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사이’, 시대를 관통하는 상처받은 이들의 사랑 

이 드라마 첫 방부터 심상찮다. 그저 평범한 청춘 멜로인 줄 알았는데, 시대를 관통하는 사랑과 아픔 그리고 위로 같은 것들이 첫 회부터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그저 가슴 설레는 알콩달콩 사랑이야기가 아니라, 가슴 한 켠에 남아있는 아픈 상처의 응어리를 지그시 들여다보며 그 따뜻한 응시로 풀어헤치는 그런 사람 냄새가 나는 사랑이야기다. 

JTBC가 새롭게 편성한 월화드라마 <그냥 사랑하는 사이>는 쇼핑몰 붕괴 사고로부터 시작한다. 48명이나 죽은 그 사고 현장에서 살아남은 문수(원진아)와 강두(이준호). 하지만 살아남은 그들은 여전히 그 사고의 충격과 후유증 속에서 파괴된 삶을 버텨내고 있다. 사고 현장에서 동생을 잃은 문수는 그 트라우마와 죄책감 속에서, 술로 세월을 보내는 엄마와 그 엄마와 헤어져 국수가게를 운영하며 살아가는 아빠 사이를 오간다. 

강두는 무너진 건물 속에서 간신히 살아남지만 온몸이 망가져버리고 그가 재활하는 동안 집안이 망가진다. 결국 아빠도 잃고 엄마도 잃은 강두는 동생과 덩그라니 세상에 던져지고 닥치는 대로 일을 해 하루하루를 버텨낸다. 건물 붕괴로 인한 끝없는 트라우마 속에서 건설현장 잡부가 되어 살아가는 아이러니한 상황 속에서 아무런 희망 없이 진통제로 고통만을 잊은 채 살아가는 삶. 

<그냥 사랑하는 사이>가 다루는 사랑이야기는 저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나 세월호 참사 같은 우리네 기억 속에 저마다의 트라우마로 남아있는 아픔을 밑바탕에 깔고 있다. 그저 아무렇지 않은 듯 살아가고 있지만 사실은 불쑥불쑥 기억의 수면 위로 올라와 우리를 건드리는 사고의 기억들. 그것은 그래서 어쩌면 우리가 결코 잊을 수 없는 이 시대의 아픈 정서 같은 것일 게다. 

그래도 ‘살아남은 자’들은 어떻게 그 상처를 보듬어야 하고 잘못된 것들을 바로잡아 나가야 하는 것일까. <그냥 사랑하는 사이>는 그 곳에서 살아남은 문수와 강두가 서로의 상처를 공유하고 보듬는 사랑이야기면서 동시에 시대의 상처를 위로하는 이야기다. 창이 없는 엘리베이터를 타지 못해 16층을 계단으로 걸어 올라가다 문득 마주치게 된 두 사람은 그래서 어쩌면 그 사고의 상처가 엮어준 운명처럼 서로를 만난다. 

흥미로운 건 이들이 과거 사고현장을 중심으로 다시 얽히게 된다는 점이다. 무너졌던 건물에 새로 올라가는 바이오타운 건설에 문수는 건축사무소 건물 모형 만드는 일을 하면서 참여하게 되고, 강두는 건설현장 인부로 참여하게 된다. 그리고 그들 사이에는 그 사고의 주범으로 지목되었던 아버지의 무고를 밝히고픈 서주원(이기우)이 있다. 즉 이미 무너졌던 건물의 흔적들은 사라져버린 지 오래지만, 그 곳에서 이들은 다시 과거의 기억들과 마주하게 된다는 것.

<그냥 사랑하는 사이>는 그래서 그 청춘 멜로의 관계들 속에 상처받은 시대의 그림자를 드리워놓는다. 그들은 그저 평범하게 사랑할 나이의 청춘들이지만 과거의 아픈 기억들은 그것을 쉽게 용납하지 않는다. 대단한 사랑이 아니라 ‘그냥 사랑하는 사이’가 되는 일이 쉽지 않은 이들에게 먹먹한 아픔과 위로의 마음이 생겨나는 건 그래서다. 그저 드라마의 밑그림일 수 있는 첫 회를 슬쩍 본 것이지만 마음 한 구석에 느껴지는 둔중함. 이 드라마 어딘가 심상찮다.(사진:JTBC)

이준호·원진아가 해낸 ‘그사이’의 깊은 몰입감

제목은 <그냥 사랑하는 사이>지만 연기는 그냥 할 수 없는 작품이다. 그것은 이 작품이 다름 아닌 우리 사회에 여전히 남아있는 많은 사고 피해자 가족들의 아픈 기억을 상기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그 지워지지 않는 상처 앞에서는 섣부르게 웃는 것조차 감히 해서는 안 될 무례처럼 느껴진다. 그것에 진심이 담기지 않는다면.

그래서 건물 붕괴 사고 후 생존자들이 만나 사랑하고 서로를 위로하는 드라마에 이준호와 원진아라는 아직은 확고한 연기로서 자신을 대중들 앞에 증명해냈다고 보기 어려운 배우들이 주인공이라는 사실에 걱정이 앞서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물론 이준호는 지난 작품인 <김과장>에서 독특한 악역 서율 역할을 해내면서 놀라운 가능성을 보여준 바 있지만 그래도 여전히 아이돌의 잔상이 남아있는 게 사실이고, 원진아는 아직 대중들이 잘 모르는 신인이다. 어찌 기대보다 우려가 되지 않겠는가.

하지만 2회까지 방영된 드라마 속에서 이런 우려는 오히려 기대감으로 바뀌고 있다. 청춘의 시기가 갖는 풋풋함을 갖고 있으면서도, 사고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해 그 상처를 안고 어려운 현실을 버텨내는 그런 모습들이 전혀 이물감 없이 인물 속에 녹아들어서다. 이제 거꾸로 이들이 아니었으면 강두(이준호)와 문수(원진아) 역할을 그 누가 이만큼 깊은 몰입감으로 이끌어냈었을까 의구심을 갖게 될 정도다. 

그것은 이 작품의 함영훈 CP가 매체를 통해 밝힌 바대로 이들이 갖고 있는 ‘진지함’에서 비롯된다고 보인다. 강두와 문수를 연기하는 이준호와 원진아는 실로 사고 피해자와 그 가족들이 겪는 그 지워지지 않는 아픈 삶 속에 온전히 들어가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온 몸에 상처투성이로 살아가고, 상처가 나지 않으면 어딘가 이상하다고 여길 정도로 마구 몸을 부리는 강두는 거칠어 보여도 사실은 굉장히 여린 인물처럼 느껴진다. 세상에 자신의 아픔을 토로하는 듯한 어린 마음이 그에게서는 느껴진다.

반면 가녀리게 보이지만 오히려 엄마를 챙기고 아빠를 다독이며 생활력을 보이는 문수는 굉장히 강한 성격을 갖고 있다. 물론 엘리베이터 같은 밀폐된 공간에 있는 것 자체를 견디지 못하는 트라우마를 보이지만, 그래도 피하지 않고 그 아픔과 마주하는 인물이다. 그래서 오토바이에 치일 뻔한 문수를 강두가 구해냈을 때, 문수는 자신보다는 오히려 도로에 쓰러진 그 배달원의 안위를 더 걱정한다. 

강두와 문수가 이렇게 다른 면을 갖고 있는 건 사고 당시의 기억과도 연결되어 있다. 당시 먼저 구출된 문수가 들것에 실려 나갈 때 강두는 그 매몰된 곳에 갇혀 외치고 있었다. 거기 사람이 있다고. 누군가 다치는 것을 먼저 걱정하는 문수와 달리, 강두는 그런 위급한 상황에서는 자기만을 생각하는 게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강두는 문수가 궁금하다. 힘겨움 속에서도 단단하게 살아가는 그 모습이. 그리고 문수는 감두가 신경 쓰인다. 계속 상처를 입으며 살아가는 그 모습이.

이렇게 인물들의 감정과 성격 깊숙이 우리가 빠져들 수 있었던 건 다름 아닌 이들을 연기해낸 이준호와 원진아 덕분이다. 연기에 대한 진지한 접근이 만들어낸 어떤 진정성이 어쩌면 어려울 수 있는 이 역할들을 소화해낼 수 있게 했다고 보인다. 이준호라는 이제는 연기자라는 말이 더 어울릴 배우가 다시 보이고, 원진아라는 보석 같은 신인 배우가 새삼 아련한 느낌으로 다가온다.(사진:JTBC)

‘청춘시대2’, 우리 사회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건

JTBC 금토드라마 <청춘시대>를 보다보니 우리 사회의 여성이 보인다? 시즌1에서 주목됐던 인물이었던 윤진명(한예리)이 짠 내 나는 우리네 청춘들의 초상을 그렸다면, 시즌2에서 주목되는 송지원(박은빈)이나 정예은(한승연) 같은 인물들이 보여주는 건 어쩌다 보니 불안한 우리 사회에서 살아가는 여성들의 삶이다. 

'청춘시대2(사진출처:JTBC)'

먼저 지난 시즌에 데이트 폭력을 겪었던 정예은은 그 충격에서 좀체 벗어나지 못한다. 저녁 귀갓길에 홀로 집으로 오지도 못할 정도의 공포를 느끼는 그는 겨우 비슷한 왕따 경험을 했던 남자친구 권호창(이유진)을 만나면서 조금씩 마음을 열게 된다. 하지만 그 집으로 날아든 의문의 살해협박 편지의 주인공인 문효진(최유화)이 자살을 하고, 그 동거남이 그 집에 들이닥쳐 애인의 한을 풀어주겠다며 벌인 공포의 칼부림과 폭력은 모두를 충격 속에 빠뜨린다. 

지난 시즌에 정예은이 겪었던 데이트 폭력을 이번 시즌에서는 이 셰어하우스에 지내는 하우스메이트들이 한꺼번에 겪게 됐다. 다음 날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은 것처럼 다들 일상으로 돌아갔지만 그건 결코 과거의 일상이 아니었다. 가슴 한 편에 남겨진 트라우마가 그들의 일상까지 헤집어 놓았던 것. 그 밝고 명랑했던 송지원은 이 사건을 통해 자신이 문효진의 자살과 연루된 가해자가 아닐까 스스로를 의심한다. 

물론 이 셰어하우스에서 벌어진 괴한의 폭력 장면은 그간의 <청춘시대2>의 청춘 멜로 같은 장르적 특성에서 갑자기 스릴러로 튀어버린 느낌이 강했고, 게다가 다소 지나치게 많은 분량을 차지했던 면이 있었다. 그래서 <청춘시대2>에서 어떤 밝은 에너지 같은 걸 기대했던 시청자들에게는 충격적으로 다가올 수 있었다. 

하지만 굳이 이 드라마가 이러한 과한 폭력적 상황을 연출한 건 아마도 이번 <청춘시대2>를 통해 여성들의 삶의 문제를 담아내려 했던 일관된 주제의식이 있었기 때문일 게다. 그러니 처음부터 그런 편지의 존재를 복선으로 깔아 둔 것일 테니. 결국 이런 집단적인 폭력사태를 겪은 하우스 메이트들은 함께 유은재(지우)의 시골집으로 가 마음을 추스르는 시간을 갖는다. 거기서 송지원은 비로소 잃었던 어린 시절의 기억을 되찾는다. 자신이 가해자가 아니라 자신 역시 피해자였다는 것. 

다소 과한 설정들이 들어간 건 사실이지만 <청춘시대2>가 이런 사건을 통해 하려는 이야기는 분명하다. 강남역 살인사건 같은 충격적인 사건을 겪은 후 그것은 그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모두의 트라우마로 남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트라우마를 이겨내는 건 숨기고 없었던 일처럼 묻어두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모두에게 진실을 드러내며 그 사태의 진짜 책임자를 찾는 일이라는 것. 

정예은은 할머니의 생신잔치에서 자신이 겪었던 데이트 폭력과 그 충격을 꺼내놓는다. 부모조차 그 이야기를 숨기려 했지만 정예은이 그렇게 한 이유는 그래야만 겨우 자신이 살 수 있을 것 같은 위기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아픔을 꺼내놓는 자리에서 심지어 가족과 친지들조차 쉬쉬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들은 행복을 가장하기 위해 불행은 없었던 일로 치부하려는 자들이다. 

<청춘시대2>가 ‘여성시대’가 된 건 마침 이 벨 에포크라는 셰어하우스에 살고 있는 청춘들이 모두 여성들이기 때문일 게다. 그들은 저마다 청춘의 버거움을 느끼고 살아가지만, 그 위에 하나의 무거운 짐이 더 얹어져 있다. 그것은 폭력적인 사회와 그 폭력 속에서도 없었던 일처럼 침묵하며 살아가라 암묵적으로 요구하는 비뚤어진 시선들이다. 박연선 작가는 청춘들의 이야기를 담으며 다소 장르적 틀이 깨지더라도 우리 사회의 여성들이 처한 현실을 담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수상한 파트너’, 그들은 기억의 트라우마를 극복할 수 있을까

끔찍한 사건이 만들어낸 기억의 트라우마는 우리의 현실을 어떻게 바꾸는 걸까. SBS 수목드라마 <수상한 파트너>는 후반부로 접어들면서 본격적으로 주인공인 노지욱(지창욱)과 은봉희(남지현)가 어린 시절 부모들로부터 얽힌 사건 이야기를 다루기 시작했다. 노지욱의 부모가 은봉희의 아버지의 보복 방화로 죽음을 맞이하게 됐다는 것이 당시 공식 보도된 내용이었다. 

'수상한 파트너(사진출처:SBS)'

서로 사랑을 확인하게 된 노지욱과 은봉희는 이 과거 사실을 알게 되면서 이별을 선택했다. 제 아무리 사랑한다고 해도 그 과거의 고통스런 기억을 떨쳐낼 수는 없었던 것. 하지만 노지욱은 차츰 자신의 기억이 당시 조사관이었던 장무영(김홍파)에 의해 왜곡되어 있다는 것을 눈치 채기 시작한다. 충격적인 사건을 겪은 아이가 범인의 얼굴을 정확히 기억해낸다는 건 어려운 일이라는 걸 깨닫게 되면서다. 결국 장무영이 은봉희의 부친을 범인으로 지목함으로써 어린 노지욱은 그렇게 믿고 증언하게 됐고, 결국 부친이 방화범으로 체포되게 되었다. 

그러고 보면 은봉희의 부친과 은봉희는 똑같이 누명을 쓰는 운명을 반복했다. 그녀의 부친이 그러했던 것처럼 은봉희 역시 장무영의 아들을 살해했다는 누명을 쓰게 되었던 것. 하지만 그 누명을 풀어준 것이 바로 노지욱이다. 물론 그렇게 함으로써 노지욱 자신은 검사로서의 삶을 포기하고 변호사로 살아가게 되지만. 

<수상한 파트너>는 지금껏 여러 사건들을 에피소드로 다뤄왔고 그러면서 노지욱과 은봉희 사이에 생겨난 사랑의 감정을 키워왔지만, 궁극적으로 드라마가 하려는 이야기는 이 과거에 얽힌 악연을 어떻게 두 사람이 극복해나가는가 하는 점이다. 그리고 그것은 다름 아닌 기억의 트라우마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길이다. 

그러고 보면 드라마 전편에 걸쳐 연쇄살인범으로 등장해 쫄깃한 긴장감을 만들어내고 있는 정현수(동하) 역시 그 살인의 저변에는 ‘기억의 트라우마’가 자리하고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도망치다 교통사고를 당해 기억을 잃게 된 그는 자신에 대해 알고 싶어한다. 자신이 살인범이라는 걸 알게 된 그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졸업앨범을 통해 첫 사랑을 보며 기억을 되찾은 그는 눈물을 쏟아낸다. 그 역시 과거의 아픈 기억 때문에 살인을 저지르고 있었다는 걸 보여주는 대목이다. 

현재는 과거가 모여 만들어진다. 그런데 그 현재에 영향을 미치는 건 과거에 대한 기억이다. 그 기억이 만일 행복이 아닌 불행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면 그것은 행복해지려는 현재의 발목을 잡을 수밖에 없다. 트라우마는 그래서 기억을 지워버리거나 왜곡시키기도 하고 때로는 지워지지 않는 기억으로 남아 분노로 터져 나오기도 한다. 어떻게든 그 고통스런 기억으로부터 벗어나는 일은 그래서 과거를 극복하는 길이기도 하다. 

<수상한 파트너>가 굳이 기억의 문제를 가져온 건 그저 우연한 일이 아닐 것이다. 우리가 지금 처한 많은 현실들의 문제의 연원을 따라가다 보면 만나게 되는 것이 많은 과거의 아픈 기억들이니 말이다. 누군가는 전쟁의 기억을 트라우마로 안고 살아가고, 누군가는 개발독재시절 국가가 저지른 폭력의 기억을 트라우마로 안고 살아가며, 누군가는 안전불감증으로 인해 발생한 사건 사고의 기억을 트라우마로 안고 살아가고 있다. 어쩌면 그런 것들을 직접 겪지 않았어도 늘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는 사건으로 보며 살고 있는 우리들 역시 어떤 기억의 트라우마가 있을 지도 모른다. 

<수상한 파트너>가 건드리고 있는 기억이라는 지옥은 그런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그것은 노지욱과 은봉희도 넘어서야 하는 것이고, 연쇄살인범인 정현수도 극복해야할 문제다. 또한 아들을 잃고 폭주하는 장무영 검찰총장 역시 자신이 과거 누군가에게 저질렀던 사법적 폭력을 인정함으로써 그 기억의 문제들을 넘어서야 한다. 로맨틱 코미디의 외피로 덧씌워져 있지만 <수상한 파트너>가 하려는 진짜 이야기는 바로 이 우리 사회에 공기처럼 스며있는 기억의 트라우마가 아닐까.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