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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격시대>, 때 되면 돌아오는 낭만주먹에 대한 향수

 

다시 낭만 주먹이다. 정치주먹 유지광과 이정재를 다뤘던 <무풍지대(1989)>, 거지 왕 김춘삼을 다뤘던 <왕초(1999)>, 김두한을 중심으로 당대의 주먹들을 다뤄 엄청난 화제를 모았던 <야인시대(2002)>에 이어 이번에는 시라소니를 모델로 한 <감격시대>.

 

'감격시대(사진출처:KBS)'

정치주먹이 등장하는 <무풍지대>는 시대적으로 후대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겹치는 부분이 거의 없지만, <왕초><야인시대>는 그래서 <감격시대>와 함께 같은 시대를 다루기 때문에 등장인물들도 겹칠 수밖에 없다. 이들 작품에는 서 모두 김두한과 시라소니가 등장하며 그 외에도 이미 한 몫씩의 매력적인 캐릭터를 갖고 있는 반가운 주먹들이 반복해서 등장한다.

 

<왕초>의 매력적인 캐릭터들로 주인공인 차인표가 연기한 김춘삼은 물론이고 최고의 캐릭터라 찬사를 받은 맨발 윤태영, 섬뜩한 악역을 선보인 발가락 허준호가 주목을 받았다. 거지왕 김춘삼을 주인공을 삼았기 때문에 김두한과 시라소니는 주변인물로 처리되었다. 김두한 역할은 이훈이 연기했고 시라소니는 액션영화에 많이 등장했지만 잘 알려지진 않은 배우 차룡이 연기했다. 시라소니는 그다지 주목되는 역할이 아니었다.

 

<야인시대>에서 시라소니는 <이장호의 외인구단>으로 독특한 카리스마를 보여줬던 조상구가 연기했다. <야인시대>에서는 김두한과 시라소니가 만나는 흥미로운 장면이 들어 있는데, 이 두 사람이 마치 대결을 벌일 듯한 장면에서 시청률이 폭등했다고 한다. 그만큼 김두한과 시라소니가 싸우면 누가 이길 것인가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물론 <야인시대>에서 두 사람은 대결하지 않는데 이것은 실제로도 그랬다고 한다. 이미 자리를 잡은 김두한이 화통하게 시라소니를 형님으로 모시면서 양자가 모두 사는 방법을 제시했다는 것이다. 조직을 갖고 있는 김두한이 늘 혼자 다니는 시라소니와 대결해서 얻을 게 없었다는 판단이다. 무리를 데리고 다니는 사자와 홀로 다니는 호랑이로 비교되던 이 두 사람의 대결은 그래서 후에도 두고두고 대중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시라소니는 물론 영화에서 다뤄진 적이 있지만 김두한에 비해 그다지 재미를 보진 못했던 소재였다. 물론 1985년 신문에 연재됐던 방학기 원작의 동명의 만화는 큰 화제가 되었다. 이것은 방학기 특유의 흥미진진한 스토리에서 비롯된 바가 크다. 방학기는 최영의를 소재로 다룬 <바람의 파이터>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격투기 자체에 대한 세세한 묘사로 대결 자체만으로도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작가다.

 

이번 <감격시대>에서 시라소니를 모델로 한 신정태(김현중)가 도비패에 들어가 하는 첫 번째 미션으로 달리는 열차에 올라타고 뛰어내리는 장면은 방학기 원작의 만화에서도 대단히 흥미로운 부분이었다. 열차에서 뛰어내리면서 그 관성을 이겨내기 위해 거의 바닥에 몸이 닿을 정도로 몸을 뒤로 젖히고 발로 바닥을 두드리면서 차츰 몸이 세워지면 달리는 동작은 물론 만화적인 각색이 들어간 것이겠지만 시라소니라는 캐릭터의 매력을 단박에 만들어낸 장면이기도 하다. 물론 드라마 <감격시대>에서 이런 세세한 연출을 보여줄 지는 미지수다.

 

이처럼 1930년대 이북 지역을 평정하고 상하이까지 이름을 날렸다는 전설적인 주먹 시라소니의 이야기는 이미 여러 차례 드라마에 등장한 바 있다. 하지만 그것은 조연의 역할이었지 이번처럼 주연인 경우는 <감격시대>가 거의 유일하다. 이렇게 된 데는 낭만 주먹에서부터 정치로까지 이어지는 김두한의 이야기에 비해 시라소니의 이야기가 다소 단순한 면이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홀로 다니는 시라소니의 이야기는 김두한처럼 무수한 매력적인 주변 인물들이 없기 마련이다.

 

<감격시대>가 시라소니를 다루면서도 신정태라는 새로운 인물을 재창조한 데는 이런 한계점들을 상상력을 통해 보완하기 위함일 것이다. 낭만 주먹을 다루는 것이니 주먹들의 일 대 일 대결은 가장 남성들의 시선을 잡아끄는 요소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제 아무리 남성 드라마를 주창한다고 해도 드라마에서 여성 시청자를 도외시할 수는 없는 일이다. <감격시대>가 주먹 이야기 이외에도 멜로를 동시에 집어넣고, 액션에도 잘 어울리지만 멜로 또한 괜찮은 그림을 만들어내는 김현중을 세운 데는 그런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김두한의 이야기가 훨씬 드라마틱하지만 시라소니의 이야기를 선택한 것은 그만큼 희소성이 있기 때문이다. 김두한 이야기는 너무 많이 다뤄졌다. <감격시대><야인시대>의 리메이크 정도로 인식하는 시청자들이 있을 정도다. 그러니 김두한만큼 주목을 끄는 인물인 시라소니를 소재로 가져오면서 그 인물에 상상력을 덧댄 팩션으로 승부하는 것이 훨씬 나은 선택이라 여겼을 게다.

 

여담이지만 김두한의 이야기는 정치적으로도 민감한 부분이 있다. 김두한은 훗날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 정치인으로 활동하면서 국회 분뇨 투척 사건을 벌인 것으로 유명하다. 그런데 이 일을 촉발시킨 사카린 밀수사건에는 당시 정부와 기업 사이의 유착관계가 들어 있었다. 당시 관련 기사들을 보면 김두한은 국회에 분뇨를 뿌리며 신랄하게 재벌과 정권을 비판했다고 한다. 이 부분은 과거 <야인시대>에서도 다뤄졌던 장면이기도 하다.

 

어쨌든 요즘처럼 남성들이 위축되는 시기에 낭만 주먹에 대한 향수는 더 깊어진 것이 사실이다. 심지어 TV 드라마에서도 거의가 여성 시청자들에 맞춰진 콘텐츠들이 대부분이다. 남자들은 드라마에서 뒷방 늙은이 취급 받거나 아니면 예능에서 여성들의 역할을 체험하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드라마의 남자 주인공은 마치 주도적인 인물처럼 보이지만 그 자체가 여성들의 판타지 대상이 된 지 오래다. 이런 시기에 <감격시대> 같은 남자 냄새 물씬 나는 드라마에 대한 남성들의 판타지가 없을 수 없다. 물론 <별에서 온 그대> 같은 여성 시청자들을 넉 다운 시키는 판타지가 더 클 수밖에 없겠지만.

Posted by 더키앙


'뿌나'에서 '해품달'까지, 팩션 사극을 연 대표작가들

'해를 품은 달'(사진출처:MBC)

'해를 품은 달'이 방영 시작 전부터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킨 데는 정은궐 작가라는 원작자의 작품이라는 기대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성균관 스캔들'의 원작인 '성균관 유생들의 나날'을 쓴 작가다. '성균관 스캔들'은 사극의 새로운 전기를 만들어낸 작품이다. 이 작품은 역사에 얽매이지 않고 시대적 배경을 과거로 돌린 채, 그 안에서 지극히 현대적인 청춘멜로를 담아냄으로써 사극의 외연을 확장시켰다.

청춘멜로나 사극 이 두 장르는 모두 어떤 침체기에 접어 들어있었지만, 이 두 이질적인 두 장르가 합쳐지면서 시너지 효과가 생겨났다. 청춘멜로가 갖는 어딘지 지나치게 가벼운 비현실적 느낌은 사극을 만나 그 무게감을 확보하게 되었다. 사극 특유의 강한 극성은 멜로조차 그 결과로서 죽음에 이르게 만드는 스토리를 가능하게 했다. '성균관 스캔들'이 성균관이라는 금남의 지역에서 남장여자라는 아슬아슬한 청춘멜로를 실험했다면, '해를 품은 달'은 그 공간을 궁궐로 강화시키고, 세자와의 로맨스를 통해 삶과 죽음이 왔다 갔다 하는 극성 높은 청춘멜로를 그려냈다.

반응은 놀랍게도 단 6회 만에 마의 시청률이 되어버린 30%에 육박하는 결과를 내고 있다. 이것은 최근 사극의 시청률이 20%대 중반에 정체되어 있던 것을 염두에 둔다면 놀라운 결과다. 이제 겨우 도입부에 불과한 스토리에서 이 정도라면 '해를 품은 달'은 어쩌면 전성기 시절의 사극이 거둔 성과를 재연할 가능성도 있다고 보여진다. 이런 변화를 가져온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팩션 작가 정은궐을 지목하지 않을 수 없다. 역사의 틀에 갇히기 보다는 그 역사적 틀을 활용해 완전히 새로운 사극의 세계를 개척한 팩션 작가들의 그 과감한 파격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란 얘기다.

'성균관 스캔들'과 '해를 품은 달'의 원작자인 정은궐 작가와 함께 주목되는 팩션 작가는 이정명이다. 작년 말 화제를 불러일으킨 '뿌리 깊은 나무'의 원작자인 이정명 작가는 신윤복이 여자라는 파격적인 설정으로 그의 그림을 통해 스토리를 만들어내 화제가 되었던 '바람의 화원'의 원작자이기도 하다. '바람의 화원'은 겉으로 보기엔 여성으로 설정된 신윤복과 김홍도의 멜로처럼 보이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한 예술가의 초상을 그려낸 듯한 깊이가 느껴지는 작품이다. 그들의 풍속화가 하나의 모티브가 되고 그 풍속화로부터 이야기가 전개되는 과정은 대단히 흥미로운 사극의 실험이었다.

이정명 작가는 이 두 작품을 통해 보여지듯이 역사적 인물을 소재로 끌어오지만 그것에 대한 파격적인 해석이 돋보이는 작가다. 그는 '뿌리 깊은 나무'에서 세종의 한글 창제를 소재로 하지만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궁궐 내에서의 연쇄살인사건을 다루었다. 사실 세종 시대는 태평성대였기 때문에 사극처럼 극적 대립이 필요한 장르에 쉽지 않은 소재다. 하지만 연쇄살인사건이라는 역사 바깥에서의 극적 상황을 집어넣자 이 작품은 전혀 다른 긴장감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이 원작을 드라마로 재해석한 김영현 박상연 작가는 이 원작을 보고 나서 비로소 세종 시대를 사극으로 다룰 수 있겠다는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물론 이런 파격적인 실험에 대한 우려 섞인 시선이 있지만 확실히 사극을 바라보는 대중들의 시각은 달라졌다. 정통사극의 시대는 왕의 시점으로 읽히는 역사를 강요받던 권위주의의 시대였다. 하지만 시대는 바뀌었고 역사를 보는 시각도 달라졌다. 푸코가 미시사를 가져와 본래 역사가 가진 권위를 해체시켰던 것처럼, 역사란 사실 권력자의 기록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다른 계층의 시각으로 보면 역사는 또 다르게 보일 수 있는 셈이다. 역사에는 존재하지 않는 인물들의 이야기가 사극의 새로운 스토리로 들어오게 된 것이다. 이것이 좀 더 극대화되고 심지어 장르화된 것이 '바람의 화원', '성균관 스캔들', '뿌리 깊은 나무', 그리고 '해를 품은 달'로 이어지는 새로운 사극의 계보다. 그 중심에 이정명, 정은궐 같은 팩션 작가가 있었다는 얘기다.

사극의 이러한(역사를 벗어나 장르화 되는) 변화는 향후 이 장르가 한류 드라마의 대표 콘텐츠가 될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사실 사극이 굉장히 글로벌하게 영향력을 가질 수 있는 장르라는 것은 '대장금'을 통해 확인되었다. '대장금'은 일본, 동남아를 넘어서 중동, 유럽까지 열광적인 반응을 얻어냈으니까. 그만큼 사극은 우리의 모습을 가장 특징적으로 잡아낼 수 있는 장르라는 것이다. 하지만 사극이 역사에 집착하게 되면 민족주의적인 틀에 갇히게 된다. 최근 사극의 변화는 이런 틀을 과감히 벗어던진다는 점에서 훨씬 더 경쟁력을 갖추게 되었다고 보여진다. 물론 사극은 이제 더 이상 역사교과서가 될 수 없다. 그저 하나의 콘텐츠로 즐기는 대상이 된 것. 이정명, 정은궐 같은 사극의 새로운 변화를 주도한 팩션 작가들에 주목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Posted by 더키앙


'뿌리', 팩션의 진가를 드러내다

'뿌리깊은 나무'(사진출처:SBS)

그들은 잠들지 못한다. 3경5점. 지금으로 치면 자정을 넘긴 시각에 그들은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누군가를 쫓기 위해 또 누군가를 걱정하고 도움을 주기 위해 잠을 자지 못한다. '뿌리 깊은 나무'의 인물들은 잠들지 못해 망가져가는 몸 따위에는 안중에도 없다. 잠드는 것이, 그래서 악몽 같은 과거의 그 한 순간이 꿈 자락에라도 슬쩍 찾아드는 것이 더 큰 고통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잠들지 못하는 건 과거 그들에게 있었던 사건이 남긴 트라우마 때문이다.

똘복 강채윤(장혁)은 기구하게 죽음을 맞게 된 아비에 대한 복수 때문에 잠 못 이룬다. 태종 이방원(백윤식) 때의 사건이지만 그는 그 자식인 세종 이도(한석규)에게 그 원한을 풀려 한다. 소이(신세경)는 자신의 말 한 마디 때문에 똘복의 아비가 죽게 되었다는 사실에 잠 못 이룬다. 충격으로 스스로 말문을 막아버린 그녀는 똘복에게 사죄하고 싶은 것이다. 그리고 글을 몰라서 벌어진 그 사건 때문에 세종이 하고 있는 한글 창제에 헌신한다.

한편 세종이 잠 못 드는 건 이 두 사람 때문이다. 아버지 태종 밑에서 뭐 하나 할 수 없는 무기력함에 빠져 있을 때, 자신이 처음으로 살린 백성 똘복을 위해, 또 자신 때문에 말을 못하게 된 소이의 입을 트이게 하기 위해 그는 잠을 자지 않고 한글 창제에 온몸을 던진다. 심지어 유학자로서는 할 수 없는 시신 해부까지 하는 그는 그만큼 필사적이다. 자신 때문에 누군가는 죽고 누군가는 벙어리가 되는 상황을 더 이상은 만들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뿌리 깊은 나무'가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 같은 거대한 업적을 다루면서도 남 일이 아닌 내 일 같은 사적인 사건처럼 팽팽한 긴장감을 잃지 않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이 사극은 세종이 한글을 창제하는 그 동기를 그저 막연히 '백성을 위해서'라고 말하지 않는다. 세종 이도에게 확고한 동기부여를 하고 있는 똘복과 소이라는 두 캐릭터를 세워둠으로써 극은 더 구체적인 이야기를 하게 된다.

물론 이 가상의 두 인물, 똘복과 소이는 이 사극에서 백성을 표상하는 캐릭터들이다. 똘복은 세종이 처음으로 살린 백성이고 또한 세종이 한글의 최종검수를 맡길 인물이다. 즉 세종은 백성을 위한 자신의 이 행위를 통해 똘복의 원망이 소통으로 바뀌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 사극은 궁극적으로 말하면 세종의 한글 창제를 통해 똘복으로 대변되는 백성과의 소통을 이루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한편 소이는 말을 못하게 되었다는 그 설정만으로도 문맹인 백성을 구체적으로 지칭하는 인물이고, 따라서 한글 창제에 있어서 상징적인 인물이다. 그녀가 말을 하게 되는 순간은 아마도 한글이 반포되어 백성들의 말문이 열리는 그 때가 될 것이다.

한글 창제라는 역사 속의 글들이 눈앞에 꿈틀대며 살아 움직이게 된 것은 바로 이런 캐릭터들로 인해 구체화된 의미 덕분이다. 그래서 그들이 자신들의 욕망과 소망 때문에 잠 못 이루는 밤은 그 자체로 보는 이들의 마음을 뭉클하게 하는 구석이 있다. 그것은 이 사극의 내적인 동력이면서 동시에 그 자체로 주제가 된다. '뿌리 깊은 나무'라는 조금은 복잡한 이야기가 흥미진진한 극의 구조를 잘 따라가면서도 지리멸렬해지지 않는 건, 캐릭터에 녹아있는 주제의식 덕분이다. 세종의 한글창제 이야기가 이토록 가슴을 치게 할 줄 그 누가 알았을까. 우리가 이렇게 일상적으로 쓰고 있는 이 글 속에 담긴 절절한 마음이라니.

팩트(역사)에 픽션(이야기)이 붙여져 만들어진 팩션은 그저 재미를 위한 설정만이 아니다. 그것은 역사를 다시 불러들여 작금의 대중들에게 어떤 해석을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것이다. 똘복과 소이라는 가상인물은 그저 재미로 세워진 인물들이 아니다. 그들은 백성을 표상하는 인물들이고, 세종의 동기를 좀 더 확연히 들여다보게 만들어주는 인물들이다. '뿌리 깊은 나무'는 그런 점에서 팩션의 진가를 드러내고 있는 작품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Posted by 더키앙

지난 달 간송미술관 앞은 때아닌 관객들로 장사진을 이뤘다. 미술관 입구에서부터 늘어선 줄은 골목을 빠져나와 대로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고적하기로 유명한 그 미술관에 무슨 일이 벌어졌던 걸까. 이유는 단 한 점의 그림 때문이었다. 신윤복의 ‘미인도’. 지금껏 다른 화원에 비해 상대적으로 조명된 적이 없는 신윤복, 게다가 조선시대의 춘화(?)로까지 오도될 정도로 흔하게 보여진(그래서 본격적인 미적 가치에 대한 조명은 덜 된) 그의 ‘단오풍정’, ‘과부탐춘’, ‘월야밀회’같은 그림이 아닌 ‘미인도’에 대한 관심은 이례적이라 할 수 있다. 무엇이 이 신드롬이라고까지 지칭할 수 있는 신윤복에 대한 열기를 만들었던 것일까.
그것은 한 편의 팩션에서부터 비롯됐다. 바로 ‘바람의 화원’이다.

미술관 풍경이 말해주는 신윤복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
미술관에 들어가기 위해 줄선 사람들은 본래부터 고미술에 관심을 가졌던 이들은 아닌 것이 분명했다. 그들은 줄을 서서 기다리며 주로 드라마 ‘바람의 화원’에 대한 이야기들을 나누고 있었다. 박신양의 연기가 어떻고 문근영이 진짜 소년 같다는 그런 이야기들. 그리고 막상 미술관에 들어서게 된 그들의 발걸음이 먼저 닿는 곳은 오로지 ‘미인도’였다. 간간이 보이는 신윤복과 김홍도의 작품들이 발길을 끌뿐, 웅장한 자태로 서 있는 겸재 정선의 산수화나 추사 김정희의 글씨, 혹은 김명국의 그림은 지나치기 일쑤였다. 하지만 ‘미인도’나 ‘단오풍정’같은 신윤복의 그림 앞에서는 저마다 한 마디씩 감탄을 하거나 평을 보태기도 했다. 어떤 사람은 그림을 자세히 뜯어보고는 “신윤복은 완벽주의자였던 것 같다”는 나름대로의 생각을 정리하기도 했다.

대중들의 신윤복에 대한 각별한 관심은 바로 그 지점, 쉽게 단평까지 내릴 수 있는 그 친근함에서 비롯된 바가 크다. 이것은 물론 우리네 고미술에 대한 대중들의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흔히들 무언가 선비정신이나 단아함, 혹은 추상적인 세계관 같은 것으로 오인되는 우리네 고미술에 대한 편견. 따라서 그런 그림들 앞에 서게 되면 친근함보다는 어딘지 올려다봐야만 할 것 같은 위압감 같은 것. 하지만 이것은 우리네 겉핥기식 미술교육이 만들어놓은 편견이다. 우리가 익히 임권택 감독의 영화 ‘취화선’을 통해 만난 장승업을 보고 알 수 있듯이 이들의 삶은 지극히 서민적(혹은 그 이하였다, 환쟁이라 불릴 정도로)이었다. 장승업과 또 한 명의 조선시대 신필로 불리는 김명국 역시 마찬가지. 그는 주광(酒狂)이라 불릴 정도로 술을 마셨는데, 취해야만 그림을 그렸다는 일화까지 있을 정도다. 그만큼 당대의 화원들이란 환쟁이로 천시되던 풍토 속에서 살아왔던 것이다. 따라서 신윤복에 유독 대중들이 관심을 보이는 것은 아마도 드라마나 책을 통해 박제된 천재가 아니라 살아있는 한 위대한 인간으로 재조명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고 신윤복의 그림과 지금 시대의 코드가 맞닿는 지점을 간과할 수는 없다. ‘미인도’를 보면 그 한 올의 터럭까지 잡아내는 그림의 섬세한 필치와 다소곳이 서 있는 여인의 자태가 주는 미적 감동을 느낄 수 있다. 신윤복 스스로 “그녀의 마음까지 잡아넣었다”고 만족해했을 만큼 그 그림의 여인은 수백 년이 지난 지금에도 금방 살아날 것 같은 생생함을 전해준다. 하지만 단지 그것뿐일까. 미적인 성취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거기 놀라운 저널리스트로서의 신윤복의 가치가 드러난다. 바로 그 ‘미인도’의 주인공이 기생이라는 사실. 여인조차도 그림의 한 구석에만 자리해야하는 존재로 여겨지던 시대에 당당한 화제로서 그려진 기생의 초상은 저 양반들의 초상이나, 어진의 그것과의 대결의식을 그 자체로 담고 있다. 즉 신윤복의 그림의 화제는 늘 보통 사람들의 눈높이에서 건져 올려진 것들이다. 서민들이 보기에 속시원했을 양반들의 허위의식을 그 속에 담으면서도 또 한 편으로는 미적인 성취를 이뤄내는 신윤복의 그림은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대중들의 정서와 맞닿는 대목이 있다. 신윤복은 그렇게 수백 년을 지나 지금 시대에 다시 걸어 들어온 것이다.

팩션과 영상 시대가 요구한 천재
유독 신윤복이 팩션이라는 장르를 통해 이 시대에 재조명된 이유는 무얼까. 이를 알기 위해서는 먼저 팩션이 무엇인지를 명확히 알아야 할 것이다. 흔히들 팩트(사료)+픽션(상상)을 팩션이라 생각해, 여기저기 팩션이란 용어를 남발하고 있지만, ‘바람의 화원’의 원작자인 이정명 작가는 팩션을 역사소설 혹은 소설과 오인하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사실상 소설이란 어느 정도의 팩트(그것이 작가 개인의 것이든)에 상상을 더한 것으로 그렇게 생각하면 팩트+픽션이 아닌 소설이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팩션은 역사적 사실에 추리형식을 곁들여 상상력으로 풀어낸 이야기로서, 하나의 새로운 장르라는 것. 이정명 작가는 굳이 표현하지만 팩션은 ‘역사추리’에 가깝다고 했다.

따라서 이미 다 알고 있는 역사적 사실은 팩션의 소재가 되지 못한다. 차라리 역사적 사료가 누락된 부분에서 팩션은 탄생한다. 이것은 역사에 대한 인식 자체가 변화하면서 생겨난 욕구의 소산이라 할 수 있다. 푸코가 주장하는 권력으로서의, 지배자들의 전유물로서의 역사가 가진 한계를 상상력을 동원해 뒤집어보는 것으로서 팩션은 그 자체로 존재의 의미를 가진다.

신윤복은 그런 면에서 이 팩션의 시대가 요구한 천재이다. 동시대의 화원으로서 김홍도가 역사의 전면에 등장해 있는 반면, 신윤복은 그렇지 못하다. 도화서 화원이었다가 술과 여자, 혹은 난잡한 그림(?) 때문에 쫓겨났다는 식의 단편적인 기록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사료뿐만 아니라 신윤복은 그 흔한 일화조차 남아있질 않다. 사료에 기록이 선연히 남아있는 김홍도나 기록이 별로 없어도 수많은 일화로 그 면면을 짐작하게 해주는 연담 김명국 같은 다른 화원들과는 사뭇 대조되는 모습이다. ‘바람의 화원’ 원작의 이정명 작가는 바로 이 기록이 남아있지 않은 점이 오히려 더 많은 상상력을 불러일으켰다고 한다. 오로지 남아있는 그림들을 통해 신윤복을 상상해야 하는 그 지점에서 작가는 그 그림 속에 들어있는 이야기들을 재구성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

또한 신윤복이 화원이라는 사실, 즉 그림이 소재가 된다는 점은 영상 시대에 걸맞는 시각적인 즐거움을 제공한다. 읽는 것보다는 보는 것이 더 익숙해진 요즘, ‘바람의 화원’이라는 팩션은 영상화하기에 최적의 컨텐츠라 할 수 있다. “오히려 드라마가 원작보다 더 낫다”고 말하는 이정명 작가는, 세세한 일상까지를 잡아내는 리얼리티의 힘을 영상 컨텐츠를 통해 느낄 수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단지 영상화하기 좋은 미적인 소재라는 점에서 신윤복의 그림이 주목되었을까.

여기에는 한 가지 더 부가되는 점이 있다. 이것은 이미 전술했듯 신윤복의 그림 속에는 저널리스트로서의 시선이 있다는 점이다. 단적으로 보면 ‘그리움’이라는 제목의 그림 속에는 여염집 아낙네가 고개를 돌리고 서 있는 모습이 어떤 아련한 그리움을 자아내게 만드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아낙네가 들고 있는 모자가 송락이라 불리는 것으로 스님들이 쓰는 것이다. 그 하나의 오브제만으로 이 그림은 전혀 다른 새로운 이야기의 가능성을 갖게 된다. 바로 이런 점은 역사 속에 숨겨진 그 어떤 것을 상상력을 통해 추리해가는 팩션의 장르와 잘 맞아떨어진다. 거기서 발전된 형태가 ‘미인도’에 대한 ‘바람의 화원’의 해석이다. ‘미인도’를 통해 신윤복의 자화상을 떠올리는 것은 마치 ‘다빈치 코드’에서 모나리자의 그림을 통해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자화상을 연결시키는 것과 갖은 맥락이다.

드라마가 살려낸 박제되었던 천재
그렇다면 이런 팩션을 드라마는 어떻게 시각화했을까. 드라마는 팩션이 구상했던 그 길을 그대로 따라간다. 그것은 그 중심에 그림을 세워두고 그 안에 있는 이야기들을 들여다보는 식이다. 먼저 신윤복의 ‘기다림’이라는 그림은 드라마 속에 들어오면 외유사생(생도들이 하루 바깥에 나가 자유롭게 그림을 그리는 것)을 통해 신윤복(문근영 분)이 담아온 그림으로 표현된다. 소설에서는 그 그림의 음란성을 가지고 문제를 삼는 정도에서 그치지만, 드라마는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거기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여인이 사실은 정순왕후였다는 충격적인 설정으로 가는 것이다. 이렇게 극적으로 설정되자 정순왕후는 그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그 그림을 그린 생도를 찾아내기 위해 혈안이 된다는 조금은 과장된 스토리. 하지만 이것은 드라마 초반부의 시선을 잡아두기 위한 방편의 설정일 뿐, 진짜 그림에 대한 깊이 있는 해석은 이후에 등장하는 ‘군선도’에서 보여진다.

‘군선도’편에서 신윤복과 김홍도(박신양 분)는 먼저 함께 저잣거리를 활보하며 거기서 장사치들과 서민들이 살아가는 생생한 모습들을 보게된다. 그 하릴없이 지나치는 듯한 하루의 일과는 그러나 빈 화폭 앞에 서면서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김홍도는 군선도(群仙圖), 즉 신선들의 무리를 그리는 그림 속에 그 저잣거리 사람들의 얼굴과 표정을 잡아넣는다. 그러면서 “보이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 것을 그리고,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이는 것을 그린다”는 말로 화법의 기본을 신윤복에게 설명한다. 즉 화원의 눈이란 저잣거리 사람들의 얼굴에서도 신선을 볼 수 있다는 말이다.

이러한 오랜 세월이 지나온 그림 한 장 속에 잠들어있는 이야기를 깨어내기 위해 ‘바람의 화원’은 초현실적인 연출을 활용한다. 그림이 꿈틀꿈틀 살아 움직이며 실사로 변하거나, 실사가 화원의 붓끝에 의해 그림으로 변하는 식이다. 신윤복의 ‘기다림’이라는 그림은 정순왕후가 나무 곁에 서서 잠깐 동안의 여유를 즐기는 모습을 크로키처럼 빠르게 신윤복이 그리는 장면으로 연출된다. 여기서 실사는 그대로 붓끝의 질감으로 서서히 변하면서 그림으로 나타난다. 이것은 김홍도의 ‘군선도’에서도 마찬가지다.

또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는 신윤복의 그림, ‘단오풍정’은 단오에 계곡에 모여 머리를 감고 그네를 타는 여인네들을 드라마 속 에피소드로 풀어냄으로서 정지된 그림 속의 이야기를 눈앞에 생생히 보여주었다. 기생 정향(문채원 분)과 신윤복이 함께 그네를 뛰면서 그 부서지는 풍광들 속에 계곡의 여인네들이 하나하나 그림의 부분으로 바뀌는 장면은 이 드라마가 가진 연출미학의 백미라 할 수 있다.

화원들의 철학까지 담아낸 팩션 드라마
이러한 연출은 그저 볼거리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스토리와 함께 당대 화원들의 화풍과 철학까지도 담아낸다. 그 대표적인 것이 김홍도와 신윤복이 같은 소재로 다르게 그려낸 주막 그림 에피소드이다. 그들은 정조에게서 동제각화(同題各畵 : 같은 화제로 각자 그림을 그리는 것)를 명 받고는 뭘 그릴까 고민하다가 선술집을 보며 때아닌 그림 논쟁을 벌인다. “저 주모 얼굴을 좀 봐라 밤낮으로 술을 팔아서 얼굴에 피곤이 덕지덕지 붙었지 않느냐? 술장사가 잘 안 되나보다. 아이고 저 양반 놈 보게. 대낮부터 불콰하게 취해 가지고 헤롱헤롱 아이고 꼴 좋다. 야 저 얼굴 저 표정 저 몸짓에 모든 게 다 들어있지 않느냐?” 하지만 여기에 대해 신윤복은 다른 관점을 제시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어디에 있는 지를 화폭에 담아야 그들의 마음을 알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 간단한 대사 속에는 김홍도와 신윤복의 그림관이 들어있다. 즉 김홍도는 배경보다는 인물 그 자체만으로도 그 성정이 다 드러난다고 주장하고, 신윤복은 그 사람만 봐서는 그 사람이 뭐를 원하는 지 알 수 없으며 오히려 그 배경이 그 마음을 알게 해준다고 한다. 김홍도의 반박에 신윤복은 주막 평상 위에 물로 찍어 새 그림을 그리고는 이렇게 말한다. “이 새는 이렇게 있으면 그저 새일 뿐입니다. 무엇을 원하는 지 이 그림만 봐서는 알 수가 없죠. 허나 이렇게 새장을 그려놓으면 그저 새이기만 했던 이 새가 무엇을 원하는 지 그 마음을 알 수 있지 않습니까?”

배경 그림 없이 인물에 더 집중했던 김홍도와 달리 배경을 통해 그 안에 갇힌 대상의 마음을 잡아내려 했던 신윤복은 그만큼 조선이란 사회가 가진 틀과 억압에 민감했던 것이 틀림없다. 그는 저 스스로도 조선에 갇힌 새였으며, 그림을 통해 그 새장을 벗어나고자 했던 것이다. 그의 그리움은 바로 이 떠나지 못하게 하는 현실의 족쇄에서 비롯된 것이다.

한편 신윤복이 그린 ‘주사거배’와 ‘무녀신무’는 드라마 속으로 들어와 그림이 현실에 어떻게 영향을 주는가에 대한 단초를 제시한다. 즉 대낮에 일은 하지 않고 선술집에서 불콰한 모습을 취해있는 이들과 혹세무민하는 무당들이 담겨진 그림을 보고 정조는 그 풍경이 말하는 고발정신을 읽어낸다. 이 저널리스트의 눈을 가진 신윤복의 면모를 드러내주는 에피소드는 정조가 신윤복과 김홍도를 불러 “너희들은 내 눈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 것처럼 그림이 마치 지금의 사진처럼 그 이미지 이상의 의미를 전달해준다는 것을 드러내는 대목이기도 하다.

역사왜곡과 재해석 사이
하지만 팩션이 아무리 없는 사료 속에서 상상력으로 그 빈곳을 채운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굳이 신윤복을 왜 남장여자로까지 그렸어야 했을까. 이것은 지금 학계에서 ‘지나친 역사왜곡’이라며 우려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빌미가 되고 있다. 한동안 잠잠했던 사극의 역사왜곡 논란이 ‘바람의 화원’을 통해 또다시 고개를 쳐든 것. 문화재 위원장인 안휘준 전 서울대 명예교수는 연합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백 번 양보해도 남자를 여자로 그리는 건 과하다”고 지적하면서 “국민에게 역사를 알게 하려면 그 작업을 제대로 해야지 흥미를 유발시키기 위해 사실을 왜곡하는 것은 긍정적이기보다는 부정적인 측면이 크다”고 말했다.

안휘준 위원장의 이 같은 발언은 문화재 위원장으로서 어쩌면 타당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은 역사가 한 가지 사실로만 받아들여졌던 시대에는 온당하지만, 지금처럼 한 가지 사실에 대한 한 가지 기록으로서 받아들여지는 시대에는 그다지 효율적인 태도가 아니다. 역사왜곡과 재해석의 차이는 그렇게 이미 가까워져 있다. 안휘준 위원장의 발언은 학자의 절대적인 텍스트가 되어야 하는 역사를 뒤흔드는 팩션이나 드라마에 대한 당연한 입장일 것이다. 그 말은 거꾸로 보면 ‘사극이 국민들에게 역사공부를 시켜줄 정도의 어떤 것’이라는 생각이 담겨있다. 영상매체로서의 사극이 갖고 있는 영향력을 자인해주는 셈. 그리고 이것은 실제로 신윤복 신드롬으로 드러난 바 있다.

정통사극이 이미 사라져버린 요즘, 사극을 두고 역사왜곡을 말하는 것은 이제 좀 식상한 논쟁이 되어버렸다. 퓨전 사극이 대세로 자리잡은 요즘의 사극트렌드에서 사극은 역사 그 자체보다 오히려 상상력을 더 중요시 여기게 되었다. 사극에 대한 대중들의 인식도 그만큼 달라졌다. 사극이 역사 그 자체라면 그것은 재연 다큐멘터리이지 드라마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제 사극은 더 이상 역사공부가 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하지만 바로 그 역사를 버림으로 해서 사극이 얻은 것이 있다. 그것은 진위를 떠나 역사 자체에 대한 관심을 제고한다는 점이다. 어떤 특정 역사에 대한 주의 환기로서만 사극은 그 효용성을 가진다.

‘바람의 화원’이 등장하기 이전까지 신윤복이나 김홍도에 대한 학문적 관심을 끌기 위해 학계에서는 어떤 노력을 해왔던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사극이 이처럼 역사공부를 시켜줄 정도의 영향력을 가질 동안, 학계에서는 대중들을 방치하고 있었던 게 사실이다. 달라진 대중들의 역사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할 때 이제는 하나의 사극을 역사왜곡이라 일축하는 식이 아니라, 좀더 사극의 상상력 또한 가슴에 품어주는 넓은 도량으로서의 접근이어야 하지 않을까. 중요한 것은 이렇게 사극 혹은 팩션을 통해 환기된 역사와 함께, 동시에 정확한 역사로 바로잡아주는 학계의 노력이 공조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신윤복의 그림에 대한 관심으로 촉발된 간송미술관의 성황 속에서 안타까웠던 점은 바로 이 점이다. 대중들은 신윤복을 통해 우리네 고미술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 미술관에서는 정작 그림 감상을 돕는 어떤 설명조차 없었다는 점이다. 물론 갑작스런 상황에 대처하지 못했을 수도 있지만, 만일 거기 있는 다른 미술작품들에 대한 설명 같은 것까지 준비되어 있었다면 신윤복 신드롬이 신윤복에서 멈추지 않고 다른 고미술에 대한 것으로 넘어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어쨌든 간송미술관의 최완수 한국민족연구소 연구실장은 이런 현상에 대해 “드라마의 영향으로 전시의 가치나 내용을 잘 모르고 오는 손님들도 꽤 있지만, 어떻든 우리 문화재의 중요성을 느낄 수 있는 기회가 된다면 좋은 일(한국일보 10월15일자)”이라고 말했을 정도로 상황을 긍정적으로 바라보았다.

그럼에도 왜 꼭 남장여자여야 했을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휘준 위원장의 표현처럼 “백 번을 양보해도” 왜 꼭 남장여자였을까에 대한 의문은 남는다. 이것의 효용성은 아마도 작품 속에서 이 남장여자가 기능하는 바를 찾아내야 드러날 것이다. 즉 작품 내적인 문제라는 말이다. 만일 그것이 단지 안휘준 위원장의 말대로 “흥미를 유발시키기 위해 사실을 왜곡”했다면 그것은 문제가 된다. 하지만 작품이 신윤복을 남장여자로 설정하는 타당한 이유가 있었다면 그것은 하나의 예술적 상상력으로서 포용되어야 한다.

이정명 작가는 여기에 대한 하나의 일화를 들려주었다. 어린 시절 보았던 성냥갑에 그려진 신윤복의 섬세한 필치와 분명한 색조가 드러나는 ‘단오풍정’을 통해 작가 자신은 신윤복을 여성으로 생각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다 어느 날 교과서를 통해 신윤복이 남자라는 것을 알게되고는 오히려 깜짝 놀랐다는 것이다. 즉 이정명 작가가 본 것은 그 여성성이 묻어나는 신윤복의 그림이다.

신윤복의 그림에는 남자와 여자가 확연히 대비된다. 즉 남자, 양반들은 그 위선적인 모습들을 보여주고, 여자 기생들은 자유스러우면서도 아름다운 파격을 보여준다. ‘미인도’가 그저 아름다운 여인을 그린 것이라 생각한다면 아무런 감흥이 없을 것이나, 그 그림의 주인공이 기생이라면 깊은 감흥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아무도 기생을 그림의 소재로 세우지 않던 시대에 신윤복은 그 기생을 그림으로써 아름다움이란 신분이나 지위와는 상관없는 것이라는 말을 전해주었다. 그것은 또한 신분, 지위 같은 남성성을 강요하는 사회에 아름다움과 생산성, 창조성을 내포한 여성성을 그리워한 신윤복의 마음이 담겨진 그림이기도 하다.

신윤복이 이 시대의 컨텐츠 속에서 남장여자로 되살아난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 아니었을까. 남장여자는 단지 사료부족을 상상력으로 채우는 과정에서 나온 것이라든가, 그림의 필치가 여성적이라는 데서 착상한 그런 단순한 것이 아니다. 여성이지만 남자로서 살아가야 하는 남장여자는 분명 여성성을 희구하지만 남성성의 사회 속에 살아가야 하는 현대인들과의 공감이 바탕에 깔려있다. 즉 여성성의 삶, 생산적이고 창조적인 삶을 희구하지만 현실은 남성성의 삶, 경쟁적인 삶 속에 매몰될 수밖에 없는 현대인들의 공감 말이다. 이것은 또한 당대 신윤복이 가졌던 배경(사회환경의 현실)과 그 배경을 화폭 속에 비틀어 그려내면서 그 구속을 벗어나려 했던 욕구와 같을 것이다.

남성과 여성이라는 성적 구분이 역할 구분과 맞닿아있었던 과거 농경사회 속에서는 남성과 여성의 차이는 엄격했을지 몰라도, 지금처럼 성별과 상관없이 각각의 능력으로 인정되는 정보화 사회 속에서는 그 생물학적 구분은 문화 컨텐츠 속에서 그렇게 엄격하지 않을 수밖에 없다. 지금은 남성과 여성의 시대가 아니라 남성성과 여성성의 시대다. 신윤복이 팩션과 드라마 속에 들어와 남장여자로 설정됨으로써 본질은 여성이지만, 여성으로 살 수 없는 상황을 극대화하고, 따라서 자신 스스로에 내재된 여성을 표현할 수 없는 그 마음을 그림 속에 더 절실하게 구현한다는 것은 작품으로서 의미가 있다. 이것은 또한 남성성의 사회 속에서 여성성의 사회로 변화해 가는 지금, “왜 신윤복인가”하는 질문에도 충분한 답변을 제공하는 대목이다.
(이 글은 월간중앙에 게재되었던 글입니다.)

Posted by 더키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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