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 속의 비범, <또 오해영>에 이은 <낭만닥터>의 서현진


tvN <또 오해영>에서 서현진은 너무나 평범해서 똑같은 이름을 가진 또 다른 오해영과 비교당하며 살아가는 역할을 연기했다. 늘 주인공이 되지 못하고 주변인이 되어버리고, 하는 일도 또 연애도 주인공들 뒤편에서 바라보는 역할에 머무는 삶. <또 오해영>이라는 작품은 그래서 이미 2001년에 걸 그룹으로 데뷔했지만 별 주목을 받지 못하고 해체된 후, 2016년 이 작품을 만나기 전까지 아주 천천히 하지만 결코 느슨하지 않게 작은 역할들을 연기하며 나아가기를 멈추지 않았던 서현진의 실제 삶과도 겹쳐지는 부분이 있었다. 하지만 결과는 어땠던가. 그 평범함에 묻혀 있던 서현진이 <또 오해영>이라는 작품으로 더할 나위 없는 매력을 가진 주인공임을 증명하지 않았던가.

 

'낭만닥터 김사부(사진출처:SBS)'

SBS <낭만닥터 김사부>는 서현진에게는 그래서 감회가 남달랐을 작품이다. 그 이전까지는 주인공이라고 해도 주목받는 입장은 아니었지만 이번 작품은 다르기 때문이다. <낭만닥터 김사부>는 물론 김사부 역할의 한석규나 강동주 역할의 유연석이 있지만 그 중심추로서 윤서정을 연기하는 서현진이 서 있다. 그녀는 온전히 그 여주인공으로서의 무게를 감당해야 하는 위치에 있다.

 

<낭만닥터 김사부>에서 윤서정이란 캐릭터는 결코 쉽게 연기할 수 있는 인물은 아니다. 등장하자마자 결혼을 약속했던 남자를 교통사고로 잃었다. 그것도 그녀는 차 안에서 그에게 했던 말 한 마디가 그런 교통사고로 이어졌을 거라는 자책감까지 갖게 됐다. 충격에 산을 오르다 손을 다쳤고 외과의사로서 사형선고가 내려질 그 위기를 김사부가 구해줬다. 하지만 그 과거의 아픔과 상처는 여전히 남아있다. 하지만 병원 내사를 통해 밝혀진 것처럼 윤서정은 결코 죽고 싶은 충동을 느끼는 인물은 아니다. 대신 그 와중에도 살겠다는 의지가 있어 그것이 미안한 감정으로 남아있을 뿐이었다. 그러니 그 살겠다는 의지가 절실하게 붙들고 있는 것이 바로 돌담병원과 김사부다.

 

이런 복합적인 감정을 가진 채 그녀는 다양한 연기의 폭을 보여줘야 한다. 유연석과는 밀고 당기는 멜로의 감정과 함께 과거 교통사고로 사망한 전 남자친구의 트라우마를 넘어서는 연기를 보여줘야 하고, 한석규와는 그 트라우마 때문에 바닥까지 내려왔던 외과의사로서의 길을 다시금 걸을 수 있는 치열한 성장드라마의 연기를 보여줘야 한다.

 

서현진은 이 장르적으로는 멜로드라마와 장르드라마를 오가는 작품을 너무나 잘 소화해내고 있다. 외과의사로서의 진정성이 느껴지는 면면이 보여지는 동시에, 연애의 풋풋함과 아픈 기억의 절망감이 연기에 잘 녹아들어 있다. 무엇보다 서현진이라는 배우가 괜찮다 여겨지는 건 자연스러움이다. 그녀의 연기를 보면 튀기보다는 상황 속에 잘 스며있다는 느낌을 준다.

 

평범 속의 비범. 아마도 서현진이라는 배우를 한 마디로 표현하라면 이런 말이 어울리지 않을까 싶다. 지극히 평범해 길거리 어디선가 마주쳤을 지도 모를 그런 이미지를 보이지만 자세히 그 안을 들여다보면 비범한 매력들이 드러난다. 이것은 서현진이 향후 다양한 역할들을 소화해낼 연기자로서 성장하는데 좋은 바탕을 갖고 있다는 걸 말해준다.

 

중장년 연기자들은 넘쳐나도 이제 중심을 잡아줄 새로운 연기자들은 발견하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특히 여배우들은 더더욱 그렇다. 젊은 나이에 주목을 끌던 여배우가 조금씩 필모그라피를 쌓아가며 성장하는 배우로 자리매김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서현진이라는 여배우의 등장은 우리네 드라마나 영화에는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전성시대에 걸맞는 참 괜찮은 배우를 만나게 되었으니.

류화영의 <청춘시대>, 어째서 공감될까

 

JTBC 금토드라마 <청춘시대>에서 강이나(류화영)는 다양한 매력을 가진 인물이다. 셰어하우스 벨 에포크에서 그녀는 다른 청춘들과는 삶 자체가 다르다. 일단 대학생이 아니고 그래서인지 연애와 일에 있어서도 다른 청춘들과는 다른 태도를 보인다. 그녀는 좋게 표현하면 연애를 일로서 하고 있고(스폰서를 받는다), 나쁘게 표현하면 그녀 스스로도 말하듯 몸을 팔아 살아간다. 그러니 청춘의 연애가 갖는 아픔이나 상처 같은 것이 있을 리 없고, 또 미래의 일자리를 위한 고군분투도 없다. 다만 하루하루를 그저 살아가는 것이 그녀의 일상이다.

 

'청춘시대(사진출처:JTBC)'

그녀가 벨 에포크에서 일종의 왕따를 겪게 되는 건 대학생이 아니라는 걸 숨겼다는 사실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나쁜 남자라는 걸 알면서도 헤어지지 못하는 예은(한승연)에게는 그녀의 자유로운 남성 관계(?)를 일종의 더러움으로 치부하게 만드는 이유가 된다. 그녀는 할 수 없는 것을 하는 강이나를 더럽다고 말함으로써 힘겨운 자신은 깨끗한 사랑을 한다고 믿고 싶어 하는 것. 결국 술에 취한 강이나가 같이 사는 친구들에 대한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게 되고 그것이 그녀가 다시 벨 에포크에서 살게 되는 이유가 되지만 그녀가 이질적인 존재라는 건 변하지 않는다.

 

예은과 강이나의 문제는 끝나지 않고 이어진다. 예은의 그 나쁜 남자친구가 강이나에게까지 유혹의 손길을 뻗치자 그녀는 절망하며 강이나를 더러운 창녀로 몰아세운다. 예은은 강이나가 아무런 잘못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못되게 굴지만, 결국 힘겨워 엇나가는 예은을 보호해주는 건 강이나다. ‘강언니로 불리는 강이나라는 캐릭터는 이 가녀린 청춘들 속에서 일종의 해결사역할을 하고 있다.

 

이것은 연애만이 아니다. 일에 있어서도 강이나는 청춘의 현실에 일종의 냉소적인 입장을 보여준다. 알바를 세 개나 하며 현실에 찌들어 살아가는 윤진명(한예리)에게 강이나는 왜 그렇게 어렵게 사냐쉽게 사는 방법도 있다고 말한다. 그런 생각자체가 자신을 무너뜨리는 일처럼 여기는 윤진명은 강이나의 삶이 잘못 됐다고 부정하지만, 매니저가 내미는 유혹의 손길을 거부하지 않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그녀 역시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강이나는 이처럼 <청춘시대>라는 드라마에서 연애와 일에 걸쳐져 있으면서 때로는 해결사 역할을 때로는 현실에 대한 냉소를 보내는 인물이다. 그녀는 이 벨 에포크의 청춘들 사이에서 방외자 혹은 왕따 같은 존재이지만 그들을 걱정하고 때로는 문제를 해결해주려 노력하며 그들을 둘러싼 현실에 온 몸으로 냉소를 던지는 존재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강이나를 연기하는 류화영이라는 배우가 새삼 눈에 들어온다. 과거 왕따 사건으로 티아라에서 방출된 화영이란 이름의 가수가 이제는 어엿한 배우의 자리로서 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는 것. 적어도 <청춘시대>에서 그녀는 류화영이 아니면 다른 누가 가능했을까 싶은 연기를 보여준다. 특히 강이나라는 캐릭터는 그녀에게 너무나 잘 어울린다.

 

한 때 시련을 겪었던 인물이었기 때문일까. 그녀는 강이나를 연기하는 데 있어서 젊은 배우답지 않은 다채로운 얼굴들을 보여주고 있다. 섹시한 이미지에서 통쾌한 걸 크러시의 느낌은 물론이고 과거의 아픔을 트라우마처럼 갖고 있는 처연한 느낌까지 그 한 캐릭터를 통해 소화해내고 있는 것. 그녀에게 <청춘시대>는 그래서 남다른 작품으로 남을 것 같다. 티아라의 화영에서 이제 배우 류화영으로 돌아온.

<부산행>, 재난공화국에 날리는 마동석들의 일침

 

대규모 폭력사태가 이어지고 있습니다만 군대병력을 충원하여 국민여러분들을 안전하게 지켜드리니 안심하셔도 됩니다. 정부는 절대로 여러분들을 버리지 않겠습니다.” 이런 종류의 대사는 재난영화의 공식적인 클리셰에 가깝다. 재난영화 속에서 늘 정부는 아무 일도 아니라며 국민을 안심시키고는 저들 살 궁리를 하는 모습으로 그려지곤 한다.

 

사진출처:영화<부산행>

하지만 똑같은 클리셰에 해당하는 대사인데도 <부산행>의 이 대사는 영 달리 들린다. ‘폭력사태라는 표현이나 군대병력같은 단어들이 우리네 불행한 현대사에서 특정한 사건들을 떠올리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런 정부측의 브리핑과 상반되게 군대병력이 좀비로 돌변해 국민을 공격하는 장면은 그래서 더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광주 민주화 운동에서 우리는 상상이 아닌 실제 이런 현실을 맞닥뜨린 적이 있지 않은가.

 

그저 지나칠 수 있는 클리셰가 우리에게는 엄청난 트라우마를 건드리는 대사가 된다는 것. 이건 <부산행>이라는 좀비 장르의 영화가 1천만 관객을 넘어서게 된 가장 큰 이유가 아닐 수 없다. 본래 B급 장르로서 결코 대중적이라고 할 수 없는 좀비 장르가 신드롬이 있어야 가능하다는 1천만 관객 돌파라니! 그 트라우마가 얼마나 크게 자리하고 있는가를 이 영화는 잘 말해주고 있다.

 

그리고 이건 우연이 아니다. <부산행>은 그 영화 곳곳에 우리네 재난 공화국의 트라우마를 툭툭 건드리게 의도된 장면과 설정들이 들어가 있다. 필자가 이 영화에서 가장 끔찍하게 느낀 장면은 KTX 열차 안에서 창밖으로 바글바글 얼굴을 가득 달라 붙인 채 고통스러워하는 좀비들의 모습이 여러 차례 스치듯 보이는 장면들이다. 마치 바닷물이라도 그 안으로 들어온 듯 물밀 듯 차오르는 좀비들의 이미지는 세월호 참사를 떠올리게 하기에 충분했다.

 

세월호가 그러했듯이 이 영화에 등장하는 KTX 역시 우리네 재난공화국을 표징한다는 건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시속 3백 킬로로 달려가는 그 속도 위에서 좀비들과 사람이, 또 사람과 사람이 아귀다툼을 벌이고 있다는 설정은 그래서 더더욱 끔찍하게 다가온다. 게다가 이 영화의 제목에 담겨진 부산행이 과연 살아남은 자들의 대안이 될 수 있을까도 의문이다. 엄청난 속도로 달려가고 있지만 우리는 그 끝을 낙관할 수 없다. 다만 좀비들이 사람들을 공격하는 세기말적 상황에도 불구하고 괜찮다’, ‘안심해도 된다고 미디어를 통해 들려오는 당국자들의 거짓말이 있을 뿐이다.

 

좀비 장르이면서도 지독하게 현실성을 우리 앞에 내미는 <부산행>에서 마동석은 서민들의 영웅이면서도 가장 슬픈 존재가 아닐 수 없다. 그는 애초부터 주인공도 아니고 불쑥 이 KTX 행에 올라탄 후 아이를 임신한 아내와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이 목숨을 건 사투에 뛰어든다. 재난의 한 가운데서 그나마 온 몸을 던져 사람들을 구하고 심지어 아이들을 한 명이라도 더 구해내기 위해 다시 그 재난 속으로 들어갔다가 영영 돌아오지 못한 우리 시대의 마동석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데 그 마동석이 이렇게 말한다. “아빠들은 원래 욕먹고 인정 못 받고 무시당하고 그래도 희생하면서 사는 거야.” 좀비 장르를 보며 심지어 관객들이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는 건 <부산행>이 애초에 추구하는 것이 좀비물이 아니라 사회물이었다는 걸 잘 말해준다. 천만 관객은 우리네 재난공화국의 참상을 거기서 다시 봤고, 그 안에서 혼자 살기 위해 타인을 죽음으로 내던지는 이기심을 봤으며, 이런 재난 상황에 무능한 당국을 봤다. 그리고 그 속에서도 숭고하게 희생하며 사라져간 이름 모를 서민들을 보며 눈물 흘릴 수밖에 없었다.

 

<부산행>이 천만 관객을 넘긴 건 바로 그 재난공화국의 현실과 숭고한 서민들을 표징하고 기꺼이 재난에 몸을 던진 마동석 같은 존재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시그널>에 대한 몰입, 우리에게 남은 트라우마들

 

성수대교 붕괴사건? 대교 위를 달리던 차량이 갑자기 밑으로 푹 꺼진다. 뒤따라 달리던 차들이 급브레이크를 밟고 붕괴된 다리 밑으로는 떨어진 차량이 보인다. tvN 금토드라마에 담긴 짧은 사고 장면. 아마도 외국인들이 봤다면 왜 굳이 저런 장면을 넣었을까 의구심이 생겼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에게 그 장면은 그리 낯설지 않다. 그 붕괴 장면을 보고 백이면 백 성수대교 붕괴사건을 떠올렸을 테니 말이다.

 


'시그널(사진출처:tvN)'

이 대교 붕괴 장면을 배경으로 다뤄지는 대도사건도 그렇다. 그것은 흔한 도둑처럼 보일 지도 모르나, 우리에게는 낯설지가 않다. 82년 군부독재시절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대도사건을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다. 고위 정부 관리들과 정치인들 같은 부잣집만 털고 유유히 사라지는 이 도둑에게 당시 대중들은 카타르시스를 느끼며 대도라는 별칭을 붙여주기도 했다. 대도 조세형은 결국 검거되었지만 당시 군부독재에 대한 대중들의 혐오를 읽어낼 수 있는 사건이었다.

 

이 드라마가 3,4회에 집중적으로 다뤘던 경기남부연쇄살인사건은 화성을 떠올리게 했다. 영화 <살인의 추억>의 모티브가 되기도 했던 이 사건은 여전히 미제로 남아 당대를 살았던 이들에게는 하나의 트라우마가 되었다. 그러고 보면 1,2회에 다뤄졌던 유괴납치살인사건도 우리 사회에서 꽤 자주 벌어졌던 사건들을 떠올리게 한다. 91년에 벌어졌던 이형호군 사건은 대표적이다.

 

<시그널>은 이처럼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척 봐도 그것이 어디서 모티브를 가져왔을 거라는 걸 알 수 있을만한 사건들을 다루고 있다. 그것은 취재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당연한 일일 수 있다. 결국 <시그널>은 현실에서 미제에 남았던 사건들을 드라마로 가져와 풀어내는 작업을 선보이고 있다. 현실이 못한 것을 드라마가 판타지로나마 풀어내려 하는 것.

 

<시그널>이 우리 사회에서 벌어졌던 큰 사건들을 가져오는 건 그것이 크건 작건 우리들에게 남긴 트라우마 때문이다. 드라마는 그 트라우마를 건드리면서 무전기라는 판타지적 설정을 통해 과거와 현재를 연결한다. 그리고 당대에는 해결하지 못했던 미제사건을 해결하는 것으로 이 트라우마의 극복을 시도한다. 물론 드라마 한 편이 당대의 그 아픔과 고통을 해결해줄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희생자들에 대한 진혼곡은 충분히 될 것으로 보인다.

 

이 현실적인 사건의 모티브들은 드라마의 구성적인 측면으로 봐도 꽤 효과적이다. 사실 형사물 같은 장르가 연속극에서 성공하기 힘든 이유는 한 사건만으로 드라마 전체를 채우기가 어렵고 그렇다고 여러 사건들을 다루면 이야기가 편편히 나눠지기 때문이다. 한 사건에 몰두하다가 그게 해결되고 다른 사건으로 넘어가는 그 과정에서 몰입은 깨질 수 있다. 긴장이 흩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그널>은 현실적인 사건들을 구성하면서 그 사건을 이재한(조진웅) 같은 주인공과 연루시킴으로써 몰입도를 높여 놓는다. 사실 이재한 주변에 이토록 큰 사건들이 계속 터지고 있다는 것은 개연성의 비약일 수 있다. 하지만 워낙 현실적인 트라우마가 큰 사건들이기 때문에 시청자들은 이 비약을 기꺼이 허용한다. 드라마를 통해서나마 시청자들도 트라우마를 극복하고픈 욕망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시그널> 같은 작품이 나오고, 거기에 그토록 몰입하고 있는 우리의 현실에서 씁쓸함이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얼마나 사건사고가 많이 터지고 그럼에도 그 사건들이 해결되지 않고 미제로 남거나 엉뚱한 사람이 억울하게 감방에 가는 비극들이 넘쳐나면 드라마를 보면서까지 이토록 간절한 마음이 생겨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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