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욱씨>, 무엇이 이요원 같은 사이다 을을 탄생 시켰나

 

세상에 이렇게 속 시원한 을의 판타지가 있을까. 만일 을의 입장에 처한 분들이라면 JTBC 금토드라마 <욱씨남정기>의 옥다정(이요원)이라는 캐릭터가 말 그대로 사이다로 여겨질 만하다. 비록 결코 현실에서는 일어나지 않는 드라마의 한 순간 판타지라고 하더라도 이 사이다 캐릭터의 한 마디 한 마디가 그간 을로 살아오며 쌓인 울분을 톡톡 터트려주고 있으니.

 


'욱씨남정기(사진출처:JTBC)'

황금화학 팀장으로 있다가 러블리 코스메틱 본부장으로 간 옥다정이 탐탁찮은 황금화학 김환규 상무(손종학)는 구매팀장을 시켜 하청업체인 러블리 코스메틱을 괴롭힌다. 주문을 했다가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들어 반품시키고 심지어 생산을 중단하겠다는 으름장을 놓는다. 그런 상황을 정면돌파하겠다는 옥다정에게 러블리 코스메틱의 한영미 과장(김선영)은 이렇게 말한다. “모르는 건지 모르는 척 하시는 건지. 전형적인 하청업체 길들이기잖아요. ‘옥다정 너 까불지 마라.’ 그런 뜻 아닐까요?”

 

이것은 아마도 전형적인 갑을관계에서 이른바 관행이라는 미명하에 벌어지는 갑질일 것이다. 한 과장에게 이런 상황은 너무나 익숙하다. 자존심을 꺾지 않고 맞서는 옥다정에게 그녀는 을의 생존법을 얘기한다. “러블리에 왔으면 러블리의 방식을 따르셔야죠. 갑의 만족을 위해서라면 을은 늘 손해를 감수한다. 갑의 만족이 곧 을의 만족이다. 이게 바로 갑질에 대처하는 을의 생존법입니다.”

 

그런데 무슨 일인지 옥다정은 이에 승복하지 않으려 한다. 직접 황금화학 구매팀장을 찾아간 그녀는 일방적인 반품처리와 단산 운운하는 것이 갑의 횡포라고 맞선다. 그런 그녀에게 구매팀장은 대놓고 을이면 알아서 을답게 굴라고 말한다. “이봐요 옥본! 사태파악이 그렇게 안돼서 어떡하나. 이젠 황금화학 팀장이 아니라 러블리 코스메틱 본부장이잖아요! ?! 하청은 처음이라서 잘 모르는 모양인데, 원칙 따지다 러블리는 이 바닥에서 일 못한다는 걸 알아야지.”

 

아마도 현실이었다면 그 정도에서 무릎을 꿇었을 일이다. 심지어 러블리 코스메틱의 남정기 과장(윤상현)은 그저 버티는 것이 아니라 지키고 싶은 걸 지키는 게 진짜 자존심이라고 말한다. “직원들은 자존심 보단 밥그릇 지켜주는 상사를 바란다는 남 과장의 이야기가 보통의 을들이 가진 정서이니 말이다.

 

하지만 옥다정은 여기서 물러나지 않는다. 사우나에서 다른 하청업체 사장들과 노닥거리고 있는 김상무를 찾아가 러블리와의 하청계약을 모두 끊어 달라고 도발한다. 무릎 꿇으러 온 거 아니었냐며 황당해 하는 김상무에게 옥다정은 꿇으러 온 게 아니라 끊으러 온 겁니다라고 대꾸하고, “너 지금 나랑 진짜 해보자는 거야?”라는 위협에도 이렇게 속 시원한 한 방을 날린다. “해보자는 게 아니라 안하겠다는 겁니다. 앞으로 황금에서 내는 주문은 그게 뭐가 됐든 단 한 건도 받지 않겠습니다.”

 

물론 이건 판타지다. 세상에 이런 을이 어디 있겠나.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옥다정이 하는 한 마디 한 마디가 을의 입장을 고스란히 대변하는 것만은 분명하다. 하필이면 남자들만 득시글대는 사우나라는 공간에 여자의 몸으로 들어가 모든 계약의 해지를 통보하는 옥다정의 모습을 이 드라마가 그려낸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사우나란 공간이 어떤 곳인가. 맨몸으로 들어가지만 관계라는 미명하에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벌어지는 갑질이 종종 벌어지는 곳이 아닌가.

 

세상이 오죽 갑질 하는 이들로 넘쳐나면 이처럼 드라마를 통해서나마 속 시원한 을의 판타지를 원하게 된 걸까. 현실이 아니라고 해도 그저 잠깐 동안의 판타지라고 해도 이 드라마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건 그래서다. 밥그릇 때문에 자존심을 꺾기보다는 자존심을 지켜 밥그릇도 지켜내는 옥다정이 몹시도 보고 싶다

<태후>, 송중기는 군인이 아니라 슈퍼히어로다

 

세상에 이런 군인이 있을까. 명령을 수행하는데 있어 사사로움 따위는 없다. 하지만 소신은 분명하다. “노인과 아이와 여자는 지켜야 한다는 게 그것이다. 아랍의 무바라크 의장이 쓰러지자 자칫 잘못하면 국제분쟁이 벌어질 수 있다며 포기하라는 상관의 명령에도 군인 유시진(송중기)은 의사인 강모연(송혜교)에게 그를 살릴 수 있냐고 묻는다. 군인이라면 무조건 명령에 복종해야 하지만, 그는 노인과 아이와 여자는 지켜야 한다는 자신의 소신을 따른다. 이것이 KBS 수목드라마 <태양의 후예>의 남자주인공 유시진이라는 군인의 면면이다.

 


'태양의 후예(사진출처:KBS)'

군인이라는 직업(?)에 대해 우리가 갖는 감정은 이중적이다. 분단국가로 살아오면서 늘 분쟁과 나아가 전쟁의 위협이 끊이지 않는 이곳에서 군인은 우리가 마음 한 구석 기댈 수밖에 없는 존재다. 하지만 이러한 보호하는 존재로서의 군인은 그 직업적 특성 자체가 파괴적이고 위협적인 존재일 수밖에 없다. 오랜 군부 정권의 폭력을 경험해온 우리로서는 그 상명하복의 권력 체계가 얼마나 비극적일 수 있는가를 잘 알고 있다. 우리에게 그것은 심지어 트라우마로 남아있지 않은가.

 

<태양의 후예>의 남자주인공이 군인이라는 사실은 그래서 우리에게 당혹감을 준다. 유시진은 그저 군인이라는 직업만을 가진 존재가 아니라 실제 군인으로서의 임무를 부여받고 분쟁지구에서 위험천만한 작전을 수행하는 인물이다. 그런데 이 인물이 여성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것. 일상에서 군인이라는 직업에 여성들이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경우가 얼마나 될까. 군부 정권을 경험하지 못한 현재의 청춘들이라면 모를까(실제로 군인이라는 직업에 대한 젊은 여성들의 선호는 높다고 한다) 그 힘겨운 시절을 겪어낸 세대라면 고개가 갸웃해질 것이다.

 

하지만 심지어 군부 정권 시절과 그것이 가족 내에서도 가부장적 체계를 공고히 하게 했던 시대의 공기를 겪어낸 중년여성들조차 <태양의 후예>의 유시진이라는 인물에 푹 빠져든다. 이것은 남성들도 마찬가지다. 조금 손발이 오글거리기는 하지만 마치 스파이물의 주인공처럼 위험지구를 넘나들고, 노인, 아이, 여자 같은 약자들을 위해 목숨을 거는 이 인물에 빙의된다. 무엇보다 여성 앞에서는 끝없이 농담을 던질 정도로 부드럽지만 임무에 들어가면 액션 영화의 히어로처럼 맹활약하는 그 모습이 일상이 시시한 소시민들에게는 하나의 판타지로 다가온다.

 

게다가 이 군인이 우르크라는 분쟁지구에서 하는 일은 적과 싸우는 일이 아니다. 주민들을 보호하고 전쟁의 후유증으로 깔려 있는 지뢰를 제거하는 작업을 한다. 전력공급을 위해 발전소 시설을 건설하는 민간업체의 보호임무도 맡고 있다. 그리고 유시진은 이곳에서 과거에는 동료였지만 지금은 무기거래상이 된 아구스(데이비드 맥기니스)와 대립하게 된다. 또한 이곳에 벌어진 지진 때문에 무너진 건물 속에서 생존자를 구출하는 작전을 수행한다.

 

물론 이렇게 판타지화되어 있는 유시진의 면면에 의해 가려지는 해외 파병 문제를 도외시할 수 없을 것이다. <태양의 후예>국뽕이라는 해석은 과도한 면은 있지만 적어도 이 드라마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보여지고 있는 해외 파병의 실체를 한번쯤 생각해보게 한다는 점에서 의미 없다 말하긴 어렵다. 하지만 <태양의 후예>를 국뽕이라고 쉽게 단정해버리면 남는 문제가 있다. 이 드라마의 판타지에 푹 빠져 일주일의 피곤을 날리고 있는 그 무수한 시청자들은 그럼 모두가 국뽕에 빠져버린 중독자들인가.

 

만일 <태양의 후예>가 군인 판타지를 앞세워 국가를 홍보하고 있는 이른바 완성도 높게 찍은 배달의 기수같은 드라마라면 과연 시청자들이 지금처럼 반응할 수 있을까. 과연 <태양의 후예>는 국가를 위해 희생하는 개인을 정당화하고 있을까. 해외파병 문제를 덮어 버리려는 의도를 갖고 있을까. 아니 의도는 없더라도 실제로 이 드라마 한 편 때문에 해외파병 문제가 덮어지기는 하는 걸까.

 

<태양의 후예>는 일단 군인 판타지를 그리고 있지 않다. 유시진이라는 군인은 세상 어디에도 없는 이상화된 인물이기 때문이다. 이 인물은 군인이라기보다는 슈퍼히어로에 가깝다. 물론 날라 다니고 한다는 의미의 슈퍼히어로가 아니다. 자신이 갖고 있는 소신을 끝까지 지키고 그것을 생각만이 아니라 실행하는 인물로서의 슈퍼히어로다. 자신이 죽을 수도 있지만 붕괴된 건물 속으로 뛰어들고, ‘만약자신이 죽을 것을 대비해 부상자의 상태를 팔목에 꼼꼼히 적어놓는 건 단지 그런 임무를 부여받은 군인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오히려 유시진은 군인이라는 위치 때문에, 국가와 개인 사이에서 갈등하게 되는 인물에 가깝다. 국가는 그를 부르지만 그는 자꾸만 자신의 연인의 안부와 안전이 걱정된다. 사랑하는 사람과 영화 한 편을 보고 싶지만 갑자기 부름을 받아 전장으로 뛰어가야 하는 그다. 재난지구에서조차 사사로운 욕심을 채우려는 진영수(조재윤) 같은 인물이 그걸 가로막는 유시진에게 국민의 세금운운하며 몰아 부칠 때, 그는 국가를 위한 국민이 아니라 국민을 위한 국가를 얘기한다.

 

<태양의 후예>가 제아무리 유시진의 판타지에 빠져들게 만들어도, 해외파병 문제에 대한 심각성을 우리가 외면하지는 않을 것이고 그렇다고 군인에 대한 막연한 동경을 가지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유시진 판타지가 군인이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우리 사회가 희구하는 이상화된 슈퍼히어로(휴머니즘 같은 가치를 수행하는)이기 때문에 생겨나고 있어서다. 유시진은 그저 군인이 아니라 세상 어디에도 없는 이상화된 존재다

<피리부는 사나이>, 우리의 이야기 같지가 않다

 

사실 이 정도 되면 손에 땀을 쥐고 봐야 되는 게 아닐까. 하지만 이상하게도 tvN 월화드라마 <피리부는 사나이>에서는 그다지 긴장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은행강도 사건이 발생했어도, 시위현장에 한 사내가 가스통과 기름을 가득 채운 차로 돌진해도, 심지어 형사인 공지만(유승목)의 아들 정인(곽동연)이 피리부는 사나이의 전화를 받고, 지만이 그 피리부는 사나이가 보낸 아들을 찾으러 오라는 협박사진을 받았어도, 또 알고 보니 그것이 정인의 자작극이었고 또 그 뒤에는 피리부는 사나이인 척 한 성찬(신하균)이 있었다는 게 밝혀졌어도 그리 충격적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피리부는 사나이(사진출처:tvN)'

도대체 왜 이럴까. 화면 상에서는 긴박하게 인물들이 움직이고 사회의 부조리가 만들어낸 분노에 가득 찬 사람들이 제 몸을 내던지며 그 부조리를 토로하고 있는데도 그다지 큰 공감대가 생겨나지 않는다. 또 그들의 이면에 피리부는 사나이가 휘파람을 불며 나타나 배후조종을 하고 있다는 사실 역시 그다지 섬뜩하게 느껴지지 않고, 이를 막기 위해 치밀한 두뇌싸움으로 협상을 벌이는 성찬과 명하(조윤희)의 고군분투가 그리 감동적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혹시 종영한 <시그널> 탓이 아닐까. 워낙 긴장감도 높았고, 또 그 간절함이 시청자들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되었던 <시그널>이었다. 사실 무전기를 통해 과거와 현재가 연결된다는 판타지가 들어 있는 <시그널>이 이토록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고, 거기 뛰고 또 뛰는 형사들의 일거수일투족에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몰입시켰다는 건 놀라운 일이다. <피리부는 사나이>에는 그런 판타지 설정도 없다. 그런데 왜 이다지도 몰입이 안 되는 걸까.

 

그 첫 번째는 이 드라마에 등장하는 사건들에 대한 실감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은행강도 사건은 물론 우리에게도 종종 벌어지는 일이지만 이 드라마에 등장하는 사건의 정경은 미국 어디쯤에서 벌어질 법한 그런 장면을 보여준다. 일단 강도가 어디서 구한 것인지 총기를 사용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현실감이 떨어진다.

 

하지만 무엇보다 사회에 대한 분노를 가진 누군가를 배후조종해 폭력을 일으키는 피리부는 사나이라는 존재가 현실적으로 다가오지 않는다는 점이 이 드라마에 대한 몰입감을 떨어뜨리는 가장 큰 이유다. 만화에는 어울릴 법 하지만 드라마처럼 좀 더 리얼리티를 보여줘야 하는 장르에는 어딘지 너무 만화적으로 느껴지는 캐릭터다.

 

게다가 이 드라마는 <시그널>이 그랬던 것처럼, 피해자들에 대한 정서적 공감을 위해 그들이 처한 저간의 사정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충분히 배려하지 않는다. 은행강도가 출연하지만 그가 왜 은행을 털었는지에 대한 이유는 잘 드러나지 않고 있다. 다만 뒤에 피리부는 사나이의 조종이 있었다는 것이 있을 뿐, 그 은행강도가 어떤 사회적 분노를 터트리고 있는지는 잘 알 수 없다.

 

대신 이 드라마는 협상을 통해 사건을 해결하는 성찬과 명하에 더 집중하고 있다. 협상을 통해 소통의 중요성을 알려주는 멋진 협상팀의 모습을 보여주는 건 좋지만, 마치 그것이 그들의 능력을 자랑하고 있는 듯한 느낌 그 이상을 주지 못한다. 피해자와 희생자가 겪는 고통을 마치 내 일처럼 여기며 심지어 목숨을 거는 휴머니스트 이재한(조진웅) 같은 형사와는 너무 다른 모습이다.

 

결과적으로 이런 현실감이나 정서적 공감대 같은 것들이 잘 느껴지지 않는 <피리부는 사나이>는 우리 이야기 같지가 않다. <시그널>이 가장 잘 했던 그 부분이 빠져 있는 것. 이것이 <피리부는 사나이>가 가진 취약점이 아닐까. 그게 없어서 사건들이 반전에 반전을 거듭해도 그다지 긴장감이나 놀라움이 느껴지지 않는 게 아닐까. <피리부는 사나이>가 고민해야 할 지점이 아닐 수 없다.

돈이면 다 되는 세상, <결혼계약>의 판타지

 

MBC 주말드라마 <결혼계약>은 촌스럽다. 어찌 보면 과거 7,80년대에나 어울릴 법한 신파적인 인물 강혜수(유이)가 주인공이다. 어찌하다 보니 사채업자들에게 시달리고 있는 그녀는 딸 은성(신린아)과 함께 꿋꿋이 살아간다. 하지만 도무지 갚을 수 없는 빚 때문에 쉬지 않고 일해도 버텨낼 재간이 없다. 그런 그녀에게 한지훈(이서진)의 제안은 유혹적이다. 간 이식을 받아야 하는 자신의 어머니를 위해 거짓 결혼을 하고 이식을 해주는 대가로 거액의 돈을 주겠다는 것.

 


'결혼계약(사진출처:MBC)'

돈 때문에 거짓 결혼에 장기 이식까지. 요즘 같은 세상에 있을 법한 일이다. 하지만 그 설정만 보면 너무 전형적인 신파극의 여주인공인지라 새로움이라던가 트렌디한 면이 잘 느껴지지 않는다. 캐릭터의 전형성은 이야기 역시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 것인가를 쉽게 짐작하게 만든다. 즉 어찌 어찌해 계약을 통해 거짓 결혼을 하게 되었지만 차츰 이 돈이면 다 된다는 식으로 살아가는 한지훈이라는 인물이 조금씩 강혜수와 그녀의 딸 은성에게 사랑과 정을 느끼게 된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아들이 자신의 장기 이식을 위해 거짓 결혼까지 한다는 걸 이해하지 못하는 엄마 오미란(이휘향)이 자살할 결심을 하고 다행히도 그녀를 강혜수가 살려내고 설득하는 장면 역시 전형적인 신파의 한 대목 그대로다. “구차하게 살아도 사는 게 좋다는 혜수의 말에 오미란은 마음을 돌린다. 혜수의 처지와 오미란의 처지는 어떤 면에서는 통하는 구석이 생겨난다.

 

돈 밖에 모르는 것처럼 살아가는 한지훈이 강혜수와 은성에게 다가가는 장면은 겉으로 보기엔 장기이식을 전제로 하는 결혼 계약을 제대로 이행하기 위한 것처럼 보이지만, 차츰 거기에서 그의 무심한 듯 드러나는 진심이 보이는 건 역시 공식적인 관전 포인트다. 동정할 수밖에 없는 비련의 여주인공과 그녀와 계약으로 만나지만 차츰 계약 그 이상으로 가까워지는 남주인공의 밀고 당기는 멜로. 이만큼 전형적이고 나아가 촌스럽게까지 느껴지는 드라마가 있을까.

 

그런데 놀랍게도 이 모든 이야기의 설정부터 전개까지 다 알고 있는 뻔한 드라마에서 눈을 떼기가 쉽지 않다. 거기에 특별히 막장적인 자극이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이 혜수라는 인물의 현실적인 어려움을 들여다보는 순간부터 시청자들은 그녀가 그 수렁 같은 삶에서 벗어나기를 원하고 더 사랑받기를 원하게 된다.

 

이것은 마치 복수극의 또 다른 형태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에 무수히 쏟아져 나오는 복수극들 역시 그 공식은 정해져 있다. 치가 떨리는 악역(요즘은 갑질 재벌2세가 대세다)이 등장하고 그에 의해 처절하게 당하는 주인공이 끝내 그 악당을 물리치는 이야기. 권선징악이 그것이다. <결혼계약> 역시 다르지 않다. 복수극의 악역을 이 드라마는 자본이 만들어내는 돈 세상이 맡는다. 결국 이 드라마에 대해 시청자가 원하는 권선징악이란 돈이 아닌 사람에게 무릎 꿇고 계약이 아닌 사랑에 빠지는 남자의 이야기가 아닌가.

 

<결혼계약>이라는 촌스럽고 뻔한 이야기에 빠져드는 이유는 그래서 드라마 바깥에서 찾아질 수밖에 없다. 왜 사람들이 이런 뻔한 이야기를 보고 싶어 하는 걸까. 실제로 돈이면 다 된다는 그 현실에 얼마나 마음을 다쳤으면 뻔한 드라마를 통해서라도 그것을 뒤집는 판타지를 간절히 원하게 된 걸까. 이것이 <결혼계약>이라는 드라마의 뻔해도 결코 약하지 않은 판타지의 정체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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