의 풍경일 테니.

 

tvN 예능 <여름방학>은 그 잊고 있던 추억의 한 자락을 꺼내 올리는 프로그램이다. 강원도 바닷가 마을의 집에서 한 달 살기를 하는 콘셉트지만, 그 집이 그려내는 풍경이나 일상들이 이제는 나이 들어 더 이상 방학이 없는 도시의 어른들에게는 그 어렸을 때 겪었던 할머니댁을 떠올리게 한다.

 

자전거를 타고 괜스레 동네를 휘 돌아 산책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면 처음에는 낯설어 데면데면했던 뽀삐가 이제는 익숙해져 반갑게 꼬리를 흔든다. 친한 지인들이 찾아와 함께 맛있는 음식을 해먹기도 하고 다락방에 올라 공기놀이를 하며 아이처럼 까르르 대다가는 어느새 창밖으로 지는 해를 넋 놓고 바라본다.

 

<여름방학>은 그렇게 자극적인 재미에 익숙해진 시청자들에게 너무나 소소하고 차분한 프로그램인 게 사실이다. 그래서 시청률도 화제성도 그다지 높지 않지만 일단 계속해서 이 세계를 들여다본 시청자라면 점점 그 곳에 익숙해져 이제는 정유미나 최우식처럼 그 집의 마당들과 거기 피어나는 허브들, 마당에서 그들을 반겨주던 뽀삐가 마치 자신의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것들인 양 반가워지는 느낌을 갖게 됐을 게다. 첫 방송이 나가고 나왔던 왜색이나 표절 논란이 싹 잊힐 정도로.

 

그 집을 둘러싸고 있는 마을도 그렇다. 조금만 나오면 보이는 바닷가와 거기 세워진 빨간 등재와 하얀 등대 하나가 반갑고, 최우식이 찾아가 빵 굽는 걸 배웠던 카페나 이들이 가리비를 사가곤 했던 가게, 장을 봤던 슈퍼가 반갑다. 처음에는 낯선 이방인처럼 그 공간에 어울리지 않았지만 이제는 동네 사람이 다된 듯 만나는 이들마저 이웃처럼 인사하는 모습이 정겹다.

 

처음엔 손님으로 왔지만 이제 지인들을 초대하면 이들은 이 집이 노을 맛집이라는 걸 자랑하고 바닷가 풍광이 너무나 좋다고 알려준다. 산책길 끝에서 내려다보이는 바다와 저 멀리 설악산의 위용을 보여주고 싶어 하고, 건강한 식재료들을 갖고 직접 만든 음식들을 맛보여주고 싶어 한다. 손님은 어느새 그렇게 그 곳의 주인이 된다. 그들은 어느새 그 집을 '우리 집'이라 말하고 그 동네를 '우리 동네'라고 말한다.

 

이것은 <여름방학>이라는 예능 프로그램이 담아내고 있는 색다른 느낌이다. 과거 이진주 PD가 <윤식당>에서 이국의 낯선 땅에서조차 점점 지내다보면 '우리 마을'처럼 느껴지곤 했던 그 경험을 이 프로그램은 전하고 있다. 그건 마치 방학 때 시골 할머니댁에 가면 처음엔 모든 게 낯설다가 이제 돌아올 때쯤이 되면 그 곳이 '우리 집'이라고 말하게 되는 그 경험 그대로다.

 

이제 돌아갈 날이 다가오자 최우식은 시간이 너무 빨리 간다며 벌써 한 달이 훅 지나갔다고 아쉬움을 토로한다. 처음에 정유미가 한 달 살기를 같이 하자고 했을 때만 해도 자신은 그걸 부담으로 느끼던 최우식이었다. 그러던 그가 그 곳에서 보내는 일상에 점점 깊이 빠져들고 그래서 한 달 더 살자며 '가을방학'은 없냐고 말하는 대목에서 이 프로그램이 준 소소하지만 깊은 여운이 무엇인가를 알게 된다.

 

최우식은 이번 한 달 살기를 통해 결과만 보고 달려왔던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됐다며 이제는 '과정' 하나하나를 행복하게 느끼겠다고 말한다. 어쩌면 매일 같이 치열하게 살아가는 우리들은 어느새 과정의 즐거움을 잊고 살아온 건 아니었을까. 그걸 보게 해주는 건 '방학'의 진짜 의미, 말 그대로 어떤 결과를 향해 달려오던 걸 잠시 멈추고 하루하루의 과정들을 느껴보라는 그 시간의 경험이 아닐까.

 

단 번에 되는 일은 없고 많은 것들이 그 하나하나의 과정들을 거쳐 되는 것이다. 그러니 최우식이 말하듯 그 과정을 행복하게 보내는 일이 소중해진다. 처음에는 낯설었지만 이제는 익숙해져 잘도 따르는 뽀삐 같은 존재가 생기는 것처럼. 결과가 급해도 과정은 천천히. 이 어려운 시국도 그렇게 하루하루를 잘 보내는 것으로 지나갈 테니.(사진:tvN)

‘사냥의 시간’, 도망칠 것인가 맞서 싸울 것인가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영화 <사냥의 시간>은 정확한 시간적 배경을 드러내지 않는다. 다만 머지않은 미래라는 것이고, 또다시 벌어진 금융위기로 인해 일상이 처절하게 파괴된 상황이라는 걸 황량한 거리를 통해 보여줄 뿐이다. 특정한 시공간을 적지하지 않고 있어서인지 이 영화는 암울한 미래의 청춘들이 겪는 현실을 은유한 가상처럼 여겨지는 면이 있다.

 

윤성현 감독은 어떻게 그런 공간들을 헌팅하고 축조한 것인지 현재의 공간이면서도 동시에 디스토피아적인 근미래의 공간 같은 그 느낌을 포착해낸다. 분명히 우리가 어디선가 봤던 공간이지만, 영화가 연출하고 편집해낸 영상 속 그 공간은 그 현실과 살짝 뒤틀려 있어 보는 이들을 긴장하게 만든다. 사실상 <사냥의 시간>이 특별하게 다가오는 지점은 바로 이 독특한 분위기가 아닐까 싶다.

 

그렇게 현실과 가상이 뒤섞여 만들어낸 영화적 공간 위에서 준석(이제훈), 장호(안재홍), 기훈(최우식) 그리고 상수(박정민)는 도저히 벗어날 수 없을 것만 같은 이 지옥으로부터 도망칠 계획을 세운다. 도박장 금고를 털겠다는 것. 모든 건 계획대로 착착 진행되는 것처럼 보였으나 자그마한 고리들이 드러나면서 이들은 쫓기는 신세가 된다.

 

미스터리한 인물 한(박해수)이 사냥을 시작하고, 사냥감이 되어버린 준석, 장호, 기훈은 필사적으로 도주해 그들이 애초 꿈꿨던 하와이를 닮은 대만 컨딩으로 밀항하려 한다. 한 탕 해서 휴양지로 도망치려 하는 청춘들과 이들을 막아 서 사냥하기 시작하는 한의 대결은 영화 전편을 추격전으로 만들어 버린다.

 

쫓고 쫓기는 일견 단순해 보이는 추격전이지만, 준석, 장호, 기훈의 끈끈한 우정과 총을 들긴 들었지만 두려움과 공포에 떠는 청춘의 초상들은 시종일관 긴장감을 만들어낸다. 느와르 액션의 틀을 갖고 왔지만 사냥감이 되어 쫓기는 신세라는 그 은유는 영화를 액션 이상의 사회극으로 들여다보게 만든다.

 

경제위기로 인해 더 이상 아무런 희망도 없는 청춘들과, 그래서 그들이 이 지옥 같은 곳에서 도망치려 안간힘을 쓰는 장면은 근 미래 설정의 가상극을 현재의 현실과 중첩시켜 놓는 이유다. 피도 눈물도 없이 이들을 추격하며 죽이거나 죽는 것 이외에는 별다른 의지가 없어 보이는 한이라는 존재의 공포 역시 마찬가지다. 청춘들이 현실에서 느끼는 막연한 공포감이 그 캐릭터를 통해 실감나게 구현된다.

 

그래서 우여곡절 끝에 목표에 이르렀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 곳 역시 현실과 하나도 다르지 않다는 자각은 무얼 말해주는 걸까. 하와이와 비슷해서 가려 했던 대만의 컨딩은 하와이가 될 수 없었다. 그리고 아마도 실제 하와이를 갔다고 해도 그 곳이 그들이 상상했던 그런 하와이는 결코 되지 못했을 게다. 그들은 다만 이 공간에서 저 공간으로 도망치는 것으로 이 현실을 탈출할 수 있을 거라 착각했을 뿐이기 때문이다.

 

영화는 질문한다. 사냥감이 되어 끝없이 쫓길 것인가. 아니면 자신을 사냥하려는 이와 맞서 싸울 것인가. 어느 곳으로 도망친다 해도 출구는 없다. 그러니 이 지독한 ‘사냥의 시간’을 벗어나는 길은 그들을 사냥감으로 만든 이들과 부딪치는 길 뿐이다. 저 멀리 있을 것처럼 보이는 허상이 아닌 바로 우리 앞에 놓여진 현실과 마주하는 길 뿐.(사진:넷플릭스)

이제 겨우 서사의 시작 알린 ‘마녀’, 시리즈를 기대해

박훈정 감독은 전작인 <브이아이피>가 직면했던 여혐 논란이 뼈아팠던 게 아니었을까. <마녀>는 마치 그 작품에 대한 감독의 항변처럼 느껴진다. 최근 들어 <악녀>나 <미옥> 같은 여성 슈퍼히어로의 등장이 새삼스러운 건 아니지만, <마녀>는 확실히 이들 작품과는 색다른 지대를 만들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제목만 보면 이 영화는 슈퍼히어로물과는 사뭇 거리가 먼 것처럼 느껴지고, 실제로 영화 중반까지는 너무나 토속적인 정경이 반복된다. 친자매처럼 친한 친구가 있고, 몸이 아프지만 소를 키우는데 남다른 정성을 쏟는 목장주 아버지와 치매기가 조금씩 보이는 어머니가 등장하며, 어려운 가계를 돕기 위해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가는 주인공 자윤(김다미)이 그렇다. 그래서 이 영화에서 <악녀> 같은 액션을 먼저 기대했던 관객이라면 중반까지 다소 지루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중반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자윤이 자신의 존재에 대해 각성하고, 등장한 닥터 백(조민수)이나 미스터 최(박희순) 그리고 귀공자(최우식)와 그 일당들이 살풍경한 살육을 시작하면서 영화는 중반까지는 사실상 이 독특한 슈퍼히어로의 탄생을 보여주기 위한 밑그림에 불과했다는 걸 드러낸다. 그저 치고 박는 수준의 액션이 아니라 날아다니는 할리우드 영화에서나 봤던 슈퍼히어로의 탄생.

영화 <마녀>의 백미는 그래서 후반부 이 괴력을 갖게 된 아이들이 탄생한 비밀스런 조직에서 벌어지는 슈퍼히어로 액션이 차지한다. 마치 마블의 플래시처럼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신출귀몰하게 움직이고, 주먹 한 방에 벽이 뻥뻥 뚫려버리는 괴력이 압도적인 액션들이다. 실험에 의해 이런 초인들이 탄생했다는 점은 <엑스맨>이 떠오르지만, 인간의 뇌 사용량을 극대화해 초능력이 가능하다는 설정은 뤽 베송 감독의 <루시>가 떠오른다. 

하지만 흥미롭게 다가오는 건 <마녀>의 자윤이라는 슈퍼히어로가 가진 선과 악 그리고 남과 여 그 중간 지점에 놓여진 캐릭터의 색깔이다. 자윤은 자신을 거둬준 부모에게 살갑고 착하기 그지없는 전형적인 여고생 캐릭터로 등장하지만 후반부에 가면 그런 선과 악의 개념은 깨져버린다. 또 여고생으로 등장하긴 하지만, 이 캐릭터는 그렇다고 여성성을 전면에 내세우지도 않는다. 이를테면 <악녀>가 그토록 놀라운 액션을 보여주는 기반에는 ‘사랑’이라는 막연한 여성성이 깔려있었고, <미옥>이 드러낸 힘도 ‘모성’에 기반 했다는 걸 떠올려보면 <마녀>는 그런 지점 자체가 없다.

그래서 자윤은 애매모호한 경계에 선 슈퍼히어로의 느낌을 준다. 악당들을 물리치니 선한 존재처럼 보일 수 있지만, 그 섬뜩함과 무자비함은 관객들조차 소름 돋게 만든다. 중요한 건 그 속내를 알 수 없고, 보여주지도 않는다는 점이다. 자윤이 싸우는 건 살아남기 위한 생존본능이지만, 거기에 달라붙는 ‘왜’라는 질문이 자꾸 만들어낸 선을 위해서인가 악을 위해서인가 하는 궁금증에는 답을 주지 않는다. 

<마녀>는 그래서 마치 마블의 슈퍼히어로물들이 시리즈를 구성하듯이 다음 이야기를 궁금하게 만든다. 박훈정 감독이 아예 ‘Part1. The Subversion’이라고 부제를 달아놓은 건 이 영화가 꿈꾸는 연작에 대한 기대감을 담고 있다. 만일 자윤이라는 슈퍼히어로가 향후 ‘Part2’의 이야기로 이어진다면 우리만의 독특한 슈퍼히어로 무비의 역사가 시작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

물론 연작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지는 영화들이 그러하듯, <마녀>는 아쉬운 지점들이 적지 않다. 특히 후반부의 액션이 폭발하기 전까지 전반부는 너무 설명적이라 다소 지루하다. 하지만 본격적인 액션이 시작되었고, 영화 말미에 다음 편에 대한 복선을 이미 깔아놓았던 터라 Part2에 대한 기대감은 크다. 선악과 남녀의 선을 뛰어넘은 독특한 슈퍼히어로 캐릭터의 탄생만으로도 반갑게 느껴지는 이유다.(사진:영화'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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